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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전쟁
로렌스 H. 킬리 지음, 김성남 옮김 / 수막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War Before Civilization : The Myth of The Peaceful Savage

 

이 책의 원제다. 직역하면 원시전쟁 : 평화로운 야만인의 신화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역자는 좀 더 강렬한 표현을 썼다. 원시전쟁 : 평화로움으로 조작된 인간의 원초적인 역사라고 말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뭔가'의 억제와 통제 속에서 형성된 시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문구였다. 그밖에 '구멍이 뚫린 두개골', 'Black & Red'가 조합된 표지와 함께 제목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전해주는 강렬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로렌스 H. 킬리는 선사시대 고고학 전공자로서 수많은 유적들을 조사하면서 전쟁의 흔적들을 끊임없이 발굴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선사~고대인들의 삶은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전쟁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사회 활동이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물론 저자 역시 학부 졸업논문을 쓸때만 해도 '중미 지역의 초기 문명들이 평화로운 환경에서 발전했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고고학계에서 '전쟁'이라는 주제를 의도적으로 싫어해 연구에 많은 지장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전쟁狂이거나 호전적인 인물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인류의 삶 속에 끊임없이 있어왔던 전쟁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전쟁을 제어하고 인류 사회를 보다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저자의 오랜 경험과 학술적 고민이 만들어낸 연구 성과가 바로 이 책인데, 무려 20여 년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번역서가 국내에 나온 것이 참 씁쓸했다(필자는 역자의 소개를 받아 이미 수년전에 이 책을 읽은 바가 있는데, 영어 실력이 부족해 그 당시 상당히 고생했던 기억이 났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평화 모두를 알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그런 고민을 하면서 첫장을 넘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럼 목차부터 한번 살펴보자. 첫장에서 저자는 '평화로움으로 조작된 과거'라는 제목을 달고 원시전쟁의 개념과 원인, 원시전쟁을 바라보는 서양학계의 상반된 시각 등을 소개하고 있다. 어째서 오늘날 우리가 원시전쟁은 별거 없었고, 위험하지도 않았으며,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주제라고 인식하게 되었으며, 원시시대는 평화로운 시대였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연구사 검토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원시전쟁을 바라보는 2개의 상반된 시각은 '토마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부터 시작한다. 2명 다 중-고등학교 철학(및 도덕) 시간때 배운 인물인만큼 그들의 명언부터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먼저 홉스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요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원초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유를 포기하고, 중앙집권적 권력(군왕)의 통치를 수용하는 '계약'을 맺어야만 한다고 했다. 홉스의 저서『리바이어던(The Leviathan)』, 그리고 '성악설' , '왕권신수설' 등이 이것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그에 반해 루소는 문명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대신 인간의 성스러움을 내세웠으니 '고귀한 야만인''황금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성선설'과 결부되며, 중앙집권적인 권력 대신 국민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정치체, 즉 '직접민주주의'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로크는 둘 사이의 중간적인 입장에서 큰 의미가 없으니 제외한 듯 싶다). 이를 통해 보면 둘의 대립각은 딱 하나다. '원시사회의 인간이 평화로운 상태였냐? 폭력적인 상태였냐?' 그렇게 원초적인 인류 사회에 대한 대립은 시작된다(자아! 독자 여러분들은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그러면서 저자는 얘기한다. 홉스와 루소 이후 신홉스주의와 신루소주의가 등장하고, 인류학계와 고고학계, 민족학계와 민속학계에서 끊임없이 전쟁과 인류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결국 원시전쟁은 위험하거나 중요하지 않았으며, 원시사회는 평화로웠다는 '신루소주의'적인 사상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문명에 대한 신루소주의적인 시각은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학계에서는 의도적으로 전쟁과 폭력에 대한 증거를 없애버리고 부정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아마 전쟁의 흔적인 무기를 모두 제의와 위세품으로 해석하고, 방어용 해자를 구획과 제의의 공간으로 해석하는 식의 접근을 말하는 것일게다). 그러면서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만약 원시사회가 문명사회와 접촉하기 전에 진정으로 평화로웠다면,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를 대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오히려 전쟁에 대한 증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해석하고, 전쟁의 실상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전쟁이라는 병폐를 없애는데 여러 학문(민족학 · 고고학 · 인류학 등)이 기여해야만 한다고 얘기하면서 저자는 수많은 전쟁의 증거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광범위함과 중요성 / 전술과 무기 / 전투의 형태 / 원시전사 對 문명세계의 병사 / 전쟁과 살상 / 원시전쟁의 이해득실 / 원인에 대한 논쟁 / 전쟁의 배경 / 평화에 대한 희망과 그 취약함 / 평화로움으로 조작된 과거의 뿌리

 

원시전쟁(혹은 문명 이전의 전쟁), 인류의 전쟁 본능 등에 대해 다룬 여러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인류학, 고고학, 민족학적으로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어 굉장히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위에서 보는 것처럼) 세부적인 항목들로 나눠 하나하나 분석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느낌'과 '상식'적인 시각에서 전쟁을 다룬 연구성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책 제일 뒷면 부록에 실린 여러 전쟁 관련 도표를 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나름 전쟁고고학을 공부하는 필자 입장에서도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은 적절한 것이며,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필자가 갖고 있던 생각과 다른 것도, 같은 것도, 몰랐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몇몇 부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대신하도록 하겠다.

 

Ⅱ. 전쟁의 광범위함과 중요성

 

 전쟁은 보편적 현상인가?

 

평화주의적 사회집단은 드물기는 하지만 모든 사회적 · 경제적 발전 단계에서 발견된다. 완전히 평화로운 농경집단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모든 형태의 폭력을 금기한 말레이시아의 세마이 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1950년대 말레이의 공산 게릴라들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이들이 영국에 정찰병으로 고용되었다는 것이다. 세마이 족은 병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게릴라들이 그들의 동족을 죽이자 매우 적극적인 전사로 변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 그들은 다시 평화로운 농경민으로 돌아갔다. 또한 스웨덴과 스위스는 과거 200년간 단 한번도 전쟁을 벌어지 않은 현대 국가 중 하나다. 18세기까지 가장 호전적은 사회 중 하나였으며, 호전적인 종족으로 꼽히는 바이킹족의 고향이 스웨덴이며,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기 수출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평화로운 사회집단은 어느 발전 단계에서건 나타나지만, 그 수가 매우 적을 뿐더러 세마이족이나 스웨덴과 스위스처럼 '평화 ↔ 호전'의 사회를 넘나들면서(그 기간이 짧든, 길든) 나타나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완전히 평화로운 집단도, 완전히 호전적인 집단도 없으며, 전쟁은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었을 뿐이다.

 

Ⅲ. 전술과 무기

 

 원시부족의 무기

 

발사무기(화살)는 원래 사냥에 사용되던 도구였다. 전투용 화살은 의도적으로 화살촉을 약하게 만들거나 자루에 약하게 결합시켜 자루가 뽑힐 때 화살촉 전부 혹은 일부분이 상처에 남도록 만들었다. 북아메리카 캘리포니아의 윈투족과 몇몇 부족은 사냥할 때는 화살촉을 자루에 단단히 묶고 옆에 홈을 판 화살을 썼지만, 전투 시에는 느슨하게 묶은 화살을 사용했다. 남아메리카 인디오들도 화살대에서 쉽게 분리되는 화살촉을 사용했으며, 마르케사스 제도의 부족과 카나리아 제도의 구안체 부족은 창촉을 창대에 약하게 묶어 부러질 경우 상처에서 빠지지 않도록 고안된 창을 사용했다. 그밖에 독을 바른 발사체 무기를 사용한 부족들 역시 상당히 많았다.

 

한국 고고학계에서 진행되는 석촉 연구에 있어 형태의 차이는 지역적 · 시기적 차이를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실질적인 기능의 차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그런 관심조차 없으니). 더불어 석촉은 기본적으로 사냥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며, 전투용 무기로서의 석촉이 연구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환호 혹은 목책으로 둘러싸인 취락을 공격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화살이며, 기습 혹은 매복에 가장 적합한 무기 또한 화살이다. 단순히 사냥하는데 필요한 도구로만 쓰인건 아니라는 소리다.

 

Ⅴ. 원시전사 對 문명세계의 병사

 

◎ 숨어서 하는 전쟁

 

원시세계에 대한 유럽 문명의 승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전투 방법과 우수한 무기보다는 우월한 교통 수단과 농업 기술로 나타나는 월등한 경제력과 효율적인 보급체계 때문이었다. 현대전에 있어서 게릴라들이 정규군과 싸워 이긴 사례는 많지 않다. 이는 보급체계가 없거나 현대적인 경제체제에 의한 보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명세계의 기강 있는 밀집대형과 난해한 군사기술이 원시부족의 느슨한 방식보다 낫다는 개념은 성립하기도 어렵거니와 차라리 환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미국은 20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고도 동남아시아의 게릴라들을 꺾을 수 없었지만, 걸프전에서는 인도차이나에 동원한 전력의 일부분만 투입하고도 세계에서 가장 병력이 많고 무장이 잘된 정규군 중 하나인 이라크를 궤멸시켰다. 이런 것을 봤을때 과연 전술로 타격하고, 기강으로 지배하여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원시전쟁이 지금의 전쟁과 비교해 과연 수준이 낮고, 그 정교함이 떨어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은 고도로 최첨단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지형, 자연조건, 기후, 인적상황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상 중 하나이다. 오히려 전자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전자기술 자체에 결함이 생긴다면 통신, 감시, 작전 등 모든 분야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 그 자체만 놓고 봤을때 과연 현대전이 원시전쟁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전쟁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의 인프라가 아니라면, 지금의 서구 사회가 이처럼 강력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제목이 이를 극명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총, 균, 쇠'라고.

