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발.

 

1. '다 꽃이다' ㅡ 피거나 팔리기위해 '눈과 땀'을 닮아 아름다워졌다. 시장엘 가면 봄을 다시 만날 수 있단 생각이 스몄다. 더 아름다워져야겠다. 팔리거나 피기도 하기위해 ᆞᆞᆞ

 

2. ktx 마중겸 나와 *도 시장엘 들러 국밥 요기를 하고 거닐다보니 투박한 말투며, 손님의 마음끝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안간힘이 읽힌다. 그렇게 안간힘이 얹혀 다음에는 발길을 하고 다시 오리라는 것도 그들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한땀한땀 수놓은 좌판과 캘리그라프에는 간절함이 배여있다. 아름다움만큼이나... ...남은 시간 다음날 인산인해를 이룬 벚꽃길을 미리 가본다. 햇살이 비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비가 후두둑 장대비처럼 내리꽂는다.  봄이되 봄이 아니다.

 

3.  묘목과 꽃이 사람들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장터에는 열에 하나가 꽃과 나무다. 마음마저 풍요로워졌다. 시장 한 귀퉁이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생각했다. 벗과 낮술하며 이야기나눌 딱 좋은 곳이라고 말이다. 첫 탐방에 참 다른 묘미를 느꼈다. 바삐 움직여 딸과 해후하고 한달 전에 온 북삼식당의 돼지두루치기를 먹었다. 고기가 떨어졌다. 손님은 줄서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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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4-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날...참 정감있는 단어예요.
오늘 이곳 장입니다. 점심에 해장국이랑 핫도그 먹을거예요^^

여울 2015-04-07 10:24   좋아요 0 | URL

해장~ 확 당기네요^^

장이란 말만 들어도 설레네요. 어디든 가고싶네요. 따끈한 국물에...
 

 

 주차장에 흩어진 동백꽃잎들과 동백잎이 마음에 걸렸다

 

 몇 걸음 더 옮기자

 

 벚꽃잎들이

 

 어젯밤 바람이 몰려간 흔적을 말해준다.

 

 

 아침에

 

 길가 벚꽃길은 밝은 기운이 쭉 가라앉았다.

 

 

 그렇게 내린 채도와 명도만큼

 연두빛이

 

 여기저기 걸려 오른다.  꽃잎은 흩어져내리는데... ...

 

 

 뱀발.  꽃잎들이 피어오를때 함께 그려주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벌써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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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과 기술 2장 도구와 대상 프로메테우스인가 오르페우스인가 - 제우스가 묶어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아버린다.

 

예술을 한쪽으로 몰아붙이거나 단순히 실제적 필요의 하수인으로-지금 예술이 선전에 이용되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하는 문명은 실제로 인간 본성의 본질을 무시하거나 격하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적 상징의 과소평가와 인간의 주관적 세계로부터의 퇴각은 서로 손을 맞잡은 채 행진하고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조작된 마음의 현대인이 선호하는 세계란 감정과 정서가 의도적으로 제거된 세계입니다. 즉 애매하고 내면적으로 보이거나, 수량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는 세계입니다. 또 목적과 의도가 아니라 수단과 결과에만 몰두하는 비인격적인 세계입니다.” 73

 

역사를 통해 16세기까지 기술적 수단은 매우 느리게 발전했습니다. 운송 수단으로서의 수레가 발명되기 이전에 이집트와 페루에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문명이 발생했습니다. 만일 인간이 뛰어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었다면 이러한 기술의 장기적 후진성은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오로지 인간의 상징적 기능이 고도로 성숙한 뒤에야 비로소 인간은 그의 기술적 능력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인간은 생존을 위한 예비적 행동들에 그 삶의 대부분을 바쳐야 한다는 필연성에 의해, 타락이 아니라 기만당한 느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79

 

질서와 힘에 대한 인간의 요구는 그를 기술과 대상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는 자유로운 활동, 자율적인 창조, 의미 있는 표현에 대한 요구가 인간을 예술과 상징으로 향하게 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기술적 성취가 그의 생존과 발전에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들이 역사 시대를 걸쳐, 인간의 다른 기능들을 희생하여 달성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84

