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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큐레이터로 살다 -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
최선주 지음 / 주류성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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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류성은 역사, 고고학 관련 서적을 많이 발간하는 출판사로 나에게는 한국의 고고학계간지로 더 친숙한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박물관과 관련된 몇몇 책(박물관이란 무엇인가?, 박물관학의 기초, 문화재 보존과학)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어 주목하고 있던 차에 흥미로운 제목의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라.

제목을 보아하니 박물관 큐레이터, 학예사 또는 연구사, 학예연구사 등으로 불리는 직업군에 대한 책이었다. 큐레이터는 널리 알려진 직업군은 아니지만 관련 전공 분야(고고학, 미술사학, 역사학 등)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직종이다. 큐레이터에 대한 책들은 시중에 이미 많이 나와 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소개, 큐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 등등 다양한 시각에서 큐레이터를 바라본 책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현직 국립박물관 관장이 지난 30년 간의 소회를 담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고고학 · 미술사학계의 원로 선배님들이 자서전 또는 연구서 형식으로 책을 남기시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이는 후배들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 많은 도움을 주곤 했다. 이 책도 그러한 책일까? 아니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을까? 책 제목만 봐도 기대가 된다. (이보다 조금 일찍 나온 책으로 한번쯤, 큐레이터도 눈에 띈다. 19년 차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비교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큐레이터, 불상을 마주하다>에서는 저자가 처음 공부를 시작해 큐레이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 큐레이터로 지내면서 본인의 전공인 고려 불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정리하고 있다. <2부 특별전, 이 땅의 특별한 이야기>는 저자와 함께 한 특별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박물관에서 전시 결과물만 접하는 우리들에게는 신선한 소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3부 박물관, 숨겨진 이야기>은 저자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실무적으로 느꼈던 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부분과 주목해야 하는 부분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저자는 '흔히 크기만 하고 못 생긴 불상'으로 알려진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서두에서 꺼내고 있는데, 몇장 넘기지 않았음에도 불교와 불상, 부처와 보살상 등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의 석조불두, 운반하는 데에 엄청난 공과 시간을 들인 하사창동 고려 철불, 국립춘천박물관의 유일한 국보인 강릉 한송사 터 보살상, 삼화령 애기부처 등 불교전공자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불상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소개하고 있다. 이는 2018년 국립박물관 최우수 전시로 뽑힌 국립춘천박물관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 특별전에서 절정에 달한다. 마치 서랍장에 담긴 작은 불상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꺼내 포장을 벗겨 바로 눈앞에서 그와 관련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한자 한자 눌러 쓴 원고가 정겹다.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저자가 당시 받았던 감동과 흥분, 그리고 원고를 작성하면서 다시 그때의 기억을 되새겼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경주박물관의 관장이자 고위 공직자이지만, 저자도 처음에는 열정이 넘치는 풋내기 큐레이터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과 노력, 고민과 응전의 시간이 있었다.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어느새 '라떼'라는 장난 섞인 단어로 치부되는 요즘, 1부의 내용을 살펴보고 난 뒤의 느낌은 저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까? 하는 고민과 함께.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프로필을 자랑스럽게 꺼내며 나의 지난 치적을 화려하게 소개한, 전형적인 공적비 같은 자서전처럼 서두를 꺼내지 않아서 좋았다. 오히려 기교 부리지 않고 저자의 당시 생각과 기분, 느낌과 이를 대하는 현재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서 부담없이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수십쪽에 달하는 내용이 눈에 쉽게 들어오면서 책이 읽히는 것도 그탓일게다. 저자의 지난 삶의 일면을 약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분좋게 다음 장을 넘겼다.

 

2부는 저자가 큐레이터로 성장해 온 과정을 함께 하는 공간이었다. 30대 초반 처음으로 맡은 기획 전시 <고려 말 조선초의 미술>을 시작으로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까지 엄선한 11건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중 절반 이상의 전시를 관람했던 필자였기에 책을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이 전시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구나, 아아~이건 나도 정말 기억에 남는데,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도 그런 마음이었구나 등등. 큐레이터로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여러 감정들이 아스라히 느껴졌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큐레이터는 정말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난관에 봉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저자도 얘기하고 있지만 불상의 받침대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로 몇날며칠을 밤을 지새운다. 정작 관람객 중 불상이 아닌 불상 받침대에 주목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저자가 담당해왔던 전시에서도 그런 면모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저자와 같이 했던 동료 큐레이터에 대한 이야기도 생동감있게 전해지고 있다.

 

히 창령사 터에서 출토된 오백나한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유별났다. 다들 볼품없다고 여겼던 관촉사 은진미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마침내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 국보로 승격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던 일화, 용산으로 새 터전을 옮긴 하사창동 철불좌상을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일화, 군부대 승인을 얻어 강릉 한송사 터를 답사해 한송사 터 석조보살좌상의 받침대를 찾아 이때 얻은 실측자료로 받침대를 만들어 전시에 활용한 일화, 진구사 터 석조비로자나불이 지금의 자리에 안치되기까지의 일화 등 불상에 대한 저자의 노력이 오백나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현대 작가와의 협업, 기존과 달리 개방된 공간에서의 전시 기획, 편안하고 푸근한 전시 분위기 등으로 인해 대박이 난 오백나한은 각종 언론과 TV 방송에도 소개되었고, 여러 번의 순회 전시를 거치며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자칫 그냥 지나치면 수장고 한켠에서 언제 다시 세상의 빛을 볼지 모를 유물이겠지만, 큐레이터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다른 불상도 그렇겠지만, 오백나한을 바라보는 저자가 어떤 느낌일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3부는 저자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내고 있었다. 박물관 심벌마크에 대한 생각, BTS가 공연한 원랑선사 탑비, 전쟁의 참화를 겪은 선림원종, 손기정 투구를 통해 본 기증문화재에 대한 생각, 수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사랑하는 어린이박물관의 미래, 군장병을 비롯한 현지와 밀착된 국립박물관의 노력, 개방형 수장고를 통해 관람객에게 더욱더 다가가려는 국립박물관 등 큐레이터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담백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1부와 2부가 일반 관람객들, 혹은 박물관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소재라면 3부는 현직 큐레이터들이 한번쯤 되새기며 읽어볼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단순히 저자의 과거사를 자랑하고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선배 큐레이터로서 걸어왔던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수백 명의 후배 큐레이터, 그리고 그들이 근무할 국립박물관이 변화 · 발전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본인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보면서 본인이 '학자적 큐레이터', '큐레이터적 학자', '학예 행정직' 중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밝히고 있다. 눈 앞의 업무에만 매달리다 보니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 하고 그냥 스쳐지나간 문화재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보다 더 강하게 본인을 채찍질하고, 더 많은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문화재를 대했으면 더 많은 문화재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저자의 손을 거쳐 어떤 문화재들이 전시되었는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름의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자신의 실수도, 자신의 후회도 이렇게 솔직하게 남기고 있으니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결론이든지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또 하나의 큐레이터가 생겨날지도, 아니면 본인의 꿈을 접는 사람도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 말미에 남긴 글은 분명 좋은 느낌을 전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큐레이터들은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자 시간을 잇는 사람들이다.

