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닥'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도시와 나-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성석제·백영옥·정미경·함정임·서진·윤고은·한은형


  여행에세이가 여행지에서의 감상과 안내를 서술하는데 치중되어 있다면 이 책은 ‘이야기’에 힘을 쏟는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만들게 되는.

  성석제, 정미경, 함정임, 백영옥, 서진, 윤고은, 한은형. 연령과 성별과 문단 경력이 각기 다른 소설가들은 각각 떠난 일곱 개의 도시에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배경이 해외라는 것, 여행이 깃들어 있다는 것, 낯선 도시의 느낌이 가미되는 것, 이런 특징을 가지고서 일곱 명의 소설가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엮어 낼까. 그들이 찾아간 도시에서 각기 다른 것에 시선을 두고 써내려간 일곱 개의 소설을 만나면 생생한 여행에세이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낯선 도시를 여행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성석제 작가는 프랑스 아비뇽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연극제에 초대받아 극단과 함께 아비뇽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홀로 자전거 여행에 도전한다. 성석제 작가 특유의 입담으로 주인공의 자전거 모험의 익살스러움을 잘 보여주는데 주인공이 희곡작가이기에 더욱 더 연극적인 느낌이 든다. 작가의 유도대로 자연스레 주인공의 험난한 자전거 여행에 동참하며 프로방스의 모습을 훑는다. 결국 자전거로 통과하지 못하는 노후화된 다리를 맞닥뜨리고 마는 그런 자전거 여행을.

  백영옥 작가의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은 미국 뉴욕의 도시를 보여준다. 뉴욕의 서블렛 문화를 통해 짝사랑하는 남자의 자취를 엿보고 싶어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감각적으로 그려진다. 스토커 같은 여성의 모습과 기이한 부부의 모습, 인간의 관계란 정말 다양하구나 싶은 이 이야기는 관찰자적으로 지켜보며 내면의 일렁임이 짝사랑하는 남자에게서 그의 아내에게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반응이 좋았던지 작가는 이 단편에 이야기를 더 엮어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를 만들었다.  

  정미경 작가는 일본 도쿄로 향한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녀가 나오시마 섬으로 동행하는 여정을 그린 <장마>. 여행이란 그런 것인지, 여자의 특별한 사연과 분위기에 이끌린 남자는 제 일정은 잊어먹고 여자의 여행 경로에 동승한다. 일본 공연예술 부토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남자의 여행 일정이었다. 이 부토에 대한 묘사가 남다르게 다가왔는데, 두 사람 모두 이 부토를 찾아 관람하고 서로의 일정을 오가며 서로를 이해하며 마음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다. 한번쯤 우연히 만난 낯선 이와의 교감에 대해 꿈꾸게 되는 것, 그것도 여행의 한 부분인 것도 같다. 이것 역시 영화와 드라마가 주입해 놓은 건가.


네온의 명멸처럼 짧지만 환한 어떤 것이 가슴속에서 반짝 빛났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p119 정미경, <장마>


  함정임 작가는 여행을 많이 떠나고 여행책을 많이 쓴 모양이다. 정미경 작가는 프랑스 브장송으로 간다. 그곳에서 사라진 남편의 자취를 찾아 호텔들을 순례하는 여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여자에게 매혹된 프랑스인의 모습도.

  윤고은 작가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찾는 딸의 모습을 그려보인다. 주소 하나만을 가지고서 지난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주인공의 세비야를 돌고 돌며 흔적을 찾는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서진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최초로 머물렀었는데 그 기억을 가지고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전개한다. 꿈을 찾아 로스앤젤레스를 가지만 향수만 쌓아가는 88만원 세대의 안쓰러운 모습들을.

 한은형 작가는 아프리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이 도시를 방문한 적 없다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온전히 머릿속에서 상상력으로 그려낸 것이다. <붉은 펠트 모자>라는 제목으로 2010년 시민혁명으로 운명이 바뀐 튀니지 고위관료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튀니스의 모습을 그려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결국 작가도 그려낸 것이라니. 물론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형상화 한 것이겠지만.

