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신라를 말하다 - 무슬림의 이상향, 세계의 이정표 루스터 총서 11
정진한 지음 / 씨아이알(CIR)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책을 읽고 짧게나마 서평을 쓴다.

(중박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의 하나인데, 분기별로 책 구입비를 지원해주고 있어서, 하나 신청했다)


이슬람과 신라의 상관성은 그간 몇몇 연구자들에게 의해 꾸준히 언급되었고, 이슬람권에서 쓰인 문헌들의 내용이 적지 않게 알려져 있었다. 인터넷만 검색해도 관련 내용을 나무위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읽을때만 해도 그런 내용보다 더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길 바란게 사실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만족~


먼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슬림의 이상향, 세계의 이정표’라는 부제가 관심을 확 끌었다. 무슬림에게 신라가 그 정도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제1장. 무슬림이 처음 만난 한국, 풍요롭고 매력적인 섬 신라

제2장. 무슬림들이 만들어 준 신라의 역사, 모세부터 신라의 왕까지

제3장. 무슬림들이 붙여준 신라의 위도와 경도, 그 속의 지중해부터 인도까지의 세계

제4장. 세계의 양쪽 끄트머리, 카나리제도와 신라


전체적인 흐름은 이렇다. 제1장은 아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소개할 것 같았고, 제2장에서 그런 기록들이 나오게 된 연유나 배경을 소개할 것 같았다. 제3장과 제4장은 잘 모르는 내용이었는데, 아마 앞서 나온 내용들이 상상과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거라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신라에 대한 정보가 보완되어 갔고, 다듬어졌다는 내용이 나올듯했다. (예상은 적중)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주목되는 내용 중심으로 간단히 서평을 작성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슬람권에서 인식한 신라와 와끄와끄


이슬람권 문헌에 ‘신라’만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와끄와끄’라는 섬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연히 처음에는 두 섬을 일본으로 인지했었다는데, 그건 와끄와끄가 倭國과 비슷한 발음이라는 데에 기인했다. 하지만 신라설이 등장하고, 동남아시아, 상상의 지역 등 여러 견해들이 나오게 됐다. 물론 최근에는 신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저자는 와끄와끄가 초기에는 동남아시아, 후기에는 동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 연안의 도서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항로상 신라보다 동쪽이 아닌, 서쪽 또는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신라만 기술하고, 그 주변의 발해나 일본 등을 서술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지역은 생략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븐 쿠르다딥바가 기술한 ‘중국의 바다 동쪽으로부터 오는 11가지 물품’을 보면 비단, 검, 우황, 사향, 알로에, 馬具, 담비 가죽, 陶器, 帆布(돛의 천), 계피, 겹작약 등이 있다. 이를 정수일 선생님은 모두 신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봤지만, 저자는 여기에 비판적이었다. 그보다는 말 그대로 중국의 바다 동쪽에서 수입한 모든 물품을 서술한 것으로 그 안에는 중국ㆍ신라ㆍ일본ㆍ발해산 물품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어차피 동아시아의 모든 특산품을 서술하는데 그중 신라만 特記한 것은 역시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다. 즉, 발해나 일본을 서술하지 않는 것은, 신라가 당시 對이슬람 교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을 의미한다. 즉, 당시 이슬람 상인들은 신라를 통해 동아시아의 여러 물품을 거래했을 가능성이 크며, 발해나 일본이 중요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들과 직접 접촉할 일이 없었을 수 있다. 이슬람 상인들이 신라 본토(경주)까지 온 게 맞는지 의심이 되는 대목이다. 오히려 ‘신라’라고 불리는 다른 지역 혹은 다른 집단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둘째, 이슬람문화권이 획득한 광범위한 지리 정보의 실체


이건 그동안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인데, 저자는 왜 이슬람문화권에서 광범위한 국내외의 지리 정보를 수집해야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자신이 위치한 장소에서 메카 방향을 찾아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려야만 했고, 일생에 한번은 정해진 기간 동안 메카를 순례할 의무가 주어졌다. 즉, 시간을 측정할 천문학과 지리학은 단순히 학문적인 수준이 아니라 종교 활동을 위한 신성한 책무에 해당했다는 것이다. 뭔가 머리를 한 대 땅! 맞은듯한 느낌이었다. 학문과 종교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지리학을 이렇게 접근한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바그다드의 우편국장은 당시 세계지리의 최고 전문가였다는 것도 신선했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우편국장이라니)


그렇게 생각하고, 이슬람권에서 나온 지도들을 다시 보니 지도가 색다르게 보였다. 저 지도들은 단순히 이슬람 상인들의 발길이 닿은, 그렇게 모은 정보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이 메카 순례를 위한, 자신이 사는 곳과 메카와의 지리적 관계를 알기 위한 하나의 지침서였던 것이다. 당연히 지도를 주로 사용하는 무슬림들의 거주 구역은 자세히 묘사될 수 밖에 없었고, 지리정보 또한 정확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지역, 중동을 중심으로 인도양에 연한 해안가, 동남아시아, 중국 동남부의 국제무역항 등은 중요하게 묘사되고, 그 이외의 내륙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이 단순한 것을 생각하지 못 했다니.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니 지도가 새롭게 보였다.


