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의 이집트 기행
헤로도토스 지음, 박성식 옮김 / 출판시대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한때 고구려에서의 돼지의 의미를 공부하다가 뒤적거리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집트인들은 범람이 되면 돼지를 풀어 땅을 경작하기 좋게 밟는다는 식의 그리스인의 묘사가 이 책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겸사겸사 보게 되었지만 이집트란 나라에 대해서 잘 서술한 책이라는 생각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든다. 물론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며 그 내용이 어렵다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기행한 답사기일 뿐이다.

그는 기원전 5세기에 태어난 인물로서 동으로는 소아시아를 넘어 바빌론과 수사, 서로는 리비아의 키레네, 남으로는 나일강의 상류, 그리고 북으로는 흑해와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당시 서양세계에 알려졌거나 방문이 가능했던 모든 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의 여행과 연구는 9권의 저술로 구체화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역사(Historiai)'라고 한다. 특히 마지막 3권은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 제국이 어떻게 그리스를 침략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격퇴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보통 헤로도토스의 역사라고 하면 이 3권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 이집트 기행은 앞선 6권 중의 하나였다.

사실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때 그 땅의 주인은 페르시아인들이었다. 우리에게 이집트가 전설적인 영웅들과 파라오들의 나라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앞에서 경이로운 찬사를 바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헤로도토스 역시, 그보다 2,500년 전의 역사적 산물 앞에서 경이로운 찬사를 바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까지로서 가장 앞선 시기의 이집트에 대한 생생한 저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집트를 방문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보고 들은 것들을 적으면서도 본인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현재 외국인(주로 중국인)의 우리 민족에 대한 서술을 보면 그들의 시각 아래 서술된 내용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아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선화봉사 고려도경'같은 책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이 분명 그 시대의 우리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서술한 사람의 시각에 준한 것들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헤로도토스의 이집트 여행기를 보고 있노라면 전해듣고 직접 본 것 중에서 본인이 인정할만한 부분과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것들을 분명히 구분해서 서술하고 있기에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처음은 이집트인들과 인류의 기원이라는 부분부터 시작한다. 즉,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라고 믿어왔다가 결국 프리지아인들보다는 못 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의 지형과 각 자연환경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특히 거리는 배를 타거나 걸어갔을때 며칠이 걸린다는 식으로 계산하여 길이를 세세하게 기재할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학 있다. 특히 나일강의 범람에 대한 부분에서는 이집트인들의 설명도 인정하지만 본인 스스로 과학적인 근거를 대면서 진위 여부에 대해 서술하고 있어 그 당시 헤로도토스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를 알 수가 있다 - 실제 그는 나일강의 범람이 눈이 녹아서 발생한다는 설을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진실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다고 말하고 있다 -

그리고 그는 최대한 이집트인들의 풍속과 생활상을 묘사하는데 있어 개인적인 견해를 삽입하지 않았다. 즉, 진수가 읍루인들이 돼지 기름을 몸에 발라 추위를 방지한다는 것을 미개한 것처럼 묘사한 것과 달리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그 자체만 서술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그리스인들 대부분이 이집트라는 신비의 나라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인식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개인의 서술 기준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즉, 그가 남긴 그러한 객관적인 서술 덕분에 오늘날 수천년 전의 이집트인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가 주인장 스스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시까지 흔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소위, 상식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 다른 異說이 있을 경우,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고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태도는 당시 사람들이 이집트에 대해, 혹은 주변 세계에 떠도는 풍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그 진위여부를 파악하게끔 해줬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장은 특히 트로이 전쟁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에 방영된 유명배우의 출현작 '트로이'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트로이에 대한 1가지 사실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기원전 5세기, 한 천재적인 인물의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역사왜곡이 아닌가.

우리가 아는 트로이 전쟁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와 눈이 맞아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은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 트로이를 공격하고 10여년의 장기전이 계속되지만 파리스의 형 헥토르가 지키는 트로이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이후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에서 헥토르가 패하고 트로이성은 목마를 이용한 전략으로 인해 그리스군에게 함락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 역시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우스건이 맞음으로써 죽게 된다 -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미 호머가 그의 서사시를 쓸때 기본적인 줄거리는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분명히 말한다. 호머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따르고 있던 서사시적 구성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본래의 줄거리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에서 보고 들은 트로이 전쟁의 전개는 대강 다음과 같다.