  책 뒷부분에는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이들의 여행경험과 여행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하는데 서진 작가의 여행의 의미가 딱 눈에 띈다.


  우리가 사는 삶이 '그닥'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잠시 제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머물다 오는 듯하다고. 어디를 가든.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정신을 차리는 일은 더딜 때가 있다.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제정신을 버리고 사는 거였던가. 어쨌든 여행에서 마냥 그곳에서이 사건과 감상이 아니라 이 소설들처럼 상상의 세계 속에 나를 두어 보는 일도 재밌으리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풍경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지의 아름다운 경관을 사진에 담고 그 속에 함께 풍경이 된 나를 사진 찍어오는 일이 여행의 시작에서 끝을 장식하는 외향이라면 여행에서 느끼는 모든 생각과 느낌들은 내향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외향보다 내향이 가득해서 책을 덮어도 시각적인 사진 한 장 없음에도 보이지 않는 의미의  끈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만 같다.

   


 길을 오래 걷는다면 비움은 미학의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p6


  사색적인 이 여행의 기록들은 저자의 여행의 이유와 닿아 있을까. 배낭여행이 계속되면 배낭은 간소해질 수밖에 없는 이 당연함 속에 저자의 배낭은 가벼워졌고 그만큼 저자의 가슴은 채워졌다. 십 년의 시간 틈틈이 여행을 다닌 저자는 그곳에서 타인들을 만나며 생생히 살아올 때의 전율이 글들을 쓰게 했다. 현지에서 편지로, 엽서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하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때의 기록들을 서랍 속 노트에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떠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 그들은 저자에게 사회와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일상에 한정되어 갇힌 인식의 벽을 넘는 것, 그것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의 느낌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담은 책이기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여행에 대한 풍경도 사진도 없다. 오직 그곳에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소제목 역시도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 자신,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보유)은 누군가를 잊어가는 일(망각)인 셈(p104)"이라 말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오롯한 기억의 틀 안으로 그들을 들이는 것이다.

  여러 모로 “이게 어떻게 여행책이야?”라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정도 장소에 대한 소개도 시간적 순서에도 의하지 않은 이 책이 오히려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릴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더불어, 눈에 현혹되지 않은 채 나 역시 저자와 같이 어떤 것들, 삶에서 이루어지는 면면에 대한 재인식의 시간을 경험한다.

  가령, 스페인의 교역의 중심지이자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어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문명의 충돌에 대해 생각한다. 그 대립의 시기와 이유를.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들에 대해 좀더 깊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부질없이’라고. 그것은 전쟁으로 이어져 각각 승패를 거듭하며 팔백 년을 이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선 김병화박물관과 마주한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되어온 조선인들이 농업노동인력으로 일했고 김병화는 그 리더였다. 이 곳에서 저자는 우리의 ‘디아스포라’에 대해 가지는 협소한 사고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고 대한민국의 틀 안에서 훈육된 국가주의의 사고의 수준에서 행동하고 있다고. 수많은 침략을 당하는 역사에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있다. 더구나 남북으로 분단된 이 상황에서 더더욱 떠돌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권력자들이 이들에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일상 속에서 사는 데 지장없기에 스스로 의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래서 저자에게는 일상을 벗어난 시공간에서 게으른 관념의 틀을 산산조각 내준 풍경을 잊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사하라의 사막 마을 시와에서 사구 넘어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저자는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절경인 풍경 앞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규준과 척도에 대한 개념을 떠올린다. 또한 이것을 사회와의 연관성과 연결짓는다.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미담은 늘 숭고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환경이 가능성을 구속하고 있는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 ‘대단한 이들’의 뒤편에는 낙오된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게 잉여가 된 이들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환치되고 포장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곳에서 그들을 주목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기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들개가 등짝을 맞는 일만큼이나 흔하고 쉽게 일어난다. 작은 사막 마을 안에서 한계를 가지고 살아온 삶은 다재다능하고 리더십도 있는 그가 더 넓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꺾었을지도 모르겠다. p77


