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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가든 나들이를 가든 평생 <옥해(玉海)>란 백과사전을 끼고 살던 이의준은 집에 불이 나자 책을 구하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또 판서 윤양래는 탈상(脫喪)한 집을 찾아가 상복과 두건을 모아오는 별난 취미가 있었다. ‘돌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석치(石癡)라는 호를 가진 정철조는 보이는 대로 돌을 파서 벼루로 만들었고 ‘책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癡)라는 호를 가진 이덕무는 밀랍으로 매화까지 만드느라 열심이었다. 꽃에 미쳐 수백여 종의 꽃을 세밀하게 그린 김덕형, 기석(奇石)에 탐닉했던 이유신, 앵무새를 관찰한 내용과 관련자료를 모아 ’녹앵무경‘을 낸 이서구, 비둘기의 품종과 교배, 성질 등의 내용을 담은 ’발함경‘을 낸 유득공의 기이한 면모를 책은 보여준다. 이옥이 친필로 쓴 『연경(烟經)』은 담배에 관한 책이다. 장절을 나눠 담배 농사의 단계별 주의 사항을 적었고, 담배의 문화사적 정리까지 시도했다. 가짜 담배 식별법에서 담배에 얽힌 전설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법까지 소개했다. 담배 피울 때 쓰이는 12종의 도구도 하나하나 설명했다. 지독한 편집증이다. 특히 이들은 앵무새와 같은 미물과 관련된 책에도 경(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격물(格物)’이란 사물들을 밑바닥까지 살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아들 정학유가 양계를 한다는 말을 듣고는 편지를 띄운다. “기왕에 닭을 치기로 했다면 닭에 관한 기록으로 ’계경(鷄經)‘을” 지으라고 당부한다. 성인들의 말씀을 기록한 책들에게만 붙일 수 있는 ’경(經)‘이란 말을 미물에게까지 붙인 데에서 실제를 중시하는 실학자들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18세기에 나타났을까. 저자는 그 원인으로 새로운 문물의 경험에서 오는 문화적 충격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북벌을 주장하던 조선의 젊은이들이 청나라 연경에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방으로 뻗은 도로, 으리으리한 건축물, 거리를 가득 메운 서점과 산더미와 같은 서책, 서양에서 들어온 과학문물․․․. 더 이상 그들은 미천한 오랑캐가 아니었으며,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양이 질을 결정한다던가. 청나라를 통해 수많은 책들이 들어오고, 한성의 서적 유통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자 조선 지식인들의 의식은 급격하게 변모했다.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여겼던 주자학이란 학문은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 바로 여기에서 ‘실제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이 싹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경전에서 찾을 수 있는 이상적 가치보다는 현실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진실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또 정약용이 ‘나는 조선 사람이니 조선의 시를 짓겠다.“라고 천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저쪽‘보다는 ’이곳‘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책의 저자는 조선의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18세기 지식인들의 변화된 세계관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런 18세기 지식인들의 변화에 대한 열정은 시대의 주류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소수였다.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열정이 뜨거울수록 이들을 불온시하는 보수적 지배층의 감시도 커져만 갔다. 정조는 이들의 문체를 불온하다고 하여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사정의 칼날을 빼들었다. 그것이 18세기의 한계였고 시대의 비극이었다. <감각의 박물학님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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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0. 서푼짜리 뜨문뜨문 독서가 이어지는 것 같다.
0.1 갑자기 눈을 뜨게 된 장님은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아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없었다. 박지원은 재맹아설화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제서야 더듬더듬 장님은 제 집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벽"(마니아)과 "치"는 눈뜬 장님이 다시 눈을 감고 다시 시작하는 제 모습이라고 한다.주체파악을 한 연유에 생긴 집단지성의 흐름이라고 봐야한다고 한다. 주체도 없고 베끼고 전달하기에만 익숙한 지금의 모습은, 쏠림만 있는 것은 아닌지? 학자는 드물고 중개상만 있는 것은 아닌지?
학문은 학문이고, 삶은 삶이고, 학생은 학생이고, 전문가는 전문가이고......어찌어찌하다보니 정보는 홍수로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경계를 섞지 않는다. 더구나 삶과 직교시키지도 못한다. 그런면에서 덧보태어 "지기"와 "붕우"를 갈구한 18세기 지식인은 집단 공진화의 싹을 배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체작업의 시도도 그러하고... ... 어떤 면에서 너무들 재미만 가져가는 것 같고, 그리스인의 삶의 궤적에서 찾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고, 이땅에서 벌어진 일에서 찾는 것도 의미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일연의 흐름으로 실마리를 19세기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많이 기다려진다.
1. 뇌과학류의 발전이 너무도 빠른 것 같다. 프로이트, 라캉이 뭉뚱그렸던 일련의 정신분석학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전자와 호르몬, 뇌의 변화를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 밋밋함의 이해가 아니라 누구나 그 굴곡을 알 수 있고, 다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먼 일은 아닐 듯 싶다. 앎이 과도해 또 다른 환원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지만.
2. 또 한가지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이 변모된 주요 축이 "도 道"에서 "진실"로, "옛날"에 대한 가치지향이 "지금"으로, "저기"에 대한 관심이 "여기"로 바뀌었다는 전제가 있다. "그때 저기의 도"를 추구하던 이전의 가치관이 "지금 여기"의 "진실"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3. 2의 지점에서 보면 지금의 지식인이나 지식인을 빙자한 활동 습속은 설명되지 않을까? 엔엘피디나 계파의 원류가 지적 원천을 제공하는 것이 무슨 이즘에 전도된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그때저기를 지금여기에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마술에 걸린 것도 아닐테고, 끊임없는 퇴행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