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대리로 근무하는 나에게 어느 날 중학생 교복 차림의 소녀가 찾아온다. '아야'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14년 전에 자살한 친구 이토의 딸이다. 소녀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무책임하게 죽어버린 아버지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한다. 나는 직장 생활에 부대끼며 점점 멀어져 버렸던 이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 아야에게 전해 준다. 그런던 어느 날 나는 지방으로 좌천되고 한편 아야는 따돌림에 시달리다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리는데……나와 아야는 과연 그의 죽음에서, 마음속 그 무언가에서 '졸업'할 수 있을까? - 《졸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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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던 졸업의 이미지와는 다른 졸업을 보여주었다. 진정한 ‘졸업’이랄까.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단편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마흔 살의 남자. 아마도 저자의 나이와 동일한 설정인 듯 하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여태 졸업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연들은 모두 타인의 죽음을 매개로 하여, 그와 함께 졸업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이미지는 풋풋함보다는 성숙함이다. 진짜 어른이 되는. 그렇지만 이 졸업 또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던 졸업의 이미지와 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졸업하는 것’은 ‘버리고 떠나는 것’, ‘도망쳐 버리는 것’과 다르다고 한다(84쪽).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문제는, 버려두거나 도망치는 것으로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나에게 있는 것. 그 시기를 정하는 것도, 그 방법을 깨닫는 것도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지켜보며 나를 되새겨본다. 누구에게나 졸업의 과제가 있다. 나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몰입하여 읽었고,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작은도서관님의 리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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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그릇을 먹는 것도, 야채를 많이 먹는 것도, 고기를 줄이는 것도,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한달에 한번 제대로 노는 것도, 양말과 옷을 아무 곳에나 벗어버리는 일도, 머리를 감고 풍장이 아니라 뭉텅뭉텅 수건을 쓰는 일도, 일상의 아주 작고작은 것도 졸업하기란 어지간히 힘들다.
아주 작게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인데, 몸도 마음도 늘 여운과 미련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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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을 좋아하는 일도/지난 해 여름 초입부터 시작한 목련나무 맵시보기로/마음과 몸의 시선은 나목으로 가 있었다. 서서히 온전히 겨울을 나면서/앙상한 나무가지에서 풍요로운 녹음을 꿈꾸게 될 무렵/목련에서 졸업하고 있는 출발임을 뒤늦게 눈치채게 되었다.
초봄, 봄은 다시오고 목련바람이 불 즈음, 이제서야 졸업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곁엔 더 많은 나무들과 더 많은 다른 우수마발이 들어와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풍족한 졸업이었던 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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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솔바람도 댓바람도 건조하고 투명한, 습기눅눅한 바람이 구별될 쯤, 화려한 봄만 찾던 조바심나는 마음은, 돌연 눈과 향에서, 촉감과 향기로 이동하는 것을 느리고 빠른 달리기를 하고서야 알았다. 더 이상 조바심내지 않는다는 것을. 봄을 쫒으려고만 하는 마음에서 다른 시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사십고개를 한참 넘어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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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씨, 그 나이에 머무는 시선은, 이리저리 설레이고 불안하다. 불안에 칭칭매여있는 일상은 나이와 젊음과 성별, 아무런 상관없음을.... 새로운 시작을 하기엔 너무도 많은 일상이 들러붙어있다. 그만큼 졸업할 일이 많은 세상인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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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처음엔 밋밋했는데, 말미 응축된 맛이 제법이다. 추천한 친구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