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하지 마라. 폭로는 한 번으로 족한 것이다.

 

 

 '글의 우물' - 난 그곳에서 노오란 민들레와 함께 서성인다. 서성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래도 냉정과 이성을 되찾고 싶기도 했다. 서성이면 서성일수록 우울과 낙담과 절망은 남의 것이 아니었다. 평을 해내는 것보다 직면하기가 더 어렵고 곤란하다는 사실만이 곧추 나를 쳐다본다. 글의 우물에 꽃잎이 서린다. 우박처럼 내렸다. 동심원처럼 퍼지는 것은 무엇일까. 객관과 이성이 없는 나는 마음을 쳐다본다. 어쩔 줄 모를 수밖에....소장학자의 마음이 일렁인다. 돌아봐야 하는가. 아직인가. 글쎄. 어쩌면 안다는 것이 자만일지도...손목에는 4*16의 구슬이 맴돈다.

 

 

 

볕뉘. 저자는 촛불부터 일련의 흐름을 되묻고 있다. 국가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접어라.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다. 주체를 다시 호명하고 불러세워야 한다. 그 주체는 노동자로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실업자를 다 포함하는 말이다. 노동권을 불러들여라. 자본론은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실업에 대한 글로 다시 읽어야 한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을 인용한다. 모두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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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2015-04-1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머니에 넣기 좋은 크기라..한동안 넣고 다니며 읽은 기억이 나네요..

여울 2015-04-1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시보기 좋은 책이기도 하구요^^
 

 

 

1. 책장을 들이고 가져온 책들을 넣는다. 패킹을 챙겨 단골이 된 마트에서 물어보니 풍년산 압력밥솥만 있다고 한다. 주방전문점이 있으니 근처 시장있는 곳을 권한다. 그곳 역시 어디 것인지 알아야 되고 제조사가 맞지 않으면 김이 새서 안된다는 경험인지 몇 곳을 보여주더니 마트를 권한다. 주걱과 뒤집개를 사고 마트에 들렀더니 가격이 1/2에서 1/3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울금막걸리와 고추를 챙겼다.

 

2.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을 가늠해서 밥을 하는데 어제 패킹이 문제가 아니라 국을 끓이는 불이 좁은 가스불에 번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두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다) 패킹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불을 조절해서 밥을 하였다. 물도, 불도 세기와 시간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상대로 밥은 타지 않고 잘 되었다. 국거리 고기가 남아 궁리를 하다가 김치찌개를 하기로 하다. 그 시간에 계란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유통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3개로 골고루 섞고 양파를 다지고, 양념김을 잘게 썰어 넣고 충분히 저어둔다.(서두르면 안된다 충분히 꼼꼼해야 한다는 경험이 지금에서야 밟는다.) 계란말이를 할 것이냐 생각하다가 적절히 익은 다음 뒤집어 익힌다. 그리고  가지런히 준비하니 제법 맛도 모양도 괜찮다. 심심한 김치찌개도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먼저내고 꼬다리 김치부위와 총총 썰어 준비한 것을 넣는다. 그리고 마늘과 팽이버섯을 반을 씻어 넣었다.

 

3. 음식마다 상품마다 비닐과 종이다. 잘 분리해서 베란다에 잘 분리수거해둔다.

 

4. 혼자 해내어야 할 일이니 설겆이도 식기 전에 해두고 정리를  해본다.  손길이 간다는 것, 간 손길이 느껴진다는 것, 작은 공간이지만 살림이란 의미를 알 듯하다. 살림살이는 손길가는 만큼 마음가는 만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매듭을 배우고 추체험하고 몸에 배이지 않는다는 일를 다시 느끼니, 그동안 나를 거쳐간 일들, 일에 푹 빠져서 한매듭을 겪어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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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4-15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의 여백이 참 편안하게 느껴지네요.
대충 어떤 책인지 짐작이 가요.
왼쪽 위에서 두번째 칸은 얇은 품이 시집이겠죠? 살림 공개하시는 김에 그림그릴때 쓰시는 색연필도 궁금해요~^^
근데 저녁밥 양이 저보다 더 조금이네요~?@@

2015-04-16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간 ㅡ 이응로의 이사란 그림은 아니더라도 명이 다해가는 뭉게구름차에 바리바리 챙겨 와 닦고 넣고, 부족한 살림을 채우러 봐둔 시장엘 간다. 요리팬 둘,집게, 휴지통, 빗자루와 쓰레받이, 무늬고운 찬그릇 둘, 세탁세제, 그리고 막걸리 주전자와 잔 여섯을 사만원에 퉁!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팬에 부치고, 양은주전자에 막걸리를 채우고 세탁기를 돌리고 방을 치우며 세간을 점검했다.

