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병법 - 칭기즈칸의 세계화 전략
티모시 메이 지음, 신우철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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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쓰는 서평이다. 요 며칠 답사를 다녀오는 바람에 왔다 갔다 하는 교통편 안에서 책을 볼 시간이 있어서 책 1권을 겨우겨우 읽었다.

책의 제목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고, 내용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나온 이런 유의 책들에서 ‘칭기즈칸과 전략’을 언급한다면, 요즘 CEO들에게 필요한 경영 전략이나, 경제 혹은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을 배제하고, 순전하게 ‘군사적 전략’이라는 측면만 다루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칭기즈칸을 너무 통시적 · 거시적인 史觀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딱 군사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왜 별이 만점이 아니고 하나가 빠졌냐? 그건 뒤에서 언급하겠다.

맨 처음에 책을 펴면 지도 5장이 나온다. 1201~1208년의 몽골, 1206~1216년의 몽골 제국, 1230~1240년의 몽골 제국, 1250~1260년의 몽골 제국, 13세기의 몽골 제국 이렇게 5장의 지도가 있다. 지도를 시기별로 세분화해서 작성한 것은 좋았는데, 마지막 13세기 몽골 제국의 지도를 보니 고려까지 포함이 되어 있어서, 고려의 항복을 영토 합병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싶었다. 고려가 항복은 했겠지만, 영토를 보존하고 몽골 황실의 부마국으로서 왕실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은 고구려가 내정간섭을 하고 왕위계승에도 입김을 불어넣으며, 신라의 수도 한복판에 ‘신라토내당주’와 주둔군을 두었던 그 시기 고구려의 영토를 어디까지 그려야 하는지의 문제와 똑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뒤에 저자 TIP인 ‘발음과 음역 가이드’ 및 저자가 쓴 ‘감사의 말(Acknowledgements)’ 부분을 보면 저자가 상당히 여러 언어로 작성된 원서 및 참고문헌을 통해서 이 책을 썼음을 알 수 있었다. 몽골어, 중국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라틴어, 고대 프랑스어, 그루지야어, 일본어 및 기타 언어로 쓰인 여러 용어들을 정리하고 이해하는데 있어 저자가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싶었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학문적 깊이가 상당히 넓고 깊구나~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번역자가 저자만한 학문적 식견이 부족한 상태에서 번역 작업을 하다 보니 저자의 그러한 학문적 깊이가 오히려 반감되어 버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다시 뒤에 가서 언급하겠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
Chapter 1 몽골제국의 탄생과 성장, 1185~1265년
Chapter 2 몽골군의 징집과 편성
Chapter 3 몽골 병사의 훈련과 군장비
Chapter 4 몽골군의 관리 : 병참술, 군수품 보급, 의료
Chapter 5 정탐 활동, 전략 및 전술
Chapter 6 리더쉽
Chapter 7 몽골의 적대국
Chapter 8 몽골군과의 전쟁
Chapter 9 몽골군이 남긴 유산

그밖에 용어 해설과 색인, 참고문헌을 첨부했으며 도해 목록도 따로 싣고 있어 좀 독특했다(이 책의 도해는 7개 밖에 되지 않는데, 대개 도해가 적은 책에서 도해 목록이 실리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아서이다). 이를 전체적으로 보면 몽골군의 군대와 편제, 장비와 전략 및 전술에 대해 상당히 세분화하여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Chapter 1에서 몽골 제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언급하고(40페이지 내외), 나머지 부분은 전부 군사 및 전쟁과 관련된 부분을 적고 있어서 애초의 이 책을 쓰고자 하는 목적에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각 Chapter별로 내용을 세세하게 살펴볼까 하다가, 이미 몽골군에 대해서는 기존에 알려진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필자가 느낀 몇 가지 부분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1. 다양한 자료를 통한 몽골군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주목됨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개인적으로 고구려군의 편제와 군장비, 군수품 보급, 피상적인 전략 및 전술, 주둔군의 생활상 등에 대해 3편의 논고(학위논문 포함)를 작성한 바 있는 필자에게 있어 이 책은 궁극적으로 필자가 훗날 쓰고 싶은 내용의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구려군에 대해서 이처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자료(문헌사료+고고자료 포함)는 현재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에 따른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므로 이 부분은 추후 보다 치밀하게 파고들어서 해법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암튼, 이 책은 필자가 평소에 느꼈던 그런 궁금증을 한 번에 해소시켜 준 그런 책이었다. 몽골군에 대해서 굉장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건드리고 있는데(물론 저자 스스로 언급했듯이 자료가 없어 추론에 의지한 부분은 추론에 의지했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 즉, 자료가 없어 더 자세하게 언급하지 못 한 부분은 정확히 구분해서 기재했다는 의미이다), 객관적인 자료에 의지한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더 신뢰성이 갔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부분은 몽골군의 징집과 편성 및 관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몽골군의 십진법에 의존한 편제가 이미 유목사회에서 이전부터 알려진 것이지만, 테무친이 케레이트 옹칸의 휘하에서 쟈무카(안다)와 함께 있으면서 배운 것으로서 그는 칸이 된 다음 이를 더 다듬어 발전시켰다고 했다. 솔직히 유목사회의 십진법에 의존한 군사 및 행정적인 조직편제는 흉노 때부터 있어온 것인데, 몽골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솔직히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다. 다만, 이것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가 좀 더 제도화되어 치밀하게 운영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또한 칭기즈칸이 유목민족 군대가 갖고 있는 고질병인 ‘완고하지 못한 규율’을 바꾼 것이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도 밝혔다. 본래 유목민족의 군대는 승리하면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전리품을 약탈하거나, 패배하면 초원 각지로 흩어지는데 칭기즈칸은 약탈의 가부를 결정하여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한다거나, 패배했을 시 결집장소로 다시 모여 전열을 재정비하게 하여 기존 유목민족과는 차별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밖에 병참술과 군수품 보급, 의료와 같은 부분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관심 있는 부분인데, 몽골군이 목초지를 확보한 다음 그에 따른 병력의 규모를 정하고 그에 따라 원정의 승패가 결정된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또한 여러 마리의 암말과 숫말, 양 등을 대동하고, 기동성을 살릴 수 있는 식문화를 갖췄다는 내용, 부대 내에 무당과 최신 의술을 펼칠 수 있는 의료진을 동시에 갖추고 전쟁을 수행했다는 내용 등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세하게 한번 더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Chapter 7이나 Chapter 9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 몽골군이 강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無敵은 아니었음을 저자는 강조했다. 전문 전쟁기계로 훈련받은 맘루크군이나 일본의 사무라이에게 몽골이 패했음을 강조하면서 몽골군과 그들의 차이점을 지적한 부분이 흥미로웠다(하지만 필자는 이에 좀 반대한다. 맘루크군이야 그렇다 쳐도 사무라이를 맘루크군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고구려의 철기병(개마무사)이 한때 무적인 것처럼 언급됐을 때 나온 지적(이는 서영교의『고구려, 전쟁의 나라』에서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처럼 저자는 기존의 견해들을 폭넓게 수용하면서도, 이를 다시 체계적으로 자기化하여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것들을 다시금 자세하게 정리한 것도 있지만, 똑같은 사료를 두고 새롭게 해석한 것도, 기존과는 아예 다른 내용을 언급한 것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몽골군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2. 몽골군의 전략과 전술(추상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을 구체화함

