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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6 ㅣ 소설 보다
김채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평점 :
후지다
소설 보다 : 봄 2026
김채원, 위수정, 최예솔, 문학과지성사, 2026-03-10.
「서해에서」는 ‘후지다’.
‘후지고, 후져서, 후지니, 후짐’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배한다. 난 후진 쪽이라 ‘서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연 동해, 남해, 서해를 연결짓고 바다를 떠올린다. 나아가 동해와 남해와는 달리 거의 가보지 못한 서해를 좀더 경직된 느낌의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심어준 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다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서해’가 후순위인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역시 후지다.
‘나’와 ‘서해’의 만남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둘의 관계가 재밌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여자친구와 친구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어쩌면 ‘나’가 둘이 ‘헤어지는 장면‘을 목격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도 같지만, 그녀의 이름이 ’용서해’라서 가능했다고 농담 섞어 말하고프다. 게다가 ‘나’는 서해의 이름을 보자마자 ‘포기브 미’부터 생각했으니까.
‘나’는 계속 자신을 ‘후지다’고 말하고 있다. ‘허접한 놈’과의 헤어짐에도 자신이 후지다고 생각하고, 주욱 ‘후진’ 놈들만 만나 연애했고 짝사랑 남자에게는 고백 이후의 걱정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간호대를 휴학하고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이 1년이 다 되도록 복학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복학을 하고 나면 졸업반으로서 국가고시를 보고 평생 간호사로 일해야 함을 생각하며 무책임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약국에 계속 있고 싶은 자신을 ‘후지다’라고 생각하는 ‘나’다. 이런 ‘나’의 후짐은 불안과 소심함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 적절하게 ‘나’가 ‘후지다’를 정의하고 있다.
말하자면 얼마든지 멋지게 살 수 있었지만 대체로 후지게 사는 상태. 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 그런 걸 서해는 이해했다.
“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
이 장이 내게 꽂힌 건, ‘나’나 나나, 샘샘이라서. ‘후지다’라는 말이 여러 상황에서 쓰이지만 이만큼 ‘딱’ 꽂혀드는 ‘후짐’의 정의. ‘나’와 그 소소한 내용은 다르다 해도 내가 ‘후짐’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아, 정말 후지다!
‘나’에게 있어 ‘서해’는 ‘나’를 이해하고 늘 괜찮다 말해주는 존재다. 무조건적인 이해와 지지를 통해 ‘나’는 성장한 것일지 모르겠다. 물론 생을 통틀어 ‘나’는 무수한 ‘후진’ 상태에 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지만 ‘후지다’를 말할 때 ‘남자’의 상대적인 형태로 부각되는 것이 아쉽다. 어쩌면 청년의 삶에는 ‘진로’와 ‘이성’이 가장 큰 문제이구나 싶고 이것이 요즈음 청년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나는 조금은 귀엽게 한편으로는 ‘후지게’ 소설을 따라갔다.
소설에서 후진 ‘나’만큼 특이한 ‘용서해’는 이름 때문인지 참 재밌는 캐릭터인데 소소한 위로를 아주 잘 건네는 사람인데다 무한 긍정의 힘을 갖는 사람이다(장호랑 헤어지고 나서도 ‘장호항’을 찾는 ‘나’에게 ‘정말 후지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세상에 후진 사람은 많다는 것을 아는 ‘서해’는 “사슴도 없는 사슴 농장”을 ‘나’에게 보여준다거나 장호랑 장호항은 가지 못했어도 인천 송도를 구경시켜주며 서해랑 서해에 왔으니 된 거라고 얘기하며 ‘나’를 다독인다. 생각해보면 내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후짐 또한 좀더 버무려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끝없이 ‘후지다, 후지다’ 말하고 있고 ‘서해’는 끝없이 ‘아니다, 괜찮다’ 말하는 이 관계를 보는 게 참 재밌다. ‘용서해’의 동생은 ‘감해’는 아니고 서해는 중국 청두로 떠나지만 ‘나’는 새롭게 ‘우진’을 만나 연애하며 첫 여행지로 ‘작은후진해변’을 찾는다. 이 해변은 강원도 삼척에 실제 있는 해변이다. 작은‘후진’해변이라니!
‘나’는 서해로 인해 ‘후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간다. 바닷가에서 발견한 ‘작은’후진 해변처럼 좀더 작고 작은 후짐이 계속되더라도 그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나’의 성장기. 가끔은 ‘팩트’라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냥, 그리고 마냥 ‘괜찮다’, ‘잘한다’라고 말해주는 것도 정말 괜찮은 거 같다고 생각했다. 아, 사람 봐 가며.