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행복의 조건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서너시간이 넘치도록 나눠봤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나누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 앞서 설레이는 것이 행복이지 않느냐는 합의아닌 합의를 보기도 했습니다. 행복은 무엇일까요? 결론은 정의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행복을 방해하는 조건들을 먼저 이야기해야한다는 방법적인 결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방해하는 조건을 한 단어로 정리해봅니다. 교육, 직장, 욕심, 돈, 속도가 거론됩니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바깥의 경험에서 출발해볼 것을 권면합니다. Are you happy? 해피하세요. 해피와 행복의 간극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단어에 붙은 삶과 생활방식의 차이는 어떠한 것일까요. 혹시 우리에게 행복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가치는 아닐까요. 행복하지 않기에 한꺼번에 너무나 많이 주문해버리는 습관을 이 동시대인들이 껴입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줄탁동시 01
 

  비교적 아***에서 연장자 모둠에 속하는데요. 그들의 청춘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어 봅니다. 그 때 행복하셨나요? 그리고 연장자 모둠일 뿐만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입장의 색깔이 강한 것 같은데 어디까지 생각이 번지는지 한번 찾아가볼까요? 87년과 아이엠에프를 주요한 지점으로 생각합니다. 정권의 문제도, 권력의 문제도, 과도한 권력지향은 또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가? 민주주의의 문제도 제기합니다. 행복을 규정짓기도 만만치 않고, 개인적인 울타리에 가두기도 어려운 상황이므로, 그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회적인 조건과 개인적인 조건이 서로 엮이고 고민이 불거집니다. 사회-정치적인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문제는 체념과 죽음, 정상인, 평균적인 상황을 넘어선 철학적인 시야로 번집니다.  



줄탁동시 02

일제부터, 근대의 속도는 점점 개인을 옭아죕니다. 사회가 감당할 문제를 압축파일처럼 개인에게 모두 넣어버립니다. 평균 가족수 2.58명 3명이 되지 않는 가족이 감당할 사회,정치적인 부담이 커지는 속도는 빨리빨리의 명령어를 스크롤하는 듯합니다. 오늘 출근길에 쾌락의 쳇바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하면 생각나는 물건을 몇가지 고르라고 했답니다. 16년이 지난 뒤 같은 사람에게 똑 같은 질문을 했고, 사람들은 대부분 원하는 물건을 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또 다른 행복이 생각나는 물건을 말하고 있답니다. 가지고 싶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이 가지고 싶은 세상은 그 간극을 채울 수 없다고 하네요. 그 무한궤도에 오른 것이고 정말 비껴날 수 없는 것일까요. 여러분에게 질문의 키워드를 던져봅니다. 행복의 조건에 대한 개선여지는 정말 없는 것일까요. 


줄탁동시 03
 

 

>>화요모임 녹취전문_수정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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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대를 돌이켜 세웠다고 여겼다.
난 그대를 돌려놓았다고 자신했다.
마을의 지나친 수다과
도시의 익명성을 노래할 때도
난 그대의 마음을 잡았다고 여겼다.
 


한줌밖에 되지 않는 욕망도 지긋이
작은 차돌맹이에 눌려졌다고 말이다.
하지만, 욕망은 스르르 돌맹이를 감싸며 난다.
서울은
서울은
그렇게 욕망을 불지피고
경험치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은밀한 욕망과 바람난다.
 


내밀한 정지선은
어느새 유혹이 되어
어느새 꿈을 잡아채는 욕심이 되어
현실을 잡아먹는다.  
 


문득 난, 가을 바람 든 새벽 그대를 잡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문득 난, 지난 여름 그대를 서울의 입술에 빼앗겨 버렸음을 느낀다.  

 

뱀발. 오해받을 수도 있겠죠. 마을의 수다와 도시의 익명성은 키*님 글에서 주제를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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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밖으로 난,ㄴ,ㄹ 길



#1

꿈속에서도 그 밖으로 난 길을 가본적이 없다. 꿈에서도 꿈으로도 그 길을 꿈꿀 수 없다.  갈 수도 없다. 넘어설 수도 없다. 고속도로같은 KTX같은 그길은 그 길을 가로지르는, 그길을 뛰어가는  주부를 먹어치우고 어머니를 먹어치우고 아버지를 그 도로에서 횡사하게 한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도 없고, 주부도 없고,  끊임없이 서로 먹어치우는 꿈 속에서 깨면 그 독이 올라 신열을 앓은 땀방울마저 그 냄새로 흥건하다. 

