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조금 + ]

뱀발. 마무리짓지 못한 일이 머리를 맴돌아 일터로 향한다. 그리고 한번은 들러야지 하면 가보지 못한 곳들을 콕 찍고 돌아오니 맘이 편하다. 아마 풀리지 않는 것은 일이 아니라 봄고픔이겠다 싶다. 

 

왼쪽은 비암사 옆 산행길, 오른쪽은 비학산 오르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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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 친구들과 수다다. 남자들이 왠?수다냐고 묻겠지만, 수다가 살지않으면 남자도 죽는다. 민주주의는 수다로부터 오고, 수다는 연설을 넘는다. 주장만 하다가는 연구도 개뿔도 없다. [수다의 기술]이란 책의 구십구쪽에는 느낌을 가로채는 법이 나온다. "맞아맞아"라는 주기도문 같은 것이 나온다는 말이다. 여자들은 수다말고 연설해야 한다. 말을 끊고 공감의 뼈다귀도 없는 주장을 날세워야 한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삶아먹은 남자를 되받아쳐야 한다. 그래야 남자들이란 작자의 숨이 죽고, 그 상처의 속살같은 민주주의의 희망이 삐죽 솟는 것이다. 그날그날 다른 안주가 나오는 [그날]에서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수작]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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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10712 파란 가을을 함께 품다
    from 木筆 2011-07-13 12:21 
    수작친구들과 [오늘밤]을 함께 보내다. 수작에 대한 생각은 약간씩 어긋나면서도 차이가 있다. 연구공간이다. 부설연구소다. 아니면 아카데미 잡지일 등 기획업무를 포함한 대행공간이다. 각각의 구분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연구공간일 경우 합의된 연구이며 2년으로 체류기간으로 잡을 것인지? 아니면 6개월? 아니면 일터를 잡을 때까지 머물 수 있다라고 할 것인지? 만약 수유너머의 모델를 갖고 있다면 함께 연구하고 책을 내고, 강의를 한다라는 기본적인 살을 붙일
 
 
 

 

 

 

동백도 매화도 목련도 다 피었더라 

-[ 사진 조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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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2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울 2011-04-0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무/속삭인이 신문지면에서 접했어요. 하동 소식도 목련소식도 늘 설레입니다. 언덕위의 집두요. ㅎㅎ.
 


1.

공공 정치철학 강좌가 열리다. 처음. 며칠 뒤 꿈자리엔 풀뿌리 멤버가 옆자리에 있다. 마음에 드는 이들을 만난다는 자체가 쉽지 않다. 하물며 활동하는 친구들과 진지하게 생각을 섞을 기회는 더 쉽지 않다. 좀더 보태어 생각의 타래를 한번 쯤 함께 어루만져야 할터인데 그런 일들은 영원히 놓친 듯하다. 그들 각자의 길을 빠른 속도로 통과만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은 아닐까?

샘이 김규항의 [야! 한국사회] 칼럼을 복사해서 나눠준다. 그리고 한마디 마디 읽어간다. 원칙적인 좌파라고 여기지만 그는 시장을 인정한다. 핀란드의 사례에 밑줄은 긋다. 그리고 또 따라가면서 밑줄은 긋는다. 그는 대중과 엘리트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대중은 우매하다? 씨알인가?

그리고 똥벼락이란 동화책을 건넨다. 부자에게 똥벼락을 내리고 돌쇠아범편을 든다. 내용인즉 기본적인 재산권을 인정한다. 공공 정치철학 측면에서 보면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을 다룬다. 반면 레위기의 희년 이야기는 49년동안 토지를 이용하고 토지를 다시 돌려줄 것을 이야기한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사상이다.

시장과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다르게 판단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슨무슨 주의자란 딱지를 붙이기 전에 나누고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그렇게 우리들의 사상이나 이념의 지도를 그려내고 구분해내어 보는 일이 함께 나눌 과제이자 강좌의 포인트라고 한다. 자신의 궤적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

 

 

 

 

2.