 

기계화의 습관, 정해진 과정과 엄격한 훈련에 대한 굴종, 비유기적인 것과, 유기적이거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왜곡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익숙한 방식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자발성은 엄청난 저항 없이는 이룩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그의 모든 주관적이고 질적인 삶을 기꺼이 내던졌음이 판명된 것은 우리 시대에 와서야 가능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그 순수한 형태에서 놀이와 허구, 공상과 상징, 인격의 다른 측면에서 나오는 가치를 향한 인간의 뿌리 깊은 성향에 의해 억제됐습니다.” 85-86

 

상징에 대한 철저한 집착, 내면세계로의 완전한 퇴각은 완전한 형식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 발전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90

 

 

2. 논리를 갖는다는 것 - 설명과 설득을 위해서는 손에 잡히는 스토리와 구어체의 표현이 녹아 있어야 한다. 낯선 말로는 설득할 수 없다. 핵심적인 꼭지가 세가지 정도로 서로 맞물리고 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론을 적절하게 되짚는다.

 

3. 다시 읽는 맑스주의 사상사 알랭 바디우와 자크 랑시에르 편을 읽다. 조금씩 읽어내던 단편들과 흔적들이 제법 무게를 가질 수 있겠다 싶다.

 

4. 면담 요청이 들어와 찾아가 상담을 한다. 생활의 아픔과 푸념, 피해의식이 서로 뒤엉키고 섞여 있다. 이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버틴 불면의 밤들과 틀과 구조에 밀려나면서 겪은 것들이 몰려서 비집고 나온다. 주장도 요구도 모두 섞여있다. 듣고 듣다.

 

5. 부산스럽게 다녀도 일들은 깔끔하지 않다. 몸으로 챙기고 시행착오만큼 배우게 되는 것이 맞다 싶다. 그래도 진도 나가는 맛이 있다.  노트묵에 파일들을 이동드라이브로 옮기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세팅하고 일도 마음도 차분해지도록 한다.  시원하다.  다음주부터는 몸도 마음도 정신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한 동료는 작년 얘기했던 기억을 더듬어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하고싶은 것이 있어도 방법도, 다가서는 기술 하고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을 새삼느끼게 된다. 멍석은 깔아주기까지 여러 노고가 필요하다. 그 다음은 다음 일이다. 한 계단이라도 올라서는 일이 먼저다.  일의 맥락은 머리부터 잡는 것인지도..그래서 시작이 반이라고 한 것인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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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과 기술의 1강 예술과 상징 - 서론을 읽은 뒤, 며칠이 지난 새벽 책이 손 끝에 들어온다. 다시 살펴보다

 

 

"3세기 반 전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을 현재 상태에서 구제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과학 지식의 발전과 기계의 바명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신앙심이라는 속죄의 제스처로, 종교와 철학과 예술에 등을 돌리고새로운 기계의 발전에 인류 진보를 위한 모든 희망을 걸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삶의 지침에 대한 글을 끝마친 후가 아니라,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얼음 사용에 대한 최초의 실험들 중 하나에 몰두하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뉴턴, 패러데ㅣ, 와트와 그 아류들은, 어렵게 얻은 물질세계에 대한 통제가 20세기에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베이컨은 기계의 인간화가 인간성의 기계화라는 역설을 낳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40-41

 

2. 맑스주의 사상사 포스트 알튀세르 주의자들편(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흩틀어져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지식이 파편들을 조금은 추수려놓아야 할 듯 싶다. 주체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는 편, 발리바르를 챙겨본다. - 주체는 발견되거나 발명, 만들어져야 한다. 모순을 자양분으로...그래야 그만큼이라도 세상은 변한다.

 

" 사람들이 데카르트에게서 존재하나고 믿고 있는 그러한 '주체' 개념은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그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율성 혹은 자유는 '예속존재' 혹은 '신민'의 자유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역설이다. 따라서 1789년 이전에,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전에 주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민이 주체이후에 오는 것이라면, 이 시민 이전의 주체는 '예속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민은 "[예속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주체 이후에 오는 비-주체이며, 그것의 구성과 승인은 (원칙적으로) 주체의 예속에 종지부를 찍는다." 344-345

 

 

3. 5장을 다시 살펴본다. 작가의 시선으로...