무슨 뜻인고 하면,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전략과 전술은 상당히 추상적인 부분인데 저자는 이를 어느 정도 가시화하여 설명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Chapter 6에서 몽골군의 리더쉽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를 당시 몽골군의 名將(단, 몽골군의 용사로 지목된 인물들 중 의외의 인물들이 섞인 것은 좀 아니었다고 본다. 필자는 ‘토쿠차르’나 ‘초르마칸’이 제베, 수부타이, 무칼리 등과 동급으로 취급될만한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몽골군의 훈련제도, 몽골군의 전략과 군사적 전통이라는 측면으로 풀어쓰고 있었다. 이는 예전에 아드리안 골즈워디의『로마전쟁영웅사』를 보면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것인데, 전략과 전술을 그와 관련 있는 다른 소재를 통해 언급하고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그 책에서는 로마의 유명한 지휘관을 통해 당시 로마군의 편제나 군사자원, 전통, 전략과 전술,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당시 몽골군에게 있어 임무형전술의 개념이 스며있다는 식의 접근이었다. 몽골군은 지휘관이 죽더라도, 그 하위 지휘관이 임무를 부여받아 본래의 작전을 수행하는데(제베가 수부타이와 함께 무함마드 2세를 쫓는 도중 사망했지만 그의 부대는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이러한 체계와 군율은 칭기즈칸이 초창기에 이룩해놓은 업적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임무형전술에 대해 뚜렷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이는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매년 쿠릴타이를 열어 원정의 목적과 방법, 지휘관과 부대의 규모 등을 정하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전쟁 수행은 최고사령관의 결정에 맡긴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다르크 W. 외팅의『임무형전술의 어제와 오늘』을 보면서 고구려군의 전략 · 전술을 이와 연결시켜 이해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몽골군 또한 이것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차근차근 풀어쓰는 서술방식이 책의 이해도를 높임

이는 Chapter 7에서 잘 드러나 있다. 저자는 몽골의 적대국을 소개하면서 이를 크게 유목민족, 금나라, 호라즘제국, 러시아 공국, 맘루크 왕조, 송나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조직-전략과 전술-몽골의 적응과 수용(몽골군의 우수성) 등 3~4개의 소주제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친절하게 풀어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책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물론 다른 Chapter에서도 이런 식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났기에 이것만 소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논문 혹은 학술서라는 생각보다는 개설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되었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담을 덜 느끼게 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배은숙의『강대국의 비밀』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군사 분야의 내용을 서술할 때는 차근차근 풀어쓰는 것이 상당히 좋은 서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병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하게 나눠서 설명해야, 독자들은 자세하게 당시 사회상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자료만 충분하다면 이처럼 당시 군사 사회상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다. 뭐 이밖에도 세세하게 더 말하고 싶지만, 일단은 이 정도만 정리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처럼 상당히 잘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외국 원서 혹은 번역서의 한계는 어쩌지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외국 원서의 한계가 뭐냐~그건 바로 저자가 아무리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언어로 된, 다양한 사료들을 살펴봤다 하더라도 그건 연구자가 속한 학계의 관점이 수용된 연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칭기즈칸에 대한 우리나라 연구자가 연구를 진행했다면 분명 이 책에서 고려와 몽골의 7차례에 걸친 대전(무려 40여년간 진행)이 언급되었을 것이다(몽골과 이렇게 장기간 싸웠음에도 그 영토와 왕실이 유지된 나라는 전 세계에서 고려 뿐이다. 또한 고려 왕실은 이후 몽골 황실과 혼인을 통해 상당히 깊은 친연성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한 나라 역시 고려 뿐이다. 그런데도 고려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의아할 뿐이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고려와 남송의 병력을 갖고 일본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내용까지 보다 자세하게 소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212쪽이 ‘몽골에 항복하기 전에 철벽 요새로 몽골군에 저항했던 고려인’이라는 한 줄짜리 소개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일본과 관련해서는 213쪽의 ‘몽골 해군은 몽골군 휘하의 중국인과 고려인이 주로 작전 수행과 전선의 이동을 도맡기는 했지만, 병력은 송나라 해군이 훨씬 많았다’(후술하겠지만 책에는 병력은 송나라 해군보다 훨씬 많았다~라고 적혀 있어 앞뒤 문맥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필자가 고쳐서 적었다)라고 적혀 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그리고는 일본의 사무라이를 맘루크군과 비교하여 몽골군에게 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니었나 싶다. 뭐 한편으로는 한국사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타까움은 금할 길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13세기 남송의 팽대아(彭大雅)와 서정(徐霆)이 쓴『흑달사략(黑韃事略)』을 단 한 차례도 인용하거나 언급하지 않은 것 또한 의아했다. 아시아의 연구자들이 칭기즈칸에 대해 연구한다면, 그것도 칭기즈칸의 군사적인 분야에 대해서 언급한다면『흑달사략』은 거의 바이블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는 그보다 이른 시기에, 다소 성격이 다르고 내용면에서도 조금 부실한『몽달비록』을 자주 언급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자가 이를 몰랐는지, 아니면 일부러 인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의아할 뿐이었다.

그럼 번역서의 한계는 무엇인가. 위에서도 몇 번 얘기했지만, 문맥이 이상하다거나, 인명 혹은 명칭에 있어 몽골사에 정통하지 못 한 사람이 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대 몽골에 대한 정말 보고서로 유명한 13세기 남송의 ‘조홍(趙珙)’이 쓴『몽달비록(蒙韃備錄)』을 ‘자오홍의 멩다베이루(Meng Da Bei Lu)’라고 쓴 점이 가장 대표적이다(150쪽에서는 그냥 다베이루라고만 적고 있어 남들이 보면 당최 무슨 책인지 모르게 해 놨다). 번역가는『몽달비록』이 무슨 책인지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은 독자들이 익숙하게 읽을 수 있는 인명과 서명으로 바꿔줘야 했던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는 특히 인명에서 많이 나온다. 조치의 아들 바투를 ‘보타’와 ‘바투’로 혼동해서 서술한다거나, 간접접근전략으로 유명한 영국의 바실 리델 하트를 ‘리델 하르트(B. H. Liddell Hart)’라고 쓴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는 몽골사를 잘 모르고, 전쟁 · 군사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번역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잘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동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번역가가 자신의 주 전공이 아닌 책을 번역하는 경우, 대부분은 관련 연구성과를 참고하고 공부하여 번역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들을 여기저기에서 속출시키는 것을 보면 번역가가 게을렀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다시 출판사의 편집 과정에서 부주의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 지명도 한번 살펴보자. 번역가는 채주(蔡州), 연경(燕京)은 그냥 알아보기 쉽게 적어놨음에도 바로 뒤에서는 개봉을 ‘카이펑’이라고 적고 있었다. 뭔가 번역에 있어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태였다. 그러면서 뒤에 하남성(→허난성)과 산동성(→산둥성), 사천성(→쓰촨성) 등은 그대로 적고 있지만, 창-투 티엔, 춘현, 쉬우편, 루샨, 리엔강, 주강 등은 중국 발음을 그대로 옮겨놓고 말았다(마치 아는 것만 한국식 표기로 고치고 나머지는 귀찮아서 안 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별 4개밖에 받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번역가가 아무리 영어학과를 나와 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뉴질랜드 내무부 산하 번역원과 뉴질랜드 번역사협회에서 일을 했으면 뭐하나? 몽골사 혹은 전쟁 · 군사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며 게으른데 말이다. 참 책을 재밌게 잘 읽다가도 중간 중간 이런 부분이 나오면 정말 짜증이 나고 만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까지 잘못 평가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몽골군에 대해 세세하게 분야를 나눠 차근차근 풀어쓰는 방식은 앞으로 필자 또한 배우고 싶은 스타일이기도 하다(그렇게 쓸만한 자료가 모아질런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상으로 책에 대한 간단한 생각은 마무리하겠다(다음에 또 언제 책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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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우리 바다의 역사
김용만 지음, 백명식 그림 / 살림어린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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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이다, 논문이다 바빴는데 잠깐 짬이 나서 오랜만에 책 1권을 읽었다.

