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살수라고 하는 단어를 들으면 몇가지가 연상될 것이다.
자객(殺手), 무협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강이름이다. 살수라고 하는 강이름은 한국인이라면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수양제의 30만 5천명의 대군이 이 곳에서 수장되어 겨우 2천 7백명만이 살아돌아갔다고 역사는 전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 소설의 내용이 대강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승리를 기록한 소설이며 그 전투를 지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을지문덕에 대한 소설인 셈이다.

우선, 소설을 보기 전부터 주인장은 이 소설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주인장이 정말 좋아하는 소설가 중의 하나인 김진명의 소설은 지금까지 대부분 재미도 있었고 또 시사하는 바도 많았기 때문에 일부는 소장하고 있고, 일부는 소장하지 않더라도 꼬박꼬박 보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 책을 사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는데 벌써 많은 독자들의 리뷰가 올라와 있었고, 그 결과 책이 별로라고 쓴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 주인장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잊고 있던차에 마침 후배가 이 책을 샀다는 얘기에 빌려서 봤는데 역시 안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이 책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소설이라면 모르지만 저자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들먹이면서 거창하게 시작한 역사소설, 그것도 고구려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늘 말하지만 아무리 역사소설이라고 해도 100% 사실을 전하는 학술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재미가 없으면 소설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단, 역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만큼 역사적인 뼈대가 중요하게 작용해야만 하는 것이 또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김진명은 이번에 너무나도 큰 모험을 걸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까지 고구려를 소재로 나온 소설들은 시중에 상당히 많았다. 아마 백제나 발해, 신라, 고조선, 부여, 가야 등을 대상으로 한 역사소설보다는 고구려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 거기다 유명한 작가들이 한번쯤은 고구려에 대한 소설을 썼기 때문에 왠만한 역사소설 중에서 고구려를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고구려 관련 역사소설을 쓸때는 독자들의 눈이 날카롭기 때문에 신중하게 써야한다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기도 하다.

고주몽(고구려 건국초) - 최항기 저/한동주 그림/김용만 감수, 함께 읽는 책, 2004년 2월, 9000원.
소서노(고구려 건국초+백제 건국초) - 이기담, 밝은 세상, 2004년 12월, 8500원*2권.
광개토대제(4~5세기) - 정립, 아이디어북, 2002년 7월(개정판), 8000원*10권.
왕도의 비밀(4~5세기) - 최인호, 샘터, 1995년 4월, 6000원*3권.
연개소문(7세기) - 유현종, 행림출판, 1997년 8월, 6000원*7권.(대제국 고구려 6권으로 개정판 나옴)
연개소문(7세기) - 박혁문, 중명출판사, 2003년 1~3월, 8500원*5권.
고구려(7세기) - 정수인, 새움, 2005년 2월, 8500원*5권.
우리나라 삼국지(삼국시대 전부) - 임동주, 마야, 2005년 9월, 9000원*10권.(현재 1권만 출간됨)

지금까지 주인장이 본 고구려 관련 소설은 환타지 소설을 제외하고는 대강 위와 같다. 시기적으로 봐도 고구려 후반기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지, 그 이전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는 거의 없다. 그나마 연개소문과 관련된 소설도 유현종이 한번 쓴 이래로 계속 재탕삼탕된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할만한 부분도 아니다. 유현종은 그의 작품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후 계속적으로 별다른 내용의 수정없이 개정판을 냈으며 나중에는 '대제국 고구려'라고 아예 제목까지 바꿔서 개정판을 냈지만 결론적으로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현종 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인 연개소문에 대한 고증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그 이후에 나온 '고구려'라는 소설만 보더라도 연개소문에 대한 묘사는 유현종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이는 연개소문과 관련된 소설이 앞으로 출간되는데 있어 굉장히 좋지 못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고구려 후반기에 관련된 소설만 나온 것도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고구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불리는 광개토호태왕을 다룬 역사소설이 없다면 말이 안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최인호가 쓴 유명한 소설, 왕도의 비밀이 있고 정립이라는 사람이 쓴 광개토대제가 있다. 우선 전자는 이미 널리 알려진 최인호의 작품 중 하나로 작은 소재를 갖고 역사를 소설로 재구성하는 기술이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고구려 전성기 전반을 다룬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후자는 광개토호태왕의 일생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역사소설이나 무협소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인데다가 '후연서'라는 허구의 역사서를 참고했다는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인 고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광개토호태왕을 인간이 아닌 신화적인 장식으로 치장해버린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고구려 초기사에 대한 소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고주몽과 소서노다. 둘 다 역사적인 고증에도 충실했고 당시의 상황이나 인물 묘사에도 충실했기 때문에 주인장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소설들이다. 마지막으로 삼국시대의 시작부터 발해건국 전반기까지 다룰 '우리나라 삼국지'라는 10권짜리 대작이 나왔는데 현재는 1권밖에 출간이 되지 않았고 역시 고구려 초기사를 다룬 부분은 이전 소설들을 답습하지 않고 훌륭한 서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오늘 언급할 살수이다. 살수는 특이하게도 고구려 후반기를 다룬, 하지만 연개소문 집권기인 7세기가 아닌 6세기대 이야기를 다뤘으며 그 주인공은 영양태왕 시절의 명장인 을지문덕이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칭찬해마지 않는 명장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 전하는 기록은 거의 없다.