셋째, 섬나라 신라에 대한 묘사와 위치


섬나라 신라, 라고 하면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보통 섬나라 일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신라를 섬나라로 인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슬람권 문헌에 묘사된 신라는 하나같이 그와 유사한 표현을 쓰고 있다. 신라국(Bilād al-Sili), 신라섬(Jazīrat al-Sila), 신라 제도(Jazā’ir al-Sila), 신라국과 그의 섬들(Bilād al-Sila wa-Jazā’irha) 등으로 묘사되었으며, 후대 지도 필사본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6개의 섬으로 점점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섬의 개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신라를 기본적으로 바다 한가운데의 섬나라로 인식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저자는 한반도 남해안의 다도해 구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1,700여개로 이루어진 구역이니 충분히 접근 가능하다. 하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와 말레이 제도로 대표되는 동남아시아에는 17,000개가 넘는 섬들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지리 정보를 취합하고, 지도를 만들던 무슬림들에게 어느 지역이 좀더 강하게 인식됐는지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지리 정보와 지도는 중국 동해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섬나라 신라를 찾으려면 미지의 세계에 가까운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찾는게 나을지, 아니면 당시 무슬림들에게 익숙한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남해안 일대에서 찾는게 나을지 고민된다. 특히 신라를 묘사할 때 나오는 내용 중 하나가 그곳에 한번 들어간 무슬림이 나오기 싫어서 거기에서 평생 살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로는 깨끗한 공기와 물, 풍부한 황금과 각종 보물, 병이 나지 않은 깨끗한 환경 등을 거론한다. 중국 강남지역과 확연히 다른 지역이 떠오른다. 다만, 그게 한반도를 묘사한 것인가, 는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특히 후대로 갈수록 신라에 대한 지리적 정보를 알 수 있는 요소로 <무슬림들이 한번 가면 떠나고 싶지 않아하는 땅>이라는 것이 있다. 저자는 이게 ‘양저우 대학살’과 ‘황소의 난’을 거론했다. 이때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기거하던 양저우와 광저우 등의 국제 항구에서 외국인 대학살이 일어났기에 그들이 신라로 도피했다는 것이다. 그때 살해된 외국인은 12만에서 20만 사이인데, 암튼 어마어마한 숫자였을 것이다. 저자는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가 가깝지만, 중국 남부 해안에 발이 묶이면 해외로 탈출하는게 불가능했으므로 중국 동부에서 출발해 직항 항로를 따라 신라로 도피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 해석했다. 얼핏 보면 일리가 있으나 이 역시 재고의 여지가 있다.


수십, 수백의 가호만 해외에서 유입되어도 기록으로 남는 법인데, 수천에서 수만의 이주민이 바다 건너 통일신라로 왔다? 심지어 고려 사회보다 통일신라 사회는 무슬림의 존재가 더 미약했었다. 그런데 저런 대사건이 기록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봤을 때 대안은 장강 하구의 주산군도가 아닐까 싶다. 중국 동남해안에 인접하면서도,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섬들이 위치하면서도 너무 섬이 많지도 않은 곳. 그런데 왜 이걸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넷째, 신라의 특산품이라고 기록된 것들


이슬람권의 신라 관련 기록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황금’이다. 이 역시 가볍게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기록이 남은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위 금제품이 많이 확인되는 시점은 5~6세기, 마립간시대라고도 부르는 적석목곽묘가 신라 곳곳에 폭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그런데 이슬람권의 문헌은 모두 8세기 이후의 기록이다. 물론 󰡔삼국지󰡕 동이전처럼 3세기 이전의 내용부터 소급해서 포괄적으로 서술했다, 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통일신라와 황금문화는 딱 매칭이 안 되는게 사실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전 시기의 황금문화와 함께, 그 이후의 황금을 금하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문화는 왜 언급이 안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있어야 할 것이다. 신라 관련 기사가 12세기 이후, 고려가 들어선 뒤에도 전해지는데, 여전히 황금문화만 특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비단과 금실로 치장하고, 그릇과 개목걸이, 원숭이 목테마저 금으로 만들었다는 황금의 나라. 금입택을 기술한 󰡔삼국유사󰡕의 기록, 더 이상 비단을 불교 행사에 쓰지 말고, 금은 식기의 사용을 금한다는 󰡔심국사기󰡕의 기록과 연결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6세기 초반이 지나면서 신라는 황금의 나라라고 보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마련된다. 철저하게 골품제에 기반해 사회 전반을 강하게 통제하기도 했다. 그런 신라를 둘러보고 무슬림들이 신라 전반의 분위기에 대해 저렇게 묘사하기는 힘들었다고 본다.


즉, 저건 신라 본토와는 다른 사회적 현상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게다가 고려가 들어선 뒤에도 신라에 대한 저와 같은 표현은 여전히 유지된다. 즉, 신라-고려로 이어지는 한반도 내의 왕조 교체와 상관없이 신라가 여전히 병렬적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애초에 저들이 인식한 신라가 고려 이전의 왕조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시기에 따라 이슬람권 문헌에 묘사된 기록이 조금씩 다른 걸 보면, 조금씩 신라에 대한 정보가 보완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도 통일신라시대의 사회 변화상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이런 것들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반도와 직접 교류했던 동부 이슬람 세계는 새로 등장한 고려에 대해 그래도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는데 주력했지만, 이들과 대립했던 서부 이슬람 세계는 여전히 과거부터 답습했던 정보에 의지했다는 시각도 참고할만하다. 동쪽 끝 신라와 서쪽 끝 카나리아 제도를 양극단에 위치시키고 이를 쌍둥이로 만들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한 것이 그러하다. 그렇게 봤을 때 두 가지 병렬적인 정보가 계속 전해진 것도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그동안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내용들을 상기시켜 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나에게 유익했다. 저자에 의하면,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이슬람권 문헌이 가득하다고 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새로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 외에 신라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진 나라는 무슬림이 유일하다. 왜 그렇게 관심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알게 모르게 한반도와 이슬람 문화권과의 관계는 상당히 오래도록 밀접하게 이어져 왔다.


이 책은 그런 두 세계의 관계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은 선물과도 같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5-10-1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麗輝 2025-10-18 23:1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

하루살이 2025-10-2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역사의 내용은 끝이 없구나 느낍니다.
 
박물관 큐레이터로 살다 -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
최선주 지음 / 주류성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류성은 역사, 고고학 관련 서적을 많이 발간하는 출판사로 나에게는 한국의 고고학계간지로 더 친숙한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박물관과 관련된 몇몇 책(박물관이란 무엇인가?, 박물관학의 기초, 문화재 보존과학)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어 주목하고 있던 차에 흥미로운 제목의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라.

