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의 이집트 기행
헤로도토스 지음, 박성식 옮김 / 출판시대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한때 고구려에서의 돼지의 의미를 공부하다가 뒤적거리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집트인들은 범람이 되면 돼지를 풀어 땅을 경작하기 좋게 밟는다는 식의 그리스인의 묘사가 이 책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겸사겸사 보게 되었지만 이집트란 나라에 대해서 잘 서술한 책이라는 생각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든다. 물론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며 그 내용이 어렵다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기행한 답사기일 뿐이다.

그는 기원전 5세기에 태어난 인물로서 동으로는 소아시아를 넘어 바빌론과 수사, 서로는 리비아의 키레네, 남으로는 나일강의 상류, 그리고 북으로는 흑해와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당시 서양세계에 알려졌거나 방문이 가능했던 모든 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의 여행과 연구는 9권의 저술로 구체화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역사(Historiai)'라고 한다. 특히 마지막 3권은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 제국이 어떻게 그리스를 침략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격퇴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보통 헤로도토스의 역사라고 하면 이 3권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 이집트 기행은 앞선 6권 중의 하나였다.

사실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때 그 땅의 주인은 페르시아인들이었다. 우리에게 이집트가 전설적인 영웅들과 파라오들의 나라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앞에서 경이로운 찬사를 바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헤로도토스 역시, 그보다 2,500년 전의 역사적 산물 앞에서 경이로운 찬사를 바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까지로서 가장 앞선 시기의 이집트에 대한 생생한 저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집트를 방문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보고 들은 것들을 적으면서도 본인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현재 외국인(주로 중국인)의 우리 민족에 대한 서술을 보면 그들의 시각 아래 서술된 내용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아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선화봉사 고려도경'같은 책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이 분명 그 시대의 우리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서술한 사람의 시각에 준한 것들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헤로도토스의 이집트 여행기를 보고 있노라면 전해듣고 직접 본 것 중에서 본인이 인정할만한 부분과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것들을 분명히 구분해서 서술하고 있기에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처음은 이집트인들과 인류의 기원이라는 부분부터 시작한다. 즉,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라고 믿어왔다가 결국 프리지아인들보다는 못 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의 지형과 각 자연환경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특히 거리는 배를 타거나 걸어갔을때 며칠이 걸린다는 식으로 계산하여 길이를 세세하게 기재할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학 있다. 특히 나일강의 범람에 대한 부분에서는 이집트인들의 설명도 인정하지만 본인 스스로 과학적인 근거를 대면서 진위 여부에 대해 서술하고 있어 그 당시 헤로도토스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를 알 수가 있다 - 실제 그는 나일강의 범람이 눈이 녹아서 발생한다는 설을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진실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다고 말하고 있다 -

그리고 그는 최대한 이집트인들의 풍속과 생활상을 묘사하는데 있어 개인적인 견해를 삽입하지 않았다. 즉, 진수가 읍루인들이 돼지 기름을 몸에 발라 추위를 방지한다는 것을 미개한 것처럼 묘사한 것과 달리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그 자체만 서술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그리스인들 대부분이 이집트라는 신비의 나라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인식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개인의 서술 기준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즉, 그가 남긴 그러한 객관적인 서술 덕분에 오늘날 수천년 전의 이집트인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가 주인장 스스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시까지 흔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소위, 상식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 다른 異說이 있을 경우,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고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태도는 당시 사람들이 이집트에 대해, 혹은 주변 세계에 떠도는 풍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그 진위여부를 파악하게끔 해줬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장은 특히 트로이 전쟁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에 방영된 유명배우의 출현작 '트로이'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트로이에 대한 1가지 사실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기원전 5세기, 한 천재적인 인물의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역사왜곡이 아닌가.

우리가 아는 트로이 전쟁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와 눈이 맞아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은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 트로이를 공격하고 10여년의 장기전이 계속되지만 파리스의 형 헥토르가 지키는 트로이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이후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에서 헥토르가 패하고 트로이성은 목마를 이용한 전략으로 인해 그리스군에게 함락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 역시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우스건이 맞음으로써 죽게 된다 -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미 호머가 그의 서사시를 쓸때 기본적인 줄거리는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분명히 말한다. 호머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따르고 있던 서사시적 구성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본래의 줄거리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에서 보고 들은 트로이 전쟁의 전개는 대강 다음과 같다.

- 알렉산드로스(파리스)는 스타르타에서 헬렌을 납치하고(같이 온 것이 아님) 고국으로 떠나던 중, 폭풍으로 이집트 바닷가에 도착한다. 그때 알렉산드로스의 시종들이 이집트의 신전으로 달아나 그가 메넬라우스에게 한 짓을 모두 고하고 그 호소는 사제들을 통해 멤피스에 있던 파라오 프로테우스에게도 전해진다. 이후 나일강 하구의 감시책임자인 토니스는 알렉산드로스와 헬렌, 보물들, 신전으로 도망쳐온 시종들을 붙잡아 파라오 앞으로 나아갔고 프로테우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어설픈 변명을 들은 다음에 알렉산드로스는 여자와 보물을 그 주인이 찾으러 올때까지 이 곳에 놔두고 본인은 3일안에 이집트를 떠나라고 명한다.

이후 메넬라오스와 그리스의 대군은 트로이에 도착해 알렉산드로스가 가져간 보물과 헬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트로이인들은 일관되게 자신들에게는 그것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없는 그것이 이집트에 있다고 트로이인들은 맹세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파라오가 억류하고 있는 그것들을 트로이인들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결국 트로이인들이 자신들을 우롱한다고 생각하여 도시를 공격해 함락했다. 하지만 역시 보물과 헬렌은 트로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리스인들은 트로이인들의 진실을 믿고 메넬라오스를 이집트에 파견했다.

메넬라오스는 이집트로 가 헬렌과 보물을 온전히 돌려받고 극진한 대접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로 떠나기 전 역풍이 불자 어린아이 2명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사악한 짓을 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고 이집트인들은 메넬라오스를 추적했으나 결국 그가 리비아로 탈출한 뒤여서 잡지를 못 했다 -

그리고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들이 조사와 자신들의 땅에서 일어난 상황을 통하여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덧붙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길, 트로이에 헬렌과 보물이 있었다면 트로이인들은 그것을 되돌려 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나라가 위험에 처할만큼 그들은 멍청하지 않았으며 더군다가 알렉산드로스보다 더 용감한 그의 형 헥토르가 왕국의 후계자로서 그의 동생이 벌인 멍청한 짓을 옹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트로이의 멸망은 우리가 오늘날 아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당대의 사람인 헤로도토스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헤로도토스가 남긴 이집트 여행기는 모든 부분에서 기존에 주인장이 알고 있던 많은 내용과 다른 사실들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저술이 당대에 행해진 것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 사료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과 200페이지도 안 되고 글씨도 큼직한 이 작은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어내려간 것은 당연하며 한번만 읽은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2~3번을 더 읽어봤다. 그만큼 이 책이 보여준 매력에서 주인장이 선뜻 떠나가지 못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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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7-09-2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인데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군요. 그런데 역사 9권을 전부 번역한 책은 없는 건가요?

麗輝 2007-10-0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우고전선'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상, 하 2권짜리 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구입한다, 구입한다 생각해놓고 구입하지 못 했는데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절판된 곳이 많아서 구하기 어려울 것도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