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식*산 독수리봉을 다녀오다. 마침 운무가 반겨 저 멀리  옥천 산자락이  향수처럼 은은하다. 12k  3:00 

뱀발.  정상부근. 의사분들이 산행을 하다  일행 중 한분이 쓰러져 응급처치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119구급대와 헬기, 다급한 전화 걱정어린 산행객들.  참나무 사이로 간신히 헬기에 태워 이송시킨다. 무사했으면 좋겠다 싶은데... ..(조바심이 나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아무일없겠지) 산행을 마치고 기념 손수건을 살 겸 들른 가게와 산행객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다. 마취과의사들이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책읽는 가게 할머니는 의사들이 몸챙길 수 있겠어. 돈때문에 몸 챙길 여력이나 있겠어라고 한다. 최승자 시집과 인생수업 그리고 몇권의 책이 눈에 잡힌다. 할머니는 커피한잔을 권하며 10년쯤 된 이곳의 인심을 얘기한다. 75호정도 있는 마을인데 변두리 인심이 살아있어 상가에 다들 발벗고 나서는 훈훔함을 전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세천막걸리 몇병을 사왔다. 이곳에 세금을 내는 술과 세상에 관심을 둬야한다는 말씀들이  남는다.  .........오는 길 허전하여  지역서점에 들러 이책저책 챙기다 녹색의 고간사를 만나 수인사 겸 근황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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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그림자)와 안남(다가갈 수 없는 나라)

해보세요. 둔산좌파.
둔산좌파.
둔산좌파.
둔산좌파.
둔산좌파.
이상하네요.
둔산좌파.
둔산좌파. 라고 말할수록 이 둔산좌파가 그 둔산좌파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죠. 둔산좌파.
둔산좌파.
둔산좌파가 말이죠. 라고 나무님이 말했다.
전부 다르게 생겼대요.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죄다 다르게 생겼대요.
그렇데요?
그런데도 그걸 전부 둔산좌파, 라고 부르니까. 편리하기는 해도, 둔산좌파의 처지로 보자면 상당한 폭력인거죠.  37-38쪽 

-[책 원문]-

blog.daum.net/tjca/192 [둔산좌파 글원문]

뱀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화의 중요성으로 얘기해달라는 부탁과 맥락을 나눠봤다. 모두에 있을 ㅁ ㅅ씨의 발제가 대략 이럴텐데 반론은 위와 같은 요지다. 조국도 그러하며 말을 추상화시켜 만드는 순간 그로 인해 득도 보겠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추락할 위험성이 더 크다 한다. 그런면에서 방향으로 제기하는 순간 이해는 쉽겠지만 이렇게 스러지는 위험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지적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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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끝났다
    from 木筆 2011-11-18 08:32 
    불편들을 감내하고 준비하신, 그 행과 행 사이를 고민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고맙다.늦가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다.
 
 
 

그림자라는 건 일어서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잖아?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 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1. [백의 그림자] 도심 전자상가의 철거장면을 그렸다. "그림자라는 일어서기도 드러눕기도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면 끝장이지."  따듯하고 부드럽다. 난쏘공과 달리 화법도 세상을 어루만지는 방법도 평화롭지만 달리보면 날카롭다. 부드러움과 안온함의 가장자리를 다니다보면 현실이 이렇게 비겁하게 서 있음을 느끼게 한다. 백百의 그림자들. 불순한 현실들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않게 백권쯤의 연대는 없을까? 생각_행동을 제조해내는 매체의 드라마들이 이렇게 무심한 듯, 깊이감을 그려낼 수 있다. 그렇다면 원심력을 갖는 생각_행동이 구심력을 가질 수 있을까? 현실에 주어진 그림자에 고민을 들여대고 현실에 불꽃하나 태울 수 있을까? [저지대]의 시같은 소설과는 또 맛이 다른 지금여기를 묘사하는 힘이 강건하다.

2. [annam 다가갈 수 없는 나라] 겹쳐 읽다. 신이든, 선교든, 다가설 수 없는 나라에서 그들의 의도를 건졌다.고 오독했다.  원하는 의도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없다. 의도에 매몰될수록 의도하지 않는 날것들을 별반 건질 수 없다. 확율을 높이기 위해 실뿌리를 여기저기 남기는 수밖에.  다가설 수 있는 나라엔 아마 얻어야하지 하는 그런 비법은 없으리라...그림자...안개...무진... 나는 길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저 손놓지 않고 지금당장을 번지게 하려 애를쓸 뿐.  그 한방울이 안개를 더 짙게...그 그림자가 어둠을 더 짙게...하지만 언젠가 빗방울로...언젠간 환함으로... ...지금당장이 되보일지도 모를 것이다. 비로 씻기고 어둠이 눅눅해져서... ...