바로 김용만 선생님의『지도로 보는 우리 바다의 역사』이다. 미리 귀띔을 하면 출판사가 '살림어린이'이긴 하지만 결코 어린이만 봐서는 안 될 책이다(인터넷서점을 보니깐 초등학생 중-고학년~중학생 초년생 정도를 대상으로 한 책 같다. 하지만 일단 어린이로 통칭하자. 기분나쁜 어린이가 있어도 반박하지 마시라~). 무슨 말인고 하면, 내용이나 구성면에서 어린이'만' 알고 넘어가게 하기엔 좋은 정보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 대체 무슨 내용이 있길래, 필자가 그리 말하는지 한번 따라와 보시라~

그동안 한국해양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몇권의 책을 읽고 간단한 후기를 남긴 적이 있다(물론 읽고도 후기를 안 남긴 책들이 몇 있지만 필자가 게으른 탓이니...일단 제외하자). 윤명철 선생님의 고구려 해양사 연구와 강봉룡 선생님의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이 그것인데, 이번에 읽은 책은 앞선 책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아! 물론 어린이용 책이라는 건 빼고 말이다. ^^ 가장 큰 차이점은 지도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 바다의 역사를 '지도'를 갖고 말하고 있었다. 어? 지도? 김용만? 뭐 떠 오르는 거 없는가? 그렇다. 저자는 이미 6년 전에 지도로 보는 한국사라는 책에서 지도를 통한 '역사 보기'를 시도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그때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 지도가 굉장히 익숙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한국사 관련된 책에서 '대놓고' 지도랑 역사를 같이 언급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잠깐잠깐 삽화가 낀 책은 있었지만, 전 항목에 걸쳐 지도를 제시한 책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바다의 역사(어렵게 말하면 한국 해양사)를 그렇게 살펴본다고 했으니 당연히 기대감이 큰 상태에서 책을 읽어봤고, 다 읽은 후의 만족감도 기대 이상이었다(여담이지만, 차라리『지도로 보는 한국사』처럼 어린이책이 아니라 대중교양서로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램도 있다).

앞으로 저자가 '지도로 보는~' 시리즈를 또 얼마나 내실라나 모르겠지만,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음...이 책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까 생각하다가 크게 목차, 지도, 내용 및 사진이라는 큰 틀에서 간단하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1. 목차

1장. 세 바다를 가진 우리나라
2장. 일찍부터 시작된 우리 바다의 역사
3장. 해상 왕국 백제
4장. 해외 무역이 활발했던 가야
5장. 또 하나의 해상 강국 고구려
6장. 신라의 해양 활동
7장. 발해의 해양 활동
8장. 동아시아 바다를 누빈 고려
9장. 탐라국과 우산국의 해양 활동
10장. 바다를 잃어버린 고려
11장. 조선의 해양 활동
12장. 조선과 일본의 전쟁
13장. 서양 세력과의 만남
14장. 바다를 잃은 나라의 운명
15장. 현재의 바다, 미래의 바다

목차를 한번 살펴보자. 뭐 주욱 보면 알 수 있지만 3장~14장까지는 뭐 크게 새로운 것이 없는 목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2장과 15장은 아니다. 저자는 1장에서 한국의 바다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 해양사를 살펴보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지식들을 알고 있어야 함에도 그동안 관련 서적에서 이런 내용들을 다룬 적은 없었다. 또한 2장에서는 신석기-청동기시대 사람들의 해양 활동부터 다루고 있어 이 역시 독특하다. 그리고 마지막 15장에서는 다시 1장과 이어지는 내용일 수 있는데, 현재 한국의 바다가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를 강변하면서, 앞으로 바다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고, 우리의 미래가 바다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언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좋은 한국 해양사 개설서라고 생각하는 강봉룡 선생님의『바다에 새겨진 한국사』에서 빠진 부분이 딱 이 책의 1~2장과 15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뭐 어린이용 책이므로 꿈과 희망을 복돋아주기 위해, 교육용으로 그런 내용을 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대중교양서적이나 전문서적이라 해도 미래 담론을 제시하고, 국익에 조언을 할 수 있는 방향이라면 역사학자가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이 흠이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암튼, 목차부터 일단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9장에서 탐라국과 우산국을 집어넣은 점이었다. 그동안 탐라국과 우산국을 독립적인 장으로 나눠 해양 활동에 대해 언급한 책은 없었다(필자의 무식으로 잘못 안 것이라면 언제든지 지적 환영!). 그런데 이 책에서는 탐라국과 우산국(제주도와 울릉도라고 하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든다. ^^)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어서 그동안 2% 부족하게 서술되어 왔던 한국 해양사가 이제사 제 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목차에서 백제는 '해상 왕국', 가야는 '해외 무역이 활발했던' 나라, 고구려는 '또 하나의 해상 강국', 고려는 '동아시아 바다를 누빈' 나라 등으로 각 왕조별로 특징있는 부연설명을 했다. 그런데 신라, 발해, 탐라국과 우산국, 조선에 대해서는 딱히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이왕이면 각 왕조별로 특징을 같이 언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예를 들어, '무슬림도 부러워한' 신라라든가, '동해를 개척한' 발해, '해양 교류의 중심지' 탐라국 등으로 말이다(이건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어린이용 책이기 때문에 단조로운 목차보다는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만한 재밌고 독특한 목차가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필자 개인적으로 주변을 살펴봤을 때, 어른들은 책을 읽을 때 목차를 잘 안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어린이들은 앞표지 그림부터 목차 하나하나, 책장 구석구석의 그림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디테일한 면까지 신경써야 하지 않나 싶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9장에 탐라국과 우산국이 같이 껴들어 갔는데, 분량이 적은 것은 알지만 우산국은 6장 신라 뒷부분에 따로 빼서 언급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탐라국이야 백제때부터 나오지만, 이후 고려 초까지 독립국으로 존재했으므로 고려 파트와 같이 나와도 괜찮겠지만, 우산국은 딱히 고려와 큰 상관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관련 내용이 적어서 그랬겠거니~싶다가도 울릉도 관련 전설을 조금 차용해 보는 것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독도 얘기도 조금 집어넣고. 뭐 이런 사소한 것을 빼면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목차다(목차가 마음에 들면 일단 논지 전개상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살펴봐서 마음에 들면 기분이 좋다).

2. 지도

이 책의 지도는 참 좋다. 그렇다고 단순히 지도가 있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도가 있다는 것은 그 지도를 보고 이해하는 사람에게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정보의 기억'에 있어 아주×2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쉽게 말해 그림(혹은 시각적 자료)으로 본 것은 글로 본 것보다 더 기억에 잘 남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저자는『지도로 보는 한국사』에서『당서』「양관전」의 '좌도우사'를 언급했던 것일게다. 실제로 『전쟁세계사』라는 책의 앞부분을 보면 '세계 무기지도' 혹은 '세계 전투지도'가 들어가 있는데, 그 2장의 지도만으로도 앞으로 책 속에서 전개될 내용을 확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책이나 논문 등지에서 이러한 지도 및 시각적 자료를 제시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다양한 지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며,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도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몇몇 지도를 살펴보면 저자가 많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먼저 13쪽의 한반도 중심의 수역을 나눈 지도. 어린이책이나 기존 한국 해양사 책에 없는 지도다. 우리 바다의 역사를 알기 전에, 우리 바다가 현재 어떤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15쪽의 서해안 갯벌을 표시한 지도. 시각적으로 상당히 적절한 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23쪽의 우리나라 바다의 해류를 그린 지도. 헉! 이건 뭐야? 지도를 거꾸로 뒤집어서 거울로 비춰보듯이 돌려놨다. 쿠로시오 해류가 밑에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무시무시하게 쏟아지는 형상이다.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쿠로시오 해류에 대해 극적으로(?) 잘 표현한 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44쪽의 왕인의 왜국 이동과 일본 내 백제 유적지를 표시한 지도도 어린이책에서 쉽게 보기 힘든 지도라서 자료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47쪽의 겸익의 인도 항해로를 표시한 지도는 정말 좋았다. 겸익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텐데, 당시 겸익의 인도 항해로를 통해 백제의 해외 교역로를 추정한 것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54~55쪽에 소개된 김해시 일대의 해안 지도다. 고지형과 현재의 지형이 다르다는 것은 상식인만큼 역사 복원에 있어서도 지리적인 변화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시각을 잘 반영한 지도인만큼 이 지도에서 꼽히는 名圖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가장 왼쪽의 고대 지도와 대동여지도, 현재 지도를 조금이라도 비슷한 비율로 같이 실었으면 한다. 그러면 똑같은(최소한 비슷한) 축적으로 당시 지형 변화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최소한 현재 지도에 고대 지도의 해안가를 겹쳐서 같이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59쪽의 야광조개를 통한 대가야의 해외 교역로를 그려낸 것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며, 81쪽의 동해에서의 신라의 해양 활동에 대해 그려낸 지도도 참신한 시도였다고 본다. 더불어 115쪽의 서긍의 고려 이동 경로를 일자별로 정리한 것도 지도의 장점을 잘 살린 지도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141쪽에 실린 강화도의 지형 변화 모습도 김해시 해안의 지형 변화를 그린 지도와 같이 秀作으로 꼽고 싶다.