 

Ⅶ. 원시전쟁의 이해득실

 

◎ 영토 획득과 상실

 

국가 이전의 부족전쟁 역시 영역을 변화시키고, 패자에게 빼앗은 땅을 승자가 갖는다는 면에서 문명사회의 전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복은 차치하더라도 현대 고고학계가 이주와 식민 관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사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고고학자 슬라보밀 벤클은 절멸이나 위력에 의한 강제 이주의 경우에도 고고학적으로는 단지 '승자들이 평화적으로 패자들의 영역에 공존'한 증거로만 나타난다고 했다. 그는 게르만계 마르코만니족이 켈트계 보이족을 상대로 거둔 승리에 대한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을 예로 들고 있는데, 고고학적으로는 게르만계 마을과 무덤 형식이 켈트 족들이 살았던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했다. 선사시대에는 매우 독특한 문화집단이 다른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 많지만, 이러한 영역확장이 폭력적이었는지 아니면 평화적이었는지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고고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제 중 하나가 점토대토기 집단이 청동기시대 후기(송국리문화 등) 집단과 어떻게 접촉하면서 한반도에 자리잡았느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동기시대 후기 집단이 초기 집단에 비해 어떻게 그 세력을 확장했느냐도 비슷한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교류, 이주, 전파 등등 문물의 이동 및 확산에 대해 학계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다. 다만, 집단과 집단의 충돌(다시 말해서 '전쟁')이라는 측면은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섣불리 손을 못 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대등한, 혹은 어느 한쪽이 우세한 문화(기술력과 경제력, 인구수 등등을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양측이 아무 이유 없이 평화롭게 교류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닐까 싶다. 평화는 그것을 누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때 이뤄지는 것이지, 마음만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Ⅹ. 평화에 대한 희망과 그 취약함

 

◎ 전쟁은 되고 평화는 안 되는 이유

 

전쟁이 존재하는 사회적인 이유 중 하나는 평화 비용이 너무 비쌀 때가 있다는 것이다. 때론 전쟁을 한다 해도 별반 잃을 것이 없고 오히려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전쟁은 젊은이들, 특히 미혼 청년들이 시작하고 수행하는데 가장 적극적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전쟁을 통해 잃을 것은 별로 없지만, 승리했을 때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연장자들이 이러한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을 자제시켜야만 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평화적인 노력의 산물을 소진시키는 동시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평화에 기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갖고 전쟁과 평화를 저울질하면서 선택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평화 대신 전쟁을 택하는가?

 

왜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가? 이는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와 맞물리는 질문일 것이며, 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젊은이(추후 사회를 이끌어나갈 중추적 멤버들)의 성장 동력과 호승심 때문에 전쟁은 필요한 것일까? 전쟁을 단순히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 있을까? 100만이 넘는 엄청난 정규군을 유지하면서, 세폐로 막대한 금액을 바쳐 동아시아의 평화를 샀던 송 왕조, 하지만 송 왕조가 해외에 뿌려댄 엄청난 돈은 곧 동아시아 화폐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의 성장을 가져왔다. 결국 전쟁보다 평화에 드는 돈이 더 많이 들었지만, 장기적으로 평화로 인해 얻은 수익이 더 많은 구조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평화가 돈이 많이 들지만, 종래에는 그것이 더 이득이 된다~라고 하는 확신과 신념이 자리잡는다면 사람들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하지만, 그 확신과 신념은 무엇이 보장해준단 말인가? 어떤 사회적 제도, 어떤 정치체제, 어떤 경제적 대가가 필요한 것일까?

 

인류학자들은 지난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홉스와 루소 사이에서 어정쩡한 타협을 이끌어 냈다. 즉, 원시전쟁은 빈번하고 일반적인 현상이었지만, 심각하지도 않고 치열하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민족학적 ·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나무창으로 싸웠던 원시전쟁이 네이팜탄으로 싸우는 현대전쟁보다 결코 평화로웠다거나 더 상황이 나았다고 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지 현대전쟁은 위계적인 정치체에 집중된 자원과 권력을 통해 수많은 국민들을 정당하게 전쟁에 내몰 수 있었으며, 전술적인 우위보다는 보급체계의 숙련 때문에 보다 더 '전쟁'스러워진 것 뿐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원시전쟁은 제한된 역량을 가지고 벌이는 총력전인 셈이다. 워털루 전투 이후의 200년간, 그리고 알렉산드로스(B.C 300년)에서 웰링턴(1800년)까지 약 2천년 이상을 건너뛰면서 서구의 전쟁 방식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이 책은 원시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인류가 가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폭력성과 전쟁에 대한 생각까지 끄집어 내어 결국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전쟁을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하고 있다. 저자는 전쟁을 연구하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 다음 것들을 꼽고 있다.

 

첫째, 교역은 폭력 투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으므로, 오히려 주요 교역 대상자들을 보다 세심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완벽한 군사적 안보라는 헛된 목표를 위해 순전히 기술과 무기 개발을 하기보다는 경제 발전과 평화적 기술의 진보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현재의 단위들이 상호 적대적인 집단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고, 만들 수 있는한 최대의 사회 · 경제 · 정치적 단위(이상적으로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고고학자들이 생산해내고 해석하는 물리적 정황증거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평화와 전쟁의 비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학자들이 선사시대에는 전쟁이 일반적이었으며, 중요한 영향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다. 전쟁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전쟁의 참상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호전적인 부족과 집단이라 하더라도, 전쟁에서 늘상 승리만 하는 것은 아니며, 늘 패배했을 때의 고통을 걱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사를 살펴보면 평화로운 기간보다 전쟁을 벌인 기간이 더 많았다. 전쟁이 나쁜 것이며, 불행한 것이며, 수많은 고통과 위험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류는 전쟁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자진해서 뛰어들어가려고 하는가? 이 책은 그런 고민 속에서 쓰여진 책이며, 그런 고민을 독자와 함께 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自問自答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아! 이제는 그 자문자답의 결과를 독자 스스로 갈음하고 정리할 때가 됐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어째서 우리가 전쟁이라는 주제를 더 자세히 알아야 하며,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단순히 전쟁이 멋있어서, 전쟁영웅이 대단해서, 전쟁에서의 승리가 남겨주는 역사적인 허세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난 전쟁을 통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를 고심하고 또 고심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지금 전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주변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지닌 군사대국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또한 매년 막대한 양의 '전쟁비용'을 들이면서 값비싸고 한시적인 '평화유지'를 이루는 국가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심하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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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바꾼 전쟁의 역사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는 오래도록 종군기자로서 생활하면서 대부분의 현대 전쟁을 몸소 겪은 독특한 경험의 소유자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뉴스위크>는 그를 '탁월한 재능으로 매스컴의 역할을 바꿔낸 인물'이라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르몽드>는 '생존해 있는 그 어떤 장군보다 더 많은 전쟁을 겪고 생존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이 쉽게 이해가 갔다. 처음 책을 사서 표지를 넘겨보고는, '적과 직접 교전하고,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참화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전달해왔기 때문에 그런 시각으로 전쟁과 관련된 책을 썼다면, 어떤 내용들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날씨라고 하는 테마와 전쟁을 어떻게 잘 연결시켰을까? 하는 기대감도 존재했고 말이다.

책의 전체적인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괴멸된 바루스의 로마 군단 (로마 vs 게르만족)
2. 가미카제, 신의 바람 (원 제국 vs 일본)
3. 비 내리는 파리의 밤 (프랑스대혁명)
4. 두 개의 다리를 건너라 (프랑스 vs 러시아)
5. '테쿰세' 라 불렸던 용사 (미국 독립전쟁)
6. 아일랜드의 대 감자 기근 (아일랜드)
7. 눈 속의 죽음 (제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vs 오스트리아)
8. 얼어붙은 독일의 전차부대 (제2차 세계대전 독일 vs 소련)
9.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 필리핀)
10. 불바다 (제2차 세계대전 서유럽)
11. 삼각주에서의 죽음 (베트남 전쟁)

시기적으로는 서기 9년 로마군의 게르만 침공에서부터 1965년 베트남 전쟁까지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쟁들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것인데, 뭐 대부분은 근-현대 전쟁에 치중하고 있어서 아쉽긴 하다. 근-현대에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최첨단 장비들이 나온다 하더라도 인간이 치루는 전쟁이라는 행위에 있어 자연의 위대한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면 그것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단, 반대로 근-현대전도 이러할진대 고대에는 오죽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면, 고대의 전투(혹은 전쟁)에 대해서도 적정량의 지면을 할애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고대 전투(혹은 전쟁)에 대해서는 단 2개, 로마에 대한 것과 원나라에 대한 것(그것도 시기 차이가 큰 동-서양 전쟁 각 1개씩)뿐만 있어서 개인적으로 고대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니 혹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은 괘념치 마시길).

