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책책책
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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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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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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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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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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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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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권후반 (2004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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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계몽주의,사민주의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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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대연정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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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신드롬과 황우석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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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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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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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대한 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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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대추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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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하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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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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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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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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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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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튀어,나의아름다운정원,빼앗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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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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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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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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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전략/한국자유주의의 기원/해방전후사의 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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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하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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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자유주의세력의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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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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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종, 소수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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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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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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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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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칸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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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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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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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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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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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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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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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공화주의/복지국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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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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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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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하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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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본동에내리는비/내가춤출수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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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산책
다이나믹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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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미국서브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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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2006년



탄핵국면을 이은 17대 총선의 여운이 가실 때 쯤이겠군요. 노무현정권도 후반기에 들어설 무렵, 아카데미 오비팀들은 그때 이렇게 어려운 주제의 논문들을 보고 있더군요.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사회민주주의 역사와 한국의 접근 가능성, 그리고 분단체제의 세계화 등등을 통해 앎의 문제, 사민주의의 사례, 민족주의와 평화의 문제들의 속살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지적한 최장집교수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초창기 지적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가시기도 전, 세상은 황우석신드롬과 정지선을 넘어 황우석사태와 황빠의 논란까지 증폭될대로 커져 과학-경제의 논리공간을 만들고 이어집니다. 경제논리와 성장의 발목에 정신을 잃은 듯 돌아온 386과 개혁입법도 지지부진하고 빛이 바래는 시점이기도 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진행된 세미나는 한국사회의 현상과 문제점을 알아보자고 이어졌고 현재 한국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서구의 근대 이후의 사고와 제도가 우리 사회를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서구에서도 근대를 연 생각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니체를 찾게 되었습니다. [니체의 천개의 눈, 천개의 고원]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세미나 하는 가운데 물론 해석의 문제나 이견이 없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텍스트 다양성과 다양한 시선, 여러 집단을 부여잡고 놓치 않는 논리들이 세미나 성원들 사이에도 새롭게 번지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다른 시점, 시각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로의 사고도 근대의 방식에 꽉 묶여 쉽사리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도 함께 합니다. 그러는 와중 우리의 몸에 철두철미하게 배여있는 경제논리는 서서히 물밑을 넘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수면위로 올라와 버리게 됩니다. 비대칭적인 힘의 관계나 규모에 대한 고민은 없고 성장의 신화와 정치 논리는 어김없이 미디어와 현실의 공간을 압도하게 됩니다. 한미 경제 고속도로를 내자는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비판적인 의견과 강연회는 정책적인 반대 방향으로 미치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미 fta가 우리사회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잇는 시점, fta를 포함하는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을 교재로 진행합니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신자유주의와 fta가 선진국이 사다리를 통해 안정적인 위치에 다다른 후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책들에 대해 인상깊게 파악된 세미나였습니다. 세계경제에 대한 관점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 계기였고, 장교수의 책 [국가의 역할]도 논의가 되었습니다. 딱딱하고 무거운 책들로 이어진 세미나였습니다. FTA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다양하게 분석이 시도되었는데 이런 고민과 더불어 변하지 않는 시국의 상황은 거듭 팍팍한 일상으로까지 침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천개의 눈, 천개의 고원. 서로 바라보고 싶은 논리들의 함정에서 조금은 탈출할 수 있었을까요? 계속이어지는 세미나는 시대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무겁고 굵직한 주제였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첫 기억인데 그래도 말랑말랑한 소설을 년말에 집어들었습니다. 남쪽으로 튀고 싶기도 하고, 나의 아름다운 정원, sf 명작을 통해 진보의 생각과 삶, 언어, 지향에 대해 산책을 해보면서 한해를 마무리합니다. 따듯하고 꿈결같고, 현실의 팍팍하고 퍽퍽함은 이렇게 상쾌함이나 유쾌함으로 벗어나야 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다른 세미나보다 따듯하고 포근해서, 그 감성과 감정들이 서로 이어주고 지금까지 잔여운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2007년
노무현정권 집권후반, “놈현때문에“라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기득권세력은 연일 꼬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재벌은 물론이고 언론과 교육 모두 개선되는 가시적인 효과는 없게 됩니다. 우파는 물론이고 진보진영도 민주정부가 생겨 일정정도 개혁을 한다고 했는데, 개혁정치가 사회적으로도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어 암담해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문제의식과 함께 경제위기 이어 fta 공방, 노무현정부의 실패는 진보진영 전체의 실패라는 인식, 87년체제, 97년체제 등 노무현만 나무랄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인식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87년이후 20년, 경향신문사에서 나온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이란 책으로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진보진영에 대한 전반적이 문제의식과 점검, 생활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것, 진보가 보지 못하고 간과했던 점들이 자성과 함께 세미나 속에서 뒤풀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습니다. 머리는 좌파인데 생활은 우파라든가 참진보는 무엇인가? 기업의 논리에 대해 무원칙으로 대응했던 것이 아닌가? 조금씩 의견이 개진되었지만 뒤편으로 밀린 흔적들과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물꼬가 트이게 된 상황이 된 것은 아닌가요? 진보세력의 소통과 연대에 대한 화두도 조금씩 지역의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현실은 점점 노무현 정권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뉴라이트와 보수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우파 사회단체도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 인식의 소화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왜 지금의 자유주의가 문제가 되는지? 어떻게 보수 또는 자유주의 세력이 결집되고 활동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심화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 사회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한국자유주의 기원], 좋은 것은 다 묶어놓은 듯한 박세일
의 [선진화 전략],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이영희교수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세미나가 이어집니다. 아쉽게도 안타까운 점들은 서구와 달리 보수주의의 맥락도, 자유주의의 맥락도 깊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더욱 답답해지는 과정이었던 기억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경험과 미국의 개입이 조선의 흐름과 근대의 공백을 갖게한 것은 아닌지 동시에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던 피상적인 자유와 정책에 대한 반성도 이어지는 계기가 된 세미나였습니다.
대기업의 논리와 자본의 요구는 그와중에 더욱 드세지고, 권력에 힘을 얻어 보이지 않는비정규직의 삶까지 위태롭게 합니다. 이랜드, 기륭전자로 파열음을 내고, 경제성장의 논리는 황빠에 이어 심형래의 디워논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극단의 상황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런 일들이 너무도 당연한 듯이 우리의 일상을 점거하게 됩니다. 자신의 경제논리와 자신의 삶을 섞어보는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요? 부자되세요란 덕담이 자신을 부자로 일체화시키는 모습은 저기 일그러진 식민근대의 황국신민과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내면화가 어느새 부메랑처럼 돌아와 세계화된 자본의 생리는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무너지는 우리의 다른 모습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엄연히 세대간의 장벽을 만들어 놓은 현실, 좀더 조밀하게 우리의 삶을 넘보게 되어야하는 자각이 생기는 지점이지 않나싶습니다.


