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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드디어 <최종병기 활>에 대한 감상평을 남기는 것 같다. 

<최종병기 활>이 조금 있으면 700만 고지를 돌파하려는 이 찰나(클릭)에 감상평을 남기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지 않나~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근까지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재밌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몇자 적도록 하겠다. 

영화의 내용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왜? 단순하니깐? 최고의 추격 액션영화로 꼽고 싶은 <테이큰>, 한국판 테이큰으로 꼽는 <아저씨>, 테이큰, 고대 중미 버전인 <아포칼립토> 등등과 내용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그냥 테이큰이 워낙 잘 알려진 영화고, 감명깊게 봤기 때문에 위와 같은 수식어를 쓴 것이지, 어느 영화가 먼저 개봉됐냐, 마냐를 따지고 싶진 않다. 참고하시길. ^^;). 

줄거리를 보자면~ 누군가 주인공의 주변 인물을 납치해간다. 이를 구출하러 주인공이 떠난다. 이때 주인공은 남들과 뭔가 다른 졸라 뛰어난 스킬을 갖고 있다. 당연히 나쁜 놈들을 하나둘씩 제거해가고 납치된 인물을 구해온다. 이게 기본 스토리 라인이다. <테이큰>에서는 친딸이, <아저씨>에서는 옆집에 사는 친한 소녀가, <아포칼립토>는 본인이 납치(?)되었다가 탈출해서 가족을 지키는 내용이며, <최종병기 활>에서는 그 대상이 친동생이다. <테이큰>과 <아저씨>의 주인공이 전직 특수요원 출신이고, <아포칼립토>의 주인공이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냥꾼이라면 <최종병기 활>의 주인공은 曲射가 가능한 조선 최고의 신궁이다(늘 이런걸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 주변 사람을 지킬라면 나도 뭔가 대단한 스킬을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음냥...-.-;). 더불어 <테이큰>에서는 유럽에 상주하고 있는 국제적인 인신매매단, <아저씨>에서는 국내에 상주하고 있는 마약밀매, 장기매매 등을 하고 있는 조직폭력단, <아포칼립토>에서는 마얀지, 잉칸지 뚜렷하게 안 나왔지만 암튼, 중앙정부(?)에 희생용 포로를 제공하는 전문 인간사냥꾼 집단이 主敵으로 나온 반면, <최종병기 활>에서는 역사상 최강이라 불리는 군사집단 중 하나인 청나라 팔기군(클릭)을 상대하고 있다. 

일단...이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감상을 작성하기 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한번 다뤄보겠다. 

그건 바로 <최종병기 활>과 <아포칼립토>의 표절 논란 부분이다.  

조선일보 - 8월 27일자 기사 '최종병기 활', 영화 '아포칼립토' 표절 논란 

이데일리 스타in - 9월 9일자 기사 '최종병기 활' vs '아포칼립토', 얼마나 비슷하기에 

이밖에도 이와 관련한 많은 블로거들의 포스팅도 있고, 관련 기사도 더 있지만 네이버에서 검색된 최근 기사 2개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것만 읽어봐도 전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김한민 감독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인터뷰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무비위크 - 9월 9일자 기사 '최종병기 활' 김한민 감독, "내 영화가 표절이라고?" 

감독은 <라스트 모히칸>과 <10,000 B.C>도 <아포칼립토>와 흡사하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그랬다. 굳이 따지자면 <라스트 모히칸>에는 검치호라든가, 재규어라든가, 호랑이가 안 나왔다는 것 정도? 추격씬도 비슷했고,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비슷했다. 특히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설정이 진일보한 것이다~라는 감독의 말에는 적극 공감하는 바다(영화의 압권이라고 한다면, 절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싸우는 장면을 꼽고 싶다). 암튼, 전체적으로 기존의 표절 논란에 대한 부분에서 필자는 감독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혹자는 '아포칼립토가 있었기에, 최종병기 활이 가능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근력시대의 전투방식을 '한국'과 '중미'라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잘 표현했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자가 비슷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관객들 개별의 몫이 아닐까 싶다. 만약 <최종병기 활>이 <아포칼립토>의 한국 버전이라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필자의 얘기를 좀 더 해보도록 하겠다. 

   
 

1. 무기의 참신함 

'최종병기'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어감에서 주는 강렬함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활'은 근력시대 최고의 원사무기로서, 우리나라의 활솜씨는 동아시아에서 널리 인정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시대극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이 주인공으로서 활약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과거 <무사>에서 안성기가 활을 쏴대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영화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 했으며(어디까지나 장창을 휘두르는 정우성이 주인공이었으니깐), 요즘 나오는 사극들을 봐도 '활'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려내는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판국에 이처럼 활이라는 무기 하나에 집중해서 스토리를 끌어낸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더군다나 주인공인 남이의 주특기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혹은 '도저히 날아올 수 없는' 각도에서 쏴대는 곡사가 아닌가. 마치 <원티드>에서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팔을 안쪽으로 휘면서 총을 쏴 총알이 말도 안 되게 휘어 날아가는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이 영화로 인해 정말 기존의 총격 액션과는 차별화된 신선한 영화가 나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게 딱 떠올랐다(근데 따지고보면 똑같이 곡사인데, 아무도 <최종병기 활>에 대해서는 <원티드>를 표절했다고는 안 하는 것 같다. ^^;;). 즉, 기존에 '활'만 갖고 만들어낸 영화가 없어 그것만으로도 참신한데, 아예 프로토 타입이 아니라 '곡사'라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떡! 하니 세상에 등장했기 때문에 일단 소재면에서 별 5개 만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 필자 개인적인 생각이다. 

