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숨 내쉬면 하얀 입김’ 냉골방“ 너무 추워 소주 마시고 잔다”: 오늘 하루 따듯한 마음이라도 품고 갑니다. 화톳불같은 마음씨 지펴주세요.


#2.

수개월간 단계적 계획…간부 총동원 노조 와해공작: 조합원을 배,사과,토마토로 구분하니 재미있습니까? 속이 시꺼멓게 탑니다! 일터를 아직도 시커멓게 태우는 구태들이 정작 그곳에 몸담지 말아야 될 듯..챙피한줄 알아야. 
 

#3.

“코앞 덮친 구제역 유용미생물로 막았죠”: 돋보이네요. 바이러스질병을 항생제로  막거나 절멸시키는 것은 구식방식이 될 듯하네요. 공생과 예방이 발화지점으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논의도 사회적으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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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과 삶  

뱀발. 토요일 아침, 짙은 잠으로 일찍 눈이 떠진다. 문득 걸린 시선을 집요하게 잡아둔다. 생생하고 짙게 잘 그린다. 그리고 삶을 잡아먹기도 하는 틀에 대해 생각을 이어본다. 상병의 자살로 클로징을 하는 이 [용서받지 못한 자]는 지금 , 지난 군의 현실을 너무도 생생히 그리고 있다. 중학교 동창의 우정은 군대란 틀 속에선 어김없이 이그러진다. 삶이란 한줄기 빛이 물속에서 굴절을 하듯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삶이 그 틀에 놓아질 때 대부분 그 틀을 생각지 않는다. 그 틀 안에 논리를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벽에 몇몇 부딪치면 이내 수긍하고 그 삶논리를 내면화한다. 그 틀이 학교이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상관없다. 삶은 애써 그것을 외면하려 한다. 마치 그것이 정답인 듯 말이다. 

그 수직적 힘의 관계는 위계는 곳곳에 숨어있다. 그리고 다른 삶에서 다시 가부좌를 틀거나 웅어리를 틀어 자란다. 그래서 그 틀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 쉽지 않다. 내면화된 논리들이 틀이 외적 압력으로 말랑말랑해진다 해도 그 자리로 돌아가기 일쑤다. 몇차례 그 논리를 극복했다고 해도 점점 딱딱해져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군대의 논리를 내면화한 친구들의 삶은 그 위계구조에 익숙해 정작 아니라고 할까 아니라고 하지 못한다. 그 틀을 넓히려고 생각조차 못한다. 점점 길이 좁아져서야 망할 즈음이 되서야 위기에 직면한다. 

틀을 말랑말랑하게 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은 미약하다 나-너의 흔적이 조금 더 강하다. 그리고 시간이 나-너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래도 해볼만 하다. 틀의 바깥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그 틀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일들을 번갈아 할 수 있다면....그 틀들이 좀먹을 수 있다면.....그 삶의 굴절이 그나마 줄어들 수 있으리라....사회는 이런 이들의 삶논리로 충만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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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원회

- 어린이과학도서추천모임
- 강연회(분기별 대중강연-주제가있는세미나 병행)
-STS 월1회 과학독서모임(2월 과학전쟁으로 시작....)
-과제응모(어린이과학도서추천내용+STS도서모임+SF모임내용을 결합하여 창의재단과제 응모)

숙성해야할 주제
- 소책자(대전지역 과학기술운동사, 분야별존경하는과학자(웹진형식으로 시작), 물한방울과 같은 과제주제로 한 그림책(시간 외)
- 대전과학기술운동사 정리(인터뷰 포함)
- 과학뉴스(올해의 과학10대뉴스를 우리의 관점을 포함하여 월별선정 형식 또는 지역을 국한시켜 지속적 발굴하여 뉴스레터형식으로 기획, IG 노벨 외)
- 기술영향평가 방식의 숙의 모임 기획(도서....)


뉴스 유감
-인간의 꿈(김순천 지음 후마니타스)
-차가워진 태평양, 원인은 라니냐
-삼성전기 성희롱 피해자 로스쿨 간다
-학교에 맞선 죄 중앙대 퇴학생 1심승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58958.html  학교가 권리와 권한을 엉뚱하게 해석하여 정작 보호해야 할 것과 홍대 청소용역처럼 위탁을 주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대학의 자율권에 대한 보직자나 행정담당자들의 생각은 있기나 한 것일까?


