들풀(제사 題辭)

 

 

 


침묵하고 있을 때 나는 충만감을 맛본다. 하지만 입을 열려고 하니 동시에 공허를 느끼게 된다. 지난날의 생명은 이미 죽어 없어졌다. 나는 죽은 생명에 대해 극도의 만족감을 맛본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을 통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 버린 생명은 어느덧 썩어 문드러졌다. 나는 썩어 문드러진 생명에서도 충만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으로도 생명이 공허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생명의 진흙이 땅 위에 팽개쳐져 있어도 높은 나무는 자라지 않고 들풀만이 잘랄 뿐이다.

이것은 나의 죄요. 허물이다.

 

들풀은 뿌리가 깊지 않다. 아름다운 꽃이나 잎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들풀은 이슬을 마시고 물을 빨아 먹으며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피와 살을 먹고 저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들풀은 제 푸름을 자랑할 때도 인간들에게 짓밟히고 베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죽어서 영원히 썩어 갈 때까지.

 

그러나 나는 담담하고 기쁘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리라. 나 스스로 사랑하는 나의 들풀이지만, 나는 이 들풀로 장식을 하려는 지면을 증오한다. 땅속의 불덩어리는 땅 밑으로 흐르다가 솟구쳐 오른다. 일단 용암이 분출되면 땅 위의 들풀과 높은 나무도 그래서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리라.

 

그러나 나는 담담하고 기쁘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리라. 하늘과 땅이 이다지도 적막하기에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지도 못하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를 수도 없다. 설령 하늘과 땅이 이처럼 적막하지 않더라도 아마도 나는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밝음과 어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나는 이 한 움큼의 들풀을 선사하고자 한다. 친구이든 원수이든, 인간이든 짐승이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든 미워하는 사람이든. 나 자신을 위하여, 친구와 원수를 위하여, 인간과 짐승을 위하여, 사랑하는 자와 사랑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나는 바란다. 이 들풀이 죽어 없어지고 썩어 문드러지기 위해서 불길이 빨리 타오르기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일찌감치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니 이는 실로 죽어 없어진다거나 썩어 문드러지는 것보다도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떠나거라, 들풀이여! 나의 이 제사 題辭까지도.

 

 

 뱀발.

 

1. 자꾸 엇나가고 흐려지는 것 같아 캔버스 위에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본다. -- 김수영의 풀과 엇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폭과 깊이....들풀 이라는 책제목의 글과 23편을 꼼꼼이 다시 읽어보고 소회를 남겨야겠다.

 

2.외우면서 옮겨 적다보니 어감이 많이 다르더군요. 느끼다와 알다의 차이, 본다라고 적었는데 원문에는 맛본다 였어요.... 루쉰은 알아주는 이도 없고, 외치자니 그 또한 아무런 파장도 없을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그는 적막하다고 말하더군요. ..'입을 열면 공허를 느끼게 된다'고 하지만 ..곧이어 '생명이 공허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어요. 그는 절망을 먼저 느끼죠. 희망이 허망한 것처럼 절망도 허망하다고 하죠. 빛보다는 어둠의 편이 차리를 지금을 낫게 만든다라고 하죠.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어둠에 선다라고 말에요. 아마 제 표현대로 하면 그는 철저한 덧셈주의자가 아닐까해요. '철저'와 '왔다'를 그는 경멸하니...이 표현도 어색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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