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4 소설 보다
권희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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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4

   권희진, 이미상, 정기현, 문학과지성사, 2024-09-09.

   


 권희진, 걷기의 활용


  ‘걷기를 시작했다. 대다수에게 알려진 것처럼 걷기는 육체의 건강에도 필요하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이 단순한 걷기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구직자 신세인 도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한다. 목적지가 있지 않은 걷기를 할 때마다 는 과거의 기억을 꼬리물기하는데, 자주 떠오르는 인물이 태수 형에 관한 기억이다. ‘태수 형과의 기억은 특별한 사건이 있다거나 강렬한 이미지는 아니다. 태수형과 태수형의 여자친구 K, 그리고 가 기억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그러하듯 어떤 일이 있거나 없거나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취업 문제며 여러 가지로 고되고 복잡한 나날 속 그저 걷기만 할 뿐인데 왜 태수 형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일까. 마치 태수형을 이야기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한 것처럼.

 

나는 형과 같이 늙어가고 싶었다.”

  이 말이 걷기의 멈춤을 가져왔다가 다시 걸어갈 힘을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에게 이 걷기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정체성을 명료하게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기에, 그렇기에 는 산책이 아니라 걷기였어야 한다. 산책은 가 이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기에 조화롭지 않다. 목적지가 없을지라도 좀더 직선의 느낌을 주는 이 걷기가 감정을 모호하게 두지 않고 라는 사람을 정리하는데 탁월하게 활용될 수 있다. 마치 미취업생, 백수인 청년 세대의 무력감을 쏟아낼 것 같았던 이 이야기는, 제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취업 문제도 연애 문제도 누구에게나 헤치고 나아가야 할 문제인데, ‘에게는 태수를 정의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것이 세상살이에 더 힘겨움으로 작용하는 요인이 되겠지만 어쨌든 그 자체가 이기에.

 

이미상, 옮겨붙은 소망


  여기서 옮겨붙어야 하는 건 ‘5억 원에 매수한 아파트가 10억 원이 된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런 소망이 현실이 되는 것, 좋다고 소망하는 건 나의 시선이고 작가는 다르다.

2억 빌라로 이사하고 시세차익으로 수익을 얻은 n&n's 부부는 남은 시간 동안 한 반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기로 하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한달에 300만 쓰면 70대까지 살 수 있을 테고, 돈 떨어질 때까지 살명 되므로. 남편이 사고로 사망한 뒤, 아내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n&n's를 통해 앤틱 소품, 빈티지 주얼리를 구매하고 가 물건 구매 도우미로 고용된다. ‘는 이들 부부의 삶을 궁금해하고 아내의 이 구매행위는 수익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구매다. 노동시간이 아니라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것, 또한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이 남아 있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그에 대한 흔적을 기억하는 것이다. 남편에 대한 애도이고 그들이 소망하던 방식의 삶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듯 아내 또한 무한한 시간을 살 수는 없다. 그녀 또한 시간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남은 그녀의 주얼리들은, 남는다. n&n's 아내는 이것을 클릭도우미 에게 남긴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했기 때문에 집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줄 안다. 하지만 의외로 구더기는 의욕이 바닥났을 때가 아니라 다시 막 샘솟을 때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의욕을 품은 것에 대한, 새 삶을 꿈꾼 것에 대한 처벌처럼 느껴진다.

 

  로또 당첨의 바람 속에도 이 부부처럼 돈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어느 누구라도 이런 소망을 갈구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은 유한하니까,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보다 여유롭고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고픈 마음. 이들의 소망은 타인에게 전이되는 걸까, ‘전가된 걸까.

 


정기현,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이 소설은 거여동의 고가교 기둥에 적힌 낙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요즘은 담벼락이 많지 않아서 문자로 쓰여진 무언가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함부로 남의 건물에 낙서를 하면 검찰에게 끌려갈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인가받지 않은 게시물도 뜯어내면 재물손괴가 되는데, 남의 집 담벼락이며 공공건물에 어떻게 낙서를…… 그럼에도 그렇게 어떤할 말이 있기에 낙서를 하는 걸까. 이런 낙서들은 대부분 욕설이나 혐오, 비방문구다. 굳이 좋은 문구들은 쓰이지 않는다. 소설 속에 씌어진 낙서도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해 욕설이 기본인데, 기은준영은 이런 낙서에 관심을 둔다. 조금 더 적극적인 건 기은이다. 기은은 잠시 휴직하며 무력감을 겪던 중 가게 된 교회에서 준영을 만나 소소한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그리고, 가벼웁게 동네를 산책하며 오래된 낙서를 발견하고, ’한국오카리나박물관같은 기이한 장소를 찾거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기은의 일과가 되었다. 동에 곳곳에 새로 발견한 낙서를 볼 때면 기은준영을 떠올린다. 걷기의 활용가 태수형을 떠올리는 것처럼. 기은은 오늘 모험을 나선 목적이 김병철의 낙서를 밝혀내는 데 있지 않고 준영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자함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연달아 알게 되었는데, 그러자 마음에 슬픔이 깃들었다.”

