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이 책에서는 저자가 많은 부분 플루서의 논문에서 출발한다.
기획하는 인간과 플루서
플루서는 오늘날 개별 과학의 연구단위가 '미립자' 수준에 도달했음을 지적한다. "물리학에서만 현상이 미립자로 분해되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에서는 유전자로, 신경생리학에서는 단위자극으로, 언어학에서는 음소로, 민속학에서는 문화소로, 심리학에서는 행위소로 분해된다." 미디어 이론가 로이 애스콧 Roy Ascott은 "우리 후기생물학적 우주의 빅뱅 big B.A.N.G."에 대해 얘기한다. 여기서 "B.A.N.G"은 Bit, Atom,Neuron,Gene의 약자로, 온늘날 과학의 연구단위를 가리킨다. 54
플루서의 이론은 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존재론과 인간학이다. 주어진 세계가 만들어진 세계로 교체될 때 고전적 의미의 '객체' Object도 사라진다. ..객체가 사라지면 그것의 상관자인 주체Subjekt도 존재할 수 없다. 카를 마르크스는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라 말했다...문제는 아직 없는 세계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대안적 세계를 디자인하는 인간은 더는 객체를 인식하고 변형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앞으로 Pro 던저서 Ject 기술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존재, 즉 '기획Project"이다. 54-55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종언은 '종말론적'이지만 플루서에게 역사의 종언은 그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일 뿐이다..이 모든 변증법적 운동의 끝에서 헤겔은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전지에 도달한다. 반면 플루서는 그 운동의 끝에서 일어나야 할 사건들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 도달한다. 헤겔에게 이 모든 것이 '인식'의 과정이라면 플루서에게 그 모든 것은 '제작'의 과정이다...플루서의 이론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의 현대적 버전(양자론)으로 물구나무세운 뒤, 니체의 미적 형이상학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유형의 유물론이라 할 수 있다. 56-57
가상을 '실재-비실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 플라톤주의라면, 니체주의는 그것을 '잠재-현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한다. 이 맥락에서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질 들뢰즈의 철학이다. 그의 사유는 잠재와 현재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두 상태의 사이에는 물론 '현재화'가 있을 것이다. 플루서가 현재화를 기획으로서 인간의 능동적 활동으로 본다면, 들뢰즈는 '주체'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것을 하이데거의 의미에서 '사건'으로 파악한다...들뢰즈의 '현재화'가 예술가에게 '사건으로 엄습하는 것이라면, 플루서의 '현재화'는 기술자가 자신의 기획을 테크놀로지를 통해 실현하는 것에 가깝다 107
가상적 현실
선사시대의 세계에는 일상과 몽상,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어 있었고 두 세계는 '샤머니즘'이라는 선사적 테크네로 매개되었다. '샤만'이라고 불리는 주술사는 댄스나 약물로 자신과 타인을 환각에 빠뜨렸다. 샤만은 인간이 '대안적 세계'와 접속하는 선사시대의 인터페이스였다...로이 애스콧에 따르면, 우리 역시 "생태공간의 물리적 현전, 영적 공간의 신비적 현전, 가상공간의 원격 현전, 나노공간의 진동 현전"의 중첩된 존재다. 이 현전의 모드 사이를 오가게 해주는 테크놀로지의 '그루'guru들은 디지털 시대의 '샤만'이다. 69
[사진적 데칼코마니 대 회화적 데칼코마니] 2007 , 한성필의 회화적 가상은 슬쩍 현실의 피사체로 행세한다. 이런 전략을 작가는 再現과 구별하여 製現이라 부른다. 78
복제가 반드시 원본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어설프게 베낀 세트가 정작 필름 위에서는 생생한 현실이 되는 것처럼, 때로는 복제가 또다시 복제되는 것을 통해 외려 원본의 현실성으로 상승한다. 한성필은 이 카메라의 마술을 통해 가상과 현실의 존재론적 차이를 무화한다. 81
이명호 - 내 이야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했는데, 거기에는 다른 해석이 딸려 나올 여지가 있었다. 그건 것들이 너무 강하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많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가장 흔하고 평범한 우리의 일상 소재들 가운데 나무라는 대상을 택했다. 88