  저자가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 속에서 이끌어내는 사유의 면면을 보면 그것이 단지 ‘사유를 위한 사유’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조차 철저하게 생활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관념, 그것은 생활을 이끌고 생활 또한 관념을 이끌고 그렇게 서로가 맞물리기에 중요한 요소이다. 내 삶의 진정을 위한 사유의 여행은 저자의 여행 내내 계속된다. 저자가 소제목으로 기억하는 나라의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그를 생각 속으로 이끌어주는 현지인들이다. 그들은 그를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그 나라의 삶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며 어떤 때는 저자가 생각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집어주기도 한다.

  저자가 여행한 나라들을 살펴보면 스페인, 우즈베키스탄, 홍콩,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의도한 바는 아닐 지 모른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전쟁을 겪었고, 사실 역사에서 그 어떤 나라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전쟁의 상처가 없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그 전쟁의 기억에 대한 시간 차이가 있을 뿐. 전쟁의 대상이 다를 뿐. 같은 경험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저자가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으로부터 인지된 폭력의 예감’을 생각한다. 불확실함 속에서 권력의 파괴성을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권력의 주체로 인해 폭력 또한 예측불가이므로 국가에 대해 자발적이 되고 만다는 것을.


역사는 살인사건처럼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라면 더욱 그렇다. p262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다르지 않던가. 저자와 마주친 사람들은 이 역사가 남겨놓은, 권력자들이 지져놓은 모순과 삶의 피폐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그런 존재들은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나라의 역사, 사회적 배경을 떠올렸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거듭 생각했다.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나라의 여행객이 찾아오면 자신의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러나 정작 아름다운 풍경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저자의 이 고민의 시간들은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을 더욱 철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였던가? 사진도 없고 그들의 이름도 가명이 된 것은.


'연대와 동정의 차이‘를 들이민다든가, ’나눔과 봉사의 차이‘를 들이민다든가 하는 것은 오히려 합리성에 경도된 스스로가 낳은 모순이 아닐까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여행 중이든 일상에서든 어디에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걸과 동정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쌓아온 논리는, 동정은 연대보다 열위에 있으며 계급을 고착시키는 반동적 행위라는 것이었다. 그런 논리에 따라 구걸에 요지부동 무반응이었던 나는 현실의 ’고통‘들을 대면하면서 그것이 관념적으로 이성을 따르는 이의 어쭙잖은 형식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p283~284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기 전에, 어쨌든 생각과 고민은 인식의 확산을 한다는 점에서, 일단 문제를 인지한다는 점에서 대안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관념적이더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여행의 욕구는 한국이 싫어서


   올림픽에 각 나라의 선수단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줄기차게 등장하는 피켓을 보며 ‘저긴 어디지?’ 하는 나라들도 등장한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나라가 있는데 가본 곳은? 조금이라도 아는 곳은? 참……. 80일간의 세계일주도 가능한 시대지만 내가 그것이 가능하지 못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유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유가 있거나 없거나 세계를 누비는 사람도 많다. 이 세계는 수많은 나라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여행, 다른 곳을 방문하는 일은 무한대로 일어날 일이다. 그 무한대 속에 역시나 증가하는 여행기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여행지에 대한 소개 책자가 아니라 순수 여행기, 여행에세이의 특징은 첫째 누가 썼느냐다. 그 글을 쓴 이가 아주 유명한 사람이거나 일반인이다. 너무도 당연한 걸. 그럼 일반인의 여행기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아주 특별하게 ‘여행을 떠난’ 이야기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여행기라 분류되는 여행의 에세이가 가진 차별성이 사실 없더라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의 여행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여행이든 동경을 일게 만드는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자신의 감상을 가지고 그것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늘 ‘나는 그곳에서 나를 찾았다’, ‘여행은 전환과 변화의 기회다’,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떠나라, 여행을 가보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 뭐, 이런 이야기를 특별히 감상적인 문체로 글로 쓰고 있다.

