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이 도마 위 횟감용 물고기인 듯 목욕탕에서 때밀이용 목판침대 위에 누우면 까만 팬티를 입은 여자가 회칼 대신 이태리 타올로 몸의 구석구석을 뒤지며 묵은 때를 밀어낸다 누우라면 눕고 돌리라면 돌리고 벌리라면 벌리는 100% 자동형 인간이 된다 한참 동안 작업을 하던 여자가 "언니, 혹시 얼라 가지셨는교?" 툭 뱉는 말에 몸과 때가 동시에 굳어 버린다 "아--아니요. 왜요?" "팔다리도 늘씬하고 목도 쑤욱 빠졌는데 거--만 볼록하길래....." 말에 감.전.되.었.다 자동형 인간이 불판 위 마른 오징어가 되어 오그라든다 세신비를 내밀자 "언니, 충격 좀 받고 뱃살 빼시는 기 더 좋지예? 우린 아싸리하게 말해뿌리야 쇡이 시원한기라예. 또 오이소!" 앞으로 공짜로 밀어준다고 수골백번 부른다 해도 다.시.는.안.간.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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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kbs 스페셜을 보고 싶은데, 취재 요약 내용이다. 꽃이 마음에 들어온 뒤, 꽃잎은 나비를 닮아, 한결 같이 곧 비상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색도 형언할 수 없는 기하학의 비밀도 고스란히 빠져들게 만드는데, 꽃을 보면 짓는 미소도, 향수도, 튜우립 공황도...짐짓 다른 내용들도 곁들여보고 싶어진다. 영국 bbc 방송을 보고 국내용으로 제작하고 싶었다 한다. 

 

 

 

  

[시] 시집 뒤에 부록처럼 있는 시평을 읽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 왜냐면 선입견을 불어넣기에 그 그늘에 사로잡힐 수 있고, 시선이나 관점차이에 의한 즐거움을 빼앗길 수 있기때문이다. 남성이냐 여성이냐도 그렇다. 일체의 소개를 배제한 채 약간의 느낌만 갖고 읽게 되었는데, 행간에 여성임을, 최근에 공부를 하였고, 시평으로 좀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나이 마흔에 신춘문예로 등단하게 된 같은 연배임을 알게 된다. 익숙한 일상 묶어내는 다른 맛을 배이게 한다. 매력적인 시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봄풍경을 편안히 들여다 본다. 김홍도의 표지 그림처럼..

 

 

  

[그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선집을 보다. 한국대표적인 작가소개와 대표적인 그림이 깔끔하게 소개되어 있다. 기증과 구입, 그리고 일련의 흐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고야의 그림은 그림 위주로 간간히 시선을 뚫고 지나갔던 작품들이 보인다. 그림의 변화나 서신들을 넣어 그림관을 나타내어준 것이나 소묘의 흔적들. 어둠에 대한 묘사는 마음의 걸음이 편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미처 보지 못하고 빌려온 책들. 

 

 

 

 

 

뱀발.  

1. 어제 일터 회식으로 피곤이 몰려와 쉬고 싶다. 책도 굶어 초조하다. 어젠 중간중간 잡는 분들이 많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웨이터생활 십몇년의 구력으로 조언해주는 일. 또 다른 색깔이나 분위기가 느껴지는 분들. 협력사와 관계들 사이엔 장벽이 있다. 이곳의 이력이 있는데도, 보는 눈은 비슷한데 늘 이기고지고의 대립구도와 조언이 그 사이를 비껴선다 싶다. 그런 하루 멀리 화집이나 눈이 시리도록 보고 싶다. 오고가는 길. 산책이 나을 것 같아 걷다보니 책 볼 시간이 많이 준다. 그래도 환기라도 되니 조금 몸도 마음도 편하다. 근대사산책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2. 문예지의 시를 발췌 해설한 [오늘의 좋은시]는 볼 만하다.  [상상력]의 현상학, 상상력의 존재론, 시적행위에 대한 설명, 그의 이력이 다채롭다. 스치면서 지나쳤는데, 하나의 코드로 줄줄이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쫓아가기로 한다. [사회의 재창조]는 다문화주의, 민족을 강조한다는 뿌리는 원점에서 다시 성찰을 요구한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사회에 연루된 뿌리를 찾지 않고서는 희석시킬 수 없다.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영국인의 입장에서 두루 돌아본 듯하다. 좀더 다가서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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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ing)

 

 도덕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자유에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도덕이 정치에 근사한 이분법의 도식이라면 윤리는 행동과 순간, 자유의 만끽을 예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위는 늘 이분의 도식과 적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이분을 감싸고 있는 나머지 여덟, 아니면 나머지 98, 어쩌면 998의 여분에 대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도 이분의 현실에 치우쳐 늘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처분했다는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결을 두가지 가닥으로 모으는 유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지금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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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함께 고민하는 꿈을 꾸자
    from 木筆 2011-09-21 19:17 
    밤이 늦다. 스타일에 대한 딩가딩가 강의 뒤 옷맵시 이야기로 가을밤이 깊다. 법인사업1팀 영업동선을 한번 따라가본다. 목표와 실적 시간을 팔고, 마음을 팔고, 영혼까지 팔아야하는 동시대인의 버거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생동감은 지금 여기를 달군다. 가을 바람이 알맞아 아카데미 잡지 영업을 해본다. 어디를 가볼까? 수자원공사, 담배인삼....등등 법인 대상으로 광고영업이 먹히지 않겠느냐는 조언이다.공동이냐 공동 체냐지역의 착한 단체들, 지역화폐 렛츠, 문
 
 
마늘빵 2009-09-0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윤리는, 철학은 더더욱, 자유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교과목으로서는 도덕과 윤리를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데, 교과서로의 도덕과 윤리는 자유와는 반대 개념처럼 보이죠. 그래서 철학, 윤리교육을 전공한 저는 다른데 가서 당신이 가진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나를 이미지화시키지 말라고 합니다. 구속, 강압, 규정에 가까운 도덕과 윤리로 저를 알기도 전에 가두어버릴까봐요.

