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부 1
이덕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 운부는 승려들 가운데 뛰어난 일여, 묘정, 대성 법주 등 일백여 인을 얻어 그 술업을 전수시키면서 팔도의 중들과 체결하였다. 그리고 장길산의 무리들과 결탁하고, 또 이른바 진인 정, 최 두 사람을 얻어 먼저 우리 나라를 평정하여 정성을 왕으로 세운 뒤에 중국을 공격하여 최성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였다.

숙종실록 23년(1697) 1월 10일 --

이덕일하면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대중적인 역사서적을 쓰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기 위해 책을 펴내는 박영규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그런 대중서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송시열을 비롯한 조선시대 당쟁사에 대해서 다양한 책을 쓰셨는데 조선사에 문외한인 주인장에게 있어서는 이덕일의 책이 더욱더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덕일이 역사개설서가 아닌 역사소설을 썼기에 흥미를 갖고 구입한 책이 바로 이 책, 운부(雲浮)다. '뜬구름'이라는 뜻의 이 제목은 다름아닌 사람의 이름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숙종실록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답사를 다니면서 이상하게 숙종 년간에 많은 사찰이 지어졌는지를 궁금해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불교 억압으로 숙종 시대에는 이미 불교가 자리잡을 공간이 많이 줄어든 조선이었건만, 이상하게도 왠만한 조선시대 사찰들은 숙종때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몰랐다가 숙종실록을 보고 위의 기록을 본 순간 깨달았다고 한다. 그건 바로, 숙종 시대에 이런 불교계의 반항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나자 불교계와 민중들에 대한 고도의 회유책이자, 두려움의 소산으로서 이런 사찰 중창이 잦았다는 것이다. 제목도 그렇고, 소재도 그랬지만,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배경까지 알게 되니까 이 책이 정말로 재밌는 역사소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틈나는대로 읽다보니 정확히 4일만에 3권의 책을 모두 읽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사학자가 쓴, 가장 역사적 사실과 근접한 역사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소설들이 약간의 뼈대만을 역사적 사실에서 차용하고 대부분의 내용들을 상상력에 근거해서 만들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등장인물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한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더욱더 주인장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자아내게 했다. 이는 조선시대의 역사를 잘 알려주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사료가 남아있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으나 당시의 여러가지 시대적 정황을 일관된 주제로 꿰어맞춰 소설적 구성요소로 재창조한 저자의 능력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주인장에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대강의 내용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운부라는 승려가 있는데 당대의 고승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이영창이라는 풍수가 겸 모사꾼이 조직을 운영, 관리하는데 그의 주 임무는 도성의 동향을 파악하고 삼광사한이라는 7명의 동지를 모으는 일이었다. 그리고 운부 밑에는 묘정, 대성 법주, 일여 같은 문무에 능한 승려들이 제자로 있으면서 전국 팔도의 승려들과도 연락해 임난때 결성되었던 승군(僧軍)을 재조직하고, 따로 장정들을 모아 사병(私兵)을 육성하는 한편, 황해도 구월산 등지에서 기병 1천, 보병 5천을 거느리고 있던 당대 최고의 명화적 장길산과도 결탁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당시에는 남인과 서인을 오고가면서 정권 갈아치우기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있었던 숙종이 있었는데 그의 결단력과 잔인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서인 노론의 모사꾼 김춘택과 서인 소론의 모사꾼 한중혁이 서로 환국(정당 갈아치우기)을 기도하나 한중혁의 서투른 작전이 실패하고 서인이 위기에 처한 순간, 김춘택에 의해 남인 정권은 서인 정권으로 바뀐다. 이와 동시에 폐해졌던 민씨가 다시 중전이 되고 장희빈이 중전의 지위에서 떨어진 것 역시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당쟁이 진행되는 사이, 한중혁을 따르다 환국이 실패해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한 자들, 그리고 같은 서인이면서도 환국에 가담했으나 이후 서인들에게 배신당한 중인, 서얼들이 개국을 꿈꾸는 운부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거사일이 다가오고, 이제 막 힘을 잡은 서인 정권은 큰 위기에 봉착하나 사소한 실수로 모든 거사 계획은 탄로나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 파견되어 내부에서 반란군들과 호응하기로 한 이영창은 김춘택에서 사로잡혀 결국은 죽임을 당하는데, 이영창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자신이 꿈속에서 지어낸 일이라고 진술하면서 180여대라는 살인적인 장형을 받고 웃으면서 죽어간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우선은 숙종실록의 간략한 기록을 토대로 3권이라는 분량의 소설책을 써낸 저자가 신기할 따름이다. 이는 당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당시 숙종 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저자는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 결과 마치 주인장이 그 시대의 일을 직접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내용은 스피드있게, 박진감있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 점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최고의 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다.

또한 이런 역사적 사실은 당시 민중들과 불교계의 사정을 잘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런 왕조가 500여년이나 지속되었는지 다시 한번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현재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역대 한국사에서 조선왕조때처럼 개국과 반란 시도, 임금의 암살, 정치적인 혼란이 지속되었던 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정말 500년 역사가 무색해지지 않나 생각한다. 임난때 이미 망했어야 할 나라, 하지만 그 이후로 200여년이나 더 존속하면서 결국은 무시하던 섬나라 왜놈들에게 국권을 상실당한 자랑스런(?) 나라. 주인장은 이 책이 최근에 본 역사소설 중 가장 볼만하고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주변에 많이 권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되었는지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암튼, 한줄의 기록에서 3권의 소설이 나올 수 있고, 그 3권의 내용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거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는 점만으로도 주인장은 이 소설이 진정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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