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집은 새롭고 신선하고 신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 집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모든 가구와 창문과 램프가 일깨웠을 의무가 잊혀졌다는 것은 집에 안식일과 같은 평화를 가져다준다. 처음 몇 분 동안, 단 한 번만 존재하는 방과 구석이나 복도 안에 있는 듯이 느끼며, 이러한 느낌은 그곳에서의 나머지 삶이 거짓말처럼 보이게 만든다. 세상이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다면, 세상은 지금과 다르지 않고 별로 변한 것이 없지만 나날이 축제 같을 것이며, 휴가에서 집에 돌아온 아이처럼 의무는 휴가 때 놀이만큼 가벼울 것이다.  153

 

반짝 1. 시선이 따듯하다. 우리집에 돌아온 몇 분의 행복이 세상이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다면 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축제 같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후기 자본주의에 살아지는 우리는 그 쳇바퀴같은 일상을 반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게 하려면... ...


좌파 낙관주의는 '사람들은 악마를 벽에 그려서는 안 되며 밝은 면만을 보아야 한다'는 음흉한 시민적 미신을 되풀이한다. "이 세계가 그 신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구요? 그럼 그는 더 나은 세계를 찾아야겠군요." 이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일상어이다.  정통 노선 이탈  156

 

반짝 2. 난 좌파 낙관주의자다. 유토피아를 꿈꾸고 더 나은 세계를 자꾸 찾으려한다. 그 이면을, 아니 다면을 살피려하지 않는 우둔함이 잠복해있다는 사실을 애써 있으려 한다. 아도르노는 여기서 노동과 계급의 문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좌파 낙관주의, 그대 세상은 흘러가고 놓치거나 만들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쓸데없는 낙관이 가리고 있는 그림자들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기나 한 것인가 되묻고 있다.


어떤 손님이 아무리 오래 기다렸더라도 그 사람을 담당하는 종업원이 다른 일로 바쁜 경우 다른 종업원이 주제넘게 나서지 않는다. 제도 자체를 신경 쓰는 일-이런 것은 감옥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이 병원에서처럼 사람을 배려하는 일보다 앞서게 되며 주체는 단지 객체로 관리될 뿐이다. 159

 

반짝 3. 후기자본주의는 제도에 갇힌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손님은 늘 객체다. 마음도 살피지 못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저 처분만 하는 구조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불편을 모아 나름 종합적으로 대접을 한다고 하나, 그 노회한 장사꾼의 본심은 조금 거리를 두자마자 드러난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그때그때 가장 새로운 방식을 소비하려는 열광은 최신의 방식에 의해 무엇이 제공되었는가보다는 최신의 방식 자체를 중요시하며 쓰레기더미로 변한 정체 물량과 계산된 백치 행태를 조장한다. 이런 백치 상태는 포장만 조금 고친 낡은 조악품을 최신품으로 간주한다. 기술적 발달의 고마운 조력자는 더 이상 수요가 없는 재고품을 사지 않으며 고삐 풀린 생산 과정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한심한 소망이다.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의식, 구름처럼 몰려가기, 장사진에 한 다리 끼기 등이 사방에서 일어나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자 하는 욕구를 밀어낸다. 161..사람들은 개봉한 지 벌써 석 달이나 지난 영화보다 방금 나온 영화를 기를 쓰고 더 좋아할 것이며-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석 달이나 지난 영화에 대한 혐오감은 아주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작곡에 대한 혐오감 못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광적인 사랑에는 무숙자의 감정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 그 근본에 깔려있는 것은 시민들이 부당하게 '자기에게서 도피', '내적 공허에서 도피'라고 부르는 것이다. 함께하려는 사람은 달라서는 안되는 것이다. 심리적 공허감은 사회가 개인을 부당하게 흡수해버린 결과이다. 사람들이 도망가고 싶어하는 '지루함'은 오래전에 시작된 도망 과정을 재투영한다. 그 때문에 오직 괴물같은 유흥장치들이 더 번창하고 있지만 누구도 거기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188

 

반짝 4. 소비, 소비, 소비 그 뒤에는 쌍으로 건망, 건망, 건망...이 시공간에는 합리적인 욕구가 없다. 신상이나 새로나온 영화에만 열광 속에 아둔함은 없어보이는가? 끊임없이 잊기 위해 해소하는 그 일상이 보이지 않는가?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의식, 그 위축.......뭔가 이상해보이지 않는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쇼윈도우에 갇힌 우리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가? 아 저기 내가 보인다. 쇼윈도우 속에 넋이 빠져...도통 세상이 왜 틀어졌는가 궁금하지도 않는 내가 새책을 보며 처박아두는 모습이 보인다.

