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 잃어버린 도시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
클로드 보데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평점 :
품절


시공 디스커버리 전질을 사고,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이노무 게으름). 이번 주제는 필자 개인적으로 많이 접하지 못 했던 '마야'에 대한 것이었다. 마야하면 딱 생각나는 것이, 아즈텍과 같이 중미에서 존속했던 고대 문명이라는 것, 인신공양과 희생, 거대한 피라미드를 가진 문명, 수많은 소국들이 난립하며 경쟁하던 문명...뭐 이런 것들일 것이다. 또한, 마야 문명은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에서 나름 잘 소개된 적도 있었는데, 몇권의 세계사 책에서 본 것 말고(예를 들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와 같은 책), 마야에 대한 전문 연구서는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이번에 읽은 책은 필자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먼저 이 책의 성격을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전에 소개했던 총서 2권『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와 비슷하다. 그 책에서도 이집트史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기 보다는 이집트사가 다시 세상에 어떻게 알려졌고, 근-현대를 거치면서 이집트가 어떻게 복원되고, 연구되고, 약탈당했는지 등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마야가 그 주인공이었다(개인적으로 이집트의 경우, 마야보다는 접했던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마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차라 다소 아쉬웠다). 그럼 책 얘기를 좀 해 보기로 하자.

일단,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잃어버린 도시'라...전세계적으로 쇠퇴한 이후 사라지고, 그 역사를 알려주지 못 한채 파묻혀있는 도시가 얼마나 많겠느냐만은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만큼 이런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도 또 없을 것 같다. 남들은 말타고 철기를 사용하면서, 한참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시기까지 석기를 쓰고, 수레(장난감으로는 썼지만)나 말도 사용하지 않고, 그들 고유의 전통을 지키면서 천년이 넘는 시간을 지내왔다는 것이 정말 신비하고 이상하기까지 할 정도다. 더군다나 마야의 여러 도시유적들은 각 도시국가들의 지나친 대립(전쟁과 노예확보, 인신공양, 거대한 피라미드와 신전 축조)과 각종 이상기후(가뭄, 농경 실패 등)와 맞물리면서 버려지고, 쇠퇴하고,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지 않았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대국가의 멸망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것 또한 우리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마야 문명과 외부인의 첫 만남은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콜럼버스가 최초로 아메리카에 도착해 이 곳을 서인도제도라고 굳게 믿은후 9년이 흐르고...자마이카 해안을 따라 표류하던 유럽인들은 마침 신에게 바칠 희생양이 필요하던 인디오들에게 좋은 제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죽고 딱 2사람이 살아남았는데, '게르니모 드 아길라르'는 족장에게 온갖 충성을 바쳐 노예로 살아남았고, '곤잘로 게레로'는 전사가 되어 부족 간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대장이 되었고, 원주민 여성과 결혼하여 철저히 그들과 동화되었다. 마치 동방 끝자락에 위치한 미지의 나라 조선에 와서 한문 이름도 새로 받고, 현지처를 얻어 살았던 몇몇 유럽인이 생각났다. 그렇게 보면 거리상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유럽과 미지의 세상이 만날 수 있는 한줄기 연결고리는 일찍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곧 스페인에 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뭐 이미 유명한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가 이끌고 온 원정대는 노예사냥과 황금광산을 찾기 위해 유카탄 반도에서부터 시작해 내륙으로 약탈권을 넓혀 나갔다. 그의 원정대가 귀국한 이후에는 쿠바 총독이었던 '디에코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조카 '후안 데 그리할바'에게 군함 4척과 장정 200명을 주고 황금을 찾아오라고 지시했으며, 참포톤이라는 곳에서 스페인군은 현지 인디오에게 패배를 하게 된다. 이윽고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스페인은 더 강력한 원정대를 조직해 그들을 정복하기를 열망했다. 탐욕스러운 벨라스케스 총독은 그의 충성스런 부관 '코르테스'에게 멕시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리고 1519년 2월 18일, 코르테스는 11척의 군함에 508명의 병사와 말 16필을 싣고 원정을 떠난다. 그리고 2년 뒤에 아즈텍 제국은 코르테스에게 멸망당한다(참 이런거 보면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백년간 존속하던 거대 국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 말이다). 

하지만...스페인이 유카탄 반도 전체를 차지하는 데에는 이후 20여년이라는 시간이 더 소요됐다.

1521년 8월 13일, 아즈텍의 수도는 시체와 폐허의 더미에 불과했으며, 1523년 멕시코 서부와 남부가 스페인에게 정복되었다. 1525년, 코르테스는 140명의 병사와 3,000명의 인디오 전사 및 짐꾼, 150마리에 이르는 말과 돼지 및 각종 군수품을 싣고 온두라스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무려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1546년, 스페인은 유카탄 반도 북쪽 지방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거느렸던 투툴 시우를 굴복시켰다. 그리고 1696년 이트차 호수의 가장 큰 섬에 타야살이라는 수도를 건설하고 세력을 떨치던 이트차족이 스페인에게 굴보가였다. 중앙아메리카가 스페인에 의해 급속하게 정복당하던 시기 이처럼 몇몇 도시들은 17세기 말엽까지도 저항을 계속 했다. 그동안 마야 문명에 대해서 아즈텍 문명보다 덜 중요하게(?) 취급했던 것이 사실이며, 그들의 역사에 대해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즈텍 제국이 스페인에게 굴복하면서 중앙 아메리카 지역도 자연스레 스페인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현지 주민들은 새로 들어온 외부인들을 환영하지 않았고, 그들 스스로의 삶과 전통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복과정 속에서 밀림 속에 버려졌던 마야 문명의 거대한 건축물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사려 깊은 민족지학자이자 동시에 냉정한 종교재판관이었던 '디에고 데 란다(1524~1579)'였다. 1535년 최초로 이곳에 도착한 프란체스코회의 사제들이 마야의 우상을 파괴하고, 신전을 불사르고, 원시 제전이나 희생 의식을 치르는 자들은 극형에 처하고, 원주민의 전통적인 문화를 파괴했던 것과 달리 란다는 마야 문명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만은 않았다. 그는 마야 문명과 용기, 절제, 의지, 서로 화합하는 기독교적 미덕을 보여준 원주민들을 찬사했으며, 그를 선진문명의 창조자로 인식하였다(영화 <콜럼버스> 등을 보면 당시 스페인인의 악랄한 모습이 잘 묘사되는데, 그래서인지 란다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의외였다). 하지만 란다가 둘러본 버려진 도시 유적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것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유럽인에 의한 마야 문명 탐험기가 시작된 것이다.