뱀발. 문체도 날렵한 활자의 편집도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술술 강렬해지는 두권의 책을 권면받다가 짬독하여 읽다. 건넨 이의 의도보다 다른 잿밥에 관심이 많으니, 책을 권하는 이는 늘 무심해야 한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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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11006
    from 木筆 2011-10-20 14:04 
    해보세요. 둔산좌파.둔산좌파.둔산좌파.둔산좌파.둔산좌파.이상하네요.둔산좌파.둔산좌파. 라고 말할수록 이 둔산좌파가 그 둔산좌파가 아닌 것 같은데요.그렇죠. 둔산좌파.둔산좌파.둔산좌파가 말이죠. 라고 나무님이 말했다.전부 다르게 생겼대요.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대요.그렇데요?그런데도 그걸 전부 둔산좌파, 라고 부르니까. 편리하기는 해도, 둔산좌파의 처지로 보자면 상당한 폭력인거죠. 37-38쪽-[책 원문]-
 
 
 

탈자본주의, 비자본주의를 지표나 이론으로 삼아보자. 그리고 일상을 천가지쯤으로 나누어 작은 길을 셈해본다. 계급이나 처지가 있다. 입장 처지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숨쉬는 것 하나하나 자본주의의 하늘아래 있다. 그렇게 일방으로 모는 것은 많지 않다. 그 간극을 벌리는 것은 자본주의 하늘아래 있음을 가정하고, 하나하나 불편을 가정해보고 고민을 끝까지 셈해보는 것이다.)


고민을 잘게 쪼개고 셈해본다.

대표/장의 자리를 놓을 수 있는가? ***같은 생각과 짓을 하고 있다라고 또 다시 지탄을 받는다면 모임에 다시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식구는 그 고민을 하고 또, 아카데미에 나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설령 그러하다면 흔들릴 수 있는 구석이 적은 종교가 선택하기에 맞는 것은 아닌가하는 얘기를 들었다. 모임에서 제기한 것은 모임이 불화를 조장하는 역할을 해야한다에 연한 것이다.

고민이 있으면 논문과 책에 의존 해본다. 그 논리는 투명하고 정연하다. 그를 통해 나의 문제에 대해 조금씩 진지하게 보는 것 같다. 몇차례 나타난 문제들도 그렇게 자료를 보고 논문을 보면서 해결해 보았다. (혼자, 사람은 혼자일까? 사람은 늘 기대거나 붙어사는 것은 아닌가?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판단을 흐리는 것은 아닐까? 이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한번 옆의 감정에 기대보는 것은 어떨까?) 


수유너머에 있고 수강할 때는 모임의 정체성에 고민하지 않았다. 그 정체성은 따로 꾸려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관여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오히려 아카데미가 정당처럼 무엇을 하는 곳이다 선명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모임이 무엇일까? 선명해도 좋겠지만 오히려 남부럽게 하는 곳이거나, 즐겁거나, 남다른 고민을 하는 곳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목표나 목적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어떨까 해본다. 만들거나 시도를 해보는 곳이라면 어떨까 궁금해본다. 저기를 따라하거나 배끼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거나 새로 짓거나 출발하는 곳이라면 어떨까?)


모임

모임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원들도 주어진 것이 아니다. 확장하고 만들 수 있다라고 가정한다면, 모임의 분위기도 생각하고, 색깔도 고려하는 것은 어떨까? 불화를 조장하는 얘기를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그 불화의 불씨를 품을 수 있는 모임을 시작해볼 수는 없을까? 의도적인 불편을 야기하거나 불문율처럼 끝장 볼 수 있는 작은 모임을 만드는 일. 아니면 그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작은 기댐 같은 것에서 희망의 싹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모임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현실이 아니고, 성원에 대한 지나친 믿음도 현실은 아니다. 외줄타기같은 불안, 만듦, 기댐....그리고 잡다한 먼지같은 것이 현실이고 모임을 만든다.
 

뱀발.   

1.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일요일 저녁 장*샘을 만나 여러얘기를 나눈다. 나는 디테일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은 편이다. 어느 정도 과하지 않다면 넘기는 편이고, 괜찮은 일이면 처음과 끝, 과정을 촘촘히 따지지 않는다.  맥주 한모금에 지난 몇년이 빨리 지나간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맞는 어려움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실감하는 것이 앞날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차라리 매를 먼저 맞고 싶기도 하다. 

