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사신 광개토대제
강무학 지음 / 문예춘추(네모북)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작년 말 큰 인기를 끌었던 퓨전사극 중에〈태왕사신기〉가 있었다. 배용준이 주연을 맡은 데다가 광개토태왕에 대한 최초의 사극이라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사극이다. 그와 더불어 광개토태왕이 재삼 주목받은 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MBC-TV 역사드라마〈태왕사신기〉를 책으로 읽는다!'라고 소개하고 있어 처음에는 이 책이 드라마의 원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단지 그런 시류에 맞춰 나온 소설에 불과했다. 제목만 비슷하게 해서 꾸민.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저자는 광개토태왕을 대륙을 지배한 영웅으로 그려내고자 하고 있다. 영토를 크게 넓인 군주이자 주변 제국들을 정복한 위대한 정복군주의 像을 소설 속에서 그려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 점이 일단 별로였다. 아직도 광개토태왕의 겉모습에 치중한 묘사밖에는 할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재밌는 점은 제목에서는 광개토대제라고 했지만 실제로 본문에서는 오직 광개토왕이라고만 칭하고 있었다). 

책장을 넘겨 등장인물과 목차를 살펴봤다. 기존 역사소설과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개토태왕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모용수는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족이지만 실제 '광개토태왕비'에 적힌 고구려의 적대국가를 보면 잔국(후에 왜로 기록되는)과 백잔의 비중이 더 크지, 후연은 그닥 중요한 적대국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삼국사기』에 후연이 비중있게 다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은 정립이 쓴『광개토대제』가 광개토태왕을 그린 효시적인 소설책으로서 잘못 길을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든 느낌을 미리 말하자면 마치 이덕일의『오국사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스케일이 큰 내용을 말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이런저런 사건들을 배합해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고증이나 인과관계, 상호 연관성에서 미흡한 그런 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장을 넘길수록 그런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다. 

이 책도 역시 그 시작은 정적들에 둘러싸인 담덕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라면 다른 책에서는 정적들의 힘이 워낙 커서(황후와 국상 등등) 담덕이 정말 어렵게 위험에서 벗어나지만 여기에서는 아버지 이련이 어느 정도의 군사권을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담덕도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어 마치 주몽의 어릴적 행보를 그려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독특한 점은 봉상왕(저자는 봉산왕이라 적고 있다. 오타가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듯 하다)의 후손들이 미천왕의 후손들에게 복수를 하려한다는 설정을 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인데 충분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전진의 부견을 두고 불교와 황노술을 주변 국가에 퍼뜨려 그 힘을 약화시키려는 인물로 해석하고 있어 그 점도 독특했다. 알다시피 전진과 고구려는 전연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친선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이런 설정은 조금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다른 소설책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요소들을 삽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더불어 고구려에 석전을 담당하는 석포부대(돌팔매부대)가 있었다는 설정도 신선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자성어의 남발(특히 대화 도중에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은 진짜 NG였다. 저자가 6살부터 한학을 배워 그쪽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는 자못 한국사를 중국사의 시각에서 보게 되는 우를 범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런 흔적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또 참고자료들을 많이 살펴보지 않은 부분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人名이 부정확한 것도 그렇고,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팩션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도 그러했다. 특히 고구려의 경자대원정과 같은 대규모 남정에 대해 그 주적을 백제가 아닌, 백제를 도우러 온 왜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백제왕과 중신들이 원군으로 온 왜군들이 안 도와주고 돌아간다는 말에 쩔쩔매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 했다. 더불어 4세기 고구려가 요동뿐만 아니라 요서까지 경략하는 것으로 설정한 점, 광개토태왕때 이미 장안성 천도를 준비하는 것으로 그리는 점 등은 보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역사 고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대체 엉터리 내용만이 난무하는 역사소설을 읽고 대체 누가 광개토태왕의 일대기를 제대로 읽었다고 하겠는가(광개토땅에 묻힌 왕이어서 광개토왕이란다. 여기에서 GG쳤다).

또 하나 읽는 내내 신경쓰인 점은 문체가 마치 불필요한 설명문들의 조합처럼 여겨졌다는 점이다. 대만이나 홍콩만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만화책에 적절한 대화와 나레이션, 그리고 그림이 있으면 충분한데 그쪽 만화책들은 일일히 매칸마다 캐릭터들의 동작과 생각 등을 설명체로 친절하게(?) 적어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계속 그런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간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배경설명에서도 그렇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설명조로 꾸역꾸역 채워넣은 것 같았다. 그래서 주인장으로 하여금 약간 짜증을 느끼게도 했다. 573쪽이라는 분량이 적지는 않지만 재밌는 책이라면 이 정도 분량이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몇 부분들 때문에 읽으면서 거슬리는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분명 저자는 광개토태왕에 대한 연구성과를 많이 접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러했다면 아주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 인용과 묘사에 있어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기존 역사소설(광개토태왕을 다뤘던)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그런 부분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한 면모는 보인다.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려던 시도도 좋았다. 세부적인 묘사에서 새로운 내용들이 들어간 것 역시도. 하지만 서로 맛이 다른 음료수 4~5개를 섞어 이상한 맛을 내는 칵테일을 만든 것 마냥 그것을 마시는 사람에게 결코 좋은 느낌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광개토태왕에 대한 묘사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것, 당시의 시각이 아닌 요즘의 시각, 고구려가 아닌 중국적인 시각 등에 국한되어 있는데다가 짜집기를 잘 못해놨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반쪽짜리 소설책이 되고 말았다. 저자가 이것 말고도『연개소문』이라는 소설책도 썼던데 그것도 읽어볼 생각이다. 아마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쨌든, 이런 소설들이 자꾸 나와 밑거름이 되어 정말 좋은 역사소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소설책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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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4-02-06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광개토태왕 책 320 몇 쪽 되는거 있는데 중고책으로 다른 두꺼운책이 있길래 구매 하려고 했는데 이글을 보고 나서 안사고 기존에 있는거 보려구요 ㅋㅋㅋ

※억지로 쪽수를 늘린 것 같은 책은 지루해질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