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속 바위에 달라붙어 살고 있는 이끼처럼 바짝 엎드려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찾으려고 기를 쓰지 않고서는 찾아지지 않는 이끼처럼 산다는 것은 너무도 외롭고 힘든 일일 것만 같다.  

영화의 구성, 그 짜임새가 탄탄한 것이 마음에 든다. 도입부에서 보여준 천용덕과 유목형의 모습에서 그들의 대립을 예상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할 찰나 유목형의 죽음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으로 아들 유해국이 찾아오고,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둘러싸인 의문을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인간이 지닌 섬뜩한 내면은 정말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평소 좋아했던 배우 허준호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물론 정재영과 박해일의 연기도 좋았고 나머지 조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다. 모자란 역을 맡은 유해진의 모자람은 연신 웃음을 유발했다. 섬찟함 속에 웃음을 빵빵 터트리는 감독의 의도가 몸서리치게 슬프게 다가왔다. 

 8명의 창녀를 불에 태워 죽인 성규, 사람을 쫓아 총을 4발이나 쏘아 죽인 석만은 그들이 행한대로 그대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들의 죽음은 워낙 죄 많은 인생들이니 그러려니가 되는데 덕천의 죽음엔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다른 이들은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이미 도화지에 그려져 있지만 덕천의 도화지는 백지여서 좋았다는 천용덕, 백지였던 덕천의 도화지에 나쁜 그림을 그려넣은 천용덕, 나는 그가 용서가 안된다. 그의 나쁜짓중 이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무지'도 죄라는 글이 떠올랐다.

십대에 4명의 남자아이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해서 낳은 아이조차 물에 던져 죽인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던 영지, 그런 그녀를 늘 범하는 그들, 그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던 그녀, 모든 사건의 종지부를 찍고 천용덕이 살던 집에서 목수들과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을 올려다보던 유해국, 이 장면이 너무 낯익어 깜짝 놀랐다. 어디에서 본 듯 한데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과연 그녀의 모든 복수의 완결이었던 것일까? 감독은 관객에게 마지막 해석을 맡긴다. 그런데 왜 난 이장면을 어디서 본 것 같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결국 그녀가 이 모든 것을 해낸 것이라면 나는 그녀에게 박수를 쳐줄 것 같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를 만들고, 사람들이 휴식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공방 등 예전 천용덕이 꾸려가던 마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남성이 이끄는 사회의 모습이 피로 얼룩지고 거짓과 폭력이 난무한다면 여성이 이끄는 사회의 모습은 아이들이 함께 하고 모든게 밝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이것이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다름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거짓으로 세운 것들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 누군가를 짓밟고 세운 것들은 다시 짓밟히게 된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할 거리가 참 많은 영화였다. 감독의 의도도 분명 그런 것이었으리라. 인간으로 살면서 인간의 내면의 진실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해보고 싶었으리라. 나의 작은 선택들이 어느날 커다란 앙갚음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부터 찾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사람의 생명, 인격, 그 어떤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경고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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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0721 이끼는
    from 木筆 2010-07-23 16:25 
    영지의 역할이 없다싶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밋밋하다. 드디어 끝나는가 싶더니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는 반전이다. 화면을 가득채우는 해국과 영지의 눈빛. 원작과 다른 결말인데 더 더욱 원제에 충실하다. 이끼. 붙어살다. 긴장감-완성도-연기-...등등 나무랄 곳이 없다 싶다. 이상의 탑과 현실의 탑의 문제는 무엇일까? 신과 권력은 모두 손아귀나 마음아귀에 집어넣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틀어쥔다는 점에서 구원이든 힘이든, 살아가는 이는 하나이지 않을까?
 
 
양철나무꾼 2010-07-2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보려고 해서,리뷰를 안 읽을려고 무진 애를 썼었었는데...
안 읽고는 견길 수 없는 리븁니다요~ㅠ.ㅠ

꿈꾸는섬 2010-07-22 14:58   좋아요 0 | URL
에고...정리가 잘 안되었는데 그냥 떠오르는대로 적어봤어요. 쑥쓰러워요.

여울 2010-07-2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댓글로 이을께요. 생각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렇게 해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