2. 내 삶, 내 방식, 내 고민이 아니라 찌든 우리의 불편, 일상에 물든 불편을 끄집어내어 다른이의 삶, 다른 고민, 다른 방식이 끝까지 나눠지면 좋겠다. 그리고 푸는 것이 이론이 아니라 어느 순간 깨달음으로 서로에게 다른 파장이 미치면 좋겠다. 책 속의 내가 아니라, 현실을 뛰게 만드는 사회를 뛰게 만드는, 일상을 뛰게 만드는 심장같은 이들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사회 속의 나로 다른 일상을 살아갈 준비를 보듬었으면 좋겠다. 나에 침잠하지 않으면서 나를 기대면서, 나를 아무생각없이 물결에 맡겨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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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끝났다
    from 木筆 2011-11-18 08:33 
    불편들을 감내하고 준비하신, 그 행과 행 사이를 고민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고맙다.늦가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 또는 손, 발. 행동은 없다. 설레임이 덜하다는 그(녀)는 자못 진지하다. 일상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녀)다. 홀홀 단신 세상을 어깨에 매고 간다는 아이의 시처럼 그 격함은 짙다. 실루엣이 진해질 무렵, 손에 길꽃 몇송이를 들고 온다. 보이차를 내리고 이야기를 담는다. 차도 아마 취할 것이다.

모임과 의견 사이, 결정을 내리자. 뜨뜻미적지근은 아니지 않는가? 행동할 만한 것을 추려내고 움직이면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10월 15일도 그렇고, 촛불도 그러하다. 국제행동의 날,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모임에 영어광풍 무엇인 문제다라는 소책자를 갖다놓자. 단 한명이 봐서 도움되면 되는 것은 아닌가? 이래서 안되고, 저것도 생각하면 되겠는가?

생협 대의원 대회 모습을 건네듣다. 읍소에도 댓글하나 주춤거리지 않는 지금이 외롭다. 복받치는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 흘리는 눈물에 (왜? 저래!) 오버라고 하지 않을까? 예전과 지금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좋은 소리, 좋은 짓만이 아니라 지금당장 필요한 일에 대해 나눌 수 없음이 답답하다.

씨앗이 할 수 있는 궁리를 해보다 한살림, 생협 사이 회원들과 만남이 좋지 않을까 수소문을 해본다. 같은 사람, 비슷한 사람, 많지 않은 사람들, 삶들이 선상에 겹친다. 하지만 모임과 모임 사이 함께 나누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사람과 사람, 활동과 활동, 고민과 고민을 겹칠 틈도 없이 얇아지는 것은 아닐까?


 

모임

말벗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말벗이 생기고 나눌 이가 생기는 순간, 모임밖의 다른 것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렇게 궁금하고 안달했다. 하지만 이제 모임밖의 일에 관심갖는 벗들이 생둥맞다. 다른 모임으로 향하는 길, 다른 모임의 다른 방식, 같이 나누었던 길들은 왜인지 시큰둥하다. 생협과 생협사이에 드러난 문제, 개인과 개인이 지향하는 교육에 대한 문제, 아이쿱이 들어오면 이곳에 작은 가게는 똑같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교육의 지향점이 달라 고민의 뿌리까지 닿기를 저어한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것을 구별해내어 해보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 순간순간 지나치고 싶은 불편한 질문들. 지나치고만 싶지 나누지 못한다. 불편을 나누는 일은 어쩌면 조금 멀리 머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가보는 것이다. 행동으로 가는 것이 없으면 머리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불편이 없으면 나아지지 않는다. 모임에 안주하고 모임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으면 모임도 새로와지지 않는다. 불편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일이 아프긴 하지만, 모임과 모임으로 난 길을 잇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뱀발. 회원의 날 발제청탁을 겸해 만나다. 담지 못할 이야기도 많지만 솔직함은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정작 난, 뜨뜻미지근하다. 문제제기를 한 부분에 대해 날을 세워 결정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가끔, 아니 빈도수가 부쩍 늘은 듯하다. 불편과 진짜문제는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여긴다. 뜨뜻미지근함을 걷어내지 않으면, 그저 좋은 모임을 소비만 하고, 좋아함만 소진하다가 또 다른 모임들을 기웃거릴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불편과 고민의 결을 나눠 싸우더라도 부딪쳐야 한다고 말이다. 설레이고 열정을 갖지 못함이 아쉽지 않다. 아웅다웅 하지 못하는 처신이 불편하다. 버**의 솔직함이 좋다. 불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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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끝났다
    from 木筆 2011-11-18 08:32 
    불편들을 감내하고 준비하신, 그 행과 행 사이를 고민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고맙다.늦가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