2. 긴장감과 속도감 

활은 근력이 최대점에 달할 때까지 당겨서,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과녁을 조준하고, 뒤이어 가볍게 활시위를 놓음으로써 다음 이야기가 전개된다(명중인지, 불발인지). 이는 분명 총과는 다른 방식이다. 스나이퍼들이 적을 조준하고 과녁을 맞추는 과정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그런 푹풍전야와 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숨을 죽이고 과녁을 바라보는 그 이전에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 하나가 더 추가됨으로써 극 전개의 완급 조절이 됨과 동시에 긴장감이 더해지고, 뒤이어 속도감이 배가되는 효과를 얻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봤을때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잘 연출된 것 같다. 

무조건 속사를 하는 것으로도 '우와! 멋있다!'가 나올 수 있지만(예전에 드라마 <주몽>에서 송일국이 눈을 가리고 화살을 땅에 꽂은 채 보지 않고 속사를 해서 과녁 정중앙을 관통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것이다), '끼기긱~' 하면서 힘겹게 활시위를 당겨, 화살 끝을 과녁에 조준한 뒤 1~2초간 정적이 흐르고 이내 화살이 날아가는 연출이 한결 더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로빈후드>도 괜찮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지만(영화 속에서 굳이 따지자면 두 장면 정도 나올 듯 싶다. 로빈이 고프리 경을 향해 화살을 쏴 한번은 얼굴을 스치고, 영화 막판에는 목을 관통하게 했던 것 정도랄까?), 긴장감과 뒤이은 속도감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최종병기 활>이 더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현실감 

우리나라 사극극이라 하면 필자가 늘 지적하는 것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ROME> 시즌 1~2를 요새 다시 보고 있는데, 그 현실감은 절대로 우리나라 사극이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러한 현실감도 잘 살린 것 같아서 좋았다. 백두산 호랑이를 보고 겁에 질려하는 청나라 전사(실제 호랑이가 눈앞에 떡 버티고 서 있으면 오금이 저리다는 걸 잘 표현했다)도 그렇고, 무거운 갑주(물론 경량화했다곤 하지만)를 입고 계속 달리다가 헐레벌떡 낙오된 청나라 전사도 그렇고, 남이가 중간에 대나무를 잘라 급하게 애기살을 만드는 모습이라든가, 청군의 화살을 집어 재활용하는 모습도 그랬다(물론 함경도 일대에 대나무가 없어서 그렇게 애기살을 만드는 설정에 무리가 있긴 하지만). 

또한, 만주족 전사들이 만주어를 쓰는 모습이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오호라~' 이거 정말 현실감있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가 만주어를 모르기 때문에, 배우들의 만주어 실력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는 모른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저런 시도를 하면서까지 현실감을 배가시키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중국과 한국, 일본 사신들이 만나면 이렇게 통역을 하거나, 외국어를 쓰는 모습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 사극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지 않은가? 암튼, 이런 것들이 다 기존에는 세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던 모습들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반갑게(?) 와 닿았다.

 
   

올해 <최종병기 활>이 어디까지 고공행진을 계속 할지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성공한 이 영화가 이후 등장할 한국 영화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이다. 물론 이후 청나라의 기둥(?)이 될 도르곤을 호색한에, 불에 타 허무하게 죽는 것으로 그린 것은 좀 심했지만, 어차피 팩션인데 어찌하랴. 그냥 극중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이기 위한 장치(그래야만 쥬신타가 완전 눈이 뒤집혀 남이를 쫓아올 테니깐)로 선택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설정을 했다고 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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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같은 경우, 원제목인 통천제국의 적인걸보다는 한국식 제목(Detective Dee and the Mystery of the Phantom Flame)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가 너무 식상해서 말이지. 어제는 검우강호를 보고, 오늘은 적인걸(이하 생략)을 보고, 연이어 무협영화 2편을 봤다. 어떻게 보면 적인걸은 무협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무협액션이 빠진 것은 아니니...이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추리를 소재로 한 시대극이다. 배신과 음모, 모략과 반전 등의 요소가 없었던 영화들은 없지만(화려함이 극에 달한 <황후화>같은 영화도 뭐 이런 소재들이 다분히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 소재 자체를 영화화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하겠다), 이번 영화처럼 고대 당나라의 수사일지를 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은 없었다. 

적인걸이라는 인물은 예전에 측천무후 관련된 책(기억이 잘 안 난다)을 봤을 때, 잠깐 봤던 기억이 난다. 뭐 내용은 측천무후 시절 실력 위주의 중신들이 많이 등용되어 활약했다~는 것이 주를 이루지만 저자의 결론은 '그래도 측천무후 시절 공포정치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고, 그 힘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격으로 활약하던 악인들도 있었다~' 뭐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唐史에 대해 관심이 적은 건 아니지만, 측천무후와 관련된 부분은 그닥 관심이 없어서 관련 자료를 몇번 뒤적거린게 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로 나온다니 인터넷에서 끄적거리면서 검색을 좀 해 봤다. 최근의 측천무후에 대한 연구사적 성과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치세 동안 백성들은 평안했고,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단다. 대강 보면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가~와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민주화 후퇴, 언론 탄압, 국민에 대한 정보 통제 등등에 대한 문제가 많았지만 한국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 준비야 장면 내각때부터 이뤄졌다고 해도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력있게 밀어붙인 것도 사실이니~뭐 그때의 부작용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고. 암튼, 측천무후에 대한 평가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극과 극을 달리고 있으니 이 점 또한 흥미로웠다.

그럼 이제 영화 얘기 좀 해 보자.

영화는 측천무후의 황제 즉위식을 앞두고 건조가 한창인 120m 높이의 통천부도(通天浮屠)라는 거대한 불상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용문석굴의 비로자나불을 모델로 만들어진 이 가상의 건축물은 정교한 CG로 작업되었는데, 영화 초반부터 보는 이로 하여금 우와~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암튼, 로마의 사신단에게 이 건축물을 소개해주던 당나라의 관리가 갑자기 자연발화하게 되고, 영화는 긴장감있게 흘러간다. 자연발화한 당나라 관리를 조사하던 대리사(당시 법집행기관)의 책임자 역시 자연발화하는 등 사건이 심각해지자 감옥에 갇혀 있던 적인걸을 다시 불러오라고 명한다. 여담이지만 어떤 분 블로그에서 말하길, 이 자연발화 CG를 우리나라 스탭진이 담당했다고 하던데 맞나 모르겠다.   