그밖에 몇몇 새로운 사실을 접한 지도도 있는데, 발해인의 국제 무역 활동을 그려낸 103쪽 지도(이연효 상단이라는 건 여기서 처음 봤다)와 109쪽의 왕건의 후백제 공격로를 그린 지도(왕건의 나주 점령은 익히 알았지만, 강주를 포함한 백제 4개 항구 점령은 여기서 처음 봤다), 150쪽의 최부의 표류 여행로, 152쪽의 문순득의 표류 여행로 등이 그러하다. 그동안 이런 사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린이책을 보면서 아하~하고 깨달은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214쪽에 실린 우리 바다 주변의 8개 광구를 표시한 지도도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우리의 바다 영토가 이렇게 구분되는구나~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역시나 글 몇줄 쓰는 것보다 이런 지도 1장 만드는 것이 더 큰 효과가 있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지도다. 그런만큼 지도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아~이러이러했구나~'라고 바로 당시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낼 수 있을만큼 완성도 높은 지도들이 많이 실려 있었다. 물론 위에서처럼 몇몇 아쉬운 부분들도 적었지만, 전체적인 지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3. 내용 및 사진

이미 앞에서 얘기했지만, 참신한 지도를 소개한 부분에서는 역시 참신한 내용이 동반하기 때문에 여기서 재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지도 외적인 부분은 조금 더 언급하도록 하겠다.

창녕 비봉리패총에서 출토된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배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 것은 좋았다. 우리나라의 해양문화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니 말이다. 다만, 신석기시대 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진을 하나 실어줬으면 좀 더 좋지 않았나 싶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삽화 1장보다는 사진 1장을 실어주면, 읽는 이로 하여금 더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밖에 백제가 바다로 흥했지만, 바다로 망했다는 논지 전개도 마음에 들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바다가 얼마나 중요하며, 잘 활용하면 득이지만, 잘못 활용하면 독이 된다는 것을 잘 알려준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83쪽의 '서해를 건너 당나라를 이용한 신라'라는 소제목이 눈에 띈다. 역사를 조금만 공부한 친구라면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을 '어쩔 수 없는 선택' 혹은 '외세를 끌어들인 배반자적 행태'라는 생각을 할텐데, 중도를 적절히 지키면서 신라의 해양 활동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해 해군의 당나라 등주 공격이 당나라를 겁주기 위한 경고였다는 해석도 적절했다고 생각하며(필자 역시 당시 발해군의 능력이 당나라 내지의 영토를 점령할 수는 있어도, 발해의 국력이 그 영토를 유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도에도 나왔지만, 이광현이라는 해객 혹은 이연효, 이영각, 이처인과 같은 발해 상인에 대한 내용도 처음 보는 거라 굉장히 신선했다. 세부적으로는 탐라국이 500년 무렵 고구려에 복종하여 가옥이라 불리는 진주를 바친 것도 처음 봤으며, 탐라국 왕으로 도동음율, 유이도라 등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또한, 205~207쪽에 실린 수중 고고학에 대한 내용도 아주 좋았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를 소개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얼만큼 과거 역사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의 중간중간에는 Tip이라고 불릴만한 내용들이 꽤 있는데, 영해에 대한 설명, 모세의 바다가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에도 있다는 내용, 가야의 문신 풍습, 나침반을 사용한 신라인들에 대한 내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 몇개 더 적자면, 책의 말미(215쪽)에 해적 얘기도 살짝 있지만, 현대판 소말리아의 해적 얘기를 살짝 넣어주면 어땠을까 싶다. 실제 해적들에게 선원들이 피랍되고, 물자와 배상금을 지불하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파견되는 등 현재 한국의 해양 활동에 대한 얘기를 한 2~3줄 정도만 더 넣어줬으면 더 괜찮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32쪽의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사진이 한장 실려있고 그 안에 4개의 흰색 동그라미가 있다. 설명에는 '고래를 잡는 그림이 여러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라고 했는데, 정작 4개의 흰색 동그라미를 살펴보면, 고래를 잡는 모습보다는 그냥 고래 그림과 뭍짐승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어 설명과 전혀 맞지 않다. 이런 실수는 왜 했나 의아할 정도다. 요즘같이 반구대 암각화가 이슈화되고, 물에서 꺼내느냐 마느냐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이 부분은 정말 이 책에서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것 말고는 크게 내용면에서 필자가 아쉬워할만한 부분은 없다.

뭐 이상이다. 쓰다보니 주절주절 두서없이 썼는데 전체적으로 내용이나 구성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일러스트 작업한 지도나 삽화, 사진 등은 조금 더 손봐줬으면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주 독자층 중에서 필자처럼 일일히 꼬집어 가면서 볼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싶지만, 그래도 어린이용 책이다보니 그만큼 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야 하는 노파심에 몇자 적어 봤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저자는 어린이책이라 하더라도 결코 소홀하게 책을 쓰지는 않는다. 어느 책에선가, '우리 아이에게 볼만한 책을 써 주기 위해서 어린이책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약속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니 모르고, 저자의 어린이책이 얼마나 팔리는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저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를 제공한다. 마치 쵸코파이 속의 달콤한 마시멜로처럼, 책을 보다 보면 기분 좋은 정보들을 쏙쏙 제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앞에서도 언뜻 언급했지만, 지금까지 한국 해양사에 대해 모든 챕터별로 지도를 첨부해서 이렇게 서술한 책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큰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혹여나 어린이책이라서 '에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필자가 위에서 썼듯이 대학생 이상이 봐도 결코 부족함없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면 안 될 책이라 본다.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가 이광현이나 겸익에 대해 물어올 때 자신있게 대답해줘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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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같은 경우, 원제목인 통천제국의 적인걸보다는 한국식 제목(Detective Dee and the Mystery of the Phantom Flame)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가 너무 식상해서 말이지. 어제는 검우강호를 보고, 오늘은 적인걸(이하 생략)을 보고, 연이어 무협영화 2편을 봤다. 어떻게 보면 적인걸은 무협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무협액션이 빠진 것은 아니니...이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추리를 소재로 한 시대극이다. 배신과 음모, 모략과 반전 등의 요소가 없었던 영화들은 없지만(화려함이 극에 달한 <황후화>같은 영화도 뭐 이런 소재들이 다분히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 소재 자체를 영화화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하겠다), 이번 영화처럼 고대 당나라의 수사일지를 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은 없었다. 

적인걸이라는 인물은 예전에 측천무후 관련된 책(기억이 잘 안 난다)을 봤을 때, 잠깐 봤던 기억이 난다. 뭐 내용은 측천무후 시절 실력 위주의 중신들이 많이 등용되어 활약했다~는 것이 주를 이루지만 저자의 결론은 '그래도 측천무후 시절 공포정치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고, 그 힘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격으로 활약하던 악인들도 있었다~' 뭐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唐史에 대해 관심이 적은 건 아니지만, 측천무후와 관련된 부분은 그닥 관심이 없어서 관련 자료를 몇번 뒤적거린게 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로 나온다니 인터넷에서 끄적거리면서 검색을 좀 해 봤다. 최근의 측천무후에 대한 연구사적 성과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치세 동안 백성들은 평안했고,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단다. 대강 보면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가~와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민주화 후퇴, 언론 탄압, 국민에 대한 정보 통제 등등에 대한 문제가 많았지만 한국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 준비야 장면 내각때부터 이뤄졌다고 해도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력있게 밀어붙인 것도 사실이니~뭐 그때의 부작용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고. 암튼, 측천무후에 대한 평가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극과 극을 달리고 있으니 이 점 또한 흥미로웠다.

