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 지음 / 푸른역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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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년만에 쓰는 서평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몇권의 책을 읽었지만 시간이 없어 간단한 메모 정도만 남긴 후 서평을 계속 미뤄왔는데 이번에 흥미로운 주제의 책을 만난 김에 서평을 써두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최근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데(책 전체 내용 중 극히 일부분만 부각된 면이 없지 않은데, 이는 최근 유사역사학자들의 蠢動과 큰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대 중국사에 대해 막연히 인지하고 있던 부분들을 언급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다.


이 책의 저자인 심재훈 선생님은 50대 중반의 열정적인 고대 중국사학자다. 몇가지 특이하다면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페이스북 계정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단순히 일상생활 혹은 맛집, 여행 관련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북을 대중과 소통하는 '학문의 場'으로 사용하고 계신 몇몇 선생님 중 한분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지금까지 본인이 연구해온 주제, 생각하고 있는 여러 생각들을 페이스북에서 남들과 공유하셨으며, 책을 출간한 이후에는 책과 관련된 내용들을 공유하며, 남들과 토론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계신다. 과거에는 '다음 까페'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활발한 토론과 지식 공유가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페이스북에서 그런 현상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자 중 한명이 아닌가 싶다.


2. 한국에서 민족사학이라고 분류되는 단국대 사학과에서 수학한 이후, 미국 시카고대에서 학위를 받고 예일대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다시 모교로 돌아온 분이다. 책 뒷면을 보면 스스로를 '어느 비주류 역사가'라고 규정하고 있는데(왜 그런지 책 중간에 회고하듯이 언급되기는 한다), 과연 이러한 이력을 지닌 사람한테 누가 감히 '비주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단어만 보더라도 한국 학계의 어두운 이면이 떠오르고, 책 안에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기대될 정도이다.


3. 단국대와 고대사 하면 떠오르는 이는 단연코 윤내현 선생님이다. 소위 '고조선 强國論'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구글에 '윤내현'으로 검색된 이미지를 보면 지금의 고구려+백제+신라+발해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지도가 '단군조선의 영토'로 그려진 지도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심재훈 선생님은 그와 정반대로 고조선을 실체가 거의 없는(학문적으로 검토하기에 너무나 자료가 부족한) 연구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그 시각이 극과 극을 달린다. 그러다보니 이 책의 전체 분량 중 고조선 관련 내용은 1/10 정도에 불과함에도 불과하고 언론에서는 이 점을 극대화시켜 이슈화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동안 읽고도 서평을 안 써 밀려난 책들보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먼저 쓰려는 것도, '고조선 & 윤내현' 코드에 가려 이슈화되지 않은 다른 내용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의지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4. 지금까지 김병모, 조유전, 이선복, 임효재 선생님 등 여러 원로 선생님들이 본인이 걸어온 길을 회고하면서 본인의 학문적 발자취를 책으로 펴낸 일은 왕왕 있었다. 하지만 한창때 학자의 책이 나온 기억은 없는듯 하다. 그러다보니 책에 담고 있는 내용은 원로 선생님들의 그것보다 더 힘이 실려 있고, 보다 현실적인 주제들이 많으며, 다소 직설적이기까지 해서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메세지를 전달받게끔 한다. 


이상 4가지만 보더라도 저자가 나름 굴곡진 학문의 길을 걸어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총 4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다. 첫째는 연구자로서의 개인사, 어떻게 입문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삶들을 살아 왔는지 등을 소개하는 것이며, 둘째는 어떤 주제의 연구를 했는지를 소개하는 것, 셋째는 그런 연구를 거듭하면서 한국의 상고사를 되돌아본 결과들, 넷째는 추후 역사 서술과 관련된 주요 이슈들에 대한 단상들을 적고 있다.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두번째 주제였다. 중국사에 대해 이런 저런 공부를 한다 해도 직접적으로 갑골문과 금문, 죽간 등을 공부하지 않은 이상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 그런 부분에서 저자의 고대 중국사 연구는 필자에게 많은 학문적 상상력과 자극을 불러일으켰다(첨언하자면 언론에서는 세번째 주제에 대해 대서특필하는 경향이 강한데, 특히 은사였던 윤내현 선생님과의 대결 구도를 구축하고 그 뒤에서 어떤 떡고물을 얻어내려는듯한 수작을 보면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기사 제목만 봐도 얼마나 웃긴지).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몇가지 이야기들을 하면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책의 목차를 보면, 저자가 어떻게 역사 공부를 시작했는지가 주욱 나온다.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한만큼 그런 기회 또한 찾아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필자 역시 한때 미국에서 유학하며 한국 고대사를 공부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나이도 어렸고, '미국에서 왜 한국사를 공부하지?'라는 막연한 의문도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행이라는 큰 결심을 하고 그곳에서 학문적 성취를 달성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주변에 유학파 선생님들이 많지만, 여전히 전체 역사학도-고고학도의 수에 비하면 그 비중이 적은 편인게 사실이다). 그렇게 저자는 한국 대학교 생활을 약간 거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학문적 용광로로 뛰어들어 본인을 담금질하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과 다른 이질적인(?) 대학교 문화를 경험하는 얘기가 主를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라이프 스토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칭 '비주류'로 생활하게 되면서 겪는 것들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그 과정에서 미국 생활이 더 좋다, 한국 생활이 더 좋다...이렇게 흑백논리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내에서 비주류로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담담하게 풀어쓰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가 책 안에서 언급한 싱가폴 난양공대의 이상준 교수, 부산대의 윤욱 교수, 행적이 묘연한 이동윤 교수 등의 사례와 저자 본인의 이야기가 한데 섞이면서 그간 순풍에 천천히 나아가던 배는 점점 급물살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사실 책 앞부분만 보면, 왜 책의 제목에 '한국사'가 들어가며, 본인을 왜 '비주류'라고 지칭하는지 잘 모른다. 필자 역시 책이 나오고 언론사 서평 혹은 책 소개하는 기사로 먼저 책을 접했는데, 자칫 '외국에서 고조선사를 연구한 사람의 한국학계 정착기'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이 사실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정작 저자는 '난 이래이래서 비주류야, 내가 책에서 얘기하고 싶은건 이런거야'라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 콕 집어서 얘기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 스스로 '아~이래서 그런 제목을 썼구나, 왜 자칭 비주류라고 하는지 알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필자도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고, 학계의 상황이 어떠한지 대강이나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차피 책 중반부를 넘어가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 비전공자라 하더라도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차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진후소편종>이라는 것을 필자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사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에서 진후소편종 운운할때는 저 晉이 진시황의 秦인 줄로만 알았다(춘추전국시대 패자들의 역사 중 국내에 晉에 대한 것이 얼마나 알려져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이다). 도굴된 용종을 사들여 제대로 짝을 맞춘 기적같은 에피소드도 신기했고, 세계 음악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의 대단한 유물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도 명문이 담고 있는 내용이 가장 신선했다. 문헌과의 상이함은 물론이요, 진 왕실이 주 왕실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 있었다는 저자의 주장 또한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저런 자료들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는 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일반 대중들은 물론이고 전공자들에게 이러한 자료들이 제대로 소개되고 인지되고 있지 않다면? 이라는 생각이 드니깐 눈 앞이 깜깜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의 확보와 정리'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는 너무 뒤쳐지는게 아닌가 싶었다. 이 부분까지 읽고 심재훈 선생님의 논문을 검색해서 될수 있는대로 다운받아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 했다. 필자 역시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공부하고 있는만큼 주제도 겹쳤지만, 지금껏 필자가 공부한 것들이 많이 부족했구나~를 절감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저자가 소개한 세계 최고의 算表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제 사비성터에서 구구단 목간이 나와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백제에서 일본으로의 문화 전파 운운하고 있을때 중국에서는 이미 인류 최초의 10진법 곱셈표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또한 모르고 있었으니 '우물 안 개구리'는 나를 두고 한 말일게다. 실제 저자는 풍납토성과 정주상성을 비교하면서 딱 필자가 느낀 그 문구를 그대로 책에 쓰고 있다(197쪽).


