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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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핀 연기

빛의 호위, 조해진 저, 창비, 2017.2.20.


  오랜만에 햇빛을 본다. 지난 겨울은 추웠고 그래서 봄은 더욱 더 멀리에서 멈춰진 것처럼 느껴졌다. 봄비의 가벼움이 아니라 겨울의 무거운 비가 완전히 걷어진 건지는 모르겠다. 창문을 열면 아직 추위는 머물러 있다. 창문 밖으로 바라보는 빛은 어제보다도 따스하다. 햇빛이 비치지 않은 곳곳엔 아직 찬기운이 머물러 있다. 햇빛쪽으로 나아가야 휘감은 온기가 느껴진다. 그녀, 권은이 느꼈던 빛이 창문으로 넘어온 빛과 같은 느낌이었을까.

  빛이 호위하는 순간의 그 황홀함이 따스함과 함께 가득한 「빛의 호위」다.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권은. 홀로 외롭게 방안에 앉은 아이가 반장에게 건네받은 카메라 속에서 빛을 발견하는 순간, 그 순간에 대해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지하창고에 숨어 지내야 했던 알마 마이어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된다. 알마 마이어 역시 그 갇힌 공간에서 연인이 넣어준 악보 한 장에서 ‘빛’을 발견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편지 밖에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실제로 카메라에서 빛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휙 지나가는 빛’을. 하지만 이미 반장이 무심히 건넨 카메라에서,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숨을 곳과 먹을 것을 내어준 연인에게서 이미 권은은, 알마 마이어는 마음을 열어 빛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의 존재와 행위로 ‘빛’을 온전히 환하게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잠깐의 빛에서 희망을,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집의 몇 개의 단편소설들은 대표적인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이라 반가운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같은 또다른 느낌으로 조해진의 단편들이 지니는 일관된 느낌을 느껴본다. 대부분이 상처와 고통의 상황 속에 놓여 있고 그 기억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자의 삶에서 겪은 상처에 힘들어 하지만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공간적 배경도 시간적 배경도 한국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 교차되며 등장한다. 빛의 호위 속의 권은과 알마 마이어가 교차되어 보여주듯이 개인적인 이유로든 사회적인 이유로든 받게 되는 상처란 시간도 장소도 인물도 뛰어넘는다. 왜인지 상처란 개별적인 것 같으면서도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또한 그 반대로 보편적인 것이지만 개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가, 어떤 이유로 상처를 받았더라도 또는 누구에 의해 상처를 받았더라도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상처를 주는 것도 상처를 극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 누군가의 호의. 그로 인해 어떤 위험하고 쓸쓸한 상황에서라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됨을 느낀다. 전반적으로 쓸쓸한 저녁 풍경같은 느낌의 단편들이었지만 「빛의 호위」 하나로 저 멀리 밥짓는 연기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 대해 실망과 절망하다가도 다시 희망과 기쁨을 얻게 한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휙 지나가는 빛처럼 창문을 열면 그 빛이 타고 들어온다.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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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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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필요없을 때가 있다


빛 혹은 그림자-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에드워드 호퍼는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하다. 뉴욕에서 태어난 호퍼는 어릴적부터 자신이 생활하고 눈에 익은 도시의 풍경을 주로 그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가장 ‘미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하는 작가라 불리고 있다. 도시와 교외의 풍경, 그의 그림에서 미국적인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사람들이, 평론가들이 얘기한다는 것은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도시와 고독과 한뜻 각진 삶이 가장 미국답다는 얘기인가.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태어나 1967년 사망했다. 그의 생애로 보건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시가는 대공황과 전쟁이 휩쓸던 시기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상처의 시기였던 그때 호퍼는 그림속에 자신이 살고 있는 주위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실주의 작가라고 하지만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실적인 느낌보다 몽환적인 느낌이 더 든다. 호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대표적인 스릴러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라고 한다. ‘기찻길 옆집’ 이나 ‘이른 일요일 아침’ 등의 작품 풍경이 영화 사이코에 나오는 배경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화가인데도 그림보다 이름만 들었다. 아마도 여러 책들 속에서 언급된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 게다. 현대 사실주의 화가이지만 교과서로 미술책에서 배운 적 없는 작품은 기억에 남았을 리 없다. 생각해보니 호퍼의 그림은 오히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보게 되었다. 실로 이름만 알고 있는 화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셈이다.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의 작품을 만나게 된 순간은 소설과 함께,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모티브로 한 소설들을 여러 권 읽었지만 스토리가 이야기가 남는 작품이 있는데 이 책, 「빛 혹은 그림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이 남았다. 호퍼의 그림을 본 적이 없어서일 지도 모르겠고 호퍼의 그림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를 써내려간 이 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를 보면서 어떤 한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치 어떤 그림에서는 그것이 그냥 풍경일지라도 하나의 모습일 뿐인데도 마치 어떤 사건의 현장인 것처럼 소설가가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기도 했다. 나라면 이 그림에서 이런 것이 떠올려지고 느껴졌을 거라며. 그렇기에 소설보다 호퍼의 그림이 남는다고 말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소설들의 탄생의 중심이 호퍼의 그림이었기에 호퍼의 그림에 나 역시도 집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너무 그림과의 연결고리를 선택하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나 역시도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그림을 묘사한 장면을 찾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글들이 호퍼의 그림에, 이미지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진 호퍼의 그림에서 여러 생각의 얼개를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화가이든 소설가이든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리라 본다. 호퍼는 지극히도 말이 적은 내향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만큼 소설가들은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았을 지도.