손때 묻은 유물을 다루면서 그 가치를 찾고 유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큐레이터로 살아온 국립박물관은 나의 일터이자 삶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만지고, 이어온 나의 삶은 행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국립박물관 큐레이터의 길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훗날 나의 시간들도 누군가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여러분들은 책을 다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우리는 박물관에서 만나는 수많은 금동불상과 석조불상, 대형 철조불상을 예배의 존상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곤 한다. 또 큐레이터로서 불상을 마주하게 되면 특별전의 전시 품목으로 여기거나 연출 대상인 이른바 ‘오브제‘로만 고민하게 된다. 특히 머리나 몸체만 있는 불상을 전시할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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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과 신들
주원준 지음 / 한님성서연구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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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지막 리뷰 이후에 근 10개월만에 쓰는 리뷰 같다. 그만큼 그동안 게을렀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각설하고, 오늘 소개할 책은 오랜만에 종교 관련 서적으로 정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잠깐 소개하자면, 저자이신 주원준 선생님이 모 학회에서 관련 주제로 발표하는 걸 듣고 나서였다. 발표 내용도 워낙 신선했지만(기존에 성경 혹은 예수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책은 없었다), 뒷풀이때 선생님과 나눈 대화 속에서 고대근동학 및 구약학은 물론, 개신교나 천주교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주효했다. 거기다가 예전에 읽었던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라는 책의 번역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역시나 구약학이나 고대근동학 이외에도 종교와 관련된 역사 전반에 능통하시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했고.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프롤로그에서 간단하게 고대 근동의 지리학적 개념, 언어, 탈신화화와 재신화화(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성경의 번역과 성경의 현주소?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쪽 지식이 거의 없는 필자와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에게는 이 부분이 상당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8장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 꼭 알아야 하는 필수 지식들이 다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살펴보면,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심을 이해하면서 당대 역사와 문헌들에 접근해야지, 과학과 합리성에 의존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부터 언급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성경에 신화의 언어가 풍부하다는 표현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당대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근동의 종교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어떻게 차별화했는지를 서술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밖에 고대근동학의 정의(막연히 고대 근동을 연구하는 학문은 성서고고학, 히타이트 고고학 등으로 불리는 줄로만 알았다)라든가, 고대 근동의 시간적 폭, 고대 근동의 언어를 기준으로 한 지역 구분 등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했던 것은 독일의 신약성서학자인 불트만(Bultmann, R.)이 제시한 탈신화화(脫神話化, Entmythologisierung)’라는 개념이었지만 말이다. 신화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현대인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학적 틀을 제시한다는 개념. 그런데 역시나 그 용어가 갖는 표면적 의미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잘못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김원룡 선생님이 처음 제창하신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나 애덤 스미스의국부론에 드러난 자유방임경제및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개념들도 모두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으나 최근에 이를 새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암튼, 저자는 신화는 마냥 겉의 신화적 요소를 껍질 까듯 벗겨버리고 속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21쪽에 적절한 표현이 나온다. 성경은 바나나처럼 껍질은 버리고 과유만 얻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양파처럼 껍질과 과육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 자체를 온전히 섭취해야 한다, 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책 초반부에서 가장 와 닿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탈신화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신화화(再神話化, Remythologisierung)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증거물이 바로 창세기의 첫째 장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당시 고대 근동의 모든 나라들이 섬기던 자연신들을 하느님이 1주일 만에 만들어버린 피조물(소위 말하는 天地創造)로 전락시켰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다(비교가 부적절할지도 모르지만 마치 마블 코믹스의 슈퍼영웅 세계관을 보는 듯 했다. 첩첩산중처럼 쌓여있는 수많은 영웅들 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아이언맨, 엑스맨, 헐크, 토르, 고스트헬 등은 중하급 영웅들이며, 그보다 훨씬 뛰어난 초신적 영웅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결과, 뿌리 깊은 자체 신화가 없는 미국인들의 손을 거쳐 세계 각지의 신화적 영웅은 탈신화화하고 재신화화를 거쳐 새롭게 등급이 매겨진 셈이 됐다. 그에 따라 천둥의 신 토르는 북유럽에서 최고신에 준하는 지위를 얻고 있지만, 마블 코믹스에서는 슈퍼맨 정도의 레벨에 불과하다. 물론 슈퍼맨은 최고 레벨의 영웅이 아니고 말이다. ^^; 고대 근동의 수많은 도시국가 및 제국의 수많은 신들이 많아봤자 그보다 높은 레벨의 신에게는 한줌거리도 안 된다는 식의 이스라엘인들의 시각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재밌으면서도 신기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저자는 성경 번역이 사실적 일치가 아닌 상징적 일치를 더 고려해서 이뤄져야만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사실 이런 부분은 실제 종교인이 아닌 필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역사로서의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시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다 살펴봤을 때 우리가 얻는 것은 바로 무엇인가? 라는 것까지! 이후 책에서 이야기할 것들을 맛보기로 다 보여주고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해당 분야의 지식이 상당한 사람에게는 다소 밋밋한 책일 수도 있겠으나 필자처럼 無知한 독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책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책 내용 중 필자가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과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 등을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본론은 크게 6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첫째는 하늘(), 둘째는 달(), 셋째는 바람(), 넷째는 강(), 다섯째는 피(), 여섯째는 가시나무(). 일단 고대 근동하면 딱 연결되는 주제라면 달이나 강 등이 떠오를 수 있겠고, 일반적인 신화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하늘과 바람 피 등이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대략의 이미지만 떠올릴 뿐, 앞으로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명확히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기대감이 크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하늘신(天神)은 동서고금을 떠나 항상 최고신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신화속 신과 영웅들은 모두 하늘에서 살며,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있는 생명을 관장하고, 모든 천재지변을 관장한다. 비도, 구름도, 눈도, 태풍도 모두 하늘이 없으면 존재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신은 고대 근동에서도 최고신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야훼는 그런 자연신과 동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하늘()은 있을지언정 하늘신(天神)은 없다. 하늘은 그저 공간적 범위,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 중 하나이자 하느님이 계시는 공간일 뿐이지 절대 그 하늘 자체가 신적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늘의 하느님이라는 호칭이 야훼 하느님만의 것은 아니었다. 페르시아의 공식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의 대표적 호칭도 이러했는데,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페르시아의 종교관을 과감히 차용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바빌론 유수 이후 이스라엘인들이 대제국 페르시아의 문화적 영향력이 확산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물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 그 호칭이 담고 있는 페르시아의 신과 신앙까지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호칭만 가져와 자신들의 신에게 선사한 것이다(페르시아인들의 타종교에 대한 관용이야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사실들을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자신들의 종교가 타 종교를 변화시켰다고 좋아했으려나? 실제 저자는 신바빌론 제국의 마르둑 사제들이 제국 내 왕권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신들의 족보를 새로 정리했다는 내용을 적고 있는데, 당시 이러한 종교정책의 부작용이나 반대 입장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는 고구려 내에서 부여 신화를 고구려 신화 안에 흡수하는 과정에서도 적용 가능한 사례일 수 있어 자못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야훼 신앙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관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마태오 복음의 하늘의 너희 아버지’, ‘하늘의 내 아버지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중얼거리는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늘은 하느님과 동의어가 됨으로써 탈신화화를 넘어 재신화화가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주제부터 흥미진진하게 끝을 맺으면서 두 번째 주제로 바로 넘어가겠다. 두 번째는 이다. 고대 근동은 달신이 왕권 신학의 핵심 상징으로서 중교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유일한 지역이다(일반적으로 태양신이 보편적이다, 지근거리의 제우스-쥬피터를 보라. 더불어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얼굴이 쥬피터의 그것을 따왔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도 떠오른다). 실제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동부와 서부에 따라 달신의 지위가 달랐으며, 시간에 따라 달신의 지위가 변하기도 한 것 같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 페르시아 제국의 팽창과 함께 하느님 또는 하늘의 개념이 유입된 것처럼, 달신 숭배사상은 신아시리아 제국의 팽창과 함께 찾아온 종교적 위험요소였다. 그렇게 이스라엘인들은 달 역시 피조물로 만들어 버리고, 달신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버린 것이었다. 이를 두고 저자는 고대 근동 세계관의 전복이라고 하면서 창세1장을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화의 헌장이라는 표현으로 대변하고 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바람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환인이 환웅을 보필해서 내려 보낸 이들이 바로 풍백(風伯)을 비롯해 우사(雨師)와 운사(雲師)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신들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그중 바람신은 해양 민족에게도 중요한 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대 근동에서 바람은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며, 계절별로 각각 다른 바람이 불어왔다고 한다. 그만큼 바람은 사람들의 삶 속에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바람신 역시 다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구약성경에서 바람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훼와 관련된 바람만 존재할 뿐이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일뿐더러, 바람이 불면 하느님이 현현한다는 징조로 쓰였다(영화나 드라마에서 신이 바람소리를 나면서 순식간에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아마 이와 비슷한 개념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도 재밌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이 루아흐(바람, )가 주님이 지나가신 흔적이요, 표징일 뿐이지 그 자체는 아니라고 주절주절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 계속되어 온 그들의 끈질긴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네 번째는 인데, 개인적으로 책을 읽기 전 관심 있던 부분이었다. 메소포타미아 하면 2개의 강(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이 떠오르는 만큼 강과 관련된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저자는 도입부에 이런 표현을 쓴다. ‘현대인은 나일 강과 나일 강의 신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고대 근동인들에게 하늘신 없는 하늘이나 강의 신 없는 강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세상이나 사랑 없는 연인들과 같은 표현이다라고 말이다. 으음~쉽게 이해가 됐다. 그렇지. 그런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요즘의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 되겠지.

 

처음 나오는 것은 나일 강이다. 고대 근동의 신 대부분이 자연 현상에 기반을 둔 인격신임에도 불구하고 나일 강은 강 자체가 아니라 강의 범람만이 인격화되었다고 한다(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인데, 그만큼 나일 강의 범람이 갖고 오는 사회적 변화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 저자도 구약성경이 나일 강 범람의 신인 하피신에게 유독 침묵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그만큼 나일 강 범람이 미친 문화적·사회적 영향이 컸다는 소리를 역설적으로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더불어 혹시 중국에도 황하가 아닌, 황하 범람에 대한 이런 신화적 요소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강으로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나오는데, 본디 이 두 강은 고대 근동에서 신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점차 이들의 신성은 사라지는데, 그건 바로 수메르시대부터 일곱 주신의 하나이자 최고신 아누(하늘신)의 아들이요, 풍요의 신 두무지의 아버지인 엔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언급했던 신들의 계보 정리로 최고신의 지위를 얻은 마르둑의 아버지가 되기도 하는데, 지하수의 신이자 대표적인 선신(善神)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엔키의 흔적 또한 앞서 살펴본 하피신의 흔적만큼이나 구약성경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이 역시 이스라엘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다양한 고대 근동의 종교적 모티프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선별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고 이로운 것을 수용하되 자신들이 함부로 삼키지 못하는 거대한 신성들은 아예 건드리지 않고 제외시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역시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의 합리성과 치밀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리라.

 

암튼, 이 두 강 역시 탈신화화를 거쳐 이집트의 북쪽 경계를 의미하는 지리적 용어로 쓰이거나, ‘저 멀리 북쪽 끝을 의미하는 신화적 강의 의미로 쓰였다(마치 무협소설에서 막연한 무림의 북쪽 끝을 가리키는 용어 北海처럼 말이다). 그밖에 강은 심판의 의미도 있는데, 구약성경에서는 이것이 정의를 판결하는 강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이 역시 강의 신은 사라지고 탈신화화한 표현인 셈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현재 성경 번역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데, 확실히 기존의 단순히 안개’, ‘로는 확실하게 의미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고대 근동 언어를 당대인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보다 확실하게 성경이 담고 있는 의미가 전달된다는 저자의 생각이 잘 표현된 챕터가 아니었나 싶다.