- 알렉산드로스(파리스)는 스타르타에서 헬렌을 납치하고(같이 온 것이 아님) 고국으로 떠나던 중, 폭풍으로 이집트 바닷가에 도착한다. 그때 알렉산드로스의 시종들이 이집트의 신전으로 달아나 그가 메넬라우스에게 한 짓을 모두 고하고 그 호소는 사제들을 통해 멤피스에 있던 파라오 프로테우스에게도 전해진다. 이후 나일강 하구의 감시책임자인 토니스는 알렉산드로스와 헬렌, 보물들, 신전으로 도망쳐온 시종들을 붙잡아 파라오 앞으로 나아갔고 프로테우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어설픈 변명을 들은 다음에 알렉산드로스는 여자와 보물을 그 주인이 찾으러 올때까지 이 곳에 놔두고 본인은 3일안에 이집트를 떠나라고 명한다.

이후 메넬라오스와 그리스의 대군은 트로이에 도착해 알렉산드로스가 가져간 보물과 헬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트로이인들은 일관되게 자신들에게는 그것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없는 그것이 이집트에 있다고 트로이인들은 맹세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파라오가 억류하고 있는 그것들을 트로이인들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결국 트로이인들이 자신들을 우롱한다고 생각하여 도시를 공격해 함락했다. 하지만 역시 보물과 헬렌은 트로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리스인들은 트로이인들의 진실을 믿고 메넬라오스를 이집트에 파견했다.

메넬라오스는 이집트로 가 헬렌과 보물을 온전히 돌려받고 극진한 대접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로 떠나기 전 역풍이 불자 어린아이 2명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사악한 짓을 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고 이집트인들은 메넬라오스를 추적했으나 결국 그가 리비아로 탈출한 뒤여서 잡지를 못 했다 -

그리고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들이 조사와 자신들의 땅에서 일어난 상황을 통하여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덧붙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길, 트로이에 헬렌과 보물이 있었다면 트로이인들은 그것을 되돌려 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나라가 위험에 처할만큼 그들은 멍청하지 않았으며 더군다가 알렉산드로스보다 더 용감한 그의 형 헥토르가 왕국의 후계자로서 그의 동생이 벌인 멍청한 짓을 옹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트로이의 멸망은 우리가 오늘날 아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당대의 사람인 헤로도토스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헤로도토스가 남긴 이집트 여행기는 모든 부분에서 기존에 주인장이 알고 있던 많은 내용과 다른 사실들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저술이 당대에 행해진 것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 사료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과 200페이지도 안 되고 글씨도 큼직한 이 작은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어내려간 것은 당연하며 한번만 읽은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2~3번을 더 읽어봤다. 그만큼 이 책이 보여준 매력에서 주인장이 선뜻 떠나가지 못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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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7-09-2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인데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군요. 그런데 역사 9권을 전부 번역한 책은 없는 건가요?

麗輝 2007-10-0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우고전선'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상, 하 2권짜리 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구입한다, 구입한다 생각해놓고 구입하지 못 했는데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절판된 곳이 많아서 구하기 어려울 것도 같네요. ^^
 
