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폴 서루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끝에 서도 버리지 못하는


세상의 끝, 폴 서루, 2017-07-11.


  끝. 더구나 세상의.

  세상의 끝이란 말에는 쓸쓸함과 적막함 그리고 희망과 불안, 절망이 버무려져 있는 느낌이다. 세상의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곳을 배경으로 펼쳐진 『세상의 끝』. 제목 자체에서 책을 집어 들고픈 이 밑도 끝도 없는 끝에 대한 이끌림이 여행 작가 폴 서루의 소설집 『세상의 끝』.  50년간 세계를 여행하고 많은 여행서를 낸 폴 서루의 여행이 곁들여진 소설집에서도 이 느낌은 묻어난다. 여행기가 아니라 소설로 묶어낸 이야기는 완전한 가공은 아닐 것이고 사는 동안 여행을 하는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이 담겨졌을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코르시카 섬,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런던, 파리, 독일 등 많은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 지역적 특성을 잘 묘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그곳에 대해 생생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행을 일상을 벗어남이라고 얘기하지만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충격이기도 하다. 소설속 인물들은 그러한 충격속에서 살아간다. 원치 않는 낯선 땅에서 살게 되거나 삶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듯이 살아간다. 어쩌면 ‘지역’이 ‘낯섦’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라는 삶에 대한 태도가, 인식이 충격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터전에서 길들여진 삶을 향한 인식, 문화의 차이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무시못할 것이니까.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새로운 곳에서는 어떤 일탈이든 모험이든 감행하려 하는 것도 극과 극이지만 모두 같은 원인에서 발현된 것일 것이다. 끝, 세상의 끝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그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혼란들.


“프레디 이모, 제가 문화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그건 저 반대쪽에서 받는 것 아니야? 가령, 나이지리아에서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든가 마멀레이드 잼에 개미가 들어 있다든가 아니면 초가집에 물이 새거나 할 때?”

“우리 초가집은 절대 물이 새지 않아요.”

“물론 그렇겠지.”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오직 팔렁이들이 하는 얘기겠지만, 분명 네가 네 가족들 사이에서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플로이드.”

   

  「야드 세일」의 이모와 조카의 대화를 들으며 나 역시도 이렇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봤다. 문화충격이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서 느끼는 것이지 문화적 우월감을 전제에 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생각했다. 어쩌면 특정한 문화에 대해 ‘충격적’이라고 할 때 ‘그토록 문명과는 동떨어진 미개한 문화인 줄은’이라는 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흔히 쓰는 문화충격이 어떠한 경우에 자주 쓰이는지를 떠올리면서 낯선 곳에서 느끼는 문화의 차이를 항상 서구의 시각과 삐딱한 시선을 두고서 평가하고 있다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폴 서루의 소설집에서도 혼란을 느끼는 이들의 마음 속에도 이러한 감정이 내재되어 있기에 혼란과 외로움, 적응하거나 동화되려 하지 않으려는 데서 오는 ‘끝’을 그토록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는 그 도시에 모든 것을 제공할 의향이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여행자란 모름지기 나이 들면서 매력을 잃은 미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국의 땅이 추파를 던지다가 차버려서 여행자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고국에서는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 위험이 적다. 그곳의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우아하게 처신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집으로 갖고 돌아갈 로맨스와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예측된 모험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낯선 곳에서의 일요일은 가장 지독한 지옥이었다.


  열린 마음을 가졌다 말하지만 사실은 놓치 않으려 잔뜩 쥐고 있다면 들어올 틈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가만히 보다 보면 이 소설집에서의 끝이 주는 쓸쓸함과 황량함, 그 고독은 서정적인 기분이 가득한 듯 보이다가도 결국엔 잔뜩 고립된 사고가 주는 황량함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의뭉스럽게 보이지만 마냥 헛웃음이 날 정도로 위선적인 생활속에서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삶이기에 어쩌면 어느 곳에 있더라도 황량한 끝에 서 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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