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1903~1950)은 잘 알려진 대로 소설 <1984년>(1948)과 <동물농장>(1944)을 쓴 영국의 작가이다. 오웰은 1936년 서른셋의 나이에, 아나키스트 그룹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파시스트 프랑코에서 맞서는 ‘대의’를 위해 참전한 그 시민전쟁에서 그가 맞닥뜨렸던 것은 공산당과 스탈린주의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그 체험과 비판의 기록이 바로 <카탈로니아 찬가>다.
<조지 오웰>은 그간 루쉰에서 고야,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위인’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소개해온 저술가 박홍규(영남대 법학 교수)씨가 그려내는 ‘오웰 찬가’라 할 만하다. “오웰의 아나키즘에 공감하는”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유와 자연, 반권력의 정신’으로서 오웰의 삶과 사상 편력을 속도감 있게 직조해내고 있다.
지은이가 보기에, 오웰은 권력 자체를 철저히 부정한 ‘자유인’이다. 다른 말로 ‘돈 키호테’다. 오웰은 1930년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했지만, 그의 사회주의는 그가 살았던 당대에 현존하던 사회주의와는 달랐다. 오웰은 자본주의와 그 극단인 제국주의는 물론이고 공산주의에도 반대했다. 오웰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지칭한 그 생각을 지은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라고 해석한다. 오웰의 이념은 “아나키즘에 가까운 좌익-자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이며, 오웰은 공산주의는 물론 자본주의 모두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스페인내전 르포라 할 <카탈로니아 찬가>(1937)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과 순수성이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짓밟혔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첫 장편소설 <버마의 나날>에선 대영제국의 야만적인 제국주의 행태를 까발렸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인민전선 정부가 당시 스페인 식민지이던 모로코에 대해 취한 제국주의 정책에 대해선 비판했다. 이런 면모 때문에,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출간하려 했을 때, 그 동안 그의 작품을 출판해주던 좌파 진영은 “그런 책은 파시즘에 맞선 싸움에 유해하다’는 이유를 들어 출판을 거부하기도 했다.
지은이는 오웰의 돈키호테와도 같은 복잡성이 ‘정통’에 어긋나는 발언을 태연히 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오웰은 영국 제국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다가도 영국 제국주의는 후속 제국주의보다 낫다고 하는가 하면, 자신이 20대 초반에 영국 식민지이던 버마(당시 인도)에서 경찰관 생활을 하며 느꼈던 ‘불교 승려’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편견을 버리지 않았다.
오웰의 소설뿐 아니라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오웰의 수많은 에세이, 오웰 전기물 등을 종횡으로 섭렵하고 있는 이 책을 보노라면 20세기 초반 영국 등 유럽의 진보 지식계의 구도도 읽어낼 수 있다.
오웰은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끌어올린 1944년 작 <동물농장>에서 인간의 심성마저도 마치 축음기처럼 자동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1948년에 발표한 <1984년>에선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풍자했다. 이 두 소설은 ‘반공산주의 문학’으로 포장되어 냉전시대 미국의 소련 비판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는데, 이는 <동물농장>이 세계 최초로 번역 출간(1948년)된 나라가 한국이고 이 소설의 한국판 판권료까지 미국 해외정보국의 ‘반공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미국 정부가 내줬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동물농장>과 <1984년>에 나오는 독재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아니 이 소설들의 숱한 번역본을 생산한 대부분의 번역자들에게 북한정권을 뜻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오웰 작품에 대한 ‘해설’집이나 오웰의 소설에 딸린 ‘해설’에는, 주로 공산당을 비판한 소설이라는 점이 천편일률적으로 강조되었다는 얘기다. 지은이는 실명을 거론해가며 종전 번역자, 해설자들의 작품 ‘해석’을 강력히 반박한다. <동물농장> 등 오웰의 소설들은 20세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전체주의, 곧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침해하는 정치체제로 비판한 것이며, “따라서 그의 소설은 북한체제는 물론 남한체제를 비판한 책으로 읽었어야 마땅했다”는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후기
1. 출장길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이틀 나눠 읽다. <동물농장>에 익숙한 나로서, 또다른 <1984>와 접점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 책으로 인해 좀더 바닥을 흐르는 무엇을 느낀 셈이다. 고로 지인의 마음의 감사를 정말 고맙게 받은 턱이다.
2. 전쟁경험? 없지 않은 우리로서는 - 민방위훈련부터, 교련, 전방입소, 신성한 국방의 의무까지 끝냈고, 아직도 민방우 훈련을 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경험이 많은 편이다. 총도, 수류탄도, 지뢰까지 ....그야말로 직간접의 피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불운한 교육 세대인 까닭에 참호와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긴장감까지, 더구나 총에 맞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덤덤한 오웰이 기가막히기도 했지만, 그 상황은 고스란히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3. 이렇게 2를 주절이는 이유는, 나야말로 <동물농장> 교육세례를 받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빨갱이와, 공산당은 싫어요 버전인 까닭이다. 더구나 영어 교과서 문장으로도 공부를 했으니 오죽하였을까? 그러한 면에서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가르친 교사나 아무런 배경도 알려고 하지 않은 학생 모두에게 책임은 있는 것이다.
4. 대학에서도 나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선배에게 배웠을 뿐이다. 문구를 따지고 다른 각도에서 볼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핑계일 수도 있지만, 다양성이란 숨쉴 수 없는 닫힌 세계에 살고 있었던 나 또한 책임이 있는 까닭이다.
5. 죽은 자의 노력은 다른 시선과 다른 자양분으로 늘 다시 태어난다. 문제는 지금에 그 시선을 녹여 지금 우리가 얼마나 새로울 수 있고 기쁠 수 있느냐이다.
6. 공상적 사회주의자라는 꼬리표이거나, 그 사람은 어떻다라는 레떼르는 또 다시 그를 죽이는 셈이다.
7. 새롭다는 것이 영국인으로서 이녘의 땅에서 자원하여 참전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짧은 기간 나눠갖는 평등함일 수도 있고, 시대를 앞서는 시각일 수도 있고, 명멸하는 불씨는 언젠가 작은 마음에 다시 화려한 복귀를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8. 일신의 안녕을 뛰어넘는 국제주의자?의 노력과 헌신, 열정이나, 오웰에 대한 개인의 빗나간 시선에서 한번 다른 곳을 보는 것도, 그리고 일상에 한 조각이라도 가져와 품어보는 것도 책읽은 뒤 의미있는 탐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