그럼 이제 영화 얘기 좀 해 보자.

영화는 측천무후의 황제 즉위식을 앞두고 건조가 한창인 120m 높이의 통천부도(通天浮屠)라는 거대한 불상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용문석굴의 비로자나불을 모델로 만들어진 이 가상의 건축물은 정교한 CG로 작업되었는데, 영화 초반부터 보는 이로 하여금 우와~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암튼, 로마의 사신단에게 이 건축물을 소개해주던 당나라의 관리가 갑자기 자연발화하게 되고, 영화는 긴장감있게 흘러간다. 자연발화한 당나라 관리를 조사하던 대리사(당시 법집행기관)의 책임자 역시 자연발화하는 등 사건이 심각해지자 감옥에 갇혀 있던 적인걸을 다시 불러오라고 명한다. 여담이지만 어떤 분 블로그에서 말하길, 이 자연발화 CG를 우리나라 스탭진이 담당했다고 하던데 맞나 모르겠다.   

그는 측천무후의 대리청정을 반대해 반역죄 명목으로 감옥에 들어간지 8년째였다. 측천무후가 적인걸을 필두로 자신이 총애하는 상관대인 정아, 대리사의 부책임자(?) 배동래에게 이번 사건의 조사를 명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는데 여기에서 어리숙한 척 하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적인걸의 친구로 적인걸이 감옥에 들어갔을때 그 역시 감옥에 들어가 왼팔 하나가 잘렸던 사타충이 바로 그였다. 

그는 목숨을 부지해 이후 궁궐의 보수 책임자로 일했고, 지금은 통천부도의 건축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역시 과거 대리사에 일했던 경험을 살려, 따로이 사건을 수사했고, 적인걸 일행에게 중요한 단서를 알려준다. 여기까지 봤을 때 뭔가 감이 오긴 했다. 저 어리숙한 양반이 뭐가 있구나~하고 말이다. 암튼, 그렇게 사건 수사가 계속되고 알 수 없는 집단들에게 계속 공격을 받는 적인걸 무리. 결국 정아(원래 그를 싫어했지만 적인걸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버린 그녀)는 매복에 걸려 적인걸을 구하고 죽게 되고, 배동래 역시 매복에 걸려 자연발화하고 만다.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면서 남긴 증거때문에 적인걸은 결국 측천무후 정치의 실체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자연발화의 원인과 주범, 거기서 더 나아가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에 대해 모든 걸 다 알아버린다.  

전체적으로 느낌은 <셜록홈즈>를 봤을 때와 비슷했다(여담이지만 <셜록홈즈>를 보면서는 <일루셔니스트>와 <프레스티지>를 떠올렸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소설 속의 인물을 참 잘 살렸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참 재밌게 이야기를 잘 짜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적인걸은 당나라의 명신보다는, 중국사에 길이 남는 유명한 판관 4명 중 하나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라마로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판관 포청천! 실제 중국 내에서도 포청천이 가장 유명하단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판관은 바로 적인걸인데 이는 네덜란드인 고라패라는 사람이 그에 대한 책을 서술했기 때문이라고 한단다(http://cafe.daum.net/ijkhanmoon/Vzk1/76). 뭐 원전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좀 뜨면 원전이 번역되서 좀 발간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암튼 영화를 주욱 보면서 원래 내용이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가 재직하면서 해결한 사건이 17,000여 건인데, 이후 상소가 단 1건도 올라오지 않았을 정도로 그의 판결은 늘 정확하고 공정했다고 하니 참 대단한 사람이었구나~싶다. 어떻게 단 1건도 상소가 올라오지 않았을까? 흐음. 그럼 영화를 보면서 눈여겨 본 부분 몇가지만 얘기하고 마무리하자. 

1. 화려한 CG와 웅장한 스케일이 눈에 확 띈다. 스케일 면에서 지금까지 나온 어떤 시대극보다도 컸던 것 같다. 장안성(그런데 정아가 배동래를 비롯한 대신들 앞에서 측천무후의 명을 공표하는데 東都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 같던데...그런 낙양 아닌가? 쩝...)의 화려한 모습을 CG로 재현했는데, 성 주변의 수운으로 수십척의 배들이 드나들고, 항구에는 엄청난 숫자의 장막이 펼쳐졌으며 외국인-중국인 할 것 없이 전세계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활기차게 생활하는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았다. 화려함은 <황후화>만 못 했지만, 그래도 측천무후의 머리 장식이나 복장은 눈에 띌 정도로 화려했다.  

2. 영화 초반부의 설정이 마음에 든다. 적인걸은 맹인 행세를 하면서 감옥에서 일하는데(난 처음에 진짜 맹인인 줄 알고 눈을 나중에 어떻게 살리지? 라는 생각에 한 3~4초간 고민했다능...-.-;), 그 일이라는 것이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 중 처리가 된 것들을 불태우는 것인 것 같다. 그는 올라온 상소들을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계속 알았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지내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 게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 보지는 못 했지만, 영화에서 묘사한 바가 신선해서 눈에 띄었다. 또한 적인걸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 그런 설정을 보여줌으로써 이후 측천무후 시절, 그가 명신으로 활약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복선을 깔아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3. 인물 간의 캐릭터가 확실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적인걸이지만, 그를 도와주는 2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상관대인 정아와 대리사의 배동래다. 적인걸을 처음에 미워했으나 점점 그를 사랑하게 된 정아, 그리고 그런 정아를 남몰래 아끼는 배동래. 극 중간중간마다 그런 뉘앙스가 풍기는 장면들이 조금 있었으나 철저하게 마지막까지 그것들을 배제했다. 정아는 측천무후에게 살면서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냐?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 라고 물으면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그 속내를 비추는데 만족해야만 했다(그런 정아의 마음을 적인걸이 아는 것 같지는 않았고 -.-;). 즉, 철저하게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적하는데 있어 어설프게 로맨스를 집어넣지 않은 점이 좋았다. 또한 적인걸 일당이 각각 쓰는 무기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면서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해서 그런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이 영화를 봄으로써 적인걸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는 점, 그리고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는 탐정소설이 있다는 점, 그래서 그걸 보고 싶게 했다는 점이다. 어떤 분이 영화에 대한 댓글에 '측천무후의 등장에 따른 정치적 이야기 뭐 이런 것을 알고 싶었는데 이건 아니다' 뭐 이렇게 쓴 걸 봤다. 이 영화 자체가 측천무후의 등장에 따른 당시 정치사를 사실적으로 다루려는 목적이 없는만큼 그런걸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냥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는 탐정소설을 영화화한 것 뿐이니 말이다(그래서 앞에서처럼 <셜록홈즈>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실존인물이고, 이 안의 인물들과 배경이 실제 사실에 어느 정도 근거했다고 하더라도 내용면에서 비판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밖에 중간중간 좀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자연발화의 원인인 서역산 '적염금귀'라는 독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다. 걔네를 끓여서 만든 물을 마시거나 피부에 닿으면 자연발화가 된다는 것인지, 걔네들은 만지기만 해도 그런 것인지, 걔네들이 물으면 그런 것인지 다 뒤죽박죽 섞어놔서 좀 의아했다. 또한 영화 마지막에 측천무후의 퇴위를 '적인걸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라고 한 것도 조금 NG였다. 실제로 그는 측천무후 집권 내내 재직했고 부와 영예를 누렸던 인물로서, 영화 상에서야 적염금귀에 중독당해 지하의 귀신도시(鬼市-한대에 장안성이 무너진 부분에 형성된 할렘가랄까?)로 들어가 살지만 실제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영화상의 설정을 갖고, 영화 말미를 저렇게 장식하나? 싶었다.  

