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파괴의 세계사],북스페인, 페르난도 바에스,조구호 역 - 알폰소 레이에스는 "우리가 플라톤의 작품 중 통속적인 것만 보존하고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중에서 무엇보다도 비전적秘傳인 것들만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으로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은 애서가들이나 제자들이 수집한 단순한 강의록이다. 그의 초기 대화들, 편집물들, 서간문들, 시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이스 세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저명한 애서가, 애독자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플라톤의 조카이자 아카데미아의 원장이던 철학자 스페우시포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가 3달란트를 주고 플라톤의 작품들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그가 수집한 주요 장서는 결국, 기원전 335년경에 학생을 모으기 시작한 김나지움의 일종인 리케이온의 도서관에 소장되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입문자들을 위한 토론 강의들이 있었는데, 이는 산책을 하면서 심오한 관념들을 토론하는 좌담회였다. 대중적이거나 대외적인 강의도 있었는데, 이것은 견습생들을 위한 것으로 사상가들의 대중적인 작품을 학생들이 직접 읽거나 암송하곤 했다. 이런 스타일은 대중적인 저술로 분류되었고, 리케이온 내부에서 사용하던 텍스트들은 토론적 비전적 저술로 분류되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 죽음, 에우데무스가 논문, 강의록, 대화필사본.....테오프라스토스 ---넬레우스...스트라톤이 리케이온 원장으로 임명...이로인해 넬리우스가 떠남.---아펠리콘...200...로마...실라와 루쿨루스. 안드로니쿠스 97-111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단편들(2002)],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그리스어,라틴어,까스띠야어 판본(2003)]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스페인어로 번역함.
2. 김진석이 잘 지적했듯이 소통의 부재는 그 자체로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이자 증상에 가깝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지만, 그 실천이념은 화이부통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소통을 홍보로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 소통을 원한다면, 그 정치경제적 기반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인프라를 외면한 채 소통 부재의 책임을 개인과 집단에게만 물어서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것이 문화를 생산하고, 문화는 그 정치경제적 기반을 반복하기 때문이 원인과 결과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그 순환관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홍우는 소통의 부패는 두가지 양극화 현상 속에서 급속히 진행된다. 첫째는 담론의 독점과 기피라는 양극화이고, 두번째는 대항하는 담론과 위하는 담론간의 양극화이다고 했다.
소통의 귀결로 여겨지는 타협과 화합은 우선적으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조정될 때 가능하다. 그걸 외면하고 명분만으로 일을 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런데 우리는 매사에 옳다그르다로 판단하는 기질을 갖고 있다. 오죽했으면 단재 신채호가 도덕과 주의가 이해에서 났느냐, 시비에서 났느냐고 질문을 던져놓고 우리 조선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한다고 개탄했겠는가.[blog.daum.net/opendiary/6988758]
3장 개혁 진보세력의 소통장애 - 스스로 개혁 진보파라고 생각하는 마이카족들은 잠시 마이카를 놔두고 택시를 타보라. 택시 기사들의 심성과 심리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려 들지 말고 그들이 보는 세상의 이미지에 주목해보라. 답은 바로 거기에 있다. 4장, 5장 마지막 노무현서거이후를 보론으로 싣고 있다.
3. 말미 분서를 집어들다. 배경과 소개글을 읽는데도 호흡이 가쁘다. 대출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빌릴 수 없느냐구 괜한 소리를 한다.
뱀발. 오랫만에 나의 공공서재에 들른다. 여전히 객들은 드문드문 수험공부에 열심이다. 가끔 논문에 경도된 사람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따라 서재 앞 초승달은 샛별과 궁합도 잘 맞는 듯하지만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서재 깊숙히 박혀있는 빨간 양장본의 분서 두권을 꺼내들다. 얕은 맛의 책 두권이 같이 들려있다. 가지고 간 여분의 책들도 함께 쌓아둔다. 혹 중국의 분서에 대한 글이 있을까 했는데, 진시황의 불교서적 관련한 글만 미흡하게 있다. 그리스의 책분실경로와 소식이 새롭다. 그리고 강준만님의 가진자-못가진자-개혁진보파의 현실에 대한 순환딜레마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왜 진보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지? 우리라는 현실에 대해 똑같은 공명을 요구하지만 역시 속도공화국인지 여전히 빨리빨리 잊혀진다. 몇몇 제안들은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