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향, 이른 출근 조금 일찍 올라가며 책을 마저 본다. 건망의 속도가 커지는 나날. 읽어도 기억이 또렷하지 못하다. 맥락만 희미하게 스며들 뿐, 사실들은 까만 점처럼 잊혀지거나 썰물에 실려나가는 듯싶다. 더위에 하루가 시들하다. 국가는 공진화하는 것일까? 국민을 동원하고 유행에 맞물려 야심가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일까? 약자들은 지식인과 엘리트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스스로 접기를 반복하기만 하는 것일까? 서럽고 안타까운 일상과 버거운 삶에 남기는 향기는 늘 세상이 썪지 않게 하는 자정의 역할이란 수동에만 머무른 건 아닐까?
2. 간절함은 사진처럼 박혀있다. 찰라의 아픈 장면은 낙인처럼 부모 마음에 새겨있다. 아프다는 목소리가 떨린다. 마음은 어쩌지도 못하고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맞으라는 채근밖에 할 수 없다. 마음은 내내 아이의 목소리에 걸려서 오고가는 길 내내 흔들려 들썩인다. 체질을 바꾸어주지 않는 이상 약물치료의 한계가 같이 잡혀 버겁다.
3. 좀더 비교를 해본다. 문과 성향과 이과성향, 스토리로 비유를 들고, 사실만으로 말을 건네려하고, 말의 이면을 헤아리려하고, 사실만 잡아내려 한다. 사실만 얘기하면 의도하는 바가 적확하나 무미건조하다. 이야기와 뉘앙스가 과다하면 풍부하나 번잡스럽게 습기가 많기도 하다. 소설 속의 가, 나라는 인물로 비유를 드는 갑과 정확하게 의사표시하지 않는 을에게도 문제가 있다라고 제기하는 병이 나선다.
4.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다 읽어가는 시점에서 소회를 갈무리해보면 로망도 은신처가 없다는 것이다. 제조되듯 몸에 붙어사는 현실의 촉수는 욕망할수록 그 도피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낭만이 없다'라고 하는 편이 더 낭만에 근접할 수 있다.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겨낼 사랑이 언젠가 왕림해줄 것이다. 나를 데려가 줄 것이다라는 환상에 벗어날 때만 현실에 섞인 사랑을 발견해낼 수 있다. 아프다는 것,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감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과정이 더 근사한 현실이 될 수 있는 로망이다. 도피한 사랑은 없다. 사랑과 낭만은 구하려하지 않을 때 조심씩 현실과 일상에서 발견될 수 있다. 여기 저기 현실을 너머가게 하는 보물찾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신은 멀리 있지 않다.
5. 여운이 남아 단청에서 시작한 궁금증은 탱화, 불상...문양 등등 불교문화재로 번진다. 가려서, 겹쳐서 책과 책사이 명사를 바꿔 문장을 다시 만들어본다. 잊히면 또 다른 곳에서 그 명사를 넣고 문맥을 다시 가다듬어 본다. 명사가 문단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누가 되물어준다면 몸이 서툴게 말할 것이다. 몇번 더 물어준다면 몸은 자연스럽게 말할지도 모른다. 앎에 옹이도, 응어리도 침전물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 애써서 공부해본다. 더 알고 싶고 더 연습해보고 싶다. 몸의 말, 그 맛을 보고싶기도 하다.
6. 몸이 버겁다. 그러면서도 섬기는 버릇은 줄지 않는다. 어제의 끝자락까지 부풀은 마음은 가라앉지 못한다. 사람이 평생 마실 술의 양이 정해져 있다라고 한다. 사람이 평생 고민할 양도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평생 행복할 양도 정해져, 지금까지 불행에 가깝고 힘든 이들도 좀더 행복해지는 나날이 되면 더 좋겠다.
뱀발. 불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가 아니라 진실이 무어냐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 도법스님은 말한다. 불교문화재가 국보와 보물에 절반 이상인데도 너무도 등한히 한 일상이다. 여운도 남아 읽다보니 이렇게 서문이 걸린다. 나이 서른의 젊은 친구의 발제를 듣다나니 오히려 반갑고 말미 함께한 친구와 선배와 이야기과 술을 더 기울인다. 주말도 빠른 듯 느릿 움직인다. 오고 가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