신의 아들 사리오키스
에드워드 본 지음 / 투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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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스테리아 전기(傳記).
고대 이집트 신화 속에 나오는 사막의 매를 중심으로 한 웅장한 전쟁 스펙타클과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시이다. 역시나 대부분의 이집트 관련 서적들이 영국인의 손에 쓰여진 것처럼 이 책 역시 영국의 이집트 고고학자인 에드워드 본이라는 사람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다. 실제 역사적인 내용에 근거한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군신화나 주몽신화같은 몇몇 유명한 건국신화처럼 유명한 것인데 그 내용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중왕국시대(B.C 2133~1785)라고 부르는 때, 오랜 분열을 종식시키고 테베의 왕자 멘투호텝 2세가 상-하 이집트를 다시 통일하면서 제 11왕조가 개창되었고 이후 재상 아메네메트에 의해 제 12왕조가 개창되면서 이집트 역사상 가장 찬란한 번영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제 12왕조 말부터 점차 국가의 통제권이 약화되면서 이집트가 분열되는데 이후 제 16~17왕조가 들어서면서 소위 힉소스라고 불리는 아시아 이민족에 의한 이집트 지배가 시작되며 이를 제 2중간기(B.C 1785~1575)라고 부른다. 이야기는 힉소스의 지배가 이뤄지기 이전, 제 12왕조 말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집트가 분열되면서 이집트는 수많은 소국들로 분열되는데 그 중에는 강국 아도비스와 우루지나, 소국 에스테리아가 등장한다. 우루지나의 왕 스테필은 아스테리아를 침공하고 그 나라의 왕자인 사리오키스와 공주 나일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이후 사리오키스는 무라 부족의 젊은 용사 이자이의 도움으로 전설상의 주인공인 '사막의 매'가 되어 우루지나를 멸망시키고 아도비스를 통합하여 결국은 다시 이집트를 재통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스테리아의 나일 공주와 적국 우루지나의 스네필왕이 사랑에 빠지는 등 적절한 로맨스가 첨가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일정부분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장대한 규모의 서사시이다. 마치 고구려의 건국신화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서술 구조 역시 상당히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고난과 역경에 처하지만 결국은 기연을 맞아 어려움을 딛고 재기에 성공하게 되고, 결국은 새로운 시대를 개창한다는 식이다. 이는 주몽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건국신화나 서사시에서 취하는 구조인데 특이한 점이라면 거기에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적절히 첨가되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건국신화에 비해 장대한 서사시가 갖고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로서의 서사시가 더욱더 보는 이로 하여금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용은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참고문헌과 원사료를 토대로 그 시대의 삶을 생동감있게 복원한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에 비한다면 다소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스피디한 전개와 간단명료한 내용 서술이 돋보이기도 하다. 마치 삼국지연의가 정사인 삼국지에 몇몇 소설적 요소를 첨가하여 완성한 대작이듯이, 이 작품 역시 원래의 신화를 몇몇 소설적 요소를 첨가하여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이집트의 문학작품을 접하는데 있어 거부감없이 부드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한 점도 돋보인다. 장편을 읽는 것이 지루한 독자들에게 이 정도의 단편이라면 더욱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집트에 대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때 봤던 영화 '스타케이트'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그 이후부터 이집트라고 하는 세계 4대문명이라고까지 불리는 고대 문명에 대해서 공부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그런 시간은 이후 '미이라'라고 하는 영화를 거쳐, 성경과 각종 이집트 관련 문헌, 그리고 소설 '람세스'를 읽으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집트에 대한 또 다른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으며 이집트인의 사상적인 측면이 크게 반영된 문학작품이었기 때문에 더욱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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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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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오랜만에 쓰는 서평인 듯 싶다.
그동안 교과서 혹은 전공서적 이외에는 별다른 책을 보질 못 했는데 그래도 틈틈히 본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가을께 사놓고는 그동안 펴보질 못 하고 주변 사람들만 이리저리 빌려줬었는데 학교에서 유적답사를 간 날, 날 잡아서 2박 3일동안 차 안에서 독파했었다.

이 책이 제 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1억원의 상금을 받았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대체 어떻게 썼길래 그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았을까 하는 호기심도 작용했었다. 처음 여자친구가 이 책을 보고는 하는 말이, 너무 야하고, 성적인 묘사만 가득하기 때문에 대체 왜 이런 책에 1억원이나 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그려러니, 신라의 개방적인 성생활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넘어갔었다. 그리고 그 책을 보는 첫장부터 주인장은 일종의 실망감을 금치 못 했다.

저자는 분명히 미실을 쓰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역사전공자들의 연구성과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주인장이 확인한 결과, 그런 흔적은 거의 없었다. 내용의 대부분은 화랑세기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화의 상당부분이 화랑세기에서 그대로 차용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전후 사정에 대해서도 화랑세기의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많았고 소설적인 요소가 가미된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마 저자가 직접 원서를 해석해서 공부한 것은 아닐테고, 화랑세기 연구의 권위자인 이종욱 선생님의 책들을 상당수 참고한 것으로 보였다(개인적으로 주인장도 화랑세기에 대해서 이종욱 선생님의 연구성과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즉, 처음 언급했던 호언장담만큼 그 내용에 있어서 역사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소리가 된다.