내가 굳이 이런 격차가 확연한 비유를 드는 이유는 한국 고대 문화 혹은 문명의 수준을 깎아내리려는 데 있지 않다. 앞에서 수차에 걸쳐 강조했듯이, 지난세기 후반 이래 식민사학 타도를 기치로 고대 한국을 확대하고자 하는 국내 연구자들의 정성어린 노력이 국제적 관점과는 상당히 유리될 수 있는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물 안의 개구리 식' 역사 인식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 본인을 비주류로 분류했기에, 이런 식의 현 학계를 질타(?)하는 표현도 책에서는 상당히 자제된 형태로 인쇄돼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 중국 답사를 갈때마다 주변에 하는 얘기지만, 중국에서 발굴된 각종 유적과 유물을 보면 절로 사대주의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지금도 이럴진대 고대에는 오죽했을까? 하고 말이다. 이미 신석기시대때부터 거대한 성벽으로 자신들을 보호하던 정치체가 각지에 발흥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이제 갓 문명의 단맛을 느낄때쯤 중국에서는 이미 전쟁과 희생, 노예와 포로, 학살과 대규모 토목 등으로 점철되는 국가를 탄생시켜 '권력'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던 역사속 위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중국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사를 세계사 속에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됐다.


그러면서 점점 책은 논의의 중심으로 접근해간다. 저자는 김병준, 이성구, 故 이명화, 윤재석, 박봉주, 배진영, 김정열, 민후기, 이성원, 박재복, 이용일, 송진, 최덕경, 이승률 등 국내의 중국 선진사 연구자 및 연구성과들을 소개하고 있다(이중 송진 선생님의 논문은 최근 필자도 논문 작성하면서 큰 도움을 받은 주제이기도 하며, 그간 국내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분야이기도 하다. 가끔 보면 '어떻게 이런 주제로 아직까지 논문 하나 안 나왔지?' 하는 그런 주제였달까?). 한국 선진사 연구의 현황을 살펴보는 부분에서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분명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인력과 지원이 없는? 그런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0여년간 수십편의 연구성과를 내면서 학계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뛰었던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책은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 고대사로 들어선다. 


세번째 주제의 내용은 단순하다. <한국사 과잉 vs 세계사 결핍>, <지나친 민족주의와 만들어진 고대사>, <연구대상으로 부적절한 고조선사> 뭐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마 이 정도 키워드만 갖고도 굳이 책 안의 내용을 일일히 나열하지 않아도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평소 필자도 한국 상고사-고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상당히 인색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인데, 저자는 그보다 더 했다. 고조선이라는 존재가 윤내현 선생님의 주장만큼은 아니더라도 각종 문헌에 나오고 있고 어렴풋이나마 고고자료들도 간간히 나오고 있으니 '당연히 존재는 했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책에서 단호하게 얘기하고 있다(222쪽). 


한국 상고사 특히 고조선에 관한 문헌기록은 위만조선 멸망과정을 다룬사기』「조선열전이전의 자료로 한정하면 정말 한줌에 불과할 정도이다. 사마천이사기를 편찬한 연대가 기원전 2세기 말~1세기 초 정도이니, 그 이전에 조선을 언급한 중국 측 기록은 글자수로 따지면 아마 100자 남짓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내가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위만조선 이전의 고조선사를 구축하는 작업은 기둥 몇개만 가지고 큰 집을 지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다시 말해, 위만조선 이전 '고조선'은 연구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계에서는 관련 연구가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으니 저자의 눈에 비친 한국 학계가 비정상으로 보이는게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에서는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 상고-고대사에 대해 오히려 별 얘기를 담아내지 않고 있다. 얘기할 꺼리 자체가 없는 주제에 대해 시작부터 '이건 얘기할 가치도 별로 없어!'라고 못을 박고,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얘기가 되온 주제들에 대해 몇가지 사례를 들어 반박한 뒤 담당하게 글을 끝맺는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아주 '시크'한 접근법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언론에서 왜 이 부분을 갖고 그렇게 떠들어댔지?'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오히려 책을 덮은 뒤 드는 생각은 아마 저자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런 내용과 제목의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도 책 말미에서 얘기하듯이 책을 본 사람들이 혹시 본인을 '친미주의자'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경험이 분명 오늘날의 저자를 만들어냈고, 그 경험이 추후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작용한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연구했다면, 한국 학계에서의 '우물 안 개구리식 시각'과 '아전인수격 해석' 등은 애시당초 언급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자는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본인이 제3자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던 한국 학계에 몸 담게 되면서 생긴 여러 에피소드들과 새로운 경험들을 책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저자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화려한 스펙을 지니고 있음에도 본인을 스스로 비주류라고 불렀고(아니 주변 상황상 그렇게 부르기를 알게 모르게 강요받았던 것은 아니었나?), 은사님인 윤내현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그 학풍을 따라가기 어려웠으며, 고대 중국사를 공부하면서 고조선사를 바라보는 현재 학계의 시각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제목의 책을 쓴 것 같다. 


덕분에 필자 또한, 한때 막연히 그려왔던(그리고 지금도 그리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미국 유학생의 삶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아직도 중국이라는 나라,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된 고대 동아시아사에 대해 공부할게 많고 그동안 스스로 공부가 많이 부족했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었으며, 구미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적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 학계의 현황과 문제점도 다시금 재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담담하게 읊은 한국 상고-고대사에 대한 단상과 이를 크게 부풀려 본질을 흐린 언론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추후 한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있는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마지막으로...어쩌면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사가 제대로 연구되어 고조선의 실체가 확연하게 드러나길 가장 바라는 건 정작 저자 본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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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탐험 - 도전 정신과 이기심이 만든 현대 문명 세계사 가로지르기 12
김용만 지음 / 다른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인 김용만이 고구려 수레를 연구한 전문가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항이다. 그리고 이를 확대시켜 수레에 대한 책을 냈고, 이번에는 탐험에 대한 책을 내면서 저자가 내고자 했던 인류 이동에 대한 책 3부작을 모두 마무리하게 되었다. 먼저 이 책들이 일종의 기획 시리즈라는 점에서 4년여에 걸쳐 3부작을 완성한 저자의 노고와 열정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더불어 수레를 고구려 성장의 근간으로 이해하고 수레에서부터 시작해 길(도로)과 탐험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연구 범위를 인류문명사적 시각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먼저 책 표지를 보면 밝은 노란색에 갖가지 탐험 관련 아이콘들이 그려져 있어 다소 정신없어 보이지만, 이 책의 주 독자층이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편, 온라인 서점에서 책의 제목을 검색해보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책 중세상을 바꾼 위대한 탐험이라는 책이 같이 뜬다. 하지만 저자는 탐험을 결코 위대하다고만 보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가 도전 정신과 이기심이 만든 현대 문명이라는 것만 봐도 탐험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같이 서술하고자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에 무수히 나왔던 탐험()와 관련된 책들과 어떻게 차별성을 강조할 것인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펼치게 된다.

 

책의 전체적인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만 봐도 대략적인 책의 내용은 전달된다.

 

머리말: 탐험,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다

1. 탐험하는 인간

2. 탐험가의 시대

3. 탐험가가 바꾼 세계

4. 동아시아의 탐험가들

5. 현대인과 탐험

나가는 말: 과거의 탐험에서 배울 것들

 

특히 <탐험하는 인간>, <동아시아와 탐험가들>, <현대인과 탐험>이라는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았던 이었다. 나머지 2~3장에 대한 내용이 우리가 흔히 탐험()에 대한 책을 보면 쉽게 나오는 부분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분량 면에서도 다른 책들에 비해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준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탐험의 종류를 크게 4개로 나눈다. ‘종교적 열정’, ‘명예 추구나 지적 탐구욕 등 개인의 자기만족’, ‘국가의 명령’, ‘경제적 이익까지. 그러면서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탐험을 해 왔지만 기록의 부재로 인해 인류사의 수많은 탐험가들은 그 존재를 알리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일 처음 고대 이집트 6왕조(B.C. 2,345~B.C. 2,181) 시기의 인물인 하르쿠프를 언급한다. 그 뒤로 라파타인, 페니키아인, 바이킹, 아라비아인까지 대항해시대(우리가 흔히 탐험과 직결시켜 떠오르는 이미지) 이전 인류의 탐험사를 개괄한다. 이들 사례는 앞의 네 종류에 해당되는 것들로서 인류가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거주지 바깥으로 나아가려 했음을 소개하고 있다.

 

탐험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곳을 살피고 조사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인간의 물질문화 이동에 대해서 고고학계에서는 크게 이주’, ‘전파’, ‘교류3가지 행위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렇게 봤을 때 이주라는 것이 탐험과 연결되는 행위 일텐데 이주라는 용어에는 도전정신’, ‘위험성과 같은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현생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세계 각지로 이동 혹은 이주했으며, 그들의 행위 자체가 하나의 탐험이었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더 좋은 보금자리를 위해서, 더 나은 자원(석재, 과실수, 사냥감 등)을 찾기 위해서였던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위험을 무릅쓴 용기 있는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얘기한다. 탐험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탐험의 기준과 정의가 드러난다. 어째서 오늘날 우리는 탐험이라고 얘기했을 때 대항해시대 이야기만 하는지 말이다.