1746년, '안토니오 데 솔리스' 신부는 형제들과 그들의 아내, 여러 명의 조카를 이끌고 팔렌케의 산토도밍고에 도착해 마야의 환상적인 석조 건축물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솔리스 신부는 '라몬 오르도네스'에게 팔렌케의 유적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는 과테말라 총독이었던 '돈 호세 에스타체리아'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리고 총독은 1784년 지방 관리였던 '호세 안토니오 칼데론'을 부랴부랴 팔렌케에 급파한다. 그리고 행정관리였던 그는 거기에서 18개의 궁전과 22개의 장대한 건축물과 168채의 가옥이 포함된 220개에 달하는 건물의 목록을 기록한 보고서를 작성한다(놀랍지 않은가? 18개의 궁전과 168채의 가옥이라니...수백명의 주민이 거주했던 거대한 도시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자 이듬해 총독은 건축가인 '안토니오 베르나스코니'를 다시 팔렌케로 파견한다. 마치 일제강점기 당시 건축가와 화가로 구성된 전문 현지조사팀이 한반도 각지에서 연구활동을 벌인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작성된 연구보고서가 당시 세계적으로도 수준급이었던만큼, 이 무렵 스페인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 역시 이후 마야 문명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중앙 아메리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일단 스페인 왕 샤를 3세가 중앙아메리카의 유적과 유물을 보고 싶어했고, 베르나스코니가 죽고 난 다음 새로 과테말라 총독이 된 '안토니오 델 리오' 대위는 조직적으로 유물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델 리오는 '이런 우수한 문명을 미개한 현지 원주민들의 선조가 창조해 냈을리 없다~이는 고대 로마인이 우연히 이 곳에 도착해 전수해 준 것이다.'와 같은 제국주의 유럽인들이 늘 언급하는 과대전파론적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후 새로운 스페인 왕이 된 샤를 4세의 명을 받고 '기예르모 뒤페' 대위가 멕시코를 방문한다. 그는 1805~1807년 사이 3차례에 걸쳐 고고학적 탐사를 실시했고, 그때 동행한 멕시코 출신 삽화가 '루시아노 카스타녜다'는 각지에서 훌륭한 삽화들을 그려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다. 그는 이전까지 작성된 삽화에 비해 훨씬 우수한 작품들을 남겼지만, 아직까지도 삽화 곳곳에는 화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흔적이 역력했다. 즉, 19세기 초만 해도 마야 문명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았단 뜻이다. 이후 멕시코 일대의 유적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게 되었고, 1828년 프랑스의 '앙리 바라데르'가 뒤페와 카스타녜다의 자료를 접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윽고 멕시코 일대의 유적에 대한 각종 저서가 출간되면서 당시까지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된 이집트와 인도의 고대문명만큼이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봤을때 여러 학자들의 논문에서 근거자료로 활용된 자료들을 작성한 뒤페는 당시까지 중미 고대 문명을 연구한 사람 중 가장 분별력이 높고, 학구적 열망이 높았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1827년 중앙아메리카 연방에서 일하던 '후안 갈린도'는 코판에서 한달 넘게 머물면서 각지의 건조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과 스케치를 남기게 되었다. 그의 연구성과는 당시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파리 지리학회에도 여러번 소개될 정도였으며, 그는 중앙 아메리카 각지의 보고서와 함께 지도까지 작성했다. 하지만 마야 발견의 위대한 예술가이자 최후의 위대한 탐험가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장 프레데릭 막시밀리안 드 발덱' 백작이었다. 100살이 넘은 나이에도 70대의 모습을 유지한 그는 정열적인 탐험가로 세상 모진 풍파를 다 겪은 인물이었던 그는 경력도 화려했다(물론 일부 뻥도 좀 포함되었을 듯). 그는 희망봉을 탐험했으며, 42차례나 혁명운동에 참가했고, 프랑스의 이탈리아 원정에 참가했는가 하면, 사략선을 타고 인도양에서 해적질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19세기 전반부에 크게 활동했으며, 마야 문명과 힌두, 헤브루, 그리스, 이집트 문명과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멕시코에서 무려 11년을 보낸 그가 남긴 유카탄 반도의 아름다운 삽화들은 이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19세기 초중반이 되면 이제 마야 문명은 낭만주의 예술가나 탐험가가 아닌 진정한 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존 스테판스'는 이미『이집트, 아라비아, 페트레아와 성지 여행기』,『그리스, 터키, 러시아, 폴란드 여행기』를 써서 유명했는데, 어느날 발덱 백작이 쓴『유카탄 지역의 진기한 여행』의 복사본을 발견하고 3번째 책을 기획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런던에서 만난 젊은 건축가 '프레드릭 캐서우드'와 함께 중앙 아메리카로 떠난다. 그 둘의 결실은 1841년『중앙아메리카, 치아파스, 유카탄 여행기』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 고고학적 서술은 1/3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험담으로 가득했다(어쨌든 책은 대성공이었다). 당시 캐서우드의 예술적 정확성은 스테판스의 엄격한 서술방식에 잘 부합하면서 당대의 새로운 기준을 설정했지만, 여전히 삽화에 있어 어느 정도의 상상력은 가미가 되었다. 암튼, 그들이 1842년에 출간한 책은 무려 44곳의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인 내용과 삽화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의 책은 19세기 내내 매년 재판을 찍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그만큼 스테판스가 마야 고고학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시각으로 넘어간다. 지금껏 마야의 도시 유적(건축물이라든가, 도시 그 자체라든가) 혹은 마야인들의 문화와 풍습이 주된 관심사로서 연구되었다면 이제는 마야의 고문서가 주인공이다. 마야 문헌은 크게 세 종류인데, 마야의 상형문자로 쓰인 필사본과 스페인 정복 이후 토착민이 쓴 것을 라틴 문자로 번역한 것, 스페인 정복자들과 사제들 혹은 관리들이 쓴 연대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중 주목되는 것이 바로 첫번째 정복 이전 마야인이 남긴 그들 고유의 문자기록들이었다. 현재 마야인의 기록은 3개의 사본만이 남아 있는데(4번째 사본이 최근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첫번째는 1739년 드레스덴 왕립 색슨 도서관장이었던 요한 괴체가 빈을 여행하는 동안 구한 '드레스덴 고문서 사본'과 1815년 옥스퍼드 대학에 재학 중이던 에드워드 킹, 즉 젊은 킹스버로 경이 수집 및 재정리한 '킹스보러판'이다. 두번째는 1859년 동양학과 아메리카학을 연구하던 젊은 연구자였던 프랑스의 레옹 드 로스니가 파리 국립도서관 휴지통에서 발견한 '페레시아누스 사본' 혹은 '파리 사본'이며, 세번째가 바로 브라쇠르 드 부르부르 신부가 어렵사리 찾아낸 '치말포포카 고문서'였다. 특히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인디오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언어와 역사, 문화에 대한 많은 책을 발간하였다. 여기에서 내용은 다소 뒤에 나오는 부분이지만, 고문서에 대한 연구는 이후 마야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각종 기록과 삽화, 고문서 등이 연구되면서 마야 문명에 대한 전모가 하나둘씩 밝혀지던 그때 새로운 발명품은 마야 역사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불러 일으켰다. 그건 바로 1839년 8월 은판 사진술이 출현한 것이었다. 이미 앞서 언급한 스테판스와 캐서우드도 사진기를 동원한 적이 있지만, 흡족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삽화로 대체하였고 초보적인 사진술은 환영받지 못 했다. 하지만 스테판스의 책을 읽고 감명받은 '데지레 샤르나이'는 1858년 멕시코로 떠나 47장의 사진과 사진 석판 2본을 첨가한 커다랗고 값비싼 사진집을 작성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2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진가이자 고고학자로 활동했던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은 사진술 말고 하나가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주형을 뜨는 것이었다. 샤르나이는 영국의 젊은 신사 '알프레드 모슬레이(그 역시 스테판스의 저작을 보고 이 일에 뛰어들었으니, 그가 남긴 업적이 어느 정도였는지 재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의 후원을 받아 각지에서 건축물의 주형을 뜰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주형을 뜬다는 것은 그렇게 익숙치가 않았다. 일제강점기때에도 유물이나 건축물을 직접 반출해가는 경우는 있어도 주형을 뜨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이는 아마도 우리 고대문화에 있어 부조나 조각 등을 많이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암튼 당시 유럽에서는 이 방법이 크게 유행한 것 같다.