 

상상력은 무의식의 소관으로 넘겨지고 인식 이론에서는 판단력이 결여된 유치한 퇴화된 기관으로 배척되지만, 오직 상상력이야말로 모든 판단의 절대적 원천인 대상들 간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이 추방되면 진정한 인식 행위인 '판단'도 추방되는 것이다. 지각으로 하여금 갈망이나 예상을 못 하게 막는 통제 장치가 '지각'이라는 것을 아예 거세시켜버리면 지각은 이미 알려진 것을 무력하게 반복하는 쳇바퀴 속에 갇히게 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성의 희생을 초래한다. 고삐 풀린 생산 과정이 최우선시되고 '무엇을 위하여'를 묻는 이성이 사라지고는 이성이 스스로에 대한 물신주의에 빠지면서 외부의 권력에 굴복하게 됨에 따라, 이성 자체는 도구로 전락하고 그것을 다루는 기능인들의 사유 장치는 사유를 막는 목적에만 사용되며 이성 또한 이러한 기능인들과 유사하게 된다. 167

 

개성을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 사람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언도한 판결을 스스로의 판단인 양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당한 불의를 객관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들은 사회의 보편적 퇴행을 사적인 퇴행으로 축소 재생산하며, 그들이 목청을 높여 저항하는 것조차 대개는 약자의 노회한 적응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183

 

반짝 5. 상상력이 추방되면 판단도 추방된다. 지각을 거세시켜버리면 이미 알려진 것을 무력하게 반복하게 된다. 무엇을 위하여... ...일터에 다니고 다른 정당에 대한 입장을 갖고 바뀌지 않으며 진자가 반복되어 움직인다. 왜 생각하지 않는가? 사유라는 것은 창고에 폐기된 것처럼 살아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가?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진보를 떠나 일상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은 상상하려 하지 않았다. 더 너머서려고 조차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평범성은 또 비슷한 박자를 타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실증주의는, 현실 자체에서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사유의 거리를 다시 한 번 깎아내린다. 위축된 사유가 자신이 파악한 사실들을 요약하는 임시 처방 이상이 되려 하지 않을 때, 현실에 대한 사유의 자율성과 함께 현실을 꿰뚫고 들어갈 수 있는 사유의 힘도 사라진다. 삶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때에만 사유의 삶은 전개되며 경험계에 제대로 관여할 수 있다. 사유가 사실과 관계를 맺고 그에 대한 비판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동안 사유의 운동은 적지 않게 '차이'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 171

 

반짝 6. 삶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때만 사유의 삶은 전개된다. '차이'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 실증주의, 데이터, 객관을 가장한 이야기들 속에 삶이 없다.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거리를 유지할 때다. 그래야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뒤따르는 것이다. 살고 있는 일상을 끊임없이 새겨보고 다시 보려하는 감각, 그래야만 최소한의 올바른 삶들이 기웃거릴 수 있다.

 

관심사를 추구하고, 실현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소위 실천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는 접촉 인물들이 자동적으로 친구와 적으로 변한다...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기능으로 보지 않고 인물 자체로 보는 능력, 생산적인 대립 관계로 만들 능력, 자기와 모순되는 것을 포용함으로써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위축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은 판단적인 인간 지식으로 대체되는 바, 이런 지식에서는 결국 가장 좋은 사람은 더 적은 악이 되며, 가장 나쁜 사람도 최고악이 되지는 않는다. 177

 

반짝 7. 친구를 가려서 사는 사람들, 관심사를 밀어붙이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 의욕과 목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의 무지를 탓한다. 인물자체를 보는 능력, 생산적인 대립관계를 만드는 능력, 모순을 포용하는 능력을 애써 보지 못한다. 자본주의 속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너도 ..... 나도...  늘 나에 머물러 있다. 너가 되지 못한다. 한번도 나-너는 되어보지 못하면서 살아진다.

 

 

 

 

 

 

 

 

뱀발. 천천히 보다. 우울과 허무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허무와 우울이 이 기름기를 띄우고 있는 물같은 바닥이기 때문이다. 바닥을 치고서야 이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실체가 보인다. 버스와 비행기로 관전하는 것이 아니라 추체험이다. 오롯이 겪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 블로거의 리뷰를 본다. 아도르노가 왜 우울과 허무를 캐내려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숲을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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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N1zo4t4JuNc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1마리가 아니라, 99마리가 밖에 있습니다!
제발 좀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이 이야기는 진정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고작 1마리의, 정말 적은 양들과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의 열정을 느껴야만 합니다.
우리 밖의 99마리의 다른 양들을 찾아 나서야죠

 

전문 (콕!)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 순간 혁명가가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혁명가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참으로 은총은,
아버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은,
우리를 혁명가가 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라는 건
우리가 축복으로 받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은총이 혹시 얼마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어디에서 은총을 파는지?
은총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시네요?!
혹시 본당 사무실에 가서 은총을 살 수 있던가요? 팔고 있나요?
아니면 본당 신부님이 은총을 파시던가요?
여러분들 잘 들어두세요!
그 누구도 은총을 팔거나 살 수 없습니다.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
유일하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이 주시는 겁니다.
선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참 아름답지 않나요?!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들의 형제 자매들에게
나눠야만 합니다. 무상으로 말이죠!