 

각 장마다 副論처럼 실리는 이야기톡표류이야기가 나오는 것 또한 주목된다. 표류는 말 그대로 의도하지 않은 탐험이랄 수 있는데, 그 결과가 재미있다. 기록이 남아야 진정한 탐험이라고 했을 때 표류 또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기록으로 그 전말이 남겨져 탐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이 지속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완성된 의미에서의 탐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부의표해록이 조선과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 조선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점, 문순득의 표류기인표해시말또한 몇몇 식자층의 지식 공유 이외에 조선 사회에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을 보면 일본인 어부 나카하마 만지로의 경험을 잘 활용한 근대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이상의 사례들을 봤을 때 탐험이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곳을 살피고 조사하는 행위기록으로 남겨지고 그 기록이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라야 진정으로 우리에게 제대로 된 탐험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2장으로 넘어가다 보면, 저자가 단순히 탐험()의 사례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탐험의 결과, 세계사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끌어내려고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2장은 본격적인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그리고 뒤이어 바닷길로 뛰어든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부분은 세계사를 공부하는 중고등부에게 교과서보다 흥미있고 생동감 있게 관련 내용을 전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후진 사회였던 유럽에서도 후진 국가였던 포르투갈이 어떻게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는 강대국이 되었는지 그 배경 설명과 뒤이어 에스파냐가 강대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후발주자임에도 선두그룹 못지않게 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네덜란드, 유럽의 강대국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뒤늦게 바다를 돌아본 영국과 프랑스의 이야기까지 실로 구슬을 꿰듯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 서로 다른 양자의 관점을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 또한 특징이다. 유럽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이미 존재했던 수많은 다른 세계를 발견한 영웅적인 이야기겠지만, 평화롭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던 수많은 다른 세계들 입장에서는 유럽은 불편한 불청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탐험이 갖는 양면을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저자의 시각은 다음 장으로 이어지면 보다 확실해진다. 미국에서는 10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를 원주민 저항의 날로 부른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탐험가가 퍼뜨린 전염병(천연두)을 이야기한다. 이미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과 인디언 사회가 유럽인이 갖고 온 전염병으로 인해 인프라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해졌다는 건 상식적인 이야기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서구인의 세계 제패를 가능하게 한 3가지 요소를 두고 총, (전염병), 쇠라고 한 것만 봐도 당시 유럽의 탐험가들이 안고 온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발견된쪽에게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안겨준 탐험이지만 발견한쪽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준 것 또한 사실이다. 저자는 탐험가들에 의해 개척된 교통로가 결국 전 세계 경제 생활권을 하나로 묶었으며, 이것이 전 세계 경제구조마저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신대륙의 은이 유럽을 매개체로 중국으로 흘러가고, 중국의 금과 각종 산물이 유럽으로 흘러갔으며, 그 과정에서 팔기 위한 상품의 생산이 촉진되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유럽에서 유행이 되다보니(동시기 조선의 도자기가 왜 그렇게 되지 못 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중국과 일본은 돈 되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고, 유럽 각국의 식민지에서는 돈 되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플랜테이션이 곳곳에 만들어진다. 이렇게 전 세계의 물품이 돌고 돌아 인류는 이전 시대에는 누리지 못했던 풍부한 물산과 문화를 접하게 되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점은 그런 모든 교역의 이익을 누린 것은 바로 유럽이라는 점이었다. 탐험을 생활화하고, 탐험에 많은 자본을 투입한 유럽이었기에 탐험의 이익을 가져간 것 또한 유럽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유럽에서 시민사회의 성장이 가장 먼저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자본주의의 씨앗 또한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이에 대해서 송나라때 동아시아에 이미 자본주의의 모든 요소가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다시 한 번 송나라때 중국이 이미 자본주의의 요소를 다 갖췄는지 의문도 들게 한다-중국화하는 일본 서평 참고). 그 과정에서 유럽인이 갖게 된 오만한 계몽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지적하면서도, 현대 문명이 그런 유럽인의 계몽주의 위에 쌓아진 것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더불어 탐험으로 인해 전 세계의 산물이 각지로 퍼져나감에 따라 인류는 다른 지역의 음식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김치처럼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모피처럼 전 세계적으로 돈이 되는 상품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지역이 개척되고, 그 지역의 전통문화가 파괴되기도 했다. 저자는 탐험이 갖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탐험이라는 행위에 대해 어느 한쪽만의 시각이 아닌,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언급한다. 어째서 유럽에서만 저런 탐험가들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라는 주제 말이다.

 

정화의 대원정을 이룩할 정도로 고도로 뛰어난 기술력과 자본을 갖춘 명나라였지만, 상인을 무시하고 상업과 해상활동을 억제하는 국가 정책은 대항해시대를 앞두고 중국이 발을 빼버리게 하는 惡手를 두게 했다. 조선은 해상왕국 고려의 뒤를 이었음에도 농경 위주의 경제구조를 확립하고, 진취적으로 바닷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공간으로만 바다를 관리하였으며, 上國이었던 명의 견제와 보호 아래 바닷길을 개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한편 일본은 일찍부터 동남아 각지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확보했으며, 유럽과 가장 활발하게 교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다이묘)의 성장에 불안을 느껴 쇄국정책을 실시하였으니 이 또한 대항해시대때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여 그 주체가 되지 못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중국은 대항해시대를 맞아 바닷길 개척에 대해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함, 한국은 해야 할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무지함, 일본은 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에 결국 세계사의 흐름에서 튕겨나와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한 채 오래도록 지내온 것이 아닌가 싶다. 첨언하자면 그 와중에서도 작은 창구를 열어 유럽 각국과 끊이지 않고 교류했던 일본이 있어서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으며, 일본은 훗날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아직도 탐험을 끝내지 않고 있다. 이미 탐험을 통해 지구의 대부분이 밝혀졌는데 무슨 탐험이냐고 하겠지만, 우리는 지적 탐구를 위한 과학적 용도의 탐험을 지속하고 있으며, 북극과 남극뿐만 아니라 지구의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바다 속에 대해서도 100% 알려진 것이 없다. 더불어 인류의 탐험 목표는 지구 밖 우주로 향하고 있으며, 이제 겨우 달과 화성 정도에 대한 정보만 지속적으로 획득하고 있는 정도다.

 

우리는 앞서 탐험이라는 행위가 현대 문명을 형성하는데 있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장단점이 있었는지를 알아왔다. 그리고 과거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지금도 탐험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에 많은 것들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앞으로 탐험을 지속해야만 하는 인류 문명의 숙명을 고려했을 때 과거에 저지른 실수는 지양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저자가 책의 부제로 선택한 이기심이라는 단어는 아마 이런 것들을 경계하기 위한 단어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탐험가들의 도전 정신과 이기심이 현대 문명을 만들어 왔지만, 앞으로는 이기심을 버리고 도전 정신과 순수한 탐험 정신을 갖춰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저자는 남기면서 책은 끝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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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전쟁
로렌스 H. 킬리 지음, 김성남 옮김 / 수막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War Before Civilization : The Myth of The Peaceful Savage

 