또한, 목차를 가만히 보면 3장과 6장은 전쟁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물론 3장의 경우,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적 행보 및 혁명과 관련하여 전투라고 할만한 요소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의 제목과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6장의 아일랜드 대기근 또한 마찬가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 균 · 쇠』를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된 이 내용은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혹은 농경이라는 산업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언급할 때도 꾸준히 나온다. 이는『박정근의 고고학 박물관 - 선사시대를 이해하는 42가지 열쇠』에서 확인할 수 있다)에 대해 언급할 때 한번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즉, 전투나 전쟁과는 큰 상관없는 내용인데 어째서 여기에 이렇게 포함시켜 놨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원제를 다시 살펴봤더니 'The Weather Factor'가 아닌가. 그래서 혹시 원래 저자는 딱히 전투(혹은 전쟁)에만 국한시켜 날씨에 대해 쓴 것이 아닌데(물론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긴 했지만,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쟁 말고 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역사적으로 큰 사건으로 기록될만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내에서 번역할 때 이렇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암튼, 제목이나 목차에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만 넘어가도록 하겠다.

전체적으로 각 장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이미 알고 있었거나, 내용면에서도 새로운 것이 없었던 부분

1장. 괴멸된 바루스의 로마 군단(서기 9년 9월 11일) : 토이토부르거 발트 전투

2장. 가미카제, 신의 바람(1281년 8월 15일) : 쓰시마섬과 이키섬, 큐슈 북부에서의 전투

몇가지 지적사항! (전반적으로 작가의 동양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난 부분이었다)

1) 59쪽을 보면, 몽골기병이 말 위에서 복합궁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석궁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석궁과 활은 분명히 다른 무기인데, 왜 이렇게 서술했는지 의문이다.

2) 또한, 같은 쪽에 나와 있는 기마수병(騎馬水兵)이라는 표현이 생소해서 저자의 주석을 보니, 몽골군이 배를 타고 물을 건널 때에도 항상 말을 데리고 있어서 이런 표현을 썼단다(이 무슨 -.-;).

3) 60쪽의...'무방비 상태의 한족과 고려인을 학살하는 것과, 자신의 가문과 명예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은 일본 무사를 상대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라는 표현은 또 뭣인지. 그럼 몽골이 중국 대륙과 고려를 정복했을 때에는 수월하게 일이 진행됐다는 뜻인가? 고려의 대몽항쟁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표현을 안 썼을텐데 심히 의심스럽다!

4) 61쪽의 미즈키[水城] 해안 성벽에 대해 저자는 주석을 달아 '6세기 이전에 한반도 사람들의 노역으로 축성되었다'고 적고 있다. 6세기 이전에 한반도의 정치 세력이 일본의 정치 세력보다 국력이나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우위에 선 상태에서 단순히 한반도 사람들이 왜 일본 해안가에 성을 쌓는 노역을 했을까? 이들 성은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조선식 산성'으로서 당시 이 성을 수축한 주체세력은 일본 내의 한반도 도래인계열이었다. 그런 전후 사정에 대한 이해없이 단순히 '연대+축성의 주체'만 기술하게 되면 누가 봐도 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많은 내용일 수 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고대 한-일 관계사에 대한 저자의 인식 부족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5) 61쪽의...'한번 적진 속에 뛰어든 사무라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살상력이 뛰어난 검을 휘둘렀다. 그런 전투가 계속되자 몽골군은 자신들의 전투 방식을 잃어버린 채 보조군인 고려 병사들마저 포기했고, 이후 고려군은 가축처럼 도살되었다.'라는 표현도 참...전쟁의 주체는 몽골이지만, 고려를 단순히 보조군(아마 로마 군단에 예속된 보조군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으로 이해하고, 주병력인 몽골군이 퇴각하자 모두 도살되었다고 쓴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6장. 아일랜드의 대(大) 감자 기근(1845년 9월~1849년 7월)

2.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재밌게 재구성 혹은 각색되어 흥미롭게 본 부분

4장. 두 개의 다리를 건너라(1812년 11월 25일) :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스투디안카 마을 근처에서 나폴레옹이 2개의 다리를 급조한 것은 잘 몰랐었다. 한겨울에 공병대장 에블레의 지시에 따라 토목병 300명이 과감하게 명령을 수행했고, 결국 그들은 믿기지 않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저자의 주석에 의하면, 이로부터 130년 뒤에 독일 전차부대가 이 부근을 지나갈때 그 다리의 일부를 보았다고 하니 당시 프랑스 토목병들의 헌신과 희생이 대단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순간, 당시 상황은 수 양제의 별동군 30만 5천명이 고구려에서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11월 26일 정오에 다리가 완성되고 1시간에 500명씩 천천히 도하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만들어진 다리는 위태위태했다. 27~28일 양일간 나폴레옹군 중 상당수가 얼음물 속에 쳐박혔고, 봄이 되어 얼음이 녹은 뒤에 러시아 농노들은 3만 6천구의 프랑스군 시체를 그곳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50만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 여기저기 6개월간 두들겨맞아 넝마처럼 변했고, 결국은 수천명만이 목숨을 부지해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폴레옹의 실책은 129년 뒤 어느 독일의 한 최고 통수권자에 의해 또 다시 되풀이 되었고, 그 내용이 이 책의 8장에 서술되어 있다. 이 부분을 또 재밌다고 느낀 이유는 최근에 읽은『프로이트 : 20세기의 해몽가』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책의 123~125쪽을 보면, 나폴레옹 1세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이 간략하게 담겨 있었는데 프로이트는 그를 두고 '나폴레옹은 그의 형 조셉프(Joseph)를 운명적 경쟁자로 느끼고, 기본적인 적대감을 느꼈다. 그가 미망인 조제핀(Josephin)에게 열정적인 집착을 보인 것, 그가 이집트 원정을 나선 것, 그가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러시아 원정을 갔다가 망한 것은 조제핀에 대한 불성실과, 조제프에 대한 사랑이 원래의 적대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데 대한 자기 징계였다'는 재밌는 해석을 하고 있다. 굳이 비슷한 예를 따지자면,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과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에 있어서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군주 개인의 심리적인 상태를 분석한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5장. '테쿰세'라 불렸던 용사(1813년 10월 5일) : 쇼니족 추장의 인디언 독립전쟁

미국 정규군과 인디언의 전투라고 하면 아마 1876년에 리틀 빅 혼에서 미육군 제7기병연대 700명이 전멸한 것을 많이들 떠올릴 것이다. 그 전투의 주인공은 '웅크린 황소(Sitting Bull)'라고 불리는 인디언 추장이었다. 그밖에 '제로니모'라고 알려진 아파치족 전사가 있었으며, 이러한 인디언의 강렬한 저항 대한 오래된 추억은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또 다른 인디언의 영웅, 테쿰세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테쿰세의 저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가 영국군과 군사동맹을 형성한 것도 몰랐던 사실이며, 동시기 그가 영웅으로서 대접받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테쿰세가 템즈 강 전투에서 승리했어도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 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필자 역시 동의하게 되었다. 전투에서 이겼더라도 미국인 이주민들은 꾸준히 인디언의 영토로 유입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골드러쉬와 상관없이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결국 인디언을 압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위대한 아파치족 전사 제로니모 역시도 미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술에 정복당해 죽지 않았던가(그의 어이없는 죽음 클릭 ☞). 현지 원주민이 그들을 식민지배하려는 서구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지형상의 이점을 챙긴다는 것은 어찌보면 상식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테쿰세와 관련된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어 좋았던 부분이다.

8장. 얼어붙은 독일의 전차부대(1941년 12월 5일) : 독일 중부집단군의 러시아 진격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에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세부적인 전쟁 진행 과정에 대한 묘사가 좋았고, 세세한 몇몇 부분은 몰랐던 것이라서 좋았다. 예를 들면 '스탈린의 유목민 부대(Hordes)'와 아파라트와 리하르트 조르게 등 일본 내 소련의 첩자에 대한 부분, 그와 관련하여 소련이 극동군,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일대의 모든 군 병력을 동원해 독일군을 막아낼 수 있었던 부분 등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소련의 거대한 영토와 자원, 막대한 인구와 물자도 그렇지만 동장군이라는 재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10장. 불바다(1944년 12월 24일) : 벌지 전투

1944년 12월 16일에 시작하여 1945년 1월 27일까지 진행된 벌지 전투는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으면서도 가장 성과가 없었던, 무의미한 전투가 아닐까 싶다. 몽고메리 장군이 야심차게 준비한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하고, 히틀러는 '라인을 수호하라' 작전을 벌인다. 흔히 아르덴 대공세로 알려진 전투가 바로 이것이다(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유명한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 대강의 전쟁 진행 과정을 알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독일군은 제공권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아르덴 숲이 안개로 뒤덮이는 겨울을 작전 시기로 잡는다. 하지만 정원도 부족하고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에서, 결국 작전은 제대로 수행되지 못 하고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연합군의 부활한(?) 제공권에 의해 독일군은 격멸된다(저자의 표현이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의 문이 열렸던 바로 그 날, 히틀러의 군대는 아우성을 지르며 지옥의 불길 속으로 떨어졌다!'). 이상의 과정이 쉬우면서도 흥미롭게 서술되고 있어 옛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3. 잘 모르고 있었거나 아예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재밌게 본 부분

