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자본주의, 비자본주의를 지표나 이론으로 삼아보자. 그리고 일상을 천가지쯤으로 나누어 작은 길을 셈해본다. 계급이나 처지가 있다. 입장 처지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숨쉬는 것 하나하나 자본주의의 하늘아래 있다. 그렇게 일방으로 모는 것은 많지 않다. 그 간극을 벌리는 것은 자본주의 하늘아래 있음을 가정하고, 하나하나 불편을 가정해보고 고민을 끝까지 셈해보는 것이다.)
고민을 잘게 쪼개고 셈해본다.
대표/장의 자리를 놓을 수 있는가? ***같은 생각과 짓을 하고 있다라고 또 다시 지탄을 받는다면 모임에 다시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식구는 그 고민을 하고 또, 아카데미에 나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설령 그러하다면 흔들릴 수 있는 구석이 적은 종교가 선택하기에 맞는 것은 아닌가하는 얘기를 들었다. 모임에서 제기한 것은 모임이 불화를 조장하는 역할을 해야한다에 연한 것이다.
고민이 있으면 논문과 책에 의존 해본다. 그 논리는 투명하고 정연하다. 그를 통해 나의 문제에 대해 조금씩 진지하게 보는 것 같다. 몇차례 나타난 문제들도 그렇게 자료를 보고 논문을 보면서 해결해 보았다. (혼자, 사람은 혼자일까? 사람은 늘 기대거나 붙어사는 것은 아닌가?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판단을 흐리는 것은 아닐까? 이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한번 옆의 감정에 기대보는 것은 어떨까?)

수유너머에 있고 수강할 때는 모임의 정체성에 고민하지 않았다. 그 정체성은 따로 꾸려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관여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오히려 아카데미가 정당처럼 무엇을 하는 곳이다 선명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모임이 무엇일까? 선명해도 좋겠지만 오히려 남부럽게 하는 곳이거나, 즐겁거나, 남다른 고민을 하는 곳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목표나 목적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어떨까 해본다. 만들거나 시도를 해보는 곳이라면 어떨까 궁금해본다. 저기를 따라하거나 배끼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거나 새로 짓거나 출발하는 곳이라면 어떨까?)
모임
모임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원들도 주어진 것이 아니다. 확장하고 만들 수 있다라고 가정한다면, 모임의 분위기도 생각하고, 색깔도 고려하는 것은 어떨까? 불화를 조장하는 얘기를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그 불화의 불씨를 품을 수 있는 모임을 시작해볼 수는 없을까? 의도적인 불편을 야기하거나 불문율처럼 끝장 볼 수 있는 작은 모임을 만드는 일. 아니면 그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작은 기댐 같은 것에서 희망의 싹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모임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현실이 아니고, 성원에 대한 지나친 믿음도 현실은 아니다. 외줄타기같은 불안, 만듦, 기댐....그리고 잡다한 먼지같은 것이 현실이고 모임을 만든다.
뱀발.
1.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일요일 저녁 장*샘을 만나 여러얘기를 나눈다. 나는 디테일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은 편이다. 어느 정도 과하지 않다면 넘기는 편이고, 괜찮은 일이면 처음과 끝, 과정을 촘촘히 따지지 않는다. 맥주 한모금에 지난 몇년이 빨리 지나간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맞는 어려움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실감하는 것이 앞날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차라리 매를 먼저 맞고 싶기도 하다.
2. 내 삶, 내 방식, 내 고민이 아니라 찌든 우리의 불편, 일상에 물든 불편을 끄집어내어 다른이의 삶, 다른 고민, 다른 방식이 끝까지 나눠지면 좋겠다. 그리고 푸는 것이 이론이 아니라 어느 순간 깨달음으로 서로에게 다른 파장이 미치면 좋겠다. 책 속의 내가 아니라, 현실을 뛰게 만드는 사회를 뛰게 만드는, 일상을 뛰게 만드는 심장같은 이들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사회 속의 나로 다른 일상을 살아갈 준비를 보듬었으면 좋겠다. 나에 침잠하지 않으면서 나를 기대면서, 나를 아무생각없이 물결에 맡겨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