이 책의 원제다. 직역하면 원시전쟁 : 평화로운 야만인의 신화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역자는 좀 더 강렬한 표현을 썼다. 원시전쟁 : 평화로움으로 조작된 인간의 원초적인 역사라고 말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뭔가'의 억제와 통제 속에서 형성된 시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문구였다. 그밖에 '구멍이 뚫린 두개골', 'Black & Red'가 조합된 표지와 함께 제목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전해주는 강렬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로렌스 H. 킬리는 선사시대 고고학 전공자로서 수많은 유적들을 조사하면서 전쟁의 흔적들을 끊임없이 발굴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선사~고대인들의 삶은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전쟁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사회 활동이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물론 저자 역시 학부 졸업논문을 쓸때만 해도 '중미 지역의 초기 문명들이 평화로운 환경에서 발전했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고고학계에서 '전쟁'이라는 주제를 의도적으로 싫어해 연구에 많은 지장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전쟁狂이거나 호전적인 인물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인류의 삶 속에 끊임없이 있어왔던 전쟁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전쟁을 제어하고 인류 사회를 보다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저자의 오랜 경험과 학술적 고민이 만들어낸 연구 성과가 바로 이 책인데, 무려 20여 년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번역서가 국내에 나온 것이 참 씁쓸했다(필자는 역자의 소개를 받아 이미 수년전에 이 책을 읽은 바가 있는데, 영어 실력이 부족해 그 당시 상당히 고생했던 기억이 났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평화 모두를 알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그런 고민을 하면서 첫장을 넘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럼 목차부터 한번 살펴보자. 첫장에서 저자는 '평화로움으로 조작된 과거'라는 제목을 달고 원시전쟁의 개념과 원인, 원시전쟁을 바라보는 서양학계의 상반된 시각 등을 소개하고 있다. 어째서 오늘날 우리가 원시전쟁은 별거 없었고, 위험하지도 않았으며,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주제라고 인식하게 되었으며, 원시시대는 평화로운 시대였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연구사 검토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원시전쟁을 바라보는 2개의 상반된 시각은 '토마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부터 시작한다. 2명 다 중-고등학교 철학(및 도덕) 시간때 배운 인물인만큼 그들의 명언부터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먼저 홉스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요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원초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유를 포기하고, 중앙집권적 권력(군왕)의 통치를 수용하는 '계약'을 맺어야만 한다고 했다. 홉스의 저서『리바이어던(The Leviathan)』, 그리고 '성악설' , '왕권신수설' 등이 이것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그에 반해 루소는 문명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대신 인간의 성스러움을 내세웠으니 '고귀한 야만인''황금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성선설'과 결부되며, 중앙집권적인 권력 대신 국민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정치체, 즉 '직접민주주의'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로크는 둘 사이의 중간적인 입장에서 큰 의미가 없으니 제외한 듯 싶다). 이를 통해 보면 둘의 대립각은 딱 하나다. '원시사회의 인간이 평화로운 상태였냐? 폭력적인 상태였냐?' 그렇게 원초적인 인류 사회에 대한 대립은 시작된다(자아! 독자 여러분들은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그러면서 저자는 얘기한다. 홉스와 루소 이후 신홉스주의와 신루소주의가 등장하고, 인류학계와 고고학계, 민족학계와 민속학계에서 끊임없이 전쟁과 인류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결국 원시전쟁은 위험하거나 중요하지 않았으며, 원시사회는 평화로웠다는 '신루소주의'적인 사상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문명에 대한 신루소주의적인 시각은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학계에서는 의도적으로 전쟁과 폭력에 대한 증거를 없애버리고 부정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아마 전쟁의 흔적인 무기를 모두 제의와 위세품으로 해석하고, 방어용 해자를 구획과 제의의 공간으로 해석하는 식의 접근을 말하는 것일게다). 그러면서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만약 원시사회가 문명사회와 접촉하기 전에 진정으로 평화로웠다면,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를 대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오히려 전쟁에 대한 증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해석하고, 전쟁의 실상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전쟁이라는 병폐를 없애는데 여러 학문(민족학 · 고고학 · 인류학 등)이 기여해야만 한다고 얘기하면서 저자는 수많은 전쟁의 증거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광범위함과 중요성 / 전술과 무기 / 전투의 형태 / 원시전사 對 문명세계의 병사 / 전쟁과 살상 / 원시전쟁의 이해득실 / 원인에 대한 논쟁 / 전쟁의 배경 / 평화에 대한 희망과 그 취약함 / 평화로움으로 조작된 과거의 뿌리

 

원시전쟁(혹은 문명 이전의 전쟁), 인류의 전쟁 본능 등에 대해 다룬 여러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인류학, 고고학, 민족학적으로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어 굉장히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위에서 보는 것처럼) 세부적인 항목들로 나눠 하나하나 분석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느낌'과 '상식'적인 시각에서 전쟁을 다룬 연구성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책 제일 뒷면 부록에 실린 여러 전쟁 관련 도표를 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나름 전쟁고고학을 공부하는 필자 입장에서도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은 적절한 것이며,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필자가 갖고 있던 생각과 다른 것도, 같은 것도, 몰랐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몇몇 부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대신하도록 하겠다.

 

Ⅱ. 전쟁의 광범위함과 중요성

 

 전쟁은 보편적 현상인가?

 

평화주의적 사회집단은 드물기는 하지만 모든 사회적 · 경제적 발전 단계에서 발견된다. 완전히 평화로운 농경집단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모든 형태의 폭력을 금기한 말레이시아의 세마이 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1950년대 말레이의 공산 게릴라들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이들이 영국에 정찰병으로 고용되었다는 것이다. 세마이 족은 병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게릴라들이 그들의 동족을 죽이자 매우 적극적인 전사로 변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 그들은 다시 평화로운 농경민으로 돌아갔다. 또한 스웨덴과 스위스는 과거 200년간 단 한번도 전쟁을 벌어지 않은 현대 국가 중 하나다. 18세기까지 가장 호전적은 사회 중 하나였으며, 호전적인 종족으로 꼽히는 바이킹족의 고향이 스웨덴이며,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기 수출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평화로운 사회집단은 어느 발전 단계에서건 나타나지만, 그 수가 매우 적을 뿐더러 세마이족이나 스웨덴과 스위스처럼 '평화 ↔ 호전'의 사회를 넘나들면서(그 기간이 짧든, 길든) 나타나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완전히 평화로운 집단도, 완전히 호전적인 집단도 없으며, 전쟁은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었을 뿐이다.

 

Ⅲ. 전술과 무기

 

 원시부족의 무기

 

발사무기(화살)는 원래 사냥에 사용되던 도구였다. 전투용 화살은 의도적으로 화살촉을 약하게 만들거나 자루에 약하게 결합시켜 자루가 뽑힐 때 화살촉 전부 혹은 일부분이 상처에 남도록 만들었다. 북아메리카 캘리포니아의 윈투족과 몇몇 부족은 사냥할 때는 화살촉을 자루에 단단히 묶고 옆에 홈을 판 화살을 썼지만, 전투 시에는 느슨하게 묶은 화살을 사용했다. 남아메리카 인디오들도 화살대에서 쉽게 분리되는 화살촉을 사용했으며, 마르케사스 제도의 부족과 카나리아 제도의 구안체 부족은 창촉을 창대에 약하게 묶어 부러질 경우 상처에서 빠지지 않도록 고안된 창을 사용했다. 그밖에 독을 바른 발사체 무기를 사용한 부족들 역시 상당히 많았다.

 

한국 고고학계에서 진행되는 석촉 연구에 있어 형태의 차이는 지역적 · 시기적 차이를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실질적인 기능의 차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그런 관심조차 없으니). 더불어 석촉은 기본적으로 사냥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며, 전투용 무기로서의 석촉이 연구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환호 혹은 목책으로 둘러싸인 취락을 공격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화살이며, 기습 혹은 매복에 가장 적합한 무기 또한 화살이다. 단순히 사냥하는데 필요한 도구로만 쓰인건 아니라는 소리다.

 

Ⅴ. 원시전사 對 문명세계의 병사

 

◎ 숨어서 하는 전쟁

 

원시세계에 대한 유럽 문명의 승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전투 방법과 우수한 무기보다는 우월한 교통 수단과 농업 기술로 나타나는 월등한 경제력과 효율적인 보급체계 때문이었다. 현대전에 있어서 게릴라들이 정규군과 싸워 이긴 사례는 많지 않다. 이는 보급체계가 없거나 현대적인 경제체제에 의한 보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명세계의 기강 있는 밀집대형과 난해한 군사기술이 원시부족의 느슨한 방식보다 낫다는 개념은 성립하기도 어렵거니와 차라리 환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미국은 20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고도 동남아시아의 게릴라들을 꺾을 수 없었지만, 걸프전에서는 인도차이나에 동원한 전력의 일부분만 투입하고도 세계에서 가장 병력이 많고 무장이 잘된 정규군 중 하나인 이라크를 궤멸시켰다. 이런 것을 봤을때 과연 전술로 타격하고, 기강으로 지배하여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원시전쟁이 지금의 전쟁과 비교해 과연 수준이 낮고, 그 정교함이 떨어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은 고도로 최첨단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지형, 자연조건, 기후, 인적상황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상 중 하나이다. 오히려 전자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전자기술 자체에 결함이 생긴다면 통신, 감시, 작전 등 모든 분야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 그 자체만 놓고 봤을때 과연 현대전이 원시전쟁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전쟁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의 인프라가 아니라면, 지금의 서구 사회가 이처럼 강력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제목이 이를 극명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총, 균, 쇠'라고.