그는 측천무후의 대리청정을 반대해 반역죄 명목으로 감옥에 들어간지 8년째였다. 측천무후가 적인걸을 필두로 자신이 총애하는 상관대인 정아, 대리사의 부책임자(?) 배동래에게 이번 사건의 조사를 명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는데 여기에서 어리숙한 척 하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적인걸의 친구로 적인걸이 감옥에 들어갔을때 그 역시 감옥에 들어가 왼팔 하나가 잘렸던 사타충이 바로 그였다. 

그는 목숨을 부지해 이후 궁궐의 보수 책임자로 일했고, 지금은 통천부도의 건축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역시 과거 대리사에 일했던 경험을 살려, 따로이 사건을 수사했고, 적인걸 일행에게 중요한 단서를 알려준다. 여기까지 봤을 때 뭔가 감이 오긴 했다. 저 어리숙한 양반이 뭐가 있구나~하고 말이다. 암튼, 그렇게 사건 수사가 계속되고 알 수 없는 집단들에게 계속 공격을 받는 적인걸 무리. 결국 정아(원래 그를 싫어했지만 적인걸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버린 그녀)는 매복에 걸려 적인걸을 구하고 죽게 되고, 배동래 역시 매복에 걸려 자연발화하고 만다.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면서 남긴 증거때문에 적인걸은 결국 측천무후 정치의 실체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자연발화의 원인과 주범, 거기서 더 나아가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에 대해 모든 걸 다 알아버린다.  

전체적으로 느낌은 <셜록홈즈>를 봤을 때와 비슷했다(여담이지만 <셜록홈즈>를 보면서는 <일루셔니스트>와 <프레스티지>를 떠올렸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소설 속의 인물을 참 잘 살렸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참 재밌게 이야기를 잘 짜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적인걸은 당나라의 명신보다는, 중국사에 길이 남는 유명한 판관 4명 중 하나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라마로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판관 포청천! 실제 중국 내에서도 포청천이 가장 유명하단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판관은 바로 적인걸인데 이는 네덜란드인 고라패라는 사람이 그에 대한 책을 서술했기 때문이라고 한단다(http://cafe.daum.net/ijkhanmoon/Vzk1/76). 뭐 원전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좀 뜨면 원전이 번역되서 좀 발간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암튼 영화를 주욱 보면서 원래 내용이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가 재직하면서 해결한 사건이 17,000여 건인데, 이후 상소가 단 1건도 올라오지 않았을 정도로 그의 판결은 늘 정확하고 공정했다고 하니 참 대단한 사람이었구나~싶다. 어떻게 단 1건도 상소가 올라오지 않았을까? 흐음. 그럼 영화를 보면서 눈여겨 본 부분 몇가지만 얘기하고 마무리하자. 

1. 화려한 CG와 웅장한 스케일이 눈에 확 띈다. 스케일 면에서 지금까지 나온 어떤 시대극보다도 컸던 것 같다. 장안성(그런데 정아가 배동래를 비롯한 대신들 앞에서 측천무후의 명을 공표하는데 東都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 같던데...그런 낙양 아닌가? 쩝...)의 화려한 모습을 CG로 재현했는데, 성 주변의 수운으로 수십척의 배들이 드나들고, 항구에는 엄청난 숫자의 장막이 펼쳐졌으며 외국인-중국인 할 것 없이 전세계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활기차게 생활하는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았다. 화려함은 <황후화>만 못 했지만, 그래도 측천무후의 머리 장식이나 복장은 눈에 띌 정도로 화려했다.  

2. 영화 초반부의 설정이 마음에 든다. 적인걸은 맹인 행세를 하면서 감옥에서 일하는데(난 처음에 진짜 맹인인 줄 알고 눈을 나중에 어떻게 살리지? 라는 생각에 한 3~4초간 고민했다능...-.-;), 그 일이라는 것이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 중 처리가 된 것들을 불태우는 것인 것 같다. 그는 올라온 상소들을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계속 알았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지내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 게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 보지는 못 했지만, 영화에서 묘사한 바가 신선해서 눈에 띄었다. 또한 적인걸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 그런 설정을 보여줌으로써 이후 측천무후 시절, 그가 명신으로 활약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복선을 깔아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3. 인물 간의 캐릭터가 확실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적인걸이지만, 그를 도와주는 2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상관대인 정아와 대리사의 배동래다. 적인걸을 처음에 미워했으나 점점 그를 사랑하게 된 정아, 그리고 그런 정아를 남몰래 아끼는 배동래. 극 중간중간마다 그런 뉘앙스가 풍기는 장면들이 조금 있었으나 철저하게 마지막까지 그것들을 배제했다. 정아는 측천무후에게 살면서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냐?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 라고 물으면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그 속내를 비추는데 만족해야만 했다(그런 정아의 마음을 적인걸이 아는 것 같지는 않았고 -.-;). 즉, 철저하게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적하는데 있어 어설프게 로맨스를 집어넣지 않은 점이 좋았다. 또한 적인걸 일당이 각각 쓰는 무기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면서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해서 그런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이 영화를 봄으로써 적인걸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는 점, 그리고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는 탐정소설이 있다는 점, 그래서 그걸 보고 싶게 했다는 점이다. 어떤 분이 영화에 대한 댓글에 '측천무후의 등장에 따른 정치적 이야기 뭐 이런 것을 알고 싶었는데 이건 아니다' 뭐 이렇게 쓴 걸 봤다. 이 영화 자체가 측천무후의 등장에 따른 당시 정치사를 사실적으로 다루려는 목적이 없는만큼 그런걸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냥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는 탐정소설을 영화화한 것 뿐이니 말이다(그래서 앞에서처럼 <셜록홈즈>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실존인물이고, 이 안의 인물들과 배경이 실제 사실에 어느 정도 근거했다고 하더라도 내용면에서 비판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밖에 중간중간 좀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자연발화의 원인인 서역산 '적염금귀'라는 독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다. 걔네를 끓여서 만든 물을 마시거나 피부에 닿으면 자연발화가 된다는 것인지, 걔네들은 만지기만 해도 그런 것인지, 걔네들이 물으면 그런 것인지 다 뒤죽박죽 섞어놔서 좀 의아했다. 또한 영화 마지막에 측천무후의 퇴위를 '적인걸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라고 한 것도 조금 NG였다. 실제로 그는 측천무후 집권 내내 재직했고 부와 영예를 누렸던 인물로서, 영화 상에서야 적염금귀에 중독당해 지하의 귀신도시(鬼市-한대에 장안성이 무너진 부분에 형성된 할렘가랄까?)로 들어가 살지만 실제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영화상의 설정을 갖고, 영화 말미를 저렇게 장식하나? 싶었다.  

