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08년 11월 일본에게 조선에 대한 지배권 인정을 재확인해주고 아울러 만주에서 일본의 특수지위를 인정해주는 협약을 체결한다. 루트-다카히라 협정이다.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 엘리후 루트와 주미 일본 대사 다카히라 고코로 사이에 맺어졌다. 이것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비해 그간 국내 학계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일본에 의한 1905년 을사보호조약의 강제를 예정하는 것이었다면, 루트-다카히라 협정은 1910년 8월 22일 조선 제 3대 통감 테라우치 마사타케와 대한제국 총리 이완용 사이에 비밀리에 조인된 한일병합에 대한 국제사회의 승인을 미국이 사전에 보장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462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현실적인 적용 대상은 유럽에 한정되었다. 독일과 소련의 중간에 위치한 중동부 유럽지역의 소수민족들이 독립하여 독일과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는 효과를 미국과 영국은 기대했다. 윌리엄 애플먼 윌리엄스가 일찍이 지적한 대로, 우드로 윌슨은 말로는 이상주의를 주창하면서도 라틴 아메리카에 확립해온 억압적 장치들로부터 이 지역 국가들을 해방시킬 어떤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대에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특권을 포기할 의도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아시아를 공동경영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결코 민족자결주의의 보편적 적용을 선택하지 않았다. 475

 

 

 뱀발. 1권 제6장 일본과 동아시아 그리고 전쟁,  2권 미일 제국주의 카르텔과 그 변용, 그리고 파국을 읽다. 재워두다가 손길이 가지않아 놓아두었는데, 전향 세미나 뒤 일본통사가 궁금해 살펴보게 된다.

 

일본의 특성을 경계의 위치로 설명하면서 그 특색이 유럽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독자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역할에 비해 조선은 일본에 대해 너무도 몰랐고 명나라의 위치에 빠져있어 변화를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 이순신에 대해서도 이은상이 영웅으로 과도하게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달리 읽어야 할 부분도 있다고 한다.

 

미국 역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로 각국의 독립을 지원했다고 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의 카르텔 관계는 한일합방 승인, 만주국 수립에 대한 정치적 이유 등 다시 살펴볼 부분이 많다고 한다.  한미관계 전문가였던 이삼성교수가  각고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고 있다. 역사인식에 고정관념들이 오히려 지금을 풍부하게 보지 못하게 하고, 더 깊이 달리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이어서 조금씩 본다. 질문꺼리가 많이 늘어난다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