  히치콕도 그렇고 이 소설집을 기획한 로런스 블록도 범죄 스릴러의 거장이라 한다. 참여한 작가들이 범죄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즐겨 쓰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호퍼의 작품에서 이렇듯 범죄와 미스터리와 스릴러 작가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호퍼의 작품에서 기인한 것일까. 가장 미국적이라는 호퍼의 작품, 기획자의 영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참여한 작가들의 특성과 그림에서 파생된 이야기의 전개를 볼 때 호퍼의 작품에서 ‘어둠’의 기운들을 많이 보는 모양이다. 아니러니하게도 호퍼는 그의 작품 속에 빛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도시에 생각보다 빛이 참 많이 감싸고 있구나 느끼게 된 호퍼의 그림. 도시인의 고독을 화폭에 담았다고 하는데 그들의 고독을 빛이든 조명이 언제든 감싸고 있는 호퍼의 그림들이었다.

  때론 어떤 것을 보며 나홀로 상상하는 맛이 더 즐거울 때가 있다. 막상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호기심과 걱정을 안고 있다가 막상 그 이면을 알아보고 난 후에 밀려드는 허무함이 조금 자리잡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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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눈빛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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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겨울 극장에서


겨울의 눈빛, 박솔뫼, 문학과지성사, 2017-09-25.


  이젠 겨울의 찬기가 가시려는 걸까. 봄 앞에 무력해지는 겨울의 눈빛을 하고 이 한기는 물러갈까. 겨울이란 계절이 지닌 특성이요 정체성임에도 춥다, 춥다, 춥다 외치며 왜 이렇게 추우가 겨울에 진저리 칠 즈음 기온은 달래는 듯 온기를 내었다 다시 얼어붙곤 했다. 벌써 2월의 말이고 3월이 다가오는데 또 한동안은 꽃샘추위가 온기를 잔뜩 덮어버릴 것을 아니까 여전히 겨울 옷 속에 몸을 숨긴다.

  9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 「겨울의 눈빛」에서 여전히 겨울옷을 둘러쓰고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심리적으로도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봄을 생각하기엔 너무도 어둡고 공허한 공간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특히 부산이란 지명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지리적으로 부산은 겨울에도 온도가 높은 곳임에도 차갑고 매서운 부서지고 무너진 폐허의 공간으로 이 지명은 기억된다. 거듭된 사고를 가진 공간, 사고의 흔적을 머금은 채 새로이 재생되지 않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소설마다 반복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그 사고를 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문장 또한 강박적이게 반복되거나 쉼없이 이어진다. 기억을 되살리듯 이야기하듯 이어지는 문장으로 인해 폐허는 정적이지 않은 동력을 지닌 것처럼 느껴진다. 폐허 자체가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소설에서 작가가 그리는 사고와 그 사고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는 현실적인 상황과 가상의 상황들이 버무려져 있다. 마치 사물을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실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고를 실제와 유리하려는 본능적인 생존인 것도 같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 사고가 일어난 공간을, 폐허의 공간을 떠나지 않고 그 기억들을 지우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리고 있을까.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는 무너진 부산타워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무너진 무수한 부산타워의 조각들을 보고 또 본다. 「우리는 매일 오후에」에서는 ‘나’는 묻고 ‘남자’는 대답한다. 부산에 있는 고리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났고 그 이전에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어났고 원자력발전소 폭발이 일어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시스템도 붕괴되었다는 것인데 ‘나’가 이것들을 아는 이유는 ‘남자’에게 묻고 또 물어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고 ‘남자’가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나’가 끝없이 묻고 또 물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눈빛」에선 이런 사고를 담은 영화를 보는 ‘나’가 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난 공간에 남은 이들과 그들의 기억과 상처를 이야기하는 영화지만 ‘나’는 전혀 강렬함이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 “그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기에 화면을 통해 재연된 그것은 ‘나’에게 모멸감만을 안긴다.