제목을 보아하니 박물관 큐레이터, 학예사 또는 연구사, 학예연구사 등으로 불리는 직업군에 대한 책이었다. 큐레이터는 널리 알려진 직업군은 아니지만 관련 전공 분야(고고학, 미술사학, 역사학 등)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직종이다. 큐레이터에 대한 책들은 시중에 이미 많이 나와 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소개, 큐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 등등 다양한 시각에서 큐레이터를 바라본 책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현직 국립박물관 관장이 지난 30년 간의 소회를 담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고고학 · 미술사학계의 원로 선배님들이 자서전 또는 연구서 형식으로 책을 남기시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이는 후배들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 많은 도움을 주곤 했다. 이 책도 그러한 책일까? 아니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을까? 책 제목만 봐도 기대가 된다. (이보다 조금 일찍 나온 책으로 한번쯤, 큐레이터도 눈에 띈다. 19년 차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비교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큐레이터, 불상을 마주하다>에서는 저자가 처음 공부를 시작해 큐레이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 큐레이터로 지내면서 본인의 전공인 고려 불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정리하고 있다. <2부 특별전, 이 땅의 특별한 이야기>는 저자와 함께 한 특별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박물관에서 전시 결과물만 접하는 우리들에게는 신선한 소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3부 박물관, 숨겨진 이야기>은 저자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실무적으로 느꼈던 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부분과 주목해야 하는 부분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저자는 '흔히 크기만 하고 못 생긴 불상'으로 알려진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서두에서 꺼내고 있는데, 몇장 넘기지 않았음에도 불교와 불상, 부처와 보살상 등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의 석조불두, 운반하는 데에 엄청난 공과 시간을 들인 하사창동 고려 철불, 국립춘천박물관의 유일한 국보인 강릉 한송사 터 보살상, 삼화령 애기부처 등 불교전공자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불상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소개하고 있다. 이는 2018년 국립박물관 최우수 전시로 뽑힌 국립춘천박물관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 특별전에서 절정에 달한다. 마치 서랍장에 담긴 작은 불상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꺼내 포장을 벗겨 바로 눈앞에서 그와 관련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한자 한자 눌러 쓴 원고가 정겹다.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저자가 당시 받았던 감동과 흥분, 그리고 원고를 작성하면서 다시 그때의 기억을 되새겼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경주박물관의 관장이자 고위 공직자이지만, 저자도 처음에는 열정이 넘치는 풋내기 큐레이터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과 노력, 고민과 응전의 시간이 있었다.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어느새 '라떼'라는 장난 섞인 단어로 치부되는 요즘, 1부의 내용을 살펴보고 난 뒤의 느낌은 저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까? 하는 고민과 함께.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프로필을 자랑스럽게 꺼내며 나의 지난 치적을 화려하게 소개한, 전형적인 공적비 같은 자서전처럼 서두를 꺼내지 않아서 좋았다. 오히려 기교 부리지 않고 저자의 당시 생각과 기분, 느낌과 이를 대하는 현재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서 부담없이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수십쪽에 달하는 내용이 눈에 쉽게 들어오면서 책이 읽히는 것도 그탓일게다. 저자의 지난 삶의 일면을 약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분좋게 다음 장을 넘겼다.

 

2부는 저자가 큐레이터로 성장해 온 과정을 함께 하는 공간이었다. 30대 초반 처음으로 맡은 기획 전시 <고려 말 조선초의 미술>을 시작으로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까지 엄선한 11건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중 절반 이상의 전시를 관람했던 필자였기에 책을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이 전시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구나, 아아~이건 나도 정말 기억에 남는데,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도 그런 마음이었구나 등등. 큐레이터로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여러 감정들이 아스라히 느껴졌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큐레이터는 정말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난관에 봉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저자도 얘기하고 있지만 불상의 받침대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로 몇날며칠을 밤을 지새운다. 정작 관람객 중 불상이 아닌 불상 받침대에 주목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저자가 담당해왔던 전시에서도 그런 면모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저자와 같이 했던 동료 큐레이터에 대한 이야기도 생동감있게 전해지고 있다.

 

히 창령사 터에서 출토된 오백나한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유별났다. 다들 볼품없다고 여겼던 관촉사 은진미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마침내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 국보로 승격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던 일화, 용산으로 새 터전을 옮긴 하사창동 철불좌상을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일화, 군부대 승인을 얻어 강릉 한송사 터를 답사해 한송사 터 석조보살좌상의 받침대를 찾아 이때 얻은 실측자료로 받침대를 만들어 전시에 활용한 일화, 진구사 터 석조비로자나불이 지금의 자리에 안치되기까지의 일화 등 불상에 대한 저자의 노력이 오백나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현대 작가와의 협업, 기존과 달리 개방된 공간에서의 전시 기획, 편안하고 푸근한 전시 분위기 등으로 인해 대박이 난 오백나한은 각종 언론과 TV 방송에도 소개되었고, 여러 번의 순회 전시를 거치며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자칫 그냥 지나치면 수장고 한켠에서 언제 다시 세상의 빛을 볼지 모를 유물이겠지만, 큐레이터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다른 불상도 그렇겠지만, 오백나한을 바라보는 저자가 어떤 느낌일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3부는 저자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내고 있었다. 박물관 심벌마크에 대한 생각, BTS가 공연한 원랑선사 탑비, 전쟁의 참화를 겪은 선림원종, 손기정 투구를 통해 본 기증문화재에 대한 생각, 수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사랑하는 어린이박물관의 미래, 군장병을 비롯한 현지와 밀착된 국립박물관의 노력, 개방형 수장고를 통해 관람객에게 더욱더 다가가려는 국립박물관 등 큐레이터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담백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1부와 2부가 일반 관람객들, 혹은 박물관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소재라면 3부는 현직 큐레이터들이 한번쯤 되새기며 읽어볼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단순히 저자의 과거사를 자랑하고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선배 큐레이터로서 걸어왔던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수백 명의 후배 큐레이터, 그리고 그들이 근무할 국립박물관이 변화 · 발전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본인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보면서 본인이 '학자적 큐레이터', '큐레이터적 학자', '학예 행정직' 중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밝히고 있다. 눈 앞의 업무에만 매달리다 보니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 하고 그냥 스쳐지나간 문화재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보다 더 강하게 본인을 채찍질하고, 더 많은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문화재를 대했으면 더 많은 문화재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저자의 손을 거쳐 어떤 문화재들이 전시되었는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름의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자신의 실수도, 자신의 후회도 이렇게 솔직하게 남기고 있으니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결론이든지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또 하나의 큐레이터가 생겨날지도, 아니면 본인의 꿈을 접는 사람도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 말미에 남긴 글은 분명 좋은 느낌을 전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큐레이터들은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자 시간을 잇는 사람들이다.