촛불, 나꼼수와 음모론
촛불시위 속에서 저개발의 정치, 즉 투쟁의 정치는 과개발의 정치, 즉 놀이의 정치와 하나가 되었다. 서사학 narratology과 유희학 ludology은 앞으로 정치학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다. 147
촛불대중의 욕망은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에 가깝다. 그들의 유토피아는 역사의 끝에 텔로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말하자면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에 '일상'이 정지된 카니발의 현재로 존재한다. 무서운 권력과 지겨운 일상의 효력이 정지되는 크로노토피아 chronotopia , 즉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상도 아닌 제3의 시공에 존재하고 싶은 것이 디지털 대중의 욕망이다. 149
사람들은 저희마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대중이 음모론을 믿는 것은 그 음모론을 만드는 데 자기들이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계몽의 패러다임이 실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대중은 사실의 발견, 논리의 제공 등 모든 면에서 음모론 구축에 참여했다. 디지털의 음모론은 '집단지성'의 변종으로 나타난다. 나꼼수는 서사를 향한 디지털 대중의 열망을 음모론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실험이 갖는 의의는 무시할 수 없지만..160
한국문화의 특성
구술문화에서는 로고스보다는 뮈토스가 중요하다. 거기에는 객관적 기술보다는 주관적 상상이, 논증의 정합성보다는 플롯의 개연성이, 이성적 비판보다는 정서적 공감이 더 잘 어울린다. 구술문와에서 중요한 것은 사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한 사태를 영웅적 스토리와 압축 변환하는 능력이다. 153
디지컬 시대의 인간은 "선형적 문자로 쓰인 비판으로부터 물러나 그것을 분석한다.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에 힘입어 그 분석을 통해 얻은 합성 이미지를 투사한다." 사실 문자문화의 지식인들은 현실을 '비판'만 할 뿐 새로운 현실을 '기획'하지는 못했다. 154
서구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비교적 탄탄한 문자문화를 형성해왔다면 한국에서는 문자문화의 역사가 매우 짧았다. 공동체적 구술문화의 전통이 강고하다는 점이 인터넷이나 sns 위에 가상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것이 문자문화의 비판적 이성으로 뒷받침되지 못할 때 그 발달한 테크놀로지를 들고 1차 구술문화로 함몰하기 쉽다. 155
현실로서 일베와 심리적 특성
일베의 병신대결 - 병신 문화에는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그 안에는 중세의 카니발이나 공옥진의 병신춤 비슷한 '해방적' 계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병신"이라는 말에는 아직 우리가 신분과 계급으로 나뉘지 않았던 우주적 평등의 상태로 돌아가고픈 원초적 욕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해방적 계기는 곧바로 부정당한다. 여성과 외국인과 호남인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공격함으로써 일베는 차별을 폐지하는 대신 거기에 동참한다...현실에서는 차별의 대상이지만 적어도 일베에서 그들은 차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165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위치한 계층은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배제'를 당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다수에 속해야 한다. 이 원시적 생존본능에서 소환되는 것이 바로 사회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안전한 가치, 즉 애국이다. 주류에서 배제당한 그들은 자신도 주류에 속해 누군가를 배제해보기를 절실히 원한다. '주류'에 속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을 심리적으로 국가와 동일시해놓고 이제 거기서 배제할 누군가를 찾는다. 그것이 '종북세력'이다. 배제의 공포에서 비롯된 사이코드라마는 여기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붉은 무리에 맞서 싸운다는 장엄한 애국서사로 둔갑한다. '애국서사'는 이제 온라인게임이 된다. 1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