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역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
조르주 장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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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권을 읽고 서평을 쓴다. 뭐 늘 그렇듯이 서평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정리하는 차원이지만 한권, 두권 쓰다보니 어느새 약간의 의무감(?)을 동반한 취미 생활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전에는 그냥 그때 그때 읽은 책, 혹은 누구의 추천을 받아서 읽은 책, 공부하면서 읽은 책 등을 무작위로 골라 서평을 썼는데 어느날 갑자기 서평을 시리즈로 나오는 책에 따라 주욱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예전에도 시리즈로 나온 책의 서평을 적어본 적은 있지만, 앞으로 계속 출간될 책의 서평을 그에 맞춰 주욱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예비군 훈련을 가면서 부터이다. 2박 3일 예비군 훈련을 하는 동안 비가 많이 왔었는데, 그때 군복바지 건빵주머니에 시공 디스커버리 1~2권씩 넣어두고 읽다보니 꽤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시리즈는 예전부터 분량이 작으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주인장이 즐겨봤던 책인데,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짬짬히 시간을 내서 1권부터 주욱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안 읽어본 1권을 구입해서 이렇게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다.

1권은 제목 그대로 문자의 역사, 즉 사람이 사용하는 문자가 어떻게 생겨났고,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현재 어떤 형태인지를 서술하고 있었다. 책의 첫장을 펼치니 딱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사건을 문자로 기록하는 사람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과연 그럴까? 하긴 조선시대 양반들을 생각하면 그렇긴 했다. 하지만 문자가 없이도 세계를 정복했던 칭기즈칸과 몽골의 기병들이 있었고, 문자가 없이도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국가를 형성하고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질 않았던가? 가까운 한국 고대사만 살펴봐도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글자를 아는 식자(識者)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최고 군통수권자인 왕의 자질을 웅대한 기상과 당당한 체격, 뛰어난 군지휘력 등으로 평가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그냥 계속 읽어나갔다. 저자는 14세기 중엽 프랑스의 성직자이자 궁신인 장 프루아사르를 언급했다. 그는 푸아티에 전투로부터 시작되는 그 시대의 전사(戰史)를 쓰기로 마음먹었고, 영국의 귀족과 전투에서 포로가 된 프랑스 기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기록을 수집해『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인, 브리타니, 그리고 플랑드르의 연대기』라는 책을 썼던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남긴 역사에 길이 남기고 싶은 사실들. 그것을 문자로 남김으로써 우리는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보다 생생히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순신이 남긴『난중일기』나 유성룡이 남긴『징비록』같은 기록들이 남아있어 전쟁에 대해 선조들이 남긴 기록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과연 이러한 문자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째서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을까?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저자는 인류가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보다 더 세속적인 이유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함도 있지만, 인류는 문자를 만들어서 농축산물의 수확량을 기록하거나 신전의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를 기록했으며, 역사적 사건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 사건에 대해 연대기적 성격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법전과 과학서, 문학작품들이 문서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문자체계를 통해 각각의 기록들을 남겼던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가장 최초의 인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흥하게 된다. 그리고 문자체계 역시 이 곳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중국과 이집트 등지에서도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권력자가 등장하게 된다.

『총 · 균 ·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자가 집약적 농경을 실행하여 잉여 생산물이 많았으며, 인구의 숫자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정치적 집단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은 곳에서 빨리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는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정도의 경제 구조가 갖춰져 있다는 의미가 되며, 그렇기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중국 등지에서는 글 공부로 먹고 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남자아이의 귀는 등에 달려 있다. 등을 때리면 말을 잘 듣는다.'는 격언이 있었던 것처럼 어릴때부터 글공부를 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다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왕이 자기를 신이라 생각하여 쓰기, 읽기, 산수 등을 배우려 하지 않았을 때 필경사들의 위력이 더욱더 강해졌다고 적고 있다. 세계사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허수아비 왕에 대한 내용 같았다.