세미나팀도 소수자에 대한 관심, 아프칸 사태를 통한 이주노동자와 문화에 대한 관심, 비정규직에 대한 아픔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일부 사회적 독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함께 책을 읽는 흐름들이 지역에도 이어지게 됩니다. 윤수종교수 초청강연,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 년말 삼성공화국의 비리가 터지는 시점에서 시대상황은 여기저기 발생하는 문제들의 서로 연관성을 갈구하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좀더 입체적으로 총괄적으로 세상을 보는 힘을 요구하는 듯 싶었습니다.
2008년

2007년 대선에서 여러 의혹에도 압도적인 표차이로 이명박정부가 탄생합니다. 과학이라는 것도, 기술이라는 것도, 인문이라는 것도 경제와 자본을 위한 치장정도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은 점점 더 암울이 색깔이 더 진해집니다. 잠깐 잠깐 제도 안은 인문의 위기를 들먹였지만 본질적인 인문의 부활이 아니라 자체 기능적인 수혈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근본적인 노력이 없습니다. 경제와 성장에 매몰된 정부는 작은 일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계의 아픔, 그리고 아픔이 불쑥불쑥 터지는 파열음은 주변에 있는 작은 이들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습니다. 대자본은 점점 더 치밀하게 중소상인의 영역까지 보란 듯이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년초 세미나를 한 뒤 우리나라에 방문한 울리히 벡은 별반 흥행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가 [위험사회]를 통해 제기한 문제는 별반 다뤄지지 않고, 서구의 유명한 학자로서 대접할 뿐이었습니다. 지적한 위험과 점점 가속페달을 밟아 위험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상황과 위험이 합쳐져 어떻게 되돌아오는지에 대해 우리사회 어느 곳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회자되지 못합니다.