 

Ⅶ. 원시전쟁의 이해득실

 

◎ 영토 획득과 상실

 

국가 이전의 부족전쟁 역시 영역을 변화시키고, 패자에게 빼앗은 땅을 승자가 갖는다는 면에서 문명사회의 전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복은 차치하더라도 현대 고고학계가 이주와 식민 관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사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고고학자 슬라보밀 벤클은 절멸이나 위력에 의한 강제 이주의 경우에도 고고학적으로는 단지 '승자들이 평화적으로 패자들의 영역에 공존'한 증거로만 나타난다고 했다. 그는 게르만계 마르코만니족이 켈트계 보이족을 상대로 거둔 승리에 대한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을 예로 들고 있는데, 고고학적으로는 게르만계 마을과 무덤 형식이 켈트 족들이 살았던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했다. 선사시대에는 매우 독특한 문화집단이 다른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 많지만, 이러한 영역확장이 폭력적이었는지 아니면 평화적이었는지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고고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제 중 하나가 점토대토기 집단이 청동기시대 후기(송국리문화 등) 집단과 어떻게 접촉하면서 한반도에 자리잡았느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동기시대 후기 집단이 초기 집단에 비해 어떻게 그 세력을 확장했느냐도 비슷한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교류, 이주, 전파 등등 문물의 이동 및 확산에 대해 학계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다. 다만, 집단과 집단의 충돌(다시 말해서 '전쟁')이라는 측면은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섣불리 손을 못 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대등한, 혹은 어느 한쪽이 우세한 문화(기술력과 경제력, 인구수 등등을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양측이 아무 이유 없이 평화롭게 교류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닐까 싶다. 평화는 그것을 누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때 이뤄지는 것이지, 마음만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Ⅹ. 평화에 대한 희망과 그 취약함

 

◎ 전쟁은 되고 평화는 안 되는 이유

 

전쟁이 존재하는 사회적인 이유 중 하나는 평화 비용이 너무 비쌀 때가 있다는 것이다. 때론 전쟁을 한다 해도 별반 잃을 것이 없고 오히려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전쟁은 젊은이들, 특히 미혼 청년들이 시작하고 수행하는데 가장 적극적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전쟁을 통해 잃을 것은 별로 없지만, 승리했을 때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연장자들이 이러한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을 자제시켜야만 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평화적인 노력의 산물을 소진시키는 동시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평화에 기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갖고 전쟁과 평화를 저울질하면서 선택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평화 대신 전쟁을 택하는가?

 

왜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가? 이는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와 맞물리는 질문일 것이며, 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젊은이(추후 사회를 이끌어나갈 중추적 멤버들)의 성장 동력과 호승심 때문에 전쟁은 필요한 것일까? 전쟁을 단순히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 있을까? 100만이 넘는 엄청난 정규군을 유지하면서, 세폐로 막대한 금액을 바쳐 동아시아의 평화를 샀던 송 왕조, 하지만 송 왕조가 해외에 뿌려댄 엄청난 돈은 곧 동아시아 화폐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의 성장을 가져왔다. 결국 전쟁보다 평화에 드는 돈이 더 많이 들었지만, 장기적으로 평화로 인해 얻은 수익이 더 많은 구조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평화가 돈이 많이 들지만, 종래에는 그것이 더 이득이 된다~라고 하는 확신과 신념이 자리잡는다면 사람들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하지만, 그 확신과 신념은 무엇이 보장해준단 말인가? 어떤 사회적 제도, 어떤 정치체제, 어떤 경제적 대가가 필요한 것일까?

 

인류학자들은 지난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홉스와 루소 사이에서 어정쩡한 타협을 이끌어 냈다. 즉, 원시전쟁은 빈번하고 일반적인 현상이었지만, 심각하지도 않고 치열하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민족학적 ·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나무창으로 싸웠던 원시전쟁이 네이팜탄으로 싸우는 현대전쟁보다 결코 평화로웠다거나 더 상황이 나았다고 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지 현대전쟁은 위계적인 정치체에 집중된 자원과 권력을 통해 수많은 국민들을 정당하게 전쟁에 내몰 수 있었으며, 전술적인 우위보다는 보급체계의 숙련 때문에 보다 더 '전쟁'스러워진 것 뿐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원시전쟁은 제한된 역량을 가지고 벌이는 총력전인 셈이다. 워털루 전투 이후의 200년간, 그리고 알렉산드로스(B.C 300년)에서 웰링턴(1800년)까지 약 2천년 이상을 건너뛰면서 서구의 전쟁 방식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이 책은 원시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인류가 가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폭력성과 전쟁에 대한 생각까지 끄집어 내어 결국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전쟁을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하고 있다. 저자는 전쟁을 연구하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 다음 것들을 꼽고 있다.

 

첫째, 교역은 폭력 투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으므로, 오히려 주요 교역 대상자들을 보다 세심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완벽한 군사적 안보라는 헛된 목표를 위해 순전히 기술과 무기 개발을 하기보다는 경제 발전과 평화적 기술의 진보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현재의 단위들이 상호 적대적인 집단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고, 만들 수 있는한 최대의 사회 · 경제 · 정치적 단위(이상적으로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고고학자들이 생산해내고 해석하는 물리적 정황증거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평화와 전쟁의 비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학자들이 선사시대에는 전쟁이 일반적이었으며, 중요한 영향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다. 전쟁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전쟁의 참상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호전적인 부족과 집단이라 하더라도, 전쟁에서 늘상 승리만 하는 것은 아니며, 늘 패배했을 때의 고통을 걱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사를 살펴보면 평화로운 기간보다 전쟁을 벌인 기간이 더 많았다. 전쟁이 나쁜 것이며, 불행한 것이며, 수많은 고통과 위험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류는 전쟁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자진해서 뛰어들어가려고 하는가? 이 책은 그런 고민 속에서 쓰여진 책이며, 그런 고민을 독자와 함께 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自問自答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아! 이제는 그 자문자답의 결과를 독자 스스로 갈음하고 정리할 때가 됐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어째서 우리가 전쟁이라는 주제를 더 자세히 알아야 하며,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단순히 전쟁이 멋있어서, 전쟁영웅이 대단해서, 전쟁에서의 승리가 남겨주는 역사적인 허세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난 전쟁을 통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를 고심하고 또 고심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지금 전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주변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지닌 군사대국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또한 매년 막대한 양의 '전쟁비용'을 들이면서 값비싸고 한시적인 '평화유지'를 이루는 국가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심하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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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참 도발적이다. 중국화? 중국화가 뭐길래, 일본이 중국화라는 거지? 거기다가 책의 부제에는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라는 정말 거창한 테마가 달려 있었다. 뭐지?? 문명사?? 사회사??? 어떤 주제를 다루는거지??

 

하루는 온라인 이웃 중 한분이 이 책을 읽어봤냐고 물어보셨고,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더니 내 생각이 궁금하니 한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검색했더니 이미 일본에서는 출간한지 몇년 됐는데, 그간 국내외에서 이 책 때문에 난리가 난 모양이다(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블로그에 서평에 난리도 아니다). 도발적이면서 참신한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이나 저자의 史觀 또한 그러했으리라.

 

 

1979년생인 저자 '요나하 준'의 나이는 올해 36살. 이 책은 29살(2007년)에 동경대 총합문화연구과 지역문화연구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이치현립대학 일본문화학부 역사문화학과 준교수로 재직하면서 그 강의노트를 책으로 집필한 것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2013년이지만, 2011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쓸 당시, 혹은 이 책의 저간을 이루는 강의를 한창 했을 당시의 저자는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젊은 학자가 바라보는 동아시아사가 대체 어떻길래 이렇게들 난리란 말인가. 기대 반, 흥분 반의 심정으로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서론에서 자기가 말하는 '중국화'라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저자가 창안한 개념인 '중국화'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중국처럼 하자, 중국처럼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 중국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근세'(중세와 근대 사이의 개념)에 돌입한 '중국 宋 왕조'를 대상으로 한 개념이었다(지금의 중국이 아니라). 이전 시기(唐 왕조)와 확연히 다른 송 왕조의 국가 · 사회적 시스템을 저자는 중국화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당과 꾸준히 교류하던 일본이 송대에 이르러 송 왕조의 근세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근세를 맞이하니 이것이 바로 에도시대[江戶時代]라고 적고 있다. 저자는 그런 일본이 기나긴 에도시대를 지나 최근에 다시 중국 근세로의 이행(자의든, 타의든), 즉 중국화하는 상태로 이해하면서 그럼 과연 이 중국화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일본사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하게 서술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반적으로 익숙한 몇가지 화두를 던져준다.

 

어떻게 유럽과 같은 '후진지역'이 송나라 중국이라는 '선진국'을 기적적으로 역전시켜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가?

왜 '근대화'도 '서양화'도 조금도 진척되지 않았던 저 중국이 이상하게 최근에 다시 대국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인가? 