3장. 비 내리는 파리의 밤(革命曆 2년 테르미도르[熱月] 9일 - 7월 27일) : 프랑스 대혁명

날씨와 관련된 내용보다는 당시 정치적인 상황은 어떠했는지~가 주된 내용이지만,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전혀 몰랐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볼만 했다. 특히 혁명이라는 거국적인 사건이 파리라는 도시 안에서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 그 긴박감이 잘 묻어나왔고, 그 과정에서 여름 폭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7장. 눈 속의 죽음(1916년 12월 13일) : 1915~1918년에 벌어진 1차 세계대전 중 알프스 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아는 바가 많이 없지만, 특히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금시초문이었다. 당시 알프스 전쟁이 벌어진 전장을 그린 지도를 보니 '뜨악!' 소리가 날 정도로 주요 전선이 위치한 곳은 험난한 산악지대였다. 베르넬 산(3,035), 마르몰라다 산(3,342), 메초디 산(2,734), 세라우타 산(3,035), 콜디라나 산(2,462), 시에프 산(2,426), 카스텔로 산(2,360), 토파나 산(3,720), 팔차레고 산(2,071), 오르틀러 산(3,902) 등등 엄청난 고지대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니...쉽게 상상이 안 갔다(역사가들이 그 곳에서 벌어진 전투를 설명할 때 '바위와 얼음 속의 전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절대 공감했다!). 알프스라고 하면 한니발이 로마군의 허를 찔렀을 때 넘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아주 생소한 내용이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양자는 알프스 산맥에 형성된 전선을 중심으로 대치했지만 지리한 싸움만 계속되고, 무의미한 희생만 지속될 뿐이었다. 이탈리아는 최정예 산악 군단인 알피니(Alpini) 군단의 병력을 연이어 투입했지만, 산 정상을 장악하기 위한 공방전은 그칠 줄 몰랐다. 그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황제수비대는 산 여기저기에 벌집처럼 구멍을 뚫어 질서정연한 빙하도시를 만들면서 이탈리아군의 공세에 대응했다. 특히 콜디라나 산(양털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 이탈리아군이 하도 많이 죽어 이탈리아군은 이를 피의 산이라는 뜻으로 콜디상귀라고 불렀다고 한다)을 둘러싼 쟁탈전이 치열했는데(마치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 피의 능선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6개월 동안 이 곳에서 이탈리아군이 입은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부상 장교 199명, 사망 장교 104명, 작전 중 실종 장교 14명, 부상 사병 5,160명, 사망 사병 1,050명, 작전 중 실종 사병 435명'. 교전으로 인해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 못지 않게 눈사태로 파묻힌 병력의 수치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한뼘의 영토도 넓히지 못 했다고 하니...인간의 어리석음이 거대한 자연 앞에 여실히 드러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9장.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1944년 12월 18일) : 미 태평양함대의 수난

다가올 필리핀 전투를 앞둔 미 해군 38기동부대 소속의 132척에 달하는 함선들은 역사상 가장 최악의 태풍 궤도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만다. 그 결과, 항공기 146대와 헐 호, 모니건 호, 스펜스 호 등이 실종되었으며 몬터레이 호, 케이프 에스페란스 호, 알타마하 호, 마이애미 호, 산하신토 호, 카우펜스 호, 알윈 호, 듀이 호, 히콕스 호는 전투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또한 790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얼핏 보면 거의 진주만 공습때의 피해에 맞먹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12척의 함선 전투 불능 혹은 침몰, 항공기 188대 손실, 2,400여명 사망). 하지만 이건 순전히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에 의한 피해였다니,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타이타닉'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침몰을 비롯해 해양 재난사고에 대해서는 종종 그 무서움을 듣곤 하지만, 미 태평양함대가 이러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정말 일본 입장으로서는 '카미카제[神風]'를 믿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무리 최첨단 설비를 갖춘, 위용이 대단한 함선이라 하더라도 태풍이 불어닥친 망망대해에서는 한낱 종이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현대식 장비를 갖춘 전함들도 그러한대, 고대 해전에서의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예측할 수 없는 전황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지 쉽게 짐작이 갔다.

11장. 삼각주에서의 죽음(1965년 8월 2일) : 베트남 전쟁

이번에는 정글이다. 지금까지 험난한 숲(1장)과 망망대해(2장과 9장), 험준한 산지(7장), 광활한 벌판(4장과 8장) 등이 나왔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열대우림 지역 역시 무시무시한 자연환경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10년 가까이를 베트남에서 보냈다는 얘기를 서두로, 경험에 대한 좋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디엔비엔푸에서 식민지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지 못 했던 프랑스군 7,000명이 포로가 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들이 외면했다고 말이다. 미군 장성들은 프랑스군의 대패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어왔지만, 프랑스군이 쓴 보고서도, 보구엔 지아프 장군의 보고서도 읽지 않았다(당시 베트남의 지아프 장군이 그 전투에 대해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상세이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미얀마나 뉴기니아 같은 열대지역에서 정글전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특히 미군이 최첨단 장비를 보유했지만, 베트남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바오섬에 기습강하 작전을 나선 미군 부대의 상황을 마치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어, 정글에서의 전쟁이 어떤 느낌인지 더 잘 다가올 수 있었다. 확실히 진창에 습한 날씨,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 얼마 되지 않은 가시권, 물에 젖어 먹통이 되는 장비 등 정글에서 벌이는 전투는 최악의 조건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베트남 전쟁 역시 앞서 살펴봤던 몇개의 전투처럼 실패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유주의는 지켜지지 못 했고, 베트콩들은 결국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베트남의 기후는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에필로그 '2025년에 기후 지배하기'는 날씨라는 것이 현재 사회와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기후를 예보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문하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 군사력 증대 요인으로 기후 지배하기 등 그간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었다. 미군 기상전문가들은 미국이 다음 세기 초의 기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제는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인간 대 자연의 싸움이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할 정도로 인간의 기후 지배史는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인위적인 홍수, 대양 해류의 변경, 열대 폭풍의 진행 방향 변경, 대기구멍 내기, 극지방 만년설 범위 팽창, 인위적으로 유도한 지진 등 군사기술로만 쓰이던 기술들이 이제는 전지구적으로 인간이 기후를 지배하는데 쓰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이 대목에서 <은발의 아기토>라는 일본 애니가 떠올랐다. 인간이 지구를 인위적으로 녹지화시키려다가 그 식물들에게 지구가 먹혀버렸다는 설정이 아주 독특했던 애니다). 예를 들어 2025년경 전 세계의 예상 인구는 90억에 이를 것이라 한다. 하지만 지구 전체의 물 중 마실 수 있는 물은 0.26%에 불과하고, 잘 사는 유럽에서조차 7명 중 1명만이 '건강에 좋은 식수'를 마신다고 한다.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는 물 배급이 '국가 안보'에 속하고 군에 의해 통제될 정도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간은 거의 모든 것을 잘 이용해 왔다.
그러나 신은 여전히 날씨를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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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병법 - 칭기즈칸의 세계화 전략
티모시 메이 지음, 신우철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0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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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쓰는 서평이다. 요 며칠 답사를 다녀오는 바람에 왔다 갔다 하는 교통편 안에서 책을 볼 시간이 있어서 책 1권을 겨우겨우 읽었다.

책의 제목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고, 내용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나온 이런 유의 책들에서 ‘칭기즈칸과 전략’을 언급한다면, 요즘 CEO들에게 필요한 경영 전략이나, 경제 혹은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을 배제하고, 순전하게 ‘군사적 전략’이라는 측면만 다루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칭기즈칸을 너무 통시적 · 거시적인 史觀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딱 군사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왜 별이 만점이 아니고 하나가 빠졌냐? 그건 뒤에서 언급하겠다.

맨 처음에 책을 펴면 지도 5장이 나온다. 1201~1208년의 몽골, 1206~1216년의 몽골 제국, 1230~1240년의 몽골 제국, 1250~1260년의 몽골 제국, 13세기의 몽골 제국 이렇게 5장의 지도가 있다. 지도를 시기별로 세분화해서 작성한 것은 좋았는데, 마지막 13세기 몽골 제국의 지도를 보니 고려까지 포함이 되어 있어서, 고려의 항복을 영토 합병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싶었다. 고려가 항복은 했겠지만, 영토를 보존하고 몽골 황실의 부마국으로서 왕실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은 고구려가 내정간섭을 하고 왕위계승에도 입김을 불어넣으며, 신라의 수도 한복판에 ‘신라토내당주’와 주둔군을 두었던 그 시기 고구려의 영토를 어디까지 그려야 하는지의 문제와 똑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뒤에 저자 TIP인 ‘발음과 음역 가이드’ 및 저자가 쓴 ‘감사의 말(Acknowledgements)’ 부분을 보면 저자가 상당히 여러 언어로 작성된 원서 및 참고문헌을 통해서 이 책을 썼음을 알 수 있었다. 몽골어, 중국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라틴어, 고대 프랑스어, 그루지야어, 일본어 및 기타 언어로 쓰인 여러 용어들을 정리하고 이해하는데 있어 저자가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싶었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학문적 깊이가 상당히 넓고 깊구나~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번역자가 저자만한 학문적 식견이 부족한 상태에서 번역 작업을 하다 보니 저자의 그러한 학문적 깊이가 오히려 반감되어 버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다시 뒤에 가서 언급하겠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
Chapter 1 몽골제국의 탄생과 성장, 1185~1265년
Chapter 2 몽골군의 징집과 편성
Chapter 3 몽골 병사의 훈련과 군장비
Chapter 4 몽골군의 관리 : 병참술, 군수품 보급, 의료
Chapter 5 정탐 활동, 전략 및 전술
Chapter 6 리더쉽
Chapter 7 몽골의 적대국
Chapter 8 몽골군과의 전쟁
Chapter 9 몽골군이 남긴 유산

