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10 한국고고학저널
국립문화재연구소 지음 / 국립문화재연구소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현재 한국 고고학계의 최신 정보를 잘 정리한 유일한 잡지! 보다 더 많은 부수가 발행되어야 하겠지만, 그나마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 ^^ 유적과 유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고고학 강의
한국고고학회 엮음 / 사회평론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 8월 15일에 초판을 읽고 난 후(클릭), 대략 4년여가 지난 후에 개정 신판을 읽고 난 서평을 쓰게 됐다(원래 이게 1년 전쯤 나온 책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쓴다. 쿨럭 -.-;).
 
지금 초판에 대한 서평을 다시 보니, 그때에는 내용 면에서 크게 세부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개정 신판에 대해 쓰는 것이니깐, 세부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을 듯싶다. 그래서 일단 전체적인 책의 내용에서부터 목차와 각 장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좀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일단, 전체적인 책의 표지부터 살펴보면 책에 표지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백제 금동대향로 상면을 소재로 삼았으니깐. 다만 초판의 사진이 보다 세부 사진이라는 점 정도만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초판이 하드커버였다면, 개정 신판은 소프트 커버다. 책의 가격은 개정 신판이 4,000원 더 비싸졌지만 책의 분량이 90쪽 가량 늘어난 데다가 판형이 더 늘어났기 때문에 커버를 소프트로 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소프트 커버도 뭐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책의 첫 표지를 펼치면 편집위원회에 약간 변화가 있다. 편집 위원을 맡으신 김무중 선생님이 소속 연구원들을 편집지원 및 편집보조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김무중 선생님이 집필자로 새로 추가된 것 정도? 그 외에는 전체적으로 저자나 편집위원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내용의 큰 틀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겠다(추후 이 책의 개정판이 지속적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드는 노파심이지만, 나중에는 해당 분야의 저자가 꾸준히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물론 이 책의 공동저자들이 모두 나이가 많은 원로는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 연구 성과와 수준이 계속 바뀌는 고고학의 특성상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동일한 저자가 해당 분야에 대한 집필을 꾸준히 맡는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암튼 어디까지나 노파심이니 이만~).
 
그리고 앞쪽의 컬러도판을 보면, 과거에는 유적 위주의 사진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유물 위주로 사진이 실렸다.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도판이 실렸으면 좋았겠다~싶었지만 그건 금전적인 부분에서 힘들다 치자. 그런데 초판과 동일한 사진이 중간에 보여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판과 동일한 사진을 첨부할꺼면 그만큼 새로운 사진을 더 추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쪽수를 맞추기 위해서 도판을 실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아무래도 눈으로 보이는 실견자료를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컬러도판은 중요할 텐데, 왠지 이 책에서 천대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암튼, 그렇게 목차로 넘어가보자.  



초판


개정 신판


 


 


머리말


머리말


 


 


총설 - 이선복


총설


. 한국 고고학의 성립과 발전


. 한국 고고학의 성립과 발전


. 한국 고고학의 연구공간과 시대구분


. 한반도와 한국문화


. 한국 고고학의 연구현황


. 한국 고고학의 연구공간과 시대구분


. 한국 고고학의 전망


. 한구 고고학의 연구현황


 


. 한국 고고학의 전망


 


 


1. 구석기시대 - 성춘택


구석기시대


. 시대 개관


. 시대 개관


.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연구현황


. 연구현황


. 시기 구분


. 시기 구분과 연대 측정


. 연대측정과 유적형성과정의 해석


. 석기와 유물군 구성 및 변화


. 석기와 유물군 구성 및 변화


. 생계경제와 주거


. 생계경제와 주거


. 구석기시대의 마지막


. 구석기시대의 마지막


 


 


 


2. 신석기시대 - 임상택


신석기시대


. 시대 개관


. 시대 개관


. 신석기문화의 시공적 위치


. 지역구분과 편년


. 주요 연구경향과 쟁점


. 동북아시아 신석기문화와의 관계


. 유적과 유물


. 초기농경


 


. 유적


 


. 유물


 


 


3. 청동기시대 - 김장석


청동기시대


. 시대 개관


. 시대 개관


. 청동기시대의 시작과 전기 청동기시대


. 편년과 시기구분


. 송국리 유형의 형성과 확산


. 유적


. 묘제


. 유물


. 석기


 


. 청동기


 


. 암각화


 


 


 


4. 초기철기시대 - 이청규


초기철기시대


. 시대 개관


. 시대 개관


. 문화유형과 토기의 분포


. 초기철기문화의 전개


. 집자리와 무덤


. 유적


. 금속기의 제작과 보급


. 유물


. 각 지역 문화유형의 전개


 


 


 


5. 원삼국시대


원삼국시대


시대개관 - 최병현


시대개관


1. 북부지역 - 정인성


북부지역


. 개관


. 개관


. 낙랑연구사


. 중국 동북지역 일대의 정치체


. 낙랑 · 대방 유적


. 낙랑과 대방


. 낙랑 · 대방 유물


 


. 낙랑과 주변 지역의 교섭


 


2. 중부 및 서남부지역 - 송만영


중부 및 서남부지역


. 개관


. 개관


. 편년과 시기 구분


. 유적


. 유적


. 유물


. 유물


 


3. 동남부지역 - 이재현


동남부지역


. 개관


. 개관


. 각론 및 논점


. 유적


. 유적


. 유물


. 유물


 


 


 


6. 삼국시대


삼국시대


시대 개관 - 권오영


시대 개관


1. 강현숙


고구려


. 개관


. 개관


. 유적


. 유적


. 유물


. 유물


2. 백제 성정용 · 서현주


백제


. 개관


. 개관


. 시기별 영역 변화


. 유적


. 유적


. 유물


. 유물


영산강 유역


. 영산강 유역


 


3. 신라 - 김용성


신라


. 개관


. 개관


. 신라문화의 시공적 분포


. 유적


. 연구의 쟁점


. 유물


. 유적


 


. 유물


 


4. 가야 - 박천수


가야


. 개관


. 개관


. 주요 논점


. 유적


. 권역


. 유물


. 유적


 


. 유물


 


 


 


7. 통일신라와 발해


통일신라와 발해


1. 통일신라 - 홍보식


통일신라


. 시대 개관


. 시대 개관


. 연구경향


. 유적


. 유적


. 유물


. 유물


 


. 대외교류


 


.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2. 발해 -송기호


발해


. 시대 개관


. 개관


. 영토와 문화


. 연구 경향과 쟁점


. 연구경향과 쟁점


. 유적


. 유적


. 유물


 


 


 


부록


 


중근세 고고학의 현황과 전망


 


. 서론


 


. 고려


 


. 조선


 


.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가장 큰 차이를 들자면, 일단 목차에서 저자의 이름이 싹 빠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각 장과 절을 표시하지 않았으며, 전체적으로 세분화되어 있던 목차를 간단하게 정리한 흔적이 엿보인다. 신석기시대만 목차가 늘어났는데, 뭐 초판에서 워낙 목차가 적어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밖에는 거의 동일한 양식으로 통일했으며, 과거 백제 안에 목차가 들어있던 영산강 유역이 이번에는 다소 반독립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점, 그리고 고려~조선의 중근세 고고학에 대한 부록이 실린 점 등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영산강 유역이 특정 시기 반독립적인 정치체로서 존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백제에 통합된 역사를 따져봤을 때 금번 개정 신판의 목차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 고고학적으로 주된 연구 분야가 아니라고 여겨졌던 고려~조선에 대해서도 이번에 따로 공간을 마련한 것 역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문헌사료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땅 속에서 나온 모든 고고자료는 동일하게 취급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봤을 때 아무리 현재와 가까운 시대의 역사라 하더라도, 고려~조선의 역사 역시 고고학의 한 분야로서 연구되고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암튼, 목차만 보더라도 편집 및 구성상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확인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럼 이제는 각 장별로 변화된 양상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총설
 
먼저 눈길을 끄는 부분은 소제목으로 <한반도와 한국문화>라는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의 지리적 정보를 기본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왜 이 내용이 초판에는 빠졌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리고 <한국 고고학의 연구 현황>이라는 부분에서도 이전에 비해 약간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이 부분은 따로 언급할 내용이 없지만, 최근 필자에게 고고학의 상대편년에 대한 질문도 들어오고, 일반인들이 고고학에서 편년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관련된 내용을 일부 발췌해 옮기도록 하겠다.