바오로6세께서는 말씀하셨었죠.
당신은 그리스도인들이 낙담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말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슬퍼하고 맥이 빠질 수 있죠?!
마치 불평 속에 주님이 있기라도 하듯이...
그분이 우리의 사정을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매일매일 한숨쉬고, 불평하고, 탄식하는 이런 태도는 세상의 사람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께 묻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다고 알고 계시나요?
네 아무도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은 늘 용감무쌍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사회적 신앙적 문제나 위기가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갑시다.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더 이상 무언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에는...
견디어 내시기 바랍니다.

용기와 인내!
사실 사도 바오로에게 이 두 가지는 중요한 덕성입니다.
용기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곧, 무언가 힘 있게 함으로써 신앙의 증거가 됩니다.
더불어 인내 '내 어께에 무언가를 지고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곧, 인내 또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뭔가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인내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나자렛 예수님께서 이미 하셨던 바와 같이
우리 밖의 불쌍하고 힘없는 이웃들을 위해 행동하고, 보살펴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 안에서 선물 받은 은총을 나누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에) 여러분들은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사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 공동체가 폐쇄적일 수가 있죠?!
어떻게 본당 공동체가 배타적일 수 있는 거죠?!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1마리가 아니라, 99마리가 밖에 있습니다!
제발 좀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이 이야기는 진정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고작 1마리의, 정말 적은 양들과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의 열정을 느껴야만 합니다.
우리 밖의 99마리의 다른 양들을 찾아 나서야죠!

이것이 여러분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겁먹지 마세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발 두려워하지 마세요.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형제 자매여러분께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총아래 있습니다.
그 어떤 값을 낼 필요도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갑시다!!

 

지금 여기의 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리 쏙쏙 들어오는 것인지...집을 잃은 한마리의 양이 아니라 집을 잃은 양은 99마리라고... 한마리와 얘기하고 빗질하기가 얼마나 수월하냐고...공동체 안에서만 안락을 찾고 있다고... ...공동체 밖의 집을 잃어버린 99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서라고... 지금 당장!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그만 만나도 된다고...머리빗겨주고...다듬어주고 얼마나 쉽냐고... ... [ ] 괄호에 무엇을 넣어도 뜨금거리기만 한다... ...

 

 

 

 

 

 

 

 

 

 

 

 

 

 

 

뱀발. 1. 일터 근무라 편한 책들을 보다 요기....들어와 옮긴 방의 독서모드로 검색을 하다 破님 블로그에서 영상을 본다. 아... ...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 잘못들은 것은 아닐까? 혹시..정말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단 말인가? 혁명가로서 예수...그말을 이렇게 듣고 있다.

 

 2. 토성맨션 1,2권과 3,4권이 다 출간되었다. 담담하고 좋다. 비트겐슈타인 소개책도 쉽고 막힘없이 잘썼다. 포스트모던과 이어서 볼 만한데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는 저자는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토성맨션은 지구 35,000미터 상공에 토성 띠모양의 공간, 상층,중층,하층의 모습은 설국열차를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격함보다는 부드럽고 은은하게 다가서는 모습이 좋다. 3, 4권을 챙겨봐야겠다. 궁금하다.

비트켄슈타인 말놀이▼

 

말의 의미가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용에 의해서 구성되므로, 자유, 고통, 행복, 욕망, 죽음, 노예 같은 낱말들의 의미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 쓰임에 의해서 활동합니다. 85

포스트모던 아저씬느 현실을 객관적으로 아는 것과 바람직한 상태를 추구하는 명령은 별개의 것이라고 봅니다.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거죠. 다르게 얘기하면, 정치는 실천의 영역을 문제삼습니다. 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바람직한 상태를 요구하므로 가치와 당위를 문제삼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론적으로 참인 세계와 실천적으로 가치 있는 세계가 같은 종류의 것일까요? 186


