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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별이 내린다. 함박눈처럼. 별이 번진다. 강물에 비친 별은 아픔처럼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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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714 인권모임을 참관하다. 서로 나누는 이야기의 농도도 말씀하시는 요지도 알아듣기 쉽고 간결하다. 주장도 섞으며 톤이나 상대를 보는 눈빛도 한달 전쯤의 모습들이 아니다. 마무리 겸 왼쪽 책의 저자 초청강연이 있다한다. 이어지는 느슨하지만 짜임새있는 활동이 기대되기도 한다. 주관하는 모임, 연*부, 정*현, **현 모두 고맙다. 마음을 내어 온전히 들어야겠다. 나의 상식이나 인권 감수성에도 구멍숭숭 뚫린 것을 알기에 말이다.  



삼*이 밴드 뒤풀이에 끼다. 화사하고, 들뜬 사람들이 자기 색깔 너머를 보여주는 것 같다. 또 다른 눈이 생기는 듯...이런 면들이 주관에 가려 보고 있지 못했나 하는 점들. 다르게 모락모락, 뭉클뭉클한 것 같다. 끝까지 몸과 가슴의 언어를 듣다오다.  

일터일이 약간의 여유가 생겨, 이발도 하구....몰아치는 어제의 감정들을 수습하고 숨을 고른다. 사과 한점, 커피 한잔, 샤워한줄기... 어제는 그렇게 잦아들고 몸에 스며든다. 마음 속에 차분히 챙겨둔다. 

뱀발.  

1.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연이 생기고 어떻게 매듭을 짓는가?에 달려있는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지 않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일까? 또는 느끼게 되는 것일까? 나-너-너-나, 사람을 건드려주게 예민한 고리를 갖는 너-나는 누구들일까? 새삼스럽게 사람을 짚어내는 관계가 다르다. 그 관계의 다양성이 서로를 풍부하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2. 나무에게 한 친구를 소개받는데, 여러차례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연유를 이제서야 알게된다. 미안하기도 하고 관계를 통해 좀더 다른 느낌, 다른 시선을 만들 수 있다는 배려이기도 한데, 너무 무심하게 뱉어낸 결과가 되었다. 좀더 가담듬고 예민해질 수 있는 관계는 책을 과속으로 읽는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느낄 수 있을지, 가슴 속으로 빌려올 수 있을지...좀 먼너에게 관심갖는 일, 관심가져주는 일이 스스로에게도 남는 일이겠지 생각해본다

3. 어젠 웃음, 가슴으로 토해낸 말들이 많다. 미소의 행간에 느껴지는 일...몸을 써서 다른 색이 가미될 수 있다는 점들. 평소에 볼 수 없던 모습이 이렇게 생기거나 자랄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생긴다. 들뜸들 사이에 보여주는, 느낄 수 있는 언어들이 새삼스럽고 새롭다. 오랫만이기도 하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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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신뢰가 친밀한 사적 관계 속에서, 자기존중이 도덕적, 법적 권리체계 속에서 성취된다면, 재능과 능력에 대한 평가는 연대의 틀 속에 이뤄진다.  이런 연대의 틀은 공동의 가치체계를 전제한다.

 

#1. 사회철학 - 사회철학은 개인이 삶이나 행위보다는 사회구조와 그 사회 안에서 서로 얽히고설킨 공동의 삶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윤리학과 구분된다. 또한 한 사회의 정치형태나 제도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치영역을 넘어 사회전반을, 그리고 전체로서 그 사회의 발전과정을 탐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정치철학과도 구분된다. 나아가 사회현상을 단지 기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와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을 규범적으로 평가하고 진단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회학과도 갈라진다. 그렇게 "사회의 잘못된 발전과정을 진단"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사회상태에 대한 그림 - 그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보람차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할 때이다. 그러나 어떤 삶이 보람차고 성공적인 삶인지는 시대나 문화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지식으로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공통의 인간적 조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틀에 꽉 짜인 인간이 아니라, 약하고 형식적인 인간상이 필요하다. 약간은 규범적이고 윤리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2. 좋은 삶의 형식(뼈대) - 0. 긍정적 자기관계의 형성, 개인이 자기를 실현하는 삶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긍정, 자존감과 자신감,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심리적 안정이 개인심리학을 넘어 사회이론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 2.1 이의 삼요소는 자신신뢰에 결핍을 야기하는(학대, 강간, 고문의 경험이 없는) 사랑또는 보살핌으로  기본적인 필요와 요구에 친숙해지는 정서적인 차원에서 인정이 필요하다. 2.2. 사람은 또한 가격을 갖는 존재가 아니라 존엄성을 갖는 존재이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는 권리라는 개념이 없다. 모두 자발성, 선의, 동정, 시혜를 통해 이뤄지지만, 이 사회의 구성원들의 결정적인 하자는 자기존중심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요구하고 주장하지 못함으로써 동등한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권리존중이라는 인정 속에 사회의 공통된 관심사가 토론되고 결정되는 넓은 의미의 정치영역, 공적 토론의 영역이 생긴다. 2.3. 개인들의 재능과 능력은 공동의 삶을 지속시키고, 풍부하게 만드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와같은 공동의 삶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사회적으로 평가되고 존경받는다. 노동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인정이 사람들의 정체성에 큰 차지를 한다.

