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닥'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도시와 나-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성석제·백영옥·정미경·함정임·서진·윤고은·한은형


  여행에세이가 여행지에서의 감상과 안내를 서술하는데 치중되어 있다면 이 책은 ‘이야기’에 힘을 쏟는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만들게 되는.

  성석제, 정미경, 함정임, 백영옥, 서진, 윤고은, 한은형. 연령과 성별과 문단 경력이 각기 다른 소설가들은 각각 떠난 일곱 개의 도시에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배경이 해외라는 것, 여행이 깃들어 있다는 것, 낯선 도시의 느낌이 가미되는 것, 이런 특징을 가지고서 일곱 명의 소설가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엮어 낼까. 그들이 찾아간 도시에서 각기 다른 것에 시선을 두고 써내려간 일곱 개의 소설을 만나면 생생한 여행에세이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낯선 도시를 여행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성석제 작가는 프랑스 아비뇽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연극제에 초대받아 극단과 함께 아비뇽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홀로 자전거 여행에 도전한다. 성석제 작가 특유의 입담으로 주인공의 자전거 모험의 익살스러움을 잘 보여주는데 주인공이 희곡작가이기에 더욱 더 연극적인 느낌이 든다. 작가의 유도대로 자연스레 주인공의 험난한 자전거 여행에 동참하며 프로방스의 모습을 훑는다. 결국 자전거로 통과하지 못하는 노후화된 다리를 맞닥뜨리고 마는 그런 자전거 여행을.

  백영옥 작가의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은 미국 뉴욕의 도시를 보여준다. 뉴욕의 서블렛 문화를 통해 짝사랑하는 남자의 자취를 엿보고 싶어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감각적으로 그려진다. 스토커 같은 여성의 모습과 기이한 부부의 모습, 인간의 관계란 정말 다양하구나 싶은 이 이야기는 관찰자적으로 지켜보며 내면의 일렁임이 짝사랑하는 남자에게서 그의 아내에게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반응이 좋았던지 작가는 이 단편에 이야기를 더 엮어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를 만들었다.  

  정미경 작가는 일본 도쿄로 향한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녀가 나오시마 섬으로 동행하는 여정을 그린 <장마>. 여행이란 그런 것인지, 여자의 특별한 사연과 분위기에 이끌린 남자는 제 일정은 잊어먹고 여자의 여행 경로에 동승한다. 일본 공연예술 부토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남자의 여행 일정이었다. 이 부토에 대한 묘사가 남다르게 다가왔는데, 두 사람 모두 이 부토를 찾아 관람하고 서로의 일정을 오가며 서로를 이해하며 마음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다. 한번쯤 우연히 만난 낯선 이와의 교감에 대해 꿈꾸게 되는 것, 그것도 여행의 한 부분인 것도 같다. 이것 역시 영화와 드라마가 주입해 놓은 건가.


네온의 명멸처럼 짧지만 환한 어떤 것이 가슴속에서 반짝 빛났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p119 정미경, <장마>


  함정임 작가는 여행을 많이 떠나고 여행책을 많이 쓴 모양이다. 정미경 작가는 프랑스 브장송으로 간다. 그곳에서 사라진 남편의 자취를 찾아 호텔들을 순례하는 여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여자에게 매혹된 프랑스인의 모습도.

  윤고은 작가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찾는 딸의 모습을 그려보인다. 주소 하나만을 가지고서 지난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주인공의 세비야를 돌고 돌며 흔적을 찾는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서진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최초로 머물렀었는데 그 기억을 가지고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전개한다. 꿈을 찾아 로스앤젤레스를 가지만 향수만 쌓아가는 88만원 세대의 안쓰러운 모습들을.

 한은형 작가는 아프리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이 도시를 방문한 적 없다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온전히 머릿속에서 상상력으로 그려낸 것이다. <붉은 펠트 모자>라는 제목으로 2010년 시민혁명으로 운명이 바뀐 튀니지 고위관료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튀니스의 모습을 그려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결국 작가도 그려낸 것이라니. 물론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형상화 한 것이겠지만.

  책 뒷부분에는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이들의 여행경험과 여행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하는데 서진 작가의 여행의 의미가 딱 눈에 띈다.


  우리가 사는 삶이 '그닥'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잠시 제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머물다 오는 듯하다고. 어디를 가든.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정신을 차리는 일은 더딜 때가 있다.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제정신을 버리고 사는 거였던가. 어쨌든 여행에서 마냥 그곳에서이 사건과 감상이 아니라 이 소설들처럼 상상의 세계 속에 나를 두어 보는 일도 재밌으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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