이윽고 1884년 '테오베르트 말러'에 의해 치아파스와 우수마신타 계곡, 페텐에 산재한 소규모 유적들과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유적들(피에드라스 네드라스와 나란호와 같은)이 조사되는가 하면, 이들 연구성과가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는 등 마야에 대한 연구는 갈수록 활발해졌고, 그렇게 시간은 20세기 초반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남파크의 화려한 벽화유적이 발견된 것은 1946년이었다. 사진작가 '질리 하르'는 지금까지 아무도 확인하지 못 했던 새로운 유적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학계의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왜나하면 벽화의 내용은 지금까지 마야 문명에 대한 인식을 100% 뒤집어놓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잔인한 고문장면과 참수형, 희생의식, 전쟁과 노예사냥 등 폭력적이면서도 원시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마야인을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높은 문명인이라고 언급하길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루스'는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비취로 만든 화려한 부장품들이 파묻힌 티갈의 분묘유적 등이 발견되면서 마야 문명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덧붙여 마야의 상형문자에 대한 해석 및 연구도 급진전을 이루게 되었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잘못 알고 있던 마야인에 대해 이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조금씩 하게 된 것이다. 

이상으로 책에 대한 소개는 마치도록 하겠다. 필자가 전체적으로 시기별로 마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사람들을 주욱 나열했는데, 이는 일단 필자 스스로가 마야 문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특히 마야史보다는 마야 문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 硏究史가 흥미롭기에 좀 주절주절 떠벌린 것이 있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의 업적(업적이 아닌 것들도 더러 있지만)이 정말 200년 남짓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것도 재밌었다. 더 나아가, 그 200년간의 업적은 최근 수십년동안 얻은 업적에 비한다면 아주 작은 것들에 불과했으며, 인류는 비로소 최근에 와서야 제대로 마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마야인이 본능적이며, 폭력적이며, 오만한 민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불과 60여년 전이라니. 

그리고 책 뒷면에는 늘 그렇듯이 원서로만 접할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의 단편이나마 소개되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스테판스나 갈린도의 보고서 혹은 책의 내용 일부, 레옹 드 로스니의 상형문자 연구성과, 그리고 마야의 20진법 및 그들의 상형문자를 이해하는 최근의 연구성과와『포폴 부』라는 현전하는 마야-키셰족의 경전에 나오는 그들의 신화 등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당시 유럽인들이 그린 여러 삽화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고대 이집트를 묘사한 삽화도 많지만 이 책에서는 특히 삽화의 변천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즉, 애초의 삽화와 지금의 삽화, 마치 3D로 복원한 듯한 선명한 최근의 모습까지를 비교하고 있으며 각 삽화를 남긴 사람들의 잘잘못까지 언급하고 있었다(예를 들면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다든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수준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 등). 또한 이집트의 상형문자와는 또 다른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마야의 상형문자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위해 삽화가 다수 삽입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거기다가 내용 중후반부에 사진술이 발견되면서 마야 문명 연구에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내용 기술과도 어느 정도 잘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마야 유적지를 찍은 흑백사진 몇장과 최근의 컬러사진 몇 장이 전부이고, 대부분은 삽화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어디 인터넷서점 서평을 보니 이 점을 단점으로 꼽던데, 필자는 오히려 색다르고 책의 구성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점은 그만큼 오늘날도 마야에 대한 최신의 연구성과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우리가 마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과도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마지막 바이킹 관련 영화를 소개하도록 하겠다(따지고 보면 바이킹 관련 영화가 참 적다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이방인'이라는 의미인데, 내용은 다소 식상하다. 앞서 <패쓰파인더>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도 전체적인 줄기는 이와 비슷하다. 패쓰파인더에서 주인공이 인디언이고, 외부에서 바이킹족이 쳐들어왔다면 이 영화에서는 바이킹족이 주인공이고 외계인이 쳐들어오는 스토리다. 잉? 왠 외계인?? 앞서 필자가 <드래곤 길들이기>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바이킹에 대한 다소 환상적이면서도 뭔가 심오한 이미지가 판타지적인 영화를 내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 바 있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바이킹족이 가진 야만성(?) 혹은 와일드함, 거칠고 강인한 전사적 이미지가 외계인이라는 조합과 어울려 이 영화를 탄생시킨 것 같다. 또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언더월드 1 : 라이칸의 반란>을 만든 감독인데 개인적으로 그 영화를 좋아하기도 해서(딱 그 영화라기보다 그 시리즈물 전체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이 영화를 봤다.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음침하고 어두워서 좋다(?). 그리고 스토리 또한 B급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역시 시대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배경은 노르웨이의 어느 바이킹족 마을이다. 우주선 1척이 불시착하고 물 속에서 우주복을 입은 외계인 2명이 나온다. 1명은 이미 죽은 상태였지만 나머지 1명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1명은 누군가에게 잡혀가는데, 그들이 바로 바이킹족이었다. 처음에 이 '아웃랜더'를 못 믿은 바이킹족은 얘를 잡아 가두고 족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당시 바이킹족에는 두 세력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바이킹족의 차기 족장이 될 울프릭이 속한 마을 주변의 취락 하나가 박살이 난다. 울프릭은 상대방 세력이 공격한 것으로 판단했고, 그 자리에 있던 외계인 카이난을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범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무어웬이라고 불리는 외계 괴물이었다.