예스24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이 작품은 적극적인 탐구 정신, 작가적 상상력, 호방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스럽고도 우아한 문체 속에 거침없는 성애 묘사가 소설과 역사를 읽는 묘미를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

글쎄, 정말 그런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책소개에서 당당하게 말한 것처럼 고대 여성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진위여부에 둘러싸여있는 화랑세기는 신라의 여성들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삶을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거침없는 성묘사에 대한 내용들인데 이는 신라의 사회구조와 신라의 혈통적인 기원을 파악하지 않고는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북방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형사처수, 일부다처를 비롯해 근친혼도 흔하게 확인되는 사항이었고 가족제도 자체가 농경민족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다가 신라의 경우는 북방 유목민적 관습이 농경민 특유의 토착화를 이뤄냈기 때문에 마복자같은 세계사상 유례가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사회구조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없이 단순히 자유로운 성적 묘사를 했다고 해서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은 일견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극적인 탐구 정신은 앞서 언급한대로 역사 공부를 한 흔적이 별로 확인되지 않기에 인정할 수 없으며 작가적 상상력 또한 대부분의 기본 줄거리나 대화체, 연결고리들을 화랑세기의 것을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에 역시 인정할 수 없고 호방한 서사 구조는 당최 뭘 보고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예스럽고도 우아한 문체 속에 거침없는 성애 묘사만이 이 소설을 읽으면 남는 전부가 되버렸는데 그 이유는 작가적 상상력이 거의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이 책이 세계문학상 수준이 아니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다만, 굳이 장점을 꼽으라면 화랑세기 원서나 연구서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썼기 때문에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미실을 중심으로 그와 관계를 맺었던 모든 남자들을 하나둘씩 소개하는 형식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마치 삼국지 정사를 일일히 살펴보면 삼국시대 전반을 이해하는데 어렵지만 삼국지연의를 읽음으로써 각각의 인물들이 어느 시점, 어느 장소에서 활약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는 그 안에 허구적 요소를 집어넣음으로써 소설로 그쳤는데 이 책은 삼국지연의만한 방대한 규모와 정교한 짜임새가 돋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와 비교하는 것도 솔직히 우스운 일이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그리고 그게 1억원의 상금과 함께 세계문학상을 받은 작품이어서 더 실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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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마녀 2006-01-1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공감입니다 도대체 미실이 왜 대단한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결국은 미모로 왕을 사로잡은 다른 조선시대의 후궁들하고 별반 다를것도 없어보이던데 ㅡㅡㅋ

麗輝 2006-01-27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미실을 조선시대 후궁들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화랑세기를 통해서 본 신라 여인들은 조선시대 여인들과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차원이 달랐죠. 즉, 성에 있어서 꺼리낌없었다는 것이 비록 사회적인 구조 속에서 허용되었기에 그에 따른 사상적인 면이 달랐던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문제삼은 것은 미실이 아니라 그 표현력이었습니다. ^^
 
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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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수라고 하는 단어를 들으면 몇가지가 연상될 것이다.
자객(殺手), 무협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강이름이다. 살수라고 하는 강이름은 한국인이라면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수양제의 30만 5천명의 대군이 이 곳에서 수장되어 겨우 2천 7백명만이 살아돌아갔다고 역사는 전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 소설의 내용이 대강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승리를 기록한 소설이며 그 전투를 지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을지문덕에 대한 소설인 셈이다.

우선, 소설을 보기 전부터 주인장은 이 소설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주인장이 정말 좋아하는 소설가 중의 하나인 김진명의 소설은 지금까지 대부분 재미도 있었고 또 시사하는 바도 많았기 때문에 일부는 소장하고 있고, 일부는 소장하지 않더라도 꼬박꼬박 보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 책을 사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는데 벌써 많은 독자들의 리뷰가 올라와 있었고, 그 결과 책이 별로라고 쓴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 주인장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잊고 있던차에 마침 후배가 이 책을 샀다는 얘기에 빌려서 봤는데 역시 안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이 책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소설이라면 모르지만 저자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들먹이면서 거창하게 시작한 역사소설, 그것도 고구려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늘 말하지만 아무리 역사소설이라고 해도 100% 사실을 전하는 학술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재미가 없으면 소설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단, 역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만큼 역사적인 뼈대가 중요하게 작용해야만 하는 것이 또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김진명은 이번에 너무나도 큰 모험을 걸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까지 고구려를 소재로 나온 소설들은 시중에 상당히 많았다. 아마 백제나 발해, 신라, 고조선, 부여, 가야 등을 대상으로 한 역사소설보다는 고구려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 거기다 유명한 작가들이 한번쯤은 고구려에 대한 소설을 썼기 때문에 왠만한 역사소설 중에서 고구려를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고구려 관련 역사소설을 쓸때는 독자들의 눈이 날카롭기 때문에 신중하게 써야한다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기도 하다.