그밖에 용어 해설과 색인, 참고문헌을 첨부했으며 도해 목록도 따로 싣고 있어 좀 독특했다(이 책의 도해는 7개 밖에 되지 않는데, 대개 도해가 적은 책에서 도해 목록이 실리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아서이다). 이를 전체적으로 보면 몽골군의 군대와 편제, 장비와 전략 및 전술에 대해 상당히 세분화하여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Chapter 1에서 몽골 제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언급하고(40페이지 내외), 나머지 부분은 전부 군사 및 전쟁과 관련된 부분을 적고 있어서 애초의 이 책을 쓰고자 하는 목적에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각 Chapter별로 내용을 세세하게 살펴볼까 하다가, 이미 몽골군에 대해서는 기존에 알려진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필자가 느낀 몇 가지 부분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1. 다양한 자료를 통한 몽골군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주목됨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개인적으로 고구려군의 편제와 군장비, 군수품 보급, 피상적인 전략 및 전술, 주둔군의 생활상 등에 대해 3편의 논고(학위논문 포함)를 작성한 바 있는 필자에게 있어 이 책은 궁극적으로 필자가 훗날 쓰고 싶은 내용의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구려군에 대해서 이처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자료(문헌사료+고고자료 포함)는 현재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에 따른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므로 이 부분은 추후 보다 치밀하게 파고들어서 해법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암튼, 이 책은 필자가 평소에 느꼈던 그런 궁금증을 한 번에 해소시켜 준 그런 책이었다. 몽골군에 대해서 굉장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건드리고 있는데(물론 저자 스스로 언급했듯이 자료가 없어 추론에 의지한 부분은 추론에 의지했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 즉, 자료가 없어 더 자세하게 언급하지 못 한 부분은 정확히 구분해서 기재했다는 의미이다), 객관적인 자료에 의지한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더 신뢰성이 갔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부분은 몽골군의 징집과 편성 및 관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몽골군의 십진법에 의존한 편제가 이미 유목사회에서 이전부터 알려진 것이지만, 테무친이 케레이트 옹칸의 휘하에서 쟈무카(안다)와 함께 있으면서 배운 것으로서 그는 칸이 된 다음 이를 더 다듬어 발전시켰다고 했다. 솔직히 유목사회의 십진법에 의존한 군사 및 행정적인 조직편제는 흉노 때부터 있어온 것인데, 몽골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솔직히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다. 다만, 이것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가 좀 더 제도화되어 치밀하게 운영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또한 칭기즈칸이 유목민족 군대가 갖고 있는 고질병인 ‘완고하지 못한 규율’을 바꾼 것이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도 밝혔다. 본래 유목민족의 군대는 승리하면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전리품을 약탈하거나, 패배하면 초원 각지로 흩어지는데 칭기즈칸은 약탈의 가부를 결정하여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한다거나, 패배했을 시 결집장소로 다시 모여 전열을 재정비하게 하여 기존 유목민족과는 차별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밖에 병참술과 군수품 보급, 의료와 같은 부분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관심 있는 부분인데, 몽골군이 목초지를 확보한 다음 그에 따른 병력의 규모를 정하고 그에 따라 원정의 승패가 결정된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또한 여러 마리의 암말과 숫말, 양 등을 대동하고, 기동성을 살릴 수 있는 식문화를 갖췄다는 내용, 부대 내에 무당과 최신 의술을 펼칠 수 있는 의료진을 동시에 갖추고 전쟁을 수행했다는 내용 등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세하게 한번 더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Chapter 7이나 Chapter 9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 몽골군이 강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無敵은 아니었음을 저자는 강조했다. 전문 전쟁기계로 훈련받은 맘루크군이나 일본의 사무라이에게 몽골이 패했음을 강조하면서 몽골군과 그들의 차이점을 지적한 부분이 흥미로웠다(하지만 필자는 이에 좀 반대한다. 맘루크군이야 그렇다 쳐도 사무라이를 맘루크군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고구려의 철기병(개마무사)이 한때 무적인 것처럼 언급됐을 때 나온 지적(이는 서영교의『고구려, 전쟁의 나라』에서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처럼 저자는 기존의 견해들을 폭넓게 수용하면서도, 이를 다시 체계적으로 자기化하여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것들을 다시금 자세하게 정리한 것도 있지만, 똑같은 사료를 두고 새롭게 해석한 것도, 기존과는 아예 다른 내용을 언급한 것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몽골군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2. 몽골군의 전략과 전술(추상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을 구체화함

무슨 뜻인고 하면,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전략과 전술은 상당히 추상적인 부분인데 저자는 이를 어느 정도 가시화하여 설명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Chapter 6에서 몽골군의 리더쉽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를 당시 몽골군의 名將(단, 몽골군의 용사로 지목된 인물들 중 의외의 인물들이 섞인 것은 좀 아니었다고 본다. 필자는 ‘토쿠차르’나 ‘초르마칸’이 제베, 수부타이, 무칼리 등과 동급으로 취급될만한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몽골군의 훈련제도, 몽골군의 전략과 군사적 전통이라는 측면으로 풀어쓰고 있었다. 이는 예전에 아드리안 골즈워디의『로마전쟁영웅사』를 보면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것인데, 전략과 전술을 그와 관련 있는 다른 소재를 통해 언급하고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그 책에서는 로마의 유명한 지휘관을 통해 당시 로마군의 편제나 군사자원, 전통, 전략과 전술,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당시 몽골군에게 있어 임무형전술의 개념이 스며있다는 식의 접근이었다. 몽골군은 지휘관이 죽더라도, 그 하위 지휘관이 임무를 부여받아 본래의 작전을 수행하는데(제베가 수부타이와 함께 무함마드 2세를 쫓는 도중 사망했지만 그의 부대는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이러한 체계와 군율은 칭기즈칸이 초창기에 이룩해놓은 업적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임무형전술에 대해 뚜렷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이는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매년 쿠릴타이를 열어 원정의 목적과 방법, 지휘관과 부대의 규모 등을 정하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전쟁 수행은 최고사령관의 결정에 맡긴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다르크 W. 외팅의『임무형전술의 어제와 오늘』을 보면서 고구려군의 전략 · 전술을 이와 연결시켜 이해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몽골군 또한 이것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차근차근 풀어쓰는 서술방식이 책의 이해도를 높임

이는 Chapter 7에서 잘 드러나 있다. 저자는 몽골의 적대국을 소개하면서 이를 크게 유목민족, 금나라, 호라즘제국, 러시아 공국, 맘루크 왕조, 송나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조직-전략과 전술-몽골의 적응과 수용(몽골군의 우수성) 등 3~4개의 소주제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친절하게 풀어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책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물론 다른 Chapter에서도 이런 식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났기에 이것만 소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논문 혹은 학술서라는 생각보다는 개설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되었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담을 덜 느끼게 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배은숙의『강대국의 비밀』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군사 분야의 내용을 서술할 때는 차근차근 풀어쓰는 것이 상당히 좋은 서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병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하게 나눠서 설명해야, 독자들은 자세하게 당시 사회상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자료만 충분하다면 이처럼 당시 군사 사회상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다. 뭐 이밖에도 세세하게 더 말하고 싶지만, 일단은 이 정도만 정리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처럼 상당히 잘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외국 원서 혹은 번역서의 한계는 어쩌지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외국 원서의 한계가 뭐냐~그건 바로 저자가 아무리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언어로 된, 다양한 사료들을 살펴봤다 하더라도 그건 연구자가 속한 학계의 관점이 수용된 연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칭기즈칸에 대한 우리나라 연구자가 연구를 진행했다면 분명 이 책에서 고려와 몽골의 7차례에 걸친 대전(무려 40여년간 진행)이 언급되었을 것이다(몽골과 이렇게 장기간 싸웠음에도 그 영토와 왕실이 유지된 나라는 전 세계에서 고려 뿐이다. 또한 고려 왕실은 이후 몽골 황실과 혼인을 통해 상당히 깊은 친연성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한 나라 역시 고려 뿐이다. 그런데도 고려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의아할 뿐이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고려와 남송의 병력을 갖고 일본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내용까지 보다 자세하게 소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212쪽이 ‘몽골에 항복하기 전에 철벽 요새로 몽골군에 저항했던 고려인’이라는 한 줄짜리 소개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일본과 관련해서는 213쪽의 ‘몽골 해군은 몽골군 휘하의 중국인과 고려인이 주로 작전 수행과 전선의 이동을 도맡기는 했지만, 병력은 송나라 해군이 훨씬 많았다’(후술하겠지만 책에는 병력은 송나라 해군보다 훨씬 많았다~라고 적혀 있어 앞뒤 문맥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필자가 고쳐서 적었다)라고 적혀 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그리고는 일본의 사무라이를 맘루크군과 비교하여 몽골군에게 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니었나 싶다. 뭐 한편으로는 한국사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타까움은 금할 길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13세기 남송의 팽대아(彭大雅)와 서정(徐霆)이 쓴『흑달사략(黑韃事略)』을 단 한 차례도 인용하거나 언급하지 않은 것 또한 의아했다. 아시아의 연구자들이 칭기즈칸에 대해 연구한다면, 그것도 칭기즈칸의 군사적인 분야에 대해서 언급한다면『흑달사략』은 거의 바이블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는 그보다 이른 시기에, 다소 성격이 다르고 내용면에서도 조금 부실한『몽달비록』을 자주 언급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자가 이를 몰랐는지, 아니면 일부러 인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의아할 뿐이었다.