거기서 카이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카이난이 속한 집단은 살만한 별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별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 별의 원주인이 바로 덩치 큰 사자같이 생긴 무어웬들이 사는 동네였던 것이다. 그리고 압도적인 화력을 지닌 카이난 집단은 무어웬을 싸그리 죽여버리고 그 별을 청소한 다음,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게끔 개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로 인해 카이난은 지구로 불시착하게 됐고, 무어웬 한마리가 지구까지 따라오게 된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테란족의 배틀 크루저같은 무기로 싸그리 죽였던 녀석들인만큼 무어웬 한마리가 지닌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서로 대립하던 두 바이킹족 마을은 힘을 합치게 되고, 카이난 역시 여기에 합세해 무어웬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무어웬의 근거지까지 쳐들어가게 되고, 그 놈의 새끼까지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 일행은 무어웬을 해치우는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차기 족장이었던 울프릭은 전사하고, 차기 대권(?)을 카이난에게 물려주고, 카이난은 호수 속에 불시착한 우주선 안에 갇혀 죽은 아내를 떠나 프레야라는 아가씨와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해피엔딩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일단 이 정도이며, 액션씬이나 CG 수준도 상당히 수준급이다. 무어웬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세밀하며, 움직임이나 전체적인 화면 구도 자체가 굉장히 안정적이어서 '오~의외네~'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블로거분들의 글을 보니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 경향이 많았다고 하시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무난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외계인이 등장한 것 자체를 뭐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암튼, 외부 세력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소재와의 조합 자체가 일단 신선했다고 본다. 또한, 처음에 사이가 좋지 않다가 점점 대립 구도를 없애고 하나로 힘을 합치는 과정도 그닥 나쁘지 않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특히나 액션 중심의 오락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 고증에 상당히 신경을 쓴 부분들이 있어 좋았다.

먼저 바이킹족과 관련된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것들이 있다. 그건 바로 거대한 목조건물로 이뤄진 연회장과 그 안에서 뷔페식으로 벌어지는 활기차고 왁자지껄한 연회다. <베오울프>의 첫 장면을 장식한 것도 이것이며,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주인공 히컵과 그 친구들의 심리 묘사가 주로 이뤄지는 곳 또한 연회장에서다. 여기에서도 그러한 장면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연회장에서 울프릭은 카이난에게 게임을 제안하고 그 게임과 연회를 통해서 카이난과 바이킹족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어깨 위에 방패를 올리고 그 위에 한명이 올라가 빨리 걷거나 뛰면서 그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게임인데, 바이킹족 중 최고라고 하는 울프릭 못지 않게 카이난이 이를 잘 수행함으로써 양측은 더 긴밀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게임에 착안한 카이난은 무어웬을 잡기 위한 함정을 팔때 이를 응용하기도 한다. 즉, 바이킹 특유의 문화적 현상을 영화 중간중간에 잘 집어넣어 스토리 전개에 무난하게 써먹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이킹 족장의 장례식장에 대한 묘사다. <베오울프>에 대한 리뷰에서는 이 얘기를 딱히 콕 짚어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베오울프> 마지막 장면에서도 화려하게 불타는 왕의 무덤배에 대한 묘사가 멋있었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왕의 시신과 각종 금은보화를 실은 배가 불덩이가 떨어지는 바닷가의 계곡부를 지나면서 불타 점점 가라앉는 장면이었는데, 여기에서는 울프릭의 시신이 담긴 배에 카이난이 불화살을 날려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는 바이킹족의 배로 된 무덤들이 발견되면서 우리가 바이킹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고고자료가 아니었다면 문헌기록이 부족한 바이킹족의 상황을 아는데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리처드 루드글리의『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바이킹족의 삶은 고도로 조직된 제국적 시스템이 없었을 뿐, 상당히 수준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이킹족의 독특한 장례행위는 바이킹에 대한 또 하나의 문화상을 알려주는 좋은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바이킹과 관련된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안 나오면 아쉬울 정도다.

또한 무어웬을 잡기 위한 함정을 파는데, 바이킹 남자들이 나무삽을 갖고 땅을 파는 장면이 나왔다. '오홋!' 고증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감독이었다면 분명 철삽을 썼을텐데 별거 아닌 부분에 신경을 썼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밖에 바이킹족 마을을 공중에서 한바퀴 돌면서 보여주는 화면이 있었는데, 건물의 형태나 취락의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신경을 썼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바이킹족들이 쓰는 무기(창이나 도끼, 활 등) 역시도 괜찮았다. 다만, 중간에 카이난이 무어웬을 벨 수 있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호수 속에 가라앉은 우주선 잔해를 갖다가 무기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렇게 단단한 녀석이 풀무질 몇번에 담금질해서 강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뭐 전반적으로 무리없이 스토리가 전개됐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을 듯 싶다.