 

 

이상이 없다.

 

덤으로 온 꽃잎 두장, 곧 다가올 책장을 기다리는 책들, 마음이 서성이는 빈 술잔 다섯 + 알파, 그리고 여섯해 같이있던 평란이 오고, 봄꽃과 초록을 채우고, 바다와 휴식, 그리고 벗이 그리운 이들 마음도 오고가게 하면

...

 

시골 인심 사납지 않게 세간살이는 준비가 된 듯 ᆞᆞᆞ

 

 

뱀발. 

 

1. 이러고 난지 하루가 되지 않아, 밥솥의 패킹을 태워 먹었다. 호들갑에 대한 응분의 댓가라고나 할까 ㅜㅜ. 하지만 어제 끓인 단배추국은 지금도 감칠 맛이 배인다. ㅎㅎ. 조금 일찍 일어나고, 조금 늦은 저녁이라도 배고픔을 참고 요리를 해본다. 1인분, 아니 2인분까지의 경계를 모르겠다. 근처마트에서 조금씩 사지만 여지없이 사먹는 것보다 돈이 더 들게 마련이고, 자칫 구입한 재료는 처지곤란일 경우가 많기 마련이니 말이다. 가급적 적게 구입하려고 해도 마땅하지 않다. 애호박과 팽이버섯, 그만 단배추 한단에 곶혀 국을 끓이고 겉절이까지는 했는데 오늘 저녁, 그리고 남은 찬거리가 걱정이다.

 

2. 패킹도 사야하고 2인분으로 타협할 것인지, 아니면 1인분의 경계를 밀고 갈 것인지, 그보다 중요한 간단한 조리의 재현성에 노력할 것인지...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을 몸에 좀더 붙여야겠다.

 

3. 근처 작은 시장 생각나는 밥집의 한상을 차려볼날은 언제일까. 캠핑하는 기분으로 당분간 살기로 했다. 요리근력이 붙을 때까지 매식보다 돈이 더 드는 한이 있더라도... 소홀하게 한끼를 대하고 싶지는 않은 바램이다.  부지런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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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14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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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 technics이라는 영어 단어의 경우 최근에 사용된 것으로, 아직도 사람드은 종종 프랑스어처럼 ‘technique’라고 쓰고 거기에 매우 상이한 뜻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통 ‘technology’라는 단어를 실용적 기술 분야와 그 작용 및 생산품의 체계적 연구라는 두 가지를 말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저는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기술이란 말을, 인간이 작업 과정을 강력하게 조직화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연의 힘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활동의 한 분야라는 의미로만 사용하겠습니다.

 

2. 예술을 기술에서 분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예술은 처음부터 인간의 영역입니다. 즉 예술의 목적은 그것과 결부될 수 있는 다양한 부수적인 기술적 기능과는 무관하게 인간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고, 따라서 여러 가지의 감정, 정서, 태도, 가치를 특정한 개인이나 특정한 문화에서 생겨나는 특별한 개별적 형식 속에서, 그 힘과 뜻을 모두 다른 개인과 문화에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감과 감정 이입은 예술의 특유한 방식입니다. 타인의 내면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거기에 동화되는 감정입니다. 예술 작품은 경험이라는 내면의 깊은 수원을 누구든지 나누는 데서 나오는, 눈에 보이고 마실 수 있는 샘입니다. 예술은 인간이 단순히 동물로 살아남기에 필요한 조건을 넘어서서, 스스로를 위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요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요구란, 인간의 손아귀에서 너무나 빨리 벗어나 버리거나, 무의식 속으로 너무나도 깊이 침전될 수 있는 그 경험의 소중한 부분들을 더욱 영속적인 형태로 만들고 강렬하게 하며 투사하고자 하는 요구입니다. 그 기원과 목적으로 인해 예술의 의미는 과학과 기술의 조작적 의미와는 다른 질서의 것이 됩니다. 즉 예술은 외부적인 수단과 결과가 아니라 내부적인 변모와 관련되며, 이러한 내부적 변모가 일어나지 않는 한, 예술 작품은 피상적이거나 죽은 것이 되고 맙니다.