손때 묻은 유물을 다루면서 그 가치를 찾고 유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큐레이터로 살아온 국립박물관은 나의 일터이자 삶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만지고, 이어온 나의 삶은 행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국립박물관 큐레이터의 길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훗날 나의 시간들도 누군가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여러분들은 책을 다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우리는 박물관에서 만나는 수많은 금동불상과 석조불상, 대형 철조불상을 예배의 존상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곤 한다. 또 큐레이터로서 불상을 마주하게 되면 특별전의 전시 품목으로 여기거나 연출 대상인 이른바 ‘오브제‘로만 고민하게 된다. 특히 머리나 몸체만 있는 불상을 전시할 때는 더욱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에서 만난 한국사
김용만 지음 / 홀리데이북스(Holidaybooks)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 공기, 햇빛 등등.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하지만 반대로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존재들이 있다.

당연히, 그저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없어지면 바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될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로 나무, 그리고 숲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무리를 이루고 삶의 터전을 확장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연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을 깎아 길을 내고 밭을 일구었으며, 땅을 파 내가 원하는 곳까지 물을 끌어오는가 하면, 식량자원을 얻기 위해 그 지역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특히 많이 필요한 자원은 <나무>였으며, 나무를 얻기 위해 <숲>을 파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한국사를 숲이라는 키워드로 관통하고 있다. 그동안 기후와 환경에 대해 다룬 책은 무수히 많이 나왔으며, 그중에서도 숲과 나무에 대해 전지구적 또는 지엽적인 입장에서 살펴본 책들 역시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나온 책으로는 강판권의 『나무열전』(2007, 글항아리)와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2010, 글항아리), 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 1·2』(2011, 김영사), 양종국의 『역사학자가 본 꽃과 나무』(2016, 새문사), 전영우의 『우리 소나무』(2020, 현암사) 등이 있을테고, 외국서적으로는 존 펄린(송명규 역)의 『숲의 서사시』(2002, 따님)를 시작으로 요하임 라트카우(서정일 역)의 『나무시대』(2013, 자연과생태), 한스외르크 퀴스터(이수영 역)의 『숲의 역사』(2021, 돌배나무)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무를 갖고 역사를 이렇게 살펴보고 서술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으니 말이다. 단, 존 펄린의 책에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사에 대한 내용이 없어 아쉬웠다. 이후 국내에서도 관련 서적들이 출간됐지만, 통시적인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루기보다는 특정 이슈에 집중한 반면 『숲에서 만난 한국사』는 '한국 숲의 서사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책은 단순히 시간 순대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목차를 봤을때 고조선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1장에서 저자는 <왜 숲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한국사에서 숲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숲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숲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부담없이 시작한다. 특히 '신석기혁명'이라는 용어로 대표될만큼 농경문화가 문명의 시작이고, 농경민이 수렵 · 채집민, 또는 유목민보다 우월하다는 상식 아닌 상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말을 빌어 '농업의 시작을 인류 역사 최악의 실수'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면서 농경문화에 대한 환상을 지적하고 그 실체를 파고든다. 저자는 농경민의 인구 증가 속도가 빠른 반면(장점) 쉽게 터전을 옮기기 힘들다보니(단점) 무리를 이루어 발전시키는 데 유리했다고 보았다. 거기에 사람의 욕심까지 추가하여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문명을 기준으로 세계사를 돌아보게 되고 농경문화 중심의 역사에 익숙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경문화 이외의 역사도 분명히 존재했다.