 

요렇게 2가지인데,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봤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첫번째 문제의 경우,『1421-중국, 세계를 발견하다』『1434-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등에서 이미 중국과 유럽의 문화수준 차이를 언급한 적이 있으며,『리오리엔트』,『쾌락의 혼돈』등을 통해 중국의 경제적 수준이 당시 세계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밝혀진 바 있다. 더불어『총, 균, 쇠』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유럽 문명이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던 원인과 과정을 생동감 넘치는 필체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2번째 주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있는 책이나 연구성과가 많지 않았다. 물론 첫번째 문제와 연결시켜 과거 중국이 선진국이었고, 선진국이었던 기억과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그런 것이 최근의 경제 부흥 및 여러 사정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뭔가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없었는데,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의 정의가 무엇인가? 라는 것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경우에도, 조선 후기~근대 이전의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경제사적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여기에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을텐데, 과연 저자가 말하는 중국화는 근대화랑 무엇이 다르며, 또 오늘날 중국화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를 곱씹어보게 된다. 그렇기에 저자가 서론 말미에 던진 한마디는 독자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왜 역사상 거의 항상 선진국이었던 중국에서 인권의식이나 의회정치만은 아직까지 자라나지 않는 것일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 최초로 '근세', 즉 '근대 전반기'를 시작한 송 왕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저자는 '1장 끝나버린 역사-송나라와 고대일본'에서 당대 이후 송대에 중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설명한다. 그러면서 송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시대적 특징을 한줄로 설명한다. '경제와 사회를 철저하게 자유화하는 대신에 정치 질서는 일극 지배에 의해 유지하는 틀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귀족제도를 전폐하고 황제 전제 정치를 극도로 강화한 송대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결과로 인해 송은 경제적으로 큰 부흥을 이뤘지만 중국사상 최약체 왕조를 유지해야만 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저자는 이를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 동시대 일본에서 중요하게 취급받는 겐페이[源平]전쟁을 거론한다. 겐페이전쟁은 일반적으로 중세 헤이안 시대에 벌어진 내전으로, 전후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다이라씨[平氏]가 관동지역의 강력한 지방군벌인 미나모토씨[源氏]와 기타 귀족+사무라이 연합 세력에게 패한 이후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된 분기점이 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 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화와 정반대의 일본문명을 확립했기 때문에, 이후 일본은 기나긴 에도시대에 빠지게 되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중국화에 살을 붙여 다시 한번 한줄로 설명한다. '가능한 한 고정된 집단을 만들지 말고 자본과 사람의 유동성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한편, 보편주의적인 이념에 기초한 정치의 도덕화와 행정권력의 일원화를 통하여 시스템의 폭주를 제어하려고 하는 사회'라고 말이다.

 

이게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기에, 저자는 친절하게 중국화의 5가지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면서 근세 중국의 5가지 특징을 뒤집으면 이것이 바로 '일본문화론'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특징이라고 규정짓고 있다(일단, 저자의 이 주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계속 이 책에 대해 살펴보자).

 

1. 권위와 권력의 일체 - 황제가 명목상이 아닌 실권자로 등극

2. 정치와 도덕의 일체 - 황제가 정치적 ·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

3. 지위의 일관성의 상승 - 과거는 '덕의 높이'와 일체화한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4. 시장을 기초로 한 질서의 유동화 - 화폐 보급으로 인해 농촌공동체 해체+유목민적 세계 출현

5. 인간관계의 네트워크화 - 지역 중심의 공동체보다 혈족으로 대표되는 개인적 관계가 우선

 

그럼 왜 당대 이후 송이 들어서면서 일본은 중국화를 거부했을까? 중국은 송 이후 등장한 元이라고 하는 사상 초유의 거대 제국 덕분에 중국화가 극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저자는 원 제국과 비교하면서 오다 노부나가가 樂市樂座로 상업을 융성하게 했다고 말하는 일본인들의 역사관의 크기가 지극히 작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원은 일본을 2차례 쳐들어왔다가 패퇴한다. 이미 송대 중국 동전의 대거 유입으로 인한 중국화 압박이 있었고, 그 와중에 다이라씨를 몰아내고 미나모토씨가 막부를 설립한 바 있는 일본이 원의 침입까지 몰아냈으니, 중국화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하다. 게다가 원을 몰아내고 등장한 明은 저자가 말하길, 중국사에 있어 예외적으로 반중국화가 이뤄진 중국 왕조였다고 한다(중국사상 명이 조금 독특한 성격의 왕조인 점은 분명한데, 여기에서는 그 점에 대해 자세히 논하지 않겠다). 그런 주변 상황까지 맞물려 일본은 중국화와 반중국화가 대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대로 중국화가 이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는 淸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청 왕조야말로 '중국화' 사회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말한다. 저자는 당시 사회를 마피아들간의 싸움으로 비교하고 있는데, 환태평양 무역권을 독점하려 했던 '일본 마피아'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면, 조일 전쟁으로 동아시아 전체가 피폐해지자 이를 틈타 명을 무너뜨리고 손쉽게 천하를 장악한 것이 애신각라 일가의 '만주 마피아'였다고 보고 있다. 이보다 먼저 동남아시아의 은 유통로에 입각한 '대만 마피아'와 '이슬람 마피아', 새로운 참가자인 '남만(유럽) 마피아'까지 동남아시아에서는 여러 마피아들이 대규모 은의 대행진을 따라 활약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청 왕조의 등장 이후 사상 유례없는 호경기를 맞았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중국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영주의 성곽이라는 봉건적 환경이 유지되고(우리가 서양 중세사에서 흔히 배우는 장원제도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장사나 혈족 네트워크로 이뤄진 중국과 달리 지역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묶어두었다. 얼핏 보면 서적문화가 꽃피고 인쇄출판업이 성행하는 등 과거제가 보편화된 중국과 비슷한 사회적 환경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돌아섰다. 이를 두고 저자는 도쿠가와 초기 100년간(1600~1700)에 걸쳐 전국에 보급된 이네(벼)이에(집) 때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비로소 '자기 지역에서 자기 소유의 논만 잘 관리해도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갑제를 통해 주민들을 땅에 속박시킨 명나라의 사례와 비교할만한 일이며, 최근 중국인 1명이 평생 발급받는 증명서의 개수가 평균 70개라는 뉴스(클릭)와도 비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중세의 '職의 체계'가 근세로 오면서 '役의 체계'로 계승하였으니,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수백년간 가업을 잇는 장인가문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중세~근세 일본의 사회 분위기와 경제력을 종종 조선과 비교하고, 그 뛰어난 성장세에 주목하는 연구는 왕왕 봤지만, 반대로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읽으면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분명히 언급한다. 중일을 어설프게 섞어서 부론효과가 나게끔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중국의 근세와 일본의 근세는 각각 다르게 발전하여 각각 완결체를 이뤘기 때문에, 이들의 장점만 섞어서 하나의 혼합된 체계를 이루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론효과라는 것은 '메론과 같은 커다란 열매가 포토처럼 많이 열리도록 조합하여 부론이라는 신품종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포도와 같은 작은 열매가 메론처럼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 결과'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도쿠가와 초기에 어떻게든 독특한 일본만의 근세가 완성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이 시기 서서히 부론이 숙성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었다.

 