#3. 낭만주의적 애정관의 성립, 포괄적인 신분질서의 붕괴와 더불어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살핌, 권리, 연대라는 세가지 인정관계가 형성됐다. 친밀성의 관계는 배려의 원칙에 따라, 권리관계는 평등의 이념에 근거해, 연대는 개인의 업적이라는 기준에 입각해 구성됐다. 각 인정질서는 고유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상대적 자율성을 누린다. 그러나 각 인정영역의 자립화는 경우에 따라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과 자율성을 위협하는 방향을 취할 수도 있다.(여성과 아동의 가정폭력, 학대..)

#4. 포용과 개인화 - 좋은 사회란 보람차고 성공적인 삶의 인간학적 조건이 되는 긍정적 자기관계의 조건을 가능한 한 많이 제공하는 사회이다. 여기서 '많이'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계 형성의 기회와 조건이 보장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질적이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좀더 민감해질 것을 요구한다. 




뱀발.  

1. 사유는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발라낸 나를 신장시키기 위해 사유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거꾸로 출발한다. 좋은 삶에서부터, 그 삶을 구성하기 위해 인간은 [함께-홀로-너에기댈]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대와 평등, 자기신뢰를 함께 품을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자유와 평등, 공화가 분절된 것이 아니라 삶으로 서로 이어지고 연결되기 시작한다. 따로 따로 극단까지 밀어부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긴장을 함께 이을 것을 당부한다.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지?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존중으로 최소한의 공적의 장은 있는 것인지? 서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좋아하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연대의 틀은 함께 자랄 수 있는 것인지? 분절된 나는 따로따로 불안하다. 너를 보듬어주지도 못했고, 주장없음이 얼마나 서로를 제도의 테두리, 서로 편한 규범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 그저 나눌 수 없는 찰나의 만남만 존재하는 현실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2. 다시 한번 읽고 정리해둔다. 사유의 출발이 신선하고 오히려 거꾸로 접근하는 방법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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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통영의 섬, 바다, 하늘, 배...그리고 건물들도 정겹다. 충무항이란 제목으로 그림의 변화를 본다. 배도 마음에 들어올 정도로 날이 서지 않는다. 세월에 바래면서 정겹다. 안주머니에 콕 넣을 정도로 말이다. 눈이 시려도 뒤돌아서면 보고싶은 색들.. .. 마음에 바래지기 전에 남겨놓는다. 통영의 화가 전혁림은 올해 5월 작고하셨다. 삼가 명복을 빌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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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2. 색은 마음과 몸, 가슴이 노니는 곳으로 번진다. 그래서 색은 단음절의 몸의 언어는 아닐까? 목포 앞 섬, 바다 김환기의 색과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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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7-13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것들이 모두 한 화가의 작품이란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정말 놀랄려고요.
사진 위의 그림은 정말 김 환기의 터치와 비슷해요.

여울 2010-07-13 19:16   좋아요 0 | URL
연륜이 한 대상에 대한 애정과 폭, 표현을 달리하는 것 같아요. 한희원화가님의 정미소란 작품도 매년 습작이 되는데 느낌이 사뭇 다르더군요. 시인들도 그렇겠다 싶습니다. 아마 위의 작품들도 같은 제목이지만 십년을 주기로 변한 듯 싶습니다. 최근작은 다시 살펴보고 올려볼께요..
 