고주몽(고구려 건국초) - 최항기 저/한동주 그림/김용만 감수, 함께 읽는 책, 2004년 2월, 9000원.
소서노(고구려 건국초+백제 건국초) - 이기담, 밝은 세상, 2004년 12월, 8500원*2권.
광개토대제(4~5세기) - 정립, 아이디어북, 2002년 7월(개정판), 8000원*10권.
왕도의 비밀(4~5세기) - 최인호, 샘터, 1995년 4월, 6000원*3권.
연개소문(7세기) - 유현종, 행림출판, 1997년 8월, 6000원*7권.(대제국 고구려 6권으로 개정판 나옴)
연개소문(7세기) - 박혁문, 중명출판사, 2003년 1~3월, 8500원*5권.
고구려(7세기) - 정수인, 새움, 2005년 2월, 8500원*5권.
우리나라 삼국지(삼국시대 전부) - 임동주, 마야, 2005년 9월, 9000원*10권.(현재 1권만 출간됨)

지금까지 주인장이 본 고구려 관련 소설은 환타지 소설을 제외하고는 대강 위와 같다. 시기적으로 봐도 고구려 후반기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지, 그 이전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는 거의 없다. 그나마 연개소문과 관련된 소설도 유현종이 한번 쓴 이래로 계속 재탕삼탕된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할만한 부분도 아니다. 유현종은 그의 작품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후 계속적으로 별다른 내용의 수정없이 개정판을 냈으며 나중에는 '대제국 고구려'라고 아예 제목까지 바꿔서 개정판을 냈지만 결론적으로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현종 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인 연개소문에 대한 고증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그 이후에 나온 '고구려'라는 소설만 보더라도 연개소문에 대한 묘사는 유현종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이는 연개소문과 관련된 소설이 앞으로 출간되는데 있어 굉장히 좋지 못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고구려 후반기에 관련된 소설만 나온 것도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고구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불리는 광개토호태왕을 다룬 역사소설이 없다면 말이 안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최인호가 쓴 유명한 소설, 왕도의 비밀이 있고 정립이라는 사람이 쓴 광개토대제가 있다. 우선 전자는 이미 널리 알려진 최인호의 작품 중 하나로 작은 소재를 갖고 역사를 소설로 재구성하는 기술이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고구려 전성기 전반을 다룬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후자는 광개토호태왕의 일생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역사소설이나 무협소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인데다가 '후연서'라는 허구의 역사서를 참고했다는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인 고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광개토호태왕을 인간이 아닌 신화적인 장식으로 치장해버린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고구려 초기사에 대한 소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고주몽과 소서노다. 둘 다 역사적인 고증에도 충실했고 당시의 상황이나 인물 묘사에도 충실했기 때문에 주인장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소설들이다. 마지막으로 삼국시대의 시작부터 발해건국 전반기까지 다룰 '우리나라 삼국지'라는 10권짜리 대작이 나왔는데 현재는 1권밖에 출간이 되지 않았고 역시 고구려 초기사를 다룬 부분은 이전 소설들을 답습하지 않고 훌륭한 서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오늘 언급할 살수이다. 살수는 특이하게도 고구려 후반기를 다룬, 하지만 연개소문 집권기인 7세기가 아닌 6세기대 이야기를 다뤘으며 그 주인공은 영양태왕 시절의 명장인 을지문덕이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칭찬해마지 않는 명장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 전하는 기록은 거의 없다.

