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욱식 대표 아니 연구자라는 표현이 더 나을 듯하다. 그의 옛 책부터 최근 저작까지 주욱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예측은 사실관계를 근거로 해서 펼쳐지고 있으며 일관된 기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탄탄하다.


2. 반면 88만원세대 저자 우석훈의 책은 기다려지지 않는다. FTA나 경제상황에 대한 예측이나 저서를 별반 신뢰할 수 없기때문이다(의문스럽다면 예측부분을 살펴보시면 될 것이다. 저자에 대해 디스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쓸 때 책임감을 말하려는 것이다.) 지식인은 선동가와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 것 같다. 연구자의 노력이 가미될 때.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노력이 준엄할 때 세상에 대한 평균적인 이해의 시선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3. 한 친구가 물었다. 김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 친구는 보수적이라고 했다. 보수적인 것만으로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보여줄 수 있다고,


4. 강신주에 대해 물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자인 사람 같다고 그래서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경제를 공부하지 않아 제 발목에 걸려 넘어질 거라고


개인의 자유만으로, 보수적인 신념만으로도 상식의 수준으로 세상에 대한 염증과 갈증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세상에 대한 안목과 수준을 더 넓히거나 높혀나가지 않으면 실망스런 순간이 순식간에 닥쳐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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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0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울 2015-12-3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노력할께요^^
 

˝혼용무도- 몇년째 논어공부를 하거나 관심있는 어르신과 점심 뒤, 한층 편안해졌는지 한분이 올해의 한자를 일부 좌파-종북 교수들이 말하는 것이라 핏대를 높인다. 삼권분립 등 근거를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국회, 입법부가 독재를 하고있는 것이라 목소리를 높인다. `혼용`은 임금에게 쓰는 말로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나마 중도인 듯하다.˝


1. 어르신들은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씩 부탁한다는 말에 모두 순한 양이 되어 말씀 한마디 제대로 건네는 분들이 없으시다. 니편보다 내편, 내 취향의 말만 골라 새기는 걸까. 어쩌다 정치가 진리가 되어버린걸까. 음식프로도 건강도 티브를 도배하는데, 다른 맛과 다른 상태를 고려조차 하질 않으신다. 음식도 통일주문하시듯 의견도 통일이신가ㆍㆍ

머리 속이 뒤집혀 먹은 점심도 메쓱거리고, 저자거리에서 핏대높여 훈계할 모습이 아련했다.

한번도 설득당하거나 설득해보지 못한 세대. 그저 권위와 힘에 의견도 소신도 저버린 세대의 그늘이 깊다. 경북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기저기, 저기여기ㆍㆍㆍ

2. 폐쇄적인 집단이나 조직은 자체로 돌아가는 원리가 있다. 군대의 짬밥서열은 교묘히 장교-사병의 위계 너머 있다. 도박장의 생태 역시 암묵지도 그러하다. 분석하거나 이해하려해도 알 수 없다. 균열은 추체험과 이질적 맥박이 필요한 건 아닐까. 정치냉소가 정치불신으로 불신은 무관심으로 수혜자에겐 아성으로 탄탄히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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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논문

˝누구 사이에서 시작해도 관계의 확장이 가능했다. 어느 논거로부터 출발해도 지금여기를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부분을 발췌해도 새로운 소논문 한편을 쓸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을 찾으려하면 할 수록 그 완결성과 확장성의 흠결을 잡아낼 수 없었다. 치우침이 없었다. 사이사이 사랑은 어떻게 왜 누구와 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등거리였다.˝

발. 이른 잠결에 꿈을꾸다. 일터였다. 한해 선배들의 작업들 가운데 과제 하나를 발견하고 읽어갔다. 논문들 사이 현실의 문제는 농밀하게 녹아있고, 열정도 알맞게 배여있고, 누구와 어떤 답도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관계들이자 근거들이지만 모두와 최단거리로 이어져있었다. 다 읽고난 뒤에야 이어지고 치우치지 않은 사이사이 가장 짧은 길이 사랑이란 것이 각인처럼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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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한켠에
`동굴밖에선 동굴 속이 보이질 않는다.`고
또 한켠에
`알려고만 하고 느낄 줄 모른다.`를 놓아본다

한켠에
`맛만 봐 감별만 하지 음식을 만들 줄 모른다.`고
또 한켠에
`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 수영을 배우지 못한다.`를 놓아본다

관전과 관람들 사이 우아함과 세련됨만 다닌다

안 의자에
`터널 안을 들어서고 어둠에 익숙해져야 터널 속이 보인다.`를 태운다
또 안 의자에
`일상을 낚으려고만 하지 삶을 담그려하지 않는다.`을 태웠다

`물 속에 몸을 담귔는데 무엇을 배우려는지 어디로 가려는지 살피지 않는다.`란 표식을 달아둔다.


생각들이 어설픈 잠 속으로 들어와 균형을 맞추려 오르내린다
고민들을 저울대에 연신 올리고 덜어낸다.
마음의 추가 맞을 무렵 홀가분해졌다.

평온하게 날이 밝았다. 어김없이 기억해내지 못해 맴맴 도는 꿈처럼 꼬리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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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잘살고 신분이 귀했지만 이름이 닳아 없어져 버린 사람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으며 오직 평범하지 않은 사람만이 거론될 뿐입니다. 대체로 문왕은 갇힌 몸이 되어 <<주역>>을 풀이했고 중니(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당하여 <<춘추>>를 지었습니다.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으며, 좌구(좌구명)는 실명하여 그의 <<국어>>가 남겨졌습니다. 손자는 발이 잘리고 나서 <<손자병법>>을 지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여람(여씨춘추)>>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한비는 진에 갇혀 <세난><고분> 두 편을 지었으며, <<시경>> 삼백 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에 울분이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시킬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좌구는 눈이 없고 손자는 발이 잘려 결국 세상에서 쓸모가 없게 되었지만, 물러나 서책을 논하여 그들의 울분을 펼치고 문장을 세상에 전해 주어 스스로를 드러냈습니다. 359-360

 

덕이란 인성의 근본이며, 악이란 덕행의 꽃이며, 쇠붙이, , , 대나무는 음악의 도구이다. 시는 그 뜻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그 소리를 읊은 것이며, 춤은 그 모습을 움직인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난 다음에 악의 기운이 그것에 따른다. 이 때문에 감정이 깊으면 문채가 밝아지고, 기운이 성해지면 변화가 신묘하고, 온화함이 마음 속에 쌓이면 영화로움이 바깥으로 피어나니, 악만은 거짓으로 만들 수 없다. 악이란 마음의 움직임이며, 소리란 음악의 형상이며, 문채와 절주는 소리의 수식이다. 83-84

 

악이란 (인간의) 내심에서 움직이며, 예란 (인간의)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겸손을 위주로 하고, 악은 풍요로움을 위주로 한다. 예는 겸손함으로써 나아가며 나아가는 것으로 꾸밈을 삼는다. 악은 풍요로움으로써 절제하며 절제하는 것으로 꾸밈을 삼는다. 예가 겸손함만을 따지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침체되고 말 것이며, 악이 풍요로움만을 따지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방종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자기 분발을 요구하고, 악은 반성을 요구한다. 예가 자기 분발에 이르면 즐겁고, 악이 반성에 이르면 편안해진다. 예의 자기 분발과 악의 반성은 이치가 한가지이다.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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