모든 고고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자료의 연대평가와 관련해, 비록 절대연대측정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각종 연대측정법의 기본원리나 적용상의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방사성탄소연대를 의뢰하기 전, 연구자는 우선 통계치로서의 탄소연대의 의미와 연대보정의 한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 연대측정은 알고자 하는 고고학적 사건과 시료의 상관관계를 분명히 정의한 바탕 위에서 전략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유적 형성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채취한 시료에서 얻은 측정치는 유적이나 유물의 정확한 연대해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한편,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며 고고 자료의 연대평가는 주로 유물, 특히 토기와 금속기의 형식학적 특징에 의존하고 있다. 고대국가가 등장하는 등, 복잡한 문화현상이 있던 시기의 자료에서 수십 년 정도의 시간적 단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표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연구자 다수가 동의하는 편년은 쉽게 나오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안정된 편년에 기초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후속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에서, 연대평가와 자료의 편년이란 기계적이며 기술적인 작업이 아니라 체계적인 연구방법론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공유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고고학 교육의 내실화와 관계되는 문제로서, 학문의 다양한 측면을 소개하는 고고학 개론과 연구방법론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 단위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다는 점은 고고학 발전을 제약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2. 구석기시대

큰 차이는 없으며, 중간에 동아시아 구석기 유적에 대해서 소개한 부분이 추가되었다. 기존에는 한국의 구석기유적만 지도에 표시해 놨는데,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지도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추가되어 거시적인 안목에서 한국의 구석기문화를 이해하는데 보다 도움이 되고 있다. 그밖에 <시기 구분과 연대 측정> 하나의 장에 내용을 같이 서술하고 있어, 오히려 이전 책에 비해 구석기 유적 및 절대연대측정에 대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과 같은 형식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따로 공간을 마련해 설명한 편집 양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 전체적인 내용의 변화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동안 확인된 구석기유적의 수량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일 텐데 개인적으로 구석기유적이 보다 많이 확인되어 관련 분야의 연구가 많이 진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필자 주변에 알고 있는 구석기 전공자도 그리 많지 않다).


3. 신석기시대

이 역시 내용의 변화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초판에서 <신석기문화의 시공적 위치> 안에 포함된 소주제 2개를 따로 떼어내 <지역구분과 편년>, <동북아시아 신석기문화와의 관계>로 구성한 것이 눈에 띄었다. 초판에서는 한영희의 지역구분 도면을 그대로 썼지만, 개정 신판에서는 이를 수정하여 보다 깔끔한 도면으로 만든 것이 눈에 띄었으며, 집필자의 의도에 맞게 지도를 일부 수정한 것도 눈에 띄었다. 특히 각 지역별로 신석기시대 토기의 형식과 특징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앞으로 옮기고, 뒷부분의 동북아시아 신석기문화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정보 획득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변화가 엿보였다. 그밖에 뒷부분에서도 초판의 내용과 개정 신판의 내용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더 깔끔하게 편집을 하고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


4. 청동기시대

크게 신 자료의 수록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물론 일부는 있지만). 한해에 발굴조사되는 청동기시대 유적의 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확보된 신 자료가 많이 없다는 점은 아무래도 청동기시대 연구의 큰 틀이 대략적이나마 어느 정도 잡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단순히 유적이 많이 확인되지 않는 구석기~신석기시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견해를 뒤엎을만한 신 자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그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선배들 중에도 청동기시대 전공자가 다수 있는데, 개중에는 농담으로나마 ‘이제 청동기는 할 게 없다~’라는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즉, 아무리 새로운 모델과 이론 및 방법론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청동기시대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나왔다는 의미가 될 수 있겠다. 새로운 유적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하나의 사례가 증가할 뿐이지, 그것이 기존 견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게 봤을 때 개정 신판에서 새로운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은 다소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판에 비해 분량 면에서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기에, 자료 획득이라는 측면에서는 환영해도 괜찮을 것이다.


5. 초기철기시대

초기철기시대라는 시대 개념은 상당히 애매한데, 일단 고고학계에서는 B.C 300~100년까지를 초기철기시대로 보고, 그 이후 A.D 3세기 중엽까지를 원삼국시대로 구분한다. 하지만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이보다 이른 시기에 철기가 확인되고 있으며, 일본의 초기 철기문화도 B.C 4~3세기경으로 소급되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초기철기시대 상한도 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다. 관련 연구자들도 그렇고, 필자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이 시기를 고고학적으로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고대 삼국이 성립된다는 B.C 1세기(문헌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후와 이전의 문화 양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시대는 당연히 철기시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이미 정치체가 등장했기 때문에 삼국시대라 하지만 그 이전에는 정치체가 없으니 그냥 철기시대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초기’라는 말을 붙였지만, 확인되는 유물 양상은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가 더 많다. 아마 역사적으로 위만조선의 존속기와 맞물릴 텐데, 당시 한반도 남부의 정치상황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 성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일단 책장을 넘기면 지도가 훨씬 깔끔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시기별로 초기철기시대의 문화 양상을 개관한 내용을 뒤에서 앞으로 옮긴 점이 눈에 띈다. 거시적인 면부터 살펴보고 미시적인 내용을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초판에 비해 적절한 편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으며,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연구 경향과 같은 부분) 새로운 견해들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6. 원삼국시대

먼저 북부지역을 살펴보면 목차는 줄었지만, 세부내용은 더 늘어났다. 특히 낙랑과 대방의 각 챕터별로 내용이 증가되었기 때문에 낙랑 · 대방의 고고학적 성과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고고학에서 낙랑의 위상>이라는 내용의 이 실려 있어서 한국 고고학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저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있게 해 놨다. 특히 초판 이후 진행된 저자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어 내용 면에 있어서는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중부 및 서남부지역은 북부지역에 비해 새로운 내용이 많이 추가돼지 않았지만, 신 자료에 대한 도판이 많이 추가된 점이 눈에 띈다. 그런데 오히려 초판에 실려 있던 도면 중에 빠진 것들도 있어서(철광석 산지 및 철기 생산 유적, 적석분구묘의 분포도면 등) 이 부분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기존에는 많이 언급하지 않았던 주구토광묘에 대한 언급이 많이 삽입된 점도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부분 중, 가장 많은 도면과 도판이 실린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전에 비해 전체적인 편집과 구성이 많이 깔끔해져서 한결 살펴보기가 편해졌다.

마지막으로 동남부 지역의 경우, 초판에서는 편년 혹은 와질토기론, 도질토기 기원론 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동남부지역 원삼국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개정 신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싹 다 뺐다(초판에 이미 썼으니, 여기에서는 재삼 거론하지 않겠다는 의지인지는 모르지만 -.-;). 그밖에 내용은 대동소이하며, 전체적으로 도면과 도판 편집에서 더 깔끔해졌다.


7. 삼국시대

일단 고구려는 도판이 몇 개 더 추가되었지만,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아마 가장 적은 변화상이 보이지 않나 싶다. 그만큼 새로 추가된 고구려 유적이 많지 않았다는 반증도 될 것이고).

하지만 백제는 그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 한국 고고학계에서 원삼국~백제시대 유적이 대거 확인되고 있는데(아마 세종시 건설과 관련한 발굴조사의 양적 · 질적 증가가 눈에 띄게 증가했기 때문도 한몫 담당했을 것이다), 이러한 최신 연구 성과가 개정 신판에 많이 녹아들어 있었다. 각 시기의 도성에 대한 자료도 증가했으며, 각 시기의 고분 및 생활유적 등에 대한 서술도 증대됐다. 특히 새로 편집된 구성이 각 시기별, 백제의 정치체제와 문화 양상, 지방 세력에 대해 잘 이해하게끔 되어 있어서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또한 영산강 유역에 대한 서술도 독립적인 장을 마련하고 있어서 눈에 띄었는데, 전체적으로 큰 변화는 없지만 그간 새로 확인된 유적 및 유물에 대한 소개를 꼼꼼하게 하고 있어 이 역시 자료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만족할만한 변화가 있었다.

신라의 경우, 앞부분은 초판이나 개정 신판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새로 확인된 경주 황오동 C10호분에서 출토된 완전한 형태의 마갑과 찰갑, 함안 성산산성의 목간과 같은 신 자료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초판과 개정 신판의 편집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기존과 주제는 동일하지만 세부 내용에 있어서 분량이 증가하였다.