 

4. 벚꽃이 만개했다. 아니 모든 꽃들이 한몫에 피어버렸다. 철쭉도 무르춤할 뿐 고개내민 녀석은 벌써 짙은 색을 뿜고 있다. 능수벚꽃을 찾다. 비소식에도 비는 없고 사진에 불쑥 달이 구름사이로 비쳐 걸려있다. 벚꽃숭어리들이 여기저기 끝이 없이 핀다. 내일을 잊은 듯 한껏 부풀려있다.

 

5. 윤여일샘의 상상  002호 원고를 본다. 자신의 지적 탐색과 글쓰기를 되짚으며 쓴 소회가 인상깊다.

 

논문을 쓰며 생각했다. 논문이란 물을 꺼내고 답에 이르는 글쓰기다. 하지만 막상 써보니그 과정은 거꾸로 진행되었다. 내가 먼저 상정해둔 답이 있고, 물음을 그 답에 끼워 맞추게 되었다. 그러면 답할 수 있는 물음만을 꺼내게 된다. 답보다도 본질적일지 모른 답할 수 없는 물음은 자제하게 된다.....때로는 답보다도 물음 쪽이 중요하고 오래 살아남지 않던가. 나는 시대의 과제와 대면하며 답을 찾아나선 학자들을 존경하지만, 과격한 물음을 들이밀어 시대의 정신에 파열을 낸 사상가들도 사랑한다.....기워놓은 문장들은 논문을 들고 흔들면 제각각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말의 시체더미였다. 더욱이 일 년 가까이는 논문 생각이었는데 끝내놓고 돌아보니 어느 문장 하나 내 삶과 닿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답은 없었다. 하지만 방향은 어렴풋이 알았다. 이론으로 무장하거나 답을 향해 체계적으로 짜인 글 이전에 자신의 물음을 속이지 않는 글. 답을 내야한다는 조바심이 물음을 향한 절실함을 내리누르지 않는 글. 지식의 언어로 구축된 세계와 피부감각의 세계 사이를 가로지르는 단층을 주시하는 글. 사고의 힘이 부족해 비약을 거듭하고는 섣부른 결론에 내맡기는 게 아니라 결론에 이르지 못할지언정 능력이 닿는 데까지 사고의 절차를 구체화하는 글. 방향은 얼추 정해졌다.”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한국 동아시아 담론이 동아시화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실적 조건으로부터 원리성을 발굴해내는 동시에 그것이 타자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가다듬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보편성의 층위, 번역의 지평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게 번역의 가치를 지닌 사상이라면, 그것이 출현한 사회에서 쓰임새를 가질 뿐 아니라 다른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야 없겠지만 다른 사회를 해석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번역의 노력과 시련 속에서야 한국 동아시아 담론은 내수용 담론에서 벗어나 동아시아화될 수 있을 것이다.”

 

6. 개인의 일상과 글쓰기에 대한 녹아있는 이력을 탐하고 기록했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편집자로서 등등 정해진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관점을 교차시키면서 독해하는 그의 모습이 다시 읽힌다. 그런면에서 역사가 묻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발굴할 수 있으며 유산화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지금여기는 늘 '미분적 잠재성'이기도 하다. 읽다가 서동진교수의 두 제곱의 사유가 겹친다. 정치와 경제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면서 닿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고, 결과물을 내야하고 결과물을 쫓는 일상과 과업들은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놓쳐서 정작 똑 같은 대답만 너저분하게 있는 것은 아닐까? 화두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객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란 주관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주객관의 이중적 시선, 방법으로서의 OO, 생각을 캐는 광부 모두 막장에서 다른 사유와 삶을 캐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7. 어쩌면 우리는 전체를 보려는 시도를 외면하고, 짧은 시간에 사로잡혀 늘 단편적인 진리만 쫓는 것은 아닐까? 진리는 살지 않고 늘 도망다니듯이 피해가는 것은 아닐까? 전체를 보려는 작은 시도와 노력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에도 우리는 늘 부분만 되돌이표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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