저자는 자연스럽게 한 · 예 · 맥 · 말갈 이야기를 한다. 숲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참신한 시각이었다. 고대사를 조금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 예맥, 말갈 등의 이미지를 물어보면 유목민, 추장, 기마, 약탈, 수렵 등의 키워드를 꺼내곤 한다. 실제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 매체에서도 그렇게 묘사되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 터전을 살펴보면 오히려 숲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반도와 동북지역을 위성사진으로 보면 동해안에 인접한 거대한 산맥이 백두대간을 이루면서 연해주 일대까지 뻗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공교롭게도 옥저, 예, 맥, 말갈, 읍루, 숙신 등등 한국 고대사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집단들의 주 생활무대였다. 그들의 생활풍습이나 주거환경 등을 비교해보면 유사한 점도 많았지만 차이점도 많았으며,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집단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숲이라는 공간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며, 그 안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도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의 다양성이 곧 한국 고대사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저자는 아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숲이 울창한 지역! 하면 강원도! 무슨무슨 산! 이런 대답이 나오지만 과거에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숲이 있었다. 숲과 평지가 구분된 것이 아니라 숲과 평지가 반복적으로 연결된 채 전국토를 아울렀던 것이다. 이는 중국과 확연히 다른 자연환경으로서 차로 몇시간, 며칠을 달려도 자그마한 동산 하나 보이지 않는 중국과 다른 역사가 이 땅에 흐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만주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러 가면 차 안에서 몇시간을 바라봐도 계속 같은 풍경, 드넓은 평야만 보이기 일쑤이다) 저자는 신간수와 신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환웅이 왜 하필 신단수를 통해 이 땅에 내려왔는지 고민해보자는 거였다. 이러한 세계수, 우주목의 존재는 비단 우리만의 시각은 아니다.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태초의 역사를 언급할 때 나오는 존재가 바로 세계수 또는 우주목의 존재이다. 숲과 나무가 전지구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그럼 단군과 고조선만 그러했을까? 아니다. 역대 건국시조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문명의 요람이었고, 숲이 잉태한 씨앗은 곧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크게 싹을 틔우게 된다. 저자는 숲에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후 그 사람들이 이룩한 거대한 제국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끌어간다. 숲에 살았던 사람들은 특유의 강인함을 품은 채 농경과 유목의 장점을 익혀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했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가 대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500년을 채 채우지 못한채 사라져간 반면, 고구려는 무려 700여 년을 동북아시아에서 존속하면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이는 고구려 멸망 이후 그 자리에 터전을 잡은 발해도 마찬가지였으며, 먼훗날 그 자리에서 흥기한 여진과 만주족도 마찬가지였다. (유소맹이 쓴 『여진 부락에서 만주 국가로』를 보면 청나라의 초기 성장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는 고구려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5장. 달라져버린 숲'이다. 전체 9장 분량의 중간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책의 내용이 크게 둘로 나뉜다. 일종의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랄까? 인류가 숲을 존경하고 그 가치를 중요시 여기던 풍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를 맞이한다. 인간은 더 이상 숲을 '자원을 구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탐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무분별한 벌목, 관리하지 않는 숲, 숯의 사용과 농경지의 확대, 거대한 건축물의 축조 등등 사람의 숲에 대한 의존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숲의 파괴 속도도 그만큼 빨라진다. 그 변화상을 저자는 '사찰'과 '돼지'라는 키워드로 재밌게 풀어쓰고 있다. 저자는 거대한 종교 건축물을 보유한 불교의 영향으로 숲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경외심이 인공 목조 건축물로 옮겨졌다고 보았다. 그로 인해 샤머니즘의 성소였던 숲의 나무들이 베어지고, 그 자리에는 대규모 사찰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사찰은 숲을 파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길을 택했고, 오늘날 국립공원 안에 자리잡은 사찰이 숲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서술하였다. 더불어 돼지가 본래 농가에서 기르는 동물이 아닌 숲에서 방목해서 자라던 동물임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숲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돼지도 귀중한 동물에서 혐오 동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후 농경민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찾아오고, 숲을 지키지 못한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책의 후반부를 구성하고 있다. 저자는 고려사 최악의 오판으로 '동북9성 경영의 실패'를 꼽았다. 복합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고려 중앙 정부의 실책으로 고려는 숲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던 것 같다. 고려 후기 왜구와 몽골로 인해 고려의 숲은 더욱 더 심하게 파괴되었으며, 이는 조선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물론 조선도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 정책은 원칙부터 무너졌다. 농경을 나라의 첫번째 근간으로 중시했던 조선은 농지 확보와 농민 육성을 위해 숲을 파괴하였다. 권세가들은 광범위한 숲을 사유화하였으며, 당시 그린벨트였던 국유림은 금산(禁山)으로 지정됐음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벌목을 지속했다. 숲의 자원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은 점점 깊숙한 숲으로 들어갔고, 숲의 훼손 범위 역시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화전을 일구어 당장의 생계를 해결해야 했고, 근본적인 산림 정책을 자리잡지 못 했다. 조선 말기 이를 살펴본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조선의 민둥산을 언급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필자 역시 2005년 금강산 답사를 위해 동해안에 다녀왔을 때 민둥산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났다. (저자 역시 북한에서 봤던 민둥산의 충격을 책에 남겨두고 있다) 경의선 방면에서 군 생활을 했을때 봤던 휴전선 근처의 경관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북한 주민들도 조선인들처럼 나라에서 엄격하게 접근이 금지된 지역의 숲을 제외하고는 이미 당장 쓸만한 것들이 있는 숲은 모두 허허벌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산림 황폐화는 일제강점기에 더욱 더 심해졌다. 일제는 조선 각지에 도로와 철도를 놓고, 현대적인 시스템에 입각한 법과 제도, 관청 등을 설립하였다. 조선을 발전시켜 주기 위해서? 아니다. 보다 효율적으로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서다. 소멸하기 전의 별이 가장 밝은 빛을 내듯, 일제는 조선의 그나마 남아 있던 숲을 온 힘을 다 해 수탈해갔다. 해방 직후에도 우리 숲은 단기간에 변화되지 못 했다. 게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국토가 신음하는 상황 속에서 숲이 멀쩡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한국전쟁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고지전'이라는 전쟁 양상은 숲을 완전히 소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높은 산 정상에 자리잡은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 점령군이 바뀌는가 하면, 수십 수백번에 걸쳐 산 정상부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니 산의 지형이 바뀌는 것도 다반사요, 나무나 풀이 자라는 걸 바라는 것도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 이후 많은 면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사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 국토 전체가 헐벗었다가 성공적으로 복원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물론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지만, 꾸준한 사업 시행으로 곳곳에서 숲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바다와 강, 산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가진 세계의 몇 안 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전히 담뱃불 또는 부주의한 실수로 발생한 불씨로 인해 산불이 발생하고, 특히 광범위한 규모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되고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숲에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신단수와 같은 세계수나 우주목의 존재를 믿지도 않는다. 터널과 다리, 도로와 철도가 산을 가로지르거나 관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호화별장이나 리조트, 경기장이나 아파트 단지를 짓기 위해 수백년된 나무들을 벌목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은 꾸준히 관리되고 있으며, 도시 안이나 아파트 단지 안에는 녹지화 사업이 지속되고 있다. 모순이라면 모순일까.


여전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나무와 숲은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숲을 관리하고, 숲을 보유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나무와 숲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 당연하면서도 중요하지만, 잊고 있었던 주제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말한다.


미래의 숲이 한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인간이 숲을 어떻게 대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라는 말이 있다.

자! 우리의 숲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한번 생각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 역사비평사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쓰는 서평. 경주로 내려와서 처음 쓰는 것 같다.

박물관 도서실에 신청해서 책은 진즉에 읽었는데 이제사 되새김해본다.

 

이 책은 작년에 한창 시끌시끌했던 이덕일(류)의 사이비역사학과 그에 맞선 젊은 사학자들의 공방전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이 기획되서 완성되기까지의 주변 상황은 책 서두에 잘 소개되어 있으니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기경량, 안정준, 위가야 등 몇번 언론에 등장한 연구자들도 있고, 그외 신진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책 속의 내용 중 상당수는 언론에도 여러번 소개됐고, 학술지에도 소개된 것들이 있어서 새로운 부분이 많지는 않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다음까페/네이버블로그 등)에서는 이미 십수년전부터 논의되었던 부분들이기에 큰 틀에서는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유사역사학이라고 불리던 게 사이버역사학으로 불리게 됐다든가, '환빠'라는 용어를 양산해낸 환단고기와 관련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논의들이라든가)일단 이 책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들을 살펴보자.

