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지의 아름다운 경관을 사진에 담고 그 속에 함께 풍경이 된 나를 사진 찍어오는 일이 여행의 시작에서 끝을 장식하는 외향이라면 여행에서 느끼는 모든 생각과 느낌들은 내향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외향보다 내향이 가득해서 책을 덮어도 시각적인 사진 한 장 없음에도 보이지 않는 의미의  끈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만 같다.

   


 길을 오래 걷는다면 비움은 미학의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p6


  사색적인 이 여행의 기록들은 저자의 여행의 이유와 닿아 있을까. 배낭여행이 계속되면 배낭은 간소해질 수밖에 없는 이 당연함 속에 저자의 배낭은 가벼워졌고 그만큼 저자의 가슴은 채워졌다. 십 년의 시간 틈틈이 여행을 다닌 저자는 그곳에서 타인들을 만나며 생생히 살아올 때의 전율이 글들을 쓰게 했다. 현지에서 편지로, 엽서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하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때의 기록들을 서랍 속 노트에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떠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 그들은 저자에게 사회와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일상에 한정되어 갇힌 인식의 벽을 넘는 것, 그것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의 느낌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담은 책이기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여행에 대한 풍경도 사진도 없다. 오직 그곳에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소제목 역시도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 자신,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보유)은 누군가를 잊어가는 일(망각)인 셈(p104)"이라 말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오롯한 기억의 틀 안으로 그들을 들이는 것이다.

  여러 모로 “이게 어떻게 여행책이야?”라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정도 장소에 대한 소개도 시간적 순서에도 의하지 않은 이 책이 오히려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릴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더불어, 눈에 현혹되지 않은 채 나 역시 저자와 같이 어떤 것들, 삶에서 이루어지는 면면에 대한 재인식의 시간을 경험한다.

  가령, 스페인의 교역의 중심지이자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어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문명의 충돌에 대해 생각한다. 그 대립의 시기와 이유를.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들에 대해 좀더 깊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부질없이’라고. 그것은 전쟁으로 이어져 각각 승패를 거듭하며 팔백 년을 이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선 김병화박물관과 마주한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되어온 조선인들이 농업노동인력으로 일했고 김병화는 그 리더였다. 이 곳에서 저자는 우리의 ‘디아스포라’에 대해 가지는 협소한 사고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고 대한민국의 틀 안에서 훈육된 국가주의의 사고의 수준에서 행동하고 있다고. 수많은 침략을 당하는 역사에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있다. 더구나 남북으로 분단된 이 상황에서 더더욱 떠돌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권력자들이 이들에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일상 속에서 사는 데 지장없기에 스스로 의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래서 저자에게는 일상을 벗어난 시공간에서 게으른 관념의 틀을 산산조각 내준 풍경을 잊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사하라의 사막 마을 시와에서 사구 넘어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저자는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절경인 풍경 앞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규준과 척도에 대한 개념을 떠올린다. 또한 이것을 사회와의 연관성과 연결짓는다.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미담은 늘 숭고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환경이 가능성을 구속하고 있는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 ‘대단한 이들’의 뒤편에는 낙오된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게 잉여가 된 이들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환치되고 포장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곳에서 그들을 주목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기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들개가 등짝을 맞는 일만큼이나 흔하고 쉽게 일어난다. 작은 사막 마을 안에서 한계를 가지고 살아온 삶은 다재다능하고 리더십도 있는 그가 더 넓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꺾었을지도 모르겠다. p77


  저자가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 속에서 이끌어내는 사유의 면면을 보면 그것이 단지 ‘사유를 위한 사유’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조차 철저하게 생활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관념, 그것은 생활을 이끌고 생활 또한 관념을 이끌고 그렇게 서로가 맞물리기에 중요한 요소이다. 내 삶의 진정을 위한 사유의 여행은 저자의 여행 내내 계속된다. 저자가 소제목으로 기억하는 나라의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그를 생각 속으로 이끌어주는 현지인들이다. 그들은 그를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그 나라의 삶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며 어떤 때는 저자가 생각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집어주기도 한다.

  저자가 여행한 나라들을 살펴보면 스페인, 우즈베키스탄, 홍콩,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의도한 바는 아닐 지 모른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전쟁을 겪었고, 사실 역사에서 그 어떤 나라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전쟁의 상처가 없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그 전쟁의 기억에 대한 시간 차이가 있을 뿐. 전쟁의 대상이 다를 뿐. 같은 경험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저자가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으로부터 인지된 폭력의 예감’을 생각한다. 불확실함 속에서 권력의 파괴성을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권력의 주체로 인해 폭력 또한 예측불가이므로 국가에 대해 자발적이 되고 만다는 것을.


역사는 살인사건처럼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라면 더욱 그렇다. p262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다르지 않던가. 저자와 마주친 사람들은 이 역사가 남겨놓은, 권력자들이 지져놓은 모순과 삶의 피폐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그런 존재들은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나라의 역사, 사회적 배경을 떠올렸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거듭 생각했다.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나라의 여행객이 찾아오면 자신의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러나 정작 아름다운 풍경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저자의 이 고민의 시간들은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을 더욱 철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였던가? 사진도 없고 그들의 이름도 가명이 된 것은.


'연대와 동정의 차이‘를 들이민다든가, ’나눔과 봉사의 차이‘를 들이민다든가 하는 것은 오히려 합리성에 경도된 스스로가 낳은 모순이 아닐까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여행 중이든 일상에서든 어디에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걸과 동정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쌓아온 논리는, 동정은 연대보다 열위에 있으며 계급을 고착시키는 반동적 행위라는 것이었다. 그런 논리에 따라 구걸에 요지부동 무반응이었던 나는 현실의 ’고통‘들을 대면하면서 그것이 관념적으로 이성을 따르는 이의 어쭙잖은 형식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p283~284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기 전에, 어쨌든 생각과 고민은 인식의 확산을 한다는 점에서, 일단 문제를 인지한다는 점에서 대안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관념적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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