이상이다. 지금껏 총 5편의 영화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솔직히 이 리뷰들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영화였다. 상당히 독특한 소재에 기대한 것 이상(기대를 워낙 많이 안 하긴 했지만)의 CG와 액션씬, 스토리 라인 등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단순한 액션영화로 끝나지 않을만큼 고증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괜찮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앞으로 바이킹 관련된 영화가 얼마나 많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어떤 소재와 조합된 것이 나올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8회 골든글로브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2011)

23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후보(2010)

6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PERSOL 3-D상 수상(2010)

 
대단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 아마 작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애니메이션 하면 '디즈니!' 대신에 '드림웍스!'가 바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슈렉> 시리즈와 <쿵푸팬더>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드림웍스가 새로운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 역시 드림웍스에서 야심차게 준비한만큼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족 단위로 많이 가거나, 아이들이 즐겨 봤던 작품일텐데 어른들이 보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3D로 구현된 화면은 정말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이킹 족장의 아들 히컵과 그의 애마(?) 투슬리스(이가 없다고 해서 주인공이 붙여준 이름이다)다. 배경은 바이킹의 마을이며, 시기는 당연히 모른다. 바이킹과 드래곤이 공존하는 동네에서 바이킹들은 정기적으로 가축을 약탈해가는 드래곤들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전혀 지루하거나 진지하지도 않는다. 바이킹들에게 있어 드래곤과의 사투는 늘상 있는 일이며, 그런 드래곤과의 대결에서 두각을 드러내야만 진정한 바이킹으로서 인정을 받는데 도입부부터 이야기는 흥미롭게 흘러간다. 주인공 히컵은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을 뿐, 체력이나 전투력(?)이 월등히 낮다. 그런데 우연히 마을로 쳐들어온 드래곤들을 향해 자기가 개발한 거대한 투창기를 쏘게 됐고, 하필이면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드래곤(이름이 밤의 안개였나? 이름 까먹었다)이 여기에 맞는다. 

다음날 드래곤을 발견한 주인공. 그런데 다른 바이킹의 생각과 달리 가장 빠르고 흉폭하다고 알려진 드래곤은 사실 굉장히 작고 귀여운 모습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쏜 투창기에 꼬리 날개를 다친 드래곤은 하늘을 날지 못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인공 날개를 달아주고, 안장을 얹어서 드래곤을 타고 다니기 시작한다. 드래곤에게 먹이도 주고, 투슬리스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드래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 드래곤을 적이 아닌 친구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다른 바이킹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서, 투슬리스 또한 주인공이 특별한 것을 알고 친하게 지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서 주인공의 삶도 크게 달라진다. 예전에는 드래곤은 커녕 마을에서 제대로 하는 일도 없었던 주인공이 드래곤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게 되고, 결국에는 마을에서 제일 용감한 전사로 뽑히기까지 한다.

항상 걱정이던 아들이 이제는 아주아주 듬직한 아들로 바뀌자 아버지(바이킹족 족장)는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내 아들이 드래곤과 친하다는 것을 안 그의 아버지는 투슬리스를 이용해서 드래곤 소굴을 일망타진하려고 한다. 그렇게 대함대를 이끌고 떠난 바이킹들. 그래서 어떤 외딴 섬으로 다가갔는데, 세상에나. 거기에는 엄청나게 큰 드래곤 보스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드래곤들이 바이킹 마을에서 끊임없이 가축들을 납치해 갔던 것도 모두 이 드래곤 보스를 먹이기 위해서였고, 그것마저 부족한 이 녀석은 음식을 날라주던 드래곤들까지 잡아먹는 흉폭한 녀석이었다. 바이킹족은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녀석때문에 얼어붙었고, 그때 히컵과 투슬리스는 거대한 드래곤을 상대로 훌륭하게 싸워 결국 이겨버린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마지막에 나온다. 끝판 왕과 싸워 이기지만 거대한 드래곤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염 속으로 히컵이 떨어지게 되고 투슬리스는 그런 히컵을 구하기 위해 불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히컵의 아버지가 뛰어가고, 투슬리스의 날개 사이에서 목숨을 부지한 아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아버지의 표정이 바뀐다. 그리고 히컵은 집에 돌아왔고 잠에서 깼는데, 이게 왠 일. 다리 한쪽이 없는게 아닌가. 투슬리스처럼 주인공도 똑같이 불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의족을 달고 투슬리스에게 의지한 채 주인공은 집 밖으로 나서고, 집 밖에서는 드래곤들과 바이킹족이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뭐랄까~마지막 반전이랄까? 주인공도 불구로 만들면서 인간과 드래곤의 교감을 극대화시킨 것이 아주 인상깊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이 영화의 원작은 책이라고 한다.  
영국인 작가 크레시다 코엘이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로 2003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국내에도 번역판이 있으니 나중에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또한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좋은 것들이 많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OST도 한번쯤 들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용(드래곤)이 등장하고,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가 처음에는 안 좋았다가 점점 좋아지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두고 어떤 이는 이 영화가 '안티 기독교 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애까사쩨님의 '행복한 진화론적 무신론자'라는 다음 블로그를 가 보니 이 영화를 두고 '세련된 안티 기독교 영화' (http://blog.daum.net/ekasacce/152)로 소개하고 있어 조금 독특했다. 뭐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서구 사회에서 용은 사탄이고 악마라서 절대로 인간과 양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에도 바이킹과 용들은 대립하지만 결국 화해를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는 안티 기독교 영화라는 것이다. 흐음.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 하나에 너무 많은 사상을 주입시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영화를 딱 보면서 든 생각은 '바이킹'이라는 존재가 상당히 미지의 존재이면서도 다소 국가체를 형성하지 못 하고 와일드하게 살아가는 그런 이미지가 강하구나~라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도시 국가를 이루고 한때 제국을 지향했던 그리스인들과 드래곤이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 어울릴까? 오히려 그리스하면 세련된 느낌의 신과 더 어울리지, 이런 괴수 혹은 드래곤과는 많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럼 로마인과 드래곤? 에이...거기다가 드래곤과 거칠게 싸워가면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킨다는 설정 또한 바이킹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도와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킹과 드래곤이라는 소재는 아주 적절하게 잘 조화되는 것 같고, 그 결과는 영화의 큰 성공과 직결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실제 영화 평가도 어마어마하게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몇년 전에 후배가 생일 선물로 사줬던 건데 늘 중간중간 필요한 부분만 보고 말았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책이다. 페르시아 전쟁?? 조금 의아해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이라면 뭘 말하는 거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책 표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표지에는 그리스군이 쓰는 투구가 그려져 있어 이 책이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에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 옆에 <코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 그리스군의 투구와 묘한 밸런스를 맞추고 있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유명한 전투는 알려진 것들이 몇몇 있다.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등.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이들 여러 개의 전투를 하나의 '문명대전'(그리스 vs 페르시아)으로 규명하여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이는 마치 고-수, 고-당 전쟁에서 주목되는 몇몇 전투들, 예를 들면 살수대첩이나 안시성 전투 등을 주목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를 하나의 문명대전으로 인식한 김용만의『고구려의 발견』,『새로 쓰는 연개소문전』과 같은 서술방식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당시 시대사를 通史적으로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페르시아 전쟁이 세계사적으로 아주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이에 대해 나온 책이 별로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피터 그린(Peter Green)이 30년 전에 쓴『살라미스 해전이 일어난 해(The Year of Salamis)』가 일반독자를 상대로 출간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면서 이는 상당히 놀라운 결과라고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솔직히 이 책을 필자는 읽어보지 못 했다(우리나라에 번역작이 나왔나 해서 검색해 봤는데 적어도 '살라미스'로 검색했을 때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4년 전에 배리 스트라우스의『살라미스 해전』을 읽어본 것이 전부일 뿐인데, 솔직히 인터넷 서점에 검색해봐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다룬 작품은 정말 많지 않았다. 배리 스트라우스의 작품 말고 굳이 하나를 더 꼽으라면 프랭크 밀러가 그린 만화『300』정도랄까? ^^; 저자는 이런 사태가 벌어진 이유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41~43쪽 부분).