어렵고 딱딱한 책만큼이나 현실은 더 단단한 껍질을 씌우는 듯 싶습니다. 아픔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지구 저편의 아픔을 지금여기로 가져오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함께 읽고 나눕니다. 그 기아의 문제는 서로서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구안에서 일입니다. 같이 숨쉬고 호흡하기에 그 아픔의 공기는 정화될 수 없습니다. 나라 안에 갇힌 부는 저 반대편의 굶주림을 유발하며, 지금 당장의 편리는 후 세대에게 불편으로 대물림됩니다. 과학만, 인문만, 예술만으로 갇힌 학문은 이 현실을 이겨내기에 도움이 별반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연결됩니다. 아픔의 강도만큼이나 우리는 잘 느낄 수 없습니다. 과학-기술-법-인문-예술-철학--- 모두 문제이며 서로 장벽을 쌓을수록 이해하기 힘든 세상은 서로 물꼬를 내고 함께 이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합니다. 단단하고 날이선 세미나 틈 사이로 좀더 현실을 다른 각도로 느낄 수 있는 미학모임이나 티벳현실에 대한 접근과 근대사 모임을 통해 좀더 천천히 몸에 스미게 하는 다른 시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들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던가요. 좀더 아픔을 예민하게 만들고 멀리 전달될 수 있도록 서로 마음의 촉수를 가다듬었던 때입니다. 이명박정권은 세월을 돌려놓으려는듯, 복고의 상상력 수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휘되어 압박되었던 지점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봄은 지나고 의도된대로 제도권을 착착 권력의 수중에 넣는 와중에 여중학생들로 촉발된 광우병 집회로 새롭게 발화됩니다.


세미나팀은 [파시즘], [공화주의]를 통해 여러 논리와 현실사이를 비집고 나가게 됩니다. 50년전, 200년전, 300년전으로 문제의 본질과 해결점의 고리와 열쇠는 없는 것일까하는 의문과 고민의 시도를 전환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파시즘]의 문제는 이명박정권의 탄생, 일상의 문제, 해외의 사례 등등 너무 과도하게 보거나 소심하게 보는 것을 경계하며 좀더 현실의 문제로 예민해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공화주의]란 책으로 시작한 세미나는 수차례 논쟁이 심화되기도 했는데 애초의 의도는 1980-90년의 버전이 아니라 좀더 대중들과 고민하고 주장해야할 이론이나 이념이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에 대해, 그리고 공화주의에 대한 공부는 지금 국가와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법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논의를 통해 얼마나 밀도가 높았던 것인지 그 폭과 깊이에 대해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은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정체에 관한 촛불의 생각으로까지 번지는 우연도 맞게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촛불정국은 많은 고민과 현실적인 한계를 동시에 고민하게 합니다. 좀더 현실적인 사례, 다르게 사는 국가의 모습들은 어떨까? 똑같은 삶을 고민하고 있지만 왜 나라마다 다 다른 것인가? 왜 같은 사람인데 허술하고 문제있는 기준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인가? 말로는 경제논리를 들이지만, 우리의 경제가 아니라 저기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아이러니, 그 괴리감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인가? 위정자의 논리는 되짚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세미나는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를 공부하게 됩니다. [다이나믹 핀란드], [복지국가 혁명] 북유럽의 사례들과 삶에 깊숙이 마음을 열게 됩니다.


2008년 말미 미국의 서브프라임으로 세계가 휘청합니다. 자본의 열망이 다다르는 지점을 명백히 보여주는 듯합니다. 본동에 비가 내리고, 박경리선생님의 흔적을 찾고, 나와너의 춤출 수 있는 혁명 사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 사이를 채우는 일, 나만의 삶이 아리라 나-너의 삶으로 이어지는 길. 우린 어떻게 그 사이길을 나누고 보듬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