  “그러자 마음에 슬픔이 깃들었다”. 마치 성경 문구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제목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찬송가 제목이라서 그런가. 노래 가사를 찾아보니 이렇게 시작한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며/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기은에게 깃든 슬픈 마음은 좀 다르다고 느꼈는데 이것을 찬송가로 성경으로 빗대어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어쩐지 슬프지 않은 것 같은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축복받은 슬픔인 것처럼 느끼는 기은이 아닌가 생각하며, 나는 이것이 슬픔인가 생각했고 역시 슬프다가 아니라 슬픔 마음 있는이란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은 슬픔을 오롯이 느끼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슬프지 않은 사람들은 슬픈 얼굴을 하고

슬픔 한가운데 선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다 집으로 돌아갔다

 

소설 보다 : 가을 2024속 세 단편은 각각 기억하기. 하염없는 걷기이든 동네를 탐색하는 산책이든 빈티지 물건을 구매하든 누군가를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일, 또한 생생히 되살리고 정리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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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5 소설 보다
박민경.서장원.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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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친절함에 대해


소설 보다 : 겨울 2025

박민경, 서장원, 하가람, 문학과지성사, 2025-12-10.

 

 

  경기도 어느 아파트 거실에서 뱀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봤던 날, ‘뱀이 있는 곳을 생각했다. 편안히 자고 있다가 손을 뻗었는데 이불 대신 뱀이 스르륵 지나간다면 나는 얼마나 기겁하며 떨고 있을까. 아파트 거실의 뱀 출몰 뉴스에 제법 놀랐는데 개미같은 것에 물려 흉터가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라 더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애완동물로 뱀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쯤이야 듣고 본 바가 많지만 새삼 아파트가 좁고, 연결된곳임을 실감케 한다. 화장실 변기 주변에서 허물이 발견되었기에 변기나 배수관을 통해 이동했을 거라니, 변기에서 변기로 이동했을 뱀을 생각하면, ,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뱀이 있는 곳을 생각하다니.

  ‘은 소설이든 그림이든 딱히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뱀들 종은 억울하다 하겠으나 그 이미지는 성경에서부터 가스라이팅된 것 같으니, 탓하려거든 성경으로 몰려가기를. 성경에서부터라업보인가.


  「뱀이 있는 곳을 읽고 난 후 이불 속에서 발견된 이 아직 더 남은 것처럼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놀랐다. 계속 찝찝한 마음을 가진 채로 무언가에 휩쓸리는 마음은 늘 불편한데 그 불편함이 무엇이었는가는 작가의 인터뷰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시장으로 간 성폭력(김보화, 휴머니스트, 2023)이라고 얘기한다. 성폭력범들이 법정에서 변호인을 고용하여 무죄감형을 만들어내는 행태에 대한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변호인들’, ‘대형로펌에 의해 또 한번 철저한 피해자가 된 하진이 소설에 등장한다.

  ‘하진은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당했지만 무고죄로 맞고소 당하고 대형로펌에 의뢰한 성추행범은 변호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무죄를 받는다. ‘진실이나 정의따위보다 은혜로운 의뢰인이 주신 돈이 정의인 이들의 행태로 인해 퇴사하고 이전 직장 사람들과도 소원한 채 부모님이 계신 집에 머무르게 된 하진’. 무력한 나날 속 부모님이 비빌 언덕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하진을 보고 있자면 동질감이 느껴지면서도 울화통이 터진다.