내가 아는 누가 또 누구누구가 지금 무얼 하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토록 모멸감이 드는 이유는 무어야. 우리가 개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허무해져야 하는 것은 또 무어야. 마치 태어나서 처음 개를 만져본 사람들처럼. 너는 그렇게 살았구나. 너의 친구는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그렇게 살고 있구나.


  그렇구나.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구나. 역시 허무해지는 마음으로 재난이 닥친 공간을 그 공간에서 멀어져 있지 않은 이들을 보게 된다. 충격과 상실로 인해 마음 역시 폐허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연극처럼 기괴스럽다. 제목과 연관되는 내용도 대사도 연기도 없이 그저 관객인줄 알았던 이들이 무대 위로 달려가 배우들을 내리치는 폭력만이 있는 연극. 어느 것이 「너무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이야기가 될까. 무너지고 원전이 터지는 그런 사고들일까, 그 사고의 공간에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것일까.  「너무의 극장」이 있는 한 그 폭력적인 연극은 계속 상영되는 걸까. ‘나’는 그 기괴한 폭력의 극을 계속 보고 있어야만 할까. 물론 ‘나’는 그것을 기괴하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에 관해 말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부산에는 바다가 있고 부는 바람은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 바람에 실려 부산의 목소리가 노랫소리보다 선명하게 들려오는데 부산은 내게 너는 왜 바다 이야기 해운대 이야기 광안리 이야기 그리고 반짝거리는 야경과 그 밖에도 줄줄줄 댈 수 있는 모든 멋진 것들을 말하지 않고 그저 적당한 말들만 그것들을 죽인 이야기만 하는 거야? 왜 나에게 오염된 것들을 버리고 가려는 거야? 부산은 내게 항의하고 나는 알아 알아 다 안다니까 웃으며 부산에 가면 많은 멋진 것들이 있지 바람에 대고 말하며 아직 남은 ‘그저 적당한 말’을 뜯어내 바닥에 내던졌고 그저 적당한 말은 떨어지지 않으려 내 손을 깨물었고 내 손에서는 피가 났고 내 피는 붉었다.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하여 묻고 그리고 기억하는 것은 피폐해진 이들의 마냥 수동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가 이런 다짐을 가지는 순간 그 모든 반복적인 행동들은 폐허를 벗어나기 위한 의지로 기억된다. 누군가는 사고를 잊으라 말하고 누군가는 사고를 잊지 말아달라 말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잊음을 선택할 문제가 아니니 ’사고‘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문제가 된 것은 해결해나가는 일이다. 그런 메시지를 건조한 겨울의 눈빛은 말한다. 멋진 것들이 있는 것도 그것을 얘기하는 것이 더 좋은 것도 안다. 하지만 해야 할 것이 있음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피가 날 정도로 아픈 일이 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겨울, 여전히 「너무한 극장」에서 너무한 이야기들이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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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폴 서루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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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끝에 서도 버리지 못하는


세상의 끝, 폴 서루, 2017-07-11.


  끝. 더구나 세상의.

  세상의 끝이란 말에는 쓸쓸함과 적막함 그리고 희망과 불안, 절망이 버무려져 있는 느낌이다. 세상의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곳을 배경으로 펼쳐진 『세상의 끝』. 제목 자체에서 책을 집어 들고픈 이 밑도 끝도 없는 끝에 대한 이끌림이 여행 작가 폴 서루의 소설집 『세상의 끝』.  50년간 세계를 여행하고 많은 여행서를 낸 폴 서루의 여행이 곁들여진 소설집에서도 이 느낌은 묻어난다. 여행기가 아니라 소설로 묶어낸 이야기는 완전한 가공은 아닐 것이고 사는 동안 여행을 하는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이 담겨졌을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코르시카 섬,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런던, 파리, 독일 등 많은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 지역적 특성을 잘 묘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그곳에 대해 생생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행을 일상을 벗어남이라고 얘기하지만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충격이기도 하다. 소설속 인물들은 그러한 충격속에서 살아간다. 원치 않는 낯선 땅에서 살게 되거나 삶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듯이 살아간다. 어쩌면 ‘지역’이 ‘낯섦’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라는 삶에 대한 태도가, 인식이 충격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터전에서 길들여진 삶을 향한 인식, 문화의 차이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무시못할 것이니까.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새로운 곳에서는 어떤 일탈이든 모험이든 감행하려 하는 것도 극과 극이지만 모두 같은 원인에서 발현된 것일 것이다. 끝, 세상의 끝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그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혼란들.