암튼, <검우강호>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영화라서 즐겁게 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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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목란(花木蘭), 우리가 흔히 아는 뮬란의 한자 표기이다.
이 이름은『목란사(木蘭辭)』라고 하는 중국의 장편 서사시에 처음 나오는데 “同行十二年,不知木蘭是女郎”, 즉 '동행한지 12년, 목란이 여자인 줄 몰랐다.'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있어 그가 여성임에도 십여년을 남장을 하고 전장터에서 활약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장편 서사시가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위에서 지어졌으며, 남조 陳나라 시절의『고금악록』에 처음 수록되었다고 하는데(http://ko.wikipedia.org/wiki/%ED%99%94%EB%AA%A9%EB%9E%80) 그렇다고 한다면 이 서사시가 남북조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있던 구전 형식의 설화를 이 시기에 와서 문자로 기록한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필자가 처음으로 봤던 뮬란의 배경은 이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 '뮬란'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 같다. 바로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뮬란(1998)'이다. 필자가 이때 고등학생이었으니, 정말 오래 전에도 나온 영화다. 

이 애니가 월트디즈니에서 그간 방영했던 영화 중 몇번째로 인기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 당시 아주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도 만들어졌지만, 그건 극장 상영은 안 됐고, 비디오로만 출시되었다고 한다(물론 못 봤다). 암튼 이때의 배경은 한나라였으며, 상대역(?)은 흉노족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조금 헤깔렸다. 영화에서 나오는 '위'가 춘추전국시대때 위가 아니라면, 남북조 시대의 북위일텐데, 그럼 만화에서 나왔던 한나라는 뭐지? 그건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프로 해서 만들었던 것인가? 암튼, 애니를 봤을 때 설원을 배경으로 수천명의 흉노군이 내달리고 그것을 막아내는 뮬란의 활약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의 느낌을 좀 되살려보려는 의도가 컸긴 하다. 사실 필자는 이걸 다운받아서 이미 한번 봤는데,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서(평소 영화관을 '시간 축내는 공간'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잘 안 간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왠만한 일 제쳐두고 가는 편이다) 봤다는 얘기는 안 하고 한번 더 극장에서 보긴 했다. 그 이면에는 '아무리 큰 스크린으로 봐도(필자의 모니터는 23인치) 극장 스크린만 하겠느냐!' 라는 생각도 들어 있었다. 그렇게 극장에 들어섰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부분은 뭐 애니와 큰 차이는 없었다. 말괄량이로 선머슴같이 무예 연마를 거듭해온 뮬란과 그와 친한 같은 마을의 동생 소호(성룡의 아들이란다. 나중에 다시 보니 정말 닮았다),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 화목하게 살던 마을에 이변이 닥친다. 유연 족장이 9개 부족을 통합해 살기 좋은 북위를 공격하기 위해 남하를 시작하였으며, 이를 막기 위해 뮬란의 아버지가 징집된다. 당연히 뮬란은 남장을 하고 軍鎭으로 들어가게 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뭐 잘 헤쳐나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태를 만나 둘의 사이는 급 친해지게 된다. 큰 위기가 한차례 다가오지만 마침 유연족이 쳐들어오고, 뮬란은 유연족 대장의 목을 쳐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한다. 그 공로로 문태와 뮬란은 끊임없이 전공을 쌓고, 십여년의 전쟁동안 북위는 유연족을 상대로 계속 승리한다. 전쟁에 지친 유연족이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족장의 아들 문독(아주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의)이 아버지를 죽여 다음 족장이 되고, 전쟁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결국은 뮬란이 문독 죽이고, 잡혀간 문태 되살리고, 문태는 유연족 공주와 혼인해 두 나라는 평화를 찾고, 뮬란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일상의 삶을 살고...이런 식이다.