 

기경량의「사이비역사학과 역사파시즘」에서는 사이비역사학이라는 용어의 정의라든가, 사이비역사학을 둘러싼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잘 소개하고 있어서 책 첫머리를 장식하기에 적절했다. 강진원의「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 장미애의「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또한 현재 한국사가 처한 현실이 어떠한가를 개괄하고 있어서 이 책이 향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첫 관문을 잘 장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부에 있는 3개의 장은 어려운 내용보다는, 앞으로 무슨 내용들이 나올지 판을 깔아놓는 부분인지라 가볍게 운을 떼고 있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세부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정빈과 위가야, 안정준은 '한사군(낙랑군)'에 대해서, 신가영은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기경량과 이승호는 '단군', 권순홍은 '신채호'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1부에 비해서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고, 내용 자체도 더 진지한 것들인데, 2부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이 책의 저자들이 속한 모임 '젊은역사학자모임' 구성원들이 좌담에서 토론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소개하면서 향후 모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연구자들과 학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역사학계와 한국 사회와의 관계,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가야만 하는 다짐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이 책에 대한 나름의 총평을 몇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사골까지는 아니라도 왠만큼 고대사, 사이비역사학(옛날에는 유사역사학), 환단고기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마추어들이나 떠들 법한 얘기들이 학계에서 주목받고 이렇게 학술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논문이나 저작 형태로는 얼마 안 된 최근의 성과물 같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전해졌던 주장, 근거, 의견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과거에는 아마추어나 역사동호인들이 떠들던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전자는 세련되고, 후자는 거친 형태로 접했다는 차이는 분명 있다) 이렇게 될줄 그때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런 안일함 속에서 이덕일과 같은 이가 시대 흐름을 잘 타고 헛소리를 전파하고 있으니 그 또한 재밌는 일이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의 내용은 진부하다. 그렇기에 재탕의 느낌이 강하고(이미 한번 학회지에도 실린 내용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별다른 편집없이 그대로 실렸기에 <신선>하다는 느낌이 적다. 이 책의 저자가 <젊은>역사학자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닥 새로울 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

 

둘째, 첫번째 평과 이어지는 부분인데, 이 책의 정확한 타겟, 즉 독자층으로 누굴 염두에 뒀는지가 불분명하다. 저자(들)은 책의 전반에 걸쳐 대중성과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학계가 더 이상 대중에게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방법 혹은 시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사이비역사학이라고 상대편을 규정하고 선을 긋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젊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인 입장과 중도적인 입장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자아! 그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의 주 독자층은 누구라고 봐야 할까? 아마추어 대중들? 젊거나 혹은 어느 정도 중진급 연구자들? 식민사학자라고 종종 매도받는 원로 학자들? 이덕일과 같은 부류를 추종하는 사람들? 아니면 전혀 역사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 역사와 대중을 결부시키기 위해 저자(들)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시각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냈다는 말인가? 저쪽(사이비역사학쪽)을 꾸짖고 그쪽이 잘못됐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아니면 이쪽(그 반대쪽)이 옳으니 저쪽으로 쏠린 사람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런 목적성이나 주제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셋째, 이 책이 전공자들 혹은 연구자들, 아니면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동호인들에게 그닥 새로울게 없다는 얘기는 첫번째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도 두번째에서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저쪽에 쏠린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고 이쪽의 주장이 옳음을 설득'하는 것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혹시 그 밖에 노리던 것이 있음에도 필자가 짚어내지 못 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우둔함 탓이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2부의 내용이 약했다. 위에서 얘기했지만 1부에서 이 책의 기획 의도, 주변 환경 등에 대해 가볍게 언급한 것은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그 분위기를 살려 2부에서 뭔가 임팩트있게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는데, 그런게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기경량의「'단군조선 시기 천문관측기록'은 사실인가」처럼 작은 주제를 갖고 심도깊게 반박한 부분은 좋았다. 이는 해당 주제나 논란에 대해서 잘 몰라도 이 글을 읽음으로써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잘못 알려졌고, 어떻게 관련 주제를 이해하면 좋은지 알 수 있게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광범위한 주제를 십몇쪽에 담아내려다 보니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 이 책의 리뷰를 검색해보면 윤내현 선생님, 이덕일은 자세하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런 것 없이 간단하게 반박하려 한다는 비판도 보인다)

 

이상 3가지 정도가 이 책을 읽고 난 필자의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읽을만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이덕일과 같은 부류가 판을 치고 다닐 동안 학계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한 첫걸음의 결과물이기에 그 결과가 100% 다 옳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학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꾸준히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올바른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한중일 삼국의 역사, 정치, 문화, 경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다. 그 이상으로 현재와 직결되는 부분인만큼 끊임없이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고 잘못은 바로잡고 잘한 일은 발전시켜야만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시도가 담긴 책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진부 / 모호 / 부족 하지만 필요했던 시도! 미래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이 가지 않은 길
김용만 지음 / 창해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화의 순간은 우리 곁에 수도 없이 닥쳐온다. 다만 열려 있고 깨어있는 자각이 없으면, 뒤늦게 지나가버리고만 기회의 순간을 통탄하게 될 뿐이다. 이런 변화의 기회를 또 다시 놓치지 않으려면, 성공했던 역사만큼이나 아쉬웠던 역사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본문 45)

