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생란],[다도],[우리옛도자기] - 번잡하지 않게 요점을 짚을 수 있다. 한번 보지 말고 세번쯤 본다면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솔-강우방예술론 [예술의 역사] 폴 콕스, [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케테 콜비츠 [윌리엄모리스 평전],박홍규

 다른 책은 가볍게 보고 콜비츠가 여성이란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되고, 강우방과 박홍규의 모리스평전에 빠져 내내 빠르게 달렸다. 시간은 이리 빨리 내달리는지. 캔맥주 한잔. 잠잘 시간도 달려오고... ...목포의 달은 더 밝고.. 

리뷰에서 다음말을 따오고 내일 마저 하고픈 이야기를 잇자. 


모리스는 흔히 보는 천재도 지도자도 위인도 아니었다. 그는 도리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그림에 재주가 없어 화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고, 아름다운 모델이었던 아내가 자기 친구인 화가를 사랑함을 알면서도 평생을 함께 고통 속에서 살았으며, 사회주의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 싸웠으나 그것은 결코 이룩되지 못했다. 그는 ‘삶을 예술처럼, 세상을 예술처럼’ 만드는 것이 인류의 과제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을 위한 어떤 체계적인 이론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내가 그를 특별히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실패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오히려 위대한 실패자다. 그는 평생 ‘내가 할 수 있다면’ 이라는 수줍고 소박한 희망과 꿈으로 살았으며 한평생 그것을 간직했고 그 꿈과 희망을 이루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1.

시인에겐 어느 대학나왔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처럼 불필요한 수식어가 없이 미술사가로 불리길 바라는 강우방님은 최근 연구원을 만들고  지칠줄 모르는 연구를 하고 있다.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금강경을 틈나는대로 보고, 단청은 물론 기와, 무늬에 해석의 깊이를 더하는 결실을 보고 있다. 건축역사학회는 물론 언어로 다다르지 못한 조형언어인 무늬의 발전과 역사가 필요해 무늬학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가 말한 추체험의 방식에 의한 고증으로 얻은 깨달음은 연구의 또 다른 방법으로 인식과 연구의 확장을 상당한 정도로 높여준다. 몸의 흔적을 연구의 한 잣대로 밀고나가는 것은 요즘 보기드문 일인 것 같다. 그가 누누이 주장했던 시선과 관점을 엇갈림과 녹임의 방식인 추체험으로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백제,신라, 고구려만 아니라 동북아 저기 그리이스 로마로 이어져 있다.

건축만이 아니라 조형언어에 대한 관심은 아시아에 형성된 불교 무늬 해석과 단청 연구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연결고리에 대한 앎과 확신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 앎과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단락의 지층은 어떤지 설명은 되지 않지만 앎의 진도와 연결망에 대한 확신은 과도하게 여겨진다. 그 상관관계가 설명되지 않는 한, 역시 똑 같은 출발을 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앎의 연결에 대한 깨달음. 깨달음의 시원을 가린다는 일이 똑같이 다른 곳의 관점으로 비교한 연유에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일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앎과 깨달음에 대한 딴지가 아니라 그 깊숙한 시원에 대한 의구심. 또 한번의 방법론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의심이다. 동이민족, 과도한 집중과 확신이 간간히 주장되기때문이다.

맥락에 대한 인식도 형편없고, 어떻게 보존되어야 하는지 시각도 없는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쪽집게 같은 지적으로 제도권에서 몹시 시기하는 인물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대전의 남간정사도 그러하며 몸으로 느끼는 그에게 결과만 집착하고 공부하지 않는 공무원이 성에 찰 일이 있겠는가만, 경주박물관장과 교수직을 마치고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을 하고 있는 흔적을 보노라면 노익장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이어 나온 삶의 흔적을 보며 많은 것은 배운다.

2.

무늬와 장식에 대한 관심은 이어 읽은 모리스의 실내장식으로 이어진다. 대자본가의 아들인 모리스가 추구한 예술은(절반만 읽다. 나머지 반에 마음이 잔뜩 가있지만...) 생활에 철저히 묻어있길 지향한다. 자본의 위력을 과시하는 건축과 장식이 아니라 장삼이사가 누릴 수 있는 생활과 연루된 예술을 지향한다. 그것도 철저히. 아직 되짚기를 하지 못하지만 이런 태도와 자세는 비단 예술만이 아니다. 일상의 하나하나, 철학....모든 경계를 넘어서 삶을 예술로 이을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아직 이야기하기 서툴지만 관심을 증폭시킬 화두가 늘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란 선입견이 든다. 선입견인지 한참 모자라는 견해인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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