 

다음은 . 초반에 나오는 담을 통해 본 단군과 단 지파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흥미로웠다. 단순히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혹은 비상식적(?)인 아마추어들의 이야기에도 이렇게 각주를 할애해 비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해야 하나? 암튼, 창세기를 보면 일종의 말놀이(pun 또는 wordplay)로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에돔족의 조상 에사우가 아돔을 찾았기 때문에 에돔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는 라시드 앗 딘의집사3부작(칭기스칸기-부족지-칸의 후예들)에서도 나오는 비슷한 내용인데, 수렵 집단에서 흔하게 확인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자화된 역사를 남기기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비정주문명에서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유대인들이 왜 헤롯왕의 이스라엘 통치를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접한 뒤에 본격적으로 피의 신 이야기로 향했다.

 

피의 신 하면, 좀 잔인하고 희생제의를 해야 할 것만 같고 이런 것만 떠올렸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피는 치유나 생명의 의미가 강했다고 한다. 물론 고대 근동에는 다무라는 피의 신이 있었지만, 구역성경에서 피는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의 혈액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피가 갖고 있는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리스도가 흘린 피는 죄악이 씻겨 나가는 상징이요, 생명의 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면서 흘린 예수의 피가 어떻게 비춰졌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최후의 만찬 장면을 언급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라는 표현은, 예수 역시 고대 근동의 종교심을 공유했다는 근거이며, 그가 셈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피를 상징하는 음료로 포도주가 사용되는 것 역시. 그리고 그 말은 곧 최후의 만찬에 모인 사도들 역시 셈족의 종교심을 소통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구원자의 피가 온 세상과 인류를 깨끗하게 만든다는 셈족의 종교심은 이스라엘인에게는 자연스러웠지만, 로마인(인도-유럽어족)들에게는 그렇지 못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말을 곧 인육식사로 오해했고, 그것이 곧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져 로마의 박해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예로부터 이러한 문화적 인식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대 교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마지막은 가시나무(조성모 노래 말고. ^^;;). 나무는 뭐 우주목, 세계목 등등으로 불리며 동서 신화 곳곳에서 신적 존재로 숭배받아온지 오래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나무는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가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스라엘인이 아시리아인과 달리 나무를 인격체로 표현하면서 나무에 종교적 심성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무도 종류에 따라 신성과 숭배 정도가 다른데, 그중 가시나무야말로 고대 근동 종교와 구약성경을 꿰뚫는 상징이자 신양성경의 핵심 상징이요, 유다교 라삐들과 교부들의 성찰에도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나무라고 적고 있다(기존에 가시나무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설명한 책은 본 적이 없다. 물론 관련도서를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2가지 같았다. 첫째는 가시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현재 천주교의성경, 개신교의표준새번역에서는 이를 모두 단순한 관목인 떨기나무로 번역하는데, 그렇게 되면 본래의 상징성이 잘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번역상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이자 영웅설화라고도 할 수 있는길가메쉬 서사시를 보면 길가메쉬가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무릅쓰면서 진리를 얻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곧 가시가 참진리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표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예전에는 그 가시나무가 작은 덤불의 일종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이를 가시가 달린 높이가 10m 이상 자라는 거대한 야자나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 저자는 수종의 일치보다는 그 나무에 얽혀 있는 의미를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럼 숨 가쁘게 달려온 고대 근동의 종교적 모티프와 구약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이 책은 따로 에필로그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챕터인 ‘7. 그러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를 한 장으로 떼어 마지막 에필로그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암튼, 제일 처음에 나온 이야기임에도 마지막까지 기다려 몇 자 더 적어보고자 한다.

 

여기까지 주욱 읽고 나면, 그럼 이스라엘인들은 고대 근동의 모든 종교관을 다 수용해서 그걸 탈신화화하고, 야훼라는 하나의 신적 존재를 만들어서 거기에 귀속시키는 재신화화 작업 밖에는 한 것이 없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처음에 저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필자도 똑같은 의문이 들었으니깐). ,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고유성은 없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마치 고대 삼국의 문화 중 문화를 제외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 얼마나 있는가? 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일 게다. 솔직히 이렇게 물어봤을 때 뭐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저자는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사실 고대 이스라엘의 배타적 고유성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고. 그리고 이는 당연하다고,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도 고대 근동 세계의 일부였으며, 오히려 제국을 이루지 못한 약소국이었기 때문에(실제 책 중간에는 강대국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도시가 믿던 신을 못 믿고 上國의 신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큰 제국의 문물과 종교적 상징을 무작정 받들고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자신들의 신앙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성찰의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배타적 고유성이란 비어 있지만(), 사실은 한 분을 향하는 태도’, 영성으로 꽉 차 있는 비움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불교의 과는 분명 다르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한편으로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심성은 블랙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반적으로 블랙홀로 모든 것이 들어가고 화이트홀로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고 알려져 왔으며, 그 중간을 이어주는 통로가 바로 웜홀이라고 한다(물론 블랙홀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론적인 존재지만). 그렇게 봤을 때 블랙홀처럼 고대 근동의 여러 종교를 빨아들인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웜홀을 통과하듯 그 종교적 모티프들을 탈신화화하여, 재신화화를 거쳐 화이트홀로 뱉어낸 것만 같았다. 블랙홀과 웜홀, 화이트홀이 하나로 연결되었지만(입구-통로-출구) 각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고대 근동의 종교 또한 그리스도교와 동시대에 존재하고 서로의 종교적 모티프들을 공유했지만, 결론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면, 우리가 흔히 환빠라고 말하는 집단이 숭배(?)하는환단고기류의 책들도 이런 시각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탈신화화하여 재신화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이야기도 변모하면, 단순히 위서다, 진서다~라는 이분법적 평가에서 벗어나 좀 더 생산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슬슬 끝을 내야겠다. 전체적으로 오랜만에 읽은 책이 생각 외로 유익하고 알차서 좋았으며, 성경에 대해서도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과거에는 늘삼국사기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당대인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지, 지금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보다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다.

 

좋은 책을 읽게 해주신 주원준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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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2-06-1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들렀는데 역시나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책들만 소개해 주셔서 늘 감사드려요^^

麗輝 2012-06-12 14:10   좋아요 0 | URL
marine님, 너무나 오랜만에 뵙습니다. ^^
그간 게을러서 책을 멀리했더니 이제서야 인사를 드리네요~
암튼,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화석 : 사라져버린 세계의 흔적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0
이베트 게라르 발리 지음 / 시공사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시공 디스커버리를 꺼내 들었다. (필자의 게으름이 갈수록 커가는 듯. T.T) 이 책은 지난번에 읽었던 9권『공룡,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별 5개를 준 이유(지난번에는 별 4개)는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그만큼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미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번 책에서는 공룡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그 수준 또한 개략적인 내용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이번 책에서는 '고생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관련 내용들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었으며, 내용 또한 상세했기 때문에 지난번보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책의 분량도 지난번 책에 비해 30여쪽이 더 많기도 했다).

책 표지를 펼치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동토에서 통째로 얼어붙은 매머드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치 살아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매머드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매머드가 발견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사실 이 내용은 필자도 처음 본 것이었다). 당시 매머드가 발견된 곳은 시베리아, 베레조프카 강변이었으며 그것을 발견한 라무트족 사냥꾼은 이르쿠츠크 총독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때는 1900년 8월. 이듬해 5월 과학 아카데미가 파견한 과학자들은 1만 6,000루블의 조사비를 들고 해당 조사지역까지 장장 6,000㎞를 이동했고, 9월 2일 비로소 매머드와 조우할 수 있었다(우와...정말 넓은 땅!). 9월 14일, 낙엽송 사이로 매머드 사체가 보였으며,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매머드를 떠(?) 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과학자들은 주변의 얼음을 녹이기로 결정했고, 매머드 위로 통나무집을 지었다(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참 대단했다). 얼음은 잘 녹았겠지만, 문제는 꽁꽁 얼어있던 매머드마저도 녹아버려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문제가 생겼다(당연한 결과겠지만...당시 어쩔 수 없었으니). 이후 6주에 걸쳐 과학자들은 매머드 사체를 해체했고, 10월 10일 드디어 그 각각의 덩어리들을 가죽 포대에 집어넣고 이동할 준비를 끝마쳤다. 단 하루만에 가죽 포대는 꽁꽁 얼었고, 10월 15일 빙원 위에는 1톤이 넘는 매머드의 조각난 사체를 운반하는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순간 외찌가 떠올랐다. 외찌 역시 발견 직후 매우 거칠게 다뤄져 애초의 양호한 상태에 손상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클릭). 그런데 지금 매머드에 대한 일화를 보니 이건 뭐 더 심한 훼손이 이뤄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책장을 열어 한 4~5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상당히 흡입력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필자가 잘 몰랐던 내용이기도 했고, 필자가 전공하는 고고학과 맞물려 당시 학문 수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책의 본문을 살펴봤다.