가야는 기존에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등으로 나눠서 개관을 정리한 다음에 개별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서 소개했는데, 개정 신판에서는 가야 권역별로 나누지 않고, 처음부터 유적과 유물이라는 주제에 맞춰서 각 가야에 대해 일괄 기술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가야가 다른 3국과 정치적으로 다른 상황이었고, 실제 고고자료 역시도 다르게 확인되는 만큼, 보다 합리적인 서술방식을 도입했으면 했는데, 아무래도 삼국시대의 전체적인 목차에 맞춰 내용을 앞뒤로 편집하다보니 개정 신판에서는 보다 불편하게 서술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암튼, 전체적으로 내용 면에서 큰 변화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8. 통일신라와 발해

통일신라에서 전체적으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다만, 초판에서는 신라 왕경 복원도를 윤무병 선생님의 것을 인용했다가 개정 신판에서는 이은석 선생님의 것을 인용한 것이 눈에 띄었다(저자가 생각하기에 후자의 연구 성과가 더 합리적이라고 느꼈나 보다). 그밖에 경주 황룡사지 동편 유적과 상주 복룡동 유적, 광주 남한산성의 대형 건물지 및 대형기와 등 새로운 자료를 소개하고 있어 통일신라 관련 유적이 그간 꾸준히 조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초판에서는 녹유신장상 전돌의 파편과 복원도만 소개했는데, 개정 신판에서는 보다 많이 복원된 실물자료와 컴퓨터로 복원한 복원도를 싣고 있는 점도 독특했다). 그밖에 <나말여초기의 고고학>에 대해 소개한 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발해의 경우, 개정 신판에서도 발해의 영역에 요동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밖에 초판 이후 조사가 진행된 유적들에 대한 내용이 일부 소개되고 있어 최근 연해주 등지에서 발해 유적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내용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와 조선시대 고고학에 대한 소개가 흥미로웠다. 이미 김원룡 선생님의『한국고고학개설』때부터 고려와 조선(그때는 심지어 발해까지 빠졌다)은 한국 고고학의 연구 분야에서 제외되어왔고, 초판 때도 그러한 경향은 그대로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그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아마도 한국 고고학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며, 연구영역이 확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 이제 총평을 하고 마무리 짓겠다.

전체적으로 기존의 도면을 보다 깔끔하게 만지고, 추가된 새로운 도면 및 도판을 넣은 것은 개정 신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밖에 새로 추가된 내용을 더 집어넣는 것도. 하지만 무리하게 목차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깐 초판보다 오히려 읽는데 불편함을 겪은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글자 크기를 줄여 더 많은 내용을 실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으며(물론 판형도 커지고, 분량도 늘긴 했지만), 초판에 비해 여러 부분에서 한국 고고학이 그간 발전했구나~를 느낄 수 있게 했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개정 신판만 읽으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초판과 맞물리지 않는 부분도 있으며, 각 저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의 변화를 겪은 부분도 분명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한국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할 필수 개설서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며 이만 글을 줄이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고고학 개설 - 제3판
김원룡 지음 / 일지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은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었을 법한, 아니 읽어야만 하는『한국고고학개설』을 소개할까 한다. 사실 나름 고고학도라고 자칭하는 필자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여지껏 단 한차례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후배들에게는 늘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는 이 책에 대한 어떠한 피드백도 하지 않았다니...암튼, 오늘은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몇자 적으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먼저 이 책에 대한 몇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대학교 1학년때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저자 이름을 무심코 '김원룡?' 이라고 읽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선배 한분이 '야! 김원용이지, 어떻게 룡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맞다. 그런데도 아직껏 필자의 입에는 '김원룡 선생님'이라는게 더 익어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한 번은 수업시간에 <원삼국시대>라는 용어에 대해 배우면서 김원룡 선생님때 문에 이런 용어가 생겼구만~하면서 미워했던(?) 적이 있었다. 막 역사를 공부하는 그 시점에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정말 후대에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물론 책을 읽으면서 그런 애초의 생각은 바뀌었지만 말이다). 암튼, 이 책은 대학교 1학년때부터 정말 꾸준히, 심심할 때마다 펴보는 책인데, 그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다른 것 같다.  

그럼 책에 대해서 간단하게 몇자 적어보자(이 책에 대한 리뷰가 인터넷상에 거의 올라오지 않았더라. 아마도 이 책이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개설서로서 학교에서 수업 교재로 많이 쓰이다보니 리뷰가 올라올 일이 별로 없을 뿐더러, 일반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재밌는 책이 아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책의 목차를 보면 크게 다음과 같다.

제1장. 서론
제2장. 구석기문화
제3장. 신석기문화
제4장. 청동기문화
제5장. 초기철기문화
제6장. 낙랑군의 문화
제7장. 원삼국문화
제8장. 삼국시대 묘제 및 부장품
제9장. 통일신라시대

부록 1. 근대한국고고학연표

어떤가? 약간 독특하다. 아마 책을 읽는 여러 독자들도 느꼈겠지만, 뭐가 독특하지?? 하고 넘어갈 법도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짚어보겠다.

1. 우리가 흔히 쓰는 '시대'라는 용어 대신에 '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시대'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한 기간'이라는 의미인데,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당시에는 확인된 고고자료를 갖고 시대라는 용어를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고고학에서 문화라고 한다면 단순히 유물복합체뿐만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사람들의 행위와 의식까지도 언급하는데(http://cafe.daum.net/yeohwicenter/5s83/18), 엄밀히 말하면 시대라는 용어와는 다소 다르게 사용되긴 한다. 그리고 현재의 고고자료는 충분히 문화에 대해서 언급해주고, 그것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최근에 나온 고고학 개설서인『한국 고고학 강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초기철기시대(편의상 필자는 요즘 쓰는 시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겠다)와 원삼국시대는 요즘 동일한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시기적으로 초기철기시대가 더 먼저 온 것으로 이해하고 다른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요즘으로 치면,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점토대토기 시대로 이어지는 그 기간에 해당하는 문화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저자 스스로 원삼국시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구분한 것이라 생각한다(저자의 원삼국시대에 대한 생각은 후술하도록 하겠다).

3. 삼국시대 문화라고 하지 않고, 딱 묘제와 부장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 당시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생활유적이나 관방유적과 같은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제대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야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경작유구와 제철유적과 같은 생산유적, 각종 주거지 및 건물지가 포함된 생활유적 등이 많이 조사되었지만 과거에는 확실히 그런 자료들이 별로 없었다. 이 책에서도 상당 부분의 내용이 '고신라 및 가야' 묘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만 봐도 그런 상황을 여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통일신라시대가 목차의 마지막이다.『한국 고고학 강의』(초판)에서 처음으로 통일신라시대와 동시대에 있던 발해를 목차에 집어넣고,『한국 고고학 강의』(개정 신판)에서 부록으로 '중근세 고고학의 현항과 전망'이라 하여 고려~조선까지를 연구범위로 고려해서 넣은 것과 비교하면 참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고고자료가 자꾸자꾸 많이 나옴으로써 고고자료만으로도 시대 구분이 가능한 시기가 되었구나, 라는 것과 함께 앞으로 더 많은 고고자료가 확인됨으로써 기존의 역사연구에 더 많은 활기가 불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뭐 목차를 얘기하다 보니깐 벌써 많이 흘렀다. 솔직히 이 책은 개설서인데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책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에 대해 잘잘못을 짚어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꾸준히 읽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필자 또한 그 점에 착안해서 몇몇 부분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이 책은 앞으로는 다시 나오기 힘든 책이다. 왜냐하면 고고자료가 하루 하루 엄청나게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은 학자 1명이 한국 고고학을 전부 다 기술하기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시대와 전공을 넘나든 고고학계의 대석학이 아니면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이 책이 옛날에 나왔고, 내용이 많지 않은 데다가 여러 자료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니다. 오히려 중간중간 저자가 개인적인 사견을 집어넣은 부분이 많이 있고, 그런 내용들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적절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저자 1명이 책을 쓰게 되면 일관된 편집원칙 및 주관에 의해 논지를 전개하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까 얘기했지만, 이런 책은 다시 나오기 힘들 듯 싶다. 또 김원룡 선생님같은 분이 나오지 않는 이상...

둘째, 서론을 보면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1~3쪽).