암튼, <검우강호>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영화라서 즐겁게 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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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명나라 때다. 일단 무협 영화 중에 명대를 배경으로 한 것은 많이 못 봤던 것 같기도 한데...(아닌가? -.-;) 시작부터 그게 좀 독특했다. 솔직히 명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여 세트며 소품 등을 준비했겠지만 필자에게는 그닥 확 와닿지 않았다. 아니, 뭐랄까? 명대라는 것을 느끼게 할만한 것이 무언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해야 할라나?

대략의 주인공은 일반 무협영화와 큰 차이가 없다. 절세무공 혹은 불멸의 영생 등을 얻기 위해 온 무림이 난리를 친다. 좀 특이한 거라면 전 무림이 혈안이 되어 찾으려는 것이 바로 달마의 사체라는 것이다. 대개 무림비급이나 뭐 이런 걸 찾을때면, 숨겨진 고수의 연공실, 혹은 숨겨진 비책이나 선약 등을 찾거나, 은둔고수를 찾아 몇갑자의 무술을 단숨에 전수받아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달마의 사체를 찾는다는 설정이라 좀 독특하다. 달마의 사체만 찾으면 뭐가 다 해결된다는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영화를 계속 봤다. 달마가 죽은 뒤 누가 그 무덤을 파서 사체를 둘로 쪼갰는데, 명나라 황실은 지앙(정우성)의 아버지(명의 재상)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명한다. 하지만 黑石(검은 돌 3개를 죽일라는 사람 집에다 갖다 놓는 것 같다. 영화 안에서의 설정은 명나라 관리들에게 엄청난 돈을 상납받으며, 조정을 주무르고 맘에 안 들면 죽여버리는 베일에 싸인 암살단으로 나온다)이라고 불리는 암살단이 쳐들어와 사체를 빼앗기 위해 지앙의 온 가족을 몰살시킨다. 그 와중에 암살단원 중 1명인 세우가 등장하고, 지앙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다시 한번 더 싸우지만 결국 심장에 칼을 맞고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영화가 스무스하게 지나간다. 일반 무협영화처럼 이제 곧 복수가 시작되겠지~라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도망간 세우는 성형을 하고, 정징이라는 이름으로(이때부터 양자경이 등장)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딴 동네로 이사가서 비단이랑 복주머니 같은 것을 팔면서 살아가는데 그 동네에서 우편배달부로 살아가는 '강아생'이라는 사람과 만나 이윽고 사랑에 빠진다. 강아생의 적극적인 대쉬에 자신이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는지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먼저 결혼하자고 청혼해 버리고, 둘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산지 반년 정도 지나고, 둘은 남들이 볼 때 별탈없이 지내는 평범한 부부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전당에 돈을 찾으러 갔다가 떼강도가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게 됐고, 정징은 그만 숨겨둔 절세무공을 발휘해 떼강도를 물리치고 남편을 구해낸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강아생, 그리고 그런 그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며 따르는 정징. 행복한 나날이 계속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흑석이 떼강도 두목에게 당시 사건 정황을 듣고 결국 정징을 찾아내고,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솔직히 여기까지가 1시간 조금 넘은 시간동안 진행된 내용인데, 솔직히 보면서 정우성이 대체 언제쯤 뭔가 보여줄까? 라는 기대감과 약간의 지루함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2시간 거의 다 지나가는 거 아니야? 하고 말이다.

뭐 결론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내용이 전개될지 대강 감들이 오실 것 같다. 약간 스포일러 좀 하자면(죄송 -.-;), 정우성은 흑석이 예전에 죽인 줄 알았던 지앙이 마찬가지로 성형을 해서 강아생의 삶을 살았던 것이고, 처음부터 정징의 정체를 알고 결혼을 했던 것이다(정징은 정우성 얼굴 고쳐준 그 의사한테 가서 또 성형을 하고, 그 의사는 정우성이랑 절친이고...뭐 이런 관계). 이게 가장 큰 줄거리이고 요 중간중간마다 흑석의 또 다른 고수들인 마법사나 레이븐, 옥(세우가 나가고 나서 새로 뽑은 여자 암살단원, 완전 잔인하고 못된 캐릭터) 등이 등장해 화려한 액션을 보여준다.

스토리 얘기는 고만하고, 그럼 딴 얘기 좀 하겠다.

일단 이 영화는 기존의 무협액션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뭐랄까? 이 영화의 감독, 제작진들의 이전 영화들을 살펴봤을때 분위기가 약간 틀어졌다고나 할까? 단순히 진중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영상미가 넘쳤던 무협액션(<와호장룡> 봐봐라. 무협액션 영화가 그렇게 운치있게 만들어질 수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취권>이나 <황비홍>, <엽문> 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아닌가)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약간의 유희를 집어 넣었다고나 할까? 정우성은 강아생을 연기하면서 연신 수더분하고 착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연기를 계속 펼친다. 그런 순수함에 정징은 그를 더 사랑하게 된 것일테고, 그는 철저히 자기의 과거를 속이면서 복수의 칼날만을 갈았을 것이다. 그런 정우성의 연기는 옛날에 봤던 <똥개>에서의 모습을 살짝 연상시킨다(물론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빙했는지, 실제 했는지 모르지만 대사 치는 것이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연기력에 플러스가 됐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 말미에 정우성의 존재가 밝혀지고, 정징의 존재도 밝혀지면서 흑석의 두목 왕륜의 존재가 밝혀지는 대목에서 풉! 하고 웃음이 나온 것도 일종의 유희랄까? 앞서 이 영화의 배경이 명대라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 했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절감했다. 흑석 두목 왕륜은 9품 문서담당 내시였으며, 그런 자신의 삶이 싫어 무술을 미친듯이 연마해 자신의 삶을 가리고 흑석을 운영하면서 관리들 위에 군림했던 것이다(동창은 아니었지만, 그가 내시라는 점이 상당히 역설적이게도 합리적이었다? ^^;). 일부러 목소리도 변조하고 수염도 붙이고 다니는 대목에서 뭔가 모를 코믹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그가 달마의 사체를 얻기 위함은 고자에서 정상 남자로 변신(?)하기 위함이었다니, 그 대목에서 뭔가 모를 충격이 왔다. 기존의 무협영화와 달리 뭔가 색다른 결론, 뭔가 신선한 내용 전개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분위기 말고 눈에 띄는 것은 좀 더 다이나믹한 액션씬이었다. 솔직히 <와호장룡> 같은 영화는 무협액션보다는 조금 미화해서 예술영화 풍이었다. 와이어 액션이 뻔한 나긋나긋한 동선과 부드러운 칼놀림, 선비끼리 부채로 싸우는 듯한 그런 분위기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게 오히려 기존 무협영화와 달랐고, 세계인의 입맛에 딱 맞았기 때문에 큰 호평을 받은 것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무협영화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조금 기운 빠지는 영화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너무 지극히 현실적인 <황비홍>, <엽문>같은 영화는 좀 단조로운 감이 없지 않다. 화려한 액션 말고 딴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안 될 것 같고 뭐 그런 거 말이다(무조건 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화려한 액션씬만 보여줘야지, 어설픈 드라마, 멜로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좀 NG다!). 그렇게 봤을때 이번 영화는 <와호장룡>식 액션을 조금 더 다이나믹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굉장히 멋있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과 같은 액션씬이 여럿 나왔는데, 정우성의 인터뷰에 나온 것처럼 무지 힘들었을 것 같았다.