 어찌 잊으리, 노동자 배달호의 불꽃을: 반복되는 죽음, 자신이 아니라고 하지만, 검은 냇물이 흐르는 지점에서 세상은 관심을 응축시키지 못한 이유는 아닐까? 늦을수록 시작이겠지만 이추위에 김진숙님의 투쟁이 ....  언론은 이 인간의 꿈을 연속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방치해둔다. 그렇게 자본이 허문 영역은 다른 투쟁에서 어김없이 반복이 되고....죽음은 반복되어서는 안되는데도..

 

삼성전기 성희롱 피해자 로스쿨 간다: 적반하장; 일터가 세상의 온도에 시선을 맞추지 못할 때, 그리고 과감한 수술을 해나가지 못하면..지금 이 순간에도 가해자란 괴물이 점점 자라고 일터조차 망가뜨릴 수 있다... 

뱀발. 모임날자도 쉬이 잡히지 않는다. 성원이 바쁜 연유가 일차적이긴 하지만, 겹치기 출연으로 달리 생각을 모으는 것도 피로도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한고비가 넘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만남과 폭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방향과 할 범위에 대해서도 지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몸의 피로만큼 생각을 잇지 못했다싶다. 뉴스와 너무 담을 쌓고 지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제언을 이어보기로 한다. 바라보는 관점의 공유나 공감의 활동들이 너무도 소멸되어 있다. 느낌의 그물들이 필요한데 너무 세상을 핑계로 저어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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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 일터 주당들이 많아 곤혹스럽다. 약속들을 겹쳐 챙기기가 만만치 않다. 달님을 잊다보니 체력도 간들거려 걱정이다. 아침 버스를 기다리다 눈길이 오랜만인 친구들에게 마음을 준다. 나뭇가지들이 하나씩 나무가지꽃을 피우는게다. 지나치는 나무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니 나무들이 빙글빙글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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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자는 2006년부터 관심의 중심을 유지시키고 있는데, 이십대의 저자이기전에 지금여기에서 나름 다른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지식을 수입해서 중개상의 시류에 말려드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관심과 노력으로 자생적으로 지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누구누구가 유행입네..그 시류에 편승해서 비평이든, 평론이 난무하고 알량한 지식을 구걸하러 다니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 같다.  

사유의 폭을 만들고, 행동의 진폭을 만드는 일이 지금에서야 생긴 엄청난 진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교수이든 강사든 이렇게 지적흐름이 생기고 폭이 넓어질 가능성에 긴장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까? 원서를 쫓고 번역을 빌미로 지적유희를 조장하는 일들이 가능하지 않다.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지식인들의 사유의 폭을 넘나들며 또 다른 사유를 만들 수 있다는 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정치철학의 외연이 넓어지고, 동양철학의 사유와 접목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정치철학의 그룹이 여기저기 생기고, 삶의 또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면....이십대가 아니라 십대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세상의 비를 함께 맞으며 고민도 나누고 삶도 섞고 싶다. 당당한 이십대가 좋다.

 

 

 #2. 평행우주, 초끈이론, 11차원....우주에 대한 저기가 있을까? 외계엔 생명체가 있다는 확신...글쎄. 그렇게 출발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유리할까? 없어도 현실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렇게 바닥을 보면 거기에서 시작하고 앎을 증식시킨다고 해서 불리할 것도 없다. 환원의 사유는 너무도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최종이론도 없고, 최종 환원도 없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을 훨씬 더 유연하고 풍부하게 보는 지름길은 아닐까?  

뱀발. 1.주말 낮술모임이 발족했고, 어젠 연구공간 개소와 더불어 여러분들이 마음을 섞다. 낮술모임에서 잠깐 이십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 2007년 사회적 독서로 수유너머에서 이십대 대학생을 만나고 그 친구가 생활하던 카페에 들낙거린 적이 있다. 생활공간을 공유하면서 사유와 삶을 만들려는 노력이 무척 보기 좋았다. 박가분님도 그런 공간들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그들의 고민과 사회의 연배가 있는 형,누나들의 고민은 그리 다른 것 같지 않다. 더 통하고 더 생각을 짓고,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싶다. 더 많이 생기고 사유하고 모듬들이 만들어지고....일상이 늘 혁명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헌데 자본의 겹겹은 더욱 진하고 단단하다. 사유는 깊어지되 환원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도 무럭무럭 자기를 우리보다 풍부하게 살아낸다. 정말 그것을 감싸 안아 잠재울 능력은 되어야...자본의 숨이 조금씩 죽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밤은 깊다. 하지만 새벽이 조금조금 미소를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2. 왜 긴장을 하지 않을까? 지식인입네 하는 분들은 또 어디 기댈꺼리를 찾는 중인가? 또 다른 문화현상으로 취재라도 해야할 듯 싶은데...비평가들은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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