고고학은 사람의 행동이 남긴 물질적 흔적(유적과 인공 및 자연 유물)을 통해서 그것을 남긴 사람들의 문화 · 역사를 밝히는 학문이다. 고고학이 역사학의 한 분과이면서 독립적 ·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료의 특수성에 의한 것이며, 같은 역사과학이면서 기록만을 자료로 하는 좁은 의미의 역사학과는 그 연구 방법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는 소위 신고고학(New Archaeology)이라 하여 유적 · 유물을 단순히 역사적 ·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문화조직체로서 파악하고, 그것을 움직이고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인간행동 · 문화변동의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는 새 학풍이 일어나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고고학 자료의 성격상 고고학의 능력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어서 그러한 학풍은 미국 인디안문화 연구에서처럼 민속학적 傍證이 가능한 지역에서 생길 수 있는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이며, 우리나라처럼 고대와 현대가 거의 단절되다시피한 오랜 역사의 나라나 지역에서는 고고학이란 역시 역사과학이고, 고고학의 궁극 목적은 문화변동 법칙의 발견이 아니라 역사의 복원과 설명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문화내용의 서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공간적인 것이면서 시간성이 요구되는 것이며 … (후략)
 

한국 고고학계의 특수성에 대해 잘 표현한 것 같다. 확실히 신고고학이 발원한 미국과 우리나라는 학풍이 다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하지만, 고고학이 단순히 역사학의 한 분과라고 보는 것에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역사고고학 분야에 있어서도, 문헌에 남아있지 않는 고고자료들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록이라는 것이 위정자가 남긴 것이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더더욱 고고자료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전통고고학적인 학풍이 강해 과거사의 복원과 설명이 우선시되고 있지만, 더 많은 고고자료가 축적되고, 더 많은 방법론이 개발되다 보면 신고고학에서 말하는 그러한 목적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것만 봐도 한국 고고학 초창기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셋째, 낙랑군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과거의 인식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고정관념이 강하게 반영된 생각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단순히 옛날 연구성과라고 보기에는 낙랑군을 인식하는 접근법 자체가 필자가 생각하는 바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낙랑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운을 떼고 있다(119쪽).

낙랑군은 漢의 식민지로서 그 묘제, 문물은 거의 모두 중국 한대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우리나라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고고학이나 미술사에서는 제외하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낙랑군의 문화가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초기 철기시대나 원삼국 문화는 물론 그 뒤의 삼국시대 문화에도 큰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낙랑문화의 이해 · 지식없이는 우리 고고학의 올바른 이해는 바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고대 문화와의 관련에 주안점을 두면서 낙랑문화의 개관을 하여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요즘은 낙랑군을 단순히 漢의 식민지로만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김원룡 선생님의 인식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는 고고자료가 양적 · 질적으로 많이 늘어난 데다가 그와 관련된 연구성과도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중국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안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 할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나 독일, 영국, 스페인, 이집트 역사에서 로마의 역사는 제외해야 할 것인가? 로마사는 오직 이탈리아의 역사란 말인가? 더군다나 낙랑군은 모두 중국의 것이며, 그 영향을 받아 한국 고대사가 크게 발전했다는 인식 또한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식민사관 혹은 타율성론 등과 연결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고고학계 초창기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지금의 고고학도들은 無에서 有를 만들어내는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 이런 선학들의 연구성과를 발판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싶다.

넷째, 논란이 되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좀 정리해보자(128~129쪽).

원삼국시대라는 것은 서력기원 개시 전후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3세기를 말하며, 이 시기는 국사에서는 삼한시대, 부족국가시대, 성읍국가시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 왔고, 고고학에서는 김해시대, 웅천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 등 이름으로 불리는 시기이다.

그러나,『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시기는 엄연한 삼국시대이며 실지로 삼국시대라면 누구나 삼국사기의 편년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위에 든 것 같은 갖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라고 해 놓고 다시 그것을 삼국시대에서 제외하는 것은 근본적인 모순이고, 또 북쪽에는 엄연히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삼한시대라는 남한 중심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적당치 않다. 한편, 부족국가라는 말은 이제는 사용되지는 않으나 처음부터 부족이라는 개념을 잘못 파악한 것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읍국가시대라는 용어도 국가의 성격을 뜻하는 설명어로는 괜찮으나 삼국시대라는 왕조 기준 시대구분과는 설정기준이 맞지 않는다. 또, 고고학에서 말하는 김해기는 지금까지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문화단계를 따르다가 갑자기 유적 이름으로 바뀌어 역시 설정 기준에 통일성이 없을 뿐 아니라 문화사에서 엄밀히 삼국시대로 넣고 있는 시기를 고고학적 시대명으로 二重 명명하는 것도 잘못이라 하겠다. 또, 그런 뜻에서 이 시기를 초기 철기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이거니와 완전 철기 단계인 이 시기를 초기 철기시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착오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삼국시대의 原初期, 또는 原史 단계의 삼국시대라는 뜻으로 원삼국시대(Proto-Three Kingdom Period)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주장하여 온 것이며, 이것은 문화사, 고고학에서 모두 함께 쓸 수 있는 합리적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김원룡 선생님은 원삼국시대를 삼국시대의 이른 시기를 구분하는 용어로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고대 국가의 시작을 서기 300년 경으로 봤기 때문이다. 국사학에서 인식하는 실질적인 삼국시대의 시작도 서기 300년이요, 고고학에서의 신라토기의 발생, 高塚의 출현의 편년과도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에 서기 300년을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의 획기로 나눈 것인데, 이것에 대한 비판적인 수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대 국가 형성의 필요조건으로 위의 것들이 문제가 된다면, 이제는 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물론 고대 국가 형성에 필요한 요구조건에 대해서 현 학계의 생각에 꼭 동의하지는 않는다. 또한, 과거에 비해 요구조건에 충족될만한 고고자료가 더 많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만약 김원룡 선생님도 저 당시에 고고자료가 충분히 갖춰졌다면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을까? 아니면, 그 시기를 서기 300년으로 잡았을까? 싶다.

다섯째, 삼국시대 묘제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고신라 및 가야에 대한 내용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최근 나온『한국 고고학 강의』를 보면 백제 묘제 관련된 新자료들이 많이 서술되어 있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고고자료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하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개인적으로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백제사가 제대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한국 고고학 초창기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인데, 연구사 정리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다.

아마 예전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면,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몇년간 이 책을 읽고, 다른 연구성과들을 접하다보니 이런 글이 나온 것일 것이다. 하지만 몇년 뒤에라도 또 서평을 쓰면 이 글과는 또 다른 내용의 서평이 쓰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은 고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부분에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 책이 시대를 초월할 정도로 잘 쓰였고, 꼭 읽혀야만 하는 책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고학을 이해하고 싶고, 고고학을 막 공부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다시 한번 추천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의 위대한 여행
앨리스 로버츠 지음, 진주현 옮김 / 책과함께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은 책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쓰는 서평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소개하는 책이 좋은 책이어서 기분이 좋다. 요즘 '현장이다, 보고서다' 나름 바쁜 관계로 책 1권 완독하질 못 하고 있었는데(개인적으로 한번에 책 3~4권을 동시에 읽어가는 스타일이라서 시간이 없을 때는 미처 완독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침 '책과함께'에서 좋은 책을 보내주셔서 그간의 나태함(?)을 만회할 겸 작정하고 완독을 했다(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른 2권의 책을 같이 읽어 나가는 바람에 빨리 읽지는 못 했다 -.-;). 

책에 대한 잡설을 몇마디 하자면, 이 책은 BBC 특집기획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류의 책으로는 대표적인 역사 다큐멘터리인 <역사스페셜>을 책으로 묶은 것이 있겠다. 하지만 그 책이 한국사의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룬 것에 비해, BBC의 다큐멘터리는 인류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방송들도 다운받아서 보고 싶었지만(언젠가는 시간을 내서 보도록 하겠다), 그것까지 구해 볼 시간은 없어서 양자(방송과 책)를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책이라는 특성상 방송에서 다 못 했던 내용들까지 꼼꼼하게 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책을 딱 받으면 제목 옆에 발자국 한쌍이 찍혀 있고, 제목 주변으로 여러 삽화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뒤에 보면 나오지만, 이 삽화들은 모두 저자인 앨리스 로버츠가 직접 그린 것들로서 중간중간 삽입되어 운치를 살려주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책 표지만 봐서도 일단 흥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물론 고개를 살짝만 돌려보면 책의 두께가 상당해서 순간 움찔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

저자인 앨리스 로버츠는 해부학을 가르치면서 고대 인간의 질병, 해부학, 진화론, 발생학 등에 관심을 두고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홈페이지(http://www.alice-roberts.co.uk/)도 있어서 한번 들어가 봤는데, 상당히 깔끔한 디자인에 적절한 카테고리까지 한눈에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끔 잘 꾸며져 있었다. 특히 'GALLERY'라는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BBC 방송을 촬영하면서 찍었던 다양한 사진들이 있어서 좋았다. 저자의 사진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밖에 책에 나왔던 내용과 연관된 사진들도 많이 있었다(물론 책 앞부분에도 원색도판들이 있었지만 여기에는 책에 없는 사진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방송과 해당 전문분야에서 골고루 활약하는 학자가 많이 없기도 하지만(있긴 있다!), 이처럼 홈페이지를 만들어놓고 대중과 친밀하게 교류하는 사람들 또한 없다는 점에서 '외국과 우리가 정말 많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역자에 대한 소개도 조금 흥미로웠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지금껏 한번도 들어보지 못 했던 분이었다. 이 정도 스팩을 가진 전공자라면 서울대 출신 선생님들 사이에서 한번쯤은 거론되었을 법도한데, 정통 고고학이 아니라 인류학 쪽을 전공해서 법의인류학자라는 흥미로운 직종에 종사하다보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책 표지 한장만 넘겨봐도 이래저래 지금껏 읽어왔던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점이 더 흥미로웠다.