먼저 내용을 다 떠나서 여기에서 제작진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했는지가 궁금했다. <적벽대전>, <삼국지-용의 부활> 제작진이 만든 전쟁액션이라고 크게 떠들었는데, 솔직히 그것들보다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솔직히 말하면 <적벽대전>보다는 못 했고, <삼국지-용의 부활>이랑은 뭐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일단 영화의 목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 뭐 그런게 딱히 안 보였다. <삼국지-용의 부활>에서도 조운 자룡에 대한 영화라고 하지만, 너무 각색된 부분이 많고 실제 역사와도 거리가 있어 솔직히 와닿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대체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부제는 '전사의 귀환'이라고 하는데, 뮬란이 이전 시기에 보여졌던 그런 영웅 혹은 전사의 이미지로 이 영화에서 그려졌나? 아니다! 아니면 애니메이션처럼 온갖 역경을 다 헤쳐나가고 결국 나라까지 구한 대단한 여걸의 이미지로 그려졌나? 아니다! 물론 조미가 본래 중성적인 역할을 많이 하니깐, 이 영화에서도 중성적인 이미지로 스토리를 이끌어 간 것은 맞다. 하지만, 계속 전쟁에 대해 고뇌하고, 연정을 품은 문태가 없어졌다고 나약하게 나뒹구는 모습은 뮬란을 인간적으로 표현하는데는 성공할지는 몰라도 영화 속에서 정체성을 잃게 했던 것 같다. 차라리 부제에 걸맞게, 혹은 기존 뮬란의 이미지에 맞게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뮬란을 전략적인 인물, 부하를 사랑해 한몸처럼 여기는 뛰어난 지도자의 모습 등으로 그려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일단 캐릭터 설정에서 조금 안 맞았던 것 같다. 감독이 의도한 건지 뭔지는 모르지만 뮬란을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면 그냥 처음부터 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게 나았을 것 같다. 뮬란의 주변 인물, 즉 뮬란이 사모했던 문태나 뮬란을 끝까지 믿고 따라줬던 소호를 더 부각시켜 그들과 같이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게끔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뮬란이 아무리 나약하고, 모자란 모습을 보여줘도 그 두 사람은 끝까지 주변에서만 빙빙 돌며 뮬란 곁을 지킨다. 주인공이 뭔가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는 점, 그렇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전사의 귀환이니, 액션대작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고 대규모 전투씬도 몇차례 영화에 등장했다. 특히 마지막 전투씬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왠 갑자기 모래 폭풍?? 너무 싱겁고 이상했다. 영화를 다 본 지금도 필자는 차라리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설원을 배경으로 내달리던 흉노족 기병의 모습이 더 다이나믹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 3>에서 보여줬던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씬과 <반지의 제왕 2>에서 보여줬던 다소 부족한 전투씬을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분명 영화가 돈도 더 많이 들였고, 실사인데다가, CG 기술도 얼마든지 투입시킬 수 있었을텐데 왜 그런 다이나믹한 전투씬 하나 집어넣지 않았는지 모르겠다(여담이지만 <삼국지-용의 부활>에서도 다이나믹한 전투씬은 없었다. 그냥 전투씬만 있었지).

거기다가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를 또 헤깔리게 한 것이 있었다.
잉? 왠 갑옷이 전부 찰갑이야??? 양당개같은 갑옷이 분명 있을텐데 왜 그러지?? 거기다가 장수들이 전부 검을 들고 싸우는게 아닌가?? 이것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순간 '이게 시간적 배경이 춘추전국시대인가?'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기도 했다. 어떻게 刀를 들고 싸우는 병사는 한명도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남북조시대가 되면 궁전수의 운용이 힘들어지면서 노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 유연족의 기마궁수에 비해 당시 유행했던 중장기병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도 NG였다. 시대 착오적인 장수가 검을 들고 싸울 뿐, 북위의 기병들 중 어느 누구도 중장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갑주와 무기는 시대 미상이라는 점 또한 이 영화를 전쟁액션의 장르에 집어넣기 부끄럽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배경이 한나라였다면 고증이 잘 되었다고 말할 정도다(『中國古代兵器圖說』과 같은 책 1~2권만 봐도 영화 속 고증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대장군이란 자가 뮬란을 시기해 적진에 뮬란과 그의 부하들을 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문태가 자신이 왕자임을 밝혀 포로로 끌려가고 동료 부대원들을 살려낸다. 뮬란은 다시 영웅적인 기질을 발휘해 혼자 적진에 들어가 유연족 공주를 설득해 문독을 암살하는데 성공하고...(뭐야 이거...) 어설픈 정치적 논리가 등장하고, 캐릭터들의 성격이 영화 후반부 급하게 바뀌어 버린다. 그래서 더 일관성이 없어졌다. 문태는 갑자기 왕자라고 밝히고, 조미는 문태가 없을때는 내내 나약해지다가 갑자기 혼자 문태 구한다고 유연족 진영으로 들어가고, 유연족 공주와 문태가 급 결혼하면서 양국이 평화로워지고...전쟁액션이라고 떠들었으니깐 일단 영화 전분부, 중반부에 전투씬 끊임없이 보여주다가 '아! 이제 영화 끝날 시간이네~'하니깐 갑자기 뮬란을 시기하는 대장군을 집어넣고, 캐릭터들의 성격을 바꿔가며 급하게 마무리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것을 현실감있게 그려내지도 못 했고, 그렇다고 아예 시원한 액션으로 도배하지도 못 했고, 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목란사』의 내용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시중에 화목란에 대한 책이 몇권 있던데...

암튼 2번 봐도 그저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다만, 자국의 서사시에 나오는 주인공을 자국의 기술력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별 3개는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무사>라는 영화를 했었는데, 솔직히 관객동원수는 얼마 돼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점수를 그리 낮게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역사를 우리 기술력으로, 우리가 영화화했다는데 의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의의는 있겠지만, 영화 자체는 결코 <적벽대전> 등과 비교해서는 안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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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하자마자 연구소 선배들(물론 남자들 -.-;)이랑 다 같이 관람한 영화가 있다(그런데 왜 지금 리뷰를 쓰는지 물어보지 말라. -.-;). 바로 이 영화 <로빈후드>다. 아마 개봉 당시 분위기들이 기억이 나실텐데, <글레디에이터>의 신화가 깨진다느니, 뭐 하느니 이러면서 극찬을 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아직도 <글레디에이터>만한 액션이 결합된 시대극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일단은 각설하고 영화 얘기 한번 해 보자. 

로빈훗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기존에 여러개가 있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도 그렇고, 최근에 검색해보니 작년에 영국 BBC에서 만든 드라마도 있다고 하더라. 그중 1976년에 <로빈과 마리안>이라는 영화가 했었다는데, 이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암튼 대강의 내용을 보니 이건 로빈훗이 좀 나이가 들었을 때 얘기같고, 그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1991년에 개봉한 <의적 로빈훗>이었다. 그리고 필자가 정말 흠뻑 빠져 봤던 영화도 바로 이 영화였다. 당시 <늑대와 함께 춤을>의 주인공으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케빈 코스트너가 바로 이듬해에 찍은 영화인데, 여기에서 그는 '영웅' 로빈훗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은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다시 구하려고 해도 참 구하기 어렵다), 당시 케빈 코스트너가 귀신같은 활솜씨를 보여주며 농민 반란군(산적이라 해야 하나? 암튼)을 이끌던 모습은 필자에게 영웅이란 저런 거구나~라는 것을 알려준 영화였다. 그리고 이번에 러셀 크로우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가 바로 <로빈후드>다. 영화 예고편 등을 보면 감독은 분명히 얘기한다. <로빈후드 더 비기닝>이라고! 그동안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감독이 얘기하려 한다고 말이다. 

