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채근해대는 재훈에게 수정은 "누가 제주도에 환장한줄 알아요?"라고 쏘아 붙인다. 그 전화기 창 밖의 회사 마당에서는 직원들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인물의 불안한 내면과 욕망과 평범한 일상이 함께 동시에 한 화면에 일렬로 늘어 서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이런 말도 안되는 유머는 냉혹하다.

그렇게 웃겼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남기는 것은 모멸감이다. 성적 불안감, 망상증, 환상에 갇힌 남성의 자아와 그런 남자를 요리(?)하기 위해 처녀인 척하는 여자의 모습을 통하여 일그러진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것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넝마같은 마음처럼 자질구레하고 아름답지 못한 일을 코메디로 연출한 조각영화를 보면서 그저 어이없는 웃음만 나온다.(by 파란여우)


저녁 물밀듯 밀려오는 졸음으로 초저녁부터 잠에 떠밀렸다. 제법 아침기운이 온 느낌이었으나 새벽2시, 책을 볼까 망설이다 TV채널을 만지작거리다 잡힌다. 물끄러미 나의 일상도 화면을 쪼이고 되돌아나오길 반복한다. 젊은 소설가들의 주인공들처럼 남루하고 비루한 우리의 조각조각은 허탈하고, 갈기갈기 찢어져 거리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저 있는 느낌이다. '욕망'은 '자본'과 비역질하며 하루하루 일상을 견디고 있다. 비루한 일상에 기대어 있을 뿐...

아무생각없이 보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 어떤 사람이지 하다 감독 프로필을 보고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 책보다 허기가 져 새벽참을 먹고 6시무렵 다시 잠들다. 조각난 시간 이 장면을 보았는데, 1주기부근이라고 떠들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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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2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에 환장하다가 돌아왔슴돠 뭐..흐흐

여울 2006-02-2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주도 유배지의 수선화 넘 멋져요. 이제부터 수선화 좋아하게 될 꺼예요~~.
 


5. 분노 - 선입니까, 악입니까?
8. 죄책감 - 각성제입니까, 고통입니까? 
11. 자아 사랑 - 관점에 따른 하나의 갈등입니까?

 

'화'가 나면 표현하시나요?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서로 관계개선을 위해 나쁜 것인가? '분노'가 좋고 싫음의 문제인가? '분노'는 가치중립적인가?

'욕망'은 불쾌한 감정인가? '욕망'은 나쁜 것인가? '욕망'은 좋고 싫음의 문제인가? '욕망'은 가치중립적인가?

'감정'에 잘 잘못을 가릴 수 있는가? '감정'과 '행위'를 구분해서 볼 수 있는가?

우리는 과도하게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가? 행위에 대해 잘 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마음마저 사과하는데 익숙한 것은 아닌가? '욕망'이나 '분노'에도 지나치게 '죄'와 결부시키지 않는 것일까? 죄책감을 만들어 사람을 조종할 수 있을까? 얼마나 조종할 수 있을까? 조종당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본의 논리와 그늘이 끊임없이 생활의 틀, 사고방식의 틀을 가두어두는 것처럼, 내가 숨쉬는 공기가 최고로 맛있는 공기나 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수돗물을 마시며 살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다른 물맛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면... ...

'욕망'이나 '분노'가 새로 만드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욕망'이나 '분노'가 없다면 역동적인 생활이나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삶이 유채색일까? 무채색일까?

우리는 분노를 표현하는데 익숙한가?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나'도 '남'도 모두 도움되는 일인가?

유일신에 대한 영적생활은 삶에 그늘을 드리울까? 종교가 없는 것이 나을까? 종교가 있고 없음의 문제일까? 범신론의 입장에서 삶은 어떻게 다가올까? 종교가 없는 것 또한 삶의 그늘을 드리울까?

060222 새벽 마저 읽음  '베품'은 '좋을 때'만 행하는 것이 아닌 '행위'임을 알아야함. 좋고 나쁜 감정상태를 떠나 베풀어야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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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는 지인이 짜는 책장일 거들고, 쳐박혀 냉대받고 있던 묵은 책들을 내왔다.

먼지를 털고 닦는 사이, 치우치고-속좁고-나만 생각하는 습속이

뚝뚝 묻어나와 한참 부끄럽고 민망하다. 가끔은 새책과 헌책이

섞이기도 하지만, 책읽기 습관 일그러진 내모습이 보여 좌불안석이다.(그래도 사진이 알아볼 수 없게 나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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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2-2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 진짜 많다. 무슨 서점 같아요..

여울 2006-02-2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량서적, 불량서점..ㅎㅎ
 

 

소쇄원 48영 이곳으로 http://www.soswaewon.org/mainFrame.asp

 

 



 

 

 구경꾼이 십여분 훑고 지나치는 것은 원림(園林)을 느끼기엔 조바심이다.  사람으로 치면 찰나의 대면일 뿐, 거문고도, 바둑도, 바람도, 온 손님도, 술잔도 목욕도, 농어회맛도....세파에 찌들은 우리는 소쇄원 맛을 느끼기에 영 그르친 것인지도 모른다. 무등산자락과 무이구곡의 세심함도 녹아있다면, 그 산세를 돌아보지 않고선 더 더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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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216  (아카뎀) "영화로 보는 고대인의 세계관"  하루 부끄러움이 밀려들어온다. 주제에 맞춰 준비도가 형편없는 자신, 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용감하게 대화모임 참관한다. 일리아드 오역본도 읽지 못한데다가 관심도 그렁그렁하니. 억지춘향이 식으로 ... ...

1. (부끄러움에서 밀려나오는 거침) 인문학자의 인문학의 위기와 진단에 대해 너무 쉽게 말씀하신다.  오늘 각자가 생각하는 고민에 대해 통시대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거나, 품거나 하면 1-2년만이면 그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누구나 책한권 쓸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학교도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인문학의 정신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놈?들은 인문학을 자본기획과 맞물려 이집트문명이니 하며 팔고 있는데, 이땅은 충분히 그러함에도 기능적 사고는 모든 학문을 삶과 멀어지게 하고 천박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2. 우리의 위치에서 고대인(로마,중세,르네상스,자본주의 초/우리)을 보려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속에 들어가 느끼려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여러 삶의 방식, 공동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감수성, 개인이라는 인식이 지금과 다르므로 죽음과 혼에 대한 느낌도 전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서로 다르다는 것을 해결하는 것도 쿨하거나...

3. 돈이란 유일신아래 신음하고, 돈으로 인해 너무나 죽음을 쉽게 선택하는 '나'에게 인문학은 삶의 다양성과 사고의 다양성, 유연함을 제공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거나 보고가 될 것 같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장마철에 쓸려내려가는 통나무처럼 '살아지는' 시대에 '멋'지게 (함께-혼자) '사는' 법에 대한 또 다른 지평을 넓혀주는 보고, 대안은 인문학의 부활에 있지 않을까?  빌려오는 인문학이 아니라 중심갖고 넓어지는 인문학...

 

 

 

(나귀님 리뷰)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74972

이공대 위기라더니, 인문대 더 심각 http://news.joins.com/society/200602/16/2006021605292688713000301030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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