역시나 책의 시작은 즐비하게 나열된 원색도판들이었다. 지금이야 책을 다 읽은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원색도판들이 각 내용과 맞물려 책의 중간중간에 삽입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늘 이런 책을 보면 원색도판은 대부분 앞에 있었던 것 같다(『총 · 균 · 쇠』의 경우 맨 앞에도 있고, 중간에도 있었지만 역시 내용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모아놓고 있어서 보기에는 조금 불편했었다). 그렇게 원색도판들을 살펴보고 목차를 살펴봤다. 목차는 아주 간단해서 딱 5개의 챕터로 이뤄져 있었다. 아프리카 -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 - 북아시아와 동아시아 - 유럽 - 아메리카 등 현생인류의 진출 과정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일단, 책의 내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각 챕터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논하는 것은 지루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것 같기에 각 챕터의 내용 및 필자의 생각은 간단하게 서술하고, 전체적인 책의 총평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먼저 저자는 석기시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아프리카 기원설'과 '최근의 아프리카 기원설', '다지역 기원설 혹은 진화설' 등에 대한 운을 떼고(최근의 아프리카 기원설이라는 것이 있는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인류의 계보와 석기의 종류, 빙하기, 각종 자연과학분석법, 유전학 연구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일단 딱딱한 도면이나 도판 대신에 가볍게 스케치한 삽화들(인골과 석기를 묘사한)이 있어서 책이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저자 스스로가 '여행'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그 테마에 맞춰 전체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량은 상당히 많지만, 지루하지 않게 저자의 여행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저자의 흥미진진한 여행은 시작한다. 이제는 누구나 현생 인류의 고향으로 아프리카를 꼽는데 큰 이견이 없지만, 여기에서는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는(Out of Africa) 시기가 언제인지, 루트와 방법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국내에 나온 고고학이나 인류학 관련 서적을 보면, 대략의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있었지만 루트와 방법, 그리고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 남긴 유적 등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고고학, 머리뼈 형태학(아마 원래 용어는 더 멋진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 환경학, 유전학 등 다양한 연구방법론이 등장하여, 아프리카에 살았던 현생 인류에 대해서 굉장히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생 인류는 플라이스토세의 불안정한 기후 변화에도 해양 자원을 활용하면서 아프리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지구 전체에 걸친 미토콘드리아 DNA의 계보도 소개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현생 인류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상당히 이른 시기에 아프리카 밖으로 진출했다는 내용이 놀라웠다. 물론 여기에서는 유물과 유적이 나온다 하더라도 현대 호모 사피엔스의 인골이 발견되기 전에는 그렇게 단정지을 수 없다고 하고 있긴 하다. 하긴, 사용하는 도구의 변화를 두고 무조건 사용하는 인종의 변화와 연결시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고고자료를 이용해 고대 인종의 세력범위를 밝혀내려 했던 제국주의식 고고자료 해석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이라는 최첨단 과학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고 불리는 호미니드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예전에 어떤 책을 보고(정확한 제목이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족과 같은 소인족이 동남아 일대에 살았다는 내용을 보고 엄청 신기해 했던 적이 있다. 이를 두고 호모 속이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에서 진화했을 가능성(다지역 기원설 혹은 진화론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었다. 왜냐하면 DNA 분석 결과, 그렇게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저자의 말에 따르면). 개인적으로 필자는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을 동시에 염두에 둘 수는 없을까~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저자가 너무 아프리카 기원설에 집착해 이야기를 서술하는게 약간 불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 대해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뭐 더 이상의 반론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추후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긴 했다!!).

암튼, 책의 209~212쪽 부분을 보고 굉장히 재밌긴 했다.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호모 에렉투스도 훌륭한 항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른 시기에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나와 아시아로 퍼져 나간 후 여러 지역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로버트에 대한 얘기가 그것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20~10만년 전에 우리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나왔다는 화석과 유전학 연구 결과를 들어 반박하고 있었고, 로버트는 유전학 결과를 믿지 않기에 현생 인류는 200만 년전에 기원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것은 다지역 기원설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냉소적이면서도 이런 투의 문장이 재밌었다(물론 번역상 이렇게 된 것이지만 원래 문장의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면서 로버트의 말이 더 인용된다. 그는 여전히 아프리카 기원설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영국인들 뿐이며, 저자도 영국인이므로 그런 생각에 세뇌되었다고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한방 날리는 대목이 나온다. 로버트는 본래 회사원이었다가 뒤늦게 고고학에 입문해 수천개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그가 쓴 논문은 자신이 편집하는 학술지에 발표했던 것들이라는 것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풉~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어쨌든 저자는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존중하면서 글을 끝맺고 있었다(아마 로버트도 이 책을 봤으리라). 순간, 한국 고고학계에서 청동기시대를 전공하는 원로 교수님들이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절대연대)를 믿지 않고, 유물에 의한 상대편년을 더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 젊은 고고학자들이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 떠 올랐다.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지만 인간의 직관에 의존한 연구 방법론과 함께 다 같이 중요시 여겨져야 된다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책은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의 차이점, 양자를 주장하는 학자들에 대한 소개를 조금씩 하면서 점점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지역이 아시아로 넘어오면 이제 중국의 베이징원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베이징원인은 실종된 뒤 어떻게 됐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인데, 이 책을 보니 1950년대에 저우커우뎬에서 추가로 베이징원인의 인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내가 놀란 것 이상으로 저자가 그 실물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갔다. 중국의 우신즈 교수는 일반적인 중국 학계의 견해대로 호모 에렉투스에서 현생 인류로 진화해 오늘날의 중국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했고, 역시나 저자는 그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 뼈만 갖고 이런 큰 얘기를 하는 것에는 조금 의문이 들긴 한다. 저자 스스로 얘기하고 있듯이 '같은 집단 안의 다양성이 때로는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차이보다 큰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뼈가 다르다 하여 그것을 무조건 다른 집단, 다른 인종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1』을 보면 제천 황석리 고인돌에서 나온 인골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몇개 안 되는 사례를 갖고 일반화를 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특히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저자가 동아시아에는 아슐리안 석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 고고학자 할램 모비우스라는 사람은 1955년에 '동아시아가 문화적으로 수준이 떨어진 변두리'라고 얘기했단다. 왜냐하면 3만년 전 즈음에야 비로소 중국에서 후기 구석기 문화가 확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히 중국에도 현대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을 시기에도 1~3만년간 당시 사람들은 단순한 형태의 석기를 사용했던 것이다(이를 두고 우 교수는 중국인이 현지에서 진화한 사람의 후손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저자도 이에 대해서는 딱히 반박을 마구마구 하지는 못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당시 동아시아의 환경상 무거운 석기 이외의 가벼운 목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에 석기는 유럽처럼 발달하지 못 했다~라고 보면서 결코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 수준이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석기가 출토되어 보고된 바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것임이 이미 공인된 상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걸 보고 크게 2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국 고고학의 연구성과가 해외에 그만큼 소개가 많이 되지 않아서든가, 한국 고고학의 연구성과가 해외에서 인정을 받지 못 한다든가...이 2가지때문에 이와 같은 내용이 남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거기다가 동아시아의 농경을 언급하면서 청원 소로리 유적이 언급 안 된 것도 좀 신기했고. 어쨌든, 한국 고고학이 아직 세계적인 시각 속에서는 변두리에 머물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유럽의 네안데르탈에 대한 내용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전체적으로는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이며(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지식은 루치아노 말무지가 쓴 秀作『네안데르탈 아이들 시리즈』와 에릭 트링카우스 등이 저술한『네안데르탈』이라는 책에서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어려운 부분은 없었지만 마지막에 소개된 지브롤터의 유적들은 처음 보는 부분이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유럽의 끄트머리인 지브롤터는 당시 네안데르탈인의 피난처가 아니라 이미 10만 년 이상 살아왔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유럽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대립하던 네안데르탈인이 결국에는 최후의 패배자가 되어 유럽 각지에서 쫓겨난 것처럼 묘사되곤 하는데, 네안데르탈인을 연구하는 클라이브의 경우 이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만큼이나 환경에 잘 적응했으며, 해양 자원도 잘 활용했었다. 특히 네안데르탈인 하면 추운 빙하기를 견디어낸 거친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지브롤터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들은 따뜻한 지중해식 기후를 사랑하던 사람들이었다는 클라이브의 묘사가 충격적이었다. 그와 더불어 체코 공화국의 돌니 베스토니체 유적에 대한 내용도 소개되었는데, 이는 리처드 러글리의『잃어버린 문명 - 석기시대의 비밀』(참고로 언급하자면, 최근에 읽었던 석기시대 관련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기도 하다)에서도 다룬 바가 있어서 반가웠다. 

