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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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필요없을 때가 있다


빛 혹은 그림자-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에드워드 호퍼는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하다. 뉴욕에서 태어난 호퍼는 어릴적부터 자신이 생활하고 눈에 익은 도시의 풍경을 주로 그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가장 ‘미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하는 작가라 불리고 있다. 도시와 교외의 풍경, 그의 그림에서 미국적인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사람들이, 평론가들이 얘기한다는 것은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도시와 고독과 한뜻 각진 삶이 가장 미국답다는 얘기인가.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태어나 1967년 사망했다. 그의 생애로 보건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시가는 대공황과 전쟁이 휩쓸던 시기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상처의 시기였던 그때 호퍼는 그림속에 자신이 살고 있는 주위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실주의 작가라고 하지만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실적인 느낌보다 몽환적인 느낌이 더 든다. 호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대표적인 스릴러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라고 한다. ‘기찻길 옆집’ 이나 ‘이른 일요일 아침’ 등의 작품 풍경이 영화 사이코에 나오는 배경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화가인데도 그림보다 이름만 들었다. 아마도 여러 책들 속에서 언급된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 게다. 현대 사실주의 화가이지만 교과서로 미술책에서 배운 적 없는 작품은 기억에 남았을 리 없다. 생각해보니 호퍼의 그림은 오히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보게 되었다. 실로 이름만 알고 있는 화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셈이다.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의 작품을 만나게 된 순간은 소설과 함께,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모티브로 한 소설들을 여러 권 읽었지만 스토리가 이야기가 남는 작품이 있는데 이 책, 「빛 혹은 그림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이 남았다. 호퍼의 그림을 본 적이 없어서일 지도 모르겠고 호퍼의 그림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를 써내려간 이 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를 보면서 어떤 한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치 어떤 그림에서는 그것이 그냥 풍경일지라도 하나의 모습일 뿐인데도 마치 어떤 사건의 현장인 것처럼 소설가가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기도 했다. 나라면 이 그림에서 이런 것이 떠올려지고 느껴졌을 거라며. 그렇기에 소설보다 호퍼의 그림이 남는다고 말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소설들의 탄생의 중심이 호퍼의 그림이었기에 호퍼의 그림에 나 역시도 집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너무 그림과의 연결고리를 선택하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나 역시도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그림을 묘사한 장면을 찾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글들이 호퍼의 그림에, 이미지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진 호퍼의 그림에서 여러 생각의 얼개를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화가이든 소설가이든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리라 본다. 호퍼는 지극히도 말이 적은 내향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만큼 소설가들은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았을 지도.

  히치콕도 그렇고 이 소설집을 기획한 로런스 블록도 범죄 스릴러의 거장이라 한다. 참여한 작가들이 범죄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즐겨 쓰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호퍼의 작품에서 이렇듯 범죄와 미스터리와 스릴러 작가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호퍼의 작품에서 기인한 것일까. 가장 미국적이라는 호퍼의 작품, 기획자의 영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참여한 작가들의 특성과 그림에서 파생된 이야기의 전개를 볼 때 호퍼의 작품에서 ‘어둠’의 기운들을 많이 보는 모양이다. 아니러니하게도 호퍼는 그의 작품 속에 빛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도시에 생각보다 빛이 참 많이 감싸고 있구나 느끼게 된 호퍼의 그림. 도시인의 고독을 화폭에 담았다고 하는데 그들의 고독을 빛이든 조명이 언제든 감싸고 있는 호퍼의 그림들이었다.

  때론 어떤 것을 보며 나홀로 상상하는 맛이 더 즐거울 때가 있다. 막상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호기심과 걱정을 안고 있다가 막상 그 이면을 알아보고 난 후에 밀려드는 허무함이 조금 자리잡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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