제1장은 <신화와 전설>이다. 암모나이트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어 거인의 것이라 추정되온 거대한 뼈(대부분 공룡과 매머드와 같은 이미 멸종된 대형동물들의 뼈), 용과 악령, 유니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종류의 화석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려왔다. 이러한 해석들이 현대인의 눈에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며,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려 노력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지식이 부족해서 화석의 비밀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역사 속에서 화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선학의 연구성과를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한때 필자가 이미 출간된지 오래된 학회지(20년 된 것도 있고, 더러 10년 이상 된 것도 있었다)를 모으고, 읽는 것에 대해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연구성과는 의미가 없다. 새로운 학문적 성과가 계속 나오는데 요즘 것도 아닌 그것들을 왜 보냐?' 아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럼 연구史는 왜 필요하며, 우리가 지금 연구하는 분야의 토대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후학들이 無에서 有를 창출하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예로부터 인류가 끊임없이 자신들을 둘러싼 알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고생물학의 탄생과 발전을 가져왔다고 보고 있었다. 필자 역시 그에 동의했음은 물론이고.

르네상스 시절,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해 이런저런 얼토당토않는 말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든가, 베르나르 팔리시와 같은 몇몇 선구자적인 인물들은 합리적인 접근법을 통해 화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밖에 파비오 콜로나라든가, 닐스 스텐센과 같은 학자가 조개껍질 및 물고기 화석을 현재 생물과 비교해 그 정체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특히 스텐센은 '지층은 아래쪽에 있는 것일수록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라는 지질학의 기본원리를 기술하여, 화석을 발견장소에 따라 연대순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화석의 역사를 아는 데에 있어 지질학이 빠질 수 없는 필수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의 활동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과학적 발견과 신학적 신조를 양립시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몇몇 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화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자 사람들은 점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에서 자취를 감춘 동물들은 그럼 과연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바다 밑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홍수로 인해 모든 동물이 싹 다 멸종해버렸다는 이야기들도 나왔다. 19세기의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이라든가, 지구의 기후변화설, 인위적인 종의 절멸설 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당시 사람들은『성경』에 기반한 역사를 연구했기 때문에 천지창조는 B.C 4004년에 일어났다는 얘기가 나오거나, 천치창조가 발생하고 대홍수가 나기까지 1600년이 경과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믿었었다. 이는 지금이야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생각이었다(현대인 중에서도 1600년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와중에 지구의 나이가 7만 5천살이며, 아담과 이브가 태어난 것은 6,000~8,000년 전이라는 정말 대담한(?) 이야기를 하는 뷔퐁 같은 사람도 있긴 있었다. 그리고 카를 폰 린네가 屬과 種의 개념을 확립해서 수만 개에 달하는 동식물의 이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점차 지질학,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화석에 대한 연구 역시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제3장 <과학자의 시대>가 되면 주인공으로 퀴비에가 등장한다. 그는 '대이변설'과 '종의 불변설'로 지구와 생물의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미지의 동물 사체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어째서 현존하는 동물 사체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구에 어떠한 혁명(Revolution)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로 인하여 과거의 동물이 멸종되어 현존하는 동물에게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라고 보았다. 이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구체제를 완전히 뒤엎었던 것처럼 대이변이 일어나 오랫동안 존속되어 온 동물세계를 파괴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물론 그러한 대이변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퀴비에도 답변을 못 했다. 그리고 당시에 생물이 진화한다는 식의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고). 퀴비에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원정때 약탈해온 따오기 미라를 보고 5,000년 전의 유해와 현존하는 동종의 동물 사이에 다른 점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5,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종은 변하지 않는다고 봐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퀴비에에 반대하는 생각이 나타났다. 바로 라마르크가 '생물변천설'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라마르크의 생각은 이후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에게 이어졌다. 물론 도르비니처럼 퀴비에의 '종의 불변설'에 경도된 학자도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학계는 크게 두가지 주장이 대립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윈이 등장하면서 학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진화론이 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책은 제4장 <선사시대의 제왕>으로 넘어가는데, 이 부분의 내용이 앞의 9권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이구아나돈에 대한 잘못된 사람들의 생각, 공룡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활동하는 발굴단 등등. 그렇게 책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모든 시공 디스커버리 책은 맨 뒷부분에 '기록과 증언'이라고 하여 앞의 올칼라 본문과 달리 부록식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장을 따로 마련해 두는데,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이 白眉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내용이 괜찮고 유익하다.

먼저 성군 루이와 레바논 화석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십자군원정때 이미 유럽에 알려진 물고기 화석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런 화석들이 유럽에서 유통(?)되고, 음성적으로나마 소문이 들렸다는 생각을 하니 흥미로웠다. 그밖에 당대 천재라고 불렸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지층 및 화석에 대한 생각을 소개한 것도 재밌었다. 그 중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은「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고(手稿)」의 일부분이다.

   
  조개껍질이 토양의 성질이나 하늘의 섭리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이성이 존재한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조개껍질에는 성장의 흔적을 나타내는 선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또한 크든 작든 간에 조개들은 먹이를 먹어야만 성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먹이를 찾기 위해서는 이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땅 속에서 이동을 한단 말인가.

조개껍질이 옛날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그리고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토양과 계절의 장난 때문에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나는 당신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런 힘이 작용한 것이라면 발견된 생물의 종류와 나이가 같아야 할 것이다. 종류와 나이가 각기 다른 다양한 생물들이 같은 장소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 그리고 그것이 토양의 힘 때문이라면 '화살' 또는 '뱀의 혀'라고 불리는 물고기들의 이빨과 뼈가 그 곳에 섞여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바다생물이 해변으로 밀려온 게 아니라면, 그만큼 다양한 동물의 유해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산에서 발견된 조개껍질이 별의 작용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별의 어떠한 작용이 이토록 다양한 종류의 조개껍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재밌다. ^^ 뭔가 요즘에도 다 빈치의 이러한 일갈(!)은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아마 필자랑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듯 싶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재밌는 점은 이 책의 저자인 이베트 게라르 발리가 자신이 썼던 다른 책이나 논문들(지질학 혹은 고생물학, 고고학 관련 서적들)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실었다는 점이다. 대개 이 부분에는 옛날 학자들의 고전이라든가, 옛날 이야기, 소설 등이 주로 실리는데(본문의 객관적인 사실을 방증해 줄 수 있는 보충자료의 성격이랄까?), 저자 본인의 저술을 그대로 원용하는 것이 독특했다(물론 앞의 그러한 내용들도 같이 포함되어 있긴 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이 책의 학문적 수준을 높여주는 효과를 나타냈고, 지식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특히 책 후반부에 수록된 <화석화의 과정>, <고생물학의 역할>, <돌에 남겨진 발자국>, <석탄숲>, <오모 계곡, 300만 년의 전시장>, <현대적인 화석발굴단>, <산업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화석들>, <미고생물학의 놀라운 세계>, <고생물학자의 임무와 기술> 등의 소챕터들은 상당히 유용했다(35쪽 가량의 분량인데 이는 전체 책의 무려 17%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고고학과 어떻게 보면 밀접한 연관이 있겠지만, 분명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이 더 많이 동원되는 학문이 바로 고생물학일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야 비슷한 면이 많겠지만, 연구실에서의 작업은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고. 고생물학에 대한 어려운 개설서보다는 이 책 한권으로 간단한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공 디스커버리 편집부에서 일부러 9권과 10권을 이렇게 나란히 출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짜여진 조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암튼,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책자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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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의 폭발 - 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
그레고리 코크란.헨리 하펜딩 지음, 김명주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요 근래 읽은 또 하나의 책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책 역시 바로 앞에 소개했던『무문자사회의 역사』만큼이나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쓴 2명의 저자는 그레고리 코크란과 헨리 파펜딩이다. 전자는 미국 유타대학 인류학과 부교수로서 '항공우주산업의 현장에서 레이저 및 화상정보 분석처리 연구를 해왔다'고 한다. 양자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까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을 다루는데 상당히 능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자는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 자격으로 유타대학 인류학과에 재직 중이며 현장 인류학자이자 저명한 유전학자라고 한다. 얼마전 소개했던 앨리스 로버트의『인류의 위대한 여행』에서 보여준 시각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탁월한 공로를 세웠다고 한다(아마 자연과학적인 분석 혹은 세계 고고학 · 인류학계의 입장을 살펴본다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론은 정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불어 이 책을 번역한 김명주 역시『다윈평전』,『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생명 최초의 30억년』,『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등 관련 저서를 어렷 번역한 바 있어 이 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기도 했다. 

책은 목차만 봐도 독자의 구미를 확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제 1장의 제목은 '무지와 통념이 불러일으킨 오류'이며, 제 2장은 '내 안의 네안데르탈인'이다. 제 5장의 제목은 '유전자들의 대이동-결혼에서 해적까지'이며, 제 7장의 제목은 '중세의 진화 :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어떻게 똑똑해졌는가'이다. 일단 각 장의 제목만 봐도 기존에 봤던 책들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은 보는 내내 필자가 가진 생각의 상당부분이 고정관념이며 쓸떼없는 아집이라고 꼬집어주고 있었다. 

음~일단 전체적인 책의 구성이 짤막한 챕터가 수십개 나열된 형식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을 일일히 거론했다가는 책에 있는 내용을 요약 정리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책의 내용 중 필자가 흥미롭게 봤던 부분을 거론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간략하게 제시한 뒤,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 혹은 느낌을 정리하는 식으로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아마 그렇다고 해도 적지 않은 분량이 나올 것 같지만, 일단 필자가 특히 주목해서 읽었던 부분들 위주로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저자들은 인간은 옛날보다 100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한다. 즉, 인류의 진화가 지난 1만년간 느려지거나 멈추기는 커녕 가속화되었으며, 지금껏 인류가 존재해온 600만 년 동안의 평균보다 약 100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겠다는 것이다(정말 당찬 포부를 책 첫문단, 첫줄부터 밝히고 있다!). 마치 산업혁명 이후로 사회가 기계화, 전자화, 첨단화가 되면서 그 발전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인류가 제대로 된 PC를 만들기까지 엄청나게 긴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 매일매일 신제품 PC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라. 이것만 보더라도 분명 인류는 어느 한계점을 뛰어넘은 뒤부터는 다음 한계점까지 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저자들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진화적 변화는 본래 매우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중대한 변화는 수백만 년이 걸린다고 보는 것이 통념이지만, 화석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선택이 생각보다 꽤 빠르게 일어날 수 있으며, 과거는 정체나 마찬가지(환경에 잘 적응된 집단들의 경우)인 긴 시간들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매우 급격한 변화들로 채워져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짧은 기간의 급격한 변화는 시간이 너무 짧아 화석화되는 경우가 드물다고도. 