덧붙여 저자는 중국의 문자체계를 언급하면서 B.C 2,000년 경에 만들어진 문자가 아직까지 큰 변화없이 계속 쓰인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적고 있다. 사실 그렇다. 서양에서는 알파벳이라고 하는 아직 획기적인 문자체계가 각지로 뻗어나가면서 크레타 선문자, 이집트 상형문자와 신관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등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것에 비해 중국에서 뻗어나간 한자는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지로 뻗어나가 오늘날까지 쓰이니 말이다. 저자는 한자에 아직도 모든 문자의 첫걸음이자 중요요소인 그림문자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日, 山, 木, 田 등은 모두 그림문자라고 해도 무방한 글자들이다), 정교한 원칙을 따르는만큼 굉장히 시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가령 '용(龍)'자에 '귀(耳)'자를 붙이면 '귀머거리 농(聾)'이 되는데 용의 귀로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니 이것이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반듯한 네모꼴을 유지하며 사전에 정한 필순에 따라 글을 쓰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아라비아 문자처럼 장식성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도 지적했다. 여담이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글의 네모난 규격성은 중국의 한자에서 따온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자는 알파벳의 탄생을 문자의 역사에 있어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파벳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언어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쓰이니 말이다. 물론 알파벳의 등장으로 인해 사라진 다른 어려운(?) 문자들한테는 안 됐지만 말이다. 암튼 이 부분에서 주인장이 놀랐던 것은 29자로 이뤄진 아라비아 알파벳이 굉장히 아름답고 장식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아라비아 서체의 진정한 장점으로 '무궁무진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알라와 마호메트의 얼굴을 그리지 못 하게 한 이슬람교 덕분에 아라비아 문자는 모스크나 기념비를 장식하는 주된 요소가 되었고, 아라비아 서예 그 자체가 뛰어난 예술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와 문자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는 동양에서도 그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군주나 조상의 이름과 똑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자가 아라비아 문자처럼 장식성이 강한 글자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피휘(避諱) 역시 특정 문화와 문자와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세 유럽으로 시 · 공간을 바꾼다. 중간에 저자는 문자의 출현시기를 지도로 표현했는데 B.C 600년 그리스인들과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정착하여 공회당의 '검은 돌'에 라틴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중세가 될 때까지 새로운 문자의 출현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B.C 3,500~2,500년 사이에 선진적인 몇몇 지역에서 문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B.C 1,000~700년 무렵 페니키아 알파벳이 각지로 퍼져나가는 등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진 다음, 라틴어의 등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혁신적인 문자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기원한 여러 알파벳들이 사용하기 편하고, 발전속도나 전파속도가 빠른 실용적인 문자체계였음을 반증하는 사실일 것이다.

