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고백한다기에 인터넷 기사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고백기사는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온통 게시판의 뉴스를 도배한 것은 고백하는 사람이 고백하기도 전에 잘못되었다는 것이더군요. 세상이 그런 것은 알았지만, 양심마저도 이렇게 눈을 씻고 찾아보아야 보일둥말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새삼스럽더군요.

피해를 감수하는 세상이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진실이 진실이 아니길 바라는 심정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실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외면한다는 말이 그래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불감의 시대는 수구와 맞닿은 것은 아닐까 몹시 우려됩니다. 늘 우려스러웠으니까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지만, 욱하는 기분에 편승하는 댓가가 너무도 크기에 안타깝습니다.

양심은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고 다독거려주는 일입니다. 듣고 똑같이 앞을 보는 일이겠지요. 어찌하다보니 아는 것도 지혜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네요. 안타깝습니다. 행여 알라디너분들은 헛갈리는 것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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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선이 아니라 삼성이다_삼성민국에 부쳐(酌)
    from 木筆 2007-11-21 01:25 
    떡값정치란 낚시에 걸려올라오는 몸통을 눈여겨보셔야, 30년간군림하는독재자의 모습에 순진무구하다고여긴국세청공정 거래위검찰정치인등등얼마나 전방위정치를 해왔는지ㅡ 사회의일그러진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에도 얼마나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지 눈에보이는정치인들 의심급기관이 어디인지 조국의현실을 여실히보여주는 현장. 딛고일어서지 못하면, 대선이 아니라 처절히 이 떡값에 걸린무리들만 훑어내기만해도, 자각증상이라도 보인다면 이 사회는 건강
 
 
 

자전거로 가을을 음미하다보니 달림을 잊어버렸다. 더구나 마지막 한주, 일터팀회식으로 이어진 일주일은 삼일내내 피치못할 자리로 채웠다. 몸상태를 괜찮게 유지하는 것이 나름대로 좋은 방법일텐데. 스무날동안 달려주지 못한 것이 걱정이다. 그나마 나머지날은 몸충전은 제대로 한 듯 싶다. 새벽 첫차를 타고, 시간에 맞추어 든든히 먹어두고, 잠이 오지 않아 독서등에 읽어준다.

너무 생각길이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아 책장을 덮고 잠을 재촉한다. 늘 불안한, 장거리 연습이 부족한 연유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완주를 목표로 30k 부터 시작하는 걷기만 없앴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동생은 몸이 만들어져 있다.(녀석 일내겠는 걸...ㅎㅎ) 매형은 무릎이 좋지 않은 듯, 안색도 편치 않다.

후미에서 매형과 함께 느긋하게 출발한다. 중간 볼일도 보고, 매형과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다보니, 20k 쯤 우리 후미가 별로 없는 듯하다. 반대편 조금 더 가다보니 동생은 벌써 30k 지점을 다다르고 있다. 반대편에 우르르 몰려가는 달림꾼들을 보다나니 마음만 초조해지는 것 같다. 매형도 앞서고, 조금씩 반환점을 앞서 배고픔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보면 후미주자들은 왠만하면 폼이나 모습의 잔영들이 고스란히 남는다.

또 한차례 쉬어가는 넉넉함이 있기도 하다. 영양갱 하나로도 든든해져 부담없이 십여킬로미터를 갈 수 있고, 작년 멈추어섰던 33k지점도 구령소리 덕분에 덩달아 넘어선다. 맘속으로 벽이라고 생각했던 35k 지점도 넘어서자 자연스럽게 말미 편안하고 부드러운 달림이 이어진다. 고통이란 전제가 깔려있지만 그 속에 좀더 나은 몸상태로 기분을 조율하는 맛, 그리고 이미 먹었던 생각의 고비를 넘는 맛은 늘 색다르다.

그 짧은 시간에 교차하는 여유, 배고픔과 달콤함, 친구의 소중함, 개인의 한계 넘나듦 들이 동시에 버무려진다. 한편 이렇게 실타래처럼 엉켜진 맛들은 알고 푸는 만큼 느끼지 않을까 싶다. 어찌보면 고욕과 뻥뚫림의 극단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결과에 대한 몫은 오로지 제 것이다. 부모님의 그윽한 눈길도 고맙고, 캠프에서 챙겨주는 누나-매형의 마음도 고맙고 내려오는 길, 쪽잠으로 달콤해지는 몸, 이후  편안한 배려를 해주는 식구들의 마음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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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7-11-0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네요...허나 공맹왈 '준비없는 첫날밤은 피만 볼 뿐이당!!'의 경구가 맞는 사례는 혹시 아닐런지...쩝

여울 2007-11-05 13:38   좋아요 0 | URL
허거 ㄱ. 썩어도 준치라고...그래도 일년을 기다렸는디~ 너무 하사 ㅁ.... [준비없는]은 폐기하사 ㅁ....쯔어 ㅂ!!