“프레디 이모, 제가 문화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그건 저 반대쪽에서 받는 것 아니야? 가령, 나이지리아에서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든가 마멀레이드 잼에 개미가 들어 있다든가 아니면 초가집에 물이 새거나 할 때?”

“우리 초가집은 절대 물이 새지 않아요.”

“물론 그렇겠지.”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오직 팔렁이들이 하는 얘기겠지만, 분명 네가 네 가족들 사이에서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플로이드.”

   

  「야드 세일」의 이모와 조카의 대화를 들으며 나 역시도 이렇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봤다. 문화충격이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서 느끼는 것이지 문화적 우월감을 전제에 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생각했다. 어쩌면 특정한 문화에 대해 ‘충격적’이라고 할 때 ‘그토록 문명과는 동떨어진 미개한 문화인 줄은’이라는 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흔히 쓰는 문화충격이 어떠한 경우에 자주 쓰이는지를 떠올리면서 낯선 곳에서 느끼는 문화의 차이를 항상 서구의 시각과 삐딱한 시선을 두고서 평가하고 있다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폴 서루의 소설집에서도 혼란을 느끼는 이들의 마음 속에도 이러한 감정이 내재되어 있기에 혼란과 외로움, 적응하거나 동화되려 하지 않으려는 데서 오는 ‘끝’을 그토록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는 그 도시에 모든 것을 제공할 의향이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여행자란 모름지기 나이 들면서 매력을 잃은 미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국의 땅이 추파를 던지다가 차버려서 여행자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고국에서는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 위험이 적다. 그곳의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우아하게 처신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집으로 갖고 돌아갈 로맨스와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예측된 모험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낯선 곳에서의 일요일은 가장 지독한 지옥이었다.


  열린 마음을 가졌다 말하지만 사실은 놓치 않으려 잔뜩 쥐고 있다면 들어올 틈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가만히 보다 보면 이 소설집에서의 끝이 주는 쓸쓸함과 황량함, 그 고독은 서정적인 기분이 가득한 듯 보이다가도 결국엔 잔뜩 고립된 사고가 주는 황량함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의뭉스럽게 보이지만 마냥 헛웃음이 날 정도로 위선적인 생활속에서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삶이기에 어쩌면 어느 곳에 있더라도 황량한 끝에 서 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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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너가의 남매들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김윤미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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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예술, 그리고 불행


타너가의 남매들, 로베르트 발저, 2017-06-28.


  산책과 눈밭 하면 어느새 로베르트 발저가 떠오른다. 자신의 작품에서처럼 크리스마스 아침 눈밭에 쓰러진 모습으로 발견된 로베르트 발저는 그의 작품마다에서 걷고 걷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추위가 지배했던 겨울, 밤새 소복하게 쌓인 눈밭에 처음 남기는 발자국에서 근엄한 고독의 느낌이 드는 것은 발저가 남긴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발저의 첫 장편소설 『타너가의 남매들』에서도 걷는 일은 이어지고 있다. 눈쌓인 어느날, 길에서 쓰러진 한 예술가의 마지막 또한 나타난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도 하는 이 소설엔 타너가 다섯 남매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만 마치 혼자만의 생각처럼, 독백처럼 내뱉어지는 이야기가 소설에 가득하다. 그 말하기의 중심엔 타너가의 막내 지몬이 있다.