   그 기록을 읽는 독자에게는 특정한 곳에 가기 위한 참고용이거나 대리만족을 얻기 위함이거나 유명하다니까, 베스트셀러라니까 하면서 책을 읽지만 가끔 타인의 여행기는 씁쓸한 만족을 남긴다. 여행기란 그래서인지 나의 여행의 기록이 아닌 다음에야 글쓴이들 자신의 힐링이 될 뿐 나의 힐링이 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취향, 스타일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이 여행스타일이 맞지 않아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행기에 대한 감상 역시도 책들과 마찬가지로 스타일이 있으니까,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데도 어떤 글은 와닿고 어떤 글은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스타일을 얘기하니 여행기에 대한 나의 취향은 여행에 대한 소개와 감상보다는 인문학이 가미된 책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곳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떤 여행기는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결심하기 전의 이야기에 솔깃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한 기억에 남는 여행에세이 또한 흐릿한 이유가 될지 모른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탄생한 이야기일 것이지만 모두 그런 이야기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에세이가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이나 괴테의 여행기록처럼 문학작가들의 여행 기록은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들이 작가라는 점 때문인가 생각도 했지만 또한 시대적인 묘미도 있는 듯하다. 최근의 여행이 아니라 그들이 떠났던 시대의 느낌을 아울러 볼 수 있기 때문에. 읽은 여행책 중 좋은 느낌이었던 건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였다. 

작가도 낯선 이름이었고 처음 책을 쓴 사람이었지만 여행에 관한 책 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스타일을 내가 선호하나.

 가을이 되었고 축제의 향연이다. 폭죽소리와 음악소리가 땅을 울리며 귀로 전해지는데 같이 마냥 즐겁지가 않다. 여행을 맘속에 품지만 발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또 생각하지만 맘속의 그 열망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유인 듯도 하다. 아주 강렬한 열망으로 여행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미미하게 여행을 마음 속에 드리우고 있는 것은 여행이라기보다 그저 “떠남”에 대한 욕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떠오르는 책이 <한국이 싫어서>이다. 이 책은 소설책으로 문학적으로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문체며 전개방식이며 말들이 전혀 울림이 없었다. 그저, 책 제목만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스타일과는 역시 달랐다고 말하면 되겠다만 이 책이 그토록 열광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나만큼 한국이 싫은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이 얘기에 공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이 떠남에 대한 욕구는 다른 이유 없이 한국이 싫어서이다. 그러니 여행에 대한 욕구와는 다른 종류의 욕구이다. 축제의 음악이 난무하는 현장에서도 이탈하고 싶은 마음 가득한데 이 난장판인 나라를 뜨고 싶은 마음이랴 오죽하랴. 한국의 뉴스가 들려오지 않는 곳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하루키 글엔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제목 때문에 라오스 여행기인 줄 알았다. 역시나, 라오스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작가가 라오스를 여행했고 그리고 라오스만의 특별함을 작가식대로 펼쳐내는 이야기인줄 알았건만 라오스는 어디로 가고 보스턴이 튀어나왔다. 찰스 강변의 오솔길을 걷던 보스턴, 뉴욕과 포틀랜드, 아이슬란드, 그리스 미코노스 섬과 핀란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이탈리아 토스카나, 일본 구마모토. 이 여행기에서 작가가 담아온 나라들이다.

  이 책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이고 해외에서 곧잘 머물렀던 작가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들을 다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했던 그 시간의 경험이 지금보다 더 생생한 기억일 수 있겠다 싶긴 했다. 그런데 작가는 그때도 벌써 책으로 엮기 위한 글을 따로 써두고 있었다 한다. 참, 여러 면에서 놀랍다.

