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머리가 아니라 가슴 또는 손, 발. 행동은 없다. 설레임이 덜하다는 그(녀)는 자못 진지하다. 일상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녀)다. 홀홀 단신 세상을 어깨에 매고 간다는 아이의 시처럼 그 격함은 짙다. 실루엣이 진해질 무렵, 손에 길꽃 몇송이를 들고 온다. 보이차를 내리고 이야기를 담는다. 차도 아마 취할 것이다.
모임과 의견 사이, 결정을 내리자. 뜨뜻미적지근은 아니지 않는가? 행동할 만한 것을 추려내고 움직이면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10월 15일도 그렇고, 촛불도 그러하다. 국제행동의 날,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모임에 영어광풍 무엇인 문제다라는 소책자를 갖다놓자. 단 한명이 봐서 도움되면 되는 것은 아닌가? 이래서 안되고, 저것도 생각하면 되겠는가?
생협 대의원 대회 모습을 건네듣다. 읍소에도 댓글하나 주춤거리지 않는 지금이 외롭다. 복받치는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 흘리는 눈물에 (왜? 저래!) 오버라고 하지 않을까? 예전과 지금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좋은 소리, 좋은 짓만이 아니라 지금당장 필요한 일에 대해 나눌 수 없음이 답답하다.
씨앗이 할 수 있는 궁리를 해보다 한살림, 생협 사이 회원들과 만남이 좋지 않을까 수소문을 해본다. 같은 사람, 비슷한 사람, 많지 않은 사람들, 삶들이 선상에 겹친다. 하지만 모임과 모임 사이 함께 나누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사람과 사람, 활동과 활동, 고민과 고민을 겹칠 틈도 없이 얇아지는 것은 아닐까?

모임
말벗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말벗이 생기고 나눌 이가 생기는 순간, 모임밖의 다른 것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렇게 궁금하고 안달했다. 하지만 이제 모임밖의 일에 관심갖는 벗들이 생둥맞다. 다른 모임으로 향하는 길, 다른 모임의 다른 방식, 같이 나누었던 길들은 왜인지 시큰둥하다. 생협과 생협사이에 드러난 문제, 개인과 개인이 지향하는 교육에 대한 문제, 아이쿱이 들어오면 이곳에 작은 가게는 똑같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교육의 지향점이 달라 고민의 뿌리까지 닿기를 저어한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것을 구별해내어 해보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 순간순간 지나치고 싶은 불편한 질문들. 지나치고만 싶지 나누지 못한다. 불편을 나누는 일은 어쩌면 조금 멀리 머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가보는 것이다. 행동으로 가는 것이 없으면 머리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불편이 없으면 나아지지 않는다. 모임에 안주하고 모임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으면 모임도 새로와지지 않는다. 불편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일이 아프긴 하지만, 모임과 모임으로 난 길을 잇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뱀발. 회원의 날 발제청탁을 겸해 만나다. 담지 못할 이야기도 많지만 솔직함은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정작 난, 뜨뜻미지근하다. 문제제기를 한 부분에 대해 날을 세워 결정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가끔, 아니 빈도수가 부쩍 늘은 듯하다. 불편과 진짜문제는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여긴다. 뜨뜻미지근함을 걷어내지 않으면, 그저 좋은 모임을 소비만 하고, 좋아함만 소진하다가 또 다른 모임들을 기웃거릴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불편과 고민의 결을 나눠 싸우더라도 부딪쳐야 한다고 말이다. 설레이고 열정을 갖지 못함이 아쉽지 않다. 아웅다웅 하지 못하는 처신이 불편하다. 버**의 솔직함이 좋다. 불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