이후 중세시대에는 로마에서 기원한 라틴어가 여러 필경사들에 의해 쓰이게 되는데, 대략 1,000년간 수도사들이 필경기술을 독점하였다. 당시 유럽에서 글을 쓸 줄 아는 세속인은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는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였던 샤를마뉴 역시 문맹이어서 모든 결재 문서에 십자표시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 수도사들은 고대 문명국가에서 활약한 필경사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앞선 시대의 필경사들이 혹독하게 훈련받아 국가 통치수단의 하나로 활약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섰던 것과 달리, 중세 유럽의 훈련받은 수도사들은 스스로 문장을 만들지도 않았고, 창작작품을 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글씨를 베끼기만 했었다. 이는 문자의 수요에 따른 공급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 그들은 서예의 대가로서 아름다운 서체를 많이 만들어냈다고 한다. 즉, 앞선 시대와 달리 문자가 권력의 한 도구가 아닌 상품가치가 있는 발명품으로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수도원의 필경사들은 예술가가 되었고, 그들의 작품은 걸작으로 취급되었다. 심지어 12~13세기가 되면 대학교 주변에 수많은 책들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필경사들이 더 많이 필요해졌고, 길드와 협동조합이 생길 정도였으니 이들이야말로 제대로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글을 아는 관리와 달리 정말 순수하게(?) 글씨만 주구장창 베껴쓰고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한국사도 대략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조선때부터 중국과 교류하면서 한자를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이는 B.C 1세기 창원 다호리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한자는 실용적인 목적이 강했으리라. 하지만 고대 삼국시대가 되면 문자(한자)는 역사 서술, 법전, 약학서, 문학작품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이전 시대에 비해 한자를 활용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자는 일반인들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문자체계였으며, 이 당시의 필경사들은 권력의 정점에까지 서지는 못 했지만 권력 통치의 일부분을 담당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동시대 중국에서 문자 사용을 기준으로 관리를 선별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동시대 중국에서는 여러가지 서체가 만들어져 쓰였으며, 명필(名筆)이 쓴 글자 몇자는 큰 상품가치가 있는 물품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은 이후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가 되면 심화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 읽으니 어디나 문자의 역사는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오래전부터 문자를 사용해온 경험과 기억이 있는 지역에서의 이야기다. 저자는 철저히 그런 지역들(소위 4대 문명이라고 불렸던 4개 문명권) 위주로 언급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지역들에서 이른 시기부터 문자를 사용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문자가 없다고 해서 그 지역이 낙후되었거나 문화적으로 후진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아무리 위대한 역사를 지닌 지역이라 해도 그 지역에 대한 역사나 관련 기록이 문자로 남아있지 않으면 오늘날 별로 쓸모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결국은 당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페르시아가 그리스와 대결하여 국제적으로 정치적 우위에 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측 기록을 통해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등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도 꼽을 수 있겠다. 그렇기에 오늘날 문자는 그 민족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날 전세계의 지식은 70% 정도가 영어로 표현되기에 전세계 사람들은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전세계 지식의 70%가 이집트 상형문자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영어를 그렇게 공부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저자는 인쇄술의 보급으로 인해 문자는 더 이상 필경사들의 밥벌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밀접하게 결합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초창기 문자는 중앙정부의 권력장악에 큰 도움을 주었으나 알파벳과 같은 문자체계가 각지로 전파되면서 각국의 문자해독률이 높아졌고, 문자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권력신장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못 했기 때문이다. 투표를 할 수 있는 인구가 늘어났고, 결국 국민이 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 것도 모두 문자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해독할 줄 알면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지식이 눈에 보이게 되었고, 인간의 지능과 인식능력 등 잠재적 가능성이 문자 체계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는 인쇄술이 개발되면서 대량으로 원고를 생산함으로써 한층 더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봤을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목판 · 금속인쇄술을 발달시킨 우리 역사상 어째서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쇄술이 대중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발달했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은 또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볼품없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도 인위적인 한글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이하 집현전 학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리가 나는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자형을 만들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구조를 갖춘 것을 보면 얼마나 대단한가 절로 감탄하게 된다. 비록 한자를 비롯해서 주변 국가의 글자들에서 모티프를 따오기는 했지만 그 결과물은 철저히 인공적인, 기존의 문자체계와 전혀 새로운 문자가 아닌가. 어렵게 만든 한글이 당시 기득권층의 한자 사랑(?)에 힘입어 사라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암튼 얼마 안 되는 분량이지만 한장 한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물론 지면상 많은 내용을 싣지 못 했기에 내용의 중심이 유럽과 중국 등에 치우쳐졌겠지만(상대적으로 인도나 마야, 잉카 등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은 확실히 아쉬웠다. 또한 문자의 역사라고 해서 반드시 문자가 있었던 지역에 대해서만 서술할 이유는 없으며, 문자가 없는 지역과의 비교 · 분석도 있었으면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에 반해 중세 유럽의 수도사, 필경사들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 부분은 눈여겨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주인장은 중세 유럽에서는 기존에 만들어진 단어를 그냥 사용했을 뿐이며, 동양처럼 과거제도를 통한 공부만 하는 범생이들을 관리로 임용하는 제도도 없었던 바 문자의 발달상 별로 볼게 없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에서든지, 실용적인 이유에서든지 문자 활용도가 발전했다기보다는 서체 그 자체가 발전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떤 것이든지 필요와 이유에 따라 서로 다른 발전 과정을 거치는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이렇게 문자에 대한 연구서적이 나오는 것이고, 한글이 발명됨으로써 이렇게 주인장이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쓸 수 있는 것이니 문자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새삼 느끼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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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김용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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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와 제목을 딱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용운과 진순신이 대담 형식으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언급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온지 꽤 됐는데도 아직껏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삼국사기 사서 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재미있는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집필한 김상 선생님의 책들을 보다가 김상 선생님이 인용하신 참고문헌에 있길래 찾아서 읽게 되었다.  

이 책 128쪽에도 나와있지만 진순신 선생님의 얘기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져간 국서가 중국 쪽에서 수리되게 하기 위해서는 '신(臣)'이라고 써야 합니다. 중국의 국서에도 그 사실이 명기되어 있지요.' 라고 적혀 있다. 즉,『삼국사기』등에 남아있는 삼국 후기사를 서술한 부분에 나온 중국과의 외교문서(특히 수 · 당)의 신(臣)이라는 호칭이 단순한 외교 관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598년 영양태왕이 수나라의 대군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뒤 수나라에 보낸 외교 국서에는 '요동분토신원(遼東糞土臣元)'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등장한다. '요동 변방에 사는 신하 (고)원은…' 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이것이 당시의 수와 고구려간의 국제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 한줄의 내용 때문에 이 책이 어떤 책인가~하고 흥미가 생겨서 당장 구입해서 읽어봤다.  