  온전한 여행의 느낌보다 조금 길게 낯선 나라에 머물며 여행자와 생활인의 느낌이 섞인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기억도 끄집어낸다. 작가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그리스 섬에서 탄생했다. 또한 숲과 섬, 바다 등의 풍경이 가득한 곳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일상생활자로서 방문했던 장소에 대한 글도 상당하다. 던킨 도너츠 방문기와 더불어 스타벅스 비교하기,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 및 레스토랑 방문기들이 그렇다. 자연을 보며 느끼는 감상과 이러한 현대의 공간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철학(비슷한 것)이다. p137


  그렇다고, 이 여행기에서 작가가 딱히 안 풀리는 얘기를 해 놓진 않았다. 작가의 철학 때문인지 작가의 여행에서 잘 안 풀리는 일들은 비켜간 건가 싶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들이 있진 않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여행을 행하고 그곳을 감상하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시선만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인 만큼 라오스에 대한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작가가 일본에서 라오스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갈아타는 경유지 하노이에서 들은 말이다. 라오스로 가기 위해 하노이에서 1박을 하던 중에 베트남사람이 물은 말, “왜 하필 라오스같은 곳에 가시죠?” 이 말에서 작가는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대체 뭐길래요?”라는 뉘앙스를 읽으며 라오스 여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까지도 이유가 없었지만, 가서 그 ‘무언가’를 찾겠다고. 그 질문은 작가에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었고 보다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p181~182


  작가가 여행한 시간은 지금보다 오래 전이지만 그 시간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곳에 가본 적 없고 작가 또한 재방문하지 않았으니 기억은 작가가 여행한 그 시간 속에 그곳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여행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일까?

 

혼자서 낯선 땅을 여행 하다보니 단순히 숨을 쉬고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쯤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더랬다. p220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듯이 여행에 대한 생각 역시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여행을 글로 풀어내는 방식도 감정도 차이가 있다. 작가의 여행기는 한창 노르웨이 숲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던 시절의 절정의 인기 시절의 글 몇편만을 기억하고 있는 터라, 생각했던 스타일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잔했다.

  전세계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풍이 불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대표 작가이기에 이 작가의 에세이도 많은 이들에게 관심이 증폭되었을 테다. 여러 여행기를 읽다 보니 이 작가의 여행기의 차별성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건, 그만큼 작가가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수많은 여행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더불어 생각한다. 출판시장에서 여전한 열풍을 지속하기 때문에?

  이렇든 저렇든 항상 여행기의 결론은 이것인 것 같다. 자, 떠나라!

  하루키 역시 그렇게 끝맺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p261~2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블루 쉽Blue Sheep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4편의 장편소설을 탈고하고 한국문학계에서 특히 장르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유정은 열심히 달려온 만큼 탈진 상태에 이른다. 헛헛함과 허망함을 뛰어넘어 작가로서의 공포까지를 느낀다. 욕망이 결여된 상태에 놀란 작가의 처방은, 여행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여행도 아니고 돛단배 띄어진 풍경을 바라보는 휴양도 아니라,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외치며 작가는 안나 푸르나를 향해 마음을 굳힌다.

   이것이 일시적으로 떠오른 생각인지 오래 내재한 꿈이었는지 모르지만 작가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나푸르나를 가기 위해 돌입한다. 일단, 작가는 그곳을 혼자 가기는 주저한다. 여권도 없었던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던 것이다. 여행 일정을 알아보는 것도 여행 채비를 꾸리는 것도 모두가 낯선 경험인 작가는 동료 작가이자 어린 김혜나 작가를 파트너로 17일간의 안나푸르나 환상 종주를 떠난다.