  이런 상황, 그러니까 뭔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 흔히 벗어날 수 없는 우환과 곧잘 이어지는 것은 점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딱히 진지하게 믿어서가 아니더라도 점집에서 듣게 된 말은 은근히 찝찝하게 들러붙는다. 하진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을 거두어 태우고 굿을 벌이면 상황이 나아진다는데, 자꾸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집안에 그런 것이 있나, 없는데, 아니야 뭔가 있는데, 그래, 그거다, 그거하며 반드시 무언가가 그에 맞는 것이라고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것을 할아버지가 남긴 뱀술이라고 생각한 하진이 사촌 정인과 뱀술 처리-그리니까 뱀을 꺼내 묻고 명복을 빌어주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하진의 최선의 방법이 죽은 뱀들의 명복빌기이기에 드는 무력감, 나아가 그것이라도 해야할 절박함이 전해져 씁쓸하다. ‘하진한결같이 친철하며 하진의 친절함에는 스스로를 못나고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것들이 있는 사람임에도 거대한 자본과 조직’, ‘악인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더욱 더. 아니다. 점사에 따르면 그것은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업보다. 나도 모르게 물려받은 저주가 함께 한 유산. 문제는 할아버지의 뱀술 컬렉션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뱀들의 명복을 빌며, 뱀들이 할아버지가 한 행동을 용서해주기를 기도하는 하진정인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정인은 망연한 얼굴로 서 있는 하진을 달랬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뱀들이 좋은 곳에 가도록 기도해주면 된다고. 하지만 정인은 스스로도 그 말들을 믿지 못했다. 정말 그뿐이라면 두 사람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뱀을 하나하나 꺼내 묻는 장면을 상상하며 내가 그들인양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지만, 이왕 그렇게 하기로 한 것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게 전개되는 상황을 보며 하진한결같은 친절함이 뜬금 찝찝함으로 남았다. 그건 완전무결함의 다른 말처럼 여겨졌는데 강박같이 여겨져서, ‘하진이 좀더 세상에 대해 불친절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굳이 친절할 필요는 없지 않나. 대형로펌과 같은 기득권 하에서 좀더 불친절하게 세상을 살기를 바라게 된다. 족제비가 물고 간 뱀 한 마리처럼 저주는 불길한 기운을 두른 채 주위를 맴돌 것이다. 마냥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평안조차도 얻지 못한다. 세상엔 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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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4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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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소설 보다 : 여름 2024

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4-06-07.

 

  토미, 오스틴……. 소설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외국인인가 싶지만 이들 회사는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기 위해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회사다. 실제 IT 스타트업종에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위해 이름을 부르거나 닉네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은 듯하다. 그런데,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왜 대체로 영어일까?


  토미는 회사의 수평적 문화방침이 자신은 편견없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사장의 허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 또한 채용될 수 있었다고. 토미는 회사에서 업무 능력도 인정받고 회사 생활에 만족하지만, 트렌스젠더 남성으로서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니까 농담을 받아치는일에 서툴고, “어떻게 해야 괜찮은 남자로 보일 수 있는지,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잘 알지 못한다. ‘괜찮은 남성으로 인정받고 싶은 토미의 이 욕구를 오스틴에게서 발견한다. 오스틴은 소셜마케팅 팀으로 자신이 기획출연한 영상에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버다. 오스틴은 토미의 신장 164cm보다 작은 극소수의 남자이기에, 모델같은 비율을 가진 남자들을 찾아가서 인터뷰하며 그들의 외모를 띄우는 것이 업무이기에 오스틴에게 보다 더 동질감, 동지의식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욱 오스틴을 롤모델처럼 생각한다. 토미는 오스틴과 교류하면서 트렌스젠더로서 갖게 된 자신의 낮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신이 바라는 남성상을 형성해 갈 수 있을까?

 

  토미에겐 여자친구 혜령이 있. 둘의 관계가 으로 정리되고 마는 것, 이 둘 사이의 이름 불리기는 어떤 형태였을까.

  토미가 트렌스젠더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혜령은 토미가 트렌스젠더임을 알고 있기에 이들 관계의 종결은 그것 때문은 아니다. 끊임없이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토미에게 혜령이 들려준 ‘10달러 스트립쇼얘기는 의미심장하다.

  대만의 한 술집에는 참가비 10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스트립쇼가 있다. 이 스트립쇼에는 노년의 퀴어 커플, 온몸에 타투를 새긴 사람, 깡마른 뇌병변 장애인, 가슴 아래 탑 수술 흉터가 남아 있는 트랜스 남성 등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들은 이들에 대해 야유비난, 성적 타자화하지 않고 취약한 신체를 드러낸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이 스트립쇼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말한다.