연두부 2007-11-0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기하고...준비가 좀 부실한.....이 맞는감유?...ㅎㅎ

여울 2007-11-05 17:12   좋아요 0 | URL
빙고~~

달팽이 2007-11-0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시간 반 넘게 열라 뜀박질을 했다는 말이지요.
죽어 죽어..

여울 2007-11-05 17:42   좋아요 0 | URL
격한 표현을 쓰시네. 그냥 쉬엄쉬엄 달렸다는 표현이 맞지요. 살..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썩은 냉소만을 날리고 있었지
우린 이제 남들이 보여주는 희망에는
더 이상 미소짓지 않아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미소짓지 않는
우리에게서 절망을 보겠지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속에서 절망을 느껴
절망에 관해선 우리가 훨씬 우월해


이제 우리를 지켜봐
절망과 더불어
절망속에서 작은 걸음으로
다른 걸음 걸음들과 걸어나와
절망의 물결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희망의 작은 구멍을 메울꺼야


댓글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절망 속 냉소만을 날리고 있었지

“젊은이들은 죽었다” 단언하는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미소짓지 않는 우리에게서 절망을 보겠지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속에서 절망을 느껴
절망에 관해선 우리가 훨씬 우월해

우린 이제 남들이 보여주는 희망에는
더 이상 미소짓지 않아

이제 우리를 지켜봐
절망과 더불어 절망속에서 작은 걸음으로
다른 걸음 걸음들과 걸어나와
절망의 물결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희망의 작은 구멍을 메울꺼야


#시를 이렇게 해체해도 원래의 느낌이 살려나 모르겠지만 크게 첫번째 연의 3행4행은 아직 좀 이른감이 있어 뒤로 보내봤고 '썩은 냉소'는 시의 전체적 분위기 상 조금 뜬금없는 것 같아 '절망 속 냉소'로 바꿔 보았고 나머지는 호흡이 끊어지는 것 같아 조금씩 붙여 보았어. 전체적인 내용은 좋은 것 같아.^^ 


첫번째 연 3행4행을 뒤로 보내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썩은 냉소는 고집할테야.

                                                                                    20대    [연구공간 환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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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0. 서푼짜리 뜨문뜨문 독서가 이어지는 것 같다.

0.1 갑자기 눈을 뜨게 된 장님은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아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없었다. 박지원은 재맹아설화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제서야 더듬더듬 장님은 제 집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벽"(마니아)과 "치"는 눈뜬 장님이 다시 눈을 감고 다시 시작하는 제 모습이라고 한다.주체파악을 한 연유에 생긴 집단지성의 흐름이라고 봐야한다고 한다. 주체도 없고 베끼고 전달하기에만 익숙한 지금의 모습은, 쏠림만 있는 것은 아닌지? 학자는 드물고 중개상만 있는 것은 아닌지?

학문은 학문이고, 삶은 삶이고, 학생은 학생이고, 전문가는 전문가이고......어찌어찌하다보니 정보는 홍수로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경계를 섞지 않는다. 더구나 삶과 직교시키지도 못한다. 그런면에서 덧보태어 "지기"와 "붕우"를 갈구한 18세기 지식인은 집단 공진화의 싹을 배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체작업의 시도도 그러하고... ... 어떤 면에서 너무들 재미만 가져가는 것 같고, 그리스인의 삶의 궤적에서 찾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고, 이땅에서 벌어진 일에서 찾는 것도 의미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일연의 흐름으로 실마리를 19세기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많이 기다려진다.

1.  뇌과학류의 발전이 너무도 빠른 것 같다. 프로이트, 라캉이 뭉뚱그렸던 일련의 정신분석학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전자와 호르몬, 뇌의 변화를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 밋밋함의 이해가 아니라 누구나 그 굴곡을 알 수 있고, 다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먼 일은 아닐 듯 싶다. 앎이 과도해 또 다른 환원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지만. 

2. 또 한가지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이 변모된 주요 축이  "도 道"에서 "진실"로, "옛날"에 대한 가치지향이 "지금"으로, "저기"에 대한 관심이 "여기"로  바뀌었다는 전제가 있다. "그때 저기의 도"를 추구하던 이전의 가치관이 "지금 여기"의 "진실"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3. 2의 지점에서 보면 지금의 지식인이나 지식인을 빙자한 활동 습속은 설명되지 않을까? 엔엘피디나 계파의 원류가 지적 원천을 제공하는 것이 무슨 이즘에 전도된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그때저기를 지금여기에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마술에 걸린 것도 아닐테고, 끊임없는 퇴행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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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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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선취할 수 있는 대안이 곰삭혀진 모든세대가 함께 품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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