세번째는 무협영화이면서 독특한 내용 전개와 반전, 캐릭터 설정을 했다는 점이다. 먼저 소재나 시대가 독특했음은 앞서 언급했고, 캐릭터 설정도 잠깐 얘기했지만 좀 더 하자면...나쁜 놈 두목은 공식적으로 내시, 음성적으로는 명나라를 휘어잡는 무림의 짱!, 남자 주인공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얼굴을 바꾸고 복수를 다짐하는 어리숙한 바보, 여자 주인공은 역시 얼굴을 바꾸고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 한때 완전 잘나가던 여자 암살단원, 그밖에 가족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지만 무시무시한 독침을 사용하는 무술 고수 암살단원과 마술과 무술을 같이 사용하는 암살단원, 살인을 즐기는 못된 여자 암살단원 등 캐릭터 설정이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정말 그런 애들이 있었을 법 한. 또한 얼굴을 바꿔 다른 삶을 살지만 결국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존재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이런 건 그동안 무협소설에서는 종종 나온 소재지만, 무협영화에서 나온 적은 없지 않나 싶다. 오우삼의 명작 <페이스 오프>와는 다르지만,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정우성의 연기력도 안정적이었고,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 설정도 무리없이 흘러가서 재밌게 감상한 영화였다. 또 오랜만에 보는 멋진 무협영화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런지는 모르지만, 이번 6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영화인들이 10분간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였다니 외국 사람들 눈에는 더 괜찮게 보였나 보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가 고대 중국 버전으로 재현되었다고도 하던데, 글쎄~그것보다는 더 운치가 있다는 점에서 동양인들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의 선전을 기대하며, 글을 마치기 전!! 몇몇 지적하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


1. 영화 제목을 왜 '검우'에서 굳이 '검우강호'로 바꿨나?? 원래 제목이 더 좋은데...무협 영화라서 '강호'가 들어가야 한다고 누가 주장했나 보다. 영화의 운치를 절감시키는 효과가 있는 제목이었다고 생각한다.

2. 한국 영화 포스터에 각 캐릭터를 설명한 대목이 웃겼다. 정우성을 두고 '신분을 감춘 비운의 암살자'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가족을 암살자들에게 잃고 신분을 감춘 비운의 아들내미였을 뿐이다. 쌈 잘 한다고 암살자는 아니지 않는가? 또한 마법사 역할로 나오는 대립인을 흑석파의 책사로 적고 있지만, 영화 안에서 그가 정말로 지략을 쓰는 장면은 별로 없다. 영화 후반부에 마치 짜고 친 것처럼 왕륜을 죽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실패하고...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여문락이 분한 레이븐은 독침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흑석파의 암살자...라고만 밋밋하게 소개할 뿐이고, 양자경은 당대 최고의 여검객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어!? 분명 얘가 실력이 짱인 건 알지만 암살자인데...이렇게 양자경과 정우성을 소개하고 나니 마치 정우성이 나쁜 놈 같고, 양자경이 착한 놈 같잖아? 이건 일부러 그런건가? 아니면 영화를 안 보고 포스터만 대강 얘기듣고 만들었나?? 쩝.

3. 지앙은 성형 전 흑석이 쳐들어오자 가족을 잃고 자기도 죽을 뻔 했다. 그런데 몇년 후 성형하고 나서는 레이븐과 함께 온 암살단원들을 모두 물리칠 정도로 실력이 월등해진다. 그리고 여유를 잃지 않고, 적들 앞에서 칼을 갈기까지...그동안 피나는 훈련과 연습을 해 온 것일까? 왜 이렇게 잘나졌지?? 지앙의 과거 내용도 스킵하는 식으로 좀 알려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난 솔직히 정우성이 성형한 지앙 역을 했다기보다는 지앙과 관련된 뭔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나올 줄 알았었다. 왜냐면 초반에 지앙이 맥없이 암살단들에게 져서...주인공인 정우성이 그렇게 약할리 없다! 고 생각했으므로.


뭐 이 정도??? 그래도 전체적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잘 봤다. 특히 오우삼 감독의 영화기도 하고, 정우성이 이번 영화 대박나서 비(<닌자 어쎄씬>)보다 더 크게 성공하라는 의미에서 별 5개 주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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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사의 재조명 - 삼국사기 사서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 1
김상 지음 / 북스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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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때 인터넷 상에서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김상이 쓴 2번째 책이다. 첫번째 책인 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 고대사의 수수께끼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읽은지는 꽤 됐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이제서야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적게 됐다.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거창하면서 희한(?)하기까지 하다. 삼국사기를 통해서 삼한사를 재조명한다고? (대개『삼국사기』에는 삼한의 역사가 잘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삼국지』동이전에 더 많은 기록이 있다고 보지) 거기다가 辰王은 알겠는데, 전기진왕시대는 뭐야? 그럼 후기진왕시대도 있다는 소린데? 그런 시기구분은 처음 보는데? 라고 느낄만한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다. 맞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삼한의 마한, 진한, 변한은 지금껏 우리가 접했던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살펴본 삼한이다. 거기다가 진왕에 대한 해석도 기존에 나온 학설들과 달라 굉장히 신선하고 참신하다. 어떻게 보면 첫번째 책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더 어려운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필자 역시 1번 읽고는 내용이 제대로 이해돼지 않아 2번 이상 읽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기존에 필자가 갖고 있던 생각과는 많이 다르며, 필자가 그간 봐왔던 방법론과 달랐기 때문이라는 소리도 되겠다.

현재 각 서점 싸이트를 보면 이 책에 대한 리뷰는 거의 없다. 찾아보니 알라딘에 1개가 있는데, 그닥 많은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혹시 이 책을 안 읽어본 분들에게 이 책이 어떤 것이다~라고 소개하는 의미도 있고, 필자가 읽고 난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오늘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아! 미리 말해두지만, 김상의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김상의 새한국고대사'라는 인터넷 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도 살펴볼 수 있다. 책으로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굳이 책을 보지 않겠다~하는 분은 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첫번째 책이 광개토태왕능비와『삼국사기』를 비교하고, 백제사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삼국사기』와『삼국지』를 비교하고, 가야-신라사 중심이라는 차이점이 있단다(저자의 말). 이 책의 목차를 봐도 저자는 가야사를 상당히 앞부분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는 가야사가 한-일 고대사를 모두 엮고 있는 열쇠와도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이전에 가야사에 대해 공부한 것이라고는 철제집단의 형성과 활약상(?)에 대해 쓴 글이 전부([뿌리아름]가야와왜 게시판 13~21번 글)인지라 그닥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가야가 한-일 고대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나? 싶었다. 실제 저자는 칠지도도 백제 파트가 아닌 가야 파트에서 다루고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중에는 왜 그런지 알게 됐지만, 암튼 이처럼 신선한 시각으로 한국 고대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종종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본질을 오도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 비판받고 있는데, 그렇게 봤을때 이 책 역시 유사역사학의 한 축에 속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단 한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일단 Pass하도록 하겠다).

저자가 보는 가야사는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눈다. 물론 이는 한국 고고학계나 고대사학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단, 둘 사이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6가야로 가야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단순히『삼국유사』의 영향?), 최근에는 김태식 선생님의 연구로 인해 가야사를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구분하고, 전기의 맹주를 금관가야, 후기의 맹주를 대가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김태식 선생님의 저서나 논문을 보면 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 설을 따라 패널을 만들어두고 있다. 즉, 가야가 단순히 6국만 있었다고 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헌사학적 입장에서 보면 전기와 후기는 하나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 같지만, 고고학적으로 봤을때 분명 가야지역에는 문화적으로 단절된 시기가 온다. 금관가야가 몰락하고 바로 대가야가 득세하여 후기가야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당시 가야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즉, 중간에 가야 지역의 삼한백제에게 정복당하여 국권을 잃고 광개토태왕이 삼한백제를 깨부시자 그 휘하에서 다시 독립한 것이 5세기 초라고 보는 것이다. 기존의 학설은 고고자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못 했다고 한다면, 저자의 생각은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물론 고고자료에 금석문이나 문자기록이 주루룩 적혀 있지 않는 이상, 문헌기록과 일 대 일로 완벽하게 등치시키지는 못 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 어느 정도 개연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여부 정도는 따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시작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셈이다. 