 

성을 상품화하지 않는, 보여지는 이를 타자화하지 않는 스트립쇼라니요. 그런데 며칠 디에 몇 가지 의문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참가자들은 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얻을까?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의 신체에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공연을 통해 수치심을 덜어낼 수 있을까? 자기 몸을 긍정한다는 것이 그런 다정한 경험을 통해 성취될 수 있는 일일까? 누구도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데, 오로지 다정함만으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을까? 그 대안적인 스트립쇼는 프릭쇼와 어떤 점에서 어떻게 다른가? 저는 이 질문들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토미가 동경하는 오스틴은 성추행 논란에 연루되며 퇴사한다. 오스틴은 페미니스트를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데, 페미니스트에 대한 그의 몰이해와 편견이 얼마나 극단적인지를 보여주는 말, 딱 봐도…… 페미같잖아요. 페미니까 차인 거죠.” “머리가 짧으니까요.” 오스틴의 이 편견과 혐오를 단순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실제로 2023년 경남 진주에서 머리카락이 짧으니까 페미라며 편의점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남성이 있었다(https://www.yna.co.kr/view/AKR20231105030200057). 오스틴에게 좋은 여자란 페미가 아닌이다. 성추행에 연루되어 퇴사한 오스틴은 새출발하고 싶어하며, 그러한 이유로 사지연장술을 받는다. 이 위험한 수술을 감행한 오스틴이 토미에게 말한다. 우린 그러니까, 전우 같은 거잖아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위험한 신체를 바꾸는 수술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토미와 오스틴은 전우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토미는 이에 대해 확실히 선을 긋는다. 아니요……. 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혀 달라요.”

  자신이 바라는 남성상을 갖추었다고 생각한 오스틴의 열등감과 혐오를 알게 되면서 자신과는 다름, 자신의 동경과는 다름을 인식하는 토미가 자신에게 좀더 긍정적이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음을 기대해도 될까. 언젠가 혜령과 대만에 그 쇼를 보러 가기로 했지만, 혜령과는 헤어졌고 그 자신 홀로 그 쇼를 마주할 수 있을까. 수평적 회사 분위기를 조직하려는 대표에 대해 편견 없음을 증명하려 한다고 생각했듯 10달러 스트립 쇼를 이야기하는 혜령에게서 소수자에 대한 편견없음을 넘어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픈 윤리적 강박이 있다는 느낌을 받고, 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을 떠올리며 몹시 기분이 나빠졌던 토미. 그 쇼에 가게 된다면 토미는 무대에 오를까, 관객으로 있을까. 아니 그 쇼에 갈까?

 

  이름.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을 보며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트렌스젠더로 법적 성별이 다른 토미에게 법적 성별 정정을 위한 절차로 인우보증서가 필요하다. 개개인에게도 사회에서도 토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 ‘허락받아야 하는 존재다.

 

혜령은 인우보증서를 받을 만한 이런저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게 이름을 불러줬지만,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그 사람한테 커밍아웃할 수는 없다거나 이미 연락이 끊긴 지 너무 오래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르다. 그 다름을 고유한 특색이라 얘기하고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절대적 진리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어디 세상은 그러한가. 나와 다름을 이유로 끌리기도 하고 그 이유로 벽을 치는 세상이다. 토미가 사람들의 내면에 대해 보다 민감하고 미세하게 반응하긴 하지만, 온전히 위선적이지 않은 사람을 부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한다. 하지만 나또한 그 위선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쉽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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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6 소설 보다
김채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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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다


소설 보다 : 2026

김채원, 위수정, 최예솔, 문학과지성사, 2026-03-10.

 


  서해에서후지다’.

   ‘후지고, 후져서, 후지니, 후짐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배한다. 난 후진 쪽이라 서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연 동해, 남해, 서해를 연결짓고 바다를 떠올린다. 나아가 동해와 남해와는 달리 거의 가보지 못한 서해를 좀더 경직된 느낌의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심어준 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다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서해가 후순위인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역시 후지다.

  ‘서해의 만남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둘의 관계가 재밌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여자친구와 친구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어쩌면 가 둘이 헤어지는 장면을 목격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도 같지만, 그녀의 이름이 용서해라서 가능했다고 농담 섞어 말하고프다. 게다가 는 서해의 이름을 보자마자 포기브 미부터 생각했으니까.