그러면서 몇가지 사례를 제시한다(솔직히 이 내용만 보고도 아!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첫번째는 바로 늑대와 개다. 개는 약 15,000년 전에 늑대에서 가축화되었다. 그리고 최근 우리가 알고 있는 품종들이 변화한 것은 채 200년도 안 되었다고 한다(늑대와 그레이트 데인과 치와와를 한번 비교해보자. 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4~5만년 전이 아니다. 그런데 외계인이 봤을때 이 2종의 동물을 서로 같은 종으로 볼 수 있을까??). 더 극단적인 예로 러시아의 과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가 겨우 40년만에 가축화한 여우를 만들어낸 것도 제시하고 있다. 옥수수 또한 테오신트라는 야생초에서 유래했지만, 7천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겪어 현재 이 둘이 근연초라고 보기에는 너무 큰 거리감이 있다. 11,500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면서(혹은 잠시 멈추면서) 코끼리의 키는 3.6m에서 2.6m로 줄어든 것도(더 작은 음식을 먹고 더 빨리 번식하는 것이 종에게 유리했으므로) 하나의 사례였다.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 저자들은 아주 작은 변화가 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즉, 우연에 의한 변화까지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식이다. 비슷한 예로 한때 영화로 널리 알려진 <나비효과>를 꼽을 수 있겠다. 물론 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과학적으로 검증만 된다고 하면 충분히 설득력도 갖출 수가 있다. 이런 부분들은 확실히 고고학적으로는 검증이 불가능하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짧은 기간의 변화상은 골격과 같은 실물자료에 잘 반영되지 않을 뿐더러, 설사 우연히 그런 것들이 반영된 자료가 확인되었다 한들 그것을 일반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잇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자연과학적인 분석방법론이나 접근법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학계에서 이 부분에 대한 치밀한 연구나 접근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인 것 같고, 해당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지도 않는 것 같다. 아마 학계 풍토의 차이일 수도 있고, 학문 수준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암튼,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몇개 부분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자. 



1. 농경과 유전자 폭발  

저자들은 농경에 유리한 유전자가 있다고 말한다. 단, 그것이 단순하게 '역사상 농경이 빨리 시작된 사람들에게 그러한 유전자가 있으므로 농경이 빨리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끝맺고 끝나는 문제가 아님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있다. 농경은 분명 기존의 수렵채집인들에게 새로운 생활방식을 떠안겼고(새로운 식이, 새로운 질병, 새로운 사회, 장기적인 계획의 새로운 이점들), 오랫동안 수렵채집 활동에 적응해온 사람들은 농경에 잘 적응하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경은 그러한 새로운 생계를 받아들이는 개체군 크기를 엄청나게 늘림으로써 적응적인 돌연변이의 생산을 크게 늘려나갔다. 즉, 이전에 비해 새로운 문제들도 많이 생겼지만, 새로운 해법들(이 책에서 말하는 돌연변이는 다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에도 나오는 얘기로 저자들 역시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큰 지역이나 개체군은 곧 더 많은 잠재적 발명가들, 더 많은 경쟁하는 사회들, 더 많은 혁신들이 있다는 뜻이다. 잘 돌아가지 않는 사회들은 경쟁 사회들에 의해 곧바로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큰 개체군에는 단순히 이러한 사회적 변혁들뿐만 아니라 '유전적 혁신' 또한 많다는 것을(그리고 이것이 최근의 인간의 진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도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이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론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었는데,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무언가를 이 책을 보면서 채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젖흡혈귀(우유를 마셔 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주 재밌는 표현이며 또한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 얘기도 나오고, 저자들은 락타아제를 만드는 돌연변이가 결국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더 유리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얘기를 한다.  

정착생활, 그리고 농경에 필요한 가축들과의 생활은 분명 인류에게 전염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문제점을 안겨주었다. 또한 새로운 농작물과 새로운 식사 준비 방법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덜 풍부한 영양분들을 제공해주었다. 그럼에도 왜 인류는 농경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고, 농경에 적응해 왔을까? 인류는 술을 마심으로써 기본적인 전염병의 내성이 생기게끔 했으며(당연히 알콜중독에 대한 내성 또한 생겨났다), 쌀을 도정하거나 새로운 농작물을 개발함으로써 균형잡힌 식사가 가능하게끔 노력했다. 뭔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청동기시대 후기 송국리문화를 설명하는데 있어 흔히 얘기하는 것들이 수전체계다.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고, 그러한 송국리문화는 일본 열도로 전파되어 야요이시대를 열었다. 그럼 여기에서 살펴볼 것. 이러한 논농사 문화를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분명 장단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점이 있었기에 사회는 그에 따라 변화했을 것이고, 그럼 그러한 부분들이 고고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할까? 한번 살펴볼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단순히 고고자료상 이러이러한 변화가 있었으니, 당시 사회는 논농사가 발전되었다~라는 결론이 아니라 어떠한 원인과 이유로 그러한 변화들이 생겨났는지 보다 근원적인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멜서스의『인구론』(이 책 한번 읽어봐야겠다. 젠장, 아직까지 이런 책도 한번 안 읽어보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니...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을 거론하고 있다. 인구와 경제구조 등에 대한 이야기인데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또한, 엘리트의 등장이라든가 농경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구는 계속 정비례의 곡선을 그리며 확장되거나 발전되지 않았는가?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선사시대는 그 이후에 비해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던 사회였으며,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항상 적정 수준의 인구를 유지시켜왔다는 것이다(하지만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선사시대가 아주 평화로웠다고 보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문명이 발생하고, 국가가 생겨남으로써 폭력과 전쟁에 의한 인구 상실(?)은 줄어들게 된다. 단! 이제는 기근과 영양실조, 자연재해에 의한 인구 상실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엘리트가 아닌 하층민은 현상 유지 수준의 자식들을 길러낼 수 없었고, 인구는 생각한 것만큼 증가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적절한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어 필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암튼...농경에 대해서 신선한 얘기들을 한 부분들이 있어 좋았다.  

2. 유전자들의 대이동  

저자들은 칭기즈칸이라는 한 사람의 정복으로 인해 오늘날 그 유전자는 세계 각지에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그 한 사람의 행동은 세계사적으로 보면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 결과는 오늘날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은 분명 유리한 대립유전자들이 먼 거리와 지리적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러한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일반적인 지역적 결혼의 결과로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렇게 빨리 유전자를 넓은 범위까지 퍼뜨리는 것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러한 경우는 고대에도 종종 보였다. 아시리아와 사르곤 2세 등이 추진한 강제이주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 유고슬라비아나 체첸 공화국에서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와 더불어 반달족과 베르베르족에 대한 이야기도 제시하고 있다. 반달족은 기원전 120년 경 슐레지엔으로 이주했으며, 3세기 무렵에는 루마니아 서부와 헝가리까지, 그 다음에는 로마 영토 내에까지 진출했다. 이들은 5세기 무렵 프랑스를 유린했고 곧 피레네 산맥을 넘어 포루투갈과 갈리시아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곧 스페인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휘하의 벨리사리우스는 반달족을 격파했고, 반달족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유전자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각지로 퍼져나가 베르베르족에게 푸른 눈의 유전자를 남겨줬다는 것이다. 1만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푸른 눈 유전자,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푸른 눈 유전자가 북유럽의 발트해를 중심으로 모로코, 사하라 사막, 자그로스 산맥의 쿠드르족, 아프가니스탄에서 나타나는 이유를 저자들은 반달족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해적이다. 예전에 시오노 나나미의『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를 소개했던 적이 있다. 1500~1800년 무렵 회교도 해적들에 의해 노예로 사로잡힌 유럽인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때 남자 노예들은 대부분 죽도록 일했기 때문에 유전자를 남기지 못 했지만, 여자 노예들은 대개 하렘에 들어옴으로써 유전자 풀에 기여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아랍인들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잡은 노예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mtDNA를 보면 중동에 사는 아랍인들의 모계 혈통의 약 5%가 아프리카계지만, 아프리카 기원의 Y 염색체는 극히 드물다(Y 염색체는 남자가 갖고 있는 X, Y 염색체 중 하나로 아들을 통해 유전된다. 그에 반해 미토콘드리아 DNA는 여성에게만 확인되는 유전자다. 양자의 차이점 혹은 상태를 통해 분명한 유전자의 이동에 대해 밝힐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저자들은 유전자의 이동을 따라 역사적인 사실들을 추론하고 검증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신대륙과 구대륙의 만남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저자들은 생물학에 승자의 율법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 인류는 고인류를 대체했고, 반투족은 부시먼과 그밖의 아프리카 원주민을 몰아내면서 팽창했고, 투르크-몽고인은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을 차지했던 이란어를 쓰는 사람들을 몰아내면서 확장했다. 이때 혈통의 혼한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주된 경우는 '대체'였다. 흔히 말하는 '주민 교체'인 셈이다. 그럼 왜 어떤 집단은 성공했고, 어떤 집단은 실패했는가? 일반적으로 승리하는 자의 이점은 문화적인 것(무기, 전술, 정치조직, 농경방식 등)으로 많이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학습이 가능한 것들이다(예를 들어 이집트를 침략한 힉소스를 곧 이집트인들이 몰아낸 것과 같이). 그렇지만 저자들은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생물학적 능력들은 모방하거나 획득할 수 없다고 말이다(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고인류가 현대 인류의 문화적 속성들 중 일부를 모방했고, 그것이 샤텔페롱 문화에 남겨졌지만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 것처럼 말이다). 이 점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며, 필자가 아주 아주 신선하게 받아들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3.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특화된 유전자  

저자들의 주장이다. 누가 보면 뭐야 이거? 생물학적, 유전학적으로 특정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 아니야? 라고 할 수도 있다(실제 인터넷 서점의 어떤 리뷰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 분은 굉장히 불쾌했다고 한다). 필자 또한 처음에는 뭐야 이거?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돈을 잘 벌고,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유전학적으로도 그게 맞다...는 뜻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분명히 얘기한다.  