총회다. 곡절을 담은 터라 안스럽고 답답하기도 하다. 삼성 백혈병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뒤풀이에 다시 한번 되짚게 된다. 한국타이어 사망자대책도 직접적인 관련자가 있어 견주게 된다. 해결이 아니라 지원이란 사실을 잊고 있던 것은 아닌가? 우리는 그래도 시간에 대해 안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위상을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공정별 유해물질, 그리고 유해물질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부수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조공정을 파악할 수 있고, 공정별 자료와 데이터를 모아둘 수 있다. 굳이 삼성이고 한국타이어가 아니더라도, 제조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다. 삼성과 한국타이어의 사자의 넋을 달래주지 못하더라도 유사한 공정에 지금 당장 일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사회에게 경고카드를 날려줄 수 있다. 배워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경로가 있다. 일터로 가기전 실험하는 실험실의 위험도 알려줄 수 있다. 



뒤풀이를 하다가 자*론 강좌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다들 강좌엔 선입견이 있는가 보다. 주최가 누구이며? 의도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결과가 아니라 함께하는 이들과 나누게 되는 과정에 방점이 있다라고 설득하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사람들의 생각을 겹치게 하고, 이왕이면 그것을 계기로 다양하게 가져가면 좋겠다. 사심이라면 이것이 사심이겠다 싶은데 말이다.

3.

공정여행 사회적 기업의 청년과 만남 그리고 느낌들... 


스물다섯. 그리스인 조르바를 군대에서 읽었다 한다. 인상적이어서 옥상에서 눈오는 날 맨발로...그리고 물리도록 먹게 만드는 방법에 진*샘, 그리고 조르바댄스를 보여준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청년은 386세대론을 묻는다. 꽃이 핀이들이 아니라 묵묵함과 그 빙산을 바치고 있는 나머지를 나눈다. 느낌이 조금 겹칠 수 있을까? 외삼촌의 아픔을 계기로 선택한 일과 공부를 또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열림이 마음에 든다.  

 

 

 

 

뱀발. 

1.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나눈다. 활동(운동)하는 이들 역시 머리란 표준어만 쓰려고 노력한다. 일을 좋은 결과만 해석해서 자신의 단체에 적용하려는 것이 유행이다. 하지만 모임마다 유사한 일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이 있다. 모임과 모임이 서로 기댈 줄 아는가? 이렇게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린 사투리를 폄하한다. 가슴의 말과 느낌의 말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쌓이고 저축되지 않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생각을 가다듬을 때면 모든 사고를 사투리는 걷어내고 머리란 표준어만 들이댄다. 그래서 안된다. 느낌도 겹치면 온도가 오르는 것이며 뜨끈뜨근해졌을 때가 되어서야 이제 머리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말이다. 

호객행위가 그쯤 되어서 가능하다.  대부분 지식이란, 공부를 하고싶단 생각은, 불쑥 예쁜 여선생님이나 총각선생님에게 반해 설레임에서 시작한다. 아니면 머리를 한대 맞은 듯 불쑥 느낌이 들어서야 허겁지겁 거꾸로 지식을 탐하게 되기도 한다. 청춘이란 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피카소가 늙다고 창조성도 열정도 없다고 할까? 젊다는 것은 있는 것에 얼마나 예민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느낌이 화끈화끈거려 무엇인가 하지않고 못배길 젊음이 생기게 하는 것은 나이와 큰 연관은 없다. 

지역의 모임들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냉정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서로 기댈 경험이 부족하고, 세번째는 결과보다 과정을 보는 눈들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점들만 깨우친다면 벌써 저만큼 성큼성큼 더 멋진 행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느낌들이 모이다보면 생각을 끓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서로 궁금하고 필요해서 안달하게 될 것이다. 아마!!! 

2. 참터 총회를 하다가 낙서를 한다. 그리고 지운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정말 아닐까? 

앎이 끓어야 느낌을 낳고, 느낌이 끓어야 깨달음을 낳고....느낌이 부딪쳐야 앎을 낳고, 느낌이 빚져야 기대게 되고, 몸이 겹쳐야 뜨거움을 낳고, 뜨거워져야 너-나를 구분짓지 않고.. 

