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붉은 꽃이 잊지말라 다시피어 있다. 물끄러미 여기저기 시선을 잡아 놓아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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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호프는 1904년에 죽었다. 40여년의 여정을 남긴 그의 단편을 읽다보면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트 모던하다고 할까. 아니면 홍상수 스타일이라고 할까. 루쉰의 아큐같다고 할까. 나쓰메 소세키 같다고 할까. 이 사람 참 쓸만하다. 참 나이가 덜 들어보인다. 소세키와 노신보다도. 싱싱하다.  [쉿!]이란 단편에 그만 뺨을 한데 맞는다. 참. 그래도 밉지 않다. 그들은 모임을 잘했겠지? 행복하되 행복을 모르는 이들은 이런 속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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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민족들을 다룬 글들과 외국을 다니다 보면 미국과 서유럽이 인간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하고 예외적인 곳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인류학자들의 책을 보면 세상에는 실로 무수한 도덕적 질서가 있는데, 미국과 서유럽은 그것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단출하게 간추린 새로운 사회였던 것이다. 46


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에게서 도덕성 영역은 피해나 공평성의 문제를 훨씬 넘어선 곳까지 뻗어 있었다. 63


마골리스 덕분에 나는 감정과 인지를 반대로 보던 틀을 내던질 수 있었다. 모든 형태의 판단이 그렇듯 도덕적 판단 역시 인지 과정의 하나라는 것을 그의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한편 정작 중요한 구분은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지 과정 사이에서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바로 직관과 추론이다. 101


 

너무 뻔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 중 도덕이나 정치 논쟁에 들어가면 우리의 바른 마음이 기다렸다는 듯이 전투태세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기수와 코끼리는 척척 호흡을 맞추어 함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적진을 향해서는 말발로 무장한 수류탄을 힘껏 내던진다. 그 모습에 우리 친구들은 감동에 젖기도 하고, 동맹들은 내가 팀에 헌신하다고 생각해줄 것이다. 그러나 적들은 이들과 달라 내가 아무리 훌륭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마음을 바꿀 리가 없다. 그들 역시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정말로 누구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다면, 나 자신의 눈으로는 물론 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순간(깊이 있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그 반응으로 어느새 나 자신의 마음이 열리는 걸 느낄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서로가 바르다고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이다. 물론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관을 허물고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109

 

 

뱀발.  짬을 내어 읽고 있다.  어제는 안강에 한옥 노가가를 온 친구들을 만나다.  참 걍팍한 세상이다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술에 취하다. 여전히 책은 그자리에 버티고 서있지만... .. 그리고 책은 쓸만하다. 쓸만한 것을 바라는 것을 여기저기 모아져 있는 듯...선거 평가 관련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꼭 보셔도 좋을 듯하다. 제목을 염두에 두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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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 - 사람을 살리는 협동조합기업의 힘에서

 

 

세월이 쌓이고 쌓여 문화가 된다.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를 규정하는 것은 지난 약 100년간의 시간이 아닐까. 조선의 몰락,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개발독재, 그리고 IMF체제... 이러한 역사를 거치면서 생존이 모든 것을 우선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생존의 울타리는 나와 내 핏줄이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나와 내 이웃이 함께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가족이 흔들리고 있는 자리에 아직 이웃이 와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협동조합의 시대가 오고 있으나 협동의 문화는 아직 멀리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전은 시간을 필요로 하니 어쩌겠는가. 다만 묵묵히 사과나무를 심을 수밖에. 05


협동조합을 결사체 중심으로 이해하고 '결사=운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사가 다른 게 아니고 조합원의 공동요구란 말이죠. 그 공동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몬드라곤의 결사는 '일자리'입니다. 몬드라곤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처음 사업체로 만든 것이 '난로공장'이었어요. 경제가 성장하던 당시에 일자리는 소소한 문제였을 겁니다. 생명, 민주주의, 생태, 환경, 지역, 농업 등 큰 사회 담론만을 결사로 이해했어요. 그러다 보니 안전한 먹을거리, 육아, 낮은 가격, 나은 서비스, 공동구매, 품질관리 등 생활 속의 소소한 결사를 무시하거나 낮추어보는 경향이 발생한 거죠. '운동'은 안 하고 사업만 한다'는 식으로 51

 

 

뱀발. 