- 페르시아 전쟁이 지닌 그 모든 중요성, 스케일, 극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페르시아 전쟁이 디테일한 재구성이 가능한 역사상 최초의 전쟁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헤로도토스가 그 전쟁의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기로 유명한 저 살라미스 해전도, 스파르타 초기 역사와 비교하면 사료가 많은 축에 속한다. … 페르시아 역사는 실제의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볼 만한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 페르시아인들과 그들 제국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저작물에 의존해야 한다. 게다가 그리스인들, 다시 말해 페르시아 제국 군대의 이런저런 침공, 점령, 약탈을 당해본 사람들이 쓴 것이 대부분인 이들 저작물은 페르시아의 특성과 업적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호기심 많고 열린 마음을 가졌던 헤로도토스만이 예외가 있다는 것은 곧 규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유일한 인물이었다. -

어디서 많이 본 문구같다. 그렇다. 이는 한국사를 논할때도 종종 나오는 말이다.『삼국사기』나『삼국유사』가 우리가 가진 고대사 기록의 거의 대부분인 상태에서 우리는 가까운 일본 혹은 중국측 사료(주로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식민사학이라는 된서리를 맡기도 했고, 동북공정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 고대사는 조금씩 고쳐지고, 만들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그리스도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더 심한 것은 바로 페르시아라고 한다. 저 유명한 전쟁을 치룬 양자임에도 양자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막연하게, 대강만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자체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러한 정확한 역사 기록의 부재는 초기 역사를 동화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말하면서,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3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 그리스인들의 편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페르시아를 불가사의하게 세계를 정복하기는 했지만 나약한 겁쟁이였던 것으로 묘사(이건 앞서 언급한 만화 300이나 영화 300에서 잘 드러난 것 같다).

2. 그리스인들이 쓴 글을 죄다 인종주의, 유럽중심주의, 쓰레기통에 쳐넣어야 할 생각범죄(Thought crimes)의 기록으로 치부하는 방법

3. 설사 왜곡되었더라도 그리스가 페르시아인들의 삶과 그들의 세계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내용을 규명해보는 방법

당연히 3번째 방법이 가장 생산적이며 효율적이다. 실제 페르시아에 대한 발굴조사가 많이 진행되고, 국내에서도 특별전(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특별전) 등을 통해 사람들이 페르시아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페르시아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저자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책의 시-공간적 배경을 크게 확장시켰다. 즉, 그리스와 페르시아만 딱!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헤로도토스가 밟은 길을 따라 페르시아 전쟁에 관련된 모든 세계, 즉 당시 세계의 전부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지역에 대해 하나의 파노라마를 그려보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아시리아부터 언급해서 페르시아, 바빌론 등 메소포타미아 혹은 쉽게 중동이라고 말하는 지역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언급한 뒤 비로소 스파르타와 아테네로 넘어간다(마케도니아는 책 뒷면에 쬐까 나오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페르시아 간의 본격적인 전쟁은 책의 중간쯤 가야만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김용만이 그의 저서『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에서도 비슷하게 취했던 방식인데, 익숙하기도 했고 그 방법이 개인적으로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 역시 상당히 재밌는 내용을 담고 있겠구나~하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목차를 가볍게 살펴보면 앞으로 이 책이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1장 호라산 하이웨이
2장 바빌론
3장 스파르타
4장 아테네
5장 페르시아 대왕의 수염을 불사르며
6장 짙어가는 전운
7장 만에서
8장 네메시스