다 읽은 지금의 기분은...음~뭐랄까. 두 사람의 대담을 글로 옮긴 것이지만 분명 그 안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한 삼국(한, 중, 일)의 역사였으며, 하나의 주제를 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살펴보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비교사' 혹은 '비교사적 관점'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삼국의 역사를 전부 전공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당연히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삼국의 역사에 정통한 학자가 일관된 관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기존에 생각치 못 했던 부분, 혹은 기존에 미처 몰랐던 부분이나 기존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이미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유명한 역사연구자가 아닌가. 김용운 선생님은 혹시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겟지만, 한국수학사를 전공한 몇 안 되는 분이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 혹은 문명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분이다. 또한 진순신 선생님이야 뭐 주인장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연구자이자 소설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존 학계의 시각과는 다른 참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대담의 주제는 전체적으로 왕조사 중심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큰 목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제1부 동아시아의 정신을 탐구한다. 제2부 역사에서 지혜를 얻는다. 제3부 동양적 기초로부터 미래를 조명한다. 제4부 한국의 영세중립과 AU가 세계를 구한다.' 인데 보면 알겠지만 삼국의 역사 쟁점이 되는 부분을 언급하기보다는 삼국의 문화, 문화의 근간이 되는 여러 요소들, 각 문화적 요소가 서로 다른 이유 등을 언급하면서 현재와 과거 역사의 관계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현재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앞으로 삼국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나름의 방향성도 제시할 수가 있었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다른 책에서 다루지 못 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주인장이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삼국, 아니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성을 언급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교'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유교를 '절대화', 일본의 유교를 '교양', 중국의 유교를 '생활'이라고 표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유교가 각 나라마다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했다. '효'를 강조한 한국, '의'를 강조한 중국, '충'을 강조한 일본 등 유교의 영향 혹은 민족성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성질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그러한 민족성에 따라 유교와 같은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 한국은 '정통성', 중국은 '공존', 일본은 '습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유교는 오히려 중국에서 생성되어 각지로 파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정통성이라든가, 엄격한 유교적 이론이 강화된 것은 오히려 한국이었다.  

유교라는 것이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학문 혹은 종교성을 지닌 이론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인 물이 썩듯이) 비판이 생기고, 반론이 생기고,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주자학이 뿌리깊게 내린 뒤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명대에 크게 유행해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친 양명학도 배척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마치 마리우스파 기독교가 로마 밖으로 뻗어나갔던 것을 느끼게 했다. 또한 기록을 남기는 일에 있어서 한국은 '명분', 중국은 '다양성', 일본은 '치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많이 공감했다. 왜 삼국이 서로 남긴 기록의 성격과 분량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명분과 정통성을 챙기는 이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후대 사학자들은 선조들의 역사적 기록을 연구하는데 더 힘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한자의 본토(중국)에서는 이제 사라져버린 정통과 고전적인 모습을 한국이 간직하고 있을테고 말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제1부에서 주로 유교를 포함하는 민족성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서 이뤄졌다. 제2부에서는 조금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이 주로 언급이 되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한국은 '정(政)', 중국은 '정(正)', 일본은 '화(和)'라고 한다. 즉, 일본의 경우, 종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습합)나 유교를 대하는 태도(교양)에서처럼 좋으면 받아들이고 나쁜 건 빨리 잊어버리자~는 식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자신들의 잘못도 이미 지난 일인데 왜 자꾸 들추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정통과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인에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즉, 이는 각국이 서로 다른 민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인을 이해한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유연한 태도로 현재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밖에 일본의 외교관과 역사관 등을 다루었는데 제2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충(忠)'에 대한 삼국의 태도였다. 한국은 정몽주식 충이라면, 중국은 의의 충이고, 일본의 개의 충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싫어도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본식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오늘날 일본의 성문화가 지극히 개방적인 것도 이런 민족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얘기한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에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외래문화나 외래사상을 많이 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중국의 전통 안에 녹여내는데 반해 한국은 정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대국이 되기 위해서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제3부에서는 근대사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어째서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했고, 한국은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대담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상업의 중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알다시피 한국은 상공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국가 성장에 있어 한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은 일찍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국가였으며, 특히 일본은 서구 사회와 이른 시기부터 접촉하여 근대화에 가장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和'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해 사회적 변혁을 통해 크게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과거 일본의 전통과 단절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런 부분은 아쉽다는 말을 꺼냈다. 또한 타국을 침입하여 저지른 만행이나 식민지 경영에 대한 죄과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한, 중, 일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는데 각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하나로 묶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야만 한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의 척화정책을 답습한 북한의 폐쇄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한 삼국은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스타일의 유교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공통의 정신 기반인 한자와 유교를 공유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서구사회에서 동양의 유교정신을 주목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제적으로 삼국이 노력한다면 아시아 공동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두 사람 대담의 마무리였다. 

어떻게 보면 역사책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국가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삼국의 문명을 비평한 책도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삼국의 문화 및 문화의 근간을 통해 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국은 지형도, 기후도 다르며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민족성이 달랐다. 당연히 역사가 진행된 과정 또한 달랐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간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삼국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동아시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치체에 해당하며, 역사적으로 수천년간을 교류해온 역사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국경이 나눠져 있고, 언어와 정치체제도 각각 다르지만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 다가올 시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며,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어떻게 기억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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