#2

그 밖으로 난 길이 있을까. 그 밖은 어둠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더듬거리며, 어쩌면 지난 날 청춘을 베개삼아 뛰놀던 길일텐데.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안해를 갖고 남편을 갖고 아이를 갖고 또 다른 학교를 갖고 어머니가 되고 학부모가 되고 들어서서 가는 길만 보이는 것인지. 그것 밖으로 길이 생길 수 있을까. 생긴 길들은 어느 새 잊혀지거나 길이 아니라 하는데. 또 다른 길이 생기고 잊혀지고 점멸하는데. 그 밖으로 난 길이 있을까. 그 밖으로 난 길이 조금씩 점멸하고, 점멸하는 사이사이 이어진 작은 길이 안개에 흐릿하다. 그길은 몸으로 가는만큼만 보이고 보인만큼만 키가자란다.
 

#3 

네가 오는 길이 없다면 내가 가는 길도 없다. 늘 길이 생기는 속도보다 길이 없어지는 속도가 빠를테니 현실은 늘 있어도 없다. 너가 오는 길 내가 가는 길 [너-나]가 마음 닿는 길 [나-너]가 꿈속에서 만드는 길 [너-나-너]가 꿈속에서 만드는 길의 속도가 그것이 생기는 속도를 넘어설 때 흐릿한 현실의 길이 보이고, 현실의 흐릿한 길들이 점멸하지만 다시 네가 오는 길이 없다면 내가 가는 길도 없다. 늘 길이 생기는............[나-너-나-너]........[너-나-너-나-너].....


#4

그것으로 난 빌딩과 숲 사이로 작은 길, 작은 길 그것 밖으로 난 길가에 삶의 가로수 하나 하나 이어져 그 길로 또 다른 사잇길, 그 사잇길로 걸어가면 또 다른 삶의 과일나무 한그루. 지쳐 시들은 삶의 나무에 그것 밖에서 난 청량수 한 모금. 그렇게 길을 가다보면 만나는 또 다른 길. 그 길은 그것밖에서 오고, 그것을 줄인만큼의 양분을 머금고 되자라서 만나고 다시 그 작은 길을 걷다가  그것으로 난 빌딩과 ....  ....그 사이길로 걸어가면 또 다른 길을 만나고 또 다른 삶의 나무 또 한그루.................그 사이길로 걸어가면 또.............청량수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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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와 정책, 그리고 진화 - 아침 전화, 저녁 만남이 몇차례 장소가 바뀌면서 이뤄진다. 시간이 어정쩡하고 오랜만의 만남이라 시간 전에라도 도착하고 싶다. 애매한 시간 차를 두고 지하철로 이동한다. 논쟁이라 하기엔 그렇고 말을 정리하고 붙이고 하는 틈이 매섭다. 필요한 것을 제기하고 수용하고 또 다시 솔직하게 되묻는 모습을 보니 그냥 지나치는 만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미적지근하고 할 이야기를 멀찌감치 두는 내모습과 다르다.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정책과 가치를 섞어 한몸으로 만들고, 왜 생각이라도 뿌리를 다양하게 두지 못하는 것일까? 제도안, 곁, 밖에 대해 다양성과 존중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시간도 곁에 두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기 소유물로 두려는 것은 왜일까?

진화라는 것, 공진화라는 것은 역시 문화라는 공기로 호흡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공기를 없애면서 스스로 원하는대로 호흡하고 싶다라는 말은 생존자체를 거부하는 일일 것이다. 죽음뒤에 아무것도 없다. 자본의 공기로 살지 않고 비자본, 반자본으로 사는 다양성을 장려하고, 어떻게든 틈을 내려는 시도의 공감, 공유가 절실하다. 하고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맞지만, 왜 하지 못하는가라는 바닥의 공유. 왜 하나도 할 수 없는가라는 현실을 보는 능력도 급선무는 아닐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잘 안되는 것을 관통하는 이유를 볼 수 있는 것이 제대로 된 능력은 아닐까?