저자와 떠난 여행의 종착점은 신대륙, 즉 아메리카였다. 아메리카의 선사문화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클로비스 문화다. 클로비스 화살촉으로도 유명한데, 저자는 클로비스 문화보다 이른 시기의 유적들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특히 칠레의 몬테베르데에서는 초가집과 집 외부의 화덕 등이 확인되었으며, 1만 4천년 전 그 지역 사람들이 먹었던 야생 감자의 존재도 확인시켜 주었다. 이 유적은 1만 4600~1만 4000년 전의 것으로서 클로비스가 최초의 아메리카인이라는 주장이 완전히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단순히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가 연결된 베링지아를 건너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까지 인류가 이동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북대서양을 따라 북미 동북방에서 인류가 이동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브루스 브래들리의 의견도 소개하고 있어 참신했다. 정말 신자료가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기존의 이론들에 금방 수정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총평을 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먼저 스케치한 듯 러프하면서도 간결한 삽화와 도면, 저자가 스스로 그린 삽화들이 상당히 이색적이었고, 독자로서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고고학 서적하면 왠지 정교한 도면(솔직히 전세계적으로 정교한 유물-유구의 도면을 남기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뿐이다. -.-;)과 다양한 도판들이 덕지덕지(?)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오히려 그런 기대(?)와 달리 가벼운 사진과 삽화들을 집어넣었다. 전체적인 내용에 비해 그런 부분들이 좀 적은 것은 아니었나~싶기도 하지만 책의 내용이 어렵지 않고 답답하지 않아 큰 상관은 없었던 듯 싶었다.

그 다음으로 어렵지 않은 서술(아마 이건 역자의 공로가 상당히 크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어를 자연스러운 자국어로 100%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깐)과 부드러운 문체, 종종 던지는 의문형 문장과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합리적인 논지를 이끌어가는 방식 등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마틴 존스가 쓴『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 : 인류의 비밀을 밝히는 최첨단 고고학(The Molecule Hunt)』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 비해서 훨씬 이해하기 쉽고 더 재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테마와 접목한 데다가 방송용으로 제작된 내용에 기반한 책이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어쨌든 더 재밌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최신 연구 성과들을 최대한 소개하고 있어서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물론 학술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꼼꼼하게 참고문헌과 각주를 달아놓고 있어서 필요할때 찾아볼 수 있기에도 좋았다. 인류의 탄생과 진화, 석기시대에 대해서는 필자의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어디까지나 개설적인 내용만 숙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기존의 낡은(?)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꺼운 책인만큼 그 안에 담긴 내용 또한 상당히 유익한 것들이 많아서 이번에 후배들에게도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했다(특히 1명은 석기를 전공하고 싶어하고, 다른 1명은 선사시대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다).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책과함께' 출판사에 감사드리며...이만 글을 줄이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문명 - 석기시대의 비밀
리처드 러글리 지음 / 마루(금호문화)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서평을 쓰는데다가, 오랜만에 전공서적에 대한 서평을 쓴다.

이번 추석 때 책 3권을 읽자고 목표했는데, 이제 겨우 1권 마무리했다. 남은 이틀 동안 2권을 읽을 수 있으려나~모르겠지만 일단 다 읽은 놈부터 처분하겠다! 이 책의 제목을 한번 잘 보자. 필자는 처음에 이 책을 딱 보고 ‘아~이거 또 공상에 가까운 얘기를 쏟아 붓는구나~미스테리한 발견물들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초거대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인가보다~’라고 느꼈다. 그런데 일단 책장을 넘겨보니 일단 목차부터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맨 처음의 ‘서문’과 맨 뒤의 ‘후기’를 읽어보니 필자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바로 구입을 결정해서 집에 와서 읽기 시작한지는 꽤 됐는데, 그동안 논문이다, 일이다 중간 중간 읽다 말다 하다가 방금 겨우 다 읽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참신하고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필자가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내용이었으며(필자의 전공이 역사고고학이다 보니 더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읽으면서 내내 멍~한 기분이 들 정도로 쇼킹한 내용도 많았다. 어쨌든, 인류 문명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으면서 완전히 맛이 갈 정도로 감탄했었던 기억이 났는데(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최근에 구입한 『문명의 붕괴』까지 전부 다 읽고 한 번에 서평을 쓰려고 아껴두는 중! 추후 공개할 생각이다), 이 책을 보면서도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올해 읽었던 고고학 전공서적 중에서 Top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일단 뭐부터 쓸까? 생각해보니 내용이 하나같이 전문적이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지라 먼저 목차를 소개하고 각 챕터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등 필자가 애용하는 3개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봤더니 책 표지가 없는 곳도 있었으며, 모두 다 목차나 간략한 내용 소개가 없어서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정보를 얻을만한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예스24에 1개, 알라딘에 1개뿐이어서(평점은 나쁘지 않은 듯~별 4개 정도) 독자들이 이 책에 알 수 있는 루트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판사의 홍보 정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알려지지 않으니 점점 인기도 시들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예스24에서는 절판까지 됐다).

암튼 목차부터 다뤄보자. 서문과 후기를 제외하고 총 19장인데, 앞서 언급했지만 서문과 후기만 읽어도 이 책의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서문이나 후기를 먼저 보고 결정하셔도 괜찮을 듯 싶다.


1장 석기시대

2장 조어(祖語)

3장 새로운 로제타석

4장 고대 유럽의 기호 : 문자인가, 선문자(先文字)인가

5장 구석기시대 글쓰기의 기원

6장 원시과학

7장 족문(足紋)에서 지문(指紋)까지

8장 지금은 수술 중

9장 석기시대의 외과수술

10장 불을 이용한 제조 기술

11장 다시 맷돌로

12장 석기시대의 광업

13장 오커, 대지의 피

14장 비너스상 : 성적 대상인가, 성의 상징인가?

15장 종유석의 노래

16장 최초의 화석 사냥꾼들

17장 빌징슬레벤의 네 개의 뼈

18장 성지의 조각상

19장 새벽의 돌인가, 위조의 새벽인가?

자아~목차 한번 보시라.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필자는 처음에 이 목차를 보고 ‘오잉!! 뭐야? 석기시대를 논하는데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목차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석기시대를 논하며서 지금 ‘文明’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것도 모자라, 언어와 문자, 과학과 예술, 의술, 제조업과 광업, 음악, 신앙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런던대학에서 사회 인류학과 종교적 의식연구로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학에서 ‘고대에 사용된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식물’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50대의 왕성한 고고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고고학과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며, 아직 이런 연구를 수행할 정도의 수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감히~). 그래도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아났다. ‘아아~침착, 침착!’ 그렇게 심호흡하고 책장을 한 장씩 넘겼다.