그럼 번역서의 한계는 무엇인가. 위에서도 몇 번 얘기했지만, 문맥이 이상하다거나, 인명 혹은 명칭에 있어 몽골사에 정통하지 못 한 사람이 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대 몽골에 대한 정말 보고서로 유명한 13세기 남송의 ‘조홍(趙珙)’이 쓴『몽달비록(蒙韃備錄)』을 ‘자오홍의 멩다베이루(Meng Da Bei Lu)’라고 쓴 점이 가장 대표적이다(150쪽에서는 그냥 다베이루라고만 적고 있어 남들이 보면 당최 무슨 책인지 모르게 해 놨다). 번역가는『몽달비록』이 무슨 책인지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은 독자들이 익숙하게 읽을 수 있는 인명과 서명으로 바꿔줘야 했던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는 특히 인명에서 많이 나온다. 조치의 아들 바투를 ‘보타’와 ‘바투’로 혼동해서 서술한다거나, 간접접근전략으로 유명한 영국의 바실 리델 하트를 ‘리델 하르트(B. H. Liddell Hart)’라고 쓴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는 몽골사를 잘 모르고, 전쟁 · 군사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번역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잘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동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번역가가 자신의 주 전공이 아닌 책을 번역하는 경우, 대부분은 관련 연구성과를 참고하고 공부하여 번역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들을 여기저기에서 속출시키는 것을 보면 번역가가 게을렀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다시 출판사의 편집 과정에서 부주의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 지명도 한번 살펴보자. 번역가는 채주(蔡州), 연경(燕京)은 그냥 알아보기 쉽게 적어놨음에도 바로 뒤에서는 개봉을 ‘카이펑’이라고 적고 있었다. 뭔가 번역에 있어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태였다. 그러면서 뒤에 하남성(→허난성)과 산동성(→산둥성), 사천성(→쓰촨성) 등은 그대로 적고 있지만, 창-투 티엔, 춘현, 쉬우편, 루샨, 리엔강, 주강 등은 중국 발음을 그대로 옮겨놓고 말았다(마치 아는 것만 한국식 표기로 고치고 나머지는 귀찮아서 안 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별 4개밖에 받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번역가가 아무리 영어학과를 나와 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뉴질랜드 내무부 산하 번역원과 뉴질랜드 번역사협회에서 일을 했으면 뭐하나? 몽골사 혹은 전쟁 · 군사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며 게으른데 말이다. 참 책을 재밌게 잘 읽다가도 중간 중간 이런 부분이 나오면 정말 짜증이 나고 만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까지 잘못 평가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몽골군에 대해 세세하게 분야를 나눠 차근차근 풀어쓰는 방식은 앞으로 필자 또한 배우고 싶은 스타일이기도 하다(그렇게 쓸만한 자료가 모아질런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상으로 책에 대한 간단한 생각은 마무리하겠다(다음에 또 언제 책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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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전쟁의 기술 - 한국사의 판도를 바꿔 놓은 36가지 책략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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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평을 쓰는 것 같다.
게으름이 하늘을 찌를듯해 나 스스로에게 죄스러운 기분까지 드는 요즘이다.

그러던 찰나에 우연히 검색해서 얻은 책이 하나 있다. 일단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대강 짐작은 간다. 일단 한국사 중에서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있을 테고, 무슨 전략 · 전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현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 등등에 대해 얘기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책장을 열어봤다.

오~좀 의외였다. 다소 식상한 주제일 수도 있는『孫子兵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손자병법』이라고 치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나온다). 집에도 관련 서적이 몇 권 있었기 때문에 조금 실망하는 눈빛으로 책장을 넘겼다. 흐음~그런데 의외로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손자병법』을 한국전쟁사와 연결시켜 註解(라고 해도 될라나?)한 책은 지금까지 못 봤기 때문이다(혹시 있다면 그 책을 쓰신 저자분께 죄송하고, 무지몽매한 필자가 깨우칠 수 있게 그 책을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굳이 따진다면 중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오긴 했다(물론 자기네 나라에서 나온 책이니깐 자기네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馬駿이 쓰고 임홍빈이 번역한『손자병법 교양강의』가 그것인데, 기억으로는 그냥 무리 없이 읽혔던 책이었던 것 같다.

암튼 이 책으로 다시 돌아오자. 앗! 저자가 누군가 했더니『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등을 쓴 사람이 아닌가. 이 책들은 필자가 쉬엄쉬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만큼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뭐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특정 작가 혹은 저자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그 사람이 쓴 다른 책에 대해서도 그 이미지를 투영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 사람이 쓴 책에 대해 철저하게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고나 할까?). 암튼 약간의 호감을 갖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봤다.

프롤로그를 지나서 목차를 봤다. 재밌었다. 손자병법의 본래 목차는 시계편, 작전편, 모공편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순서를 다 바꿔버렸다. 시계편은 ‘전략의 조건’으로 고쳤으며, 세부 테마는 ‘깊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라’, ‘나의 적이 절대로 알지 못하게 하라’, ‘승산이 없다면 섣불리 나서지 마라’ 등으로 고친 것이었다. 일단『손자병법』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있어 한국식(?)으로 고쳤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말은 그만큼 원서를 충분히 읽고 이해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도 참신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책장 넘어가는 속도도 모를 정도로 읽어나갔다.

그럼 내용 일부를 살펴보면서 필자가 생각하는 잘한 점, 아쉬운 점, 나쁜 점을 하나씩 훑어보자.