생각의 막장은 현실에서 만나고, 그 막막함을 나누고 섞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정말 운신의 폭이 없는 것인지? 조금이라도 몸을 비틀 수는 있는 것인지? 그 막장이 만나 확인해보려는 이유는 그래도 너를 빌리는 희망이 있기때문이다. 나로서는 할 수 없고, 그래도 너를 빌려 시도라도 해봐야 현실은 틈이 있는 것인지? 나의 판단은 꿈쩍할 수 없는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100830 ㅁㅎㅇ, ㅎㄱㅇ,ㅅㅁㅅ 

 

그리고픈 - [ㅅ ㅐ ㅇ ㄱ ㅏ ㄱ . ㅡ ㅁ ㅣ ㄴ]  를 이리저리 뒤엉키다 실뿌리를 낳고 엉겨얽혀 흙속을 맴돌다 싹도 틔우고 더 깊숙히 뿌리를 내리는 밑생각을 하다가 아주아주 큰 화선지나 캔버스에 몇날며칠을 씨름하고픈 생각이 든다. 꿈결에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지다가 며칠 사이 신문광고들이 겹친다. 정성을 들이기엔 부담스럽고 꼭지만 남긴다. 

만     남 -  오랫만의 만남 가을산과 파란여우를 함께 보다. 이야기는 짙어지고 밤은 깊어지고 밤을 샐 것 같은 청춘을 약간 비껴서니 아침 몸은 편하다. 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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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1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10-09-02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마당님, 모임 주관하시느라 수고 많으셨구요, 그런 자리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밤은 깊어지는데, 이전 같으면 몇 시간 더 있었을텐데,
공주병 생긴 후로는 몸을 사리게 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여울 2010-09-02 08:51   좋아요 0 | URL
반가웠습니다. 자주뵈요. 공주병 생기셔도 괘념치 않으니, 자주만 만나면 되요. ㅎㅎ
 

- 잘생긴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선배가 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늘 주춤 그 지점에서 물러서는데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때문이지 심화이야기 맥락 속에 걸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이 충고삼아 한, 백번도 더 되어 귀딱지가 될만한 것이 점점 불거지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생각하거나 규정짓는 자기와 옆에서 보는 자기가 너무도 다른 것 같았습니다. 무엇일까? 늘 이야기의 진도가 나가다가 주춤서는 그 자기가 대체 무엇일까? 아마 그 형은 실제 움직이는 모습과 유동적인 자기의 모습들과 달리 자신은 아마 나는 어떠해야 한다거나 나는 어떻다라는 표지판에 스스로 묶어두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면 행복한데도 행복을 물어보면 그 행복을 부정하거나 행복하지 않아야 된다는 소용돌이가 거기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요. - 그 틈을 며칠 가져가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로 서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버티려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 규정지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결국 힘든 것은 나도 힘들고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든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사람 인은 그렇게 비스듬히 기대야 온전한 것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섰습니다. 아마 내가 외로운 것도 팔할은 그 이유때문이란 생각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대서 하나입니다. 같이있는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하는 머리의 주제넘음도 살랑거립니다. 100822

심 혈 - 일터에 손님들이 있어 강연자료를 이것저것 수소문하면서 만들어 봅니다. 개별적인 성향이나 관심사, 그동안 고쳐야할 강의스타일 들을 물어봅니다. 그리고 진행되었던 강의들에 대한 생각도 섞어봅니다. 아무래도 상황에 따른 변수들이 많을 것 같아 동영상들을 도움을 받아 모아봅니다. 예상대로 될까? 따분함이 가로지르면 어떡하지? 등등 짧은 만남을 그래도 남는 것 있이 짠함이 섞여야 될텐데 해봅니다. 손님들이 오고, 뒤늦은 세팅에 시작부터 석연치 않습니다. 피피티를 먼저할까? 동영상으로 먼저할까? 샘플과 시연할 것도 준비를 해두었지만 어느 지점이 적절할까?란 생각도 접어둡니다. 어찌 하다보니 동영상으로 시작해, 나오는 질문의 물꼬를 건들려보다나니 어느새 장사 좀 되겠다 싶습니다. 낚시의 묘미란 그런 것일까? 하나둘 물건을 풀고 직접해보게 하고, 이쁘장한 샘플을 선 보입니다.... 