저자는 ‘신석기혁명’ 같은 용어를 부정한다(제목에서부터 드러나지 않는가). 이는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인류가 어느 한순간 ‘펑!’ 하고 잘나진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마치 고대 한국사회가 불교 도입과 공인으로 갑자기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발돋움했다고 보는 견해와 같다고나 할까? 얼마전 개봉한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라는 영화를 보니 프레데터가 자신들의 유희(?)와 성인식(?)을 위해, 인류에게 문명을 전수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에일리언을 기르게 한 뒤 종종 찾아온다는 설정이 나오던데 정말 그렇다면 또 모를까...). 위대한 고든 차일드 선생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인류 문명을 정의해버리면 우리는 미싱링크(Missing link)가 발견돼도 무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저자 또한 그런 우려를 범하지 않기 위해 1장에서 석기시대에 대한 개괄을 좍 설명한다. 흔해빠진 기존의 설명과는 다르다. 뭐 어떤 석기를 쓰고, 동굴에서 살고, 뭘 먹고 살았고...이런 얘기는 없다. 다만, 기존에 석기시대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슈가 되었던 유적들과 논쟁이 된 문제들을 나열함으로써 독자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래도 석기시대에서 혁명적인 어떤 요소가 등장해 문명이 생겼다고 할 텐가?’라고 말이다.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되는 선문명, 우수한 석기시대의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차탈휘익크(여기에서는 카탈후이우크로 표기되어 있다) 유적, 지중해 몰타섬과 고조섬의 석기시대 신전들, 일본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등등. 아주 흥미로운 얘기들로 1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게 2장으로 넘어가면 여기서부터 5장까지는 주로 언어에 대한 부분이다. 흔히 문명의 척도로써 꼽는 것이 ‘문자와 언어’인데, 저자는 이미 구석기시대 때부터 이런 문화가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뭐 저자가 주장한다기보다는 이미 기존에 주장된 것을 정리한 것이지만 암튼). 2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군과 어족의 뿌리가 상당히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내용이 主인데,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잘 읽고 넘어가보자(필자도 딱히 할 말이 없다. -.-;).

개인적으로 3장의 내용을 재밌게 봤는데, 여기에서 쇼킹한 내용이 드뎌 나온다. 바로 수메르와 같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알려진 문자 활동의 기원이 더 이른 시기의 주변 지역에서 이미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총, 균, 쇠』를 보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지정학적인 조건, 활용할 수 있는 동 · 식물의 풍부함, 농업과 군집을 가능하게 한 자연조건 등으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문명에서는 문자와 산수, 제사와 신관, 정치와 전쟁 등이 생겨났고, 중동의 문명은 외계인이 전수해 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당연하게’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에 반대한다. 드니즈 슈만-베세라는 근동에서 초기 신석기시대부터 효과적인 회계 방식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방대한 양의 증거를 확보하였는데, 이는 3,500~3,100년 전에 이런 문자나 숫자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기존 견해보다 4,000~5,000년이나 이른 것이었다. 그렇게 놀라움을 감출 새도 없이 책은 빠르게 4장으로 넘어간다.

여기에서 저자는 한술 더 뜬다. 4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고대 유럽에서 문자 발생의 요소들이 구석기시대때 이미 엿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문자라고 하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또한 ‘맹아기의 문자’와 ‘진정한 문자’를 구분할 필요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고대 유럽에서 확인된 서판이나 유물들이 확실히 어떤 기호체계를 이루고,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들의 연대가 6,000~7,000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기존 상식의 벽에 도전해야만 한다. 중동에서 생겨난 인류 최초의 문명적 요소 중 하나인 문자 활동은 그때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개하고 인류가 살기 어려웠다고 여긴 고대 유럽에서 생겨난 원시적인 문자 활동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계속 이어져 5장에서 저자는 후기 구석기시대, 더 이르면 중기 구석기시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미 어떤 信標와 같은 상징물을 인지했으며, 우주론적인 상징(형이상학적인 추상의 범위?)까지도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해석에 있어 초보적인 연구단계지만, 이 분야에 대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뭐 필자도 문명과 문자가 꼭 양립해야만 하며, 상호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대한 영토와 체계적인 조직을 일궈낸 고대 잉카 문명에서도 철기나 기병,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문자나 숫자 체계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허술했지만 그들은 눈부신 문명을 이뤄냈다. 이는 한자 문화권에 속한 고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양서』와 같은 중국정사 조선전을 보면 신라는 6세기에도 문자 대신에 신표를 사용했다고 하지 않는가. 전 세계에서 문자를 가진 문명이나 집단이 오히려 적다는 것을 보면 이를 두고 문명의 보편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인 셈이다. 그런데도 그 상한을 중기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에는 쉽사리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아! 이제 6장이다. 한 1/3 정도 지나왔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또 큰소리를 친다. ‘과학’이라...과학이라...석기시대때 원시과학이라. 과학이란 말과 석기시대와 잘 어울리는가? 암튼, 책장을 또 넘겨보자. 먼저 저자는 손도끼의 규격화를 언급하고 있다(144쪽의 그림 20을 보면 이해가 확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추상적 사고 과정을 통해 손도끼가 대칭성을 갖고, 길이와 너비 사이에 일정한 규격성을 갖게끔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도구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아마 오랜 경험에 의한 가장 쓰기 편한, 가장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어 갔을 것이다), 하나의 비례 표준에 맞춰져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멋지지 않은가? 국내에서 손도끼에 대한 이런 연구 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그 다음에 나온 네안데르탈인들의 매장풍습에 스며든 천문인식, 여러 소수민족의 숫자를 세는 민족지적 사례, 벨기에에서 발견된 빗금이 새겨진 뼛조각(이걸 두고 숫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데에는 필자도 동의하지만 어떤 숫자인지에 대해서는 책에 나온 것처럼 이견이 많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헝가리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 태음력을 표시했을 것으로 주장되는 석기 등도 충분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冊曆에 대한 주장도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역시나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스톤헨지와 같은 거대한 석조건축물에 대해 하나하나 의문이 풀리고 있는 지금 언제 기존 상식이 뒤집어질지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7장은 뭐 민족지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고대 사냥꾼으로서 인류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등을 언급하고 있었다. 어떤 예술적인 부분을 다룰 줄 알았는데 필자의 예상을 빗나갔고, 뭐 상식적인 내용이므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8장과 9장은 의술에 대한 부분인데, 8장에서는 먼저 유럽인들이 묘사한 소수민족(미개하다고 알려진)들의 민족지적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다. ‘요즘도 소수민족은 현대적인 의술이 아니라 그들만의 자생적인 의술을 시도하고 있고, 그 성공률은 상당히 높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9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석기시대 의술의 흔적들을 짚어내고 있었다. 먼저 천공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에도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조금 더 언급하겠다. 이미 석기시대 때부터 뇌 수술은 실시되었는데, 오늘날도 상당히 어렵다고 여겨지는만큼 당시 의학 수준을 짐작하는 대표적인 수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개골은 쪼아내고, 그 안의 상처를 처리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천공술이 유럽에서는 석기시대 이후로 오히려 퇴색하여 중세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석기시대가 더 잘났으며 그 이후에는 퇴색했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주요 논지 중 하나이다! 기억하기를!). 이러한 천공술은 치아 수술에도 적용되었는데, 그 역시 놀랄 정도로 정교했다고 한다. 석기시대때 이미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예전에 <로마> 시즌 1을 보면서 폴로의 머리에 박힌 철편을 뽑아내기 위해 천공술을 실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상당히 묘사를 잘 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보다 수천 년 이전에도 아마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10장은 어떻게 보면 기존에 잘 언급이 안 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발달과정에서 불이라고 하면 구석기시대때 처음으로 불을 쓰기 시작했다, 라고 언급하고 나서 청동기와 철기시대때 금속가공을 위해 불을 잘 다루기 시작했다~라고 언급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간의 구석기시대와 불은 크게 연관이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큰 것이 사실이다(오히려 석기제작과 연관되어 물의 사용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며 신석기시대때 토기 제작을 언급해야 겨우 불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석기 제작에 사용된 부싯돌 등의 재료에 열처리를 하는 얘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열처리를 통해 처트(chert 혹은 角巖 : 가장 잘 알려진 부싯돌 재료)를 좀 더 쉽게 박편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석기 가공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한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돌니 베스토니체와 인근 유적에서는 2만 6,000년 된 토제품 6750점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500~800℃의 불에서 의도적으로 열충격을 통해 폭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무당과 같은 일종의 심령술사가 일종의 사냥 의식곽 같은 제사를 위해 그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싯돌에 대한 열처리나 이러한 토제품의 의도적인 열충격 등이 토기 제작, 금속 제작과 같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수천 년 앞서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즉, 필요에 의해, 기능을 위해,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순히 제사와 유희, 어떤 의식적인 부분을 위해서도 기술은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훗날 토기를 제작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자 후손들은 선조들이 다른 곳에 사용했던 방법을 차용했던 것 뿐이었다.