3. 일터일, 모임들이 겹치고, 겹치기 출현 등등 바빴다. 곤한 잠이 그리웠는데 꿈자락에도 연신 일을 해대어 잠도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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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미줄과 이슬
    from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2011-04-04 20:10 
    낮에는 꽃샘바람이 쌀쌀하지만 아침엔 봄기운이 확연하다. 울타리의 수수꽃다리는 연한 초록 새순이 멍울이 져 있고 개나리도 조금씩 몸을 키운다. 매화나무는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더디게 부풀어 오르고 수선화는 좀 더 기다리라고 주문한다. 집 앞의 벚나무에 아침마다 참새, 박새가 날아와 구애의 휘파람을 불고 간다. 곧 팝콘같은 환한 꽃망울을 퐁퐁 터트릴 것이다. 꽃을 보고 싶은 여념으로 예전에 찍었던 이슬 사진을 모아봤다.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이다. 이슬..
 
 
쥐똥나무 2011-03-2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서로 '생각'을 묻지말고 '느낌'을 물어보자.
생각을 물으면 '머리'로 답하고
느낌을 물으면 '가슴'이 답한다.

오늘 하동 아지메님댁에 다녀왔어요.
이제 죽음을 향해가는 인생고개에서 노년의 삶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걸까?
생각이 많았는데
섬진강 매화꽃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을 키우는 일을 해야겠구나...."
그게 나무를 심는 일이든, 교육하는 일이든,사람과 관계맺는 일이든....
봄도 됐으니 신성동 번개한 번 하시지요^^*

여울 2011-03-28 08:49   좋아요 0 | URL
매화가 남녘엔 벌써 도착했군요.
이곳은 짓굳게도 아직이더군요. ㅎㅎ 꽃번개 함 해야겠군요. ㅎㅎ
 


돈만 밝히는 과학이 내리는 대재앙!!!

 

쓰라린 고통에 깨어나니 집도, 절도 없다. 아이도, 가족도 이웃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원전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방사능을 누출해대고 있다. 벌써 지구를 한바퀴돌아 낙진이 떨어진다. 소와 돼지 발굽이 달린 동물은 입과 발에 염증이 생기자마자 온동네에 있던 가축들에게 묻지마 살육을 자행한다. 비행기의 속도로 달리던 초고속철도는 주춤주춤 원인도 모른채 내달리고 있다. 오늘도 미국산 등골로 우려낸 음식을 든다. 지진, 쓰나미, 산불, 구제역, 조류독감, 광우병, 슈퍼박테리아, 원전사고, KTX. 유전자조작.. ...

안타깝게도 지금 이땅 저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스토피아다. 재앙이 살짝 지금을 비껴서고 있을 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른다. 산업혁명이후 과학은 프로메테우스를 자청했다. 불을 훔쳐다준 과학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화석연료란 불로 이백년남짓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자본주의의 얼굴은 점점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닮는다. 돈을 남기는 과학에 브레이크를 달려고 해도 화려한 성찬에 취한 주객은 그저 욕망에 쫓겨 갈채만 보낸다. 내 발등이 섞어 들어가서야 겨우 주춤거린다. 내 온몸이 타들어가고 머리 한쪽만 남아서야 겨우겨우 중독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경쟁과 박멸

이 사회는 여전히 하나밖에 모르는 전문가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사회는 그들에게 묻지 않는다. 그저 개발만 하라고 한다. 대박만을 원한다. 윤리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금광을 캐내는 광부처럼, 나노소자를 개발하고, 반도체소자와 백신을 얻기위해 끊임없이 원하는 것만 발라내는 작업을 한다. 그 모습은 흡사 전쟁을 닮았다. 적의 요새를 공격하고 진지를 탈환하고, 포화속으로 돌진에 돌진을 거듭한다. 연구자료와 책장 속엔 온통 전쟁터다. 멸균과 박멸을 해야할 뿐 미생물과 공존을 생각하는 연구는 드물다. 적진으로 가는 길에 내버려두거나 방기해둔 사체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과학의 담론 속에는 얼마나 이땅에 아픈이들이 있는지에 대한 사회담론, 생태담론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렇게 쟁취한 부가 그들로 피해받은 이들에게 돌아갈 몫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적어도 내이야기가 아니다. 불을 훔친 과학은 이렇게 사람과 자연과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내듯 끝없이 유린하고 군림해왔다.