대대로 장남에게만 집안의 모든 것을 계승하고, 차님 이하는 내팽개치는 나라. 정해진 집안과 영토, 직업 내에서 대대로 세습이 이뤄지기 때문에 인구 증가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그러다보니 가직을 훌륭히 수행한 노인(장남 출신)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주지만, 젊은 주제에 올바르게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어려운 삶을 부여하는 나라. 사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배여든 세습직이 만연한 나라. 지위의 일관성이 극도로 낮은 신분제를 유지하는 나라. 이 시기의 일본을 저자는 북한과 비교하고 있어 다소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저자가 '에도시대 혹은 그 이후의 일본이 공산화나 개인숭배로 진행되지 않고 나름대로 의회제 자유민주주의와 다르지 않는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쪽이 어쩌면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니 말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게 된다. 중화의 황제처럼 천황이 실권을 갖고, 고등문관임용시험(과거제도)이 시작되면서 경쟁사회가 도래한다. 다이묘 가마다 끌어안고 있는 끌모없는 지방공무원, 즉 사무라이와 같은 세습귀족의 대량감원과 함께 과거제를 통해 합격한 관료를 통한 군현제도를 실시한다. 국가에 의한 일종의 보호정책이었던 에도시대의 신분제는 폐지되고, 장대한 규제완화정책이 실시된다.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일본은 1천년 가까이 지연된 중국화를 실현하려는 중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한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어째서 중국 및 한국과 달리 일본은 서양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 저자는 말한다. 중국은 중국 그 자체이므로 중국화가 필요없으며, 한국 역시 이미 옛날에 중국화가 끝났기 때문에 19세기가 되어도 중국화와 비슷한 서양화를 달성할만한 매력을 느끼지 못 했다고 말이다. 일본인의 경우,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국화'를 감행할 즈음에 발생한 세계사적인 거대한 흐름, 즉 '서양화'도 함께 완수할 수 있었지만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일찍히 중국화를 달성했기에 서양화의 시점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독특한 시각이었다. 중국화와 서양화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암튼, 메이지유신으로 인해 중국화를 이루려는 찰나...일본에서는 다시 에도시대로의 회귀 요망, 즉 모랄 이코노미를 강조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1천년 가까이 유지된 체계가 급변하는데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사회는 중국화와 再에도시대화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전자가 '자유화를 더 철저히 밀어붙이고 지금은 패자 집단이라도 계속 분투한다면 언젠가는 자력으로 승리자 집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보다 경쟁적이고 유동적인 사회'라면, 후자는 '진전되고 있는 한편의 자유를 억지로 되돌려서라도 승자독식 상태가 되어 버린, 일부의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상황을 통제하고 다수의 약자도 그 나름대로 존중받고 있다는 실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인 셈이다. 결국 쇼와 일본은 재에도시대화로 돌아서게 된다. 메이지유신 시절 일본의 자유경쟁과 무한 자기책임은 에도시대를 겪은 일본인에게는 분명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분명히 얘기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메이지유신은 결국 실패하고 쇼와유신은 성공'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창씨개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제는 동아시아 전체에 '에도시대를 강매'하려고 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창씨개명이라고 말이다. 창씨개명은 흔히 아는 것처럼 조선인이나 대만인을 일본인으로 흡수하여 동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였다고 한다. 오히려 진정한 일본인에게는 많지 않은 성을 붙이게 해 개명 후에도 조선인 혹은 대만인임을 알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명시킨 이유는 바로 중국이나 조선 전래의 친족체계를 새로운 성씨를 부여함으로써 깨뜨리고, 일본 전래의 이에(집안)를 단위로 하는 체계로 바꾸려고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후 일본은 만주와 몽골 등지를 중심으로 하는 블록경제 확립에 집착하고, 에도시대의 유산을 수출함으로써 이미 중국화가 이뤄진 지역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 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이는 마치 고려가 동북9성을 점령하고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채 여진족에게 되돌려준 사례를 떠올리게 하며, 단순한 영토 확장이 갖는 폐해, 그리고 거대한 영토를 경영한 역대 帝國내 정책입안자들의 고민과 노력을 곱씹어보게 한다).

 

여하튼, 계속 살펴보면 일제는 만주(특이하게 동북아시아에서 일본과 비슷한 경제와 사회구조를 지닌 지역) 지배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의 에도시대 수출이 성공하고 있음을 느꼈고, '에도시대의 머리'를 갖고 중화문화권 점령에 나섰다. 수도(장기의 왕)를 함락하면 이긴다, 유력정치가(장기의 포나 차)를 제쳐두고 괴뢰정권을 만들면(왕만 압박하면) 민중은 따라올 것이다(게임에서 이길 것이다) 등 바둑처럼 접근해야 하는 상황(바둑돌 하나하나는 큰 의미가 없고, 바둑돌 전체의 배치가 중요하다)에서 장기처럼 접근해버린 것이다. 그 대가로 일본은 도쿄대공습과 원폭투하라는 형태로 돌려받았다. 일본은 이후 난징을 점령함으로써 마치 전쟁에 승리한것마냥 만세를 불렀지만, 정작 중국 사회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 했기 때문에 결국 전쟁에서 패한 것이다. 저자는 일제가 '중화의 전통이 되어버린 세계보편적인 도덕의 체현자'로서 행동하면서 중국으로 들어온 만주족처럼 했어야 성공했지만, 그렇지 못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미국의 이라크 전쟁 후 과정과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흥미롭다.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논하면서 전쟁을 통한 일본인 스스로의 자성이 현재 好戰 국가 미국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 또한 문화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되새겨볼만한 부분이었다.

 

戰後 일본에는 '재에도시대화'한 촌락사회적인 생계체계와 '중국화'한 보편적인 정치이념과 에토스가 남게 되는데, 다시 한번 이 2가지 시스템이 하나로 버무려지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부론효과가 일본 사회를 강하게 뒤흔들고, 1970년대를 맞이하여 전세계가 '중국화'(신자유주의라고 말하는)의 물결 속에 몸을 맡기게 된다.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수상은 시장주도의 경제운영에 착수했으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뒤를 잇는다. 더불어 중국의 덩샤오핑 또한 개혁 · 개방정책으로 중국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영중 3국에 의해서 동시에 시작된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중국이 비로소 일본을 다시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부론효과의 휴유증 속에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일본 학자는 '송나라 중국보다도 300년 이전에 이슬람 발흥기의 서아시아가 세계 최초로 근세에 들어갔다'고까지 할만큼 이제 서구인의 자위사관은 단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음을 저자는 다시금 언급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일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가 북한화가 될 것인지(에도화), 중국화 3단계가 될 것인지, 혹은 일본 사회 내에서 남성 위주의 정사원제가 유지(여성에 대한 문제)되는 것에 대한 고민, 일본 노인을 지탱하기 위한 과도한 복지정책을 위한 활발한 이민제도의 개혁, 정치와 시장의 자치주의 등등. 여러 문제들은 일본만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살펴보면 한국인이 고민할법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자가 본문 말미에 남긴 '이 책이 사실 지금부터의 국민국가 재건에 있어 역사학이 얼마나 필요한 학문인가를 조금은 증명할 수 있는 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는 대목은 필자에게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역사학이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현실적인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극명하게 알려주는 책이 아닐 수 없기에). 그럼 이제 이 책을 읽고 필자가 느낀 점, 주로 저자의 생각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부분을 중점으로 살펴보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중국화의 5가지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의 반대가 일본문화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미 말미에 한국은 일찍부터 중국화된(그리고 정체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일본과는 달리 일찍부터 중국화된 사회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에서 중국화의 특징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권위와 권력이 일체된 것처럼 보이는 국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천황과 쇼군, 다이묘처럼 극명하게 나뉘지는 않았지만, 분명 명목상의 국왕과 이를 위시하는 외척세력, 혹은 집권세력들이 분명히 존재했으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그런 현상은 심각하게 드러났다. 더불어 정치와 도덕의 일체화, 지위의 일관성의 저하, 농촌 모델 질서의 정태화, 인간 관계의 공동체화 등 조선 전기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이 후기로 갈수록 점점 심하게 드러났다. 주자학은 더 이상 현실에 녹아들지 못 했으며, 쓸떼없이 현실과 괴리된 도덕성만 무의미하게 외쳐댔을 뿐이며, 과거를 본다 한들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는 양반이 늘어나고 당파의 힘에 따라 관직이 채워졌다(마치 요즘 공천받아 나랏일을 하듯이). 화폐는 잘 보급되지 않아 현물이 거래되고 도로와 수레는 널리 보급되지 않아 국가산업에서 차지하는 상업의 비중은 극히 낮았다. 지역단위로 묶인 농촌공동체에서 농사를 통해 얻은 수확물이 국가의 주요 재산이었으며, 고려때와 같은 글로벌리즘을 조선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이쯤 되면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밀접하게 교류했던 국가들이라 하더라도 중국화가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일본만 중국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있을까 싶다.

 

둘째, 중국화와 서양화의 구체적인 기준과 상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분명한 명시가 없다. 저자는 신분의 자유로움과 시장경제의 발달 등을 기준으로 꼽으면서 한-중은 이미 오래전에 중국화를 이뤘지만 일본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화 및 서양화를 적절한 시기에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신분제가 철폐되고 시장 주도의 자유경제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송대 이후 중국 사회(명을 제외한다고 하지만 명도 존속기간 내내 제외되어야 할까? 하는 부분에서 의문이다)와 중국화를 일찍이 경험한 한국 사회(고려와 조선이 이에 해당하겠지만, 양자는 분명 사회-경제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었다. 이를 그냥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에서 과연 저자의 말처럼 이뤄졌을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없어졌을지언정 과거제로 인한 또 하나의 신분제(사대부와 평민)가 등장했으며, 농사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 시기를 불문하고 항상 가장 중요한 민본정책 중 으뜸으로 꼽혔다.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상업의 비중이 차이나는 시기가 있지만,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제와 비교할 수는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저자가 너무 거시적인 안목을 적용한게 아닌가 싶다.