11장의 ‘맷돌’은 석기시대 도구에 대한 기존 상식의 한계를 상징한다. 흔히 맷돌은 여성이 쓰는 것으로서 농경을 통해 나온 곡물을 가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미 8만 년 전의 멧돌 잔해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토된 바 있다(당연히 이런 주장은 대체로 부인되고 있다). 남아공 플로리스배드 유적에서는 뭔가를 갈아 생긴 마모의 흔적이 남은 석기(4만 8,900년 전)가 확인되었고, 남아공 부시먼록셸터 유적에서는 4만 3,000년~4만 7,000년 전의 맷돌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호주 커디스프링스 유적에서도 3만년 된 맷돌이 확인되었다. 당시 이들 지역에서 농경이 있었을까? 더 놀라운 것은 맷돌질보다 절구질은 그보다도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활비비(불을 피울 때 쓰는 도구로 천공술에서도 사용된다)와 창을 더 멀리, 손쉽게 던질 수 있게 도와주는 투창기 등 저자는 다양한 도구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비단 돌로 만들어지지 않아 오늘날 다 썩어버린 수많은 도구들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흔적들이 오늘날 확인되고 있다고 말이다. 도구를 통해 과거 석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까지 고찰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챕터였다.

12장은 광업에 대한 부분인데, 오커(ocher : 철광석)라는 것을 여기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슴뿔로 만든 채굴도구로 지하 수십 m 아래에서(유고슬라비아 루드나 글라바의 동광은 깊이가 20m가 넘는데, 유적은 최소한 7,000년이 넘었다) 석기시대인들이 오커를 캤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선사시대 유럽에서의 채광기술을 조사한 결과, 석기시대 채광기술은 후기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1,200년경이 되어야 겨우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천공술과 마찬가지로 채광기술 역시 중간에 공백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3장 역시 오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건 철광석이다. 즉, 석기시대때 철광석을 사용하기 위해 채광을 했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이걸로 철기를 만들지는 않았으며, 그들은 이 붉은 색을 이용해 바디 페인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쇼킹한 얘기를 하나 더 한다. 맷돌과 절굿공이가 흔히 농경의 새벽을 선포하듯 아주 후대에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은 곡물이 아닌 오커를 가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안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10장에서 나온 불을 이용한 열처리가 필요했고 말이다. 지금까지 주욱 봐왔던 내용들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아 하나로 귀결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석기시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14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뚱뚱한 비너스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손보기 교수가 언급이 되어 있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뷜렌도르프의 비너스(가장 널리 알려진)’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성적 모티브를 가진 조각상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뭐 전체적인 내용이나 결론은 일반적인 것이다. 이러한 비너스상이 단순히 다산의 상징이나 성욕의 대상으로 이해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가진 우주론적 의미의 상징이다. 또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뭐 이 정도? 암튼 여기도 별로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챕터다.

그리고 드디어 15장! 이 책에서 가장 쇼킹했던 부분인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자그마한 타악기 등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거대한 동굴의 종유석을 그대로 악기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여기에 나온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서, 저런 연구까지 했을까 싶었다. 뭐 현대에 동굴 안에 식당을 꾸민다거나, 동굴 안을 개발해 관광이 가능하게끔 한다거나, 실제 파이프 오르간을 안에 들여놓아 웅장한 음색을 낸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구석기시대때 동굴을 악기로 썼다니. 그저 충격일 뿐이었다.

16장은 생각의 전환을 조금 더 하게끔 하는 챕터였는데, 석기시대 사람들도 자기들보다 이른 시기의 문물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영국 노퍽에서는 조개화석이 박힌 손도끼가 발견되었는데, 조사자는 손도끼 제작자가 정 가운데에 부채꼴의 아름다운 조개화석을 돋보이게끔 손도끼를 만들었다고 자신한다. 또한 남아공 마카판스가트의 사람 얼굴 모양이 새겨진 자갈 역시, 그 신기한 모양에 석기시대 사람이 수집했다고 이해한다(왜냐하면 그 자갈에 찍힌 사람 얼굴 모양은 조사 결과, 인위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고 판명됐으므로).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사람을 묻고 그 위에 꽃다발을 뒀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니 넘어가려고 했는데, 뒷장에서 더 놀라운 얘기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네안데르탈인의 미적 감각에 의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갖다놓았다는 것도 있지만 죽은 사람이 내세에 도움이 되라고 갖다놓은 약초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천공술을 해내고, 훌륭한 사냥꾼이자 도살꾼이었던만큼 절개수설에 능했던 그들이므로 약초학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아하~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절로 무릎을 쳤다. 단순히 애도의 의미가 아닌 내세에 대한 생각, 어떤 의도가 있는 행위였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17장은 16장 마지막 부분(약초학과 꽃에 대한 내용)과 연결되어 네안데르탈인의 곰 숭배 의식(기존에 알려져 있던 상식)이나 여러 의식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었으며 18장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16장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매장의 복합체는 두 개의 상수(매장 구조물과 사람의 유골)과 두 개의 변수(분묘의 부장품과 관련 시설)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런 복합체는 중기 구석기시대라는 먼 옛날에 등장했으며, 그때 이후 그 어떤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징이나 설계도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17장 말미에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인류 발달사에 대해 표준 모형과 누적 모형이 있다. 전자는 초기 미술로 증명되는 상징적 활동의 폭발과 인류 혁명이라고 묘사되는 것의 폭발적 출현을 의미하며, 후자는 상징적 행동의 기원을 전기 구석기시대나 중기 구석기시대에 두는 것인데, 시간이 오래 될수록 시간의 파괴력과 극적인 지질학적 · 기후학적 변화를 견딘 유물이 적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18장에는 다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역사시대의 수렵 채집인이 때때로 농업적 생활양식을 채용하기를 내키지 않아 한 것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기 때문인 것처럼,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일상성에 기초해서 계속 사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전한 종류의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한 뒤에 일어난 보다 단순한 석기 제작 기술로의 회귀는 필시 그런 석기가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변화 욕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그런 과감한 발명품들이 우연히 잊혀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9장에서 저자는 말한다. 지금 호모 에렉투스가 기존에 알려진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점에 고향(아프리카)을 떠나 아시아나 유럽, 아메리카로 향했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을 기존 상식의 벽에 맞춰 모두 무시해야만 하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말미에 재밌는 실험고고학적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유적에서 육안으로 석기 및 박편과 자연적으로 깨진 돌을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필자와 같은 비전공자는 당연하겠거니와, 전공자조차도 이건 어려운 일이다(하물며 신석기시대때 간석기가 아닌 더 이른 시기의 뗀석기라면).

그래서 실험을 했단다. 한번은 유적 주변에서 나는 규암 표본을 선택해서 200번 정도 찍는 작업과 400번 정도 절단하는 작업을 거친 후 마모흔적을 실제 석기와 비교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결과를 쉽게 안 믿는다고 한다. 또한 어떤 이는 유적 주변의 경사면 바닥에서 2,000개의 자연적으로 생성된 돌멩이들을 조사한 결과,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는 12~15m 높이에서 규암 자갈 100개를 던져 깨뜨린 뒤 바로 그 박편을 수습해 실제 석기와 비교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인공 유물들로 보이는 박편화하고 파괴된 돌멩이들은 이것들과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더 많은 석기를 상대로 실험을 하면 닮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타자하는 유명한 원숭이만큼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한다. ^^). 즉, 사실은 사실대로 믿자는 것이다.

최근 베레카트람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미술이 최소한 25만 년 전에 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뼈에 일부러 모양을 새기는 것은 전기 구석기시대 때로 올라간다고도 한다.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부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연유로 이스라엘 하요님 동굴에서 나온 후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인정하고, 똑같은 유적에서 나온 중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 한다. 중기 구석기시대의 뼈가 후기보다 더 광범위한 표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타르타리아의 서판이 수메르 문자보다 늦은 시기라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이를 문자 시스템의 하나로 인정하다가, 그것들이 수메르 문명보다 앞선 것이라고 밝혀지면서 기존 논점을 모두 폐기한 것도 해당될 것이다(마치 전통고고학을 비판하는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나? -.-;).

전반적으로 필자에게는 상당히 유익하고 재밌었으며,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다. 한국 고고학계와 비교하면서 읽을만한 것도 많았고, 외국으로 나가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어쨌든, 필자에게는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고마운 책이었다. 다만, 비전공자나 일반인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지금까지의 인기도와 서점 내에서의 홍보현황만 봐도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하지만 고고학이나 인류 문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좀 참고 읽다보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도판이나 도면 등이 많이 없기도 하고, 글자체나 자간, 글 간격도 다소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디자인이지만 이런 것들도 한번 이겨내 보시기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