먼저 잘한 점이다. 책을 딱 보면 알겠지만 한국사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를『손자병법』과 적절히 연결시킨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기존에 잘 언급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킨 점이 주목되는데 소수림왕의 절치부심에 대해 언급한 부분, 광종의 와신상담, 김조순의 정치적 승리, 고려 숙종의 은인자중과 선조의 양위 파동, 황금대왕 최창학의 일화, 유성룡의 후회, 개성상인의 용중지법, 요동공략 이후 고려군의 퇴각 전술, 노론의 왕세제 책봉, 송유진 반란 사건 등이 그러하다(을파소의 신중한 출사에서 최남선이 상상으로 구성했다던 내각은 처음 들어봤는데,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저자가 조선사에 대해 많은 책을 쓰고, 애초에 공부를 하려고 했던 분야도 메이지유신을 전후한 일본사였던 것을 보면 고대사보다는 중세 이후의 역사가 주전공 분야가 아닌가 싶다. 다만, 동 · 서양 고전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써낸 것을 보면 적지 않은 내공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책에서 고대사~근대사까지 넓은 시간 폭을 두고 다양한 아이템들을 선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손자병법』과 연관되어 처세술과 정치사 쪽을 서술한 내용은 탁월한 내용이 많다. 이는 당시 시대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처럼 잘 정리된 책이 나오면 즐겨 읽는 편이다.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움켜쥐어라’ 테마에 고려 숙종의 은인자중과 선조의 양위 파동을 집어넣은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전에는 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적의 역량을 분산시켜 격파하라’에서 고려 인종의 분열 전술을 언급한 것도 이채로웠다. 어떻게 보면 항상 피동적인 인물로 역사에 그려졌던 고려 인종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밖에 ‘상대방이 약해졌거나 힘을 쓸 수 없을 때 공격하라’의 정몽주의 무모한 공격 역시 재밌게 읽었다. 단순히 힘없는 구 왕조의 원로대신으로만 여겼던 정몽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런 부분은 예전에 이덕일의『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었을 때를 떠올리게 할만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럼 이제는 아쉬운 점이다. 목차를 주욱 보면 알겠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딱 하나 등장한다. 바로 ‘전투의 승패는 기세와 타이밍에 달려 있다’의 한니발의 포위 섬멸 작전이다. 이 책의 제목이『한국사 전쟁의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왜 국내의 사례가 아닌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해상전의 교본이라고 할 만한 한산도대첩과 대비시켜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육상전의 교본으로 불릴만한 칸나에 전투를 언급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책의 논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차라리 목차에 한산도대첩을 먼저 언급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라든가, 장수태왕의 한성 공함 작전과 같이 포위전으로 볼만한 내용은 충분히 있으니 한국사상의 전쟁을 하나 소개하고, 부차적으로 칸나에를 소개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실제 ‘빠르게 행동하고 빠르게 끝내라’ 테마에서는 광개토태왕을 소개하고, 뒤이어 알렉산드로스를 부차적으로 소개하는 구성을 선보였지 않은가? 그런데 왜 뒤에서는...).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저자가 전쟁이나 전투에 대해서는 그닥 최신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고려 말 요동정벌과 같은 경우도 4대 불가론에 대해 찬반 논쟁이 있는 만큼 다양한 견해를 다뤘으면 했는데, 그런 것 없이 이성계의 회군 그 자체에 주목한 면이 강했던 것 같다. 또한 신립의 오판에 대해서도 찬반 논쟁이 있는데, 기존의 통상적인 견해에 주목한 것 역시 그러했다. 부여 대소왕의 죽음은 기록이 워낙 적다보니 意譯한 면이 적지 않았으며, 사지를 선택한 계백의 전략 부분에서도 백제군과 신라군의 병력, 진형, 전투진행과정 등에 대해 다양한 연구 성과가 있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필자 생각에는『손자병법』이라는 원저의 인용과,『한국사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의 제목에 걸맞으려면 오히려 앞서 언급했던 정치사적인 내용이나 처세술에 대한 것보다는 이런 전쟁 · 전투에 대한 부분이 더 강조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한 것이 가장 아쉬웠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쁜 점을 언급하고 마무리하자. 확실히 저자가 고대사 전공자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고대사 부분에 취약한 면모가 많이 보였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광개토대왕을 광개토태왕이라고 칭하지 않은 점(광개토태왕이 태왕호로 불렸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이 먼저 눈에 거슬렸다. 또한 고국원태왕(이미 태왕호는 그 이전부터 사용했다는 것이 학계의 대세)이 모용황과의 대결에서 패한 것은 그가 과거에 승리한 경험과 선입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이는 오히려 아주 일반적인 전장에서의 잘못된 전술 채택일 뿐, 고국원태왕 개인의 오만이나 만용과는 상관이 없는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낫다. 차라리 이런 얘기를 하려면, 수-당과의 수십 년에 걸친 육상전에 따라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고 방어력을 강화하는 사이(왜냐하면 고구려는 그렇게 해서 계속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므로), 당에서는 수군을 강화해서 해로로의 直攻을 계획했던 사례를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그거야말로 거듭된 승리로 인한 경직된 전략 ·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본왕에 대해 소개할 때 당시 고구려가 북평, 어양, 상곡과 태원까지 점령하여 황하의 동쪽 지역을 차지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굉장히 위험한 서술이다. 왜냐하면 고구려는 점령전을 펼친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약탈전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부분들을 필자가 아쉬운 점(이미 저자의 전공이 고대사는 아닌 것 같다는 언급을 했었다)으로 추려내지 않고, 나쁜 점으로 추려냈는가 하면...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어서 다양한 견해가 나오는 부분 혹은 해석상 얼마든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부분들을 추려냈지만, 여기에 언급한 점은 필자 개인적인 판단에 잘못 해석할 여지가 적은 것들을 한번 골라봤다. 기존의 연구와 다른 견해를 내놓는 것이 나쁜 점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근거 없이 기존 연구와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전공서적도 아니고 교양서적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각주도 없고, 연구사도 없으며, 치밀한 논지 전개가 서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손자병법』을 우리식대로 해석한 이 책에 필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분명 우리의 옛 선조들도(아마 삼국시대 이전부터가 아닐까?)『손자병법』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며,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古典들을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과거 시험에 필요한 禮書 종류 이외의 兵書, 醫學書, 技術書 등은 이른 시기부터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시험은 안 봐도 상관없지만, 전쟁을 치루고 아픈 사람을 고치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민족의 自尊에 중요한 부분이니 말이다. 그 당시 우리 선조들도 아마『손자병법』을 우리식대로 이해하고 공부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주해하고, 새롭게 해석을 붙여 글로 남긴 자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이 책은 현대 한국인이『손자병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좋은 지표가 될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책은 400쪽이어서 두껍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용이 쉽고 재미있는데다가 각 파트가 끝나면 뒤에『손자병법』원문+해석을 같이 첨부하고 있어 책의 요지를 이해하기 쉬운 구성으로 해 놨기 때문에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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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보는 삼국지
김성남 지음, 이용규 그림 / 수막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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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볼까.
일단 오늘은 오랜만에 재밌는 전쟁사 관련 책을 소개할까 한다.
필자가 저자한테 책을 받아보고 한번 대강 훑어본 결과, 느낀 첫 소감은 ‘괜찮다~(요즘 유행하는 개그맨 버전처럼)’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미 수막새에서 출간하는 세계전쟁사 시리즈 첫 번째 책인『전쟁으로 보는 한국사』를 내놓은 바 있는데 그로부터 벌써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 저자의 책은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놓고 보니 표지부터 더 세련된 것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디자인을 선호하다보니 그렇게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책 왼쪽 상단의 ‘魏, 蜀, 吳’가 도안화된 것을 보고 확실히 느꼈다. 이전보다 책의 비주얼적인 면모가 많이 발전했을 것 같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럼 서두는 이 정도로 하고 일단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는 전쟁사를 전공하고 있는 국내의 몇 안 되는 그야말로 ‘전쟁전문가’이다(필자의 개인적인 바람도 그렇지만 암튼. -.-;). 그리고『삼국지』에 대해 저자는 과감하게 말한다.

‘『삼국지』가 과연 영웅들의 낭만적인 이야기일까?’

저자는『삼국지』(혹은『삼국지연의』)에서 우리는 흔히 영웅들의 이야기에 열광하고, 영웅들의 지략과 전략 등에 환호하면서 정작 그 영웅들이 수행하는 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들(병사와 민중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춘추전국시대 못지않은 혼란기였음에도 낭만적인 영웅호걸들의 무대로만 생각하는 것 또한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삼국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영웅들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성격에 주목하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 수행한 전투 및 전쟁에 대해서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혼란기였던 당시를 더 잘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필자는 적극 공감한다. 지금껏 삼국시대에 대해 수많은 전투와 전쟁이 있었고, 그 중심에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있었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정작 전투와 전쟁 그 자체에 주목한 연구자 혹은 마니아들은 적었던 것 같다. 항상 유명한 전쟁에는 그 전쟁에서 활약한 천재적인 지략가나 뛰어난 무용을 자랑하는 무장들이 언급되었을 뿐, 당시 시대상황(정치, 경제, 사회 등등과 연관된)과 연결시켜 전쟁을 이해하지는 않았었다(대표적인 예로 그 유명한 ‘적벽대전’을 언급할 때 우리는 흔히 제갈량의 화려한 언변과 방통, 주유 등이 펼치는 지략 싸움을 떠올리며, ‘관도대전’을 언급할 때는 안량과 문추를 단칼에 베어버린 관우의 무용을 떠올린다. 필자 역시도 그러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이 정도 집필의도를 갖고 책을 썼다면 필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하나 둘씩 넘겼다.

일단 책의 분량은 이전의 책과 큰 차이가 없었고, 중간 중간 삽입된 도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읽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먼저 예전에 필자가 저자의 책에서 꼽은 세 가지 특징들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1. 시대별로 역사를 구성하지 않고 몇몇 테마별로 단락을 구성함

2. 역사스페셜의 3D 화면을 보는 듯 한 자세하고 신선한 전장 지도가 인상 깊음  

3. 기존에 알고 있던 몇몇 전투에 대한 새롭고 합리적인 해석을 도출하고 있음

물론 이번 책은 100년이 책 되지 않는 짧은 시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시대별로 역사를 정리하지 않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시대별로 각 전투 및 전쟁을 꼽으면서도 나름의 테마를 정하고 있었다. 환란의 시대-군웅할거의 시대-천하통일을 향한 쟁패의 시대-천하통일의 시대 등으로 말이다. 여러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시대 순으로 나열하든, 안 하든 나름의 (일관된) 주제를 엿볼 수 있는 테마가 앞에서 제시되면 뒷 내용들을 이해하기가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시대 순으로 나누지 않고 그 안에서 다시 테마별로 세분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주얼적인 측면은 이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각 전투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저자는 왼쪽 페이지 하단부에 몇 개의 캐릭터를 이용해서 당시 전투의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보여주고 넘어가고 있었다. 먼저 전투의 명칭이 한문으로 크게 적혀 있었고, 그 앞으로 보병, 기병, 수군 등을 표시한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접전을 벌인 부대들의 규모와 부대장, 전투 시기와 장소, 전투 결과 등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어 뒤에 나올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디자인으로 이뤄졌으면 좋았을 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투에 대한 세부기록이 적은 한국사인 만큼 그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전투와 관련된 여러 삽화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필자는 특히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의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실은 것이 보기 좋았다. 아무래도 중국에 쉽게 가지 못 하는 상황에서 그런 사진들이 있으면 좋은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각 시대의 병사(보병이든, 기병이든)들을 표현한 토용을 실은 것이 볼만했다. 저자의 세심한 측면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볼만한 건 역시 전장 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도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표현된 점과 수계(水系)가 표현된 점이 좋았다. 이전 지도에는 수계가 없었는데, 전쟁이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산지뿐만 아니라 수계도 지도에 표현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부 전투 현황을 표현한 지도 역시 이전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마치 업그레이드되는 게임화면을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확실히 리니지1보다는 2의 그래픽이 돋보였고, 스타크래프트1보다는 2의 그래픽이 돋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전장 지도를 꼽으라면 먼저 ‘하비전투 상황도’를 꼽고 싶다. 문헌으로만 하비성이 잠겼다고 여기고 넘어가는 것과 지도로 대강이라도 보는 것은 분명 달랐다. 이것 역시 앞서 수계가 표현되고 표현되지 않은 지도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릉대전’의 상황도나 ‘양평전투’의 상황도도 색다른 느낌이었다(양평전투에서 고구려 중장기병의 활약상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지만 전후 양국의 정치상황을 고려한 추정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겠다). 둘 다 하비전투와 마찬가지로 문헌으로만 보던 전투 상황을 세밀하게 표현했으며, 당시 전투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른 재해석 부분은 크게 달라진 면은 없다. 이는 이미 삼국시대에 벌어진 수많은 전투 및 전쟁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구가 많이 진행됐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다만 전쟁사가의 눈으로 바라본 만큼 전투 및 전쟁에 대한 색다른 해석들이 적지만은 않다.