  ‘는 계속 자신을 후지다고 말하고 있다. ‘허접한 놈과의 헤어짐에도 자신이 후지다고 생각하고, 주욱 후진놈들만 만나 연애했고 짝사랑 남자에게는 고백 이후의 걱정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간호대를 휴학하고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이 1년이 다 되도록 복학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복학을 하고 나면 졸업반으로서 국가고시를 보고 평생 간호사로 일해야 함을 생각하며 무책임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약국에 계속 있고 싶은 자신을 후지다라고 생각하는 . 이런 의 후짐은 불안과 소심함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 적절하게 후지다를 정의하고 있다.


말하자면 얼마든지 멋지게 살 수 있었지만 대체로 후지게 사는 상태. 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 그런 걸 서해는 이해했다.

     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

  이 장이 내게 꽂힌 건, ‘나 나나, 샘샘이라서. ‘후지다라는 말이 여러 상황에서 쓰이지만 이만큼 꽂혀드는 후짐의 정의. ‘와 그 소소한 내용은 다르다 해도 내가 후짐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 정말 후지다!

  ‘에게 있어 서해를 이해하고 늘 괜찮다 말해주는 존재다. 무조건적인 이해와 지지를 통해 는 성장한 것일지 모르겠다. 물론 생을 통틀어 는 무수한 후진상태에 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지만 후지다를 말할 때 남자의 상대적인 형태로 부각되는 것이 아쉽다. 어쩌면 청년의 삶에는 진로이성이 가장 큰 문제이구나 싶고 이것이 요즈음 청년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나는 조금은 귀엽게 한편으로는 후지게소설을 따라갔다.

  소설에서 후진 만큼 특이한 용서해는 이름 때문인지 참 재밌는 캐릭터인데 소소한 위로를 아주 잘 건네는 사람인데다 무한 긍정의 힘을 갖는 사람이다(장호랑 헤어지고 나서도 장호항을 찾는 에게 정말 후지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세상에 후진 사람은 많다는 것을 아는 서해사슴도 없는 사슴 농장에게 보여준다거나 장호랑 장호항은 가지 못했어도 인천 송도를 구경시켜주며 서해랑 서해에 왔으니 된 거라고 얘기하며 를 다독인다. 생각해보면 내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후짐 또한 좀더 버무려질 수 있을 것 같다. ‘는 끝없이 후지다, 후지다말하고 있고 서해는 끝없이 아니다, 괜찮다말하는 이 관계를 보는 게 참 재밌다. ‘용서해의 동생은 감해는 아니고 서해는 중국 청두로 떠나지만 는 새롭게 우진을 만나 연애하며 첫 여행지로 작은후진해변을 찾는다. 이 해변은 강원도 삼척에 실제 있는 해변이다. 작은후진해변이라니!

  ‘는 서해로 인해 후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간다. 바닷가에서 발견한 작은후진 해변처럼 좀더 작고 작은 후짐이 계속되더라도 그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의 성장기. 가끔은 팩트라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냥, 그리고 마냥 괜찮다’, ‘잘한다라고 말해주는 것도 정말 괜찮은 거 같다고 생각했다. , 사람 봐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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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
전영재 지음 / 목수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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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잠자리


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 전영재, 목수책방, 2025-03-14.

 


  DMZ(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가 이 땅에 생긴 지 벌써 73년이 되었다. 정전협정이 1953727일이니 곧 73주기가 다가온다. 이 여름, DMZ는 어떤 풍경일까.

   DMZ는 서해에서 동해를 가로지르는 248킬로미터, 군사분계선을 따라 남과 북 4킬로미터 양쪽으로 조성된 철책에 갇힌 땅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마냥 이곳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암흑과 같은 이미지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마치 폐허가 들어차는 느낌이었는데, 오래 전 스치듯 DMZ에 관한 다큐를 보고 그 고즈넉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었고 전쟁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더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가서는 안되는 곳이라고 각인도 되었던 곳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야 DMZ에 관광투어 프로그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고싶은 형태는 아니지만 그 방법만이 제한적이라도 근처라도 가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은 많은 DMZ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방송기자 전영재 작가가 그동안 취재했던 DMZ의 다양한 생태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DMZ는 전쟁의 모습을 담은 폐허의 폐쇄된 공간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동물이 모여들고 식물이 자라도록 스스로가 회복한 공간이었다. 인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공간이 인간의 손길과 발길이 사라지자 스스로 회복력을 갖추고 풍요로운 야생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자연 회복력, 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살아고 있는 곳에서는 멸종이 되어가는 동식물이 이곳에서 제 이름을 드러내며 달리고, 피어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멸종위기종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곳, DMZ. 그리하여 저자는 이곳을 이제 분단선이 아닌 생명선이라 명하고 있다.