업계 특성상 낮술이 가끔있는데 오늘도 여전히 점심이 길어지는군요. 걱정입니다. 얼콰해서 점심건너편 어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무르익을 무렵..전해줄 물음하나만 건져야겠다싶습니다. 졸면 황이고, 자료는 일단 뒷전 이번에도 동영상으로 간을 보고 낚?인다 싶으면 밀고 가기로 합니다. ...중복 동영상에 조금 반응이 옵니다. 질문도 하나라는 것에 솔깃한지 외려 답을 하려 간간히 안달나는 분도 있네요. 그런데 말이 길어지면 이건 아니다 싶지요. 강연자도 있는데 ㅇ. 왠만해지고 궁금해질무렵 자료를 열고 목소리를 키워 몹니다. 구경꾼도 있고, 같이 동참자도 생기니 많이 수월쿤요. 벌써 원하는 답들은 나왔는데도 가려고 하지 않네요. 장사는 얼추 끝나버렸는데 가지 않고 뭘 더... ...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시골마을 써커스단이 왔는데....저 뒤에서 얼쩡거리다가 사람이 한둘 모이기 시작하고 저기 노는 곳으로 가서 함께 노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보면 서로 얼굴땀이 송긋하는 것은 아닐까. 왜 그렇게 일방으로 알리려고만 했을까 싶은 반추가 들어서기도 하네요.  마음만주다가 몸을 쓰는 것이 뿌듯으로 남는 것을 보니 그래도 심혈을 기울인 맛. 그래서 어쩌면 실력있는 교사들이 그렇게 열심이고 자꾸 중독된다는 것, 심과 혈을 기울인다라는 표현이 조금은 이해되는 하루입니다. 그것이 때론 남는 장사라는 말에도 솔깃해져 봅니다. 100825

인 정 -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트라우마가 있지요. 그렇게 이놈이 몸에 하나둘 쌓이다보면 그 녀석이 성격까지 조금씩 점령을 시도하는 것을 방치하다보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소통의 통로가 많고 열려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착각은 아닐까 합니다. 나란 밀실이나 환경은 도대체 소통과 무관합니다. 민낯보고 대면하는 횟수도 주는데, 사람들 부대끼셔 힘든데 무슨 소통이겠습니다. 사람들이라곤 다들 목적을 가진 이유로 들이대는데 마음이 접할 통로라곤 실오라기만큼 점점 가늘어지기만 합니다. 그러다보면 과정의 고정점에 모든 동선을 덧붙입니다. 모든 이유가 거기로 통하고, 지난 과거는 그 트라우마로 환원짓는 것을 보면 정말 놀라운 힘입니다.  트라우마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인정은 소수의 복받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점점 루저는 늘고, 루저의 트라우마는 점점 현실을 짓누르고 더 현실의 더께를 보태는 현실은 여전히 그 쳇바퀴를 돌립니다.

뇌과학자나 러셀이란 양반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트라우마란 것이 별것 아니어서 그 트라우마가 낳는 장점 두가지를 생각하고 마음에 주입해보는 연습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물론 러셀도 그런이야기를 벌써 오십년전에 했습니다. 어쩌면 이천년전엔 오백년전에 훨씬 쉬운 일은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그렇다고 칩시다. 달라지긴 달라지긴 합니다. 저도 한번 연습삼아 이렇게 해보았어요. 가장 나쁜 기억이 낳는 좋은 점을 한 시간정도 되뇌여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더군요. 이놈이 그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좋은 기운으로 번지더군요. 그런데....이것도 시간에 바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주 몇달지나더니 기억력처럼 스르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겁니다.

그래요. 혼자하는 놀이의 방법도 있겠지만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스스로 서기 힘든 이들이 양지바르지 않은 그늘이 훨씬 많은 숫자가 있죠. 굳이 어릴 때 정서적 교감, 보호자가 없는 몸에 붙은 의지 할 수 없는 곤란함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의 세상을 살아가는 일자체가 곤란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해요. 인정이 메마른 사회죠. 인정이 메마르고 트라우마가 중첩되는 지금을 이제서야 뼈아픈 이야기를 듣고 느낍니다. 일단 바닥으로 내려오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말. 루저나 히키고모리.....회복의 가능성이 아니라 무서운 증후의 단편만을 보여주는 섬찟함이라는 .... ...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안아주는 것이 필요한 사회가 되어버렸죠. 이미 하늘만큼 땅만큼 이전에... ... 예쁘고 귀여운 어른만 안아주면 되지 않아요. 이미 엮일 트라우마도 별로 없잖아요. 그래요 모두 안아주는...치유가 아니라 삶의 와중에서 회복의 확율을 높이려면... ... 100812
 

뱀발.  

이 시대를 살아내는 자체가 위로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겠죠. 위로받는 것에 귀천이 없는 것이라면...위로에 인색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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