어째서 로마 제국 시절의 유대인들이 이례적으로 다른 민족에 비해 높은 지능을 가졌거나, 잘났다는 얘기는 없는데 특정 시기 이후로는 그런 증거들이 나타날까? 하고 말이다.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특정 시기 이후에 유대인에게 어떤 사회적인 억압 혹은 제약이 따랐고, 그로 인해 유대인이 똑똑해질 수 밖에 없어졌고, 그 똑똑한 유전자가 지금까지도 계속 유전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그럼 이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대체 어떤 민족들일까?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 북쪽에 살고 있는 이들은 8~9세기 무렵 역사기록에 나타난다. 그럼 그 이전은?? 그러면서 저자들은 3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는 아슈케나지 유대인 혹은 그 중의 일부가 로마 시대부터 프랑스 및 라인란트에 살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629년 프랑크 왕국의 다고베르트 왕은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면하려면 개종하거나 떠나라는 이야기를 했고, 이후 150여년동안 프랑스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둘째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같은 먼 이슬람 땅에서 기원한 유대인 상인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카롤링거 왕조가 보호해줬고, 그들은 동방의 값비싼 물품들을 유럽으로 갖고 왔다. 셋째는 가장 신빙성이 있는데 이들이 남유럽, 즉 이탈리아에서 진출했다는 것이다(그중 하나가 917년 이탈리아 루카에서 마인츠로 이주한 칼로니모스 가문이다).  

암튼, 일반적으로 유대인은 다양한 수공예와 농경에 종사했었다. 그런데 아슈케나지 유대인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럼 그들은 뭘 했나? 그들은 원거리 교역 및 고리대금업(무역과 금융)을 담당했었다. 아주 독특하게도.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금지했던 분야에 이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뛰어들었고 블루오션 부분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 박해를 받아 쫓겨나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지방에 들어가 그 나라의 근대화와 재건에 도움을 주면서 다시금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유해진 이들은 더 많은 자식을 남겼고(다른 유대인에 비해), 더 많은 유전자를 번성시켰다. 단, 그들은 다른 집단과의 결혼을 금지했고, 유대교의 배타적인 부분도 이를 가속화했기 때문에 그들의 유전자가 더 넓은 범위까지 확산되거나 다른 유전자와 섞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유대인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쪽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지역사회들을 포함하는 범위에도 유대인들은 존재한다. 다만 차이라면 그들은 이슬람 사회에 속한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슈케나지 유대인처럼 화이트칼라에만 집중적으로 종사할 수 없었다. 즉, 같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적-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었고, 곧 그것이 유전적 차이로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저자들은 주장하고 있었다.  

그럼 왜 같은 시기 서유럽의 다른 인종(아슈케나지 유대인 이외의 유럽인)들은 그렇지 못 했을까? 그들은 더 많은 유럽인과 개방적인 유전자 교환 및 혼합을 이뤄냈고(종교적으로나, 결혼에 있어서 더 개방적이었으므로) 그 유전자는 대부분이 농민이었을 다른 유럽인과 섞였다. 당연히 특수한 상황에서 유전이 계속 이뤄진 아슈케나지 유대인과는 차이가 났을 것이다. 거기다가 같은 유대인 중 이슬람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그래서 오늘날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아주 특수한 유전자 보존 및 전파에 의해 의학계와 법조계, 학계 등에서 강한 힘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마치 영화 <타임머신>에 나오는 엘로이족이 떠올랐다. 그들은 고도로 지능화된 족속으로 신체적으로 우수한 머록족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는 미래 세계의 모습이기도 했고. 인간은 그들에게 지배당하는 사냥감 정도?). 오늘날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수학과 문학 등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만, 재현 회화, 조각, 건축에서는 보통이다. 이 또한 그들의 유전자가 특화되었음을 알려주는 근거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도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줬다. 어느 특정 분야에 특화된 집단이 있고, 그들의 유전자가 지속적으로 후세에까지 전해졌다면 기존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오늘날 세계에서 탑 클래스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고대 東夷라는 단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뭐 이런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


전체적으로 상당히 재밌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짤막짤막한 소주제의 챕터들이 여럿 모여 큰 장을 이루고 있기에 상당히 지루하지 않게 많은 내용들을 머릿 속에 담을 수 있는 책이다. 더군다나 어렵게 느껴질 법도 한 내용을 그런 식으로 접할 수 있으니 더욱 더 효율적(?)으로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지만, 한번쯤 시간내서 읽을만한 책인 것 같다.  

덧글. 원서의 표지보다 번역서의 표지가 더 마음에 드는 책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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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자 사회의 역사 - 서아프리카 모시족의 사례를 중심으로 논형학술총서 7
가와다 준조 지음, 임경택 옮김 / 논형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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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고서 서평을 못 쓴 책 하나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읽은지는 한참 됐는데, 책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혼자 생각해야 할 부분도 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느라 여지껏 서평을 못 쓴 것 같다. 그런데 더 시간을 뒀다가는 책을 한번 더 읽어야 할 판이라서 지금에라도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이 책을 2번 읽었는데, 이런저런 생각할 꺼리를 많이 주긴 했다).

이 책은 일단, 국내 학계에서 쉽게 나오기 힘든 내용의 책이다. 저자인 가와다 준조는 동경대 문화인류학과 출신으로 서아프리카에 직접 가서 모시족을 중심으로 한 인류학 자료를 수집해 이 책을 썼다. 아직까지 필자는 국내 인류학자 중에서 이렇게 해외에 직접 가서 정리한 인류학 자료를 본 적이 없다(물론 필자가 접한 자료가 많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 그것도 아프리카의 자료를 접해서 그것을 '무문자사회'와 연결시켜 해석했다니. 무문자사회라는 구분 자체가 신선하기도 했고, 그런 사회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서아프리카의 인류학 자료를 정리한 것도 참신했다. 단순히 국내 학계에서 진행되지 않은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도 있지만, 일단 제목부터 필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서 19세기 제국주의 문화의 확산과 함께 문자사회의 영향력이 확대된 것은 분명 한국 고대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한국사에 있어 문자사회가 시작된 것은 언제쯤부터일까? 라는 생각과 직결될 수 있다. 경남 창원의 <다호리 유적>을 보면 기원전 1세기 혹은 기원전후한 시기에 이미 붓(그리고 붓과 함께 한자가 같이 전해졌을 가능성은 아주아주 높다)은 한반도 남부 끝단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발견된 유물이 그 정도인 걸 보면, 사라져 없어진 붓은 더 많았을 것이고 창원 다호리에 살던 당대인들의 문자 생활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 이전 고조선 혹은 위만조선 시절에도 모피교역 따위와 맞물려 한-중간 교류가 꾸준히 진행되었던 것은 사실이다(해당 글 강인욱 선생님 발표 부분 클릭). 하지만 문자가 없어도 교역이라든가, 원거리 상거래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조선 혹은 위만조선의 상거래가 반드시 한자를 동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일단, 직접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에(물론 당시 고조선-위만조선 시절의 한-중 사이에 한자를 매개로 한 상거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지만). 그렇게 봤을때 일단 한국 고대사에서 한자가 폭넓게, 일상적으로 활용된 것은 삼국시대로 봐도 무방하겠다. 그렇다면 그 이전 사회의 한국 고대사는 '문자사회'였을까? 아니면 '무문자사회'였을까? 혹은 삼국시대 초기에 한자가 폭넓게 쓰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곧 '문자사회'로 볼 수 있을까? '무문자사회'로 볼 수 있을까? 그러한 궁금증과 의문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목차만 봐도 이 책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첫 머리에
2. 비문자 사료의 일반적 성격
3. 문자 기록과 구연 전승
4. 모시족의 경우
5. 계보의 병합
6. 절대연대의 문제
7. 역사의 출발점
8. 반복되는 주제
9. 구연 전승의 정형화
10. 수장의 지위 계승
11. 역사 전승과 사회 정치조직
12. 이데올로기 - 표현으로서의 역사 전승
13. 역사 전승의 '객관성'
14. 역사 전승의 비교
15. 제도의 비교
16. 발전단계의 문제
17. '전통적' 사회라는 허상
18. 신화로서의 역사 연표로서의 역사19. 문자사회
20. 맺음말