 

1. 책갈피를 해둔지가 오래 지났는데 지금에서야 챙긴다.  하나는 '협동조합의 시대가 오고 있으나 협동의 문화는 아직 멀리 있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결사가 대부분 큰담론 중심인데 소소한 결사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쿱 경영대표의 생각을 이 인터뷰를 책으로 만든 것이 요점을 알기는 좋은 것 같다.

 

2. 골목길 으슥한 곳에  하나둘 쓰레기를 가져다 버린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쓰레미더미로 주민들과 방문객이 홍역을 치룬다.  숱한 공무원과 청소원, 주민들이 혀를 끌끌차며 시 예산과 돈을 들여도 민원도 의식도 해결되지 않는다. 경고문도 반사경도 CCTV도 다 소용없다.  어느 날, 그곳에는 한평 화단이 꾸며진다. 팬시꽃 화단이 앙증맞고 예쁘다. 밤새 어김없이 새댁인 듯한 주민이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이 목격된다.  멈칫 멈칫 다시 돌아온 새댁은 쓰레기를 다시 갖고 돌아선다.

 

3. 모르겠다. 어쩌면 답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곳에 숨어있는지도... ... 갓난아이의 환한 미소를 지켜주고 싶은 그런 방법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정책이나 돈을 퍼부어도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폐쇄회로의 감시망이 아니라, 돈도 에산도 거창한 기획이 아니라도 마음결을 살필 수 있는 곳이나 생명의 여린 호흡에 마음이 동하는지도 모르겠다. 저기멀리 꿍꿍이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다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 너도 나도 살피고 보살펴주는 시공간이 되어본 적은 있는가? 너무 담론도 기획도 커서 문제는 아닐까 오고가는 사람들이 보려고 하는 것은 너무 크기만 한 것 아닐까? 모임에 화단하나 꾸려둘 곳은 없는가? 이놈저놈 마음에 받은 상처만 가져다 두는 것이 아니라, 의무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알뜰살뜰 기대고 나누고 또 보고싶은 방법과 시도는 없는 것인가?

 

5. 얕은 비가 내린다. 오늘도 도서관은 공부하는 이들로 넘친다. 시험과 좀더 나은 삶에 저당잡혀 청춘을 고시서적에 붙박고 있다.  정녕다른 방법은 없는가? 협동조합의 아이디어나 생각도 괜찮아보이기도 한다. 주식회사만 가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급여가 적더라도 주 4시간, 70살까지 일하는 곳이 현실화되는 곳도 좋겠다. 단 소비가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 사회가 조금 다른 것을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좀더 늘어나기 시작하면 좋을텐데하는 맘을 오늘도 내민다. 밤이 깊어진다. 초록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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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이 책에서는 저자가 많은 부분 플루서의 논문에서 출발한다.

 

기획하는 인간과 플루서

 

플루서는 오늘날 개별 과학의 연구단위가 '미립자' 수준에 도달했음을 지적한다. "물리학에서만 현상이 미립자로 분해되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에서는 유전자로, 신경생리학에서는 단위자극으로, 언어학에서는 음소로, 민속학에서는 문화소로, 심리학에서는 행위소로 분해된다." 미디어 이론가 로이 애스콧 Roy Ascott은 "우리 후기생물학적 우주의 빅뱅 big B.A.N.G."에 대해 얘기한다. 여기서 "B.A.N.G"은 Bit, Atom,Neuron,Gene의 약자로, 온늘날 과학의 연구단위를 가리킨다.  54


플루서의 이론은 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존재론과 인간학이다. 주어진 세계가 만들어진 세계로 교체될 때 고전적 의미의 '객체' Object도 사라진다. ..객체가 사라지면 그것의 상관자인 주체Subjekt도 존재할 수 없다. 카를 마르크스는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라 말했다...문제는 아직 없는 세계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대안적 세계를 디자인하는 인간은 더는 객체를 인식하고 변형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앞으로 Pro 던저서 Ject 기술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존재, 즉 '기획Project"이다.  54-55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종언은 '종말론적'이지만 플루서에게 역사의 종언은 그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일 뿐이다..이 모든 변증법적 운동의 끝에서 헤겔은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전지에 도달한다. 반면 플루서는 그 운동의 끝에서 일어나야 할 사건들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 도달한다. 헤겔에게 이 모든 것이 '인식'의 과정이라면 플루서에게 그 모든 것은 '제작'의 과정이다...플루서의 이론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의 현대적 버전(양자론)으로 물구나무세운 뒤, 니체의 미적 형이상학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유형의 유물론이라 할 수 있다.  56-57