블랑쇼는 자아의 불가능성, 세계의 불가능성을 말할 뿐만 아니라 분명히 그 불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긍정이, 즉 나와 타자 사이의 '우리'의 가능성이, 날것의 소통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나와 타자으 ㅣ소통은 문화 바깥에서, 그리고 모든 정치, 경제 , 문화, 철학, 이념의 지평 바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95 

나와 타인의 관계는 개체나 전체의 본질을 전제하지 않으며, 다만 관계 그 자체에 의해서만 발생하며 개체의 영역으로도, 전체의 영역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우리'의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의 존재, 공동-내의 존재, 즉 내가 타인을 향한 접근의 기호가 될 때, 내가 나의 고유한 내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나의 내면적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나의 존재 자체가 관계 가운데 해소될 때, 그 순간에 가능한 '우리'의 존재......97 

 

뱀발.  

1. 바쁘게 여기저기 다니다가 늦은 퇴근길, 인근 도서관에 들를 생각을 해보는데, 아 월요일이다. 공치는 월요일....그래도...벌써 열시를 가르키는데...어인일로 불이 켜져있을까? 분명 월요일인데...그리고 2층도.....여러권의 책들을 들고 올라가보니 도서실은 닫고 열람실은 자정까지 란다. 가뜩이나 생각이 마르기도 하고, 자란 실뿌리도 말라 비틀어질 것 같아, 가뭄에 그래도 가랑비라도 적셔주어야 할 것 같다.  손길이 가는 책이 여기다. 너-나, 개인중심의 서양철학의 문제점, 그리고 공동체...그런데 공동체에  밝힐 수 없는 이 앞에 자리잡고 있다. 죽음이나 문학이나 연애....의 비유를 든다.  

2. 차편으로 이동 중 습기를 짜버린 아침 날씨와 하늘.....구름 구름한 하늘이어서 덥지는 않았고.. 늦은 오후. 휘어진 골목길을 도는 순간 스친 목백일홍에 어찌나 반갑던지....마음이 다 그렁그렁해지고 시큰하다. 


대부분의 경우 남편과 아내는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즉 '둘'의 요소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단지 그들은 자식으로부터 자신들 혹은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봅니다. 이것은 결국 나르시시즘, 즉 전형적인 유아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우리는 남편으로서 아내를, 아내로서 남편을, 어머니로서 자식을, 아버지로서 자식을 진정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라는 사랑의 진리를 반드시 배우고 몸에 익혀야 합니다.(알랭 바디우, [윤리학], 동문선) - 사랑 그리고 가족이데올로기

뱀발. 사랑은 하나다. 무서운 환원의 유혹은 끝이 없다. 하나로 멈추는 순간, 긴장은 너로부터 연유한다.


'우리'가 함께 있는, 함께 있어야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무엇'때문이 아니며, '무엇'을 나누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있는 궁극적 이유와 목적은 다만 함께 있다는 데에 있다. 함께 있음의 이유와 목적은 함께 있음 그 자체이다. 다만 함께 있기 위해 함께 있음, 즉 공동-내의-존재를 위한 함께 있음, '무엇'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 자체를 나눔, 다시 말해 '나'와 타인의 실존 자체가 서로에게 부름과 응답이 됨, '우리'의 실존들의 접촉. 141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개인이란 없다. 인간은 항상 자기 아닌자에게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에게로 향함, 그에게 노출되어 있음, 그를 향한 외존, 관계 내에 존재한, 그것이 '나'의 존재의 조건이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가 아니라, 그가 향해 있는 타인에 의해 제약된 존재, 하지만 그 제약으로 인해 비로소 의미에 이를 수 있은 유한한 존재이다. 142


뱀발. 무엇과 완전한 개인은 한 통속인지 모른다. 개인으로 환원하지 말고 그 실선으로 닫힌 구조가 아니라 늘 점선으로 열린 인식체계가 그나마 닫히 해석의 세계, 그 틈을 열어 젖힐 수 있을지 모른다. 서구식 사고의 말미는 어찌 그 주체를 무너뜨리고 애초 무너뜨린 것들을 보듬는 것 같다. 퇴근길 하루 도*관을 더 챙겨 남기다. 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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