이념에 코와 입을 그려넣어서 확정적인 모습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정의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동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 제시하는 순간에 그 동상은 '정의의 폭력'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있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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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상향의 장미향기는-거기서 한 송이의 장미라도 경험하기에는 너무나 말로만 된 행복이라 - 사무실의 담배 냄새를 풍기며, 소도구로 쓰이는 몽환적인 달은 시험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에게 희미한 빛을 비춰주는 등잔불을 본뜨고 있다. 스스로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허약성이 소위 부상하는 시민 계급의 사상을, 폭정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섰다는 그 시기에 이미, 이데올로기에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 휴머니즘의 가장 깊숙한 안방에는 이미 그 안에 갇혀 날뛰는 폭군이 있는데 이제 그 폭군은 파시스트가 되어 감옥을 만든다.

 

반짝 1. 휴머니즘의 깊숙한 안방에는 날뛰는 폭군이 있다. 장미향기는 담배 냄새를 풍긴다. 언어로 지은 집에 몰두하다보면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 습속이 있다. 그 모호함과 낭만성이 유래하는 것은 비단 역사의 흔적만이 아니다. 현실 속에 오히려 더 악독하다. 개인적인 관심사가 인문, 철학이라 과도한 추상성에 머문다 싶다. 그런 연유로 실물이나 경제에서 가지 뻗는 철학과 인문의 촉수를 거두어 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다. 그 추상성으로 개인과 철학에 과도하게 기우는 문제가 지식인의 질투를 넘어서 공격으로 다가설 우려가 깊다. 강신주가 좀더 생각이 있다면 형평, 공평과 경제로 촉을 넓고 깊게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내에 여기 지식인들의 집중포화를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51. 문필가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유의 사항은, 모든 텍스트와 모든 절, 모든 문단에서 중심 모티브가 분명하게 부각되어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사람은 쓰인 것에 대한 별다른 반성없이 붓 가는 대로 내버려두려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생각 속에서는' 자신의 의도에 밀착되어 있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잊어버린다......삭제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길이는 아무래도 좋다. 분량이 너무 적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유치하다. 일단 존재하게 되고 씌었다는 이유로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몇몇 문장이 동일한 생각을 단지 변주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종종 저자가 아직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그 무엇을 붙잡기 위해 이리저리 시도해보는 것임을 보여줄 뿐이다.

 

반짝 2. '삭제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몇몇 문장이 동일한 생각을 변주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면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죽비로 제대로 맞는다.

 

48. 넘치는 건강은 그 자체로 이미 항상 병이며, 그 해독제는 병, 즉 삶의 제한성에 대한 자각이다. 이런 치유 효과가 있는 병이 미美이다. 미는 삶에 정지명령을 내리면서 동시에 삶의 파멸에도 똑같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삶을 위해 병을 부인하려 들 경우 그런 삶은 다른 계기를 보지 못하는 장님 상태가 됨으로써 파괴적이고 사악하고 뻔뻔스럽고 허풍스러워진다. 파괴를 증오하는 사람은 삶도 함께 증오해야 한다. 죽은 자만이 왜곡되지 않은 삶의 비유가 된다.

 

반짝 3. 삶의 제한성에 대한 자각은 병이다. 병은 미다. 삶을 위해 병을 부인하려 들 경우 장님이 된다. 우리 사회는 넘치는 건강만 회자된다. 그러니 정작 삶은 없다. 삶을 건네고 부여잡고 나눌 수 없다. 병이 삶을 바라보는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악착같이 병을 부인한다. 그래서 살아남지 못한다. 아픈 식구가 있다는 건 고통일 수도 있지만 조금 통증이 가라앉는 순간 복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어린아이가 통증에 버거워하는 모습은 부모로서 안타까움 이상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래서 그 아이의 삶, 과도한 경쟁에 대한 미련을 줄이고 스스로 좋아하는 것에 침잠할 수 있도록 삶에 관여하지 않는 건강함을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이 약해지고 예전과 같지 않다는데 머리 숙인다. 좀더 몸의 움직임에 민감해지면서 그 약해짐이 좀더 또렷한 일상을 요구하고, 시간에 대한 지루하지 않을 궁리를 더 하게 된다.

 

21. 왜곡되지 않은 모든 관계, 유기체 내부에 있는 화해적 요소란 아마, 주는 행위, 선사하는 행위이다...진정한 선물 행위는 받는 사람의 기쁨을 상상하는 기쁨이다. 그것은 자신의 길에서 빠져나와 시간을 써가면서 무언가를 고르는 것, 즉 타인을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을 잊어버리려는 것과는 반대의 것이다.

