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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4 ㅣ 소설 보다
권희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평점 :
기억하기
소설 보다 : 가을 2024
권희진, 이미상, 정기현, 문학과지성사, 2024-09-09.
권희진, 「걷기의 활용」
‘나’는 ‘걷기’를 시작했다. 대다수에게 알려진 것처럼 ‘걷기’는 육체의 건강에도 필요하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이 단순한 걷기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구직자 신세인 ‘나’도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한다. 목적지가 있지 않은 걷기를 할 때마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꼬리물기하는데, 자주 떠오르는 인물이 ‘태수 형’에 관한 기억이다. ‘태수 형’과의 기억은 특별한 사건이 있다거나 강렬한 이미지는 아니다. 태수형과 태수형의 여자친구 K, 그리고 ‘나’가 기억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그러하듯 어떤 일이 있거나 없거나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취업 문제며 여러 가지로 고되고 복잡한 나날 속 그저 걷기만 할 뿐인데 왜 ‘태수 형’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일까. 마치 태수형을 이야기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한 것처럼.
“나는 형과 같이 늙어가고 싶었다.”
이 말이 걷기의 멈춤을 가져왔다가 다시 걸어갈 힘을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 걷기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정체성을 명료하게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기에, 그렇기에 ‘나’는 산책이 아니라 ‘걷기’였어야 한다. 산책은 ‘나’가 이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기에 조화롭지 않다. 목적지가 없을지라도 좀더 직선의 느낌을 주는 이 ‘걷기’가 감정을 모호하게 두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정리하는데 탁월하게 활용될 수 있다. 마치 미취업생, 백수인 청년 세대의 무력감을 쏟아낼 것 같았던 이 이야기는, 제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취업 문제도 연애 문제도 누구에게나 헤치고 나아가야 할 문제인데, ‘나’에게는 태수를 정의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것이 세상살이에 더 힘겨움으로 작용하는 요인이 되겠지만 어쨌든 그 자체가 ‘나’이기에.
이미상, 「옮겨붙은 소망」
여기서 옮겨붙어야 하는 건 ‘5억 원에 매수한 아파트가 10억 원이 된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런 소망이 현실이 되는 것…을 ‘아, 좋다’고 소망하는 건 나의 시선이고 작가는 다르다.
2억 빌라로 이사하고 시세차익으로 수익을 얻은 n&n's 부부는 ‘남은 시간 동안 한 반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기로 하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한달에 300만 쓰면 70대까지 살 수 있을 테고, 돈 떨어질 때까지 살명 되므로. 남편이 사고로 사망한 뒤, 아내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n&n's를 통해 앤틱 소품, 빈티지 주얼리를 구매하고 ‘나’가 물건 구매 도우미로 고용된다. ‘나’는 이들 부부의 삶을 궁금해하고 아내의 이 구매행위는 ‘수익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구매다. 노동시간이 아니라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것, 또한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이 남아 있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그에 대한 흔적을 기억하는 것이다. 남편에 대한 애도이고 그들이 소망하던 방식의 삶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듯 아내 또한 무한한 시간을 살 수는 없다. 그녀 또한 ‘시간’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남은 그녀의 주얼리들은, 남는다. n&n's 아내는 이것을 클릭도우미 ‘나’에게 남긴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했기 때문에 집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줄 안다. 하지만 의외로 구더기는 의욕이 바닥났을 때가 아니라 다시 막 샘솟을 때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의욕을 품은 것에 대한, 새 삶을 꿈꾼 것에 대한 처벌처럼 느껴진다.
로또 당첨의 바람 속에도 이 부부처럼 ‘돈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어느 누구라도 이런 소망을 갈구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은 유한하니까,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보다 여유롭고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고픈 마음. 이들의 소망은 타인에게 ‘전이’되는 걸까, ‘전가’된 걸까.
정기현,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이 소설은 거여동의 고가교 기둥에 적힌 낙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요즘은 담벼락이 많지 않아서 문자로 쓰여진 무언가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함부로 남의 건물에 낙서를 하면 검찰에게 끌려갈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인가받지 않은 게시물도 뜯어내면 재물손괴가 되는데, 남의 집 담벼락이며 공공건물에 어떻게 낙서를…… 그럼에도 그렇게 ‘어떤’ 할 말이 있기에 낙서를 하는 걸까. 이런 낙서들은 대부분 욕설이나 혐오, 비방문구다. 굳이 좋은 문구들은 쓰이지 않는다. 소설 속에 씌어진 낙서도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해 욕설이 기본인데, ‘기은’과 ‘준영은 이런 낙서에 관심을 둔다. 조금 더 적극적인 건 ’기은‘이다. ’기은‘은 잠시 휴직하며 무력감을 겪던 중 가게 된 교회에서 ’준영‘을 만나 소소한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그리고, 가벼웁게 동네를 산책하며 오래된 낙서를 발견하고, ’한국오카리나박물관‘ 같은 기이한 장소를 찾거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기은‘의 일과가 되었다. 동에 곳곳에 새로 발견한 낙서를 볼 때면 ’기은‘은 ’준영‘을 떠올린다. 「걷기의 활용」속 ’나‘가 태수형을 떠올리는 것처럼. “기은은 오늘 모험을 나선 목적이 김병철의 낙서를 밝혀내는 데 있지 않고 준영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자함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연달아 알게 되었는데, 그러자 마음에 슬픔이 깃들었다.”
“그러자 마음에 슬픔이 깃들었다”. 마치 성경 문구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제목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찬송가 제목이라서 그런가. 노래 가사를 찾아보니 이렇게 시작한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며/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기은‘에게 깃든 슬픈 마음은 좀 다르다고 느꼈는데 이것을 찬송가로 성경으로 빗대어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어쩐지 슬프지 않은 것 같은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축복받은 슬픔인 것처럼 느끼는 ’기은‘이 아닌가 생각하며, 나는 이것이 슬픔인가 생각했고 역시 슬프다가 아니라 ’슬픔 마음 있는‘이란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은 슬픔을 오롯이 느끼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슬프지 않은 사람들은 슬픈 얼굴을 하고
슬픔 한가운데 선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다 집으로 돌아갔다”
「소설 보다 : 가을 2024」속 세 단편은 각각 ’기억하기‘다. 하염없는 걷기이든 동네를 탐색하는 산책이든 빈티지 물건을 구매하든 누군가를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일, 또한 생생히 되살리고 정리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새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