 

가상을 '실재-비실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 플라톤주의라면, 니체주의는 그것을 '잠재-현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한다. 이 맥락에서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질 들뢰즈의 철학이다. 그의 사유는 잠재와 현재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두 상태의 사이에는 물론 '현재화'가 있을 것이다. 플루서가 현재화를 기획으로서 인간의 능동적 활동으로 본다면, 들뢰즈는 '주체'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것을 하이데거의 의미에서 '사건'으로 파악한다...들뢰즈의 '현재화'가 예술가에게 '사건으로 엄습하는 것이라면, 플루서의 '현재화'는 기술자가 자신의 기획을 테크놀로지를 통해 실현하는 것에 가깝다 107

 

 

가상적 현실


선사시대의 세계에는 일상과 몽상,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어 있었고 두 세계는 '샤머니즘'이라는 선사적 테크네로 매개되었다. '샤만'이라고 불리는 주술사는 댄스나 약물로 자신과 타인을 환각에 빠뜨렸다. 샤만은 인간이 '대안적 세계'와 접속하는 선사시대의 인터페이스였다...로이 애스콧에 따르면, 우리 역시 "생태공간의 물리적 현전, 영적 공간의 신비적 현전, 가상공간의 원격 현전, 나노공간의 진동 현전"의 중첩된 존재다. 이 현전의 모드 사이를 오가게 해주는 테크놀로지의 '그루'guru들은 디지털 시대의 '샤만'이다.  69


[사진적 데칼코마니 대 회화적 데칼코마니] 2007 , 한성필의 회화적 가상은 슬쩍 현실의 피사체로 행세한다. 이런 전략을 작가는 再現과 구별하여 製現이라 부른다. 78


복제가 반드시 원본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어설프게 베낀 세트가 정작 필름 위에서는 생생한 현실이 되는 것처럼, 때로는 복제가 또다시 복제되는 것을 통해 외려 원본의 현실성으로 상승한다. 한성필은 이 카메라의 마술을 통해 가상과 현실의 존재론적 차이를 무화한다. 81


이명호 - 내 이야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했는데, 거기에는 다른 해석이 딸려 나올 여지가 있었다. 그건 것들이 너무 강하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많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가장 흔하고 평범한 우리의 일상 소재들 가운데 나무라는 대상을 택했다.  88


 


촛불, 나꼼수와 음모론

 

촛불시위 속에서 저개발의 정치, 즉 투쟁의 정치는 과개발의 정치, 즉 놀이의 정치와 하나가 되었다. 서사학 narratology과 유희학 ludology은 앞으로 정치학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다.  147


촛불대중의 욕망은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에 가깝다. 그들의 유토피아는 역사의 끝에 텔로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말하자면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에 '일상'이 정지된 카니발의 현재로 존재한다. 무서운 권력과 지겨운 일상의 효력이 정지되는 크로노토피아 chronotopia , 즉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상도 아닌 제3의 시공에 존재하고 싶은 것이 디지털 대중의 욕망이다. 149

 

사람들은 저희마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대중이 음모론을 믿는 것은 그 음모론을 만드는 데 자기들이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계몽의 패러다임이 실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대중은 사실의 발견, 논리의 제공 등 모든 면에서 음모론 구축에 참여했다. 디지털의 음모론은 '집단지성'의 변종으로 나타난다. 나꼼수는 서사를 향한 디지털 대중의 열망을 음모론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실험이 갖는 의의는 무시할 수 없지만..160

 

한국문화의 특성


구술문화에서는 로고스보다는 뮈토스가 중요하다. 거기에는 객관적 기술보다는 주관적 상상이, 논증의 정합성보다는 플롯의 개연성이, 이성적 비판보다는 정서적 공감이 더 잘 어울린다. 구술문와에서 중요한 것은 사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한 사태를 영웅적 스토리와 압축 변환하는 능력이다. 153