역사(History)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억지로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이기도 하며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역동적인 옛날 이야기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달려들어 연구해도 답을 구하지 못하는 학문일 것이다하지만 무엇이 됐든 간에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있는 과정이며한편으로는 중요하다이 책 또한 그런 시각에서 쓰인 책이라 할 수 있다조선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전공자든 비전공자든관심이 있든 없든...조선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매우 진솔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는 조선사 전공자가 아니다저자는 고구려 전공자로 그간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던 김용만으로그의 폭넓은 시각으로 쓰인 조선사 관련 서적이라 읽기 전부터 내심 기대가 됐다저자는 서문에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명제를 걸고조선이 걸었던 길을 가감 없이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그리고 단순히 만약~조선이 그랬다면이라는 if 식의 흥미위주 접근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고현재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책은 크게 4개의 주제로 구분된다. <활짝 피지 못한 조선문명의 기대주들>, <기득권을 위해 변용된 유교의 폐해>, <잘못된 선택이 불러온 생활모순>, <잃어버린 자주·자립·자강의 꿈개인적으로 조선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지금도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s> </s>조선사에서 항상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들이 있었는데이 책에서 언급된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묘하게 근현대 한국사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고질병같은 부분이라 더 정감(?)이 간다고나 할까암튼 몇몇 내용들을 중심으로 책에 대한 간단한 느낌을 적어볼까 한다.

 

먼저 한가지만 얘기하자면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물론 이 유교가 제자백가 시절의 (원시유교는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송대 이후 공고히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주희에 의해 주자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동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간우리에게 성리학으로 익숙한 그 유교를 말한다중국은 높고크며조선은 그보다 낮고 작다종법적 질서에 따라 중국은 천자가 있는 천하의 중심이며조선은 그 천하관에 속한 말 잘 듣는 제후국이어야(Must do it!) 했다더 나아가 유교가 말하는 교리 중에서 사대부(양반)들에게 필요한 것들만 취사선택하는 바람에 이현령 비현령’ 식의 정책이 판을 쳤고편협하고 획일적인 사회로 방향을 강요하는데 유교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같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지도를 만들었던 조선이지만시간이 흐르면서 세계 지리에 대한 관심은 쇠퇴했고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갔다화약과 함포 또한 마찬가지다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화약과 함포라고 했을 때 누구나 이순신과 거북선을 떠올릴 것이다(조금 더 공부한 사람은 최무선까지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임진왜란 이후 조선 수군 또는 해양세력이 조선사에서 주목을 받는 일은 사라졌다김지남이 청나라에서 극비로 배워온 염초제조법도 조선에서는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고함선이나 화포의 개발에 무감각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은분리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조선 초기 명나라는 금과 은을 꾸준히 조공으로 받아갔고조선에서는 금과 은의 생산량을 늘리는 길 대신 광업을 억제하고 금은 사치 풍조를 비난하는 길을 택한다연산군 시절 개발된 연은분리법은 조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으로 건너가 그 진가를 발휘한다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유교주의가 지배층에게는 적용되지 않고일반 백성에게만 강조되는 바람에 잘못된 정책이 입안되고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로 넘어갔다유교가 사회에 잘못 적용된 경우는 건축물에도 적용되었다유교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종법적 질서로 인해 조선은 스스로를 명보다 작다고 여겼고거대 건축물을 조성하지 않았다오죽하면 광개토태왕비를 발견하고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금나라 황제의 것으로 여겼겠는가패배주의에 젖어들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잠재력을 잃어버린 결과인 셈이다.

 

이제 저자가 왜 첫 번째 주제의 말미에 온돌을 넣었는지 이해가 좀 됐다(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세계 최고의 지도를 만들고뛰어난 화약과 함선을 만들고연은분리법도 개발했던 조선이었지만 그게 뭐?? 그래서?? 온돌도 마찬가지다우리는 온돌하면 대표적인 전통건축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지만저자는 연료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무제한에 가까울만큼 나무를 소비하는 온돌은 오히려 해악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리고 저자는 온돌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소개하고 알려야만 비로소 온돌에 대해 올바른 시각이 정립된다는 생각을 갖고 활동했지만번번히 좌절을 겪었던 사례도 소개하고 있었다순간 우리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신토불이가 한창 유행했던 때가 떠올랐다.

 

시작부터 저자는 조선의 민낯을 드러내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고 있었다팔만대장경이나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술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하지도 않았다(마치 거기까지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조선이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하지만못 한 것은 못 했다고도 분명히 말하고 있을 뿐이다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계속 살펴보도록 하자문제점은 계속 지적됐다두 번째 주제에서는 과거시험과 족보사대봉사덕치사상조선의 학구열 등이 다뤄지고 있었다학식을 갖춘 훌륭한 인재를 뽑겠다는 과거시험은 어느 샌가 신분 획득의 자격증 시험으로 변모했고당연히 인재의 수준도 떨어지게 되었다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과거시험 말고 다른 활로를 열어주었더라면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더 이상 과거시험은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조선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편협된 길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 가능성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저자는 2016년 짐 로저스 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특정 소수에게만 유리하도록 시행되는 제도의 문제점을 재삼 지적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과 함께 족보는 사대부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로 변모하였다모계 대신 부계가 강조되고외가 대신 친가를 중심으로 하는 혈통이 중시되었으며이는 자연스레 조선 후기 왜 갑자기 양반이 늘어났는지를 알게 해준다현대 한국인의 조상 중에는 명재상이나 청백리도 있었지만범죄자매국노기생외국인노비 등도 있었을 것이라고 과감히(?) 얘기하는 저자를 보면서 속이 시원해졌다고나 할까어느 누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족보를 지나면서 저자는 좀 더 과감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저자는 사대봉사가 忠孝에 의거한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세습 봉작을 받아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고자 했던 사대부들의 욕심 때문에 생겨났다고 콕 짚어서 이야기하고 있다가문 내에 관리로 임명되는 사람이 있으면가문 내에 누군가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이름을 팔아 온 가문이 덕을 보는 이상한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고사대부들은 더더욱 쓸떼없는 사대봉사즉 제사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우리는 불과 몇 백 년 전 사대부들의 과욕으로 생겨난 제사를 마치 오랜 전통인양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고 있는 셈이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재밌는 점은 조상들에 대한 의미 없는 제사에 집착했던 당시 양반들이 유교의 덕치사상에 경도되어 탁상공론만 일삼았다는 점이다덕치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나라가 보존되고천하가 평온해질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 전개가 자연스레 통용되던 시대가 바로 조선이었다중세 유럽을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면중세 이후 조선은 유교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한편두 번째 주제 말미에서 저자는 조선의 백성들이 갖고 있던 엄청난 학구열을 소개하고 있다과거시험이 성공의 유일한 길로 인식되면서 어찌 보면 島嶼 지역의 백성들조차 엄청난 학구열을 지녔다는 것은 긍정적인 낙수효과로도 볼 수 있다하지만 역시 그뿐이다백성들이 공부해서 기득권층으로 발돋움하는 길은 거의 없었다부와 신분의 세습이 지속되면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고되풀이되는 사회구조는 보다 공고해졌다오늘날 대학에 나오고 석박사를 취득해도 놀고 있는 고학력자가 많은 것을 보면아직도 우리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이다.