한때 <베트맨 더 비기닝>, <다크나이트> 등 베트맨이 왜 생겨나게 되었고, 그 베트맨이 어떠한 고뇌를 갖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평범한 부잣집 아드님이 어떻게 럭셔리 영웅, 베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무게있게 다룬 영화들이 나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아마 이 영화도 그런 새로운 시도? 혹은 신선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분명 성공적이었다. 특히 로빈훗을 일반 평민, 하지만 大意를 갖고 장렬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들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캐릭터 설정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로빈훗이 실존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 아직도 학계 혹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데 인터넷을 찾아보니(http://ko.wikipedia.org/wiki/%EB%A1%9C%EB%B9%88%ED%9B%84%EB%93%9C) 기존에는 평민으로 보기도 했지만, 록슬리의 영주로 보는 등 이견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활을 기가 막히게 쏘는 평민으로 등장시켜서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다. 

또한, <글레디에이터>에서 보여준 영화 초반부 관객들을 압도하는 스펙타클한 전투씬 대신에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사자왕 리처드의 퇴각로 확보 전투(프랑스 여기저기를 까부시고 다닌다)를 전반부에 보여주고 있었는데, 고증이나 묘사가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 국가의 전투는 스케일이 다르구나~를 영화를 보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음~그런데 지난 영화들을 봐도 로빈훗의 활약 시기는 다 사자왕 리처드 시기로 그려내는 것 같다. 사자왕 리처드는 1189~1199년까지 재위했었으며, 흔히 무용과 기사도의 정신에 빛나는 전형적인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오히려 정치적인 통치력면에서는 무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영화에서도 그렇게 그려내고 있었으며, 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면서 아크레에서 수천명의 포로를 학살했다는 내용 역시 영화에서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물론 로빈훗의 사실적인 대답에 리처드는 좋아했지만, 결국 그들은 전투가 끝나면 처벌받기 위해 형틀에 묶이고 만다. 정직한 영국인이라고 칭찬할 때는 언제고 -.-;). 그러다가 그만 전투에서 리처드가 죽게 되고, 영국의 필립 2세는 리처드의 동생 존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존의 절친 고프리 경을 매수한다. 

뭐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기본 스토리 라인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사실 3차 십자군 원정에서 리처드는 무사히 귀국하고 있었고, 필립 2세가 존을 왕위로 올려놓는다고 하자 무리하게 귀국을 서두르다가 배가 난파당하게 된다. 그래서 육로로 유럽 대륙을 횡단하다가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에게 잡히게 되고,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신병이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엄청난 몸값을 치뤄 돌아온 다음 존을 밀어내고 다시 왕이 된 리처드는 필립 2세와 싸우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고, 거기에서 42살의 나이로 죽게 된다. 즉, 영화에서는 중간에 잡혀 몸값을 치루고 다시 복위하여 프랑스와 싸우러 갔다는 내용을 은근슬쩍 십자군 원정 귀국길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버무려 버린 셈이다. <글레디에이터>에서도 뭐 큰 스토리 라인은 따왔지만 세부 역사적 사실은 각색이 많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대립적인 두 라이벌로 감독은 영국을 구할 영웅 '로빈훗'과 영국을 프랑스에 팔아먹은 배신자 '고프리 경'을 내세운다. 로빈훗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어느 날 록슬리 가문의 아들로 둔갑하고 록슬리 경의 며느리 마리온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고프리는 멍청이 존 왕을 부추겨 윌리엄 마샬을 쫓아내고 최고 권력자로 등극해 각 영지를 돌며 세금을 쥐어짜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필립 2세와 내통해 대규모 프랑스군이 영국 해안에 상륙해 영국을 정복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영화의 전반부가 로빈훗의 십자군 원정에서의 활약과 귀국길과 관련된 스토리가 전개된다면, 중반부로 넘어오면서 또라이 존 왕의 왕위 등극 후 폭정, 고프리 경의 악행, 외롭게 영지를 지키는 마리온의 강인한 활약 등이 돋보인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는 영화 초반부 살짝 아쉬웠던 대규모 전투씬이 등장하게 된다. 실제 영국 웨슬리와 프레시워터 해변에서 촬영했다고 하는 마지막 전투씬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게 만드는 멋이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실제 프랑스군이 대규모로 저 당시 영국을 침공했고, 이를 막아낸 역사적 사실은 없다는 것,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사실이다. 앞의 전투씬이야 영화의 극적 요소를 절정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대헌장에 서멍하겠다고 존 왕이 약속하고 각 영주들은 그제사 병력을 내놓으며, 이 전투에서 고프리 경을 죽일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로빈훗은 이 전투의 승리로 일약 영국의 대영웅이 되어 버린다. 그럴려면 이 전투는 꼭 필요한 요소였다) 등장시킨 것이지만 대헌장에 대한 내용은 흥미로웠다. 1215년 6월 15일에 존 왕이 서명한 대헌장을 통해 영국왕은 어느 정도 봉건영주들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프랑스를 몰아내기 위해 서명하겠다고 약속한 존 왕이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로빈훗을 영국의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의적 로빈훗>에서 리처드가 로빈과 마리온의 결혼을 축하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론이었으나, 오히려 필자는 이것이 더 현실감있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에 어떤 분이 이 대헌장을 권리장전으로 오해하시기도 했는데(http://cafe.daum.net/v76/ISxF/343?docid=17F6H|ISxF|343|20100911004436&q=%B7%CE%BA%F3%C8%C4%B5%E5&srchid=CCB17F6H|ISxF|343|20100911004436), 오해를 푸시기 바란다. 권리장전은 대헌장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문서이니 말이다.