 

3. 상징의 역할을 인식하게 되면, 세계를 주관화하고 개인화할 때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학과 기술은 삶과 예술 모두의 소재인 정서, 감정, 욕망, 동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인격 부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4. 의심할 나위 없이 예술의 3단계들은 일종의 성적 사랑의 패러다임입니다. 즉 성적 사랑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발전은 유년기나 청소년기에는 조숙한 발달 정지나 고착이라는 위험을 가집니다. 또한 방종함과 무모한 쾌락으로부터, 자손의 생산과 양육을 포함한 모든 의무가 따르는 충실한 성적 결합의 완전한 책임으로 이행할 때와 같은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힘의 기술과 기술의 힘을 무모하고 과도하게 발전시켰기 때문에 이러한 발달 정지와 거부의 표지를 많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술이 많이 손상되어 왔습니다. 전문가가 많아지면서 지나친 노동의 분화는 전인에 대한 필요성에 냉담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틀에 박힌 삶으 그렇게 발전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살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경멸의 조소를 띠며 예술가의 비밀로부터 등을 돌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실용적인 것에만 사로잡힌 예술가가 단순한 자기 과시만으로 주목을 받고자 하거나, 최악의 경우 남에게 폐를 끼쳐 하찮은 주목을 받고자 할 때 예술가를 경멸합니다.

 

5. 인간의 꿈과 희망, 정서와 감정은 인간 삶의 본질적 부분이지만, 확실히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과정과 기능에 대한 균형감각있는 존중은 인간에게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주술적 의사소통에 의해 자연의 힘을 처리하거나, 사물의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고자 하면, 자신의 분노나 노여움을 충분히 극복하여 물이 새는 구멍을 막거나 잘못 짠 광주리를 수선해야 했을 것입니다. 사물에 대한 이러한 겸손, 기능에 대한 존중은 인간의 지적 발전과 정서적 발전 모두에 필수적이었습니다. ..사물의 비인격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성공적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심지어 그 자신과 타협하게 만든 토대입니다. 문화가 계승되고 인격이 발달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인간도 자연의 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81

 

6. 어떤 종류의 질서도 인간에게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즉 인간을 불안과 공포에 젖게 하는 것은 변하기 쉽고 예상할 수 없으며 제멋대로인 것들, 달리 말하면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되거나, 자신의 창조력이 불충분한 것으로 보이거나, 상징성이 혼란과 모순을 낳을 때면 언제나 맹목적인 운명에서 도피처를 발견하거나, 그 자신의 주관적 관심사를 직접적으로 포함하지 않는 그러한 과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 정신 의학자들은 최근 옷감 짜기와 같은 기계적 과정이 순수한 치유적 가치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옷감 짜기느 거의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전형적인 기계적 질서로 잔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날줄 위에 씨줄을 던지는 것에는 최소한의 자유만이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작업의 질서정영한 과정을 따르는 것은, 기술이 린류에게 부여한 적지 않은 은혜였습니다.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리석은 믿음 없이 자연의 힘과 재됴들을 다루려는 자발성과 함게, 비인격적 질서(그중에서도 규칙성과 반복성)와 정밀한 표준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83

 

7. 수공업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예술가와 기술자는 그들의 역할이 동일인에게 맡겨졌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행복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가정에 의한면 예술가는 제작과 작업이라고 하는 기술적 조건을 위해 스스로를 훈련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동료들과 함께 농담하고 노래하는 기회를 갖는 직업적 동료 의식과 작업 수행시의 단결과 상호 협조입니다. 둘째는 기술 과정의 최후 단계에 대한 애정어린 배려를 지속하고 능률적이고 실용적인 형식을 의미 있는 상징적 형식으로 변형시키는 특권입니다. 이러한 여분의 노력, 여분의 사랑과 미적 기량이 발휘되면 어떤 건축물도 보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징 자체가 admlal하게 될 때까지 사람들은, 인간의 체취를 갖는 예술 작품을 존중하고 가능한 한 부패와 파괴를 막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87-88

