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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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핀 연기

빛의 호위, 조해진 저, 창비, 2017.2.20.


  오랜만에 햇빛을 본다. 지난 겨울은 추웠고 그래서 봄은 더욱 더 멀리에서 멈춰진 것처럼 느껴졌다. 봄비의 가벼움이 아니라 겨울의 무거운 비가 완전히 걷어진 건지는 모르겠다. 창문을 열면 아직 추위는 머물러 있다. 창문 밖으로 바라보는 빛은 어제보다도 따스하다. 햇빛이 비치지 않은 곳곳엔 아직 찬기운이 머물러 있다. 햇빛쪽으로 나아가야 휘감은 온기가 느껴진다. 그녀, 권은이 느꼈던 빛이 창문으로 넘어온 빛과 같은 느낌이었을까.

  빛이 호위하는 순간의 그 황홀함이 따스함과 함께 가득한 「빛의 호위」다.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권은. 홀로 외롭게 방안에 앉은 아이가 반장에게 건네받은 카메라 속에서 빛을 발견하는 순간, 그 순간에 대해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지하창고에 숨어 지내야 했던 알마 마이어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된다. 알마 마이어 역시 그 갇힌 공간에서 연인이 넣어준 악보 한 장에서 ‘빛’을 발견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편지 밖에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실제로 카메라에서 빛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휙 지나가는 빛’을. 하지만 이미 반장이 무심히 건넨 카메라에서,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숨을 곳과 먹을 것을 내어준 연인에게서 이미 권은은, 알마 마이어는 마음을 열어 빛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의 존재와 행위로 ‘빛’을 온전히 환하게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잠깐의 빛에서 희망을,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집의 몇 개의 단편소설들은 대표적인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이라 반가운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같은 또다른 느낌으로 조해진의 단편들이 지니는 일관된 느낌을 느껴본다. 대부분이 상처와 고통의 상황 속에 놓여 있고 그 기억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자의 삶에서 겪은 상처에 힘들어 하지만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공간적 배경도 시간적 배경도 한국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 교차되며 등장한다. 빛의 호위 속의 권은과 알마 마이어가 교차되어 보여주듯이 개인적인 이유로든 사회적인 이유로든 받게 되는 상처란 시간도 장소도 인물도 뛰어넘는다. 왜인지 상처란 개별적인 것 같으면서도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또한 그 반대로 보편적인 것이지만 개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가, 어떤 이유로 상처를 받았더라도 또는 누구에 의해 상처를 받았더라도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상처를 주는 것도 상처를 극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 누군가의 호의. 그로 인해 어떤 위험하고 쓸쓸한 상황에서라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됨을 느낀다. 전반적으로 쓸쓸한 저녁 풍경같은 느낌의 단편들이었지만 「빛의 호위」 하나로 저 멀리 밥짓는 연기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 대해 실망과 절망하다가도 다시 희망과 기쁨을 얻게 한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휙 지나가는 빛처럼 창문을 열면 그 빛이 타고 들어온다.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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