또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이 망치를 들고 싸우는 로빈훗을 두고 말이 안 된다, 궁수가 무슨 망치냐? 라는 꼬투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궁수는 그럼 장거리에서 활만 쏘고, 적이 가까이 오면 무조건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스타크래프트에서처럼 무빙 샷을?? 동서고금을 통틀어 주무기 외에 보조무기를 착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취급되었고, 저 당시의 궁수들 역시 활 하나만 미친듯이 사용했다고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거기다가 로빈훗은 주인공인데, 망치랑 활 2개밖에 사용 안 한건 오히려 애교로 봐줘야 하지 않나? 요즘 액션영화 보면 주인공들이 온갖 무기를 다 잘 사용하는 것으로 나오지 않는가.

영화를 보면 종종 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영화 1편보다 앞의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한 베트맨 시리즈도 그랬고, 스타워즈 시리즈도 그러했으며,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그렇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성격의 영화가 전작들보다 인기를 끄는 경우도 많았다. 필자가 볼때 그런 인기의 비결은 '이유있는 내용 전개'때문이 아닐까? 갑자기 새로운 배경, 새로운 내용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했던 내용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됐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 그런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이번 영화는 캐릭터 설정, 스토리 라인, 전투씬 등등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써붙여놓고 엄청나게 광고한 것처럼 '<글레디에이터> 10년 신화'를 깨드릴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별 1개를 비워둔 이유를 간단히 적고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더 비기닝이 뒤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은 이미 기존에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구축되어 시리즈로 연재되었던 영화들이 많다. 베트맨이 어떠한 활약을 하는 영웅인지, 스타워즈의 우주관이 어떠하며, 거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 어떤 사이인지,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T-800과 T-1000이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등등 기존에 나왔던 영화를 통해 이미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 그것을 유지했던 영화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 '로빈후드'는 앞서 그런 전작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맨 처음 언급했던 76년 작품과 91년 작품은 일단 캐릭터 설정이나 주변 배경, 스토리 라인에 있어서 이번 영화와 큰 상관이 없이 서로 다른 영화로 인식되는 게 더 크다. 그런 상황에서 '더 비기닝'을 표방했으니 무슨 영화의 '더 비기닝'이란 말인가? 아니, 영화가 아니라 단순히 로빈훗이라는 인물에 대한 '더 비기닝'적 성격의 영화를 만든게 아닌가~하는 반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빈훗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설이나 명확한 설명도 없지 않은가? 그 상황에서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를 다는 것이 과연 유리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리들리 스콧 감독이 <글레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에서도 로빈훗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며 그의 전성기를 그린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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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최고'라고 칭할만한 사극을 봤다. 처음에는 별로 얘기도 못 듣고 주목하지도 않았던 작품이다. 우연히 2회를 보다가 '오호~재밌겠는데'라는 생각에 다운받아서 1~8부까지 며칠만에 주경야독(?)의 심정으로 다 봤다. 이걸 보기 얼마전에『뿌리깊은 나무』를 감명깊게 읽었던 터라 다시금 쉽게 빠져들었던 면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 스토리나 장면장면마다 나오는 영상미와 대사가 주인장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그렇기에 주인장은 지금까지 무수히 방영되었던 사극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칭할만한 작품이라고 단정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주변에 적극적으로 '한성별곡-정'을 소개하고 보라고 선전 중이기도 하다.  