1장과 2장부터 이미 책의 내용은 필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세계사라는 용어가 본래적 의미를 가지려면 무문자사회의 역사는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문자로 기록된 과거를 가진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역사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지, 구연 전승의 유무와 사회 구성원의 역사 의식 사이에 관련이 있는 것인지, (만일 있다면) 그러한 역사 의식의 차이가 사회구조 및 변화와 어떠한 상호작용을 가지는지 등이 세계사의 일부분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인류는 언어라는 것을 보편적으로 사용하지만, 문자라는 것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이는 저자도 얘기하고 있고 필자 또한 동의한다. 얼마전 동티모르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한글로 표현한다는 기사가 있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40765). 이처럼 언어는 있지만, 이를 표현할 문자가 없는 집단은 상당히 많다. 오히려 문자가 없는 집단이 보편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왜 인류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 문자사회를 보편적으로 보고 세계사 속에서 문자사회만을 주목하는 것일까? 저자는 2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고고학 연구에서는 연구자가 단편적인 과거의 유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자료 간의 상호관계를 해석하려고 하지만, 구연 전승의 경우에 연구자는 우선 철저히 해석되어진 것들과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하여 연구자는 파편을 맞붙여서 항아리를 복원하는 대신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해석'의 항아리를 파괴하고 그것을 다시 변경하여 과거의 파편을 하나씩 골라내고 가려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이 '해석'이라는 것이 전승을 갖고 있는 사회의 성원들에 의한 사물과 현상을 안으로부터 해석한 것이기에, 연구자는 일단 자료의 단편적인 부분들을 골라내어 정리한 후에 연구자 자신의 해석을 설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고고학과 인류학(그것도 신화와 관련한)의 방법론 차이에 대해 적절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저자는 고고학으로 밝혀내기 힘든 무문자사회에 대해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예시를 들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첫머리에 아주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 있다.




모시족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왕조를 수립했다고 보이는 남부 모시족의 텐코도고 왕의 궁정에서 필자가 역사 전승의 채록을 막 시작했던 때의 일이다. 왕의 계보는 주민들의 주요 작물인 수수의 수확 후 지내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비롯하여 중요한 제사 의식 때 정중하게 낭송된다. … 이윽고 안면이 있는 벤다(이야기꾼 혹은 악사)들이 나타나 우산 밑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큰 표주박에 소가죽을 붙인 큰 북을 양손으로 장단을 맞춰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 녹음을 시작했지만, 전주로 생각되는 부분이 너무 길어져서 낭송에 대비하여 테이프를 절약하기 위해 도중에 녹음을 중단하고 … 그렇게 40여 분 정도 되었을까?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큰 북의 연주를 끝낸 벤다는, 편안하게 큰 숨을 쉬고 땀을 닦으며 나에게 "녹음은 잘 했겠죠?"라고 말하고 "그럼~" 하며 일어나 큰북을 메고 문을 나가 버렸다. … 나이 많은 하인에게 "벤다가 언제 다시 돌아와서 계보의 낭송을 하나요?" 라고 부자연스럽게 더듬거리는 말씨로 묻자, 그는 "낭송이라면 이제 막 끝나지 않았느나?" 라고 하였다. … 큰 북의 소리만으로 역대 왕에 대한 이야기와 각각의 왕들에 대한 찬미를 표현한다는 것을 그후의 여러 기회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란 말인가. 책을 겨우 30여쪽 읽었을때 나오는 이 사례를 보고 필자는 멍~하니 생각했다. 소리만 갖고 역대 왕의 계보를 읊고, 그것이 제사에서 중요한 의식이라고? 물론 저자는 뒤이어 얘기한다. 왕이라든가 노인(그 부족의 원로 혹은 장로를 의미)들이 그 소리의 의미를 전부 100% 이해하지는 못 하지만 필요한 부분은 알고 있다고(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던 왕이 "지금 왕의 것을 연주하고 있다."라고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한다). 이처럼 아프리카에서는 북의 소리(음악)만 갖고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고 한다. 요루바족의 케투 왕은 즉위식에서 그 부족의 시조인 알라케투 대왕이 이페부터 케투에 도착할 때까지의 노정을 의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알려주기도 한단다. 이러한 음악의 형태를 띤 조상과 그 부족의 계보는 의례를 통해 그 구성원들에게 반복적으로 인지되었고, 그들의 의식 수준을 지배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이런 부분은 일단 고고학적으로 전혀 검증 혹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설령 악기가 확인된다 한들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행위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못 할 것이다. 그런 부분들의 상당수를 인류학이 보완할 수 있겠으나, 그 부분 역시 이처럼 현재의 자료를 갖고 고대 혹은 선사시대의 것들을 추정할 뿐이다. 암튼, 생각의 폭을 넓힌다거나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과거사를 접근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저자는 하나하나 모시족과 주변 부족을 조사한 인류학적 자료를 갖고 무문자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들도 있다. 전승설화 혹은 신화를 통해 그것이 생겨난 배경이나 기원지를 추정하는 것, 그 신화 속에 나오는 왕이나 영웅의 일대기(신화로 포장된)를 통해 그 민족의 기원지 혹은 이동 경로 등을 추정하는 것 등이다. 우리도 이런 방법을 통해 단군신화 혹은 삼국시대 각 국가 시조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따지고보면 별다를 것이 없다. 다만, 고대 한국사에서는 어느 시점 이후로 문자화된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것들이 역사 이전(先史) 이야기, 즉 설화나 신화, 전설 등으로 다소 다르게 구분된다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책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하나의 주제에 대해 기존에 연구된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다시 그것에 대한 의문을 품는 등 마치 正-反-合의 과정을 거쳐 어떤 결론에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 했다. 하지만 해답은 쉽게 나오지 않고,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순간, 이 책을 쓴 사람도 대단하지만 한글로 번역한 사람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이래서 번역은 제2의 집필이라고 하는 걸까? 휴우~).

하나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필자가 이를 제대로 요약 정리한 건지나 모르겠다. -.-;).





1. 모시족 여러 왕조의 대선조에 '준그라나'라는 왕이 있다.
2. 현재 오토볼타 공화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에도 준그라나 대왕은 공통의 대선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그러나 남부 모시족의 여러 전승을 채록하면서 나(저자)는 의아함이 들었다.
4. 내가 텐코도고 남부의 라루가이나 와루가이 수장이 있는 곳을 찾았을 때, 그 곳의 신하가 수장의 앞에 엎드려 '준그라나, 준그라나~'라고 하는 것을 듣고 감짝 놀랐다. 즉, 준그라나는 특정왕의 이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라루가이 와루가이 수장의 고유한 이름도 아니고, 단순히 '대수장'이라는 의미로 수장들에게 경의를 표할 때 찬미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5. 그 지역 사람들도 준그라나가 어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6. 그런데 지리적으로 라루가이 및 와루가이 사이에 끼어 있지만 계보상 거리가 먼 둘텐가나 혹은 라루가이 북쪽에 인접해 있으며 수장끼리의 계통상 연계가 깊은 텐코도고에서는 이 말이 보통명사로 쓰이지 않고, 대수장이라는 의미도 없다.
7. 또한 중부 모시의 와가두구의 역사전승에서는 준그라나가 중요하지만, 정작 모시족의 초창기 선조들이 정착했던 지역과 가까운 라루가이 및 와루가이의 계보 전승에서는 준그라나가 이야기되지 않는다(준그라나라는 말이 쓰임에도 불구하고).
8. 오히려 텐코도고에는 계보상 준그라나의 이름이 있으나 그는 텐코도고의 왕이 아니라 텐코도고 서북쪽의 모시족 거주지와 떨어진 비사족의 촌락에 둘러싸인 황야에 매장되어 있는 대수장으로 언급되고 있다. 더불어 텐코도고 계보에 있는 준그나라 왕의 업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9. 와가두구의 전승지도 모시 왕조의 창시자들이 나오는데 그는 준그라나의 아버지로 보이는 웨도라오고, 준그라나의 아들인 우브리이며 정작 준그라나는 대단히 하찮은 존재로 나온다.
10. 준그라나를 가장 자세히 소개한 구비에서도 준그라나는 극히 수동적으로 비인격적인 종족의 시조 정도로만 묘사되어 있다.
11. 맘프루시족의 오래된 도읍지로서 모시족의 발원지인 감바가를 방문했을 때 나는 이 지방의 수장에 대한 칭호에 '존고라나'라는 것이 있음을 그 지방 사람들에게 들었다. 물론 그게 특별한 지위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12. 나는 이것이 하우사어 기원의 '존고'라는 말에 맘프루시어에서 소유를 나타내는 접미어 '-라나'가 붙어져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존고'는 원래 '隊商을 위한 야간 숙영지'를 의미하며, 현재에도 하우사 상인이 정착했던 한 구역을 지칭한다. 그러나 '존고'는 맘프루시어로 '이주자가 새로 만든 취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존고라나'라고 하면 맘프루시어로 '새로운 취락을 지배하는 것' 또는 '접견이나 의례를 위한 큰 건물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여 수장과 동일한 의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현대 맘프루시어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뭐 대략 이런 식이다. 저자는 하나의 사실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기존 연구성과들을 제시하거나, 그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나열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언급한다. 이후 저자는 맘프루시어의 존고라나의 의미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련 자료를 찾고, 지방을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시 피드백이 될 수 있는 조언을 구하는 식으로 자신의 논지를 강화시킨다. 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나는가? 필자는 '단군왕검'이라는 호칭에 대해 기존 학계에서 어떤 식으로 연구되고 있는지가 퍼뜩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접근하여 해석한 것이 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이 역시 필자가 접하지 못한 자료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처럼 책을 읽는 내내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부분까지 필자가 기존에 생각치 못 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필자는 또 하나 재밌는 사실에 직면했다. 바로 '전통'이라는 용어때문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유럽 세력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영향이 침투하기 이전 흑인 아프리카 사회를 가리키는데 '전통적'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였다고 밝혔다(실제로도 그러했고). 그것은 어느 한 사회, 특히 비서양 사회를 근대화된 사회와 대치시켜 전통적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무의식 중에 '전통적=비서양적=고정적', '근대적=서양적=발전적'이라고 보는 피상적인 이원론에 빠져들 가능성을 기본적인 용어에서부터 배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순간, 머리를 한대 딱!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내용이 책의 195쪽에 나와있는데 필자는 지금껏 이런 생각을 갖고 무문자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기존의 선사시대 혹은 고대사를 바라볼때 이러한 전제조건을 정해놨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194쪽까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읽었다. -.-; 그러면서 저자는 전통적(traditionnel, elle)이라는 형용사를 가리키는 용어인 '흑인 아프리카의 전통적 사회구조', '족의 전통적 토지제도', '상아해안의 전통적 미술'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사례를 제시하였다(이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남부 모시족 독립 수장의 한 사람인 와루가이 나바는 이 지방에서 유일하게 큰 저택을 지어, 각각의 관직명을 지닌 궁정 신하가 있는 궁정 기구를 지니고, 궁정 악사의 수도 많으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수확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의례를 행하고 있다. 한편 와루가이 나바와 선조의 계보가 같은 이웃의 독립 수장 라루가이 나바는 특별히 가까운 신하도 없으며, 주거도 다른 많은 모시족의 수장들의 저택과 같은 것을 소유하지 못하고 그저 흔한 형태의 건물만 가지고 있으며, 수장으로서의 의례도 지극히 간략한 것들만 행하고 있다. … 이 두 수장에 대해 각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현재만을 관찰한다면, 와루가이 나바 쪽이 훨씬 모시족의 전통에 충실하여 '전통적' 수장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양자가 분립하기까지의 계보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 라루가이의 전승과, 분립된 이후에 매우 혼란스러워진 와루가이의 전승을 비교 검토해보면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토고에 침략한 프랑스군 지휘관의 병력 제공 명령을 당시 라루가이 나바인 시그리는 따르지 않고, 당시 와루가이 나바인 쿠도가레는 이를 따랐다. 그 결과, 프랑스는 지금까지 'chef de province(지방 수정)'의 지위를 부여했던 라루가이 나바를 1917년 와루가이 나바로 대체했다. 그 결과, 프랑스 식민지 행정당국에게 '급여'를 받게 된 와루가이의 수장은 증가된 수입으로 궁정 신하를 임명하고 모시족의 대수장에 어울리는 의례를 성대하게 행하였으며, 격식 있는 '전통적' 수장으로서 체제를 마련하고 강화하는데 고심한 듯하다. 각 궁정 신하의 직분이 명확하지 않고 그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해도 1~2대에서 단절되어 버리고, 숫자로는 모양새를 갖춘 수장의 악사들이 이야기하는 선조의 계보가 혼란스러운 것 등은 와루가이 나바의 이러한 과거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 결국 이 두 명의 모시족 수장은 식민지화 이후에 외부로부터 들어온 힘의 영향을 받아, 한 쪽은 '전통적'이 되었고, 다른 한 쪽은 '전통적'이 아니게 되었다.