먼저 저자가 꼽은 전투를 보면 총 15개다. 이 중 황건적 관련된 전투가 2개(영천 · 장사 전투 / 청주 황건적 토벌전)와 촉한 멸망전, 서진 통일전 2개를 제외하면 하비전투, 관도대전, 적벽대전, 관중전투, 서촉 점령전, 한중 공방전, 촉한의 형주 실함, 이릉대전, 가정전투, 오장원 · 합비전투, 양평전투 등 11개(먼저 촉한의 형주 실함 때는 ‘위 · 오 동맹군’이 결성됐고, 적벽대전에서는 ‘유비 · 손권 동맹군’이 결성됐음을 기억하자)가 추려진다. 그리고 전투의 결과를 살펴보면 위나라(혹은 조조)의 승리로 끝난 전투가 7개(하비전투, 관도대전, 관중전투, 촉한의 형주 실함, 가정전투, 오장원 · 합비전투, 양평전투), 오나라의 승리로 끝난 전투가 3개(적벽대전, 촉한의 형주 실함, 이릉대전), 촉의 승리로 끝난 전투가 3개(적벽대전, 서촉 점령전, 한중 공방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삼국시대에 벌어진 수많은 전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저자는 나름의 테마에 맞춰서 전투들을 선별했고, 그것들의 역사적 가치가 어떠했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내용들이 나름의 일관성과 객관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때 전투의 결과만 놓고 봐도 위나라가 어느 정도의 國力(보다 더 자세하게 軍事力)을 보유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조조는 청주 황건적 토벌전에서도 승리했다). 즉, 저자가 정사 기록인『삼국지』를 근거로 최대한 당시 전투(전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려고 노력했음을 여기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일단 위에 언급된 전쟁들에 대해서는 웬만한 초등학생도 인터넷이나 책, 게임 등을 통해 알고 있을 테니 따로 부연하지는 않겠다. 다만, 눈여겨볼만한 해석이라고 할 만한 것들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먼저 인해전술이 단순히 대규모 병력으로 무식하게 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교차공격과 스워밍(Swarming, 무리공격)의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 혹은 농민들로 구성된 비정규 군사조직인 황건적이 이러한 인해전술로 숫자가 적은 관군에 맞서 크게 승리했다는 점(p.34), 조조가 청주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얻은 것은 5~6만여 명의 정예병인 청주병뿐만 아니라(이 부분은 저자도 언급한 바 있는 만화『창천항로』에 잘 나타나 있다. 조조의 군사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청주병이 강조되어 있다) 연주 및 청주를 기반으로 한 땅과 사람, 경제력이라는 해석(pp.52~53), 관도대전 당시 원소가 동원한 11만 명의 대군이 남으로 진군하면서 누런 먼지와 사투를 벌이다가 행군 도중 낙오되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해석(p.75), 관도대전에서 보급의 중요성을 세세하게 언급한 부분(pp.77~78), 적벽대전에서 전염하는 풍토병과 영양부족으로 패한 위나라군에 대한 설명(pp.97~100), 관중지역의 군사력과 기병 전력의 중요성을 설명한 부분(pp.107~109), 목우와 유마에 대한 생각(pp.187~188)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겠다. 이런 부분들은 기존의『삼국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좋은 또 다른 시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몇 가지만 더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저자는 책의 제일 처음에 ‘파국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실었다. 전한과 후한이 왜 다른 체제의 국가를 세울 수밖에 없었으며, 후한 말기에 삼국시대와 같은 군웅할거 시대가 왜 벌어졌는지 등을 소개했다. 그는 후한시대 지방행정의 기본 단위는 군(郡)과 현(縣)이었지만 후한 중기 이후가 되면 그보다 큰 규모의 행정단위를 관할하는 자사(刺史)가 등장하면서 군웅할거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보았다. 이전에는 단순히 망국(亡國) 말기의 일반적인 상황들(환관과 외척의 득세와 이어진 황실의 약화, 부정부패를 일삼는 지방 관리로 인한 민란의 발생, 민란 진압에 동원되는 변방수비군과 변방 방어력의 약화, 주변 이족들의 잦은 외침 등)로 인해 혼란한 시대가 찾아왔고, 각 지방의 권력자들이 각각 사병을 이끌고 패권을 잡기 위해 대립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보니 ‘서진’ 말기에도 각 군왕(왕족들이 봉해진)들이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어서 오래도록 혼란스러운 내란에 휩싸였으며, ‘당’ 말기에도 지방의 강력한 절도사들이 서로 세력 다툼을 벌여 오대십국 시대를 열었고, ‘청’ 초기에도 강력한 힘을 갖춘 지방 세력가들 때문에 삼번의 난이 벌어졌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인데 바로 ‘6장. 삼국시대와 천하통일’ 부분이다. 저자가 여러 전투들을 소개하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삼국시대와 그 뒷시기를 개괄한 부분인데 내용들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먼저 저자는 중국인이 갖고 있는 천하관 인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이는 중국이 끊임없이 분열하면서도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근본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내용이며 이후 삼국의 각 나라가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또한 ‘강북이 진정한 중국이다? - 위나라’, ‘강남인의 독자성 - 오나라’, ‘현실적으로 필요했던 천하통일의 명분 - 촉한’으로 챕터를 나눠서 각 나라별로 설명한 부분은 이 책의 ‘백미(白眉 - 이 역시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지만)’라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은 촉한 부분. 뒷부분에 저자는 삼국의 경작지 분포도를 소개한다. 산맥을 빼고 난 나머지 평지를 색으로 그려 넣었는데 촉한의 국력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뒤떨어짐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촉한은 ‘한 왕조 부흥’과 ‘천하 재통일’이라는 명분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왜 힘이 없으면서도 제갈량과 강유가 그렇게 북진을 시도했을까? 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앞서 필자는 저자가 썼던『전쟁 세계사』라는 책에서 참고문헌을 언급했더라면 학술적인 부분까지 보완하여 보다 정교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평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 중간 중간에 그렇게 선행 연구 성과를 각주 처리하고 있어서 학술적인 면을 보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외국(일본 혹은 미국)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하지 못 했던 세계의 시각을 접한다는 좋은 의미도 찾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앞 장과 관련된 내용을 그린 그림을 한 장씩 집어넣었는데 이게 어찌 보면 딱딱할 수 있는 책의 내용을 중화시켜 대중적인 면을 보완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전쟁으로 보는 중국사』에서는 이런 대중적인 면은 많이 없었던 게 사실이기 때문에 앞선 책들과 비교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앞의 내용 중 어떤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넣다 보니 조금 안 맞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끝으로 저자가 ‘양평전투’ 이후의 고구려와 위나라의 관계에 대해서『고구려사략』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p.232) 이에 대해서는 솔직히 어떤 평가를 내려야할지 잘 모르겠다. 진서(眞書)라고 평가받지 못하는 책의 내용을 함부로 인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객관적 사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비록 진위 여부의 논란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사 기록을 토대로 한 사실에 부연하여 참고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도 괜찮은 것인지. 이에 대해서 필자는 솔직히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뒷부분에 ‘수년 동안 절치부심한 고구려는 242년 요동의 서안평을 공격한 끝에 요동군을 회복하고 위나라의 배신을 응징했다. 그리고 산동성을 장악하고 현도를 수복하면서 위나라군을 유주와 병주까지 밀어냈다.’는 내용은『고구려사략』의 내용인지, 아니면 저자의 생각인지 좀 애매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얼핏 고구려가 산동성을 장악하고 유주, 병주까지 위나라를 몰아낸 일이 있었나? 싶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한 것 같다. 워낙 흔하게 알려져 있는 내용을 戰爭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내용들이 나열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기존 시각과 다른 시각에서 봤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분명 ‘아하!’하고 머리를 탁 칠만한 재밌는 내용들이 있으므로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쨌거나 내용적인 면이나 디자인, 책의 구성, 전장 지도 등등 여러 면에서 이전 책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이 책은 지금 이 순간, 필자가 저자의 또 다른 전쟁사 책이 나오길 기다리게 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도 같이 밝혀두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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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12-14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에 들려서 좋은 책 소개 많이 받고 갑니다.
늘 감사드려요^^

麗輝 2009-12-14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마린님도 오랜만이네요. ^^ 요새는 바빠서 책을 거의 못 읽었는데 그래도 좋은 책 소개 많이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연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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