배경은 정조 시대, 임금은 시파와 벽파의 정쟁 속에 어렵게 왕위에 올라 수원 화성으로의 천도를 단행하는 등 경장(정치개혁)을 강하게 실시하고 조선 천지가 소란스러울때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다. 작은 살인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대하고 어두운 음모의 중심부로 향해간다. 기본적으로『뿌리깊은 나무』를 본 독자라면 잘 알겠지만, 그 책은 조선시대 스릴러의 최고봉이라 불릴만한 작품이다. 주인장도 이미 서평을 한번 쓴 적이 있듯이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세심한 시대적 고증, 놀라우리만치 탄탄한 스토리, 무수히 많은(그리고 숨겨졌던) 소재들의 절묘한 조합 등등 여타 역사소설이 따라가지 못할만큼의 작품성을 보유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인장의 이러한 극찬(?)은 이 사극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등장인물들의 비중이 어느 것 하나 한 곳에 치우침이 없어 절묘한 균형을 맞추고 있으며 시대고증이나 묘사 등이 수준급이었다.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2중 3중으로 깔아놓은 복선은 글이 아닌 영상으로 표현되었기에 오히려『뿌리깊은 나무』를 능가할 정도라 생각한다. 8부작 미니시리즈지만 8회 마지막 1분까지도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스토리 속에서 정말 대단하다~라고 감탄을 내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자세하게 한번 논해보자. 사극을 보면서 주인장이 가장 놀란 것은 시대적 배경과 절묘하게 부합하는 소재의 선택이었다. 예전 안성기 주연의〈영원한 제국〉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적이 있다. 역시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개혁정치를 펼치는 임금과 신하간의 긴박한 하루가 묘사되어 많은 화제가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보다 다이나믹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흔히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영-정조 시대, 이 시대는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대로서 많은 소설의 소재로서,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주제로 활용되었다. 그런만큼 시대적 변혁을 상징하는 많은 사건들이 이 시대에 벌어졌는데, 격렬한 정쟁(政爭) 또한 이에 해당한다. 드라마 내내 신료들의 정쟁은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정조 임금의 의지와 상충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는 왕의 편에 서서, 혹은 왕의 반대편에 서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자도 있지만 이들은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이 서야 할 편을 골라내기 바쁘다. 정치인들이 머리가 좋다고들 말하는데,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정치인들의 놀라운 정치 감각은 빛을 발한다. 극에서 최고로 꼽힐만한 극적 요소 중 하나는 '반전 '인데 정쟁으로 인한 반전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반전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절묘하게 부합하며 극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변혁과 개혁에 어울리는 극적 긴장감이 드라마 전체를 휘감는 것을 보는 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등장인물의 '성격'이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위에 보인 3명이라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캐릭터가 상당히 독특하다. 어리버리하지만 나름의 소신과 확신이 있는 서얼 출신의 박상규, 명문대가의 딸로서 역도로 몰려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음모의 중심으로 돌아선 이나은, 천민 출신이지만 돈의 위력을 알고 세상을 돈으로 바꿔보려는 양만호. 서로 다른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3명의 주인공 덕분에 극 전개는 더욱 극적이 된다. 그리고 이런 극중 인물설정은 당시 시대상황과 절묘하게 부합된다. 이조판서를 비롯해 서얼들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박상규라는 캐릭터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서얼의 차별이 어느 정도였는지, 서얼의 신분적 위치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조판서가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쌍놈의 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장면에서 주인장은 절로 감탄했다. 심리묘사가 절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상규는 약간 이상주의자로서 당시 조선시대 지배층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이였다. 그러하기에 정조는 그에 대한 기대를 더욱더 하게 되고 의금부 도사로 임명하여 직접 보검을 하사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신념으로 끝까지 극을 이끌어나간다(심지어 사랑하는 이나은이 독주를 마시게 했을때도 그는 강렬하게 부인하였다). 이나은은 역도의 집안 출신으로 관비가 되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살아가다가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나은의 아버지가 역도로 몰리게 된 이유가 서구사회처럼 민중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원했기 때문이다. 정조의 측근으로서 정조도 그의 역모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민중에 의한 쿠테타는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정조의 대사가 바로 그러하다. 이 비밀이 밝혀질 때까지 이나은은 오직 복수만을 생각하는 독을 품은 여인일 뿐이었다. 더불어 양만오 역시 천민이지만 객관으로 성공하여 거부로 성장한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후기 상업 네트워크가 활기를 찾으면서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돈의 위력이 발휘되는 시점에 양만오는 아주 적절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즉, 각 인물들이 당시 사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소리가 된다. 그럼에도 기존 사극에서는 보지 못 했던 인물들이어서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세번째는 새로운 임금상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정조 임금의 독백은 물론, 그가 다른 인물들에게 툭툭 던지는 대사까지 어느 것 하나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없다. 최선책이 아니면 차선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한 어조의 대사, 박상규의 이상을 바꿔보려는 정조의 집념이 느껴지는 장면은 물론이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의 중심에 서 있는 이나은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희망을 걸고 마지막 임무를 지시하는 그 장면, 마치『칼의 노래』에서 봤던 이순신의 고독한 독백과 같은 임금의 고뇌까지 또 다른 임금의 상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을만 했다. 그는 내려올 수 없는 고독한 1인자였으며 그 자리에서 자신들을 꺽으려하는 신료들과 싸웠다. 하지만 그의 적은 신료들만이 아니었다. 천년조선을 이끌어가는 어둠의 세력에 의해 음모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알지 못하는 적과의 싸움에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강한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였으며 극이 진행되는 내내 그의 강렬한 의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주인장은 내심 박상규가 독을 마시고도 살아서 일어났던 것처럼,『한반도』의 마지막 부분과 같이 정조가 일어나 자신을 해하려했던 자들을 벌주는 그런 장면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정조는 자신의 죽음으로 조선의 충신을 가려내고자 하였고, 그 마지막 대임을 이나은에게 건네준다. 얼마나 통한의 삶을 살았을까,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도 조선을 바꾸고 백성들을 생각했던 임금의 처절한 삶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네번째는 끊임없이 시청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극적 복선과 반전이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이럴까? 하면 저렇게 진행되고 저렇게 되겠지~하고 단정지으면 다르게 진행되는 스토리는 복잡하면서도 복잡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숨막히는 속도감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러한 극적 복선은 매회를 거듭할수록 긴장감이 배가되어 8회 마지막에서는 극에 달한다. 그동안 정조의 개혁의지를 꺽으려는 조직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그 주인공은 바로 대왕대비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정조는 죽기 직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려 버린다. 하지만 복선과 반전은 거기서 마무리되지 않는다. 정조가 목숨받쳐 건네준 대임을 다하기 위해 이나은은 박상규와 함께 고난을 헤쳐나간다. 그러면서 결국 정조가 가장 신임하는 사파의 영수 채승환에게 정조의 유지를 가져간다. 장용영은 정조와 채승환만이 움직일 수 있는 조선시대 최강의 정예부대로서 정조는 유사시 이 부대를 움직여 왕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미 정조가 죽은 시점에 장용영을 움직이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또 한번의 반전이 등장한다. 정조의 최측근으로서 최전선에 앞서 개혁정치를 지지하던 이재한이 채승환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는 정조가 죽은 마당에 그의 개혁은 너무 급진적이었다고 되뇌인다. 어떻게 양반에게 군역을 지우냐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장용영 외영 대장인 최인우 장군 역시 이재한에게 무언의 동조를 보낸다. 그러면서 이재한은 만약을 대비해 정조의 유지를 자신이 챙기는데 이것도 역시 복선이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나은은 비밀조직의 일원이 바로 이재한이었음을 알아보고 그제서야 모든 인물들이 대왕대비를 정점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다모〉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그만큼 아름답고 가슴아픈 영상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극의 전개가 굉장히 속도감있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8부작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여느 대하사극보다 많은 것들이 있었다. 물론 8부작인만큼 빠른 전개는 당연하겠지만 그러면서도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는 것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건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을만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런 식의 사극이 나오지 않아서 주인장이 더 감탄하면서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히 그럴 정도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차후 이런 류의 사극이 또 나오지 않는 한, 스릴러적인 요소를 지닌 사극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서슴없이 다른 분들께도 한번 이 사극을 꼭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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