 

반짝 4. 선물은 받는 사람의 기쁨을 상상하는 기쁨이다. 타인을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선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척이나 피상적이고 의도가 있는 일상으로 읽혀지고 있음을 짚고 있다. 관계란 무엇일까? 너를 주체로 받아들이려는 과정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런 너가 얼마나 있을까? 관계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곡되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20. 소외는 바로 사람들 간의 거리가 소멸되는 데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주고받고, 토론하고 그 결과를 실행하고, 통제하고 그 통제의 틀 안에서 역할을 행하고 하는, 즉 몸과 몸이 부딪치는 관계 속에서만 서로를 함께 묶는 정교한 그물망을 위한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며 한 인간에게 있어 그러한 바깥이 있을 때에만 안도 여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 시간이 돈이라면 시간 - 무엇보다도 자신의 시간 -의 절약은 도덕적으로 보이게 되며 사람들은 그러한 시간 절약을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사람들은 직선적이 된다.

 

반짝 5. '몸과 몸이 부딪치는 관계 속에서만 서로를 묶는 공간이 생겨난다. 한 인간이 여무는 것도 그 안에서이다.'  모임 속에서 때때로 헛된 욕심을 부린다. 속성 앎, 속성 관계라는 것이 마치 있는 듯 빨리 성장해야 된다는 강박이 그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몸과 몸이 만나 자라는 것이 그나마 온전한 관계를 만들었다는 돌이킴이 있다.

 

 

뱀발. 카페에서 쉽게 읽히지 않는 아도르노의 글에 메모지를 붙인다.  마음을 깊게 찌른다. 천천히 새기며 가고 있다. 지식인들이 얼마나 질투심이 많고 치졸할 수밖에 없는지도... ... 완 펀치!...올 킬?? 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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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년

 

 몸을 빌려쓰고 산다/ 몸을 받들어 모시지 못한 나날/마음 가장자리가 헤어지고 초췌하다

 

 어깨를 바투 올리고 머문다/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의 결로 선다/품은 한뼘만큼 다시 자란다

 

 허리를 펴고 버틴다/마음은 다져지고 야무지다

 다리를 버티고 선다/팔을 벌리고 안는다/팔을 크게 벌려 마음을 뻗는다/걷고걸어 마음을 싣는다

 

 몸 속에 네가 산다/ 네가 발디디는 곳도 여기다/몸 속에 네가 깃들일 수 있도록 꽃을 피운다

 몸을 물구나무 세운다/힘을 거슬러야 몸의 집이 생긴다/몸의 집이 커지고 단단해져야 마음이 기우뚱거리지 않는다
 

 헐거워진 몸을 추스려 묵힌 곰팡내를 버려야 한다/ 버거워진 몸에 내어줄 휴식도 미소도 많다

 

 마음이 자리잡을 공간을 한평 더 늘려준다/가벼워지고 탄탄해지도록 100여개의 해와 달을 품어본다.

 

 

 

뱀발. 모임들이 많다보니 늘 핑계다. 과로에 과욕에 시든다 싶다. 맘속 계획은 공空약으로 되돌아오고 바랜 몸은 휘청거린다 싶다.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일터나 모임들 속에 추수리지 않은 청춘은 지났다.  몸이 긴장하도록 마음이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다시 몸을 차려보기로 한다. 어디쯤인지 가다보면 몸도 마음도 서로 깃들고 자라는 지점이 있을 듯하다. 조금 덜 챙기기로 한다. 조금 더 챙기기로 한다. 쉽지 않은 일정들이겠지만 리허설을 약 삼아 이렇게 관리삼아 소문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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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4-01-16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한참 모자란듯 나이를 어디로 먹었나 싶어요,내나이 사십을 훌쩍넘겼는데. . .

여울 2014-01-17 08:11   좋아요 0 | URL

버티지 않고 인정하기로 했어요. ㅎㅎ
이기지 않고 지기로..순순히...
그 편이 좀더 나을 것 같아서요. ㅎㅎ 지는게 이기는거라...자위하면서...
그래도 좀더 나은 컨디션으로..말똥말똥하게 보내려구요. 힘내세요. 님!!
 

 

 

 

 

 

 

 

 

 

 

 

 

 

 

 

 

 

 

 

 

 

뱀발. 도서관을 미리 검색하고 서성이다가 들렀다. 수리철학의 기초를 살펴보다 수학이란 무엇인가란 책과 함께 훑어본다. 구미가 당긴다. 경문사의 수학시리즈를 언젠가는 보게되겠지. 그리고 박홍규교수의 책이 나온지도 몰랐다. 마르틴 부버와 아도르노를 다시 만나다. 몇 쪽 지나치지 않았는데 묵직하고 아리다. 그의 삶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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