  지몬은 서적상, 간병인, 변호사 사무원, 대규모 무역상사 직원 등등 수시로 직업을 바꿔가며 거처를 옮기며 살아간다. 늘 의무에 충실한 지몬의 형, 장남 클라우스 박사의 눈엔 이 모든 행동이 마뜩치 않다. 의무에 충실하지도 못한 나는 처음엔 클라우스 박사의 눈이 되어 지몬의 행동의 이유엔 어떤 괴팍스런 연유가 있는 것인가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몬은 일을 구함과 그만둠에 있어서 언제나 당당했고 단순히 ‘하기 싫어서’가 행동의 이유가 아니었다. 지몬이 말하는 ‘지금 이 일’을 그만두는 이유는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직장인의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당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일과 대우를 받을 때,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일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 지몬은 그 이유를 밝히고 일을 그만두었다.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떨며 누구라도 고용되어 일하기를 원하는 당신네 사무실들에서 젊은 남자의 발전은 기대하지 못하지요. 확고한 월급을 받는 것과 같은 혜택 따위 안 누려도 그만입니다. 그런 거 있으면 저는 영락하고, 어리석어지고, 쓸개 빠지고, 꽉 막힌 사람이 되거든요.


  젊은 청년 지몬은 일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며 형제들의 경제적 도움을 거절하면서 방랑하며 살아간다. 그 여정에서 형제들을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와 마주하고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가족과 인생과 삶에 대해 지몬은 이야기한다. 그렇게 지몬의 삶에는 지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족일 때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인물들, 특히 여인들이다. 그들에게 지몬은 들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제 삶에, 제 가족과 형제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지몬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지몬을 연민하고 응원한다. 지몬의 이야기에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온갖 삶의 비의들이, 고독과 절망들이 연민들이 묻어난다. 어쩌면 끝없는 방랑이기도 한 그의 걸음에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간절함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너가의 남매들은 모두 다섯이다. 특히 지몬이 사랑하며 따르는 형 카스파는 풍경화가다. 이 소설 속에서 크게 두 삶이 대비되는 것처럼 보인다. 장남 클라우스 박사로 나타나는 성실하고 의무에 찬 도시적이고 기계적인 삶과 카스파로 대표되는 방랑과 고독이 가득한 예술가의 삶으로 말이다. 카스파를 비롯하여 눈밭에서 스러져간 시인 제바스티안, 카스파의 동료화가 에르빈 등, 이야기속에서 유독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예술가의 표상처럼 생애 자체가 흔히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재능이 많았지만 정신병원에 있는 지몬의 셋째형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하여 예술과 더불어 불행에 관해서도 열띤 견해가 펼쳐진다.


불행한 예술가는 불행한 왕과 같은 거예요. 자기가 재능이 없음을 아는 게 얼마나 영혼 깊숙이 고통스럽겠어요.


그는 제가 더 진지하게 예술에 임하기를 바랐지만, 저는 대꾸했지요. 예술을 행할 때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 흥에 겨운 열성 그리고 자연 관찰이 필요할 뿐이라고요.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한 과도하고도 신성시하는 진지함이 그 일에 가할 수 있는 해악, 또 가할 수밖에 없는 해악에 대해서도 그에게 주의시켰습니다. 그는 제 말을 정말로 믿었지만 그가 움켜쥐고 있던 요지부동의 진지함을 내던지기엔 너무 나약했어요. 그후 제가 떠나왔지요.


  불행한 예술가들의 일상의 삶과 그리고 마지막을 보며, 과연 예술적 재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불행이란 말이 예술가들에게는 필연인 것처럼 예술적 영감을 위한 밑천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얼마나 많고 강하던가! 불행이 아름다움을 위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기도 하지만 불행이 반복된다면 불행이 발판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불행한 삶일 뿐인 것을. 그렇기에 “미래를 갖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갖고자 한다, 미래라는 건 현재를 갖지 못했을 때나 있는 거”라는 말이 와 닿는다. 미래는 늘 희망에 대한 의지의, 기대의 관점이었던 것 같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결국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족, 불안과 불행이라는 현실을 가지고 있다. 희망이라 일컬을 수도 있겠지만 판도라 상자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은, 판도라 상자가 재앙만을 쏟아내었던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가장 큰 절망이자 불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불행, 재능, 인생, 형제, 고독, 예술 등등에 관해 여러 가지로 생각을 토해내는 지몬을 따라 여러모로 생각을 덧붙이며 깊이 잠기게 된다. 이 생각, 저 생각들이 조금 가라앉게 하지만 가만히 앉은 채로 지몬을 따라 생각의 방랑을 이어가는 것은 즐겁다.    


말 난 김에 덧붙이자면 잃어버린 것, 지나간 것이 그토록 값어치 있는 것도 전혀 아냐. 왜냐면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거든, 너무 추하고 악의적이라며 자주 폄하된 우리의 현재에서 나를 매혹시키는 이미지들을 엄청 많이 본다고. 그리고 두 눈에 넘치도록 널린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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