이 점이 이번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문헌이든, 고고학적 사료든 관련 기록이 거의 없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사를 서술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작업인지 알기 때문에 김진명이 소설을 쓰면서 얼마나 고충을 겪었을지도 알 수 있을듯 하다. 하지만 정작 소설에 등장한 을지문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망감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주인장이 소설을 보는 내내 느꼈던 을지문덕에 대한 이미지는 '신선(神仙)'이라는 한단어였다. 그렇다. 예전에 '고구려'라는 소설을 보면서 환타지처럼 서술된 내용을 보고 황당했었는데 김진명이 그와 비슷한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니 그동안 갖고 있었던 김진명에 대한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뀔 정도였다.

우선 전체적인 내용을 보자면 흔히 그러듯이 당 태종과 연개소문을 라이벌로 묘사하듯이 김진명은 양광, 훗날의 수 양제와 을지문덕을 라이벌로 설정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근거는 희박하다. 이는 마치 연개소문이 수 양제 시절 중국 대륙에서 활약하면서 훗날 고구려 침략군이 될 당장(唐將)들을 만나는 식의 이야기 전개였는데 설정은 좋았지만 역사적 근거가 희박해 실패했다. 하필이면 그 매개체로 등장한 것이 백산말갈 족장 아야진이었는데 백산말갈은 고구려 말기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말갈 부락 중 하나였다. 돌지계등이 일족을 거느리고 수나라에 투항하는 등 말갈 세력 일부가 고구려에서 이탈하는 흔적이 확인은 되지만 국초 복속한 말갈은 고구려 멸망 이후까지도 고구려에서 이탈한 흔적이 크게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확인되는 것은 흑수말갈이라고 하는 독립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백산말갈을 마치 독립적인 세력으로 설정해 양광과 을지문덕이 그것을 매개체로 만나고 무협소설의 영웅처럼 비장한 말을 던지고 헤어진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말갈인을 고구려 백성으로 선포하고 말갈인의 힘을 전쟁에 동원한다는 설정도 조금 어폐가 맞지 않은 부분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국정에 참여하면서 영양태왕을 비롯한 고구려 각계각층이 영웅으로 알고 있었다고 묘사된 을지문덕. 하지만 그에 대한 묘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을지문덕이 되어야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 인물 묘사에 더 치중한 인물은 정작 수 양제였던 것 같다. 수 양제는 능력은 있지만 어떤 광기(狂氣)에 사로잡혀 피를 부르는 인물로 그려져 있었는데 어느정도 소설적 장치로 재구성한데 성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라이벌인 을지문덕에 대한 부분은 거의 베일에 가려진채 소설은 진행된다. 그리고 을지문덕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맨인블랙1'이라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가 든 구슬로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외계인을 연상케 할 정도다. 동아시아 전장을 주름잡고 한손에 쥐었다폈다 하는 식의 묘사라니. 황당하기까지 했다.

소설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과장과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작업이 어떠한 근거도 없이 행해진다면 그 결과물을 바라보는 독자들은 날카롭게 비판을 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진명의 소설이기에, 이미 '가즈오의 나라'라는 소설에서 어느정도 만족했던 차에 봤던 소설인지라 더욱더 실망감을 안았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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