여울 2009-09-02 13:46   좋아요 0 | URL
철학만 이야기하셔야겠는데요. ㅎㅎ. 윤리?라! 많이 친숙해지시면 내공을 건네주셔야겠는데요. ㅎㅎ. 암튼 윤리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겠습니다...고민도 건네주시구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ing)
내가 할 수 있는 기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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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윤리와 일상을 하나가 되게 만든다면, 삶의 가치나 선택이 다시 복권될 수 있을 여지가 있는가? 회자될 수 있는가? 삶이 좀더 가치로 나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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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힌 글을 보셨나요? 당신의 몸은 어디에 가까운가요? 당신의 가슴은요? 당신의 차가운 머리는요? 당신이 식당아주머니라면, 당신이 도서관 직원이라면? 도서관 직원이 아니라 시간제근무를 하는 일용직이라면? 도서관 관장이라면? 도서관 운영위원회 위원이라면? 며칠전 도서관 게시판 질의응답란을 보다 마음에 걸려 가져옵니다. 

두분 모두 도서관에서 모욕에 가까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이 가슴에 응어리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절박함을 따라가자니 응당 소외된 도서관 이용객의 모습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절박함은 끝까지 그 감정을 가지고 고스란히 올라갈까요? 당신이 관장이라면 어떻게 하실거죠. 당장 바꿀 수 있을까요? 실무자들은 위탁을 주었으니, 매점이 운영되면 어쩔 수 없다. 매점 위탁자가 직원에게 그렇게 시킨 것을 어쩌겠느냐고 하겠죠. 식당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사람 한두사람 봐주게 되면 장사 못한다고 하며 또 도서관에 대고 뭐라하겠죠. 설령 운영위원회에서 두번째는 논의가 될 가능성은 큰데, 우리의 권한과 예산에 한정이 있으니 쉽지 않아 몇건은 처리가 되겠죠. 그런데 첫번째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배제될 확율이 크겠죠. 그런데 절박한 이용자들은 학생을 비롯해 이런 친구들이 많이 있겠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못하겠지만요. 

아마 절박함은 희석될 것이고, 게시판에도 형식적인 답변이 처리될 확율이 큰 것이겠죠. 일이 처분되듯이 말입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게시판에 글을 올린 두분이 시간이 지나 한분은 공무원으로 한분을 일터를 얻고 상대적인 여유가 생겼다고 해봅시다. 아마 저처럼,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들이 도서관에서 대접을 받았던 절박함은 사라질 겁니다. 어쩌면 행간의 주장대로 서비스가 형편없으니 삼진아웃제 하고, 친절 모니터링해서 시간제이든 일용직이든 상관없이 근무시간 규정도 개념없는 소비자 정신에 투철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겠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래요. 시간이 지나도 그런 절박함들이나 일리들을 빗겨서는 관심이나 유사답은 없을까 하는 겁니다. 내가 식당아주머니이고, 위탁자더라도 꼭 사정이 있는 친구들은 봐줄 수 있는 여력은 없는 것인지? 도서관운영위원으로 이렇게 빈 사각지대는 공적인 세금으로 내는 것이므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던지? 이런 친구들은 운영위원회에 참관시켜 소외된 시선이나 절박함이 반영되도록 한다던지? 관장으로 예산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적은 예산으로도 일용근무자나 시간제 근무자들의 여건이나 관리를 개선시키는 노력을 정녕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지 말입니다. 

게시판 두번째 글의 이야기가 옳으면서도 옳지 않을 수 있죠. ...이따 이어 쓸게요. 쓸데없이 길어지는 듯.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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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쩌면 윤리는
    from 木筆 2009-09-01 17:25 
       도덕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자유에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도덕이 정치에 근사한 이분법의 도식이라면 윤리는 행동과 순간, 자유의 만끽을 예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위는 늘 이분의 도식과 적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이분을 감싸고 있는 나머지 여덟, 아니면 나머지 98, 어쩌면 998의 여분에 대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도 이분의 현실에 치우쳐 늘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처분했다는데 문제가 있는지도
 
 
 

 

퇴근길 유*산의 낙조는 바다에 비쳐 달무리 같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한몸에 어울린 뒷빛은 눈이부셔 바로 볼 수 없다. 설렁설렁 부*산 한바퀴를 돌며 이곳에 당종려나무를 옮겨본다. 달무리로 타박타박 달린다. 배불뚝이 반달은 오늘도 새초롬이 떠 다닌다. 얕은 파도에 은갈치배처럼 흔들리며. 바다인지 하늘인지 모르는 그 쪽빛하늘을 만나면 마음도 둥실 띄워보고 싶다. 

뱀발. 돌아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와 물에빠진 아이구하기 책들의 메모들 다시 본다. 먼댓글에 이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 몇번 시도를 하다 엉켜 그만, 잠을 청해도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몸이 아직인가보다. 그제 산 시집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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