편리의 이면

사람들은 편리함에 취해 위험함을 잊고 산다. 달콤한 편리함이 서서히 익을 무렵 위험함도 조금씩 자라나 저기 먼 곳으로 모인다. 하나 둘 셋! 돌연 멀어지던 위험함은 방향을 바꿔 돌진한다. 거대한 쓰나미로 편리함의 구석구석 모든 것을 원점으로 쓸어버린다. 사람들은 과학이 위험함까지 해결하는 해결사로 오해한다. 하지만 나노과학은 알아도 그것이 진폐,규폐를 유발하는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잊거나 관심조차 없다. 생명에 대한 집착은 이종장기가 기계부속품처럼 우리 몸에 끼워넣을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KTX로 인한 급행의 쾌감이 얼마나 많은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지 그 뒷면의 시스템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러다 어느 날 위험이 삶들을 송두리째 낚아챈 뒤에만 한탄한다. 그리고 남들의 일이므로 잊는다. 오늘도 위험함은 지구 반대편을 돌아 이곳 낯익은 거리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집중과 분산

사람들은 세계화를 좋고 친한 것으로 여긴다. 세계화의 콩고물을 얻을 수 있으므로 간도 쓸개도 모두 내주었다. 불과 수백년만에 철도, 고속도로와 인터넷정보망으로 똘똘 무장을 하고 있다. 돈이 가는 길은 거의 광속으로 여기저기 쏜살처럼 날아간다. 하지만 돈이 가는 길이지 건강이 가는 길, 좋은 삶이 가는 길이 아니다. 돈과 과학이 근친해서 그렇게 위험의 고속도로를 뚫어놓았을 뿐이다. 생명에게는 신대륙의 발견이란 빌미아래 중남미 문명이 백인의 세균에 초토화되었듯이, 도시로 도시로 모인 균들은 종과 종의 경계를 넘어 생존하려고 한다. 인수공통전염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5대양 6대주의 먹을거리들은 건강한가? 

시간

자본주의는 길어야 수십년 수백년 동안의 데이터만을 근거로 위험을 계산한다. 홍수가 나고 강물이 범람해도 기상이변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지 않는다. 하루에 비가 700mm에 가까이 내려도 그것을 바탕으로 도로와 다리의 설계에 넣지 않는다. 끊임없이 똥을 누는 핵폐기물이 후대에 어떤 위험이 되는지에 대한 물음은 없고 그것을 가정하여 연구하지 않는다. 활성단층이라고 해도 과거의 흔적으로만 돌릴 뿐 위험지수로 품어서 활용하지 않는다. 화산이나 지진에 대한 기억도 만일이란 가정은 없다.

이땅위의 굶주리는 이웃과 사회적 약자는 지금까지의 과학에겐 뒷전이다. 이땅위에 굶주려 죽더라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 과학은 돈의 그늘에서 벗어난 자신의 시각을 갖지 못해 왔다. 과학만 발라내어 저기 성전위에 있는 놓인 성물로서 그것이 아니라, 굶주린 이웃과 생명을 밝히는 과학이 필요하다. 저기 도시로 도시로 향하기만 하는 과학이 아니라 지역과 헐벗는 이들을 구제하는 과학이 필요하다. 세밀하게 검수해내고 이력을 확인하고 오대양6대주의 식탁이 아니라 그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을 자유와 권리에 과학이 기여하여야 한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자전거길, 올레길 같은 과학이 지금의 국면과 또 다른 갈래길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그물망에서 과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돈의 시녀만이 아니다. 편리를 가장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연구하게 만들어야 한다. 굶주리는 이들이 더 이상 삶을 빼앗기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과학이 필요하다. 돈으로 치장한 과학에 찬사를 보낼 것이 아니라 의심의 눈길을 보낼 줄 알아야 한다. 시간에 바래어 위험을 자초하는 과학이 아니라 당당한 과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찬사를 보내면 보낼수록 그것은 위험으로 변질되어 부메랑처럼 박수를 보낸 이에게 돌아온다. 당신도 부지불식간에 편승을 한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에 대한 의심을 보태야한다. 순간의 방심들이 모여 여기까지 왔음을 느껴야 한다. 당대가 아니라 후손도 똑같은 생명이자 한표임을 명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일수록 천성산의 도룡뇽이 터널공사로 물기가 빠져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아픔으로 느껴야 한다. 이땅의 아픔만이 아니라 저땅의 아픔도 똑같이 세계화되었다는 진실을 과학이 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과학은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같이 투명하게 내려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길만이 과학의 고삐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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