 

세 번째 주제에서는 축제와 사라진 제천행사모피의 사치가 불러온 우울한 결과황칠나무가 사라진 이유노비제도와 과부재가금지법 등이 언급되고 있다여기서도 문제는 유교였다유교가 조선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면서고려시대 때 지내오던 팔관회그 이전부터 지내던 각종 제천행사와 각종 마을축제는 사라지고 말았다축제는 사라지고 설날한식단오추석 때 성묘하는 유교적 제사의례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축제와 제천행사가 사라지면서 상하가 분리되었다오늘날 모 정치인이 국민들을 개돼지로 인식했던 것처럼 조선시대 양반들도 그러했던 것이다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받들고조선은 무조건 중국을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두 동강냈다이런 것들이 오늘날 新 계급주의의 근원은 아닐까?

 

조선 지배층이 과시할 때 경쟁적으로 소비했던 모피 값으로 흘러갔던 대부분의 재물이 만주족의 興起에 절대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고조선 때만 해도 모피 생산-유통의 중심지였고그 이후 고구려나 발해 또한 모피 생산으로 유명했는데 어느 순간 생산자와 소비자가 뒤바뀌게 된 셈이다단순히 사치를 일삼았다는 것을 벗어나 망국의 지름길을 걸었던 셈이다그와 더불어 황칠나무 또한 이익을 주는 특작물이 아니라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대상이 되어버리자 백성들은 황칠나무를 찍어 넘겼고황칠나무 생산은 그 전통이 끊기고 만다하지만 홍삼은 돈이 되기에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단순한 이치가 아닌가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단순한 이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시한번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사상 최고의 聖君으로 꼽는 세종 때문에 조선의 노비 제도가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고병자호란 이후 제대로 가정과 나라를 지키지 못한 찌질한 남자들이 오히려 피해자이자 동족인 여자들을 인격 살해했다고 말이다그러면서 저자는 위안부 박물관의 부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옆 독립공원이 지정되자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이 이를 반대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탄한다독립운동가만 고귀하고 위대하며어쩔 수 없이 끌려가 한세대를 치욕과 어려움 속에서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불결하며 수치스럽고 부끄럽단 말인가어느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뿌리 깊은 유교주의적 시각이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주제에서 저자는 양성지문순득을 비롯해 환구단과 사대주의선조의 사례 등을 통해 조선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었다양성지는 개인적으로도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조선의 정치가다물론 󰡔책에 미친 바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 천재라고 불릴만한 인재는 많았다하지만 그중에서도 양성지만큼 정책의 중심부에 가까웠던 이는 없었으며그런 만큼 더 안타까운 이도 없었다문순득처럼 원치 않게 세계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던 이들도 마찬가지로 조선 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조선에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인재를 받아들일 여유와 시스템이 없었을 뿐이었다그런 나라가 500년이나 지속되면서 남긴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너무나도 깊게 뿌리박혀 있다.

 

책의 마지막으로 저자는 환구단과 사대주의선조를 언급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최근의 대한민국과 너무 절묘하게 맞아들지 않는가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아니 정치인들 중에서 과연 대한민국이 얼마나 자주·자립·자강을 잘 실현하고 있다고 느낄까아니그러지 못한다고 미리 답을 정해놓고 친미는 종북이니친중이니 떠들어대지 않을까꼭 선조처럼 分朝를 만들고 중국에 빌붙어 내 백성내 강토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다스스로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사리사욕에 젖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것 또한 선조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 것이다.

 

저자는 회전목마를 타듯이 강약을 조절하며 조선을 비판하면서칭찬하면서 어르고 달랬다개인적으로 조선사를 싫어하는 필자가 책을 썼다면 시종일관 강하게 비판만 했을 것이다그걸 참아내고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하지만 저자는 그 와중에서도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강하게 얘기할 때는 얘기하고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해 분투했다물론 잘못 이해된 유교가 전체 사회를 지배했던 조선에서 칭찬받을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관심거리 이외에 더 발전적인 그 무엇이 되지 못했다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중국화하는 일본: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을 보면 그 책의 저자는 오히려 조선이야말로 중국화(선진화)가 일찍 된 나라라고 얘기하기도 했다물론 필자는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조선이야말로 小中華에 가장 걸맞는 국가가 아니었을까그러면서도 선진화라고 말하는 중국화의 긍정적인 요소는 오히려 배제하고나쁜 것만 배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씁쓸했다.

 

이 책을 읽고 곰곰이 되새겨보니 현재 대한민국에는 조선의 잔상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저자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조선이 잘못한 것을 한시라도 빨리 인지하고 제대로 바라보자그리고 잘한 것만 기억하지 말고 잘못했던 것을 되풀이하지 말자!! 과거의 성공 요인이 현재에 반드시 성공 요인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하지만 과거의 실패 원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미래에도 실패 요인이 되는 법이다그러면 우리는 조선이 걸었던 길특히 망국과 식민지배한국전쟁과 분단국가의 길은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지난 주말 색시와 함께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을 방문해 여기저기 유교의 위대함(?)과 전통이 이어지게 된 자랑스러움(?)을 한껏 느끼고 나니 더 많은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다우리는 흔히들 역사를 통해서 잘잘못을 분별하고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지침으로 삼곤 하는데이 책 또한 우리에게 그런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