   이 17일간의 안나푸르나의 여행은 장엄하고 낭만적일 듯 보이지만 정유정이 겪고 기록하는 이 여행의 기록은 서투른 여행자의 당혹스런 경험에 대한 일기이다. 글을 읽다 보면 작가로서의 느낌이 아니라 처음 가는 여행에서 난관에 부딪히며 힘겹게 안나푸르나 일정을 마친 이야기를 고생스럽게 늘어놓는 ‘아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문학적이고 진지한 느낌보다는 좀더 발랄하고 막상 첫 여행에서 내가 겪으며 어떡해야 할지 몰라 울상짓는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만 같다. 낯선 여행지에서 겪는 자잘한 병치레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웃음터지는 일들이 엮인 이야기다. 뭔가 어리버리하면서도 결국엔 세계 최고의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의 봉우리를 넘는 이 트래킹 일정을 소화해내는 작가의 집념은 놀랍다. 작가는 자신의 용기는 늘 절박함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토록 작가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안나 푸르나, 그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를 넘는 일과 비견되는 것이었던가.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안나 푸르나. 유명한 산악인들이 즐겨 이곳을 찾았고 힘겨운 트레킹 코스로 알려진 이 곳은 맞닥뜨리게 될 아름다운 풍경에 그 모든 힘겨움을 이겨내고 힘을 얻게 된다. 해발 5,416미터의 쏘롱라패스가 마의 지역이라 불리는 곳이고 많은 이들이 고산병에 힘들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저 막연히 작가가 이 책을 내었을 땐, 이 곳을 통과해 코스를 마쳤으니 당당히 책을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긴 했지만, 작가가 이토록 어설픈 여행의 경험자이자 소소한 예민미를 가진 약체력인 줄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의 여행에 낯선 곳에서 맞닥뜨린 것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뒷전으로 하고 그 일정을 소화해내는 여정에서 겪게 되는 소소한 ‘사건’들이 경치에 대한 무한한 찬사와 감상보다 괜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이 힘든 코스를 등반하며 그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이 되었기 때문일까.

   작가는 17일간의 이 여정을 세세히 기록한다. 안나푸르나의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의 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같이 등반하는 기분이 된다. 힘들게 오르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일들이란 마냥 힘들다, 죽겠다가 아니다. 그런 속에서도 머릿속으로는 하염없이 무언가를 미지의 어떤 것들, 과거의 일들, 그런 저런 일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 여행을 떠나 그 속에 있는 작가는 작가대로, 글을 읽는 이는 읽는 그대로.

손 전체가 짙은 보랏빛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저체온증에서 온 말단청색증이었다. 그대로 두면 동상이 되고, 심화되면 절단해야 하는 위험한 징후였다. p175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작가의 육체적인 고통을 인지하면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끝가지 안나푸르나를 종주했을까를 질문하게 된다. 어떤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서 막상 닥쳤을 때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생각을 해본다면 나 역시 놓치고 싶지 않은 일이란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산을 올랐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 상황에서 따라야 할 것들과 더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긴 하겠고 그것들을 잘 조율해야 하겠지만.

   또한 모든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긴 하고. 하지만 의지라도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무엇을 할 게 있을까. 작가는 여행에서 "블루 쉽(Blue Sheep)"을 만난다. 4000미터 이상 고지대에만 산다는 야생 양으로 경계심이 많아 사람 눈에는 좀처럼 띄지 않는 신비로운 동물이라는데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의 앞길에 행운이 있을 거라는 안나푸르나의 계시라고. 작가의 의지와 계시가 서로 맞물려 아니 작가의 의지가 계시를 이끌어낸 건 아닐까 잠깐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가 있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삶이 단단해지지 않았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어둠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생과 싸우는 법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p133

 

   작가는 여행에서 확신을 얻었다 말한다. 자신을 지치게 한 것이 삶이 아니었다고. 자신의 본성은 싸움닭이었다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을 하며 새삼스럽게 처음 여행을 떠날 때와 다를 바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놓는 것을 배우고 편안함을 배우고 삶의 여유를 여행에서 얻었노라 하던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결론은 의외다. 작가에 대해 잘 모르니 의외라고 할 것도 없긴 하다. 어쨌든 작가는 오히려 힘이 남아도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곳에서 병을 얻어왔다. 이름하여 네팔병. 누구나 여행에의 경험은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고 온 이 여행을 그리워하고 생각할 것임을 의심치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앞으로 쓰게 될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이 여행에서의 경험과 감상들이 은은히 배어날 것이다.

 

‘네팔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반드시 또 가고야 만다는 불치병이란다. 여정의 험난함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로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산병만큼이나 흔하게 걸린다는 이 지병에서 나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p3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