디지컬 시대의 인간은 "선형적 문자로 쓰인 비판으로부터 물러나 그것을 분석한다.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에 힘입어 그 분석을 통해 얻은 합성 이미지를 투사한다." 사실 문자문화의 지식인들은 현실을 '비판'만 할 뿐 새로운 현실을 '기획'하지는 못했다. 154


서구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비교적 탄탄한 문자문화를 형성해왔다면 한국에서는 문자문화의 역사가 매우 짧았다. 공동체적 구술문화의 전통이 강고하다는 점이 인터넷이나 sns 위에 가상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것이 문자문화의 비판적 이성으로 뒷받침되지 못할 때 그 발달한 테크놀로지를 들고 1차 구술문화로 함몰하기 쉽다.  155

 

현실로서 일베와 심리적 특성

 

일베의 병신대결 - 병신 문화에는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그 안에는 중세의 카니발이나 공옥진의 병신춤 비슷한 '해방적' 계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병신"이라는 말에는 아직 우리가 신분과 계급으로 나뉘지 않았던 우주적 평등의 상태로 돌아가고픈 원초적 욕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해방적 계기는 곧바로 부정당한다. 여성과 외국인과 호남인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공격함으로써 일베는 차별을 폐지하는 대신 거기에 동참한다...현실에서는 차별의 대상이지만 적어도 일베에서 그들은 차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165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위치한 계층은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배제'를 당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다수에 속해야 한다. 이 원시적 생존본능에서 소환되는 것이 바로 사회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안전한 가치, 즉 애국이다. 주류에서 배제당한 그들은 자신도 주류에 속해 누군가를 배제해보기를 절실히 원한다. '주류'에 속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을 심리적으로 국가와 동일시해놓고 이제 거기서 배제할 누군가를 찾는다. 그것이 '종북세력'이다. 배제의 공포에서 비롯된 사이코드라마는 여기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붉은 무리에 맞서 싸운다는 장엄한 애국서사로 둔갑한다. '애국서사'는 이제 온라인게임이 된다.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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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6-1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독서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리면,

지금이 만약 한일합방 초기라면, 그래서 친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 그에게 (정의, 도덕, 아니면 현실적 이익을 포함하여) 어떤 시각/방식으로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 고민 중입니다.

'배제'를 당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다수에 속해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친일을 했다면...

여울 2014-06-10 17:57   좋아요 0 | URL
친일했다는 것이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더군요. 친일이 도움주지 않았느냐 되묻는 학자나 집안의 친인척으로인해 부를 합리화시키는 친일후손들이 많지만 말입니다. 부친과 말씀을 나눠본 적이 있는데 그 피해를 실감한 분들에게 그 아픔의 농도는 옅어지지 않더군요. 객관화될 수없어요. 피해자에겐 ᆞ ᆞ친자본이란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양극화와 삶에 얼마나 아픈지 공감할 수 있어야해요. 마름이 얼마나 많아서인지 인지조차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섯시의 출근 지하철이 만원이란 사실에 공감해야 되지 않을까요.

글샘 2014-06-1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방 후 친일파를 천 명만 죽였어도...

지금쯤 친일파 후손들은 벌벌 기었을 겁니다.

이승만이가 친일파를 살려주고, 외려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개박살 낸데서 첫단추가 엉터리로 꿰인 거죠.

잘못을 했으면, 총살을 당한다는 걸 이 백성들은 겪어보질 못한 거죠.

여울 2014-06-10 17:59   좋아요 0 | URL

네, ㅠ.ㅠ

살려준 이들의 혼맥이 정말 지금 현실을 여실히 보고 느끼게 만들죠.

아~ 방법이 없을까요.....

노이에자이트 2014-06-1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도 차별받는 소수자이면서 차별의 주체가 됨으로써 자신의 한을 풀려는 이들이 있죠.그게 소수자들끼리 연대하는 것보다 더 손쉬운 해결책인 것 같지만 결국 차별의 종류가 늘어날 뿐입니다.

여울 2014-06-11 17:39   좋아요 0 | URL

그래요. 그것이 눈에 보이는 방법이고 손쉬운 해결책이죠. 이해하는 방법도 저자들은 원래 그래하는 것도 손쉬운 것 같아요. 이면을 들여다보고, 이면의 논리나 습속이 회자가 되면 더 좋을텐데. 점점 늘어나는 차별과 바뀌지 않는 판단들이 애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