이 점이 이번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문헌이든, 고고학적 사료든 관련 기록이 거의 없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사를 서술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작업인지 알기 때문에 김진명이 소설을 쓰면서 얼마나 고충을 겪었을지도 알 수 있을듯 하다. 하지만 정작 소설에 등장한 을지문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망감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주인장이 소설을 보는 내내 느꼈던 을지문덕에 대한 이미지는 '신선(神仙)'이라는 한단어였다. 그렇다. 예전에 '고구려'라는 소설을 보면서 환타지처럼 서술된 내용을 보고 황당했었는데 김진명이 그와 비슷한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니 그동안 갖고 있었던 김진명에 대한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뀔 정도였다.

우선 전체적인 내용을 보자면 흔히 그러듯이 당 태종과 연개소문을 라이벌로 묘사하듯이 김진명은 양광, 훗날의 수 양제와 을지문덕을 라이벌로 설정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근거는 희박하다. 이는 마치 연개소문이 수 양제 시절 중국 대륙에서 활약하면서 훗날 고구려 침략군이 될 당장(唐將)들을 만나는 식의 이야기 전개였는데 설정은 좋았지만 역사적 근거가 희박해 실패했다. 하필이면 그 매개체로 등장한 것이 백산말갈 족장 아야진이었는데 백산말갈은 고구려 말기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말갈 부락 중 하나였다. 돌지계등이 일족을 거느리고 수나라에 투항하는 등 말갈 세력 일부가 고구려에서 이탈하는 흔적이 확인은 되지만 국초 복속한 말갈은 고구려 멸망 이후까지도 고구려에서 이탈한 흔적이 크게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확인되는 것은 흑수말갈이라고 하는 독립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백산말갈을 마치 독립적인 세력으로 설정해 양광과 을지문덕이 그것을 매개체로 만나고 무협소설의 영웅처럼 비장한 말을 던지고 헤어진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말갈인을 고구려 백성으로 선포하고 말갈인의 힘을 전쟁에 동원한다는 설정도 조금 어폐가 맞지 않은 부분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국정에 참여하면서 영양태왕을 비롯한 고구려 각계각층이 영웅으로 알고 있었다고 묘사된 을지문덕. 하지만 그에 대한 묘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을지문덕이 되어야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 인물 묘사에 더 치중한 인물은 정작 수 양제였던 것 같다. 수 양제는 능력은 있지만 어떤 광기(狂氣)에 사로잡혀 피를 부르는 인물로 그려져 있었는데 어느정도 소설적 장치로 재구성한데 성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라이벌인 을지문덕에 대한 부분은 거의 베일에 가려진채 소설은 진행된다. 그리고 을지문덕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맨인블랙1'이라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가 든 구슬로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외계인을 연상케 할 정도다. 동아시아 전장을 주름잡고 한손에 쥐었다폈다 하는 식의 묘사라니. 황당하기까지 했다.

소설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과장과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작업이 어떠한 근거도 없이 행해진다면 그 결과물을 바라보는 독자들은 날카롭게 비판을 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진명의 소설이기에, 이미 '가즈오의 나라'라는 소설에서 어느정도 만족했던 차에 봤던 소설인지라 더욱더 실망감을 안았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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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부 1
이덕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 운부는 승려들 가운데 뛰어난 일여, 묘정, 대성 법주 등 일백여 인을 얻어 그 술업을 전수시키면서 팔도의 중들과 체결하였다. 그리고 장길산의 무리들과 결탁하고, 또 이른바 진인 정, 최 두 사람을 얻어 먼저 우리 나라를 평정하여 정성을 왕으로 세운 뒤에 중국을 공격하여 최성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였다.