 

셋째, 현재 일본 사회를 '중국화'와 '에도시대화'라는 일관되면서도 거대한 역사 담론으로 살펴보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고 중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거시적인 안목으로만 살펴보다 보니 미시적인 부분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가난한 것은 무능력해서'라는 식의 시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장경제체제를 너무나도 극단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국가라고 하는 조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단순히 신분제 철폐와 시장경제체제 등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개인의 부귀와 성공도 개개인의 입신양명(과거제 등을 통한)으로만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중국화=무한경쟁체제, 에도시대화=정체되고 좁은 틀의 복지사회 등으로 지나치게 도식화한 이분법적 시각도 다소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화가 이뤄진 지역과 시기마다도 차이가 있을 것이며, 에도시대화가 이뤄진 일본 내에서도 지역과 시기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너무 크게 묶어서 살펴보려다보니 중간중간 불편한 해석들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넷째, 중국화를 이룩했던 송 왕조는 역대 중국사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 왕조다. 백수십만의 상비군을 보유하면서도 매년 엄청난 금액의 세폐를 요-금과 서하에게 바쳐 평화를 돈으로 사야만 했다. 그런 송을 지금 저자와 같이 경제사적으로, 사회-문화사적으로 바라본다면 분명 중국화는 의미있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국가라는 입장에서 바라봤을때 과연 중국화라는 것의 조건과 의미는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 대통령이 과거 중화제국의 유일한 천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이때, 미국의 중국화가 이뤄져야 전세계가 평화로울 것인데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지(미국은 주자학이나 유교와 같은 보편적인 통치이념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최근의 분쟁사건을 보면 오직 실리만을 추구할 뿐이다), 중국이 G2로 부상하는 지금 과연 현재의 중국이 과거의 중화제국처럼 중국화의 길을 걸어 나갈지(티벳 및 소수민족에 대한 강압정책을 펴는 중국이 재에도화의 길을 걸으려는 일제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문이다. 과연 오늘날 과거의 중국화를 제대로 실현할만한 의지나 조건이 맞는 국가는 존재할까? 좀더 다양하게 '중국화'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성을 새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재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중국화'를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고, 안 하고는 다음 문제인 것 같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사와 현재 사회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을때 어떤 것들이 눈에 보이는지를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형태는 '중국화'의 여러 다른 버전일 수도 있고, 그 말은 각 버전마다 앞으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고,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를 고민하는 것 또한 책을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 해봐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재밌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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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사실과 허구를 말하다
뤄지푸 지음, 양성희.이지은 옮김 / 아리샘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건 뭐 1년에 책 1권 서평 쓰기를 힘드니...보아하니 작년에 책 1권 서평 쓴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필자가 많이 게으르긴 했나보다. 오늘 간단하게 소개할 책은『삼국지』에 대한 교양서 1권이다(독서에 흥미를 돋구는 에피타이저 같은 소재로는 역시 삼국지 만한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은 소감을 전율, 감동, 매력이라는 세 마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한 군사, 정치, 문화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은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보다 깊이 있고 흥미로우며, 격조 있게 과거 영웅들의 숨 가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린중빈(林中斌) 타이완 전 국방부 차관

 

먼저 책 뒷면을 보면 타이완 전 국방부 차관은 이렇게 극찬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의 찬사를 받을 책은 아니다. 하지만, 왜 저런 찬사를 받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책 표지를 펼치면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인 뤄지푸 말고도 그림을 그린 로버트 잉펜, 만화를 그린 종멍순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러스트화가야 그렇다 쳐도 왜 만화가가 이 책을 집필하는데 참여한거지? 라는 의문이 들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목차부터 살펴봤다. 목차는 크게 '프롤르그 - PART 1 삼국지 현장산책 - PART 2 사실과 허구 - PART 3 삼십육계 - PART 4 용병과 계략'으로 이뤄져 있다.

 

맨 앞에서는 먼저『삼국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삼국시대 야전 진영, 성지 공방전, 수전의 포진 등등 당시 군사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3세기 무렵 중국의 병종과 포진, 포진에서 피해야 할 지형, 공성전과 공성용 무기, 삼국시대 전함과 수전의 포진 방식 등등이 올컬러 일러스트와 함께 친절하게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갈량이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는 '팔진도'를 일러스트로 그려서 표현한 것이 참신했었다. 기본적으로 삼국시대가 전쟁이 많았던 전란의 시대라는 점에 착안하여, 실제 역사서든, 소설이든 그 안에 많이 나오는 군사 분야 내용들을 정리한 셈인데 전공자에게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지만, 초보자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사전 정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왜 전한시대가 아닌 후한시대가 종영을 고하면서 삼국시대가 도래했는지에 대한 시대적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해 줬으면 더 좋았을껄~이라는 가벼운 생각도 해봤다.

 

그 뒤에는 보다 상세하게 삼국시대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삼국시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한대 문관과 무관제도, 구품중정제, 봉록과 인수, 삼국시대의 군제와 무장, 선박과 함대, 우역제도와 봉화, 전쟁 시의 보급창고 등등 다소 대중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한-삼국시대를 다룬 다른 책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한대 관제와 군제, 삼국시대때 쓰였던 무기류 등을 설명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역제도와 봉화', '전쟁 시의 보급 창고', '산과 계곡을 넘어가는 잔도', '장판교는 어떤 모형이었을까?' 등 세밀한 부분까지 짚고 넘어간 점이 좋았다. 봉화제도에 대해서는 '거연한간'을 토대로 일러스트와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으며, 군대에서 쓰인 곳간에 대한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오소 전투(관도대전의 승패를 가른 전투)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잔도는 여러가지 형태와 축조상의 장단점을 들어가며 이야기하고, 장비가 조조군을 막으면서 유명해진 장판교는 사실 아치형태 다리였다는 사실(재료가 나무인지, 벽돌인지, 돌인지는 잘 모르지만)도 전하고 있다.

 

전체 1/3이 넘는 분량을 삼국시대의 주변 환경(?)에 대해서 서술한 저자는 비로소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삼국지』와『삼국지연의』를 비교하면서(주로 正史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사실과 허구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다른 책에서도 많이 언급된 바 있었고, 인터넷 상에서도 여러번 논의된 내용들이었는데 관련 내용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를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병법 36계를 제시하고,『삼국지』내에서 그와 관련된 일화를 하나씩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앞에 만화가가 왜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여기에서 해결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해당 파트에서는 일러스트 뿐만 아니라 10여컷 내외의 만화를 통해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었다. 병법 36계 관련해서는 중국사 속의 다양한 사실들을 비교하면서 서술한 책들이 많지만,『삼국지』속의 이야기만 골라서 언급한 경우는 많이 보지 못 했기에 상당히 참신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만화를 삽입한 이유는 전체적인 내용 중 그림으로 소개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거나, 글보다 그림이 이해가 더 쉬운 경우, 시각적인 효과가 두드러지는 장면 등이 있었기 때문일텐데 만화를 보고 그런 점들을 느끼기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만화가 오히려 蛇足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용병과 계략'이라는 이름으로 꾸며져 있지만,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그닥 와닿지 않았다. 무슨 기준으로 이 장 속의 개별 에피소드들을 묶었는지 알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전체적인 목차 순서상 어색하기까지 했다. 차라리 파트 2 뒤에 바로 이어져 병법 36계를 설명하기 전에 나열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파트 1과 내용이 연결되는 것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내용과 파트의 제목 또한 어울리지 않았다. 그 뒤에 에필로그없이 바로 책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뭔가 '어? 어? 이거 뭐지?' 하면서 책을 읽다가 '어?! 뒤에 내용이 더 없네?' 하면서 바로 끝나버린 듯한 좀 허무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상 전체적인 책에 대한 총평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분명 이 책은 기존『삼국지』관련 서적과 다른 장점을 많이 지닌 책이었다.

 

1.『삼국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제반사항들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2. 일러스트와 만화, 삽화 등 시각장치를 많이 준비하여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3. 병법 36계와 연결시켜『삼국지』속의 전략전술을 이해하기 쉽게 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단점도 눈에 띄어 이 책의 장점을 깎아내려 안타까운 점도 많았다.

 

1. 전체적인 목차와 구성, 편집 등에 있어서 부족함이 보인다.

2. 내용 전개에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며, 전문성과 흥미 사이의 균형감각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부담이 없고 의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린중빈 타이완 전 국방부 차관이 감탄할 정도의 책은 아니었지만 말이다(하물며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랑 비교할 정도는 더더욱 아니고). 필자도 오랜만에 답사를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 없나~하고 골랐던 책인데 짧은 시간을 투자해 이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책의 평점은 별 7점을 주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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