1장에서 저자는 50쪽 이상을 할애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말미에는 페르시아를 건국한 키루스 대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는데, 예전에『페르시아의 태양 키루스 2세』라는 책을 한번 본 적이 있어 쉽게 와 닿았다. 2장에서는 키루스 이후 페르시아의 정치상황을 보여주면서,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가 잘 나타나고 있었다. 즉, 전반의 150여 쪽에 가까운 분량은 페르시아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었다.『살라미스 해전』에서도 페르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한 것은 아니었다(미리 말하지만 이 책이 거시적인 개설서라면『살라미스 해전』은 아주 미시적인 분야를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권의 책을 다 읽으면 당시 그리스-페르시아 간에 벌어진 전쟁과 전투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역사에 대해서는『페르시아 문화』등의 책을 통해서도 가볍게 접한 적이 있었지만 저자가 서술한 페르시아사는 아주 간단명료하면서도 짜임새있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키루스 이후 다리우스가 집권하게 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예전에 장-노엘 로베르의『로마에서 중국까지』를 읽으면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로마 역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에 놀랐던 적이 있다. 로마는 문명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해 왔으며, 그러한 지배범위는 점점 확대되어야만 하고, 당연히 역사는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어떠한 당위성, 그런 것들이 로마에게 있었다는 것인데 동양 뿐만 아니라 서양도 그랬구나~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었다. 로마의 경우에는 그러한 제국의 의지가 아우구스투스 시대가 지나면서 사그라들었다고 한다(중국 역대 황제들이 한무제병에 걸린 것에 비교하면 이 부분 역시 흥미롭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경우에도 로마와 비슷한 면모가 보였다. 키루스와 캄비세스로 이어지는 왕계와 달리, 지방 군벌로서 페르시아의 왕위를 찬탈한 다리우스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즉위을 입증할만한 역사적 전공이 필요했고, 정당성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아후라 마즈다로 대표되는 배화교의 선과 악으로 이 세상을 二分하는 시각과 맞물리게 되었다. 즉, 페르시아의 대왕, 왕 중의 왕은 곧 선을 대표하는 신의 대리자로서 악을 없애고, 교화시켜야만 한다는 강한 당위성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악은 곧 페르시아의 서방 변두리에서 깔짝대는 그리스라는 세력들로 지목되었고(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악의 축, 미국과 테러 등을 언급했는데 당시 다리우스의 심정 또한 별반 다를 바는 없었을 것 같다), 곧 페르시아는 그것들을 짓밟을 준비를 하게 된다.

그렇게 긴장감 가득 안고 저자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로 건너간다. 스파르타라고 하는 독특한 군국주의에 물든 패권국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들은 왜 다른 그리스인들과 다른 사람을 살았는지가 서술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것은 스파르타 소년들이 12살이 되면 합법적으로 남색가들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사실인데, 그것을 통해 그의 보호자가 그 소년을 출세시켜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즉, 이런 식으로 해서 엘리트는 계속 엘리트를 생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적이고 은밀한, 개인적인 부분까지 모두 국가가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지녔던 나라 스파르타.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연장자를 존중했다는 것 또한 쉽게 상상이 가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런 부분은 서양보다는 동양적인 이미지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테네에 대해서 저자는 어떻게 민주정이 아테네에 정착하게 됐는지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정치사적인 내용에 집중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소 재미없는 부분을 읽어나갔는데, 나중에는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아테네에서 참주정이 사라지고 민주정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우연적이고,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정을 이룬 아테네는 이후 벌어질 살리미스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저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살라미스 해전』의 저자, 배리 스트라우스가 살리미스 해전을 두고 '민중이 승리한 전투'라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테네를 다룬 4장은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흔히 배우는 유명한 그리스 위인들(철학가이자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을 한번 쭉 훓어볼 수 있게끔 해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5장으로 가면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 전투가 등장한다. 가공할 위력을 자랑하는 페르시아의 기병대에 기가 눌려 지내는 그리스군이 아닌,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그리스군으로서 그들은 페르시아의 대군을 무찌르고 자유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숨가쁘게 양측간의 본 게임으로 돌입했다. 페르시아도 그렇고, 그리스도 그렇고 이제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정치적인 문제는 당연히 복잡해지고, 국제 역학관계에 따라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한번 페르시아군을 무찔렀다고 하지만 여전히 왕 중의 왕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리스는 이전처럼 폴리스끼리 흩어질 것이 아니라 다시금 뭉쳐서 하나가 되어야 했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참주정에서 민주정(당시까지는 아주아주 생소하고, 그 운용능력의 검증여부가 입증되지 않은 독특한 정치체제)으로 돌아서서 새로운 체제 안에서 어떻게 페르시아 대군을 무찌를 수 있는 국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를 두고 복잡한 아테네의 상황이 흥미로웠다. 지금이라 해도 익숙치 않은 그런 새로운 정치체제를 탄생시킨 계기야 그렇다쳐도, 단기간 내에 새로운 정치체제에 적응하고 다시 이를 일정한 물리력으로 표출시켰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 격이랄까. 아테네의 존폐 여부를 두고 아마 당시 아테네인들은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6장과 7장에 이르면 비로소 이 책의 제목과 걸맞는 내용이 나온다. 바로 그 유명한 테르모필라이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레오니다스 왕에 대해서는 단순히 만화와 영화 <300>에서의 그 화려한 전투씬과 강인한 카리스마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역시도 나름의 고충이 있던 인물이었다. 즉위와 관련된 미심쩍은 부분과 관련해서 레오니다스 왕은 뭔가 특단의 결정이 필요했고, 이는 스파르타인 고유의 습성과 맞물려 테르모필라이 협곡에서 빛을 발했던 것이다. 생동감있게 묘사된 글을 보면서 영화 <300>에서의 각 장면과 몇몇 대사들이 떠올랐다. 왕 중의 왕이 치를 떨었을 그 순간이 필자에게도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크세르크세스는 위대한 스파르타 왕의 목을 쳐 협곡에 박은 말뚝 위에 올려놨을 것이다. 자신의 분노가 채 가시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곧 거센 폭우에 씻기고 말았으니, 페르시아의 대규모 해군이 살라미스에서 완패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살라미스 해전도 누군가 주목하여 영화화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화 <300>에서 보는 것과 같은 영화 전면을 장식하는 화려한 전투씬은 보이지 않겠지만, 적어도 영화 <적벽대전>에서 볼 수 있는 두뇌 싸움 및 거대한 스케일의 해상 전투씬 혹은 <골든 에이지>에서 나오는 간결하면서도 임팩트있는 해상 전투씬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암튼,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내용이 소략한 정도는 아니지만 필자는 이미 배리 스트라우스의 책을 한번 읽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간략한(?) 내용을 후딱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8장의 제목인 네메시스는 신의 이름이다. 보복의 여신이기도 한 그녀가 낳은 알이 트로이전쟁의 불씨가 된 헬레네라고도 한다. 암튼 그녀는 진정 냉혹하고 재치있는 여신이었다. 8장 전반부는 살라미스 해전을 대승리로 장식한 아테네, 그리고 이어진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왕을 빼앗긴 복수를 제대로 한 스파르타에 대한 내용을 싣고 있었으며 이윽고 분열되는 그리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네메시스의 오만방자함은 페르시아만 망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해전 이후 도편 추방되었고(그리고 그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크세르크세스에게로 가 페르시아 서쪽 변경인 마그네시아의 사트라프(영주)가 되었다), 스파르타의 파우사니아스는 페르시아의 전제군주를 따라하다가 국가전복죄를 선고받았다. 댈로스 동맹의 맹주이자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를 구해냈다고 칭송받는 아테네는 이후 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도시를 무력으로 굴복시키거나 동맹에 속하지 않는 도시들까지 공격해 오만한 독재자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스파르타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반발이 가시화되고 그리스는 분열되었다. 그리고 페르시아 역시 다시는 그리스를 넘보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수십년이 흘렀고, 이후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서방과 동방을 하나로 통합한 지배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상이다. 앞에서도 누누히 말했지만, 이 책은 당시 그리스-페르시아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살펴본 것으로서 중간중간 엉성하거나 간결한 부분은 있지만 포괄적으로 당대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유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페르시아 혹은 그리스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주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객관적인 시각 덕분에 오히려 당시 상황이 더 쉽게 이해가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책의 맨 뒤에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과 관련된 전후 연대표가 정리되어 있어 당시 상황을 보다 간결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8장의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의 느낌은 배리 스트라우스의 책을 읽고 난 다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역사적으로 한국사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는지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p.s) 제목과 달리 통사적인 성격이 강한 책이어서 분류는 군사서적이 아닌 역사서적으로 하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소개할 영화는 조금 독특한 영화다. 뭐 내용도 그렇고, 이걸 보게 된 느낌도 그렇고.