오호라...그렇겠구나~그동안 전통사회 혹은 전통문화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로부터 아주 강한 문화적 혹은 정치적 충격이 가해지면, 그건 기존 사회에 아주 큰 변혁을 몰고 올 수가 있다. 순간, 낙랑군과 같은 한군현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때 조선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접근은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이에 있던 몽골(원) 간섭기때의 고려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예전부터 있는' 문화형태를 두고 '근대적'인 것과 대치시켜 '전통적 고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이는 다시 말해 고고자료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고고학적으로 토기 및 철기와 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물자료에서 변화상이 감지되면 이를 형식분류하여 상대편년하곤 한다(일반적으로). 그런데, 그러한 실물자료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갑작스런, 혹은 강제적인 사회적 변혁의 결과로 본다면 과연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사회를 다른 것으로 봐야 할 것인가? (마치 3세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은 원삼국시대, 그 이후는 삼국시대로 나눠 백제의 건국시점을 3세기대로 보는 것과 같은 시각 말이다)

저자는 레비스트로스(유명한 인류학자)의 발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문자라는 것은 신석기 문화가 문자 없이도 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지식의 축적에 공헌한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인간의 지배의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그에 의하면 다수의 사람을 하나의 정치조직으로 통합하고 그들에게 카스트나 계급 등의 지위를 매기는 것은, 문자의 출현에 부수적인 것으로 생겨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19세기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의무교육이 보급되었지만 그것은 병역의 확장이나 프롤레타리아의 형성과 하나의 짝이 되어 진행되었다고 그는 지적한다. 문맹을 없애려는 운동은 권력에 의한 시민 통제의 강화와 불가분 관계에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에도 간략한 포스팅으로 정리한 바가 있지만, 문자가 반드시 필요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클릭). 또한, 이는 '책을 밝히는(bookish)' 서적 편중의 지(知)의 세계에 빠져들기 쉬운 현대 인문 사회과학에 대한 경고가 될 수도 있겠다(지식이 많은 것과 지혜가 많은 것을 예로 들면 이해가 좀 쉬울까?).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분명히 이야기한다. 단순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문자사회'와 '무문자사회'를 상호 단절된 두 가지의 이질적인 사회로 간주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문자성과 무문자성은 서로 여러 가지 형태로 상호 침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복사, 인장, 달력, 목록, 비명 등은 분명 일반적으로 문자라고 불리지 않는 기호임에도 충분히 문자의 기능을 대행해왔다. 물론 이러한 원문자(原文字 - 문자이기는 하지만 다소 불확실한, 원삼국시대와 같은 용례로 보면 이해가 빠를 듯)가 단순 기호보다는 더 문자에 가깝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호나 원문자는 분명 문자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며 이를 단순히 시간의 축에 따라 '무문자사회 → 문자사회'라고 보지 말고 공존한 것으로 이해해야 적절할 것이다. 실제 현대 이후에도 문자사회의 어느 한 분야에서는 분명히 '무문자성'이 계속 남아있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교통표지판이라든가, 이모티콘을 생각하면 좋을 듯).

그렇게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중간에 어려운 내용이 있어 그런 부분들은 몇장씩 앞으로 돌려가며 다시 읽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2번을 읽기도 했으며, 솔직히 지금 서평을 쓰는 중간중간에도 인용할 부분을 찾아서(미리 체크해놨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기억조차 못 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보고 있지만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고 재미있다(어려운데 뭐가 재밌어!? 라고 하셔도 할말은 없다. T.T). 그리고 또 하나 좋았던 것은 책의 말미에 저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 자신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또 자신이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등을 적어놓은 부분이었다. 인류학(그 중에서도 문화인류학)은 아니지만 관련학문으로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필자에게는 주옥같은 이야기이기도 했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게 한 내용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가와다 준조의 몇마디 조언(필자는 감히 조언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을 끝으로 이만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마무리하겠다.




소위 말하는 필드워크가, 문헌연구에 의해 미리 만들어진 틀에 따른, 현지에서의 단순한 자료수집 작업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 또한 역사연구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러한 시점의 상호성으로부터 역사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과제를 제기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때때로 언급하였듯이, 역사를 보는 시점의 원근감각을 바로 고치거나 문자기록의 연구만을 중심으로 삼는 대상을 넘어선 넓은 장에, 역사를 다시 한번 자리잡게 하여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 등이다. 모두에서 밝힌 것처럼 무문자사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문자사회의 '변경'에 있었기에 기성 학문이 돌아보지 못한 것들을, 정통적인 역사의 보조 자료로 수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문화인류학이 문화 안의 무문자성에 집착하는 것은 문자성의 변방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다. 기성의 문명 안에서 확립된 너무나 '책을 밝히는' 서재적인 인문적 知의 체계를 더 넓직한 세계에 해방시키고, 기성의 사고방식과 감수성에 약간의 바람을 불어넣어 보고 싶어서이다.


나의 관심의 하나는 지배자의 혈연집단의 분절화의 과정과 정치조직의 분절적 성격이 사회계층의 분화와 분절간 상호 서열화와 어떠한 관계를 갖고, 특히 후자가 어떠한 생태학적, 역사적 조건 하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 점은 흑인 아프리카 사회에 관한 한, 국가형성론, 넓게는 정치구조의 동태론 일반에 있어서 하나의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제2차 대전 후의 학문상의 풍조 가운데 아프리카 연구 분야에서 소홀히 다루어 온 기술론, 물질문화론의 시점에서의 검토도 아울러 진행함으로써, 신진화주의의 탈역사적인 유형론이나, 조금도 진전을 보이지 않는 프로세스 · 모델론을, 별도의 측면에서 그것들을 넘어서는 전망을 여는 것도 가능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자~어떤가. 학문을 정말 사랑하고, 그를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는 학자의 심정이 절로 느껴지지 않는가.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금년도 상반기에 읽는 책 베스트 3 안에 들어갈만한 秀作으로 꼽고 싶다!

덧글. 책은 어렵지만 선사~고대사에 관심이 많고, 정치구조 및 사회변혁 등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필독 권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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