  보지 않고 있는 동안 어떻게 그곳에 동식물이 모여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철새들이 날아오고 씨앗들이 자리잡으며 하나하나 희귀 동식물이 생명을 움트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요롭게 이곳을 변화시키고 있다.

  어쩌면 날개를 가진 들이 먼저 이곳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텃새들과 겨울을 보내려고 온 수많은 철새들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가운데 가장 기품 있고 아름다운 새로 여겨지는두루미, “전 세계에 50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기러기, “ ‘새들의 황제라 불리지만 사실은 사냥 능력이 없어서 죽은 짐승의 사체를 뜯어 먹고 사는독수리, “목뼈가 14개나 있어서 몸체를 움직이지 않고도 머리만 270도 돌려 사방을 볼 수 있는수리부엉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던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 “1912년 함경북도에서 한 개체가, 1927년 서울에서 한 개체가 발견되었다라는 아주 낡은 기록만 있는 호사비오리 같은 멸종위기종 등 맹금류와 다양한 새들이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강원도 철원은 남한에서 가장 추운 곳이지만, 겨울 철새들에게 젖줄이 되는 샘통지역은 한 번도 언 적이 없는 곳으로 한겨울에 따뜻한 물이 흐르면서 늘 영상 15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하니 철새들에게 얼마나 낙원같은 곳이겠는가. 그리하여 두루미의 먹이가 되는 미꾸라지 등이 많아 두루미과 새들이 이곳을 찾아 겨울을 보내고 떠나는 모양이다.

  책속에 두루미 잠자리라는 사진이 있다. 야생의 동식물 이야기가 나오니 두루미잠자리가 연상되었는데 곤충 잠자리가 아니라 두루미의 침대(?), 침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느 저자가 취재하여 찍은 다양한 휘귀종의 동식물, 예쁜 색감을 가진 다양한 새와 꽃, 식물 사진도 나오지만 두루미 잠자리사진이 인상깊었다. 왜인지 비무장지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처럼 느껴졌고 울컥했다. 책 속 사진과는 다르지만 저자가 촬영한 영상 속 이미지가 유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어 캡쳐했는데, 책 속에 사진을 보면 기분이 다를 것이다. 아래 사진보다 더 많은 두루미떼가 비무장지대 그 어느 곳에서 편안히, 잠자고 있는 모습……. 평화롭고, 아득하고


두루미의 잠자리” https://v.daum.net/v/20160229211005154/MBC (www.imnews.com)


  새들 다음에는 비무장지대를 흐르는 물을 토대로 살아가는 생물들이 등장한다. 역시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물범, “야생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증식도 어려워 복원이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광릉요강꽃, 이 광릉요강꽃이 어떻게 군락지를 이루게 되었는지, ‘둠벙이라 부르는 물웅덩이 근처에 사는 수서곤충이며 희귀종 물거미며, ‘불새라고 불리는 호반새, 희망의 상징 희망새 등이 또 얼마나 기껍게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가슴떨리게도 지뢰밭에서 살아가는 희귀한 동식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불리는 솜다리꽃, 신비의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고라니와 멧돼지, 삵과 너구리, 족제비와 하늘다람쥐, 호랑이, 반달가슴곰, 산양 등. 4000~4500살 정도되는 습지, ‘자연의 타임캡슐’, ‘자연사 박물관’, ‘자연의 고문서라 불리는 이탄층 용늪의 모습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이 아름다운 야생 생물들이 살아가는 이 비무장지대가 얼마나 역사, 문화, 생태학적으로 귀중한 자원이며 가치가 있는지를 알리고 이 땅이 계속 희망과 생명의 땅이 되도록 이곳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에 관해 독일이 동서독 국경 지역을 그뤼네스반트(Grunes Band)로 보전한 사례가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참조하여 보다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북한에 있는 옛 역사적 유적지와 이 생명력 넘치는 야생의 생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기를 기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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