일단, 필자는 처음에 이게 애니메이션인지 모르고 봤다. 잉? 뭔 소리야? 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처음에 TV 광고나 예고편을 봤을때 너무나 사실적인 표현때문에 실사 영화인 줄 알았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한번 봐라~ 저 포스터하며, 영화 중간 캡쳐 사진까지! 아마 다른 분들도 공감하시겠지만, 예고편에 나왔던 장면들을 한번 보면 실사인지 CG인지 쉽게 구분이 가질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선배 2명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당시에 이미 3D 상영이 되는 영화여서 뭘로 볼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별 생각없이 그냥 2D로 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엇! 그런데 첫 장면이 딱 봐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화면!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속닥거리면서 '이거 만화였어? 잘못 들어온 거 아니야?' 하면서 당황했었다. 암튼, 그렇게 영화를 계속 감상했고, 나중에는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놀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화면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필자의 이런 생각은 다른 블로거들의 생각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캰슐츠님'의 '완성도 20.03%' 블로그 포스팅  →  이 분도 처음에 실사인 줄 알고 보셨단다. ^^;  

'슬픈단잠님'의 '여럿~ 공략의 장' 블로그 포스팅  →  3D 아이맥스가 아니면 재미없다라...후회된다. 다시는 못 볼테니...-.-;; 

'SALON_de_April shower' 블로그 포스팅  →  이 감독이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거듭 든다.

일단 줄거리를 간단하게 적어보자면...

때는 바이킹이 활약하던 8~9세기 쯤이지만, 신과 인간, 괴물과 영웅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으로 설정해놨다(늘 느끼는 거지만,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그런 문화가 다른 곳에는 없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너무 그리스 신화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신화를 바라보려 한다고나 할까?). 호르트가르 왕의 왕국에서는 매일밤 그렌델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살해하고, 잡아간다. 그때 바다 건너 대단한 영웅으로 소문나 있던 베오울프가 호르트가르 성에 나타나 왕을 도와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그날밤 그렌델과 싸운 베오울프는 그의 팔 한쪽을 자르게 되고, 괴물은 죽는다. 이윽고 그렌델의 어머니인 마녀까지 죽이기 위해 베오울프는 출동하는데, 여기에서 놀랄만한 반전이 있다. 호르트가르 왕이 마녀의 꼬드김에 넘어갔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바로 그렌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주인공인 베오울프를 꼬드기는 마녀...(안젤리나 졸리가 분한 마녀는 정말 놀랍도록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남자들로 하여금 그 치명적인 마력에서 빠져나가지 못 하게 하고 있다)

예전에 베오울프를 너무 재밌게 봐서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까페에 베오울프 관련된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다. 베오울프가 뭔지 전혀 몰랐었기에 그 내용이나 생겨나게 된 배경 등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단 원본의 내용과 영화는 약간 다르다. 원본에는 그렌델과 화룡이 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1, 2부로 각각 다른데, 영화상에서는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좀 더 부드럽게 살을 붙여서 내용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또한, 이것이 기독교가 스며드는 그 과도기적인 단계에 등장한 영문 서사시라고 하니 그 오묘한 분위기 또한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어쨌든, 스토리 면에서도 어느 정도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단 어떻게 보면 신화적 내용을 현실감있게 잘 표현한 것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또 하나, 실사와 CG의 경계가 헤깔릴 정도로 잘 만들어진 화면은 정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물론 모든 장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일단 딱 보면 CG로 만들었구나~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이 감독이 <폴라 익스프레스>라는 작품을 먼저 만들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것도 대단한 작품이지만 그거에 비하면 이건 뭐 비할 바 없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흐르는 땀방울이라든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라든가, 눈썹이나 미간이 살짝 찌그러지는 등의 미세한 표정연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잘 표현해내고 있어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화룡과 싸우는 장면은 여느 판타지 영화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바이킹의 생활을 영화 속에 잘 고증한 것 같아서 그 점도 보기 좋았다. 호르트가르 왕의 궁궐과 바이킹 전사들의 무기, 그들의 무장과 戰船, 그들의 사고방식, 연회 장면 등등 이것저것 세세한 부분까지 많이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앞에 이미 소개한 2편의 영화들에 비해 전혀 고증 부분에서 후달린 부분은 없어 보였다. 또한 스토리 면에서도 서사시를 바탕으로 약간 윤색만 가했기 때문에, 개연성이 부족하다거나 앞뒤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면이 오히려 적어 보였다. 물론 원본 서사시의 내용이 많이 함축되어 있었고, 기독교적인 색채, 즉 당시 서사시가 생겨나게 된 시대적 상황 등이 잘 반영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뭐 정통 사극을 지향한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다. 나중에라도 3D 영화를 볼 기회가 있다면 다시금 꼭 보고 싶은 이 영화, 강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