일단 이 책이 어떤지 간단하게 얘기했으니 뒤이어 책 전체 내용을 다 열거하지 않고, 중간중간 필자가 눈여겨 본 부분 위주로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1.『삼국사기』에 기록된 '왜'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저자는『삼국사기』나 <광개토태왕릉비>에 나오는 왜의 실체가 다른 것이며(뭐 엄밀히 말하면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자의 왜는 임나, 후자의 왜는 삼한백제로 보는데 백제에 임나가 속해있던 시기가 있었으니 양자는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삼국사기』의 왜는 신라와 지겹도록 대결하는 것으로 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왜로서 임나를 지목하고, 왜의 세력 변화에 따라 왜인, 왜국 등으로 신라측에서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고 적고 있다.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의 서부에 한인, 왜인, 중국인 할 것 없이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았다는 것은 뭐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명백하게 왜라고 기록된 세력이 임나라는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2. 백제 3루왕의 재위기간 복원 시도

예전에 필자가 까페에 썼던 글을 저자가 인용하면서, 백제 3루왕의 재위기간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필자는 그때 백제 초기 6왕의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지만, 한번 뒤집어보면 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는 식의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물학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을 일반화하려 했던 것 같다. 암튼, 이것을 저자는 辰王이라는 존재를 내세워 새롭게 해석하고 있었다. 한성백제가 결국은 삼한백제(필자가 말하는 비류백제, 난 둘 사이의 용어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게 더 구분하기 쉽다고 보기 때문에 이 용어를 고집하는 편이다)에 속하게 되고, 그 담로국으로 지위가 전락함으로써 백제 왕력에 들어가지 않는 인물들이 생겼는데, 백제 초기 왕들의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것은 이때문이다~가 저자의 주장이다. 이 역시 참신한 주장인 것은 마찬가지.

3. 말갈백제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

말갈백제. 말갈이 어떻게 백제랑 한데 엮일 수가 있지? 저자는 고이왕과 眞氏를 말갈계로 해석했다. 그리고 한반도 중부 한강유역에서 확인되는 거대한 적석총(밑변의 규모만 따지면 장군총보다도 큰)을 말갈계 무덤으로 보고 있었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말갈은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물길-읍루-말갈-여진 등의 계보를 가진 집단은 아니며, 한반도 말갈로 따로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들은 고구려 산하에 소속된 집단으로서 적석총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고분이라는 주장을 한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서 한강유역의 적석총을 백제 묘제 중 하나로 가르치면서 하는 말이 '전성기인 근초고왕때 고구려와 대등해진 백제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구려의 묘제인 적석총을 차용해 만들었다'인데, 필자는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들으면 늘 의문이 들었다. 거짓말~당시 고구려가 백제에게 그 정도로 의미가 큰 대국일리도 없을 뿐더러, 근초고왕이 정말 그렇게 영토를 확장하고 고구려를 까부시는 등 활약을 했다면 굳이 고구려 묘제를 차용했을까? 싶기도 하다. 마치 우리나라 대통령이 통일을 하고 만주 지역을 되찾아 한국 현대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고는 중국식 무덤이나 미국식 무덤(뭐가 있을까?)을 따라했다는 소린데...그게 합당할까 싶다. 말갈백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필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3세기 한강유역의 역사를 공부할 때 상당히 자극이 되게 했던 내용이다.

4. 북방 이주민의 유입과 신라의 강성

전기신라, 중기신라, 후기신라 등 저자는 신라 역시 왜와 비슷하게 국력의 변화에 따라 시기 구분을 하고 있다. 신라 역시 한성백제(온조백제)나 가야처럼 삼한백제에 속한 적이 있는데, 이때 신라 왕력에도 백제 초기 왕력과 같은 비정상적으로 긴 재위기간들이 확인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러다나 북방에서 여러차례 유목세력이 이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힘을 키운 신라가 점차 세력을 불려 결국은 고구려, 백제를 누르게 된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한창 고고학계에서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북방에서 남하한 세력이 비단 유목세력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있기 때문에, 현재 학계에서는 영남 지역에서 확인되는 북방계 문물을 고구려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보다 직접적으로 흉노-선비계로 해석한 것 같다. 뭐 필자 또한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논리는 오히려 장한식의『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보다 더 나아보인다. 

뭐 이 정도?

인터넷 상이나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많은 연구가 진전된 주제들이 이 책에서 대부분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상당히 도전적인 필체로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다. 전체적인 큰 틀은  김성호 선생님의 비류백제와 관련된 학설과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필자 역시 김성호 선생님의 비류백제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완존히! 하지만 저자의 책은 그보다 더 논리적이며, 그보다 덜 추측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도전적인 얘기를 하고 있지만, 공격받을만한 여지는 적다. 기존의 학설과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런 여지가 적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좋은(?) 현상이다(최근 후속편을 책으로 내신다고 하니 또한 크게 기대하고 있는 바이다). 

물론, 이 책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고자료로 역사를 가늠하는 필자에게 있어 뭐랄까, 문헌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이렇게 새로운 견해를 내놓는 것이 그닥 달갑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기존의 통설이나, 파격적인 새로운 견해나 고고자료로 가늠했을 때 어느 정도까지 그 진실성을 밝혀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영남 지역에서 나오는 북방식 문물, 이동식 솥과 같은 유물은 분명 북방식이다. 이는 신경철 선생님도 수차 언급한 바 있는데, 북방식 문물이 고구려 것인지, 아니면 흉노-선비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흉노-선비나 고구려에서 출토된 이동식 솥에 대한 고찰없이는 정확한 판단이 내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 있어 확실하게 흉노-선비계로 규명하고 있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첫번째 책과 인터넷 공간 등에서). 그런 부분은 분명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영산강 유역의 거대 옹관묘 등에 대해 일제시대때 도굴이 다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 우리가 원하는 유물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도 평양 일대의 낙랑고분이 일제강점기때 무수히 파헤쳐지고 유물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인정한다. 그건 분명히 그걸 파간 사람에 대한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그런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다. 즉, 이 역시 추측성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공격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가야와 후기가야의 공백기간에 대해서도. 분명 고고자료 상으로도 공백기간이 시작될 즈음 금관가야가 무너지는 경향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공백지대로 백제와 신라의 문화적 요소가 투입되는 것도 확인된다. 하지만 이것을 딱! 삼한백제의 가야지역 정벌과 삼한으로의 편입으로 볼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때 국내에 남아있는 삼한 70여개국을 비정한 연구성과들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놀랐다. 비정의 근거는 다 지명을 갖고 하는 말장난(죄송합니다만, 고고자료 없이 그런 비정은 분명 추측 50% 이상이기에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선학들께 죄송합니다)이었다. 즉, 이것들은 참고사항은 될 수 있지만, 필수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삼한의 70여개국을 찾을려면 각 지역마다 그 중심 취락 혹은 중심 성곽이 될만한 것들은 추려서 토기, 철기 등과 같은 유물 1~2점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필자는 그런 연구성과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엄청나게 규모가 큰 연구가 될테고,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제대로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무슨 삼한백제를 따지겠는가. 

이처럼 고고자료를 갖고 한국 고대사를 재단하면 아직도 부족한 것이 수두룩하다(재야든, 강단이든). 하지만 고고자료의 한계성만을 고집할 수만은 없다. 역사고고학이라면, 어떻게든 고고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과 관계를 맺고 그것이 사실(fact)인지 아닌지 입증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문헌의 기록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모델, 해석이다. 그렇게 봤을때 저자의 이 책은 그간 한국 고대사에 있어 막힌 부분을 어느 정도 뚫어줄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처음 보는 분들, 역사를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솔직히 비추지만, 조금만 더 관심갖고 본다면 분명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기존의 생각에 자극을 주고 다소 혼란함을 주는 책이야말로 그 사람의 지식을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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