 

8. 모든 삶이 의존하는 역동적 균형을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예술과 기술의 균형에서보다 진실이었던 경우는 없습니다. 심미적 상징주의는 오랫동안 지식이나 힘에 이르는 지름길이거나 그 적절한 대용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심미적 상징주의를 그 방법에 의해 적절하게 창조되거나 형성될 수 있었던 것 시와 예술 작품, 수학과 같은 개념적 지식, 또는 법과 관습 같은 패턴 에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적 환경과 자연의 힘에도 적용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비를 부르거나 출산을 증대하기 위해 어리석게도 예술과 의례에 호소했습니다 그것들과 균형을 이루는 기술에 대한 흥미와 방법이 없었다면, 그런 상징이 점차 현실로 대체되고 결국은 인간으로부터 물리적 생존을 위한 능력을 빼앗아 사람들을 미치게 했을 것입니다. 생존의 어떤 지점에서 인간은 반드시 그의 내면세계를 떠나 외부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반드시 그의 내면세계를 떠나 외부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반드시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돌아가야 합니다. 도구는 객관성을, 또는 제 옛 스승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했던 사실성을 낳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객관성은 건정한 정신의 조건입니다. 89

 

9. 14세기 서유럽은 기독교 교회에 의해 촉진된 교리, 철학, 의례, 일상의 행동 양식 안에 당당당한 상징적 구조를 창조했습니다 중세 문명은 그 약점 때문이 아니라 그 성취에 의해 정복됐습니다. 상징화에 대한 이러한 노력이 너무나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실과 사건을 기독교의 진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는 습관이 너무나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내면의의미의 과다함이 모든 자연적 사건과 모든 단순한 행동을 덮어 버렸습니다. 즉 어떤 것도 그 자체가 되지 못하고 그 자체의 권리로 존재하지 못해, 항상 궁극의 본거지를 다른 세계에 둔 무언가를 위한 판단 기준에 그치게 됐습니다. 정신의 가장 단순한 작용마저도 완전히 쓸모없는 종류의 상징적인 장황한 말들에 의해 어지러워졌습니다. 따라서 분별력을 갖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질서와 추상인 기계적 질서, 숫자, 규칙성, 훈련 속에서 도피처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서양인은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그가 찾는 대상을 잊어버렸습니다. 성가시게만 하는 다른 세계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95

 

10. 내면생활의 제어할 수 없는 면을 안정시키는 것을 종종 객관성이라고 부릅니다. 정서나 욕망의 억제나 대상에 대한 존중을 참된 객관성과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객관성이란 경험의 모든 측면을 포함해야 하고, 따라서 가장 중요한 측면인 주체 자체를 제외해서는 안 된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객관적일 때,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뿐 아니라, 또한 반대로 사물도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우리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인지도 결국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따라서 기술이 전인격 속에 흡수된다고 하더라도, 기술의 어떤 질서와 규칙성과 중립성이 통합된 인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더 의미 있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93 에머슨은 삶이란 단지 재주를 부리는 것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술도 여기저기서 많은 발명품들만을 내놓는 것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연력과 대등하게 만날 수 있게 하고 자신의 삶을 더욱더 합리적으로 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인간성을 창조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행동이 비참할 정도로 기계적이 되면, 기술은 이러한 목적에 이바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계적 과정이라고 하는 더 작은 객관성이 인격 발전이라는 더욱더 큰 객관성에 흡수되면 종종 인간적 내용을 결여한 것처럼 보이는 기계적 발달이 인간 정신 자체에 대한 하나의 은혜임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술의 인간적 부분은 기술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권력이나 부의 증대보다도 더욱 중요합니다. 94

 

11. 기계를 인간화하거나, 또는 기계를 우리가 인간적 예술이라고 지금까지 표현해 온 인간성 부분의 장점으로 전환하는 데, 외부적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기계에 꽃을 그린다고 해서 기계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감상적인 난센스에 불과합니다. 즉 기계 에술의 규범은 본질적 요소에 대한 정확성, 경제성, 원활성, 엄밀성, 제한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규범이 부적절한 장식의 응용이나 부적절한 형식의 포장에 의해 침해될 때, 그 결과는 기계의 인간화가 아니라 기계의 비속화입니다..가치란 적절한 미적 표현에 의해 질서를 표현하거나 동력에 보탬이 되는 정도로 최소한의 인간적 적합성을 갖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계가 인간의 대용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인간성의 합리적이고 조작적인 부분의 확대가 되지만, 그것에 속하지 않는 영역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118