숙종실록 23년(1697) 1월 10일 --

이덕일하면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대중적인 역사서적을 쓰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기 위해 책을 펴내는 박영규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그런 대중서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송시열을 비롯한 조선시대 당쟁사에 대해서 다양한 책을 쓰셨는데 조선사에 문외한인 주인장에게 있어서는 이덕일의 책이 더욱더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덕일이 역사개설서가 아닌 역사소설을 썼기에 흥미를 갖고 구입한 책이 바로 이 책, 운부(雲浮)다. '뜬구름'이라는 뜻의 이 제목은 다름아닌 사람의 이름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숙종실록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답사를 다니면서 이상하게 숙종 년간에 많은 사찰이 지어졌는지를 궁금해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불교 억압으로 숙종 시대에는 이미 불교가 자리잡을 공간이 많이 줄어든 조선이었건만, 이상하게도 왠만한 조선시대 사찰들은 숙종때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몰랐다가 숙종실록을 보고 위의 기록을 본 순간 깨달았다고 한다. 그건 바로, 숙종 시대에 이런 불교계의 반항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나자 불교계와 민중들에 대한 고도의 회유책이자, 두려움의 소산으로서 이런 사찰 중창이 잦았다는 것이다. 제목도 그렇고, 소재도 그랬지만,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배경까지 알게 되니까 이 책이 정말로 재밌는 역사소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틈나는대로 읽다보니 정확히 4일만에 3권의 책을 모두 읽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사학자가 쓴, 가장 역사적 사실과 근접한 역사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소설들이 약간의 뼈대만을 역사적 사실에서 차용하고 대부분의 내용들을 상상력에 근거해서 만들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등장인물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한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더욱더 주인장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자아내게 했다. 이는 조선시대의 역사를 잘 알려주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사료가 남아있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으나 당시의 여러가지 시대적 정황을 일관된 주제로 꿰어맞춰 소설적 구성요소로 재창조한 저자의 능력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주인장에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대강의 내용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운부라는 승려가 있는데 당대의 고승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이영창이라는 풍수가 겸 모사꾼이 조직을 운영, 관리하는데 그의 주 임무는 도성의 동향을 파악하고 삼광사한이라는 7명의 동지를 모으는 일이었다. 그리고 운부 밑에는 묘정, 대성 법주, 일여 같은 문무에 능한 승려들이 제자로 있으면서 전국 팔도의 승려들과도 연락해 임난때 결성되었던 승군(僧軍)을 재조직하고, 따로 장정들을 모아 사병(私兵)을 육성하는 한편, 황해도 구월산 등지에서 기병 1천, 보병 5천을 거느리고 있던 당대 최고의 명화적 장길산과도 결탁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당시에는 남인과 서인을 오고가면서 정권 갈아치우기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있었던 숙종이 있었는데 그의 결단력과 잔인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서인 노론의 모사꾼 김춘택과 서인 소론의 모사꾼 한중혁이 서로 환국(정당 갈아치우기)을 기도하나 한중혁의 서투른 작전이 실패하고 서인이 위기에 처한 순간, 김춘택에 의해 남인 정권은 서인 정권으로 바뀐다. 이와 동시에 폐해졌던 민씨가 다시 중전이 되고 장희빈이 중전의 지위에서 떨어진 것 역시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당쟁이 진행되는 사이, 한중혁을 따르다 환국이 실패해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한 자들, 그리고 같은 서인이면서도 환국에 가담했으나 이후 서인들에게 배신당한 중인, 서얼들이 개국을 꿈꾸는 운부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거사일이 다가오고, 이제 막 힘을 잡은 서인 정권은 큰 위기에 봉착하나 사소한 실수로 모든 거사 계획은 탄로나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 파견되어 내부에서 반란군들과 호응하기로 한 이영창은 김춘택에서 사로잡혀 결국은 죽임을 당하는데, 이영창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자신이 꿈속에서 지어낸 일이라고 진술하면서 180여대라는 살인적인 장형을 받고 웃으면서 죽어간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우선은 숙종실록의 간략한 기록을 토대로 3권이라는 분량의 소설책을 써낸 저자가 신기할 따름이다. 이는 당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당시 숙종 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저자는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 결과 마치 주인장이 그 시대의 일을 직접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내용은 스피드있게, 박진감있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 점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최고의 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다.

또한 이런 역사적 사실은 당시 민중들과 불교계의 사정을 잘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런 왕조가 500여년이나 지속되었는지 다시 한번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현재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역대 한국사에서 조선왕조때처럼 개국과 반란 시도, 임금의 암살, 정치적인 혼란이 지속되었던 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정말 500년 역사가 무색해지지 않나 생각한다. 임난때 이미 망했어야 할 나라, 하지만 그 이후로 200여년이나 더 존속하면서 결국은 무시하던 섬나라 왜놈들에게 국권을 상실당한 자랑스런(?) 나라. 주인장은 이 책이 최근에 본 역사소설 중 가장 볼만하고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주변에 많이 권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되었는지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암튼, 한줄의 기록에서 3권의 소설이 나올 수 있고, 그 3권의 내용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거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는 점만으로도 주인장은 이 소설이 진정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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