 

12. 기술의 진로를 지속적 상승으로 보는 견해는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배울 능력이 없고, 우리가 창조한 기계를 지배하고 그것을 제자리에 둘 능력도 없고, 우리가 창조한 기계를 지배하고 그것을 제자리에 둘 능력도 없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그것은 우리가 기게에 사로잡혀 초래한 열광과 강제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고 따라서 철학과 종교와 예술은 인간에게 다시금 전인적인 삶의 전망을 열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다시는 우리의 것이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우리 자신을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면, 기계에 속하는 것은 오로지 기계에게로 돌리고, 삶에 속하는 것인 주도권, 선택능력, 자기 관리, 요컨대 자유와 창조성은 삶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기계가 우수한 원형으로서의 힘과 경제성을 성취하게 되면, 기계의 창조자가 자신을 기계적 피조물 수준 이상으로 다시금 올려놓기 전까지 기계는 정지돼야 한다는 것에 우리는 만족할 것입니다.

 

13. 참된 예술 작품은 우리의 완전한 주의력, 완벽한 참여, 가장 개성적이고 재창조적인 반응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적나라한 선정주의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예술가가 방어적으로 점차 할 말을 잃어 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선정주의가 의미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예술가는 거대 광고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사용되는 묘기와 유사한 과장과 왜곡이라고 하는 과정을 지나도록 강요당합니다. 따라서 더욱 빨리, 더욱더 빨리라는 수량화의 원리는 더둑 시끄럽게, 더욱더 시끄럽게라는 선정주의를 유도하게 되고, 이어서 예술가가 사용하는 상징의 의미에도 영향을 미쳐 더욱 공허하게, 더욱더 공허하게로 나아갑니다. 이는 대량 생산과 그것과 경쟁하는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무서운 대가입니다. 137 복제 과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람들은 예술의 본질적 성격인 독창성을 잊고 있습니다. 모든 활동의 배후에는 일종의 질서와 형식이 지배적이어야 하는 한, 자극과 의미의 강도를 촉진하는 심미적 관심은 필연적으로 그 존속 기간이 짧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의 동화 능력에 따라, 반복의 시간, , 기간, 빈도를 통제하기까지, 지금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이미지와 소리의 홍수를 제한하는 법을 배워야만 예술의 복제 장치는 인간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145 지난 몇 세기 동안 의 엄청난 기계의 팽창은 과거에는 너무나 명백한 것이어서 가르칠 필요가 없었던 교훈을 인류에게 주었습니다 즉 유일한 것, 독창적인 것, 귀중한 것, 참으로 개성적인 것이라는 가치입니다. 삶에는 귀족주의적인 원리가 민주주의적인 원리와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예술의 철저한 개성주의가 기술의 몰개성주의, 나아가 따라서 기술의 피상성을 중화시켜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볕뉘.

 

1. 꽃들이 꽃멀리를 불러일으키는 때 꽃한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마무리 흔적을 남겨둡니다. 천양희의 숨은꽃 마지막구절처럼  숨긴 그를 이렇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전합니다.

 

"꽃이라고 다 꽃답게 꽃피우는 건 아닐 겁니다.

숨어서 피는 꽃이 있다면 그 꽃 속은 더 환할 것입니다.

비밀의 꽃장이란 얼마나 넘기고 싶은 페이지입니까.

지금 누가 그걸 읽는 중일까요.

누가 그를 어디에다 숨긴 것일까요."  천양희 숨은 꽃에서

 

2. 저자의 호흡을 따라 바보처럼 *번을 읽습니다. 쓰는 단어들이 조금씩 이어지는 듯, 말과 말 사이가 어긋나지 않는 듯싶습니다. 동학사 법고소리가 은은하게 마음 속에 퍼질 무렵, 세심정에서 마지막 장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꽃숭어리는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터질 듯, 거리의 상춘객들도 꽃으로 가득입니다.

 

3. 이만 책장을 덮습니다. 밤이 깊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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